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당송팔대가,ruby=唐宋八大家,color=#FFFFFF)] | |||||||
한유 | 유종원 | 구양수 | 소순 | 소식 | 소철 | 증공 | 왕안석 |
<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북송의 대신 소동파(蘇東坡) 蘇軾 | 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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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문충(文忠) |
최종직위 | 태사(太師)추증 |
이름 | 소식(蘇軾)[1] |
자 | 자첨(子瞻) |
호 | 동파(東坡)[2] |
부친 | 소순(蘇洵) |
생몰 | 1037년[3] ~ 1101년 |
주군 |
송신종 송철종 송휘종 |
국적 | 북송(北宋) |
[clearfix]
1. 개요
북송(北宋)의 시인이자, 학자, 정치가. 미주(지금의 쓰촨성) 미산 출신으로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東坡). 소식이란 이름보단 성씨에 호를 붙여서 부르는 방식인 소동파로 더 잘 알려져있다.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4]의 한 사람이다. 학문적으로는 동생과 함께 '촉학'이라고 불린 학문을 형성하였으며, 유불도 간의 조화를 추구했다. 당시 정치적으로는 왕안석과, 학문적으로는 정이, 정호 형제의 낙학파[5]와 대립했다. 신기질과 함께 호방파의 주 시인 중 하나로, 소신이라고도 불렸다.2. 생애
22세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직후 모친 상(喪)을 치러야 했고, 또 그 직후엔 상경하고 얼마 안 되어 아내와 부친 상을 치러야 해서 또 낙향하는 등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과거 합격 당시, 야사에서는 차석으로 급제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시험관이자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구양수가 소식의 글을 보고 "이건 내 애제자의 글이 틀림없다. 훌륭하지만, 이걸 장원 줬다간 부정 의혹이 일 수가 있다."해서 차석으로 줬다고 한다. 당시엔 부정 채점을 막기 위해서 시험관들이 채점할 땐 답안지의 이름을 가리고 했었다.
이후 33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벼슬길에 오르는데, 이때는 마침 송신종의 시대로 왕안석의 신법 운동으로 인해 조정이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때였다. 소식은 국가 정책의 개선 자체에는 찬성했으나, 왕안석의 세력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위선과 속됨 때문에 왕안석 본인에게도 의심을 품고 있었고, 또한 급격한 개혁은 오히려 국정에 혼란만을 가중시킬 것이라 우려했다. 일반적으로 소식을 구법당의 일파로 보지만, 그는 구법당의 의견에도 전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소수파였다. 실제로 후에 구법당이 신법을 일괄적으로 폐지하려 하자, 그는 일부 법은 존속시킬 것을 주장한다.
그 때문에 자신의 문장력을 총동원한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려 황제를 설득하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방관으로 발령받아 오랫동안 지방을 전전했다. 이 과정에서 부임지의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많은 정책을 시행해 명성을 얻었으며, 남송 수도가 될 임안(지금의 항저우) 지사로 가서 임안을 더 발전시키고 온다. 동파육에 대한 고사(故事)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그러다 1079년에 지방의 실태를 올린 상소가 신법당 일파의 눈에 거슬려(이때 왕안석은 실각한 상태였다) 파직당하고 문초까지 받았으나, 태조의 유훈[6]도 있고 하여 간신히 목숨은 건져 유배형을 당했다. 이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신선 사상 등에도 심취했다고 한다.
후에 신종이 죽고 구법당이 집권하면서 소식은 예부상서로 정계에 복귀하였으나, 이미 신법의 유효성 여부는 안중에도 없이 권력쟁탈의 빌미로만 이용하는 조정의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고, 특히 당시 세를 불려던 성리학자들과 사이가 나빠져 또 귀양을 당했다. 훗날 성리학을 숭상하는 이들이 이런 사실과는 상관없이 소식의 시를 추앙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 참고로, 이때 유배된 곳이 해남인데 소식 덕분에 해남에 학문이 전해졌다고 한다. 이전까지 해남 출신들은 과거를 본다는 것 자체도 생각지 못했는데 소식이 가르친 제자들 몇이 해남 최초로 과거에 급제했다고 한다. 그 뒤 휘종이 즉위하면서 사면받아 상경하던 도중에 병으로 객사하였다.
소식 사후 26년 뒤, 고종은 소식을 태사(太師)로 추증하고, 소식의 손자인 소부(蘇符)를 예부상서로 삼았다. 또한 효종 시기에는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3. 여담
설니홍조라는 사자성어와도 연관이 있다. 소식이 소철에게 보낸 답시에서 유래한 사자성어.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그가 신법에 반대했던 사실을 두고 여러가지 얘기가 난무한다. 왕안석을 지지하는 측은 그가 지방을 전전하던 과정에서 신법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전향했노라 하는가 하면, 반대로 사마광을 지지하는 측은 오히려 지방 생활 중에 신법의 폐단을 보았으며 왕안석 일파의 위선을 두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정확히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예술가로서, 또한 백성을 위해 일한 관리로서 모든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움직였을 따름이다.
시인 뿐만 아니라 서예가로도 당대제일로 평가받아 미불(米芾), 황정견(黃庭堅), 채경(or 채양)과 함께 북송 사대가로 손꼽히기도 한다. 서예는 처음 『난정서』를 배우고 안진경의 서예에서 인간성의 발로를 발견하였으나 후에 고인의 모방을 배척하고 일가를 이룬다.
당시(唐詩)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詩境)을 개척하였다. 대표작인 《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한반도를 비롯한 다른 주변 지역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규보는 "학자들이 과거(科擧) 공부할 때는 풍월에 눈돌릴 틈이 없다가, 급제하고 나서 시 짓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선 소동파의 시에 푹 빠져버린다"라고도 했다.
시인으로 유명한 소식은 관료로서도 유능한 점이 있는데 바로 치수 사업을 맡으면 매우 성공적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홍수 등 물에 관련한 운영, 관리는 고대 중국 관료에겐 매우 필요한 기술이자 강력한 무기였는데 소식은 이 부분에서 아주 유능하였고 이로 인해 자주 탄핵당해 유배나 낙향을 전전해도 조금있으면 계속 다시 불려와 지방관 등 관료를 맡아 활동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부식의 이름 중 '식'(軾)이 소식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그의 동생 이름도 소식의 동생인 소철(蘇轍)로부터 이름을 딴 김부철이다.
사(문학)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사는 서민적이거나 여성적인 정서가 주축이었는데, 남성적, 서사적 정서를 가진 사를 새로 지어 사의 주제가 풍부해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소식의 사는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호전로 유명한 간신 고구와 연관이 있다. 원래 고구는 소동파의 서기였는데 글을 잘 써서 소동파가 잘 대해주었고, 후에 권력을 잡게 된 뒤 고구도 소동파의 가족을 잘 돌봐주었다.
