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魏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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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 2권 「태조기(太祖紀)」 | 3권 「태종기(太宗紀)」 | ||||
탁발부 · 대나라 | 탁발규 | 탁발사 | |||||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 5권 「고종기(高宗紀)」 | 6권 「현조기(顯祖紀)」 | |||||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 |||||
7권 「고조기(高祖紀)」 | 8권 「세종기(世宗紀)」 | 9권 「숙종기(肅宗紀)」 | |||||
원굉 | 원각 | 원후 | |||||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 |||||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선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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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권 「황후전(皇后傳)」 |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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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 |||||||
탁발흘라 ,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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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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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 ||||||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 |||||||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 |||||||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 ||||||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 위조 · 막함 · 유고인 |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 |||||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 27권 「목숭전(穆崇傳)」 | |||||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 울고진 | 목숭 | |||||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 ||||||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 해근 · 숙손건 | ||||||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 |||||||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 |||||||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 ||||||
우율제 | 고호 · 최영 · 봉의 | ||||||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 |||||||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 |||||||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 35권 「최호전(崔浩傳)」 | 36권 「이순전(李順傳)」 | |||||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 최호 | 이순 | |||||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 39권 「이보전(李寶傳)」 | |||||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 이보 | |||||
40권 「육사전(陸俟傳)」 | 41권 「원하전(源賀傳)」 |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 |||||
육사 | 원하 |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 ||||||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 ||||||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 47권 「노현전(盧玄傳)」 | |||||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 두근 · 허언 · 이흔 | 노현 | |||||
48권 「고윤전(高允傳)」 |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 |||||
고윤 | 이령 · 최감 | 울원 · 모용백요 | |||||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 |||||||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 |||||||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 |||||||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 |||||
이효백 · 이형 | 유아 · 고려 | 유명근 · 유방 | |||||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 58권 「양파전(楊播傳)」 | |||||
정희 · 최변 | 고우 · 최정 | 양파 | |||||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 한기린 · 정준 |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 |||||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 |||||
이표 · 고도열 | 왕숙 · 송변 | 곽조 · 장이 | |||||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 67권 「최광전(崔光傳)」 | |||||
형만 · 이평 | 이숭 · 최량 | 최광 | |||||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 |||||
견침 · 고총 | 최휴 · 배정준 · 원번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 |||||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 ||||||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 ||||||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이주영 |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 |||||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 |||||
노동 · 장열 |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 손소(孫紹) · 장보혜 | |||||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 ||||||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 ||||||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 ||||||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 이염지 · 조영 · 상경 | ||||||
