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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외교/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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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적이 많은 중국, 왜곡된 중화사상으로 인한 외교적 결례 남발3. 역사 속 다른 중화권 왕조들과의 비교4. 불량 국가 지원 논란5. 기타6. 2000년대 이후7. 소프트 파워8. 관련 기사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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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외교에 대한 비판을 정리한 문서이다.

2. 적이 많은 중국, 왜곡된 중화사상으로 인한 외교적 결례 남발

"중국 정권의 본질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며, 단지 일시적으로, 힘의 부족 때문에, 비교적 온화한 표정을 내비쳤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감을 얻게 된 순간 즉시 본래 가지고 있던 억압의 본질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중에서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외교방식은 그야말로 자타공인 패권주의이자, 속된 말로 가히 갑질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상적인 외교를 할 의지조차 없는 상황으로, 이웃국가를 향해 중국 외교부장이 직접 대놓고 옛날처럼 우리 속국으로 돌아와라고 하는 지경이며 전랑외교[1]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과거 전세계를 양분했던 미국과 구소련도 이딴 식의 강압적인 행태를 보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강압적으로 굴 경우 상대 국가가 반발해서 반대편에 붙어버리면 먹을 수 있는 이득도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비록 소련 소비에트 제국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당근과 채찍 둘 다 확실한 방법을 사용해 상대국 외교관과 국민을 잘 조련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절반에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2] 이런 막무가내 팽창주의 외교는 오천 년 중국 역사에서도 없었지는 않았지만 아주 드물었다. 자신감으로 외부에 힘을 투사하던 시기는 멀게는 상나라[3] 춘추오패, 전국칠웅, 한나라 한무제 때, 수나라, 당나라, 명나라 영락제 때 뿐이다.
그러나 중국이 제1등국의 지위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옛날부터 중국에는 '약한 자를 구하고 위태로운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 이와 같은 좋은 정책이 있었기에 수천 년 간 강대했을 때에도 안남, 버마, 조선, 시암 등의 소국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바람이 동으로 불어오자 안남은 프랑스에 멸망되었고, 버마는 영국에 멸망되었으며, 조선은 일본 멸망되고 말았다. 따라서 중국이 만일 강대해진다면, 우리는 민족의 지위를 되찾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일대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만일 중국이 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세계에 있어서는 별 이익이 없으며 오히려 큰 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세계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지금 세계의 열강이 추구하는 것은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이다. 만일 중국이 강해져서 열강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고, 열강의 제국주의 흉내내어 같은 길을 걷는다면, 그들의 자취를 그대로 밟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의 정책, 즉 '약한 자를 구하고 위태로운 자를 돕는다'는 정책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민족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약소 민족을 돕고 열강에는 저항해야 한다. 전 인민이 이 뜻을 단단히 정하지 않는 한 중국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다. 우리는 아직 발전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약한 자를 구하고 위태로운 자를 돕는다'는 뜻을 단단히 정해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장차 강대해졌을 때 오늘날 몸으로 느끼고 있는 열강의 정치·경제적 압박에 의한 고통을 되새겨, 장래 약소 민족이 만일 이와 같은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제국주의를 소멸시켜 버려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 치국, 평천하'인 것이다.
쑨원, 1924년 3월 24일 연설 중

사실 쑨원의 이 말도 굉장히 자국 중심적이고 패권주의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애당초 수천년 간 자기들 덕분에 주변 국가들이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전제부터가 잘못됐는데, 실제로는 수천년 간 주변국에 중화패권주의 중심의 질서를 강요했으며 침공도 무수히 벌인 게 중국이었다. 당장 한국만 해도 위만조선 한나라 패권주의에 정복당했고, 후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수나라 당나라 패권주의를 강요받으며 침략에 맞선 방어전쟁을 수행해야 했다.[4] 중국은 근대에도 한반도에 대한 간섭과 영향력 행사를 위해 청일전쟁을 치렀다(현대의 6.25 전쟁도 있긴 하지만 그건 쑨원 사후의 일이니 제외). 베트남도 한나라에 정복당한 이래 쯩 자매의 대중항쟁부터 현대의 중월전쟁에 이르기까지 중국에게 엄청 침공당했다. 티베트· 위구르 청나라 때 정복되었다가 만주족 정권이 무너지며 잠시 독립했으나 곧바로 중공에게 침공당해 합병당했으며 중공은 지금도 해당 지역에 잔혹한 탄압을 저지르며 중국공산당에 맞서 투쟁하는 자들은 잔인한 고문과 처형을 당함은 물론이고 아예 민족동화까지 당하고 있다.

다만 쑨원이 살던 시대에는 중국에서 전근대적 중화사상의 영향력이 아직 건재했을 때이니(비록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탈 탓에 예전만큼 강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비록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쑨원이 나름대로 진보적인 말을 했다고 볼 수도 있고 시진핑이 중국의 대외관계를 열심히 막장으로 만들고 있으니만큼 쑨원의 발언을 좀 후하게 평가할 여지 또한 있다. 미국이 자유와 인권을 표방하는 것처럼 최소한 표면적으로나마 약소국 구제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도 볼 순 있겠다. 중국 덕분에 주변 국가들이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전제 또한 중국이 한창 주변국에 갑질을 하던 시기가 아니라 나름대로 주변국들을 존중해주던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힘들다.[5] 물론 쑨원은 중화민국의 국부이지 지금 우리가 부르는 중국, 중국공산당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쑨원의 글에서 나타나는 전근대식 중화사상과 비교해도 현대의 중국의 외교는 상당히 변질되어 있으며 문제점은 더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만일 어느 날 중국이 안면몰수하고 초강대국이 되어 패권을 주장하고 여기저기 남을 괴롭히며, 남을 침략하는 한편, 남의 것을 탈취한다면, 세계의 모든 인민들은 응당 들고 일어나 중국을 사회제국주의로 규정하고 반대하여 중국 인민들과 함께 무너뜨려야 할 것이다.
덩샤오핑, 1974년 UN 연설 中

특히 중국의 외교 정책은 고압적인 자세, 쉽사리 양보라는 걸 하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 등으로 상대국 입장에서 타협적인 저자세로 나오지 않는 한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은 주변 국가들과 사이가 대부분 안 좋은 편이다. 심지어 강약약강도 아닌 게, 이 짓을 공산권 최강국 소련에게도 했다. 그리고 그때 미국이 안 살려줬으면 그대로 소련에 의해 중국은 지도상에서 지워질 뻔했다. 오죽하면 중국 내부에서조차 "중국 외교관들은 모두 손 자르고 사퇴해야 한다"는 발언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2018년 9월에는 스웨덴으로 여행 간 중국 관광객이 한 숙박시설에 하루 가까이 일찍 도착해 로비에 묵게 해달라고 하다가 끌려나간 일이 있었는데 # 중국 정부는 스웨덴 정부에 항의하며 이 사건을 조치해 달라고 매우 강한 성명을 냈다. 한편, 한국 제주도에서 중국인이 현지 주민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시하는 정도로 언급을 마쳤다. 외교적 수사로서 유감의 의미는 피해국이 발언할 때와 가해국이 발언할 때 판이하게 다르다. 피해국의 유감표명은 '니들이 사고친 거 때문에 빡쳤으니까 사과하고 제대로 수습해라.'는 분노의 우회적 표현이지만, 가해국의 유감표명은 ' 그건 우리 잘못 아님.'이라는 책임회피성 발언이다. 즉, 중국은 자국민이 외국에서 현지인을 살해하는 대형사고를 쳤음에도 우리 국민 잘못 아니라고 책임회피를 한 것이다. 명청 때도 자국민이 타국민을 죽였는데 이 수준으로 외교를 하지 않았다.[6]