삼국시대에 대한 견해에선 위진정통론을 주장하였는데, 그러면서도 공융을 영웅으로 높게 평가하여 조조는 음험한 도적이자 이리같은 자로 평생 유비를 두려워 하였고 유비는 공융이 천하에 자신이 있음을 알아준다는 것에 기뻐하였다, 하늘이 만약 한나라에 복을 내려 공융 곁에 유비가 있었다면 유비가 조조를 베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소식의 정통론이라는 게 삼국 전부 정통성도 없고 도덕도 없어 누구도 천하통일 못했으니 힘쎈 놈이 정통이다 이 수준이라...[7] 그러면서도 저서 《동파지림》1권에 실린 '동네 아이들이 삼국 이야기를 듣다(塗巷小兒聽說三國語)' 라는 제목의 글에서 친구 왕팽의 말을 빌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조조와 유비의 이미지가 어떠했는지를 전하고 있다.[8]
왕팽이 언젠가 말했다.
"골목에서 장난이 심해 가족들이 골치아파하는 아이가 있으면 돈을 주어 모여 앉아 옛날 이야기를 듣게 한다. 삼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유현덕이 패하여 어려움에 처했다고 하면 눈물을 흘리다가, 조조가 패했다고 하면 만인이 아주 즐거워하며 통쾌하다고 한다. 이로써 군자와 소인의 영향은 백 대를 지나도 끊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골목에서 장난이 심해 가족들이 골치아파하는 아이가 있으면 돈을 주어 모여 앉아 옛날 이야기를 듣게 한다. 삼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유현덕이 패하여 어려움에 처했다고 하면 눈물을 흘리다가, 조조가 패했다고 하면 만인이 아주 즐거워하며 통쾌하다고 한다. 이로써 군자와 소인의 영향은 백 대를 지나도 끊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복어를 좋아해서 죽음과도 바꿀 맛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심괄과는 동료 관계였다. 그러나 소식이 신법에 반대하여 유배되자 심괄이 그를 임안으로 찾아와 그와 이야기를 나눈 뒤, 심괄이 소식을 모함하였고, 소식은 심괄을 뼈속 깊이 증오하게 되었다.
3.1. 동파육 개발?
설에 따르면 한 요리의 개발자이기도 한데, 바로 중국요리 중 가정식이지만 한국의 중국집에서는 고급식당이 아니면 보기 힘든 음식인 동파육(東坡肉)이 소식이 만든 요리라고 전해진다. 돼지고기의 삼겹살이나 오겹살을 간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에 졸여서 만드는 조림과 수육 중간 정도의 음식인데, 저장성 항저우와 상하이 지방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요즘은 인터넷에 만드는 법이 상세하게 올라와 있어서 우리나라 일반 가정에서도 잘 따라만 하면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동파육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단 어떤 기원이든 소식과 연관되었다는 게 정론이다. 아래의 내용은 동파육의 기원 중 비교적 잘 알려진 내용 하나를 요약한 것이다.
사실 이 요리의 원형은 빨갛게 구운 고기라는 뜻의 '홍소육(紅燒肉)'으로, 동파육처럼 돼지고기 삼겹살 부위나 양고기로 만들긴 하지만 간장소스가 가미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소식은 1077년 서주의 지주(知州)[9] 시절 홍수가 나자 백성들을 이끌고 제방을 쌓는 치수 사업을 진행하여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아 민심을 안정시키고 인망을 얻었다. 백성들은 감사의 뜻을 담아서 돼지고기와 양고기를 바쳤는데, 소식은 입맛이 까다롭고 미식가였으며 자기가 만든 요리를 나눠주는 취미도 있었기 때문에 그 고기들로 홍소육을 만들어 백성들과 나눠 먹었다.
자신들이 선물한 고기를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 다시 베풀어 준 소식의 인간적인 면에 반한 백성들은 그 홍소육을 '고마운 마음이 담긴 고기'라는 뜻으로 회증육(回贈肉)이라고 불렀고, 이 요리는 서주의 인기 요리가 되었다.
3년 뒤인 1080년, 소식은 조정을 비판하는 글을 지었다는 죄목으로 파직되어 황주에 유배되었다. 따로 사람을 부릴 수도 없는 유배인의 신분이라 소식은 내가 바로 요리사!라는 심정으로 손수 밥을 해먹고 지냈다. 이때 돼지고기로 홍소육을 즐겨 해먹었는데 요리법을 바꿔서 약한 불에 적은 물로 푹 삶는 수육스타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요리법을 시로 적었는데 이 시가 바로 '식저육(食猪肉)'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다시 9년이 지난 1089년, 황주 유배를 마치고 관직에 복귀한 소식은 절강성 항주(현재의 저장성 항저우)의 지주로 부임하여 폭우로 범람한 태호(太湖)로 침수피해를 입은 민생을 구제하고, 항주의 유명한 호수인 서호(西湖)에 제방을 쌓는 치수 사업을 통해 미리 침수를 막았다. 위에 설명대로 중국 관료의 통치덕목에 꼭 들어가는 것이 물을 다스리는 치수사업인데, 소식은 이 치수사업에 매우 일가견이 있었던 것이다. 소식 덕분에 폭우에도 호수 범람 우려없이 무사히 살게 되자 백성들은 소식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는데, 때마침 전에 서주에서 살았던 사람이 예전 소식이 백성들과 함께 홍소육을 만들어 먹었는데 소식이 그 요리를 아주 좋아한다고
백성들을 잘 돌봐주는 데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까지 만들어주는 소식의 유능함과 덕을 기린 백성들은 그 요리를 소식의 호를 따서 동파육이라고 이름짓고 항주의 대표요리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동파육이 항주 저잣거리에서 인기를 끄는 것을 본 소식의 적대세력들이 이를 와전시켜 소식이 백성들에게 동파육을 강제로 팔아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탄핵했다. 더 큰 문제는 무능한 송나라 조정이 진상을 조사해 보지도 않고 적대세력의 탄핵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이 때문에 소식은 또다시 해남(海南, 하이난)으로 유배를 떠났다.
