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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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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에서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1]
중화인민공화국
에서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中國一㸃都不能少 中国一点都不能少
중국일점도불능소
중국은 단 한 점도 작아질 수 없다[2]

1. 개요2. 양국의 입장3. 변천사4. 원칙에 적용되는 대상들5. 외국에 대한 적용
5.1. 대한민국5.2. 미국
5.2.1. 2019년 미국 국방부 대만의 주권 인정5.2.2. 2021년 바이든 행정부의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 불변 선언5.2.3. 2022년 미중 정상회담과 조 바이든의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 불변
5.3. 영국5.4. 독일5.5. 기업과 산업에 대한 적용5.6. 하나의 중국 거부5.7. 러시아
6. 남북관계와의 비교7. 논란
7.1. 중국 감탄고토7.2. 미국과 서방의 대만 포기
8. 기타9. 대중매체10. 둘러보기1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하나의 중국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이 동시에 주장하고 있는 원칙으로 중국 대륙 타이완섬, 홍콩, 마카오는 절대 나뉠 수 없는 것이고[3]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로지 하나"라는 주장을 뜻한다. 여기서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중화민국은 '중화민국 정부',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로 본다.

2. 양국의 입장

중화민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을 확고히 주장하며 ‘ 두 개의 중국’과 ‘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에 반대한다.[원문1]
대만 해협 양안 관계 설명서
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성한 영토의 일부분이다. 조국 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성하는 것은 대만 동포를 포함한 전체 중국 인민의 신성한 책무이다.[원문2]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서문
과거 마카오 명나라 시절에 포르투갈에 양도되었고, 홍콩 청나라 때 영국에 할양돼 식민지가 되었고, 대만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반환 받았지만 국공내전의 영향으로 국민당 정권의 최후 보루가 되면서 대륙과 분단되었다. 현재 홍콩과 마카오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었으므로 이 두 도시는 실질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실효지배가 미치는 영토이자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이다. 홍콩의 경우 발달한 민주주의 의식과 주민들의 반 중국 공산당 감정으로 하나의 중국 논리에 약간의 장애가 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2014년 들어서 비중이 커진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별다른 영향력이 없었으며 공산당의 처우에 반대해 홍콩 독립까지 외치는 이는 소수이다. 중국의 주류인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은 중화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적고, 각기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정부를 세우고 분단된 것이 아닌 중국사회 각계각층에 녹아들어 있어서 고려 대상에 들어가기조차 힘들다. 그러므로 하나의 중국 관련 논제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역시 표면적으로 통치체제가 나뉜 양안 관계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원칙에 굉장히 철저해서 중화민국 국적의 대만인도 호적이나 입경 허가 여부와는 관계없이 원칙상 전부 자국민 취급한다. 그래서 실제로도 해외에서 대만 거주민이 자연재해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어떠한 문제가 생기거나 피해를 입은 경우, 현지의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에 중화인민공화국 국민 신분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그 경우 영사 보호를 받을 수 있다.[6] 다만, 대만 입장에서는 감정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귀국 후 문제가 될 소지도 다분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절차에 대한 신뢰도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존재감이 중화민국을 압도하는 현재 상황만 보면 '하나의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을 강제 병합하기 위해 만든 논리이고, 대만은 그 논리의 피해자'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 자체가 시초를 따지고 올라가면 중화민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며, 대만 또한 과거 밀려나기 전 국공내전 당시에는 대만 자신들도 대만을 포함한 중국을 자신들이 통일하겠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중화민국은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하지 않았다.[7] 쉽게 말해서 쌍방중 어느쪽이 국력이 센가와 단지 나 먼저 원리의 문제이지, 비슷하거나 같은 사상을 기반한 상태라는 것이다. 중화민국은 중화민국이 중심이 된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중심이 되는 하나의 중국을 주장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대만 내에서는 이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도 있지만 중화민국 정부는 여전히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도 중화민국(대만)에서는 공식 석상에서 대만 전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전국(全國)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全臺라고 표현). 공식 발표에서 중국 대륙을 언급할 일이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절대 중국이라고 하지 않고 대륙이라는 지역적인 표현을 사용한다.[8][9] 92공식 이전에는 자국의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ex. 일본과의 합작의 경우 臺日合作이 아닌 中日合作이라는 말을 사용), 현재는 이러한 경향은 많이 줄어든 편이다.

또, 중화민국은 몽골까지도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었으나 21세기 들어 현실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몽골과도 비공식 관계를 수립하게 되면서 사실상 독립을 인정하고 있다. 아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현재 중화민국의 국력이 중화인민공화국만한 대국이었다면 이런 생각을 쉽게 접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처한 상황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만으로도 상대가 안 되는 와중에 적을 하나 더 만들어봐야 이로울 것이 일절 없기 때문이다. 대만-몽골 관계 문서로.

3. 변천사

3.1. 20세기

1918년 호법전쟁이 종결되고 남방의 정책 천춘쉬안과 서남군벌 탕지야오, 루룽팅 등이 베이징의 북양군벌와 정부 단일화를 위해 협상했던 것이다. 이것을 선후회의라고 한다.[10] 그러나 입장 차이로 인해 1920년에 사실상 결렬되었고 북방에서는 북양군벌 간의 안직전쟁이, 서남에서는 각 군벌들의 세력 확장 내전이 벌어졌다.

1920년 쑨원이 광동군벌 천중밍과 합작하여 2차 호법운동을 전개하다가 영풍함 사건으로 축출되었으나 1923년 양시민, 류전환 등의 군벌들과 합작하여 3차 광동정부를 수립하였고 1924년 1차 국공합작을 결정하였다. 쑨원은 염원인 북벌을 이룩하기 전에 죽었으나 1926년 중산함 사건으로 당의 대권을 장악한 장제스 두 차례의 북벌로 중국 전역을 공식적으로는 통일한다. 하지만 사병들과 각 지방의 정치분회를 중심으로 지방의 권력을 장악한 군벌들이 견제하고 여기에 개조파, 서산회의파를 비롯한 반장 정치세력들이 개입하여 1929년 편견회의를 시작으로 군벌들의 반란이 계속 벌어져 중화민국은 여전히 내전 상태였다. 하지만 1930년 중원대전에서 장제스가 승리하면서 난징 국민정부의 우위가 확실해졌고 1931년 탕산 사건을 빌미로 시작된 1차 양광사변 역시 만주사변을 계기로 종식되면서 중국은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지방에 미치지는 못해도 난징을 중심으로 그런대로 통합되었으며 초공작전, 복건사변, 이류지전, 2차 양광사변을 거치면서 중앙정부의 힘이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었다. 이 와중에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중앙정부의 권위는 청나라 이후에 가장 강력한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다 중화민국의 대부분의 공업 생산력과 경제 기반이 일본군에게 점령되면서 극심한 궁핍에 시달리게 되었고 숨죽이던 군벌들의 세력도 이 기회를 틈타서 다시 강화되었다. 또 일본군 점령지에 '중화민국'을 자처하는 왕징웨이 정권이 수립되면서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등 추축국들에게 단교당했다.[11] 중일전쟁 종결 이후 1945년경 국공 양당의 연합정부 결성과 상호간의 정통성 대립을 둘러싸는 논쟁에서 직접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이 태동되었다. 이렇듯 하나의 중국 원칙은 수십 년동안 중국내 모든 정치세력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12][13]

3.2.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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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0월 UN 총회에서 중국으로서의 대표권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부여하는 UN총회 제2758호 결의안이 통과되는 순간. 중화민국에서 파견한 인원들은 더 이상 중국의 대표단으로 취급되지 않았기에 상임이사국 자리도 뺏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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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중국) 측 사진. 왼쪽의 안경쓴 인물이 당시 외교부 부부장이자 중국 대표단 단장이었던 차오관화이다. 그 오른쪽은 캐나다 대사이며 중국대표단의 부단장인 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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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대만) 측 사진. 오른쪽의 안경 쓴 인물은 당시 외교부장 저우수카이(周書楷; 주서해)[14].

1971년은 UN총회 투표였기 때문에, 안전보장이사회[15] 상임이사국 지위를 확보하던 중화민국이 거부권을 발동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소련은 이미 2758호가 통과 되자마자 ' 장제스의 대표단(Chiang Kai-shek's delegation)'[16]을 UN에서 축출하는 추가 UN총회 투표를 예고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미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고 판단했는지 중화민국 측이 실질적으로는 추방이지만, 형식상 자진탈퇴를 해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탈퇴는 이후 중화민국, 즉 대만의 국제 외교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고 만다.

중국의 대표권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기는 것은 이미 미국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여기고 있었지만 중화민국을 유엔에서 축출하는 것에 대해서 미국은 중국 측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타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2758호의 투표 결과가 너무 큰 표차가 났기에 소련이 중화민국의 UN 완전 축출 투표를 밀어 붙였을 경우, 가결될 가능성이 컸다. 아예 쫓겨나는 모양새가 되면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이 결의를 이유로 대만을 바로 침공할 수도 있었다.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2758호 가결 1주일 후 중화민국은 형식적인 탈퇴를 선택하게 된다.

사실 이 1971년 축출조차도 중화민국 입장에선 대단히 운이 좋은 것이었다. 국공내전의 패배 이후 장제스 정권을 인정하는 쪽은 미국이 고작이었고, 대부분의 나라들은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과 협상하길 선호했다. 타이완 섬에 대해서는 중국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대만 주민들의 입장에서 주권 문제를 새로 논해야 한다는 대만 주권 미정론이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우세했고, 이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과 따로 수교를 하지 않은 서방 국가들과 중화민국의 외교관계 역시 비정상적인 상태였는데, 가령 영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했으나 대만과는 영사급 관계를 유지하였고 호주도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만에 대사도 파견하지 않는 등 어정쩡한 상태였다. 만약 6.25 전쟁이 없었다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적 지위 상승이 더 빨랐겠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6.25 전쟁 개입으로 서방 세계의 중공에 대한 어그로가 오르면서 역으로 중화민국은 외교적 이익을 더 보았다. 하지만 미국조차도 1950년대에는 중화민국을 쫓아내고 인도를 새로운 상임이사국으로 들이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17] 중화민국의 국제적 입지는 매우 불안정했다.