당장 이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던 프랑스 제2제국, 독일제국, 추축국도 사방에서 고립당하고 패망했다. 그러니 외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7]

외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한 많은 동맹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굳건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만화영화에 나오는 것 마냥 혼자서 세계제패를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8] 세계제패를 노려볼 정도로 강대국이 될 낌새가 보이면 주변국이나 타 강대국들끼리 뭉쳐 이에 대응하려는 외교적 연합 견제가 들어오기 때문. 과거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미국이 초강대국의 반열에 근접했다고는 하지만 유럽은 유럽 연합으로 뭉쳐서, 러시아는 중국과 연계해 미국을 견제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미국을 견제하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조지 W. 부시 이라크를 조지려고 했을 때 외교적으로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유럽과 러시아 등 여러 나라들이 한 목소리로 반대한 것이 그 증거. 워낙에 부시가 유엔 규정조차 무시하고 막나간 것도 있었지만, 중동 패권을 노리는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유럽과 러시아가 견제를 들어온 것이다.[9]

중국이 믿는 것은 14억이라는 인구와 강한 경제와 군사력, 그리고 희토류[10]와 같은 자원들이다. 중국의 14억 시장은 전세계 어느 나라든 탐내고 있는 큰 시장이다. 또한 공산당이 원한다면 인민들을 언제, 어디서든 통제하고 처리할 수 있음을 한국과 같은 주변 국가들에게도 적용해 외교적 고자세로 일관하는데, 사실 현대 사회에서의 외교는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약소국을 대놓고 휘두를 수 없다. 일단 UN에서 다 똑같이 한자리를 차지하는 동등한 국가인데다 설령 경제적, 군사적 압박이나 전쟁을 벌이려 해도 주변국이나 경쟁국들이 각종 지원을 해주며 견제해오기 때문. 그래서 21세기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인 미국조차 일단 공식적으로는 국제여론을 의식하고 나름대로 타협을 시도하는 자세를 취하곤 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에 반하는 태도로 일관하는데, 전통적인 동아시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강대국으로 존재했던 만큼[11] 여기에 기반한 세계관인 중화사상이 깊이 박혀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중화왕조든 로마 제국이든 근대 열강이든 이런 우월감과 내셔널리즘이야 당연히 전부 있었지만, 문제는 현대에는 중국만이 강대국이 아니고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당장 태평양을 건너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존재하고, 중국 국경과 맞닿아 있는 베트남, 인도, 한국, 일본 또한 중국과 지속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으면서도 중국이 간단하게 제압할 수는 없는 상당 수준의 국력을 지닌 국가들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첫 관문인 한국의 경우 설령 한국 혼자 싸운다 가정해도 중국 역시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추정한다.[12] 사실 중국은 과거에도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적, 경제적으로야 가장 발달된 선진국이었을지언정 군사적으로까지 그러지는 못해서 북방 민족들과는 곽거병, 영락제 같은 예외가 아니면 항상 얻어터지기 일쑤였고, 서역과는 하서회랑 같은 지역이 아니면 직접 지배할 생각도 못했으며, 베트남과는 그나마 1000여년간 지배하긴 했지만 한번쯤 반란 맞고 일시적 독립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응오꾸옌에 의해 베트남이 완전히 독립한 뒤에는 영락제 시기에 잠깐 재정복된 것 외에는 제압하지 못했다. 한반도 역시도 마찬가지로 한사군을 통해 상당기간동안 일정 부분 통치하기도 했지만 너무 멀어서 통치력이 약한 편이었으며, 그나마도 임둔, 진번은 곧장 폐지, 현도군은 계속 자리를 옮겨다녔고 낙랑군만 제대로 유지되었다. 그나마도 점점 강해지는 고구려에게 계속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한사군과 그 후신국들이 모두 멸망하고 흡수되었다. 수나라때는 백만대군까지 동원하고도 패배했으며, 그 뒤에서 2차례 더 침공했다가 또 져서 수나라가 망해버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중국과 주기적으로 치고받았지만 결국은 원나라 시기에 잠시 속국화한 것 외에는 조공-책봉 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즉, 중국이 주변국들 중에선 가장 강한건 맞고 또 그걸 인정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이들 모두를 다 제압하고 복속, 정복이 가능한 시기는 별로 없었다. 주변국은 막강한 문화적, 경제적 선진국인 중국에게 반기를 들어 전쟁하면 피곤하니 달달한 떡고물을 얻을 겸 비위를 맞춰주었고, 중국은 주변국들을 다 말 잘 듣게 할 힘은 없고 그렇다고 놔두자니 불안하므로 경제력과 문화를 바탕으로 종주권을 인정받으면 굳이 불필요한 전쟁을 하지 않고 주변국과 교류를 하는 쪽을 선택했을 뿐이며, 상대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중국의 군주가 영토 확장을 위해 정복을 하고자 하면 주변국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즉, 전근대 동아시아의 조공-책봉관계는 중국쪽이 특별하게 강해진 시기만 아니면 서로 윈윈인 관계였던 셈. 결국 따지고 보면 전근대 동아시아나 현대 동아시아나 중화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명목상 중국을 상전 취급해주냐 마냐만 빼고 보면 실상은 상호이익을 위한 관계라는 것에서 다를게 없다. 게다가 러시아는 다른 주변국과 다르게 절대로 중국보다 국력이 낮다고 볼 수 없는 강대국이며, 일단은 중국과 군사 훈련을 같이 하고는 있으나 이조차도 대미 견제라는 공통분모로 협력할 뿐이라 마냥 사이가 좋다고만은 못한다.

현대 시대에 들어서 패권국과 중심국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국가로 이전되자 그나마 20세기와는 달리 중화사상은 많이 약화되었다. 문제는 시와 때를 파악하기는커녕 세계 정세에 대한 인식이 19세기 이전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주변국들에게 중화사상을 강요하는 중국공산당과 중국 지도부들이다. 물론 이에 동조하는 중국인들의 태도도 문제가 된다.

3. 역사 속 다른 중화권 왕조들과의 비교

게다가 본래의 중화사상이라는 것도 그냥 힘으로 찍어눌러버리는 막가파식 외교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전근대 주변국들이 중국에 조공했던 이유는 유교적 세계관과 중국과의 사대관계에서 얻는 동맹을 통한 안보 보장, 책봉으로 정통성 강화, 조공무역을 이용한 선진문물 수입 등 막대한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민족 국가와 중국 왕조가 사이가 눈에 띄게 좋았던 시기는 많은 걸 한민족에 퍼줬던 송나라 명나라 시절 정도밖에 없다. 한나라,당나라때는 만주의 왕조가 유목민들과 연합한 형태였기 때문에 직접 전쟁을 피할 수 없었고, 한반도가 반도 중심의 통일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비교적 안정화가 되었다. 사실 송나라의 경우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유목민 제국이라는 제3의 세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화적으로 나온 측면이 있다. 명나라 역시 조선의 군사력을 견제하기 위해 군마를 수탈하고 은을 쓸어가는 등 기본적으로 조선에 대한 명나라의 우위권을 전제로 한 관계였다. 물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송-명이 그나마 가장 관계가 평탄했던 건 사실이긴 하다. 아무튼 요점은 그 사이 좋았다는 송-명조차 지들이 더 아쉬운 상황[13]이거나 겉으로나마 완전히 납죽 엎드려야만 관계가 평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송-명은 남쪽에서 올라온 한족왕조라는 점에서 당장의 충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때까지 만주에 한민족 북방 통일왕조(고구려나 발해)가 남아있었다면 송-명도 한나라-당나라처럼 굴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명나라가 한나라, 당나라와 같은 위치에 있는 한족 왕조인 걸 생각해보면 더더욱.