83권 「외척전(外戚傳)」 | |||||||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 |||||||
84권 「유림전(儒林傳)」 | |||||||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 |||||||
85권 「문원전(文苑傳)」 | |||||||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 |||||||
86권 「효감전(孝感傳)」 | |||||||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
87권 「절의전(節義傳)」 | |||||||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
88권 「양리전(良吏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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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권 「혹리전(酷吏傳)」 | |||||||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 |||||||
90권 「일사전(逸士傳)」 | |||||||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 |||||||
91권 「예술전(藝術傳)」 | |||||||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 |||||||
92권 「열녀전(列女傳)」 | |||||||
임성국태비 | |||||||
93권 「은행전(恩倖傳)」 | |||||||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 |||||||
94권 「엄관전(閹官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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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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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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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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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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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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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 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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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매덕 · 고질전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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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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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colbgcolor=#dc143c><colcolor=#fff> 북평선왕(北平宣王) 長孫嵩 | 장손숭 |
|
시호 | 선왕(宣王) |
작호 |
거록군공(鉅鹿郡公) → 남평군공(南平郡公) → 북평군왕(北平郡王) |
성 | 탁발(拓拔) → 장손(長孫) |
이름 | 숭(嵩) |
자 | 불명 |
생몰 | 358년 ~ 437년 3월 4일 |
부친 | 장손인(長孫仁) |
출신 | 대군(代郡) 고류현(高柳縣) |
아들 | 장손퇴(長孫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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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인물. 오호십육국시대 대나라의 남부대인 장손인(長孫仁)의 아들. 본래 성은 '탁발(拓拔)'로, 도무제 탁발규의 먼 친척이었으나, 효문제 시기 한화 정책과 더불어 어디까지가 황족인지 명시되면서 탁발숭 가문의 성씨가 모두 '장손(長孫)'으로 바뀌어져 후대에 알려졌다. 따라서 생전에 장손숭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적은 없어도 혼동을 피하기 위해 본 문서는 장손숭이라 칭한다.2. 생애
2.1. 초기
장손숭은 너그럽고 우아하며, 기품과 도량을 갖춘 인물로, 14세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대나라의 남부대인(南部大人)이 되어 군대를 통솔하였다.건원 12년(376년) 12월, 대나라가 멸망하면서 대나라에 복속했던 여러 부족이 이반하고 그 일대가 혼란스러워지자, 대나라를 멸망시킨 전진의 천왕 부견 연봉의 건의에 따라 지역을 둘로 나누어 유고인과 유위진에게 다스리게 하였다. 이때 장손숭은 원타(元他) 등과 함께 부락을 이끌고 유고인에게 귀부하였다.
건원 21년(385년), 유고인, 유두권의 뒤를 이어 독고부를 이끄는 유현이 독고부에 의탁하는 중인 탁발규를 해치려 하니, 탁발규는 하란부로 도주하였다. 이에 장손숭도 옛 동료들과 고향 주민 700여 호를 이끌고 유현을 배반하고 도망쳤다. 이들은 오원(五原)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당시 탁발식군의 아들 탁발악(拓拔渥)도 군중을 모아 스스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에게 귀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오악(烏渥)을 만났고, 오악은 장손숭에게 이렇게 간하였다.
"역적을 아버지로 두고 있는 아들은 따르기에 족하지 않으니, 탁발규에게 귀부하느니만 못합니다."
장손숭은 이를 듣고 망설였으나, 오악이 소의 머리를 돌려 다른 방향으로 향하자, 마침내 그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장손숭은 삼한정(三漢亭)에서 탁발규를 배알하였다.2.2. 도무제의 치세
등국 원년(386년) 정월 6일[1], 탁발규가 우천(牛川)에서 대왕(代王)에 올라 대나라를 부흥시키고, 장손숭을 다시 남부대인으로 임명하였다.등국 원년(386년) 4월, 탁발규가 위왕(魏王)으로 고쳐 칭하면서 북위가 건국되었다.
등국 2년(387년) 정월, 위왕 탁발규가 장손숭을 비롯한 73명의 공신들에게 상을 내렸다.
등국 6년(391년) 10월, 탁발규의 유연 정벌에 참여하여 남상산(南牀山)에서 유연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다. 유연의 가한 욱구려필후발과 그의 장수 옥격(屋擊) 달아나자, 탁발규는 장손숭과 장손비를 보내어 그들을 각각 추격하게 하였다. 장손숭은 추격 끝에 평망천(平望川)에서 옥격을 사로잡아 참수하였고, 장손비는 탁야산(涿邪山)에서 욱구려필후발의 투항을 받아내었다.
등국 7년(392년), 서부(西部)의 문려대인(泣黎大人) 무선(茂鮮)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손숭이 무선을 대파하고 반란을 진압하였다.
황시 2년(397년) 10월, 위왕 탁발규를 따라 후연 정벌에 참여하여, 후연의 옛 수도인 중산(中山)을 함락시킬 때 공을 세웠고, 이로써 안남장군(安南將軍)•기주자사(冀州刺史)로 임명되었으며, 거록군공(鉅鹿郡公)에 봉해졌다.
황시 3년(398년) 정월, 우장군 윤국(尹國)이 기주에서 조세를 감독하고 있었는데, 위왕 탁발규가 장차 북쪽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신도(信都)에서 그를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장손숭이 윤국을 먼저 사로잡아 압송하였고, 탁발규가 윤국의 목을 베었다.