3.3. 현재

현재 중원을 가진 중화인민공화국이나 타이완으로 밀려난 중화민국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은 포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양측의 주장에 상당한 온도 차이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공산당 정부는 중화민국이 1949년에 멸망하여 그 권리가 모두 자국에 승계되니 하나의 중국의 주인은 자국이라 주장하며, 현재의 대만은 그저 국민정부의 잔당이 '중화민국'을 참칭하며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압도적인 국력 차이[18]를 바탕으로 중국 공산당은 국제사회에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중화민국) 중에 택일하라, 중립은 없다"는 식으로 완고한 태도를 관철하고 있다. 근래에는 대만을 겨냥한 반분열국가법을 제정하고 군사행동까지 불사할 것을 암시하며 대만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대만으로 이전한 중화민국 정부도 명목상으로 이 원칙을 가지고 있으나, 아무래도 압도적인 차이 때문에 거의 먹혀드는 곳이 없다. 오랜 세월 외교적 입지도 중국에게 빼앗겨 빠르게 고립되면서 대내적으로 하나의 중국 자체에 회의를 갖는 다양한 주장이 대두되었다. 물론 여전히 이 원칙을 지지하고 대륙을 수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공존한다. 국민당을 주축으로 하는 범람연맹의 경우 이 입장을 지지한다. 중국측의 하나의 중국 논리와 맥은 같으나 하나의 중국의 주체가 '중화민국'으로 치환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중화민국은 멸망한 것이 아니라 공산정권에 의해 타이완으로 축소된 것이며, 하나의 중국의 달성을 위해 대륙 수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강경한 논조는 옛날에야 통하던 것이고 오늘날에는 보다 현실 맞춤형 하나의 중국으로 완화되었다. 통일중국의 주체가 중화민국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중화민국 주도로 '중원 탈환'을 이룬다기보다는 양측이 동등한 입장에서 민주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결과물이 양안정상회담이기도 하다. 과거였다면 양측 지도자가 직접 만나 악수한다는 것은 국공합작 이래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 대만 내 총통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퍼포먼스였다는 비판도 있으나, 어쨌든 상징성이 있다.

반면에 민주진보당을 주축으로 하는 범록연맹은 당연히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민주진보당도 현실을 고려해서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 폐기를 주장하지는 않고, 중화민국의 '독자적인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거의 원래대로 되돌아간 상태지만 2016년 총통 선거에서 당선된 민주진보당 소속의 차이잉원도 양안관계에선 현상 유지에 가까운 상당히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00년대 초에는 대만에서 민주진보당 등 범록(泛綠) 진영의 위세가 과거에 비해 커지면서, 대만 독립론이 중요한 이슈로 급부상하게 되자 중국의 관심은 중화민국의 실체보다도 대만 독립론에 쏠리고 있다.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 이들이 중화민국에서 '중화'나 '중국' 색을 지우고 '대만' 색을 강화했다. 예를 들어 천수이볜 집권기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1. 여권이나 국영 웹사이트에 기재된 '中華民國'을 '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으로, 'Republic of China'를 'Republic of China (Taiwan)'이라고 고쳤다.
  2. 국영기업인 중국석유(中國石油; Chinese Petroleum Corporation)는 대만중유(台灣中油; CPC Corporation, Taiwan)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중화우정(中華郵政; Chunghwa Post)은 대놓고 대만우정(臺灣郵政; Taiwan Post)으로 고쳤다. 중화민국 정부가 출자하는 중국강철(中國鋼鐵, China Steel)도 비슷하게 개명을 하려 하였으나 이미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고치기가 힘들어 결국 개명하지 못했다. 플래그 캐리어 중화항공(中華航空, China Airlines)도 대만항공(臺灣航空, Taiwan Airlines)으로 개명당할 뻔했으나 무산되었다.
  3. 과거 국민당 집권기에 쓰였던 로마자 표기법들과 중국의 한어병음에 맞서서 통용병음을 제정했다.

임기 말에는 아예 헌법을 개정해 중화민국을 대만화하려고 했으나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포기할지언정 타이완 독립을 묵과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상의 선전포고에 가까운 최후통첩을 보내 이를 백지화시켰다. 범록연맹에 더해서 대만 내의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세력의 강한 반발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도 컸지만.

이후 국민당의 마잉주가 집권한 뒤 이 조치들의 대부분을 초기화하고 원래대로 돌렸다.
  1. 여권이나 국영 웹사이트 등의 '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은 '中華民國'으로 되돌리되 영어판에서는 'Taiwan'을 삭제하지 않았다. 중국어권에서는 중화민국만 기재해도 중국 대륙과 혼동하지 않으므로 굳이 대만이라고 병기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삭제했지만, 중국어권 밖에서는 혼동하기 때문에 Taiwan의 병기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인정하여 이와 같이 조치한 것이다.
  2. 대만중유는 중국석유로 되돌리려 했으나 이미 교체 작업이 상당히 진척돼서 정체한 듯하다. 하지만 대만우정은 중화우정으로 원상 복구했다.[19]
  3. 통용병음을 폐지하고 한어병음을 공식적인 로마자 발음 표기 수단으로 지정하였다.

한편 중화인민공화국의 표준시가 어느 지역이든지 간에 중앙정부가 위치한 베이징 시간대인 UTC+8가 적용된 것도 하나의 중국 논리에서 온 것. 하지만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대륙을 통치하던 시절 한 번도 전국을 하나의 표준시로 설정한 적이 없고, 이 쪽은 오히려 너무 정확하게 따져 5개씩이나 되는 표준시를 설정해 현실성이 없었다.[20][21] 하지만 대한민국 정도 되는 나라도 아닌 광활한 영토를 가진 나라에서 베이징 시간대 하나만을 전국적으로 사용하는 조치는 과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중국 서부에 위치하여 베이징 시간대를 쓰면 너무 불편한 티베트 자치구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비공식 시간대를 따로 정해두고 쓸 정도. 과거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사례와 다른 의미로 실용성이 떨어진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진원지가 중국본토로 지목되면서, 대만에서는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강해졌고 이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는 하나의 중국은 거론되지 않으리라 보인다.

현재 미국, 일본, 유럽연합은 과거 자신들이 인정했던 하나의 중국 원칙이 대만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어떻게든 이를 깨트리거나 후퇴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슬그머니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하거나, 대만의 주권에 대해 변칙적으로 해석하기도 하는 등으로 대만의 국가적 위치와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에 대한 도전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이 자국의 이익을 얻기 위해 대만의 외교적 고립을 초래해가면서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비위를 맞추어주고 수교한 것이니 이제 와서 깨기는 절대 쉽지 않다. 이미 대만의 외교는 파탄 지경에 이르러 전세계에서 대만을 배제하는 나라가 압도적 다수인지라 미국 일본, 유럽연합이라는 서방 강대국들이 압박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들 이미 수십년에 걸쳐서 강고하게 구축된 대만을 배제하는 세계적인 인식을 바꾸는 데는 역부족하며, 아니 그들이 제1세계를 주도하는 이상, 그런 인식을 공고화하는데 그들이 크게 이바지하였다.

중국 또한 '하나의 중국을 깨는 것' = ' 중국과의 외교, 경제적 단교 및 군사적 충돌까지도 감내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그야말로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노골적으로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대만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타협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십년간 미국에게 이야기해왔다. 즉 중국에게 있어 대만 문제는 미국이 중국에게 어떤 경제적 손실, 군사적 손실을 입히던 상관없이 중국의 양보라는 선택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것. 이미 중국은 " 반국가분열법"을 제정, 8조 항에 “대만 독립·분열 세력이 어떤 명분이나 방식으로든 대만을 중국에서 분열시키려 하거나, 장차 대만을 중국에서 분열시킬 수 있는 중대한 상황이 벌어지거나, 평화통일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때에, 국가는 비평화적 방식 및 기타 필요한 조처를 통해 국가 주권과 영토의 완결성을 지켜야 한다”고 공식 선언했으며 이후로도 "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고 절대 약속하지 않는다." “완전한 (대만) 통일이 반드시 실현될 것” 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즉 통일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요하다면 전쟁을 해서라도 반드시 대만을 수중에 넣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레드라인이 워낙 명백하기 때문에 미국-중국 패권 경쟁 와중에도 미국에서 대만이 원하는 방향과 정 반대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거나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를 공개 입장으로 할 정도이다.[22] 그러나 미국 또한 중국이 대만을 가져가는 선택지만큼은 쉽게 용납할 수 없기에 중국의 ' 전례 없는 공격'이 발생할 경우 대만을 지킬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타이완 동맹 보호법까지 제정하여 대만 수교국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시사하기까지 할 정도.

4. 원칙에 적용되는 대상들

4.1. 중화민국( 대만)

앞서 말했다시피 하나의 중국 원칙은 양측이 공통적으로 주창하며 특히 중국은 이 관점을 전세계에 요구한다. 그러므로 한국, 미국, 일본 등의 국가와 서방 국가에 대해 자국과 수교하려면 상대방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중국을 정통으로 인정하지만 대만과도 대표부를 설치해 비공식 관계를 이어가고있다. 대만 역시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주장하지만 이건 중국국민당 친민당 범람연맹의 입장이며, 민주진보당 대만단결연맹 범록연맹 쪽에서는 중화민국이라는 이름 자체를 버리고 대만 공화국으로 완전한 독립을 하자고 하고 있다.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대만을 하자는 것이다.

사실 민주진보당이 본격적으로 약진하게 된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대만 독립론은 그다지 힘을 받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와중이던 1978년 대만 총통에 오른 장징궈쌍중 승인이라는 카드를 꺼내는데, 한마디로 두 개의 중국 이론이었다. 즉 중국과 대만이 각각 대등한 중국 정부로서 공존하되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하여 통일을 계속 논의하자는 얘기였지만, 이미 국력으로나 국제적 위상으로나 대만을 압도하고 있는 중국은 이를 묵살하였다.

1992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 -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 간의 회담에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 92공식'(九二共識. 1992 Concensus)라고 한다. 다만 양측의 해석은 조금 다른데, 대만의 경우 대륙(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중화민국) 양측이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一個中國,各自表述". 줄여서 "一中各表")하기로 했다는 해석까지 덧붙인다.[23] 이 합의 이후 중국은 "대만이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주도의 통일을 인정했다"고, 대만은 "중화민국의 독자성을 인정했다"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세워 왔다. 그럼에도 양안관계의 궁극적 지향점이 통일이라는 점에 대해서 만큼은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나름대로 의의를 두어왔다.

하지만 그러다가 대만 본성인 출신으로 총통에 오른 리덩후이가 은근슬쩍 양국론을 꺼내면서 대만 독립 분위기를 고조시키고[24] 급기야 2000년에는 독립주의자인 천수이볜이 집권하면서 사실상 대만 독립론이 하나의 중국 원칙과 격렬하게 맞서는 양상이 되고야 만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대만 독립론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부수는 재앙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나마 하나의 중국 원칙을 놓고 기본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중국 국민당과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물론 국민당 역시 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이라는 대원칙을 천명하고 있다는게 공산당입장에서는 문제지만 말이다.