백성들은 기껏 좋은 어르신을 만나 큰 덕을 입었는데 갚지도 못했다며 미안해 했고, 대신 소식이 가르쳐준 요리법을 지켜 동파육을 항주의 명물로 대대손손 전수했다. 덕분에 동파육은 항저우의 대표 요리로 자리매김했고, 오랜시간이 지난 1956년에 정부로부터 항저우를 대표하는 36대 요리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3.2. 고려에 대한 시각
貊賊 入貢 無絲髮利 而 有五害 今請 諸書 與 收買 金箔 皆 宜勿許。
맥적[10]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이익은 없고 다섯 가지 손해[11]만 있습니다. 지금 요청한 여러 서책과 더불어 거두어 사가는 금박 모두 마땅히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 《 송사》, 외국열전, 고려전
맥적[10]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이익은 없고 다섯 가지 손해[11]만 있습니다. 지금 요청한 여러 서책과 더불어 거두어 사가는 금박 모두 마땅히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 《 송사》, 외국열전, 고려전
고려가 조공을 바치면서 사신이 폐백을 관리에게 보냈는데, 글에서 갑자를 칭하였다. 소식은 이를
물리치며 “고려가 우리 조정에 칭신하면서
우리의 책력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감히 이걸 받겠는가!”라고 말하였고, 사신이 글을 바꾸어 희령(熙寧)[12]이라고 칭하자, 그러한 뒤에 받았다.
- 《 송사》, 소식전
- 《 송사》, 소식전
중국에서 위인이자 시인으로 알아주는 인물이지만 고려에 대해 안좋은 인상을 가졌다. 고려를 두고 천한 나라라고 말하고 연호도 송나라와 다른 연호를 쓰는 등 고려 황제를 칭한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를 방문했을 때도 좋지 않은 반응으 보였다. 하지만 당시 고려를 홀대할 수 없었던 송나라의 사정상, 소식은 의천의 개인 가이드 노릇까지 해야 했다.
다만 당시 송나라의 상황을 고려하면 소동파의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았다. 실제 당시 송은 요와 패권을 두고 다투고 있었다. 그리고 고려는 문종 ~ 숙종에 이르기까지 이런 요와 송 사이에서 간을 보며 이익을 얻고 있었다.
"당나라 고종이 평양을 함락시켰을 때(고구려 당시)는 수합한 군사가 30만이었고, 지금(고려 인종 원년)은 전대에 비해 또 배가 늘어났다"
- <선화봉사고려도경, 제11권 의장과 호위 中>
- <선화봉사고려도경, 제11권 의장과 호위 中>
당대 중국에서 고려가 수십만 대군을 확보하고 있다는 표현을 했는데, 그무렵 고려는 여요전쟁 이전부터 꾸준히 대군을 양성했고, 요나라의 침략을 격퇴하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그런 상황에서 요와 송이 패권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후방에서 대군을 가진 고려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고려가 어느 한쪽에 합세한다면 전세가 크게 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고려를 치려고 해도 송은 황해를 건너야 했고, 요는 천리장성이 가로막고 있었다. 한마디로 당시 상황은 송나라와 요나라가 단독 1위를 노리는 공동 1위인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가진 2위 고려가 양쪽 모두에게 을질을 하고 있었던 천하삼분지계[13]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송나라와 요나라는 고려 사신을 후하게 대접해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송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일부 사신들은 자국의 국력을 믿고 송나라에서 안하무인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조공은 제대로 바치지도 않으면서 하사품은 10배로 받아갔고, 받은 하사품을 개봉이나 항주 같은 대도시에서 바로 금과 은으로 바꿔서 가져갔다. 군사기밀인 지도를 비롯해 황실에만 있는 희귀도서들을 달라고 요구했고, 그래서 소식이 고려에 대한 서책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황제에게 입시하기 전에 다른 사신들[14]과 먼저 만나 접대를 받거나 돌아가는 길에서 송나라 백성의 물건을 강탈하기도 했다.
허나 당시 국제관계상 송은 고려를 어쩌지 못했다. 소동파 입장에서는 송나라가 고려에 휘둘리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고려가 사실상 주는건 없는데 달라는 것만 많다는 식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감정이 고려에 대한 미움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반대파들에게 책잡혀서 공격당할 빌미를 제공했다. 바다를 끼고 멀리 있는 고려보다 가까이에 있는 서하나 요에게는 맥적은커녕 아무말도 못하지 않느냐며 소식을 공격했다. 고려는 서하나 요처럼 수십만 세폐를 받고 송을 상국으로 모시는 형식적인 관계가 아닌 송의 아우를 자처하며 여러 차례 도움을 주고 있는데[15], 고생이 심한 아우가 형에게 하소연을 하고 투정을 부린다고 형이 동생을 멸시한다니 말이 되느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오히려 소식의 발언이 고려 사신들의 귀에도 들어가 고려 조정이 불편하게 여기지 않느냐고 따졌다. 소식은 고려 때문에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백성들이 힘들뿐더러, 고려가 받아간 문물들을 거란에게 넘기고, 말로는 송을 받든다면서 정작 실리만 챙겨가는데다가 심지어 송의 허점을 탐구하며, 송-고려 관계가 거란이 트집거리가 된다고 주장했다. 반대파들은 그런 다섯 가지는 서하나 요도 모두 한다고 반박하였다. 특히 소식이 주장한 것처럼 요나라에 책잡힐 것이 두려워 고려와 관계를 끊는다면, 후에 요에게 침략 당할 때 우리 손으로 관계를 끝내버린 고려가 도와줄 것 같느냐고 피반하였다. 고려와 관계가 단절되면 요는 반드시 침공할 터인데, 군사적으로 요의 침공을 막거나 외교적으로 침공을 막는 방안을 제시해보라고 하자 소식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소식의 반대파들은 소식이 고려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고 주장하지만, 고려는 세폐를 받지도 않을뿐더러 송의 경제적 불안은 서하와 요가 매년 받는 수십만의 세폐 때문인데, 정작 서하와 요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송에 우호적인 고려를 맥적으로 멸시하며 송에 우호적인 나라를 적으로 돌리려고 한다는 이유를 들어 소식을 서하나 요의 첩자로 몰아갔다. 소식 반대파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기에 소식은 자신이 아둔하여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했다며 황제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고, 소식으로 인해 감정이 상했을 고려인들의 마음을 다독이라며 의천의 개인 가이드를 하라는 명을 받고 임한 것이다.