일단 송나라 같은 경우 과도한 문치주의와 군대에 대한 과도한 감시로 말미암아 영토대비 국방력이 상당히 약해[14] 서하나 요나라, 금나라 등에게 툭하면 털리는 상황이었기에 당시 요나라 군대의 침공을 자력으로 승리한 경력이 있는 고려와 동맹이 필수적이었다. 송나라가 요나라를 앞에서 견제하는 동안 고려가 요나라의 뒤를 호시탐탐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요는 고려의 위협을 경계한다고 힘을 분산시켜야 해서 송을 제대로 칠 수 없었다.[15]

이후 명나라에서도 중국 중심주의는 여전했으나 '대국으로서의 체면'이 더 강조되어 주변국들의 조공이 들어올 때마다 천자의 하사품이라고 그 이상으로 화답해 주기도 했는데,[16] 그렇다고 조선이 맹목적으로 따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명에서 달갑지 않은 칙서가 도착하면 갖은 변명을 대며 칙서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명나라에서 벌어진 순장을 보고는 저런건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된다며 군주와 신하들이 한 입으로 뒷담화를 까기도 했다. 특히 조선은 국경을 넘지 말고 여진과 잘 지내라는 명의 요청도 무시하고 국경을 넘어가 여진을 공격하였다.[17] 또, 명나라 자체도 조선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조선 초기를 제외하고 명나라의 영락제와 조선 태종 때 관계가 좋아진 이후로는 조선에게 내정간섭 수준의 갑질을 시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조선이 여진을 상대로 예방전쟁을 할 때 변방 군사를 보내 지원해주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명나라 말기의 황제 만력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은자 300만 냥을 써서 조선에 파병했고, 이 액수는 당시 중국 토지세가 400만 냥임을 감안하면 큰 지출이었다. 그 일 때문에 조선은 명이 망할 거라는 걸 빤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청을 두둔하지 못했다. 명이 저승 직전까지 간 조선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서 살렸기 때문이다.[18][19][20] 이후 들어선 청나라 또한 조선과 조공 관계를 맺었다.

게다가 근대 이전 시기의 중화권 왕조들은 자국민이 한반도를 포함한 제후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경우, 본국에서 중범죄(역모, 대량학살, 밀무역 등) 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은 "거기서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잘못한 것이니 굳이 본국으로 소환할 것 없이 현지법대로 처리하고 보고만 하라"는 조공국을 존중하는 외교력을 보여주었다.[21]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욕을 얻어먹는 초강대국인 미국과 여타 열강들도 현대 국제무대에서 이런 식으로 자기 편을 대우하거나 먹여살리고 있다. 특히 현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은 말기에 접어들어 국력이 쇠락하는 와중에도 세계 각지의 반체제조직과 반서방 국가들에게 군수물자며, 정책자문이며, 경제원조며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듯 퍼줬다. 이 시기 소련은 내부와 서방 국가들한테서 '정말 저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22] 반서방국가에 쇼미더머니를 시전했으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여파로 소련이 기우뚱하자, 소련에 경제력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던 반서방국가들도 덩달아 기울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으로 소련이 건재하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굶진 않았지만, 1980년대 소련의 지원이 끊기자 소련의 지원에 자국 경제를 상당히 의존하고 있던 북한은 김씨 부자 탐욕 실책으로 말미암아 세계 최빈국으로 수직낙하하고 말았다.

한편 미국도 2차 대전이 끝나고 냉전으로 대치하는 소련을 견제하고자 서유럽을 경제적으로 재건시키려는 마셜 플랜을 전개해 지금의 기준으로 따져도 엄청난 양의 물자와 자본을 서유럽에 무상으로 퍼주었다. 그리고 그 지원을 바탕으로 경제회복에 성공한 서유럽 국가들은 이후로도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자 러시아 견제를 위한 나토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면서도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전쟁 때문에 폐허가 되어버린 일본과 한국을 재건했고 지금은 둘 다 선진국이자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 되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나 소련 등이 늘 이랬던 건 아니고 종종[23] 외교에서 오판을 내리거나 자기 편을 홀대한 적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기 편을 충실히 도왔다.

결론을 내리자면 미국을 포함한 현대 강대국들의 외교 방식이 오히려 전통적인 중화 왕조의 젠틀한 외교 방식에 더 가깝다. 현재 중국과 비견되는 처신을 보이는 나라는 비슷한 패권국인 러시아정도.[24] 둘 다 약소국(베트남, 아프가니스탄)한테 줘 터진 기억이 있어서[25] 힘으로 눌러 버리는 것보다는 기브 앤 테이크를 선호한다.

한 마디로 천자국과 제후국이라는 관계에 있던 시절조차 손해를 봐가면서 화답하거나 퍼줘도 따를까 말까인데 모든 나라가 동등한 현대 외교에서 여전히 강압적이고 오만하게 굴면 과연 누가 따를까? 그야말로 중화적이지도 않고, 현대적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그 행태는 외교 같지도 않은, 즉 이름만 외교인 중국식 세계 정책만이 남아버린 것이다.[26]

그나마 중국의 외교를 설명해 보자면 대륙이 공산화된 뒤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역사 관련 문헌들과 학자들까지 쓸려나가고 그 빈자리를 공산주의(특히 마오주의)가 곁들여져 변질된 중화사상이 채우게 되면서 중국인들은 전통적 중화사상에서 '대국으로서의 체면'을 빼버렸고, 그에 따라 현대 중국의 외교 역시 '권리는 누리되, 손해를 일방적으로 보거나 의무는 지려고 하지 않는' 형태로 변질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내부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 내 소수민족을 포함, 오랑캐 땅과 역사도 우리 것이라는 동북공정 같은 정책에 공산당의 절대화까지 곁들인 결과, 이제와서 행보를 바꾸기엔 너무나도 걱정할 게 많아진 상황인 셈이다.[27]

4. 불량 국가 지원 논란

자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불량 국가에 대한 지원 논란도 많다.

5. 기타

중국은 옛날처럼 손해를 봐가면서까지 혈맹 수준으로 신뢰를 높인 동맹국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현 외교는 한계가 있다.[28] 일단 중국은 파이브 아이즈와 같은 견고한 해외 혈맹이 부재한다는 점이 뼈아프고, 러시아와는 서로 싸우기 곤란해서 혹은 미국이 하도 쪼아대서 어쩔 수 없이 협력한다는 면이 강하다. 오늘날 중국 경제가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적인 이슈에서는 늘 자국의 입장과 이익만을 우선 강조하는 행태로 인해 대다수 국가들이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겉으로는 다들 크게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전부 다 중국을 뒷담화하고 꺼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중국 눈치 안 보는 미국 정도만 대놓고 까는 정도.

또한 친중국가의 국민들도 알고 보면 파키스탄을 제외하면 반중인 사람이 많다.[29] 하지만 문제는 해당 국가의 정부가 친중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그 나라 국민들은 친중국가의 국민으로 몰려서 비난받는다.