2008년 중국국민당 마잉주가 총통에 오르면서 중국과의 협력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정상회담 논의가 오가는 등의 나름대로 훈훈한 무드가 조성되고 되었고 2015년 11월 7일 전격적으로 열린 양안 정상회담에서 마잉주와 시진핑이 만나면서 사실상 하나의 중국 원칙에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해졌다. 왜냐하면 마잉주는 당시 국민당의 평당원일 뿐이므로 그 동안 대륙 정권이 원한대로 당대당 영수회담이 아니라 사실상 중화민국 총통과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간의 정상회담이 되어버렸기 때문으로 분단 60여 년만에 서로가 각기 다른 국가를 세웠음을 암묵적으로 묵인했기 때문이었다.

2016년 대만 총통에 당선된 차이잉원(채영문)은 대만 독립주의자이긴 하나 리덩후이보다도 온건한 화독파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눈에 차이잉원이 찰 리가...

2024년 대만 총통에 당선된 라이칭더(뇌청덕)는 천수이볜 이상으로 초강경 대만 독립 성향이다. 이미 라이칭더는 2008년 이후로 중국 대륙 전체에 입국 금지가 걸려 있으며,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마카오 정부에서도 라이칭더를 입국 금지시켰을 정도로 초강경 대만 독립 성향이다. 시진핑과 라이칭더의 관계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일본과 영토 분쟁이 벌어질 때에도 하나의 중국을 주창한다. 홍콩인들과 대만인들이 오성홍기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고 댜오위다오에 상륙했을 때 중국공산당 당국이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검열삭제 해버렸다. 그래서 청천백일이 사라지고 빨간색 깃발만 덩그러니 남았다.

앞서 간략히 설명한 쌍중 승인 이론은 사실 장징궈가 집권하기 전에도 어느 정도 논의가 있었다. 중국 대륙 대표권과 타이완 지역 대표권은 서로 별개이므로 중국 정부로서 인정이 안된다면 타이완 지역의 주권 국가로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1971년 중화민국 정부가 국제연합에서 퇴출되기 직전 미국 역시 국제연합에 잔류하라고 설득했지만, 장제스 총통은 이것을 거절하였다. 결국 저우수카이 외교부장은 탈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그러나 탈퇴 직전에 중화민국 외교부 차장(차관) 양시쿤(楊西崑)이 장제스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기도 했었는데, 중화민국을 포기하고 중화대만공화국(中華台灣共和國, Chinese Republic of Taiwan)을 선포하자는 것이었다.[25] # # # 아마도 이는 대만이 중화민국이라는 국호와 정통 중국이라는 지위를 포기함과 동시에 UN 회원국 지위를 중화인민공화국에 승계시켜주는 굴욕을 감수하는 대신, 중화대만공화국이라는 신생 국가로서 UN에 잔류하는 형태를 취해 외교적 고립을 최소화시키자는 논지인 듯하다.

이는 민진당을 비롯한 범록연맹이 주장하는 대만 독립론과 비슷해보이긴 하지만, 문화적으로 중화권의 일원임을 표방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물론 당시 중화대만공화국을 선포했어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국가로 인정했을 가능성은 적다.[26] 하지만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은 UN 입성에 겨우 성공한 상태였다. 따라서 만약 미국 등의 서방 국가들은 중화민국이 중화대만공화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UN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도록 적극 지원했을 경우, 최소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조치를 말로만 규탄할 뿐 실질적으로는 묵인했을 지도 모른다. 1991년 대한민국과 북한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진 않아도 상대방이 UN에 가입하는 걸 인정했던 것처럼. 아니면 중화대만공화국 선포 같은 방법이 아니더라도, 중화민국이 독립국으로서 회원국의 지위를 누리진 못해도, 미국의 지원으로 대만이 비독립국인데 특별히 회원 지위를 부여하는 예외를 따로 UN에서 인정[27]하도록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식으로 타협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28]

아무튼 당시 양시쿤은 대만 주재 미국 대사였던 월터 P. 매카너기(Walter Patrick McConaughy, Jr.)에게 본인의 중화대만공화국 구상과 이에 대한 장제스의 반응에 대해 알리면서 미국의 지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양시쿤이 매카너기에 했다는 말에 따르면 장제스가 처음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장제스의 아내인 쑹메이링이 반대하고 결국 아내에게 설득당한 장제스가 양시쿤의 제안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한 듯. 쑹메이링은 당시 단순한 영부인이 아니라 대만 정계에서 남편 장제스에 버금가는 실세였고 장제스도 그녀의 조언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마침 미국 또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질까봐 결국 이 방안을 지지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 일화는 미국과 대만의 기밀 사항이었으나 중화타이완공화국의 주장 자체는 당시에 많이 오갔던이야기로 보인다. 왜냐하면 당시 민두기 교수의 논문에도 '중화타이완공화국'이 언급되기 때문. 참고로 레이전( 雷震, 1897~1979) 같은 이는 1970년대에 이와 비슷하게 중화대만민주국(영문명 동일)으로 국호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대만 문제 전문가인 프랑스 정치학자 스테판 코르퀴프(Stéphane Corcuff, 중국명: 高格孚)는 2004년 중화 대만민국으로 국호를 변경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UN에서 형식상 자기 발로 나가긴 했어도 사실상 축출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중화민국은 앞서 말한 쌍중 승인 이론에 따라 UN 재가입을 비롯한 국제단체 가입을 시도하고 있다. 논리상으론 맞는 소리지만 상임이사국을 확보한 중국 정부가 워낙 요지부동인지라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리덩후이 정권까지의 시기와, 마잉주 정권 이래로 중화민국 명의로 가입하는 것도 무조건 안된다고 버티고 천수이볜 정권에서 대만(Taiwan) 명의로 가입을 시도했을 때는 전쟁 운운할 정도다.

현재 두 '중국' 중에 중화민국과 정식 수교한 국가들 중 일부는 대만과 중국을 각각 별도의 국가로 승인해놓고 있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따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화민국 정부가 이에 완강히 반대하여 해당국과 단교를 하진 않고 있고, 이 조치를 강하게 비난하는 범람연맹 소속 인사도 많지 않다. 이것은 대한민국 북한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가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외국이 남북한을 개별 국가로 승인하거나 더 나아가 동시 수교하는 것에 태클을 걸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자극받은 대만 정부도 탄성외교를 통해 중국을 승인한 정부와도 재수교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보였으나 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한다는 사실에 빡쳐 단교를 선언해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29]

중국 정계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중국인들에게도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대만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는 즉시 중국인들의 눈초리가 영 좋지 않다. 외국인이 중국인과 대화할 때 3대 금기사항[30] 중 하나다. 2019년에는 중국인 상대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라는 게 튀어나와서 4대 금기라 하고 있다.

4.2. 홍콩 마카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로 중국은 일국양제(같은 나라지만 다른 제도를 가진다는 뜻) 원칙을 내세우며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치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실질적 체감은 차이가 있어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홍콩에서 급증한 대륙인들이 홍콩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일도 많았고. 그래도 하나의 중국 원칙은 홍콩을 상대로는 크게 문제가 불거지진 않았다.[31] 적어도 2014년 중반까지는 그랬다고 외견상 보여 왔다. "외견상"인 이유는 2003년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2009년 반분열국가법 홍콩조항 제정 반대 시위 등 홍콩-본토 관계도 계속 충돌을 빚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중앙정부가 직선제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중국 대륙 지지자를 홍콩 지도자로 내세우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홍콩 시민들은 2014년 홍콩 우산 시위를 통해 반발한 바 있으며, 반환 시 약속한 일국양제를 제대로 지키라는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 # 사실 일국양제 원칙에 대해 먼저 (훼손하여) 빌미를 제공한 것이 중국 대륙인 만큼[32] 중국으로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방어하는 동시에 홍콩의 일국양제 훼손 논란을 잠재우는 숙제가 남았으며,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홍콩의 열기가 중국 본토나 소수민족에게 확산되어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될 우려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중국국민당 당적의 마잉주 총통마저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 하나의 중국 원칙은 홍콩에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한편 역시 일국양제 하에 놓여 있는 마카오의 경우 옛 지배자인 포르투갈이 늦게까지 독재 국가였던 탓에,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이웃 홍콩과 달리 주민들이 중국의 통치에 강하게 반발하지 않는다. 물론 마카오인들의 시각에서도 중국 정부·공산당의 통치 방식이나 중국 대륙인들에 대한 반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반발 표출이 홍콩인들만큼 적극적이진 않다.

그런데 중화민국의 관점에서 홍콩과 마카오는 본래 영국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지위가 어정쩡한 지역이 되어 버렸다. 중화민국 미수복지구에 홍콩과 마카오는 포함돼 있지 않다. 중화민국의 관점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없으므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영국과 포르투갈로부터 홍콩과 마카오를 반환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성립되지 않다. 명목상 중화민국이 반환 받아 영토로 흡수된 땅이라고 해석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중화민국의 관점에서 홍콩 지구와 마카오 지구는 그 지위가 어정쩡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물론 이건 법리 해석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대만인들은 실질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지배하는 특별행정구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대만에 위치한 중화민국 정부에서 보는 홍콩과 마카오의 공식 입장은 "식민 지배 국가가 스스로 포기한 별도의 자유시", 즉 단치히 자유시와 같은 형태[33]의 반 독립국가이다. 왜냐하면 중화민국에 반환된 것도 아니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 입장에서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니까 홍콩과 마카오는 영국 포르투갈이 포기한 "자유시" 개념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제연맹 UN 헌장에는 특정한 도시를 놓고 국경 분쟁을 빚는 나라들이 있는 경우, 얼마든지 자유시라는 이름의 도시국가를 만들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중화민국 정부는 이런 논리로 일종의 자유시로 보고 외교관계도 따로 잡고 있다. 단치히 자유시 폴란드 제2공화국이 내정을 간섭한 것처럼, 홍콩 마카오라는 '자유시'에 중국공산당[34]이 내정을 간섭하고 있다는 논리로 보는 것이 대만의 논리이다.

4.3. 중국 대륙

중화민국이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중국본토는 중국공산당에 의해 불법점거되었으며 중화민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이므로 중화민국으로 중국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때문에 이들 입장에서는 중국본토는 대만과 분리될 수 없는 수복해야할 고토로 본다. 그래서 이들의 입장에서도 대만은 국가가 아니다.