반대파들이 소식을 비판한 부분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것이다. 송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서하와 요나라에는 싫은 소리도 못하면서, 서하와 요가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고려가 송에게 자세를 낮춰 우호적으로 나오니 만만하게 보고 멸시한다며 소식을 글만 잘쓰는 위선자라고 공격했다. 실제로 소식은 고려를 맥적이라고 멸시했는데, 이 때문에 고려와 송의 우애에 균열이 갈 듯한 조짐이 보이자 송나라 조정이 소식을 좌천시켰다. 이후로 소식은 지방을 전전하게 되었고, 중앙정계로 복귀하지 못했다. 국제정세 상 고려와 협력해야 하는 송나라 입장 상 소식의 발언은 위험했는데, 눈치 없이 고려를 만만하게 보고 공격성 발언을 하다가 오히려 자국에서 소식을 팽해버린 것이다. 즉, 글 솜씨와 달리 눈치가 없었다.
정작 고려인이나 후세의 조선인들이 가진 소식에 대한 인상은 상당히 좋았다. 고려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시는 모름지기 소식과 황정견을 모범으로 삼았고, 과거에 급제한 33명을 가리켜 삼십동파출[16]이라고 할 정도로 소식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현대에는 고려에 대한 반감을 품은 인물 정도로만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시인 이은상도 수필 소동파에서 어느 식당에 가니 적벽부가 적힌 시를 액자로 매달고 있어서 소동파가 고려를 혐오하던 자인데 이게 뭔짓이냐고 호통치자 식당 주인이 놀라서 그런 쓰레기 같은 놈인줄 몰랐다며 액자를 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도 고려를 혐오했는데 고려나 현대 한국에선 여전히 소동파가 사랑을 받고 있으니 이 무슨 일이냐고 한탄한다.
결론적으로 고려에 대해 반목하는 감정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덮어놓고 고려를 싫어한 것은 아니다. 고려의 외교 스탠스도 소동파나 송나라의 입장에서 상당히 무례했고, 여러 추태도 보였다. 실제 소동파가 고려를 무조건 혐오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제자인 장뢰가 당시 송나라에서 인기를 끌던 고려 부채[17]를 선물하자 고려 부채를 칭찬하는 시를 짓기도 했으며, “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구경하였으면 원이 없겠다.”(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라고 하면서 금강산을 극찬했다고 한다. [18] 이와 같은 기록으로 비춰본다면 '고려' 자체를 싫어했다기 보다는 당시 고려 조정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현대에도 타국 정부는 싫어도 그 나라 문화나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는 것처럼 소동파도 비슷한 스탠스일 수 있다.
소식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범조우(范祖禹, 1041~98)의 글과 소식의 글을 비교해 보자.
저들이 비록 이적(夷敵)이지만 역시 중국의 백성과 같다. 오랑캐는 이익을 좇고 손해를 피하며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싫어하니 보통 사람과 다름이 없다.
- 범조우의 <당감(唐鑑)> 권3
- 범조우의 <당감(唐鑑)> 권3
오랑캐는 중국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 금수와 같아서 너무 잘 다스려지기 바라면 커다란 혼란에 빠지고 만다.
- 소동파 전집
- 소동파 전집
류종목 교수(서울대)는 이러한 관점차의 이유를 소동파의 열등의식에서 찾는다.
송나라는 다른 이전의 중국 왕조에 견주면 문약(文弱)하기 짝이 없었다. 늘 요나라(거란)과 서하(西夏)의 침략을 받고 있었다. 누구보다 강한 애국심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소동파는 송나라의 ‘대외적 열등감’을 해소하고 싶은 복합심리에서 지나칠 정도의 문화적 우월감에 빠진 것은 아닐까.[19]
그러나 이러한 소동파 본인의 성향과 별개로 그의 한시가 상당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이러한 성향을 이유로 그의 업적을 굳이 절하할 필요도 없다. 작가 본인의 행보와 문학적인 성취는 별개로 봐야 한다. 그런 만큼 순수하게 시로서 좋아하는 것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4. 기타
현대 중국의 교육과정에서는 소식의 작품을 소학교에서 4수, 중학교에서 3수, 고등학교에서 4수를 가르치고 있다. 이는 이백(초중고 12수), 두보(초중고 11수)와 맞먹는 비중으로, 중국 고전문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시인들이다.5. 대중매체에서
1998년 드라마 수호전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하며 당국강이 소동파를 맡았다.2011년 드라마 수호전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하며 통다웨이가 소동파를 맡았다.
2012년 드라마 소동파에서는 신삼국에서 제갈량을 맡았던 육의가 소동파를 맡았다.
2015년 드라마 동파가사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2020년 드라마 청평악에서 조연으로 짧게 등장하며 딩위시가 소동파를 맡았다. 동생 소철과 과거시험을 위해 상경했다. 과거시험에서 장원이었으나 지공거인 구양수가 소동파의 답안을 보고 글의 수준과 문체가 자기 제자가 확실하다며 채점논란을 피하기 위해 방안으로 합격시켰다.
만화 바라카몬에서는 주인공인 서예가 한다 세이슈가 보물처럼 여기는 사진에서 등장. 소자(蘇子)라고 적혀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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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宋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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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태조기(太祖紀)」 | 4·5권 「태종기(太宗紀)」 | 6·7·8권 「진종기(眞宗紀)」 | |
조광윤 | 조광의 | 조항 | ||
9·10·11·12권 「인종기(仁宗紀)」 | 13권 「영종기(英宗紀)」 | 14·15·16권 「신종기(神宗紀)」 | ||
조정(趙禎) | 조서 | 조욱 | ||
17·18권 「철종기(哲宗紀)」 | 19·20·21·22권 「휘종기(徽宗紀)」 | 23권 「흠종기(欽宗紀)」 | ||
조후 | 조길 | 조환 | ||
24·25·26·27·28·29·30·31·32권 「고종기(高宗紀)」 | 33·34·35권 「효종기(孝宗紀)」 | 36권 「광종기(光宗紀)」 | ||
조구 | 조신 | 조돈 | ||
37·38·39·40권 「영종기(寧宗紀)」 | 41·42·43·44·45권 「이종기(理宗紀)」 | |||
조확 | 조윤 | |||
46권 「도종기(度宗紀)」 | 47권 「영국공기(瀛國公紀)」 | |||
조기(趙禥) | 조현 · 조하(趙昰) · 조병 | |||
※ 48권 ~ 209권은 志에 해당. 210권 ~ 241권은 表에 해당.