게다가 (동등한 관계인 러시아를 제외한) 중국과의 협력국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이다. 이유인 즉슨 그럭저럭 규모가 되는 국가들은 이미 미국과 긴밀한 사이이며, 무엇보다 이들과 가까이 하면 미국이 불이익이나 절교를 들먹이며 반대하기에 협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30] 그럼 남은 것은 각지의 반미나 개발도상국들 뿐인데, 이들은 계속 낙후된 것보다야 낫다는 생각으로 경제와 인프라 지원, 그리고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지금도 중국과 손을 잡고는 있지만 하도 안 좋은 사례들만 나오다 보니 경계심만 높아져 다들 점차 소극적이 되었다.

그래서 중국 입장에서는 저런 지원 관계 이상으로 상생이나 공생 수준으로 관계 개선을 노려볼만한 국가가 별로 없다. 그나마 경제력이 있는 유럽 연합 국가들조차 중국의 인권 문제를 추가로 들먹이며 밀착을 꺼린다. 2020년에는 중국발 코로나19 때문에 유럽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고 반중 정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중국인을 넘어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로 확대되는 조짐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31]

심지어 남태평양의 나우루 대통령조차 중국 외교관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자기 할 말만 하려고 하자 저들이 오만하다고 대놓고 비판했다. #

그래도 중국과 한국의 경우에는 반일 감정이라는 공통 분모와 아베 정권의 계속되는 역사왜곡과 군사도발에 힘입어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더욱 더 돈독히 하려는 시도 정도는 있었다. 다만 중국은 현재 미국과 제2의 냉전이라 할 수 있을 암묵의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군사동맹 상태인데다, 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통틀어 가장 많은 미군이 주둔중인 국가이고 한국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호감도 또한 중국에 대한 호감도에 비해 월등히 높고, 한국 정부 또한 중국과의 관계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완전한 동맹체가 되기는 어렵다.

또한 현 중국 정부는 자신의 체제 유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반일감정을 격려할 뿐이지, 완전 순수하게 일본의 과거사 문제로 따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가장 첫번째로 알아두어야 할 점은, 이들이 국부취급하며 떠받들고 있는 마오쩌둥일제의 침략에 대해 감사한다[32]고 대놓고 말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과연 중국공산당이 정말 정직한 마음으로 반일감정을 격려하는것인지는 이것으로 쉽게 판단해볼 수 있을것이다. 당장 티베트 위구르에 가하고 있는 민족동화 정책과 맞먹는 억압 정책이나 문화대혁명, 국공내전, 천안문 6.4 항쟁 당시 일어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보면 중국공산당은 인권 문제에서는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에게 있어서 일본과 한국은 당나라 시절 고구려와 비슷하게 자신들의 확장을 방해하는 눈엣가시일 뿐이며, 고작 일본에게 당당하게 나선다는 이유만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 이는 갑신정변의 배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청나라는 조선을 도와준다면서 은근슬쩍 조선을 완전한 속국으로 만들려는 조약을 체결시켰고, 일본도 근대화를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상당수의 차관을 제공한 적이 있다. 현 중국의 강압적인 외교 정책과 공산당 독재 정치가 이어지고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손을 떼게 되는 상황이 오면 아이러니하게도 이전에는 상상도 못 하던 한일관계 개선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한일 양국은 과거사 문제, 독도 문제로 서로를 그토록 싫어하지만 중국이라는 공공의 적이자 큰 위협이 등장하면 싫어도 서로 자세를 낮추고 협력할 수밖에 없는 것.[33]

물론,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게 되면 협력을 하게 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 더 나아가 동북아에서 손을 떼는 대가로 중국 역시 북한을 포기하게 될 경우 한국과 중국은 상당히 가까운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둘 중 하나가 어떻게 되지도 않았는데 먼저 포기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34]

또 중국은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에 있으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만은 이렇다할 압력을 주지도 못하고 제제 속에서 (아무리 밉더라도 북한이 고사하는 걸 볼 수도 없으니) 계속 몰래몰래 퍼주는 모습을 자주 보인 관계로 북한에 끌려다니는(…) 국가라는 믿음만 주었다.[35]

이렇다보니 한국은 중국을 불신하며 THAAD를 배치하는 결정을 내렸고, 이에 중국도 한한령으로 보복했다. 게다가 팔라우 나우루 같이 대만과의 단교 요청을 거부하거나 하여 밉보인 국가들에 대해서도 암암리에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이곳으로의 관광을 금지하거나 경제/무역상 불이익 등으로 타격을 주며 요구사항을 계속 관철시킨다.[36] 중국 외교에 대한 다른 비판으로는 공식 채널이 아닌 민간 여론을 이용하여 다른 나라에게 압박하는 방식도 문제가 되고 있다. 단순히 민간 여론가지고 왜 문제가 되냐 하면 이 배후에 중국 정부기관이 있기 때문. 단순히 음모론이 아니라 환구시보같은 언론은 공산당의 대외 홍보수단으로 사용되고 있고 이런 언론매체가 여론 형성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 일례로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미군과 한국군을 추모하는 수상 소감에 중국 군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무시한 것라고 반발하는 일이 있었는데 해외 언론에서는 이런 여론 조성에 중국당국이 직접 개입하고 있음을 꼬집었다. 외교에 여론이 반영될 수는 있지만 중국은 역으로 외교적 압박을 위해 여론전을 벌인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등 국가간의 조약도 무시하는 행패를 벌이며 신용까지 잃고 있다.

주목할 만한 관계는 미중관계 러중관계, 일중관계, 인도-중국 관계, 한중관계, 북중관계, 월중관계, 양안관계(중국-대만)가 있다.

6. 2000년대 이후

2008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미관계를 중시하자 중국 외교부는 "한미동맹은 냉전의 산물", "북중우호조약은 우호협력 위한 것" 이라고 아전인수식으로 망언을 내뱉었다. # #[37]

게다가 2019년 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우한에서 퍼지기 시작하고 2020년으로 해가 바뀌고 이게 대륙 전역, 급기야 해외로 퍼져나갈 때까지 별다른 출국 금지도 안 하고 타국에도 알리지 않았다. 그 뒤 각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경제까지 마비된 와중에도 자국 방역과 경제부터 신경쓰고, 심지어 정확도가 낮은 진단키트까지 수출함으로 인해 체코와 스페인에선 사용 중단과 반품까지 이뤄졌다. # 덕분에 반중국 정서가 지구촌 곳곳에 확산된 상황이지만 정작 중국 정부는 으레 그래 왔듯 "자신들의 무능을 우리에게 책임전가한다"며 신경 끄고 있고, 특히 서구권의 비난에 대해선 정말 영국을 포함해 유럽인들에게 탈탈 털렸기에 백인들이 어찌되든 별 상관없다는 듯 한낱 잡음 따위로 치부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2020년 3월 18일 미국 보수단체 프리덤워치가 중국의 생화학 무기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후 31일 영국의 비판 여론도 강해졌다. # 그리고 4월 6일 인도의 변호사회는 중국을 상대로 20조 달러 소송을 진행중이고, 8일 트럼프도 중국이 WHO를 망쳐버렸다며 싸잡아 비판했다. #

중국 외교관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트위터 등을 활용해 외교전쟁을 펼치고 있지만, 외국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 #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세계 각국의 여러 기업들이 주가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 중국 정부가 이들을 헐값에 매입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다른 나라들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

코로나19 팬데믹에 관한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안에 러시아를 비롯해 100여개국이 동참했다. #

메콩강과 관련해서는 메콩강 상류에 댐을 세우면서 주변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

인도에서 중국군의 도발로 인도군이 중국군과 교전이 일어나 인도군이 다수 사망한 사건 이후에 중국산 제품을 보이콧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영국에서도 화웨이를 배제하는 등 중국 제품을 보이콧하는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

반중감정이 전세계적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

중국이 강경한 외교 방식을 택할수록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중국인들은 열광한다고 한다.