국부천대 이후 대륙을 수복하려는 국민당이 장기집권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일종의 국시와도 같았다. 그러나 국민당의 장기집권이 종식되고 외성인에 눌려있던 본성인들의 영향력이 증대됨에 따라 결국 독립파인 민주진보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은 통일파와 독립파 사이에서 논쟁이 대상이 되었다. 독립파 입장에서는 본토와 대만은 별개의 국가이므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다.

5. 외국에 대한 적용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 합법정부이며 타이완이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입장을 수용하고 있다. 이는 국제기구들도 마찬가지라서 유엔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미승인국으로 간주하며 올림픽등에서도 중화 타이베이라는 표현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만 과거 중화민국과 수교했다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나라의 경우, 수교 성명에 반드시 포함하는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이다"라는 문구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 당사국의 해석의 차이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수교를 통해 수교 당사국이 "타이완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고 인정했다"고 주장하지만, 수교 당시 성명은 대부분 "우리나라는 타이완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을 존중(respect)/이해(understand, acknowledge)/인정(recognize)한다"라는 애매모호한 문구를 사용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타이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완벽하게 수용하는 것은 아닌 문구로 되어 있다.[35]

그리하여 미국 대만관계법 등을 통해 대만과의 교류를 완전히 끊지 않고 있으며, 일본 역시 대만 정치인과의 교류를 완전히 끊지 않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한중수교 때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한다고 명시했지만, 타이완에 국가에 준하는 정치실체가 있는 것은 묵인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하나, 아직까지는 세계가 암묵적으로 타이완에 소재한 중화민국을 국가에 준하는 존재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이 범록연맹이 바라는 '타이완 공화국'으로 인정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대다수 국가의 정부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인정하되, 현실적으로는 한 국가에 준하여 대우하는데, 이것이 중화민국이든 대만공화국이든 중국이 아닌 외국의 입장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중국이 계속 타이완을 국가로 부정하며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 특별행정구를 강조하는 것에 반감을 느낀 민주진보당을 비롯한 대만 독립 세력과의 갈등도 있다. 홍콩 우산 시위 이후로 대만의 주권을 통일 이후에도 보장해주겠다는 일국양제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을지 국제적으로 시험대에 올라 그나마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하는 중국국민당조차도 곱지 않은 입장을 보이는 것이 당장의 상황이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역사적인 관계와 배경으로 보건대 하나의 중국의 강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양안 정부가 하나의 중국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중화민국이 타이완 공화국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중국에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경우, 장징궈가 주창한 두 개의 중국론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고는 하지만.

한편 중화민국이 그 정체성을 포기하고 대만 공화국으로 국가를 개편하기 어려운 것은 비단 중국의 무력 침공뿐만 아니라 중국이 타이완의 합법적 주인이라는 입장에 대해서 반박할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만 독립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중화민국으로서의 역사가 소멸될 경우 타이완은 완전한 미승인국가 되어버리며 그나마 있는 13개 수교국마저도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 고립을 더욱 더 심화시킬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2015년 11월 마잉주 시진핑이 사실상 대만 총통 대 중국 주석간의 회담을 하면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의 세부적인 내용이 바뀔 여지가 커졌다. 그간 중국이 주장한 하나의 중국 원칙이 일국양제(하나의 중국 두 개의 체제)였다면, 앞으로는 대만이 주장해온 일국양부(하나의 중국 두 개의 정부)를 중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열린 것. 현실적으로 일국양제를 대만쪽에서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을 뿐더러 아예 대만 공화국을 주장하는 대만 독립주의자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두 개의 정부가 대등하게 공존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형태로 양보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는 편이 낫기도 하다.

2016년 1월 당선된 차이잉원 대만 총통 당선자는, 무턱대고 대만 독립을 추구한 천수이볜과는 달리 현실을 인정하고 "하나의 중국"의 원칙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는 대만의 경제가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독립 논쟁으로 안 그래도 나쁜 경제를 더욱 더 나락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것로 보인다. 기사. 어차피 민진당이 집권해도 대만 독립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취하는 건 현실상 불가능하다. 중국의 군사력은 이미 대만을 압도하고 있는 데다가, 군사력을 제외하고서라도 중국이 대만에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은 널려 있으며, 위에서 언급했듯 많은 대만인들은 급진적으로 독립을 선언해 나타나는 혼란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중국도 정말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 척졌을 때 생길 수 있는 파국도 싫다는 것이 대만인들의 정서다.

이런 식으로 역사에서도 '하나의 중국'의 틀을 지키려다 보니 현재 중국 영토 내에서 있던 모든 일들은 다 '중국인'의 역사이며 중국인은 민족이 같든 다르든 모두 '중국인'일 뿐이라는 견지를 내세우고 있다. 동북공정도 과거 고구려 발해의 영토가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있으므로 그들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역사관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국가적 프로젝트이다. 다만 이 역사관에 반대하는 중국인들도 만만치 않으며 반대로 이 판도 바깥에서 한족들이 한 일은 중국인의 역사에서 제외시킨다. 그렇기에 두 중국은 한족 중심 국가인 싱가포르를 엄연한 외국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여기는 역사를 볼 때 상당히 다른 면도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2019년-2020년 현재 하나의 중국 원칙은 아주 제대로 중국의 위상을 깎아먹고 있다. 중국이 잘 나가던 2000년대 중반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갈등을 최대한 피하고 중국 내부의 경제를 키우는 정책을 취하고 대만 역시 그 때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라 국제사회 역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었지만, 2020년대 들어서는 각종 중국 관광객들의 진상짓 그리고 코로나 19라는 전세계적 재앙을 초래한 주제에 국제사회를 향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해주라는 내로남불을 시전하니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인 것. 실제로 2020년 WHO 회의에서 대만 대표가 대만의 코로나 19정보는 대만의 보건당국과 협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중국 대표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라는 발언을 했다가 다른 나라들의 대표들이 분위기 파악 좀 하라는 쓴소리를 가한 적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비정치적인 곳에서 이런 분위기가 나올 뿐 각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9-2020년에 이러한 것을 구실삼아 중공과 단교하거나 중화민국과 수교한 나라는 단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2019년에는 솔로몬 제도 키리바시가, 2021년에는 니카라과가, 2023년에는 온두라스가 추가로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5.1. 대한민국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중관계 한국-대만 관계 문서를 참고하면 좋다.

과거 우리나라는 반공 성향이 강했고 냉전의 영향을 받아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중공이라 부르고 중화민국을 중국 또는 ‘자유중국’이라고 부르며 중화민국만 인정해 주었다.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1년 대만이 UN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를 중화인민공화국이 차지한 이후로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 등을 거치며 점점 양국 관계가 발전하다가 1992년 8월 24일 정식으로 수교를 하고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으로 인정하게 된다.

양국이 수교를 맺고 오랜 시간이 지난 2023년 현재도 대중 무역과 한중관계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 공식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5.2. 미국

조지 W. 부시 시절 논의된데 이어 트럼프 정부에서 미중간의 무역 전쟁, 대만에 해병대 주둔, 대만 승인 찬성론자의 요직 임명 등으로 인해 미국이 대만을 재승인 및 재수교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다면 5개의 눈과 합동으로 승인하고 수교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가능성은 매우 적다지만 만약 미국을 필두로 주요 열강들이 전격적으로 대만을 승인하고 정식 수교를 해버린다면 하나의 중국 원칙이 매우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중국 입장에서 미국 등의 주요 열강들을 대적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게 훨씬 많기 때문에[36] 경우에 따라서는 앞서 언급한 하나의 중국, 두 개의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 중국의 입장을 대변해 줄 우방도 별로 없는 처지라 운신의 폭도 좁다.[37]

그러나 미국도 하나의 중국, 두개의 정부 행보를 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중국의 태도가 워낙 강경하기 때문. 중국은 중국과 타이완을 분리하는 순간 전쟁조차 불사할 것이라며 타협 자체를 거부한 최후통첩을 날리는 중이며 미국조차도 이에 대해 한발 물러설 정도이다. 현직 미국 대통령인 바이든이 대만 방어를 위해 군사개입을 하겠다는 발언을 했는데도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에서 미국의 대만에 대한 정책은 변함없다는 엇박자가 나왔다. ##

2018년 8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청 형식으로 차이잉원 중화민국 총통 NASA를 방문했다. 대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차이잉원에게 초청장을 보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하나의 중국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다음날인 2018년 8월 21일에는 전격적으로 엘살바도르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이로써 대만의 수교국이 17개국으로 하나 더 줄게 됐다. 그러나 정말 대놓고 도널드 트럼프가 차이잉원한테 NASA 초청장까지 써줄 정도라 조만간( 2018년- 2019년 경) 미국- 대만 정상회담 하는거 아니냐는 설까지 돌고 있다. 이례적으로 엘살바도르의 대만 단교 비판하는 성명까지 냈다. #

그리고 존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은 대표적인 대만통이자 친대만파이다. 조지 W. 부시 임기 초반인 2001년 7월, 미군 항공기 하이난 불시착 사건으로 미중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자 당시 국무부 차관보이던 존 볼턴은 대만과의 재수교를 주장한 적도 있다. 9.11 테러가 터지면서 중국이 테러로 분노에 휩싸인 미국의 분위기가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급하게 저자세 외교로 전환했기 망정이지, 9.11 테러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정말 모른다. 그리고 존 볼턴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사실상 미국 안보라인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2019년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과정에서, 미국 백악관이 표시한 세계지도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분리해서 표시하는 일도 발생했다. 기사 대만 네티즌들은 " 백악관도 불매운동 해봐라"며 조롱하고 있다.

같은 해 12월 23일 미 의회는 주대만 미국대사를 파견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대사를 파견한다는 의미는 그 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사

이렇게까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부수는건 시진핑이 자초한 일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전의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모두 미국과의 갈등은 피하고 최대한 협조하는 길을 택하여 미국이 어느 정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해주었지만 시진핑의 경우에는 미국의 역린인 민주주의를 툭툭 건드리며 미국의 동맹국들인 대한민국과 일본을 압박하고 대놓고 미국의 패권에 맞서면서 하나의 중국원칙을 인정하라고 내로남불을 시전하니 미국지도부나 정계입장에서는 인정해 줄 리가 만무한 것이다.

이 때를 이용해 대만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에이브람스 전차, F-16V 전투기, C-130 허큘리스 수송기, MQ- 8b 무인기 같은 공격형 무기들을 도입하며 대규모 군사확충에 나서고 있는데 당연히 중국은 미국에게 대만에게 무기를 파냐며 난리를 쳤지만 미국 지도부는 비웃음으로 화답했다.