송사 문서 참고
}}}}}}}}}}}} - [ 열전(列傳) ]
- ||<-4><tablewidth=100%><tablebgcolor=#2e8b57> 242·243권 「후비전(后妃傳)」 ||
소헌태후 · 효혜황후 · 효명황후 · 효장황후 · 숙덕황후 · 의덕황후 · 명덕황후 · 원덕황후 · 장회황후 · 장목황후 · 장헌명숙황후 · 장의황후 · 장혜황후 · 소정귀비 · 곽황후 · 자성광헌황후 · 온성황후 · 소절귀비 · 소숙귀비 · 양덕비 · 풍현비 · 선인성렬황후 · 흠성헌숙황후 · 흠성황후 · 흠자황후 · 임현비 · 혜목현비 · 소자성헌황후 · 소회황후 · 현공황후 · 현숙황후 · 의숙귀비 · 현인황후 · 교귀비 · 명달황후 · 인회황후 · 헌절황후 · 헌성자열황후 · 반현비 · 장현비 · 유귀비 · 유완의 · 장귀비 · 성목황후 · 성공황후 · 성숙황후 · 채귀비 · 이현비 · 자의황후 · 황귀비 · 공숙황후 · 공성인열황후 · 사도청 · 전황후 · 양숙비 244·245·246·247권 「종실전(宗室傳)」 조정미 · 조덕소 · 조덕방 · 조원좌 · 조원희 · 조원분 · 조원걸 · 조원악 · 조원칭 · 조원엄 · 조원억 · 조우 · 조윤양 · 조호 · 조군 · 조필 · 조오 · 조사 · 조무 · 조해 · 조추 · 조기(趙杞) · 조허 · 조체 · 조악 · 조식 · 조진(趙榛) · 조심 · 조훈(趙訓) · 조부 · 조거 · 조기(趙愭) · 조개(趙愷) · 조순 · 조횡 · 조자칙 · 조자숭 · 조자력 · 조자지 · 조자주 · 조자숙 · 조사이 · 조희언 · 조희역 · 조사오 · 조사요 · 조사궁 · 조사천 · 조불군 · 조불기 · 조불우 · 조불백 · 조선준 · 조선예 · 조여술 · 조숙근 · 조숙향 · 조언담 · 조언숙 · 조언유 248권 「공주전(公主傳)」 진(秦)국대장공주 · 위(魏)국대장공주 · 노국대장공주 · 진(陳)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빈국대장공주 · 양국대장공주 · 옹국대장공주 · 위(衛)국대장공주 · 형국대장공주 · 장혜국공주 · 승국대장공주 · 주진국대장공주 · 진로국대장공주 · 곤국대장공주 · 연서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위초국대장공주 · 위국대장공주 · 한위국대장공주 · 주국장공주 · 당국장공주 · 담국장공주 · 서국장공주 · 진국공주 · 진국장공주 · 가덕제희 · 영덕제희 · 순숙제희 · 안덕제희 · 무덕제희 · 수숙제희 · 안숙제희 · 숭덕제희 · 가국공주 · 문안공주 · 화정공주 · 제안공주 · 안강군주 · 기국공주 · 주한국공주 249권 「범질등전(范質等傳)」 250권 「석수신등전(石守信等傳)」 범질 · 왕부 · 위인포 석수신 · 왕심기 · 고회덕 · 한중윤 · 장령탁 · 나언괴 · 왕언승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한령곤 · 모용연쇠 · 부언경 왕경 · 왕안 · 곽종의 · 이홍신 · 무행덕 · 양승신 · 후장 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절덕의 · 풍계업 · 왕승업 · 이계주 · 손행우 후익 · 장종은 · 호언가 · 설회양 · 조찬 · 이계훈 · 약원복 · 조조 255권 「곽숭등전(郭崇等傳)」 곽숭 · 양정장 · 송악 · 상공 · 왕언초 · 장영덕 · 왕전빈 · 강연택 · 왕계도 · 고언휘 256권 「조보전(趙普傳)」 257권 「오정조등전(吳廷祚等傳)」 258권 「조빈등전(曹彬等傳)」 조보(趙普) 오정조 · 이숭구 · 왕인섬 · 초소보 · 이처운 조빈(曹彬) · 반미 · 이초 259권 「장미등전(張美等傳)」 장미 · 곽수문 · 윤숭가 · 유정양 · 원계충 · 최언진 · 장정한 · 황보계명 · 장경 260권 「조한등전(曹翰等傳)」 조한 · 양사 · 당진(黨進) · 이한경 · 유우(劉遇) · 이회충 · 미신 · 전중진 · 유정한 · 최한 261권 「이경등전(李瓊等傳)」 이경(李瓊) · 곽경 · 진승소 · 이만초 · 백중찬 · 왕인호 · 진사양 · 초계훈 · 유중진 · 원언 · 기정훈 · 장탁 · 이만전 · 전경함 · 왕휘 262권 「이곡등전(李穀等傳)」 이곡 · 잠거윤 · 두정고 · 이도(李濤) · 왕역간 · 조상교 · 장석 · 장주 · 변귀당 · 유온수 · 유도 · 변광범 · 유재(劉載) · 정우(程羽) 263권 「장소등전(張昭等傳)」 264권 「설거정등전(薛居正等傳)」 장소(張昭) · 두의(竇儀) · 여여경 · 유희고 · 석희재 · 이목 설거정 · 심륜 · 노다손 · 송기 · 송웅 265권 「이방등전(李昉等傳)」 266권 「전약수등전(錢若水等傳)」 이방(李昉) · 여몽정 · 장제현 · 가황중 전약수 · 소역간 · 곽지 · 이지 · 신중보 · 왕면 · 온중서 · 왕화기 267권 「장굉등전(張宏等傳)」 268권 「시우석등전(柴禹錫等傳)」 장굉 · 조창언 · 진서 · 유식(劉式) · 유창언 · 장계 · 이유청 시우석 · 장손 · 양수일 · 조용 · 주영 · 왕계영 · 왕현 269권 「도곡등전(陶穀等傳)」 도곡 · 호몽 · 왕저 · 왕우(王祐) · 양소검 · 어숭량 · 장담 · 고석 270권 「안간등전(顏衎等傳)」 안간 · 극가구 · 조봉 · 소요 · 고방 · 풍찬 · 변후 · 왕명 · 허중선 · 양극양 · 단사공 · 후척 · 이부(李符) · 위비 · 동추 271권 「마영종등전(馬令琮等傳)」 마영종 · 두한휘 · 장정한 · 오건유 · 채심정 · 주광 · 장훈 · 석희 · 장장영 · 육만우 · 해휘 · 이도(李韜) · 왕진경 · 곽정위 · 조연진 · 보초 272권 「양업등전(楊業等傳)」 양업 · 형한유 · 조광실 · 장휘 · 사초 273권 「이진경등전(李進卿等傳)」 이진경 · 양미 · 하계균 · 이한초 · 곽진(郭進) , 우사진, · 이겸부 · 요내빈 · 동준회 · 하유충 · 마인우 274권 「왕찬등전(王贊等傳)」 왕찬 · 장보속 · 조빈(趙玭) · 노회충 · 왕계훈 · 정덕유 · 장연통 · 양형 · 사규 · 전흠조 · 후지 · 왕문실 · 적수소 · 왕신(王侁) · 유심경 275권 「유복등전(劉福等傳)」 유복 · 안수충 · 공수정 · 담연미 · 원달 · 상사덕 · 윤계륜 · 설초 , 정한 조도, · 곽밀 , 