2020년대 들어 이렇게 주변국을 무시하고 팽창주의로 일관하면서 고립되어가는 모양새가 되자, 중국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 국방대학의 다이쉬 교수는 "미국이 중국을 때려도 중국 편을 들어주는 나라가 하나도 없으며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는 여야 가리지 않고 한 마음으로 대항하고 있으며 그 수단 또한 악독하다"며 중국의 현 외교 전략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말이 자성이지 자세히 읽어보면 왜 미국이 그토록 자신들을 적대시하는지, 왜 자기들 편을 들어주는 나라가 없는 것인지 등에 대한 고찰 같은 것은 전혀 없이, '우린 이렇게 관대한데, 미국놈들이 너무 악독하니 맞춰줄 수밖에 없겠다.' 정도의 피상적인 감상이 고작이다.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도 '미국 눈치를 좀 더 살펴야 한다'를 장황히 늘려놓은 정도로 근본적인 외교정책면에서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그야말로 근본은 어디가지 않는다는 것만 확실하게 재고해준 수준이다.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반중 감정이 높아졌고 일본이 86%로 가장 높았다. #

중국이 코로나19의 우한 기원설 지우기에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안간힘을 쓰면서 다른 나라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중국을 제재하자 중국측은 서방국가들의 제재에 맞서기 위한 법·제도적 정비 작업을 공식화했다. # 그리고 미국 등 서방 제재에 대한 보복을 위해 만든 근거법안 '반(反) 외국 제재법'에는 관련자 추방 및 중국 내 자산 압류·동결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

2021년 6월 30일에 미국의 퓨리서치가 17개국을 대상으로 중국에 대한 평판을 조사한 결과, 부정적인 견해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이중 일본이 88%를 기록했다. #

시진핑의 집권 이후 외국으로 망명, 이주하는 중국인들이 60만명 이상 늘어났다. #

프랑스의 싱크탱크가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작전을 펼치는 모양새가 점차 러시아를 닮아간다는 분석이 나왔다. #

중국에서 발간된 국치지도에 한반도와 주변국들이 포함된 것이 알려지자 논란을 빚었다. #

세계은행, IMF 등 국제 개발기구 재정 기여금 규모 면에서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섰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

2021년 11월, 중국이 광물자원 투자를 위해 외교원칙도 버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

2021년 12월 1일에 진행된 미국의 국방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과반수가 중국이 최대 위협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

중국이 호주 등 다른 나라에 불법적으로 경찰서를 세운 것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어났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중국의 비밀 경찰서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됐다.

2023년 1월 6일, 중국 외교부는 각국의 중국인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 강화에 대해 상응조치를 한다고 경고했다. # 하지만 이에 대해 각국은 싸늘한 반응만 보였다. #

중국 내에서 전랑 외교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

주프랑스 중국대사가 구소련 해체 후 탄생한 국가들의 주권에 의문을 제기해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이 격분해서 초치한 사태가 일어났다. # 또한, 각국에 주재한 중국 대사들이 부적절한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발언을 하는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

미국에 대해서 군사적으로 대응하면서 개도국에 대해선 자금지원을 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

중국이 독점중인 광물자원 수입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각국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망을 다양화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

7월 28일, 퓨리서치가 실시한 조사에서 중국이 비호감이라는 비중이 호주, 일본, 미국 등에서 87%로 올랐고 한국은 77%로 올랐다. #1 #2

7. 소프트 파워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처참히 실패했는데, 과거 중국의 경우는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당시 경제 등에서도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래서 동아시아는 중국과 교류를 많이 했고 서유럽에서도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한국, 일본과 같은 이웃 국가들은 중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응용한다든지 혹은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었으며 이는 중국이 과거에 가진 소프트파워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당장 여러 북방 유목민족들에게 몇번이고 중원을 뺏기며 한족 왕조가 멸망했음에도, 한족들이 북방민족에게 흡수당해 사라지는것이 아니라 통혼과 한족왕조의 발달된 관료제를 채택시키는 등 오히려 역으로 흡수해서 북방민족의 한족화를 시켜버려왔으며, 이런 이민족 왕조와의 융합과정에서 비록 명나라대의 복식을 잃어버리거나 한푸가 실전되거나 하는 부작용도 많았지만 대체로 한족의 문화와 민족을 지켜올수 있었다. 즉, 한족들이 여태까지 몇번이고 한족국가를 재건하며 버텨올수 있었던것은 소프트파워의 힘이 매우 컸다.

반면 현대 중국은 당장 물리적인 국력은 강하긴 하지만 소프트파워가 없다. 문화대혁명으로 전통 문화는 박살나고 대만, 홍콩, 싱가포르가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있으며 현대 문화 역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타 중화권이나 한국,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자신들 스스로 무언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려고 해도 공산당의 통제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못하며, 그나마 만드는것도 상기 국가들로부터 수입된것을 열화카피할 뿐인 카피캣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추가로 자국민들 역시 자국 대중 문화나 제품보다 외국 대중 문화나 제품을 선호하고 있으며 미국 등 선진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어한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중국의 시스템은 오히려 뒤처지고 있다고 느껴지며 소프트파워에서도 하드 파워에서도 인구에 비해 큰 입지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또다른 문제점을 만들었는데 통상적으로 이런 경우 어떻게든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키우려고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중국은 강한 공산당 독재로 인해 도저히 소프트파워를 키우려고 해도 안 될 상황이라 타국, 특히 중국 입장에서 다른 서방국가들에 비해 뭔 짓을 해도 뒤탈이 없을 것으로 인식되는 한국의 문화를 도둑질하려고 하고 있다. 통신수단이 마편과 봉화밖에 없었던 고대시절이면 모를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 1시간도 안 돼서 뉴스로 전달되고, 각 나라 문화의 역사같은 토속자료도 조금만 공을 들이면 누구나 찾아볼수 있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사용하기에는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방침이라 당연하게도 세계적으로 비웃음만 사고 있다. 전랑외교로 한껏 전세계적인 어그로를 끌고있는 중국인데다 옛날부터 중국인들이 전세계 돌아다니면서 어그로 끈 것도 있기 때문에 "동양문화 구분법은 잘 모르긴 하는데 어쨌든 중국말은 안 믿어줄거임" 하는것도 컸고.