2020년 3월 11일 미국 상원에서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를 보장하고, 대만이 수교국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타이페이 법안이(TAIPEI Acts) 통과됐다. 이 법안에는 국제기구에 대만이 가입할 수 있도록 미 행정부가 돕는다는 내용이 있다. 대만과 단교하는 국가에 압박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식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으나, 이를 완화시키는 법안임은 틀림없다.

5.2.1. 2019년 미국 국방부 대만의 주권 인정

2019년 6월 6일 미국 국방부에서 대만을 주권국가(Nation State)로 표기했다. 기사 2019년 미국 전략보고서에서 대만 몽골, 뉴질랜드, 싱가포르와 함께 우방 국가로 지정한 것이다. 이 사안의 특이점은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데이비드 리 대만 안보위원회 사무총장(한국의 NSC 상임위원에 해당)과 면담한 직후에 나왔다는 점이다. 즉 존 볼턴이 해당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월 30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이 졸업생들과 사진을 찍었는데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떡하니 노출시켰다.

외교를 공식 담당하는 국무부가 아닌 국방부의 지침이므로 당장 속단하기는 조금 곤란한데[38]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단발적인 움직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하나의 중국 원칙을 미국이 폐기하려 한다는 움직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당연하지만 이 발표에 대해 중국은 대단히 강도 높은 비난을 가했다. 보고서 발표 후 6월 2일 웨이펑허(魏凤和) 중국 국방부장 “누군가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하려 한다면 중국 군대는 선택의 여지 없이 일전을 불사할 것이다.”라고 발언하였으며, 당일 새벽에는 SLBM 시험 발사를 단행했다.

2019년 6월 26일 미합중국 국방부 랜달 슈라이버 차관보가 헤리티지 재단 관련 회의에 참석해 "대만을 '국가'라고 생각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주도로 시행된 6월 6일 사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발언이다. 기사

5.2.2. 2021년 바이든 행정부의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 불변 선언

2021년 2월 3일, 영국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은 불변하다고 천명했다. # 또한 타이완 관계법에 따른 6개 보장 조항 및 상하이 코뮈니크를 언급하며 해당 규칙들을 미국은 계속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39]
다만 2022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에 방문하여 대만 총통과 면담함으로써 무려 25년만에 미국 정치 서열 3위가 대만을 방문하는 상황이 일어나 중국이 공식적으로 비난하고 항의했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새로운 일은 아니라며 이로 인해 양국간 위기를 고조 시켜서는 안 된다고 답변하였다.

5.2.3. 2022년 미중 정상회담과 조 바이든의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 불변

[속보]바이든 “하나의 중국정책 불변”…시진핑 “美에 도전할 생각 없다”

조 바이든 시진핑과 회담후 대만과 관련해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을 여전히 유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일방적 현상 변화에 반대한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시진핑 조 바이든과의 회담에서 미국이 넘어서는 안되는 레드라인으로 미국이 넘어서는 안되는 첫번째 레드라인이라는 의견을 내놓으며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principle)에 대해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입장을 전달했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이 미국에게 인정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중국 '원칙(principle)'이며, 미국이 불변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이다. 미국은 양안 문제에 대해 확정적인 원칙을 표명하고 있지는 않으며, 다만 현재로서는 정책적으로 어느 일방에 의한 변화를 반대하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는 것 뿐이다.

5.3. 영국

2020년 6월 1일, 영국 보리스 존슨 정부에서 중국 홍콩 국가안전법 강행에 대한 반발로, 2025년 이내에 대만을 영국이 국가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기사

영국은 국공내전에서 중국국민당이 패전하고 국부천대를 한 직후인 1950년, 대만에 대한 국가승인을 취소하고 중화인민공화국만을 인정한 바 있다.[40] 영국령 홍콩 코앞인 선전시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 떨어지자 영국은 재빨리 중화민국을 버린 것이다. 1950년 대만에 대한 국가승인을 취소했던 것은 클레멘트 애틀리( 노동당) 총리였는데, 보수당 소속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애틀리 총리의 정책을 75년 이내에 정면으로 뒤집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보리스 존슨 총리가 파티게이트로 인해 총리직을 사퇴하게 되어 차기 총리의 성향에 따라 해당 계획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41]

5.4. 독일

사실 이러한 정통성 다툼은 분단국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로, 동서독 분단 당시 서독의 외상이었던 발터 할슈타인(Walter Hallstein)은 이른바 할슈타인 원칙(Hallstein Doktrin)을 내세워, 동독을 승인한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였다. 다만 소련에 대해서는 이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련도 남한, 대만, 남베트남은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남한은 자신들이 망하기 직전에 와서야 인정) 서독은 국가로 계속 인정하고 있었다. 서독의 할슈타인 원칙은 1969년 빌리 브란트가 집권해 동방 정책(Ostpolitik)을 펼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고,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과 함께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반면 동독은 1960년대까지는 통일을 추구했으나, 1970년대부터 통일을 하면 서독보다 작은 자신들이 불리해지므로 통일을 거부하고 서독을 외국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이 시기 동독의 교과서나 공문서들을 보면 자국을 독일(Deutschland)이라고 부르지 않고 꼬박꼬박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이나 DDR로 적고, 서독을 버젓한 외국으로 취급했으므로 꼬박꼬박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이나 BRD라고 적었다.

5.5. 기업과 산업에 대한 적용

중국 당국은 하나의 중국을 자국과 수교, 거래하는 모든 타국이나 외국의 회사들에게 강요한다.

2018년 5월 초순, 중국정부가 중국에 진출한 외국 항공사들이 타이완(臺灣), 홍콩, 마카오가 중국과 별개의 국가로 인식되게 만드는 표현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中정부 "타이완 국가 표기 말라" 요청에 韓항공사들 수용 움직임 이게 말로만 요청이고 협조공문을 보낸거지, 지금까지 중국이 해왔던 것처럼 거부하면 온갖 꼬투리를 잡혀서 영업을 방해당할게 뻔하다. 사례 그리하여 수많은 항공사들이 그 압력에 굴했다고 한다. 반대로 대만 교통부는 이러한 항공사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것을 검토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외교적 노력으로 22개 항공사가 다시 변경했다. #

결국 대한항공 홍콩, 마카오, 타이베이 행 국제선을 중국 노선으로 표기했으며 일본 노선과 함께 마일리지 상 근거리로 분류한다. 울란바토르 타슈켄트 노선은 극동 러시아 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와 함께 구소련 지역으로 분류한다.

심지어 e스포츠에서도 압력을 행사하여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대만 출신 프로게이머들은 대회에서도 청천백일만지홍기가 아닌 차이니즈 타이페이로만 국기가 사용되는 등 많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태평양 섬나라 팔라우는 중국의 대만 단교 압박에 불구하고 거부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관광산업이 위기에 불구하고 대만과 관계 맺고 싶으며, 팔라우는 정치 형태가 대만과 비슷하다는 발언을 하였다.

에어 뉴질랜드가 착륙허가 관련 서류에 대만을 단독으로 표기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한 때 착륙을 못하는 소동까지 벌었다. #

대한민국에서 보도되는 대만( 중화민국) 관련 소식은 대개 언론사들에 대한 주한중국대사관의 하나의 중국 압력으로 인해 언론사들이 타이베이, 가오슝 등 대만의 도시에 해외 지사를 두지 못하고 주로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를 통해 보도되는 것이나 중국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을 베이징 특파원을 통해 한국이 하루 이틀 있다가 보도하는 형식이다. 홍콩 관련 소식도 현재 홍콩 특파원의 철수로 베이징에서 이런 식으로 SCMP 빈과일보, 기타 중국 언론들에 심지어 웨이보발 루머까지 더해 하루 이틀 있다가 보도하는 형식이다.

2019년 9월 11일, 중국 정부의 싱크 탱크인 사회과학원이 하나의 중국 위반 사례라며 127개 다국적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고 중국 정부에 제재를 촉구하였다. 문제 기업 가운데는 가전업체 메이디(美的) 같은 중국 본토 기업도 있었다. 홍콩 최대 부호 리카싱의 CK허치슨홀딩스를 비롯해 AIA그룹 등 홍콩 기업과 대만 반도체 메이커 TSMC도 포함됐다. 기사

5.6. 하나의 중국 거부

두 개의 중국 문서 참조.

하나의 중국을 꿋꿋이 거부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건 민간이나 지자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아래 언급한 사례를 봐도 그 나라 정부들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 중심의 하나의 중국에 동의한다. 즉 민주국가라면 개인이 정부와 별개로 '두 개의 중국'이든, '일중일대'이든, '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이든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일 뿐이다. 정부 차원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심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는 나라는 중화민국의 수교국 십여 개가 전부이다.

체코 수도 프라하시는 2016년 전임 시장이 맺었던 프라하– 베이징 자매 결연 관계를 3년 만에 청산하기로 했다. 즈데네크 흐르지프 프라하 시장은 강경 좌파 성향인 해적당 소속으로 대만에서 대학을 나온 대만 유학파 출신이다. 2018년 즈데네크 흐르지프가 프라하 시장에 당선된 이후 베이징 시에 자매 결연 협정에 있는 "하나의 중국을 강요하는 조항"을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흐르지프 프라하 시장은 프라하–베이징 자매 결연 자체를 끊어버렸다. 기사 2019년 10월 10일, 체코 수도 프라하가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며 베이징과의 자매 결연 관계를 단절한 것에 대해, 중국 외교부에서 프라하 시를 비난했다. 기사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 체코의 외교관계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2020년 1월 6일, 중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기존의 체코제 여객기 구매 계획에 따른 여객기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다만 체코 국가 전체가 이 원칙을 거부한 것은 아니라서 제만 체코 대통령의 대변인은 프라하시의 행보에 대해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음모"라면서 "프라하 시의회가 체코의 국익을 체계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사

2020년 9월에는 인도에서 대만이 10일 국경일을 앞두고 7일자 인도 주요 일간지에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사진 등이 실린 광고를 실은 것에 대해서 중국 대사관에서 항의하면서 "우리의 미디어 친구들에게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중화인민공화국만이 전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대만은 '국가'나 '중화민국'으로 언급돼서는 안 된다"라며 협박 메일을 인도 미디어 관계자들에게 대량으로 전송했는데, 이에 인도의 반 아누라그 스리바스타바 외교부 대변인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민간 언론의 보도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사 이미 2020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2020년 인도의 대중국 불매운동 등등 인도 내 외적인 반중 움직임이 크게 일어난 상황인지라 예견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5.7. 러시아