부사양 이빈(李斌), · 전인랑 · 유겸 276권 「유보훈등전(劉保勳等傳)」 유보훈 · 등중정 · 유반 · 공승공 · 송당 · 원곽 · 번지고 , 곽재, · 장병(臧丙) · 서휴복 · 장관 · 진종신 · 장평 · 왕계승 · 윤헌 · 왕빈(王賓) · 안충 277권 「장감등전(張鑒等傳)」 장감(張鑒) · 요탄 · 삭상 · 송태초 · 노지한 · 정문보 · 왕자여 · 유종 · 변곤 · 허양 · 배장 · 우면 , 장적, · 난숭길 · 원봉길 · 한국화 · 하몽 · 신지례 278권 「마전의등전(馬全義等傳)」 마전의 · 뇌덕양 · 왕초(王超) 279권 「왕계충등전(王繼忠等傳)」 왕계충 · 부잠 · 대흥 · 왕한충 · 왕능 · 장응 · 위능 · 진흥 · 허균 · 장진 · 이중귀 · 호연찬 · 유용 · 경전빈 · 주인미 280권 「전소빈등전(田紹斌等傳)」 전소빈 · 왕영 · 양경(楊瓊) · 전수준 · 서흥 · 왕고 · 이중회 · 백수소 · 장사윤 · 이기 · 왕연범 281권 「여단등전(呂端等傳)」 282권 「이항등전(李沆等傳)」 283권 「왕흠약등전(王欽若等傳)」 여단 · 필사안 · 구준 이항 · 왕단 · 상민중 왕흠약 · 임특 · 정위 · 하송 284권 「진요좌등전(陳堯佐等傳)」 285권 「진집중등전(陳執中等傳)」 286권 「노종도등전(魯宗道等傳)」 진요좌 · 송상 진집중 · 유항 · 가창조 · 양적 · 풍증 노종도 · 설규 · 왕서(王曙) · 채제 287권 「양려등전(楊礪等傳)」 288권 「임중정등전(任中正等傳)」 양려 · 송식 · 양사종 · 이창령 · 조안인 · 진팽년 임중정 · 주기 · 정림 · 강준 · 범옹 · 조진(趙稹) · 임포(任布) · 고약눌 · 손면 289권 「고경등전(髙瓊等傳)」 290권 「조이용등전(曹利用等傳)」 고경 · 범정소 · 갈패 조이용 , 손계엄, · 장기(張耆) · 양숭훈 · 하수은 · 적청 , 장옥 손절, · 곽규 291권 「오육등전(吳育等傳)」 오육 · 송수 · 이약곡 · 왕박문 · 왕종 292권 「이자등전(李諮等傳)」 이자 · 정감 · 하후교 · 성도(盛度) · 정도 · 장관 · 정전 · 명호 · 왕요신 · 손변 · 전황 293권 「전석등전(田錫等傳)」 전석 · 왕우칭 · 장영(張詠) 294권 「장우석등전(掌禹錫等傳)」 장우석 · 소신 · 왕수(王洙) · 서언 · 유식(柳植) · 섭관경 · 풍원 · 조사민 · 장석 · 장규 · 양안국 295권 「윤수등전(尹洙等傳)」 윤수 · 손보 · 사강 · 엽청신 · 양찰 296권 「한비등전(韓丕等傳)」 한비 · 사항 · 장무직 · 양호 · 양휘지 · 여문중 · 왕저 · 여우지 · 반신수 · 두호 297권 「공도보등전(孔道輔等傳)」 공도보 · 국영 · 유수 · 조수고 · 곽권 · 단소련 298권 「팽승등전(彭乘等傳)」 팽승 · 혜영 · 매지 · 사마지 · 이급 · 연숙 · 장당 · 유기(劉夔) · 마량 · 진희량 299권 「적비등전(狄棐等傳)」 적비 · 낭간 · 손조덕 · 장약곡 · 석양휴 · 조사형 · 이수 · 장동 · 이사형 · 이부(李溥) · 호칙 · 설안 · 허원 · 종리근 · 손충 · 최역 · 전유 · 시창언 300권 「양해등전(楊偕等傳)」 양해 · 왕연(王沿) · 두기 · 양전(楊畋) · 주담 · 서적(徐的) · 요중손 · 진태소 , 마심 두증, · 이허기 · 장부 · 유헌경 · 진종역 · 양대아 301권 「변숙등전(邊肅等傳)」 변숙 · 매순 · 마원방 · 설전 · 구감 · 양일엄 · 이행간 · 장빈 · 진염 · 이유 · 장병(張秉) · 장택행 · 정향 · 곽진(郭稹) · 조하(趙賀) · 고적(高覿) · 원항 · 서기 · 장지 · 제곽 · 정양 302권 「왕진등전(王臻等傳)」 왕진 · 어주순 · 가암 · 이경(李京) · 여경초 · 오급 · 범사도 · 이현 · 하중립 · 심막 303권 「장온지등전(張昷之等傳)」 장온지 · 위관 · 등종량 · 이방(李防) · 조상 · 당숙 · 장술 · 황진(黃震) · 호순지 · 진관(陳貫) · 범상 · 전경 304권 「주위등전(周渭等傳)」 주위 · 양정(梁鼎) · 범정사 · 유사도 · 왕제 · 방해 · 조영숙 · 유원유 · 양고 · 조급 · 유식(劉湜) · 왕빈(王彬) · 중간 305권 「양억등전(楊億等傳)」 306권 「사필등전(謝泌等傳)」 양억 · 조형 · 유균 · 설앙 사필 · 손하 · 주태부 · 척륜 · 장거화 · 악황목 · 시성무 307권 「교유악등전(喬維岳等傳)」 교유악 · 왕척 · 장옹 · 동엄 · 위정식 · 노염 · 송단 · 능책 · 양담 · 진세경 · 이약졸 · 진지미 308권 「상관정등전(上官正等傳)」 상관정 · 노빈 · 주심옥 · 배제 · 이계선 · 장단 · 장후 · 장길 309권 「왕연덕등전(王延德等傳)」 왕연덕 · 상연신 · 정덕현 · 우연덕 · 위진(魏震) · 장질 · 양윤공 · 진희 · 사덕권 · 염일신 · 근회덕 310권 「이적등전(李迪等傳)」 311권 「안수등전(晏殊等傳)」 이적 · 왕증 · 장지백 · 두연 안수 · 방적 · 왕수(王隨) · 장득상 · 여이간 · 장사손 312권 「한기등전(韓琦等傳)」 313권 「부필등전(富弼等傳)」 314권 「범중엄등전(范仲淹等傳)」 한기 · 증공량 · 진승지 · 오충 · 왕규 부필 · 문언박 범중엄 · 범순인 315권 「한억전(韓億傳)」 316권 「포증등전(包拯等傳)」 317권 「소항등전(邵亢等傳)」 한억 포증 · 오규 · 조변 · 당개 소항 · 풍경 · 전유연 318권 「장방평등전(張方平等傳)」 319권 「구양수등전(歐陽修等傳)」 320권 「채양등전(蔡襄等傳)」 장방평 · 왕공진 · 장변 · 조개(趙槩) · 호숙 구양수 · 유창(劉敞) · 증공 채양 · 여진 · 왕소(王素) · 여정 · 팽사영 · 장존 321권 「정해등전(鄭獬等傳)」 정해 · 진양(陳襄) · 전공보 · 손수 · 풍직 · 여회 · 유술 · 유기(劉琦) · 전의 · 정협 322권 「하담등전(何郯等傳)」 하담(何郯) · 오중복 · 진천 · 왕렵 · 손사공 · 주맹양 · 제회 · 양회 · 유상 · 주경(朱京) 323권 「울소민등전(蔚昭敏等傳)」 울소민 · 고화 · 주미 · 염수공 · 맹원 · 유겸 · 조진(趙振) · 장충 · 범각 · 마회덕 · 안준 · 상보 324권 「석보등전(石普等傳)」 325권 「유평등전(劉平等傳)」 석보 · 장자 · 허회덕 · 이윤칙 · 장항 · 유문질 · 