이 때문에 국가단위에서는 몰라도, 각국의 국민들에게는 상당한 비호감을 받고 있고 그 어느 누구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 하고 있다.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강대국들은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있고 러시아 역시 중국에 대해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만큼은 러시아와 더불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서 축출시키고 유엔 회원국 자격을 박탈하여 제명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모이기 시작했다. 당장 유엔에서 분담금은 적게 내고 중화민국( 대만)의 자리를 강탈한 주제에 정작 외교적인 성과는 없기 때문이다.[38] 체리피킹의 민족 중국인

8. 관련 기사

9. 관련 문서


[1] 영화 전랑 시리즈에서 따온 이름이다. 즉 공격적인 외교 팽창 정책을 말한다. [2] 비록 공산권, 좌파 사이에서도 비판을 많이 받긴 했지만 어쩄거나 공산권 대빵인건 사실이었기에 북한 같은 나라가 공산권이 존재할 때 혜택을 보곤 했다. 괜히 북한 경제가 공산권 붕괴 이후로 급격히 악화된게 아니다. [3]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어 실존한 것으로 입증된 중국사 최초의 국가. [4] 특히 삼국시대 한민족 국가 전성기를 맞았던 시절은 중국의 분열기와 놀랍도록 일치한다. 백제 고구려는 모두 중국이 5호16국 시절을 맞이했을 때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한민족 국가들은 위진남북조시대 등 중국의 분열기에 초기 국력을 키워 고대국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북위마저 동서로 분열되어 싸우다가 수문제에 의해 중원이 통일되자, 고구려는 기존의 정복전을 멈추고 방어전으로 일관해야 했다. [5] 이러한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시기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줄 때였다. 명나라에게는 암군이었던 만력제의 변덕에 기인한것이긴 하였지만 어쨌든 명나라는 대규모의 식량을 보내어 조선인들을 구휼했고, 군대도 보내어 임진왜란에 동맹국으로서 참전하게 했다. 비록 북방 유목민이나 그들에게 동화된 한족으로 구성된 북병들이 약탈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래도 순수 한족들로 구성된 남병들은 약탈을 저지르지 않고 일본군과의 전투에 집중했다. 명나라 조정의 공식 입장도 일본의 침공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 때문에 현대의 한국은 6.25 전쟁에서 죽은 미군과 임진왜란 때 죽은 명군을 추모하는 시설이 동시에 존재한다. [6] 명청 때는 국력과 무관하게 도의적 책임을 지려는 태도라도 보였지만 현대 중국은 그마저도 없다. 오히려 전근대 왕조들보다 현대 중국의 수준이 더 떨어진 꼴. [7] 아무리 자국의 국력이 강해도 주변에서 계속 반발하고 저항하려 들면 그 막강한 국력도 결국 소모되기 마련이다. 당장 인류 문명사 최대최강의 국력을 자랑하는 미국조차도 아프간에서의 연이은 실책으로 국력소모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을 보라. 20년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승리는 제대로 못하고 탈레반의 성장만 도운 꼴이 되었고 2021년에 결국 패배와 동시에 미군을 철수시켰다. 유럽 한정으로 20세기 미국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나폴레옹의 프랑스도 미국 이상으로 좋은 예이다. 나폴레옹은 인류사 통틀어서 최고의 군사 지휘관들 중 하나로 꼽힐 정도이며, 황제 자리에 오른 이후로도 계속 군대를 지휘했으며 당대의 프랑스군은 유럽의 그 누구도 일대일 정면승부로는 이길수 없는 강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변국과 마찰 일으키고 전쟁만 하다보니까 스페인에서 수십년에 걸쳐 수십만의 누적 전사자를 내면서 점점 국력이 하향세로 들어가기 시작하고, 영국을 봉쇄하려는 일환으로 러시아를 치다가 끝내 대부분의 병력이 전사하고 얼마안가 멸망했다. [8] 대표적인 예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제국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일이다. 두 나라 모두 그 당시 유럽에서 국력도, 인구도 제일 많고 강했지만 사실상 동맹국 없이 혼자 싸우다가 결국 전쟁에서 패하여 멸망했다. [9] 다만 조지 W. 부시가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일단 그의 실책이긴 하지만 반대로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자업자득인 면도 존재한다. 사담 후세인 본인부터가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을 일으켜 이란 쿠웨이트를 차례대로 침공하고 계속해서 미국을 도발하는 등 결코 선의의 피해자라고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의 그러한 행보는 중국의 시진핑 정권이 보여주는 모습과도 매우 유사했다. [10] 사실 희토류는 희귀하다기보다는 희토류를 생산할 때의 그 반사적으로 오는 엄청난 환경오염과 같은 부작용 때문에 그런 거다. 중국은 경제발전이라면 중국 국민들의 편의는 버렸기에 희토류로 인한 자국의 환경 파괴를 신경쓰지 않고 생산한 결과 싼 값과 높은 품질로 희토류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실제로 센가쿠 열도 분쟁이 발발하면서 희토류 수출 중단을 선언했을 때 그 파괴력을 본 미국과 일본은 희토류 자체 생산에 투자한 덕분에 중국의 희토류 협박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11] 물론 백등산 전투라든가 정강의 변 같은 사건들도 있고 거란족의 요나라나 여진족의 금나라나 몽골족의 원나라나 만주족의 청나라 등등 약세에 몰리거나 아예 나라가 망했던 적도 많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대체로 동아시아의 강대국이자 나름대로 선진국이었다. 또한 문화의 힘으로 따지자면 전근대 한정으로 확고한 동아시아 유일무이의 강대국이 맞다. 같은 포지션의 로마 제국을 점령한 게르만족도 결국 로마문화에 동화되어 사실상의 로마인, 로마의 후예를 자처하는 존재로서 분화되었듯, 중국 한족왕조를 멸망시킨 유목민족들도 중원의 인프라와 문화를 차지하고 접하게 되고 통혼을 시작하자 결국은 한족에게 동화되어 현대에 이르러선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제는 언어조차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연구대상이 되어있는 만주족( 말갈족- 거란족- 여진족) 라인이다. [12] 한국은 태생적으로 북한이라는 적국과 함께 시작했고 3년간의 혈전도 치른지라 뭐가 되었건 군사력에 투자를 많이 해야 했던 나라다. [13] 송나라는 거란, 여진, 몽골, 심지어 탕구트(...)에게도 아주 돌아가며 얻어 터지는 상황이라 고려에 아쉬운 입장이었다. 다만 남송 시기에는 두 국가의 국교가 끊어졌는데 중심지가 멀어지다 보니 교류도 힘들고 서로 사이도 서먹해졌기 때문이다. [14] 참고로 조선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군대를 운영하다가 나중에 가면 군사력이 북송과 비슷한 상황이 되고 만다. 조선의 경우 명나라때 북방관리책이 통해 당장은 북방에 유목민 통일 왕조가 없었기 때문에 관리 가능한 수준의 북방 병력과 전선을 유지하면서 임진왜란이 닥치기 전까지 거의 200년 동안 국가 간 전면전이 없는 평화기간이었는데, 이렇게 세대가 몇번 바뀌면서도 전쟁이 없으면 어느 나라던 안일해질수밖에 없다. 그런게 없었던 조선 초기에는 여진에 대한 방비 하나는 철저하게 했고 4군 6진 개척도 한걸 보면 조선이 그 자체만으로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도 전쟁 분위기를 몰랐던게 아니라 200년동안 평화기를 누려서 당시 살아있는 사람 중 제대로 된 전쟁을 겪은 사람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방에서 급하게 내려온 조선의 능력있는 장수들과 군대가 전국시대를 해쳐온 일본군 정예들을 막아내는데 성공하고, 이순신, 권율 같은 뛰어난 장수를 배출하기까지한게 용하다고 봐야하며, 이전의 군사부문 기록을 참고하거나 명나라의 군사전략을 수입해와서 연구해와 군사훈련은 끊임없이 해오던것이 빛을 발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15] 고려는 전근대 한민족 역사상 고구려와 함께 전시에 20만 이상을 모집할 수 있던 단 둘 뿐인 국가였다.(임진왜란 시기의 조선도 19만이 한계였다.) 실제로 송나라는 명목상으로는 천자국으로서 고려 사신을 대하기는 했으나 고려 사신을 안내하는데 당대 최고 시인인 소동파를 대동시켰고, 고려 사신이 거드름을 피워도 소동파는 속으로 툴툴댈지언정 대놓고 한 마디도 못했다. 