러시아는 하나의 중국에 대해서는 아직 유보적인 입장이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만에 무력을 쓸 필요없다" 고 밝혔다. 기사 거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제재를 가하자, 이에 러시아는 블랙리스트 국가에 대만이 올라와 있는데 문제는 여기서 중화 타이베이가 아닌 그냥 대만으로 표기하였고, 대만측은 이에 독립했다고 축제같은 분위기 였다. 기사

6. 남북관계와의 비교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념으로 인해 분단된 대한민국 역시 규범적으로는 하나의 한국(One Korea)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국제사회에서 표면적으로는 인정을 하는 하나의 중국과 달리 하나의 한국이라는 개념은 통용되지 않는다. 북한 역시 2024년까지는 하나의 조선을 주장했으나 김정은 주도 하에 해당 주장을 철회하고 한국을 적대적 국가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한국이 통용될 수 없는 이유는 남북한 모두가 UN에 가입된 유엔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 유엔 회원국이 되면서 둘 다 국제적으로 명백하게 국가로 인정받았기에 국제법상으로 유효하지 않은 주장이다.[42] 실제로 외교적으로는 북한 외교 상황이 대만 외교 상황보다 훨씬 더 좋은 상황이다. 대만이 갈망하는 UN에도 북한은 이미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된 상태이며, 수교국이 고작 13국에 불과한 대만과 달리 북한은 국가대 국가로 외교를 수립한 수교국만해도 160국에 달한다. 오히려 과거 제1세계 자유진영과 제2세계 공산진영의 대결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는 남한을 배제하고 북한과 단독 수교를 한 아프리카 국가가 더 많아 제3세계 외교에 있어 북한이 대한민국보다 우위인 시기도 있었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 유엔 회원국이 된 이후로는 쭉 유엔 가입국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대만은 다른데 중국과 대만은 짦은 기간을 제외하곤 둘 중 하나만 유엔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대만이 상임이사국 지위를 유지하며 유엔에 있는 동안은 중국은 유엔에 들어올 수 없었다. 대만이 아닌 중국을 정식 유엔 회원국으로 인정하는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이 통과되고 나서야 중국은 중국으로서 유엔에 활동할 수 있게 됐고 대만은 그 순간부터 미승인국으로 떨어져나갔다.

남북간 대결 외교가 치열했던 1960~70년대에는 한국 역시 다른 나라에 이 원칙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단교를 한 나라의 대표적인 예가 콩고 공화국, 칠레 등의 사회주의 국가. (물론 나중에 재수교했다.) 그러나 신생 비동맹 국가들이 잇달아 북한을 승인하고 우호국이던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등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이 원칙은 사실상 무너지고 말았다. 심지어는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해서 북한과 전쟁을 한 나라들의 반 이상이 북한과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있다. 물론 외교적으로 보면 할슈타인 원칙 같이 수교하는 나라마다 북한과의 단교를 요구하는 노선을 냉전 종식 때까지 유지했다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을 것이므로 결과적으론 순기능이 컸다. 애초에 폐기한 이유부터가 북한과 외교 경쟁을 하기 위해섰으니까 말이다.

한국은 헌법 차원에서 하나의 한국을 지향한다. 바로 헌법 제3조에 있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라서 해석하자면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을 국가가 아닌 대한민국 영토 중 일부인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을 불법적으로 점거 중인 국가 규모의 반국가'단체'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북한의 간첩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의 내용도 적국의 간첩을 처벌하는 내용이 아니라 반국가단체의 간첩을 처벌하는 내용인 것. 대한민국의 공식입장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이 점거해 헌법상의 미수복지역에 대한 행정력 행사를 대한민국이 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미수복지역을 관할하는 대한민국 정부 산하의 관공서이자 행정청인 이북5도위원회가 명목상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헌법 제4조 조항인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에 의하면, 북한은 엄연한 평화적 통일 및 협력의 대상이 되는 국가적 정체성을 가지는 집단이다. 이 헌법 3조와 4조는 다분히 서로 상충하는데, 이 때문에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판례로써 그 유명한 북한의 이중적 지위라는 법적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일례로 1992년에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에는 남북관계를 두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정의하고 있고, 남북교류협력법 제12조에는 "남한과 북한간의 거래는 국가간의 거래가 아닌 민족내부의 거래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국제법상으로 보면, 엄연한 UN 가입국으로써 국가대 국가의 관계가 성립 된다. 따라서 이 '특수한 관계'라는 것은, "국제법상으로는 국가이지만, 국내법상으로는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수한 것이라는 뜻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국내법에 한해 규범적으로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만 또 국제법상 현실적으로는 국가가 아닌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 역시 하나의 조선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를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을 무단으로 점령한 괴뢰 정부로 본다. 또한 북한은 내부적으로 더 강경하고 엄격한 하나의 조선 원칙을 세운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인구를 7,000만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운다든지, 관점이나 상황에 따라 남한도 국명으로 쓰이는 대한민국과 달리 북조선이라는 표현을 지리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 때에나 한정적으로 쓴다든지 등등.[43] 김정은의 외교 책자에 문재인 대통령이 빠졌을 때에도 한국 언론에서 논란이 일어날 정도였다. 이것은 북한이 남북 관계를 외교로 보지 않아 문 대통령을 뺐다는 설명이 있고 난 뒤에야 일단락되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한은 인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표에서 북한에 열세를 보였고,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정통성 주장도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만 지지했을 뿐[44] 공산권은 물론 1960년대부터 독립을 이룬 대다수의 제3세계 국가들의 입장은 차이가 있었다. 제1세계가 아닌 국가로서는 자국에 이득이 되는지 여부가 제일 큰 관건이었으며 이 당시에 남북한은 경제적으로 큰 격차가 벌어지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북한 동시수교가 흔히 이루어졌다.

중국과 대만의 압도적인 격차로 대만이 실제 국력에 비해 그 존재감이 미약한 처지임과 비교한다면 대한민국이 하나의 한국을 주장하기에는 대한민국의 국력이 압도적으로 우월함을 감안하여도 북한의 존재감은 굉장히 크다. 지리적인 면적이나 인구 면에서도 그렇고, 북한의 대외적인 인지도는 설령 그게 부정적인 존재감일지라도 그 자체는 분명 크기 때문에 대한민국으로선 이를 부정하기가 어렵다. 또한 중국은 세계에서 G2로도 취급되는 강대국으로서 대만이 자국의 영토이고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하나뿐이라는 입장을 다른 나라들이 공식 인정하도록 강제할 힘이 있다.[45] 하지만 대한민국은 중국처럼 하드 파워를 앞세워 자국의 정치적 입장을 타국에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범대륙적 영향력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하나의 한국 원칙은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기 어렵고 단지 국내법에서만 규범적 조항으로써 그 원칙이 인정될 뿐이다.

7. 논란

7.1. 중국 감탄고토

2017년 12월 북한 석유를 공급했다고 알려진 홍콩 선박 '라이트하우스 윈모어(Lighthouse Winmore) 호'에 대해 미국 대북제재 위반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홍콩을 제재하려고 하자,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배는 '중화민국' 기업이 임차했으며 중국의 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추태를 선보여 큰 웃음을 주었다. 하나의 중국 논리대로라면 중화민국의 선박도 중화인민공화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게 정상인데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소리를 자기네들 입으로 했기 때문.[46]

이 기사에 대해 여론은 온갖 개드립으로 신나게 까고 있다. 그 중에는 중국이 탈부착식 국가냐는 조롱도 있다. 기사 네이버판

2018년 중국 대륙에 체류하는 대만인들이 우체국을 통해 대만으로 우편물을 부칠 때 이런 대응법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는 글이 일본의 SNS에 돌고 있다.

파일:1652817fbcd51646.jpg
대만인: 대만으로 편지 부치고 싶다.
중국우정 직원: 이건 해외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대만인: 하나의 중국이라면서 이때만 외국 취급해 비싼 요금을 받아먹냐? 됐다! 공안한테 찌르겠다.
중국우정 직원: 자...잠깐만! 미안하다! 잠시 윗사람이랑 얘기 좀 해보고 오겠다.
실제로는 대만행 요금은 홍콩, 마카오행과 함께 요금체계에서 따로 취급되니 딱 트위터발 개드립. 대륙에서는 국내/국제가 아닌 경내(境内) /경외(境外) 혹은 국내/국제···(國際·港·澳·臺)로 구분하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 중국 공항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봤으면 알 수 있다. 중화우정도 여기서는 마찬가진데 '국제우편'과 '대륙행 우편'을 구분한다. 즉 중국우정이나 중화우정이나 베이징과 타이베이의 우편물 교환을 국제우편으로 보지 않는다. 단 중화우정에서 홍콩, 마카오행은 대륙행 우편이 아닌 국제우편으로 처리한다.

한국의 사례도 있는데 북한 함경남도 신포의 경수로 건설장에 남한 근로자들이 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남북은 우편물 교환을 하지 않지만 거기서 일하는 남한 근로자들과 남한 사이에선 예외적으로 우편물을 교환할 수 있었다. 정보통신부도 이 우편물을 국제우편물로 간주했고 국제 요금을 받았다.

의외로 중국 당국에서 대만 통일을 내심 원하지 않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중화민국 시절부터 현 대만에 이르기까지 천문학적인 국가빚은 물론이요, 통일에 드는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홍콩, 마카오처럼 일국양제나 특별행정자치구 처럼 그냥 소속에만 넣어두고 자기들끼리 꾸려가기를 원하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속내라는 이야기도 많다.

7.2. 미국과 서방의 대만 포기

사실 처음부터 대만이 이렇게까지 외교적으로 궁지에 몰린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대만이 곤란을 겪는 이유는 미국 서방의 외교 정책 변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실 원래 중국은 유엔에서 활동조차 하지 못했던 국가였으며 대만은 유엔의 창립 회원국으로서 유엔 상임이사국 위치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유엔 헌장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유엔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이른바 핑퐁외교로 잘 알려진 미국의 대중국 외교노선 전환이 대만을 궁지로 몰아가는 데 일조하기 시작했다.

1971년, 미국은 중국과 소련이 갈등하자 중국에 힘을 실어주어 소련을 견제했다.[47] 그동안 유엔 내에서 중화민국의 대표권을 두고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대중국 외교 노선의 전환을 즈음한 "제26차 유엔 총회"에서 유엔에서 중국의 권리 회복 결의안이 제출됐고 미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이때 미국도 최악은 피하고자 상임이사국 지위를 중국에 주고 대신 대만의 유엔 내 의석도 유지시키려 했다.