조자 유평 · 임복 · 왕규 · 무영 · 상역 · 경부 · 왕중보 326권 「경태등전(景泰等傳)」 경태 · 왕신(王信) · 장해 · 장충 · 곽은 · 장절(張岊) · 장군평 · 사방 · 노감 · 이위 · 왕과 · 곽자 · 전민 · 시기서 · 강덕여 · 장소원 327권 「왕안석등전(王安石等傳)」 왕안석 · 왕안례 · 왕안국 328권 「이청신등전(李淸臣等傳)」 이청신 · 안도 · 장조(張璪) · 포종맹 · 황리 · 채정(蔡挺) · 왕소(王韶) · 설향 · 장절(章楶) 329권 「상질등전(常秩等傳)」 상질 · 등관 · 이정(李定) · 서단 · 건주보 · 서탁 · 왕광연 · 왕도 · 왕자소 · 하정신 · 진역 330권 「임전등전(任顓等傳)」 임전 · 이참 · 곽신창 · 부구 · 장경헌 · 두변 · 장괴 · 손유 · 허준 · 노사종 · 전상선 · 두순 · 두상 · 사린 · 왕종망 · 왕길보 331권 「손장경등전(孫長卿等傳)」 손장경 · 주항 · 이중사 · 나증 · 마중보 · 왕거경 · 손구 · 장선 · 소심 · 마종선 · 심구 · 이대림 · 여하경 · 조무택 · 정사맹 · 장문 , 진순유 악경 유몽, · 묘시중 · 한지 · 초건중 · 장힐 · 노혁 332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등원발 · 이사중 · 육선 · 조설 · 손로 · 유사웅 · 목연 333권 「양좌등전(楊佐等傳)」 양좌 · 이태(李兌) · 심립 · 장섬 · 장도 · 유충 · 유근 · 염순 · 갈궁 · 장전 · 영인 · 이재 · 요환 · 주경(朱景) · 이종 · 주수륭 · 노사굉 · 단후 · 양중원 · 여양굉 · 반숙 334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서희 , 이직(李稷), · 고영능 · 심기(沈起) · 유이 · 웅본 · 소주 · 도필 · 임광 335권 「충세형전(种世衡傳)」 336권 「사마광등전(司馬光等傳)」 337권 「범진전(范鎭傳)」 충세형 사마광 · 여공저 범진 338권 「소식전(蘇軾傳)」 339권 「소철전(蘇轍傳)」 340권 「여대방등전(呂大防等傳)」 소식 소철 여대방 · 유지 · 소송 341권 「왕존등전(王存等傳)」 342권 「양도등전(梁燾等傳)」 왕존 · 손고(孫固) · 조첨 · 부요유 양도 · 왕암수 · 정옹 · 손영 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원강 · 허장 · 등윤보 · 임희 · 장지기 · 육전 · 오거후 · 온익 손각 · 이상(李常) · 공문중 · 이주 · 선우신 · 고림 · 이지순 · 왕적 · 마묵 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유안세 · 추호 , 전주 왕회(王回) 증탄, · 진관(陳瓘) · 임백우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진차승 · 진사석 · 팽여려 · 여도 · 장정견 · 공결 · 손악 · 진헌 · 강공망 · 진우 · 상안민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손고(孫鼛) · 오시 · 이소기 · 오사례 · 왕한지 · 황렴 · 주복 · 장순민 · 성도(盛陶) · 장형 · 안복 · 손승 · 한천 · 공정신 · 정목 · 석단 · 교집중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부즙 · 심기(沈畸) , 소복, · 서적(徐勣) · 장여명 · 황보광 · 석공필 , 장극공, · 모주 · 홍언승 · 종전 · 도절부 · 모잠 · 왕조도 · 장장 · 조휼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묘수 · 왕군만 · 장수약 · 왕문욱 · 주영청 · 유소능 · 왕광조 · 이호 · 화빈 · 유중무 · 곡진 · 유격 · 곽성 · 가암 · 장정(張整) · 장온 · 왕은 · 양응순 · 조륭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유약(劉爚)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유약(柳約)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섭숭의 · 형병 · 손기 · 왕소소 · 공유 · 공의 · 최송 · 윤졸 · 전민 · 신문열 · 이각 · 최이정 · 이지재 · 호탄 · 가동 · 유안(劉顔) · 고변 · 손복 · 석개 · 호원 · 유희수 · 임개 · 이구(李覯) · 하섭 · 왕회(王回) · 주요경 · 왕당 · 진양(陳暘) · 소백온 · 유저 · 홍흥조 · 고항 · 정대창 · 임지기 · 임광조 · 양만리 · 유자휘 · 여조겸 · 채원정 · 육구령 · 육구연 · 설계선 · 진부량 · 엽적 · 대계 · 채유학 · 양태지 · 범충 · 주진 · 호안국 · 진량 · 정초 · 이도전 · 정형 · 유청지 · 진덕수 · 위료옹 · 요덕명 · 탕한 · 하기 · 왕백 · 서몽신 · 이심전 · 엽미도 · 왕응린 · 황진(黃進)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송백 · 양주한 · 주앙 · 조인기 · 정기 · 곽욱 · 마응 · 화현 · 풍길 · 고적(高頔) · 이도(李度) · 한부 · 국상 · 송준 · 유개 · 하후가정 · 나처약 · 안덕유 · 전희 · 진충 · 오숙 · 황이간 · 서현 · 구중정 · 증치요 · 조간 · 요현 · 이건중 · 홍담 · 노진 · 최준도 · 진월 · 목수 · 석연년 · 소관 · 소순흠 · 윤원 · 황항 · 황감 · 양파 · 안태초 · 곽충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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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두심기 · 하영도 · 왕계훈 · 유지신 · 유문유 · 유미 · 곽숭인 · 양경종 · 부유충 · 시종경 · 장요좌 · 왕이영 · 이소량 · 이용화 · 이준욱 · 조일 · 고준유 · 상전범 · 장돈례 · 임택 · 맹충후 · 위연 · 전침 · 형환 · 