그나마 툴툴댄것조차 고국이 발칵 뒤집히게 만들어 깨갱해야 했을 정도, 고려 역시도 비슷하게 거란,여진이 날뛸때 뒤를 노려줄 국가가 송나라 뿐인지라 송나라와 친교를 맺었다. [16] 다만 나중에 가면 명나라의 재정이 좋지 않아 조선과 조공 무역도 제한해서 이를 둘러싸고 조선과 갈등했다. 참고로 이 짓거리는 청나라 시절에도 재현된다. 사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보면 조선이 유별날정도로 조공을 많이 바쳤다. 무려 1년에 3번씩이나 이랬는데 이는 주변국들과 비교해보면(3년에 1번, 5년에 1번, 10년에 1번 등)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중국도 3년에 1번으로 줄여보려고 했지만 조선에서 반발해서 철회했다. [17] 물론 명나라 입장에서는 일종의 이이제이의 효과도 있었다. 둘이 알아서 치고받는 사이에 명나라 쪽으로 관심을 돌리지 못하기 때문. 실제로도 명나라는 때로는 조선의 힘을 빌리기도 했는데 이만주가 요동을 공략하자 이만주 토벌에 나서며 조선에도 도움을 구했고 사르후 전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만주, 몽골에서 일어난 국가치고 한족 왕조에 위협이 안된 나라가 없던지라 명나라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여진족을 억눌러야 하지만 한편으로 자기네들만 나서는 것도 부담스러우니 옆동네인 조선이 알아서 처리해주니 손 안 대로 코푸는 격인 셈. 물론 진짜 조선이 여진을 다 복속시키는건 고구려의 재림인 만큼 바라지 않았겠지만. 물론 조선 역시도 굳이 만주를 먹을 이유가 없었다. 당시 만주는 별 가치도 없는 똥땅인데 오랑캐로 여기는 여진족이 드글대는 곳이라 먹어봐야 별 득도 없었다. [18] 하지만 만력제의 조선 지원으로 명나라가 망했다는 것은 아니다. 당시 명나라의 중국의 국고는 400만 냥을 지원하고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넉넉했다. 만력제는 황제의 개인자금( 내탕금)만으로도 2,400만 냥이나 쌓아두었을 정도. 양응룡의 난 때도 진압군이 군비가 모자라자 만력제가 자신의 내탕금을 지원해 주었다. 문제는 정작 청나라와 대립할 때는 명 조정의 대신들이 국고가 바닥나자 청나라를 막으려고 내탕금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때만큼은 만력제가 거부했다. 물론 그렇다고 만력제가 다른 묘책을 쓴 것도 아니다. 벌써 30년 동안 그냥 정무를 돌보지 않은 사람에게 뭘 바라겠는가… 그러면서 이 작자는 자기 아들 결혼식에 800만 냥이나 쓰던 사람이다. 참고로 이는 임진왜란 지출비의 2.5배다. [19] 그리고 청나라 또한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병자호란 당시에는 명나라를 누르고 천하를 제패하기는커녕 오히려 병자호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명나라보다 먼저 몰락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자세한 건 병자호란 문서 참고. 하다못해 명나라가 정말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져도 당시에는 남북조시대, 요나라, 금나라-송나라 시절의 재림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정도 수준이면 조선 입장에서도 도저히 명나라를 완전히 손절할 수가 없다. [20] 사실 당시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으로 국방에 빵꾸가 나 버리는 바람에 여진을 막는 것이 불가능했다. [21] 실제로 조선을 침략했던 그 청나라 때 자국 어선이 조선의 영해에서 불법 어업을 하다 잡히자, 청나라 조정은 조선의 영해에서 죄를 저질렀으니 조선의 법대로 처리하고 후에 통보하라고 대처했다. 특히 조선이 천주교를 탄압할 때 조선에 선교활동을 하던 청나라인 신부인 주문모를 참수했을 때도 청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다만, 조선도 대놓고 참수하기엔 그랬는지 주문모가 조선말을 잘하는 것을 핑계로 제주도 출신 조선 사람이라고 둘러대긴 했다. [22] 결국 나중에 가서 이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23] 종종이라고 했지만 사실 너무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동맹국 정부는 꽤나 확실히 도와준 편이지만 그 나라의 국민들을 별로 신경을 안 써서 망하는 케이스다. 하지만 이것도 미국 입장에서 할말은 있는게, 민생을 돌보는것은 어디까지나 그 나라의 정부가 해야하는 주권과 관계된 일이며, 문화권이 미국과 다른경우도 많은데 그런 남의나라 국민의 민생정책까지 너무 깊이 참견하는것은 내정간섭이다. 서유럽, 일본, 한국 등도 마찬가지로 미국은 그 나라들의 '정부'만 도와줬지만, 이 나라들은 정부에서 제대로 민생을 돌볼 줄 알았기에 다른 나라들과 달리 재건과 성장을 이룬것이다. 미국이 굳이 다른나라 국민들을 언급하며 무언가 요청해야 할 일은 5.18 민주화운동때처럼 해당 정부가 지나치게 보편인권을 무시하고 국민들을 억압해서, 그런 인권에 반하는 행위를 중지하도록 만들기 위해 부득이하게 발언하여 간섭해야할때 정도이다. 다만 그 개새끼는 우리 개새끼 등 미국의 편의에 따라 보편인권도 무시해버렸던 일부 모순된 사례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게 맞다.(...) [24] 다만 러시아도 대한민국처럼 서방진영 국가들 중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 국가와는 친하게 지내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중국도 과거엔 비슷하게 유럽권 국가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했으나, 그들이 인권 문제를 들먹이자 반쯤 대립하기 시작했다. 희한하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동아시아권 국가들은 러시아와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나, 중국은 전쟁도 안 벌였는데 유럽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중국의 행보를 비판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가 중국이 전랑외교를 시작하며 전세계에 어그로를 끌었기 때문임은 자명하다. 실제로도 전랑외교 이전에는 중국의 (나름대로 유럽에게는 온건한) 정책과 비교하며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유럽 정치인도 있었으나, 중국이 대놓고 각국을 도발하기 시작한 2020년대 시점에서는 옛말일 뿐이다. [25] 물론 베트남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지원이 있었으며 아프간도 서방세계의 지원을 받긴 했다. [26] 패권주의를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동등하지 않은 외교관계는 태생적으로 균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미국이 착해 빠져서 동맹국들을 달래는 것이 아니다. 균열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 그것이 최대한 느리게 생겨나도록, 또 생겨나면 최대한 빨리 봉합할 수 있도록 대처하는 것 뿐이다. [27] 2017년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정상회담 내용을 인터뷰에서 언급하는 와중에 시진핑 주석이 '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했다고 전해 # 한국의 반중감정을 한층 더 드높였다.[39]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 내용만으론 시진핑 주석이 실제로 그렇게 말한 것인지, 아니면 듣는 과정에서 오해한 건지, 통역의 실수인지 등은 확인하기 어렵다고 한다. # [28] 그나마 가까운 게 파키스탄 정도가 있으나 이조차 인도와 함께 대치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중국과 협력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파키스탄은 자체 개발한 핵이 있어 중국의 핵우산도 필요없다. 헌데 이조차도 신장 위구르의 무슬림 탄압이 알려지고, 중국이 일대일로로 빚까지 지우고 이를 계기로 이것저것 긁어가니 반중 감정이 높아졌다. # 특히 중국은 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에서 인도-방글라데시 연합군과 싸우면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인도를 의식해서 도와주지 않았다. 