그러나 중국도 바보가 아니었으니 이에 대해 두 개의 중국을 공식화해서 중국을 분열시키려 하냐고 반발했으며 결국 "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의 표결에서 대다수의 서방국가들까지 대만 대신 중국을 유엔에 끌어들이는 데에 동의했다. 상황이 이지경으로 돌아가자 미국도 반대표는 냈지만 이미 중국의 상임이사국 승계, 대만의 추방이라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48]

결국 대만은 유엔 산하의 모든 국제기구에서 쫓겨났고, 이에 수많은 나라들이 단교행렬에 동조하며 빠르게 미승인국으로 고립돼갔다. 대만은 멀쩡한 국호를 두고도 중국이 영향력을 끼치는 국제단체에 참여할 때는 ‘중화 타이베이’ ‘중국 타이베이’ 등의 이름으로 가입해야만 했고 이 또한 쉽지 않다. (출처)

지금도 유엔은 대만에게 유엔 내 의석을 주는 것과 각종 국제기구에서 배제할 유엔에서 대만의 국제기구 활동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하는 '근거'로 "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를 거론하고 있다. 실제 대만 정부가 유엔 재가입을 수차례 타진했으나 모두 거부되었다. 현재도 멀쩡한 나라지만 상임이사국의 눈밖에 난 비회원국이 유엔에 발을 들이기란 굉장히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대만의 재가입은 꿈도 꿀 수 없는 지경. 현재는 재가입 의지를 공식적으로 완전히 꺾은 상태다.

대만도 이렇게 계속 중국으로 묶여있는 한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위치가 끊임없이 흔들릴 것이고 이대로는 발버둥친들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다. 때문에 열심히 중국과 대만을 분리해서 봐야 하며 대만은 별개의 주권국가이며 독립국가라는 주장을 들고 나오고 있다. 타이완 독립운동이 대표적. 그러나 서방국가들과 미국은 대만을 중국과 분리해서 인정하고 독립국으로 간주했다간 중국에서 어떻게 나올 건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틈만 나면 하나의 중국을 언급하며 대만을 무력으로 차지해서는 안 되지만 대만을 중국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대만 측의 주장 또한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49]

다만 영국은 일찍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는데[50] 이유는 영국령 홍콩 때문이다.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밀려난 마당에 중화민국을 2차대전의 전우였다고 실속없는 동맹을 계속 고집했다간 중화인민공화국이 홍콩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8. 기타

이 밖에도 비정치적인 스포츠쪽까지 아시아 스포츠 단체가 수장이 중국인이면 무조건 대만 선수 참가를 막기 위해 총동원하고 있다. 예시

2024년 시점에서는 타이완과의 관계가 하도 악화되다 보니 수하물 중 다이어리에 첨부된 세계지도에서 타이완을 국가로 표기한거 까지 잡아내면서 이를 핑계로 여행객을 억류까지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

9. 대중매체

중국은 이러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매체에서조차 지나칠 정도로 고수하는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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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관련 문서