반영사 · 오익 · 이도(李道) · 정흥예 · 양차산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두신보 · 왕인예 · 왕계은 · 이신복 · 유승규 · 염승한 · 진한 · 주회정 · 장귀숭 · 장계능 · 위소흠 · 석지옹 · 등수은 · 양수진 · 한수영 · 남계종 · 장유길 · 감소길 · 노수근 · 왕수규 · 이헌 · 장무칙 · 송용신 · 왕중정 · 이순거 · 석득일 · 양종길 · 유유간 · 이상(李祥) · 진연 · 풍세녕 · 이계화 · 고거간 · 정방 · 소이섭 · 뇌윤공 · 염문응 · 임수충 · 동관 · 양사성 · 양전(楊戩) · 소성장 · 남규 · 풍익 · 마거위 · 진원 · 감변 · 왕덕겸 · 관례 · 동송신 470권 「영행전(佞幸傳)」 미덕초 · 후막진리용 · 조찬 · 왕보 · 주면 · 왕계선 · 증적 · 장설 · 왕변 · 강특립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채확 · 형서 · 여혜경 · 장돈 · 증포 · 안돈 · 채경 · 조양사 · 장각(張覺) · 곽약사 · 황잠선 · 왕백언 · 진회 · 묵기설 · 한탁주 · 정대전 · 가사도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장방창 · 유예 · 묘부 · 두충 · 오희 · 이전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이경(李景) 맹창 전홍숙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유창(劉鋹) 유계원 주행봉 · 고보융 · 유종효 · 진홍진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한통 · 이균 · 이중진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서하 · 고려 · 교지( 정조 → 전여조 → 이조 → 진조) · 대리 · 점성 · 진랍 · 포감 · 막려 · 삼불제 · 도파 · 발니 · 주련 · 단미류 · 천축국 · 우전 · 고창 · 회골 · 대식국 · 층단국 · 구차 · 사주 · 불름국 · 유구국 · 정안국 · 발해 · 일본 · 당항 · 토번 493·494·495·496권 「만이전(蠻夷傳)」 계동만 · 매산동만 · 성주만 · 휘주만 · 남단주만 · 무수주만 · 황원주만 · 여동만 · 환주만 · 서남이 · 여주만 · 공부천 · 풍파만 · 보새만 · 미강만 · 동만 · 석문부 · 남광만 · 보패만 · 무주부 · 유주만 · 검주만 · 시주만 · 고주만 · 육수만 · 준자만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2e8b57><tablebgcolor=#2e8b57> ||
[1]
현대
표준 중국어 발음은 Sū Shì이다.
[2]
다른 별칭으로 삼불여(三不如)가 있다. '술, 노래, 바둑 세가지는 다른 사람만 못하다'는 뜻으로 나머지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뜻이다.
[3]
음력 으로는 1036년 12월 20일 묘시(卯時) 생이다.
[4]
후한대부터 산문(수필)에 유미주의적인 풍조가 만연하자, 문장은
진나라 이전의 글이 그러하였듯이 그 내용에 도리(道理)를 품고 있어야 한다며 고문운동을 전개했던 사람들.
당나라의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송나라
구양수(歐暘修), 소순,
증공(曾鞏),
왕안석(王安石), 소식, 소철.
[5]
성리학의 선구자들이다.
[6]
"선비를 사화(士禍)로 해치지 마라."
[7]
비슷한 주장은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 삼국의 연호 문제와 관련하여 언급된다.
[8]
조선 후기의 문인
김만중도《서포만필》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여 역사서에 비해 소설이 갖는 장점을 주장하고, 소설 창작의 동기로 밝히고 있다.
[9]
주의 1급 행정관. 오늘날 도지사와 비슷한 벼슬이다.
[10]
맥적(貊賊, 적은 도적 적 자다.)은 북방 이민족인
맥족을 뜻하며, 대표적으로
고구려가 이에 해당한다. 소동파의 이 대사에서는 맥족의 후예인
고려를 낮춰 부르는 용도로 사용했다.
[11]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백성들이 힘들고, 고려가 받아간 문물들을 거란에게 넘기고, 말로는 송을 받든다면서 정작 실리만 챙겨가는데다가 심지어 송의 허점을 탐구하며, 고려와의 관계가 거란이 트집잡을 거리가 된다는 것이란 다섯가지.
[12]
북송
신종의 재위기 중 1068년부터 1077년까지 사용한 연호이다.
[13]
중원을 기준으로 서방도 포함하면
서하까지 4강 체제 → (고려·거란·송/서하) 혹은 (거란·송/고려·서하)
[14]
서하, 일본, 남만, 요 등.
[15]
실제로 요나라와 조공관계를 맺으면서 구해온 요나라 지도를 송과 공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16]
이규보의 답전리지론문서에 나오는 문구.
[17]
소나무로 만들어 부드럽고 고풍스러워서 중국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18]
다만 소동파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얘기도 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4년 9월 21일 己未 1번째 기사에서 '중국의 사신이 오면 꼭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며, 고려에서 태어나 친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라는 말이 중국에 있을 정도다'고 하므로 저런 명성이 중국에 어느정도 퍼져 있었다는 것 자체는 분명해 보인다.
[19]
'혐한파' 소동파를 짝사랑한 고려 기사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