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륜

"신이 듣건대, 옛 성왕(聖王)은 영토를 다스리고, 중요한 지역과 변방을 구별하며, 멀리 떨어진 야만의 풍속에까지는 정치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경》에는 '한 번 보는 것'에 대한 글이 있고, 《서경》에는 속국을 굴레로 묶는 정책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태조(太祖)께서는 신묘한 무용과 성스러운 지략을 지니시어 황제의 도를 경영하시며, 날마다 쉴 틈 없이 바쁘셨습니다. 그리하여 오랑캐의 추장이 한쪽에서 제멋대로 날뛰게 된 것도, 이는 중화(中華)에 근심이 많아 내부의 문제를 급히 처리하느라 오랑캐를 상대하는 것을 늦춰졌기 때문입니다. 고조(高祖)께서는 중원의 땅을 밝히시며, 대업을 이루어 왕조를 이어가셨습니다. 천둥 같은 위엄을 떨치시고, 웅비(熊羆) 같은 군대를 진동시키셨으며, 남쪽을 정벌하느라 북쪽을 공격할 겨를이 없으셨습니다. 옛날 수도에 봉화가 올랐을 때에도, 오랑캐의 사신이 교외에 있었으나, 주상께서는 검을 눌러 참으시고, 옥새로 찍은 문서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세종(世宗)께서는 장막 안에서 계책을 세우시고, 국경을 넓히며 군기를 드높이시어, 은혜가 미치는 곳마다 옷과 관례가 시행되었고, 배와 수레가 만 리를 다녔습니다. 그 시절 오랑캐들이 관문에 와서 항복하자, 주상께서는 또한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이를 관대히 처리하셨습니다.

지금 대명(大明)의 폐하께서 조정을 주재하시어, 은혜는 갈대 위의 이슬처럼 두루 미치고, 나라는 부유하고 병력은 강성하며, 말로써 이를 행할 수 있는 관원이 각자 직책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두려워하여 이러한 일을 하고, 또 무엇을 바라고 이를 시행하려 하십니까? 지난날 소연(蕭衍)이 공경스럽게 화친을 청하였으나, 그 성의가 진실되지 못하여 이를 거절하셨습니다. 선제(先帝)께서는 앞서 오랑캐를 물리치셨고, 폐하께서는 뒤이어 이적(夷狄)과 교류하고 계시니, 이는 위로는 고조(高祖)의 뜻을 어기시고, 아래로는 세종(世宗)의 의지를 거스르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오랑캐가 비록 우리 덕을 사모하여 찾아왔다 하더라도, 이는 우리를 살피러 온 것입니다. 강함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면 혹시라도 바로 귀부할 수 있겠으나, 약함을 보이면 그들이 엿보는 마음이 생길 수 있으니, 이는 《춘추》에서 말한 '우리의 승패를 가지고 거취를 점치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인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존재이고, 이적(夷狄)은 친밀함이 없습니다. 멀리하면 원망하고, 친하게 대하면 오히려 업신여기니, 이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이치입니다. 이 때문에 고조(高祖)와 세종(世宗)께서는 이들의 본성이 이와 같음을 아시고, 오면 거스르지 않되, 떠나면 붙잡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일치하지 않는 자들의 의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옥백(玉帛)을 바치는 시점에서 예를 갖추어 무릎을 꿇고 번방(蕃方)의 예를 따른다면, 그들의 노고와 공물을 풍족히 보답하고, 진귀한 물품으로 그들을 붙잡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황제의 사신이 먼 길을 떠나 오랑캐의 뜰에 이르러, 그들을 대등한 지위로 대우하고, 서로 존중하는 은혜를 더한다면, 이는 오히려 오랑캐의 오만을 불러일으킬 뿐, 성조(聖朝)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만약 적임자를 잘 선발하여 사신으로 보내고, 또 그 사신이 언변이 뛰어난 자라면, 과거 역생(酈生)이 수레를 타고 가서 제나라를 설득하거나, 종군(終軍)이 월나라(越)를 견제했던 것처럼, 효과적으로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고 외교적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설령 지금의 처지가 과거와 다르다 하더라도 신은 여전히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이를 지나치게 높이고, 잔치와 우호를 베풀어 관계를 더욱 깊게 하려 한다면, 신이 비록 어리석은 자라 할지라도 감히 이를 고집하여 반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상황이 불가피하여 반드시 대응해야 한다면, 마땅히 조서를 반포하여 상하(上下)의 예의를 보여주고, 재상이 서신을 보내 귀순의 도리를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충심 어린 가르침을 듣고 우리의 말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만승(萬乘)의 위엄은 영토 안에서 결코 손상되지 않을 것이며, 천자의 위명은 반드시 천하를 넘어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또, 그들이 따르지 않더라도, 그것이 어찌 우리에게 손실이나 이익을 가져오겠습니까? 천천히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추어 그들을 유인하고, 문덕(文德)을 널리 펼쳐 멀리 있는 자들을 감화시키는 데 힘쓰십시오. 만약 그들이 마음의 혼미함을 끝내 멈추지 않고, 개나 양처럼 방자하게 행동한다면, 마땅히 신리(辛李)의 명장들을 임명하고, 위청(衛青)과 곽거병(霍去病)의 군대를 이끌어, 구름과 모래를 쓸어내듯 반란의 잔당을 제거하고 평정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말에게 물을 먹여 한해(瀚海) 변방까지 진군하고, 연연산(燕然山)의 정상에 공적을 새겨야 합니다. 도호부(都護府)를 열고 수비대를 배치한다면, 이는 또한 폐하의 위대한 공적이며, 세상에서 보기 드문 성취가 될 것입니다.

혹은 갑옷을 벗고 백성을 양육하며, 농업을 장려하고 변방을 안정시키는 방책에 전념하고자 하신다면, 이는 나라를 다스리는 훌륭한 수단이 될 것입니다. 어찌 오랑캐와의 병합을 무리하게 시도하여 국가의 법도와 제도를 손상시키는 일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그리 한다면 당시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후대에까지 치욕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또한 폐하께서는 마침내 신령한 민독(岷瀆)에 예를 올리시고, 형산(衡山)에 예를 올리시며, 계령(稽嶺)에 올라가시고, 창오(蒼梧)를 엿보려 하시면서, 도리어 오랑캐 임금과 추장의 우두머리와 형제의 친분을 맺으시고, 동등한 예의를 교환하려 하시니, 어찌 멀리 있는 문명(文命)의 장려한 풍경을 바라보며 중화(重華)의 높은 풍조를 본받으려는 이와 같겠습니까? 신은 사신을 보내는 것은 저리 크게 잘못한 일이라 생각하고, 보내지 않는 것이 크게 옳다고 여깁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어리석은 신의 말을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