[1] 신해혁명이 발발하기 직전의 청나라의 영토와 열강들에게 식민화된 지역 전부를 포함하고 있다. 단 중화민국(대만)에서는 2012년에 헌법의 해석을 달리하여 몽골을 국가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중화민국이 명목상 영토의 변경을 한 것도 아니므로 몽골이 포함된 이 지도는 일단은 유효하다. [2] 원래는 남중국해 영토 분쟁 당시 중국 대륙 네티즌들이 남중국해 섬들의 영유권들을 주장하면서 만든 것이며, 대만의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이 이를 패러디하여 중화민국의 명목상 영토 몽골 러시아 투바 공화국 등까지 추가하고, 오성홍기 청천백일만지홍기로, 간체자를 정체자로 바꾼 것이다. 또한 자세히 보면 남중국해의 기선 숫자가 다른데,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베트남-하이난섬 연안을 제외한 9단선을, 중화민국에서는 이를 포함한 11단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2012년에 중화민국은 헌법 해석을 바꾸어 몽골의 독립을 인정함으로써 몽골 땅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사실상 철회했기에 저 그림이 딱 맞지는 않는다. [3] 강경한 청나라 - 중화민국 정통론자라면 여기에 몽골도 추가된다. 다만 중화민국 정부는 1946년 중-소우호동맹조약을 통해 외몽골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다만 1953년 소련의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및 후속조치에 반발해 단교 및 조약의 파기를 선언하면서 다시 외몽골을 자국 영토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후 1990년대가 되면서 회복대상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실효통치하는 영토로 한정지었고 이후 2012년 최종적으로 외몽골의 독립을 승인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중화민국은 청나라로부터 통치권을 이양받은 국가이다. 당연히 청나라의 고유영토를 포기하는 문제에 있어서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원문1] 中華民國政府堅決主張「一個中國」,反對「兩個中國」與「一中一台」 。 # [원문2] 台湾是中华人民共和国的神圣领土的一部分。完成统一祖国的大业是包括台湾同胞在内的全中国人民的神圣职责。 # [6] 경우는 좀 다르지만 탈북자가 외국에서 대한민국 대사관에 진입한 경우,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우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7] 지금 와서 불가능에 가까운 대륙 수복을 주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군대의 심볼이 옛 대륙 통치 시기의 영토이거나, 중화인민공화국(홍콩, 마카오 포함)의 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 등은 전부 하나의 중국에 근거한 것들이다. [8]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호로 칭하지 않고 단순히 지리적 표현인 북한(한반도의 북부)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독립 성향 정치인들이 가끔 공식적인 자리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이라고 말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한국으로 치면 국회의원이 공식 석상에서 북한을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상황이며, 진영을 떠나 이 자체만으로도 큰 논란을 일으킨다. 민진당 정권에서는 이 '중국'이라는 표현을 정부 차원에서도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차이잉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가끔 '베이징 당국'이라 한 적도 있긴 하나 주로 '중국'으로 지칭한다. 전직인 국민당 마잉주는 그런 적 없다. [9] 반대로 대내적인 공식 석상에서 자국을 가리키는 말로는 의외로 중화민국이라는 표현도 잘 쓰지 않는데, 실질적으로 대내적인 석상에서 명목상 영토 전체를 가리킬 일이 잘 없기 때문에 그 대상은 보통 대만에 한정되고, 대만만을 가리키는 말로 중화민국을 사용할 경우, 대륙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고, 나아가 하나의 중국을 깨뜨리는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외적으로 자국을 가리킴에 있어서는, 자신들이 하나의 중국에 근거한 중국 유일의 정통 정부임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대만이 아닌 중화민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으므로, 중화민국(대만) 또는 중화민국재대만 같은 절충된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만 여권의 겉면 표기가 절충안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10] 1925년 선후회의와는 별개다. [11] 일본은 이미 국민정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라고 발표한 상황이었다. [12]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였다. 2차 국공내전 초기 본거지인 옌안까지 뺏길 정도였던 공산당은 자신들이 점령한 만주와 국민당이 우세한 본토의 동서분할을 제안했으나 전쟁에서 이기고 있던 중국국민당은 거부하였다. 반대로 전세가 뒤집혀서 중국 공산당이 만주와 화북을 휩쓸자, 이번에는 국민당 쪽에서 양쯔강을 경계로 한 남북분할을 제안했으나 전쟁에서 이기고 있던 중국공산당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13] 연성자치론은 하나의 중국에 들어가는가를 따지기 상당히 애매한 개념인데 량치차오같이 강력한 중앙정부가 생성되기 이전까지의 임시론적론 개념도 있는가하면 아예 각 성이 떨어져서 공화국을 건립해야 한다는 극단적 해체론도 존재했다. [14] 1913년 8월 21일 ~ 1992년 7월 31일. [15] 안보리 결의는 총회에서 뒤집을 수 있다. 즉, 총회 의결이 안보리보다 세다. [16] 중화민국의 지위가 박탈된 뒤 아직 후속 조치가 정해지지 않았던 시점에서 중화민국 외교관들을 이렇게 지칭했다. UN총회 제2758호 결의안이 통과됨에 따라 중화민국의 존재를 부정하였기 때문에 기존에 UN에 있던 중화민국 외교관들을 임시로 장제스 1인의 대표단으로 지칭한 것이다. 중화민국과 장제스로서는 이런 굴욕적인 상황에서 억지로 UN에 남아 자국에 어떤 지위를 인정해 주십사 구걸하느니 그냥 명예롭게 떠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17] 1950-60년대 사이 인도의 국제적 위상은 실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소련과 미국이 모두 인도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읍소하는 수준이었지만 네루 수상은 비동맹주의를 이유로 이를 거절하면서 인도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이루어진 이후에 응하겠다고 대답했다. 다만 인도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 것과 별개로 중화민국 축출을 주장하진 않았다. 여담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은 상임이사국이 되자마자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에서 인도를 파키스탄에 대한 침략국으로 규정하는 미국의 비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으로 화답했다. [18] 중국 인구는 세계 순위권을 다투는데 대만 인구는 대한민국과 비교해도 반타작 수준이다. 국토 면적도 대만은 한국의 경상도나 일본의 규슈 정도와 비교할 수준인데 중국은 여기에 비교대상조차 안된다. [19] 원래 중화우정에서 발행하는 우표에는 中華民國郵票 REPUBLIC OF CHINA라고 찍혀 있었다. 대만우정이 되면서 臺灣 TAIWAN이라 바뀌게 되었다. 중화우정으로 되돌아가면서 中華民國郵票 REPUBLIC OF CHINA (TAIWAN)이 되었다. 영어표기는 결국 정-반-합. [20] 중국 영토는 인구가 적은 서부를 제외하고 보면 태양시가 두세 시간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전국이 하나의 표준시를 써도 서부의 신장이나 시짱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21] 사실 물리적으로는 부적절한 시간대이지만 인접 국가와의 교류를 위해 편의상 표준시를 통일하는 경우가 유럽 대륙 국가에 많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과거 중화민국이 중국 본토를 통치할 때 5개의 표준시를 썼던 건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아 실용성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공산당 정권도 아예 하나로 뭉갰기에 이 또한 특정 지역을 빼고는 실용성이 없다. [22] 미국 정부 홈페이지에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했던 것도 다시 복구해놓았다. # [23] 이 부분에서 대륙과 대만 양측의 입장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압도적인 파워를 지닌 대륙 측은 그냥 "대만도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다"라고만 설명함으로써 "대만 측이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의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소속임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암묵적, 의도적 곡해를 하기 위해 一中各表 같은 군더더기를 추가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대만 측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부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 "대륙 측이 하나의 중국=중화민국 소속임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의도적 곡해조차 할 힘이 없다. 이 상황에서 대만 측이 할 수 있는 최대치는 대만 스스로가 중화민국 국호를 내세우는 걸 대륙 측이 양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만은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중화민국의 존재가 부정되는 상황이라 어떻게든 자신들이 중화민국을 지탱해 나갈 여지를 만드는 게 급선무이다. 그래서 一中各表라는 토를 달아서 중화민국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륙과 대만은 향후 상대방이 하나의 중국에 관해 뭔가 이견을 제기할 경우 대륙은 "니들 스스로가 대만이 하나의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고 했잖아?"라고 반박하고 대만은 "니들이 우리가 중화민국 국호를 쓰는 걸 양해했잖아?"라고 반박하기 위해 각자 함정 카드를 숨기고 있는 셈이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대만 측 설명이 맞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대륙 측이 대만 내부에서 중화민국 국호를 쓰는 건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며 외교 무대로 나오면 바로 흔적을 없애 버리려고 온갖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24] 물론 리덩후이가 대놓고 대만 독립을 논한 건 아니었고, 단지 중화민국이라는 국가가 독립된 주권을 갖고 있음을 천명한 수준에 불과했으며 이는 국민당의 기본적인 노선과 일맥상통했다. 다만 그 동안에 국민당이 주창해온 것은 어디까지나 대륙 통일이었을 뿐 중화민국이 직접적으로 독립된 국가라는 점을 명시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깨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다. [25] 여기서 '중화'와 'Chinese'는 중동의 '아랍 공화국'들처럼 문화적 개념을 나타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오늘날 대만이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쓰는 이름인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의 '중화' 및 'Chinese'와 유사성이 있다. [26] 과거 청나라의 일부였던 몽골의 독립을 인정한 예가 있긴 하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수십 년 동안 영유권을 주장해 온 대만에 대해서는 몽골처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긴 힘들었을 듯하다. [27] 실제로 많은 현재 국제 기구에서 중화민국이 중화 타이베이나 기타 대체 명칭으로 가입하고 있다. [28] 마침 소련이 미국과 힘겨루기 끝에 결국 자국의 구성국들 중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특별히 추가로 UN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었다. 이미 비독립국을 회원으로 가맹시킨 전례가 있으니, 당시 중화민국이 어떻게든 UN에 남으려고 하고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더라면 독립국 취급은 못 받아도 UN 회원으로서 지위를 인정하는 타협하도록 유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장제스가 UN을 박차고 나가기로 결정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UN에 남아 있겠다고 시간을 끌고 버티면서 외교적 교섭을 했으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다. [29] 사실 탄성외교를 유지한다고 해도, G2로 뛰어오른 중국의 국력을 감안해볼 때 과연 대만과 수교하려는 나라가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미국조차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서 대만과 단교해버렸다. [30] 나머지 둘은 소수민족 분리주의 독립 지지와 공산당 반대. 마오쩌둥 비판은 별 문제 없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개인차가 있긴 하니 적당히 삼갈 필요가 있다. [31] 다만 홍콩 내에서는 홍콩 독립론자나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사람들, 혹은 중국은 좋아하나 중국 공산당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상황이기는 했다. 물론 일국양제라 그런 주장을 해도 대륙에서처럼 코렁탕을 먹는 건 아니었다. [32] 비단 이번 직선제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직선제 문제는 간선제에서 바뀐 것이므로 일국양제를 이전보다 특별히 더 어겼다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조삼모사에 가깝고, 그 이전부터 2003년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 시도인 기본법 제23조 사건이나 2012년 국민교육 과목 필수지정 시도 등 일국양제와 관련한 논란이 이전부터 여러 차례 있어 왔다. 직선제 문제는 이렇게 쌓인 불만의 기폭제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33] 단치히 자유시 같은 경우는 국제연맹에서 1920년 독립을 시켰지만, 실질적으로는 폴란드 제2공화국이 내정에 상당한 간섭을 행사했다. 예를 들어 단치히 자유시의 항구와 세관은 폴란드 제2공화국에서 운영했고 폴란드 제2공화국은 폴란드군 단치히(폴란드명 그단스크)에 주둔시켰다. 그러나 1934년 단치히 자유시 선거에서 나치 독일에 병합을 주장하는 단치히 나치당이 압승하여 삐걱거리더니, 아돌프 히틀러 단치히 회랑을 내놓으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며 단치히를 먹어 치운 것. 그리고 나치 독일이 패망하면서 폴란드 인민 공화국 영토인 그단스크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34] 중화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체를 부정'할 지언정, 중국공산당이라는 정당이 지배하고 있다는 '실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국가를 참칭하는 집단이 있다는 논리. [35] 일본은 respect와 understand, 미국은 acknowledge, 한국은 respect에 해당하는 표현을 썼다. 관련 기사(영어) [36] 당장 미중무역전쟁의 일환으로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를 받기 시작하면서 회사의 존립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 정부의 도넘은 갑질에 주요 열강들 마저 중국을 외면하는 형편이다. [37] 러시아가 있지 않겠느냐라고 할지 모르나 반미전선이라는 공통의 목적이라는 점 외엔 러시아도 중국에 그다지 노골적인 지지는 하지 않고 있다. [38] 사실 중화인민공화국 단독 수교 국가도 거의 대부분, 형식적으로만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로 볼 뿐 실질적으로는 별개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차이잉원은 대국민 연설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그냥 '중국'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때가 많은데(이전 정권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한 적 없다. 반드시 뒤에 '대륙'을 붙였다).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승인함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39] 중국측이 주장하는 '원칙(principle)'과 미국이 주장하는 '정책(policy)'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된다. 이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중국에 대한 경계는 불변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저 외교적 수사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젠 대만이라는 또 하나의 수단도 있으므로 대중 견제 차원에서의 대만 정책의 기조는 유지될 것이다. 문제는 이걸 깨버리면 팔레스타인, 코소보, 북키프로스에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 [40] 하지만 대사급 외교관계만 취소했을 뿐 영사급 외교관계는 에드워드 히스 내각 시기까지 유지되었다. [41] 2022년 중국 시위를 취재하던 BBC 기자를 폭행한 사건으로 인해 리시 수낙 영국 총리가 '영국과의 황금기는 끝났다'라고 언급해 중국과 대립관계로 들어설 분위기가 감지된다. [42] UN 가입이 매우 중요한 것은 가입국의 '국가성'을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유엔 회원국이 된다는 것은 해당 국가의 '국가성의 증거'로 인정받기 때문. 물론 국제사회에는 국내와 달리 확고한 유권판단을 내릴 기관은 없지만 유엔만큼은 그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유일한 국제기구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중국이 강요하는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기 위해 대만이 어떻게든 유엔에 가입하기 위해 필사적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43] 이와 관련된 일화로 북한의 정치인 김영남 베이징대학에서 청강할 때의 일화가 있다. 청강 중 한 조선족의 "지금 남조선이 북조선보다 잘 사는데 어찌 된 영문인가?"라는 질문에 "이 세상에 남조선, 북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는데 무슨 말을 하냐?"라고 답했다. 이내 "남조선이 조선보다.."라고 정정해 말하자 “말을 하려면 바로 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반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반부보다… 이렇게 말해야 맞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즉, 남북한을 형제'국가'라고 해도 북한 입장에서 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인 특수관계' 같은 주장을 해야 그나마 남측에서 북한과 대화를 할 때 북한에서 문제삼지 않는다. [44] 1948년 12월에 결의된 UN 총회 제195호 결의안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의 승인을 받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주장도 1991년 남북한의 동시 UN 가입으로 인해 사실상 효력이 실효된 상태이다. 다만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 이 규정에 따라 한일기본조약 제3조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 총회의 결정 제195호(III)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확인한다."는 조약을 체결한 바가 있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해 주고 있다. [45] 다만 미국은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의 안보를 간접적으로 책임져주고는 있다. [46] 참고로 말하자면, 대만 기업이 임차를 했든 안 했든 이 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인 홍콩 선박이라 중화인민공화국의 배가 맞다. [47] 미국의 입장에선 중국이 소련과 지정학적으로 가까웠기에, 어느 한쪽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중소관계를 분열시켜야 했다. 이는 미국의 냉전 승리에 큰 공헌을 하긴 했으나, 훗날 미중패권다툼의 격랑을 본의 아니게 스스로 만들어낸 꼴이 되어버렸다. [48] 사실 중국은 처음에는 상임이사국 자리만 빼앗으려고 했다. 그러나 격분한 대만이 스스로 유엔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기에, 결과적으로 중국은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어버린 격이 되었다. [49] 하지만 차라리 '중국'이라는 정체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대만의 남은 수교국은 12개국에 불과하고, 그 또한 대부분 국제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어려운 약소국들인데, 여기서 무리하게 중국임을 부정하고 독립 선언을 했다가는 남은 12개의 수교국들까지 한꺼번에 잃어버려 카탈루냐 공화국의 꼴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바티칸 중국을 미승인국으로, 대만을 '중국'으로 인식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독립 선언을 했다간 바티칸이 현실과 타협해 중국을 인정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50] 중공 승인은 1950년에 하였지만 1972년까지 대만과 영사관계를 유지하였다. [51] 蓬莱(봉래)는 대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만, 대만을 콕 집어 지칭하는 표현은 아니다. 중국 전설상 동쪽 바다에 있는 섬이면 전부 봉래도, 봉래산과 엮인다. [52] 야인여진을 제외한 여진족의 후손이 만주족이다. [53] 다우르족이 거란족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54] 역사적인 전투 캠페인 '노량해전'과 한국인 유저가 제작한 커스텀 시나리오 제외. [55] 한국사와 한국 문화의 경우, 중국에서 1990년대 이후 동북공정을 시작으로 자국사 및 자국 문화로 편입시키는 역사왜곡 공작이 진행 중이다. [56] 물론, 여진족의 후신인 만주족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전혀 원하고 있지 않으며, 청나라 시기에는 자신들이 중국의 지배자였다는 점 때문에 중국공산당 중화민족 드립은 인정하지 않을지언정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여기기 때문에, 여진족은 추가되던말던 중국 측에서 신경쓰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57] 2015년 수정판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58] 좀 묘한 건, 색깔은 같게 칠해져 있되 중국 내에 만주(중국 기준 동북 지방)를 구별 짓는, 국경선 비슷한 선이 그어져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각국을 포인터로 짚을 때 해당국 영토가 밝아지는데, 중국을 짚을 때 만주 쪽은 밝아지지 않는다. 서구권에선 과거 청조 때부터 해당 지역을 'Manchuria'라고 부르며 'China proper(중국 본토)'와는 구별되는 지역으로 분류하긴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