물론 6.25 전쟁으로 같이 싸웠던 북한을 혈맹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북한이 잇따른 핵개발을 강행하고 악명높은 인권탄압 문제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받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완전히 몰락하여 군사력 말고는 그 이외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북한의 김씨일가 역시 중국을 가까이는 하지만 경계해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알고 있어 무조건적으로 중국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중국도 북한에게 해주는 원조가 동맹을 다지기 위한 것보다는 안보상 문제로 북한이 체제를 연명할 정도의 원조만을 해주는 실정이며 북한의 군자금과 군수물자 제공 요구는 거부하고 있다. [29] 자세한 내용은 중국-파키스탄 관계 문서 참조. 다른 한편으로 파키스탄에서 독립하려는 소수민족 발루치족은 중국이 파키스탄 정부를 지원한다고 여겨 중국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고, 사실 파키스탄이 친중하는 가장 큰 이유는 파키스탄의 주적이자 가장 큰 안보위협인 인도의 군사행동을 제어하는 이이제이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30] 물론 이 모든 것이 다 미국의 국익과 관련된 것이고 또 그만큼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과는 달리 균형잡힌 외교정책을 펴고 있다. [31] 실제로 아시아인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이 조금씩 퍼지고 있으며, 일단 동양인이면 '차이니즈?(중국인?)'이라며 시비를 거는 경우도 매우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한국은 그런 상황에서도 방탄소년단 등으로 호감을 모아 한국인이라고 재빠르게 답하면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곤 하지만... [32] 일제가 중국을 침략한 덕분에 국민당이 악화되어 자신들 공산당이 승리하여 집권할수 있었다는 이유 [33] 지금이 19세기 제국주의도 아니고, 이미 민족자결주의가 퍼질 대로 퍼진 21세기에 굳이 일본이 재무장을 한다고 일본군이 한국을 침공할 당위성은 아예 없다. 애초에 바다라는 천혜의 경계를 두고 있는데다 자신과 군사력도 엇비슷하고, 무엇보다 서방세계의 핵심 멤버 중 하나인 대한민국을 합병하려고 들었다간 일본은 그나마 있던 우호적인 이미지도 죄다 사라지고 국제적 위상도 순식간에 추락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한국과 일본이 서로 잡아먹을듯이 대립해도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면 극성 혐한이나 혐일을 제외하면 공공의 적인 중국 북한 때문에라도 슬그머니 협력 기조로 나아가도 별 불만이 없어진다. 그리고 양국의 정치사에 조금이라도 밝은 사람들은 이걸 알기 때문에 혐일/혐한 프레임을 씌우며 반일/반한 감정을 고조시키는 정부를 욕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양국이 반일/반한 감정을 고조시키는 계기는 자신들의 정책이 실패하거나 큰 스캔들이 터졌을 때가 부지기수다. 그들에게 반일/반한은 자기 지지율 올려먹을 수단일 뿐... 미국입장에서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해서 아예 폴란드가 러시아측에 붙었다고 합니다! 라는 골때리는 뉴스가 나온다. [34] 미국의 경우 한반도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면 사실상 중국 견제도 포기하는 셈이라 굳이 먼저 나서서 포기할 이유가 없다. 중국의 경우 북한을 포기하게 되면 통일한국과 맞닿게 되는데, 한반도의 위치가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본토를 타격하기 아주 적절한 위치이며 통일한국은 민주정을 채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본토에 민주화 열풍이 불어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받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정치 이념이 정반대인 국가들이 대놓고 수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치고 있는데 이들의 관계가 좋을 이유가 만무하다. 중국 입장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시나리오는 현상유지고, 북한이 붕괴하면 영토를 분할해서 (특히 동해 지역 위주로) 친중 위성 정권을 세우든가 정 안되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북한을 아예 자국 영토로 합병시키는 것이다. 허나 두 시나리오 모두 국제사회의 반발이 심할 게 뻔하고, 여차하면 제3차 세계 대전으로 번질 확률이 있기때문에 현상 유지를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어서 남북통일을 막을 확률이 높다. [35] 실상은 반대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이유는 한반도가 통일되어 친미국가가 될 경우 중국 본토와 직접 맞닿는 새로운 적대국이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이징이 한반도와 매우 가깝기 때문에 한반도를 미국에게 넘길 경우 수도가 위협받는 건 물론 좌우방향으로 포위되어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북한이 싫더라도 일단은 완충지대로 삼아야 하기에 최대한 오래 무너지지 않게 북한의 명줄을 붙이면서 도와주고 있는 것. 그러나 이것은 중국의 일방적인 입장일 뿐이고 한국입장에서 중국의 내부 상황을 곧이곧대로 이해해줄 필요는 전혀 없다. 특히, 이른바 항미원조라는 명분으로 6.25 전쟁때 한국을 침공한 사실은 더더욱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해줄 필요도, 잊을 필요도 없다. [36] 그나마 한국의 경우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 아니고 평창 올림픽의 성공으로 인해 중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에서도 관광객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손실분을 만회했다. 이렇다보니 새로운 갑질을 추가했는데, 바로 한국이 친미국가라는 점과 미중 무역전쟁을 근거로 한국 회사들의 중국 시장 진출과 각종 법규를 들먹이며 현지 영업을 방해하는 것. 현재 나타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어려움과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 실업 문제는 미중 무역경쟁과 그에 따른 시장활로 확보의 어려움이 그 원인이다. 허나, 이미 한한령으로 상당수의 한국 기업들이 공장을 동남아로 이전하거나 감축한 상태라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고, 이후 한국 정부에서도 인도와 동남아를 공략하는 등 신남방정책이라는 탈중국적인 외교를 추진하고 있어서 장기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어 중국의 영향이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미국이 중국을 대놓고 견제하고 있어서 중국이 원하는 수준의 피해는 나오고 있지 않다. [37] 당시 외교부 대변인인 현 주미 중국대사인 "친강"이었다. 1953년 한미동맹이 맺어졌지만 1961년 북중조약이 맺어졌는데 둘 다 냉전시기에 맺어진 조약들이다. 현재 중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라 군사동맹에서 미국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새발의 피의 수준이다. 반면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 NATO 등 수많은 나라들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상황이다. [38] 다만 여론으로 끝날 뿐 저게 실제로 이루어질 확률은 없다. 중국은 산업분야에서만큼은 아직까지 확고한 세계의 공장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공장을 유엔에서 제명시키고서 정상적인 무역관계를 바랄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세계가 중국 공산품 없으면 생활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현재 시스템에서 어떻게든 억지로 중국산을 배제시키려 들면 전세계적인 물가폭등으로 대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자연스러운 자본주의의 흐름 때문에 이러한 체제가 성립된것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부작용 없이 중국산을 시장에서 배제하려면 중국의 경쟁력이 자연스럽게 사라질때까지 기약없는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39] 당시 논란에 대해 미국에서는 한국이 수천년 동안 독립국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