황시 3년(398년) 4월 1일[2], 장손숭이 사도(司徒)로 임명되었다. 이후 그는 시중(侍中), 상주자사(相州刺史)를 역임하였고, 남평군공(南平郡公)으로 고쳐 봉해졌다. 그는 부임하는 곳마다 통치와 업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2.3. 명원제의 치세
천사 6년(409년) 10월, 청하왕 탁발소가 모반하여 도무제 탁발규를 시해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태자 탁발사가 탁발소를 제거하고 제위에 오르니, 이가 제2대 황제인 명원제였다. 명원제가 즉위한 후, 장손숭은 산양후 해근(奚斤), 북신후 안동(安同), 백마후 최굉, 원성후 탁발굴 등 8명과 함께 황제의 궁문 오른편에서 정무를 논의하고 국사를 처리하였다. 이로 인해 장손숭은 이들과 한데 묶여, 당대에 "팔공(八公)"이라 불렸다.영흥 2년(410년) 정월, 장손숭이 군사를 이끌고 유연을 정벌하였다.
영흥 2년(410년) 5월, 장손숭이 막북(漠北)에 이르렀다가 돌아오는데, 유연이 추격하여 장손숭의 군대를 우천(牛川)에서 포위하였다. 이를 들은 명원제가 친히 유연을 공격하자, 유연의 가한 욱구려사륜은 그 소식을 듣고 달아나던 도중에 객사하였다.
영흥 3년(411년) 12월 13일[3], 명원제가 조서를 내려, 장손숭과 임성공 혜발(嵇拔), 백마후 최굉 등에게 조당(朝堂)에 앉아 죄수를 심리하고 판결하도록 하였다. 이때 공정하고 합당한 처리를 최우선으로 삼도록 명령하였다.
영흥 4년(412년) 2월 12일[4], 명원제가 호랑이 우리에 올라가 호랑이를 사냥하였다. 이때 명원제는 장손숭 등에게 차등을 두어 베와 비단을 하사하였다.
신서 2년(415년) 5월, 당초 동진의 형주자사 사마휴지와 옹주자사 노종지가 반란하였을 때, 그들은 후진과 북위에 각각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한 바 있었다. 이에 후진에서는 정로장군 요성왕(姚成王)과 장수 사마국번(司馬國璠)이 군대를 이끌고 남양(南陽)에 이르렀고, 북위에서는 장손숭이 군대를 이끌고 하동(河東)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처 구원하기도 전에 사마휴지가 패하였다는 보고를 듣고 모두 군대를 거두어 돌아갔다.
태상 2년(417년) 2월, 동진의 황족인 초왕(譙王) 사마문사(司馬文思)가 왕량(王良)을 북위에 사신으로 파견하여 유유를 토벌할 군대를 요청하자, 명원제는 장손숭에게 여러 군대를 이끌고 유유를 요격하도록 명령하였다. 양측은 반성(畔城)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끝내 장손숭이 패배하였기에 명원제는 조서를 내려 모든 군대에 전투를 중단할 것을 명하였고, 결국 전과를 올리지 못하였다.
태상 2년(417년) 3월, 동진의 장군 유유가 후진의 요홍을 한창 정벌할 때, 멸망의 위기에 처한 요홍은 북위로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명원제는 장손숭을 가절(假節)•독산동제군사(督山東諸軍事)로 삼아 유유를 공격하게 하였고, 장손숭은 다시 진위장군 아청(娥清)과 기주자사 아박간(阿薄干)을 파견해 보병과 기병 100,000명으로 황하 북쪽 강안에 주둔하게 하였다.
태상 2년(417년) 4월, 아청과 아박간은 유유의 군대가 진군하는 방향을 따라 강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을 번번이 위협하였다. 이때 유유가 수레를 세우고 큰 쇠뇌와 방패를 준비하여 각월진(卻月陣)을 만들자, 아청과 아박간이 유유의 진지를 포위하였고, 장손숭도 30,000기의 기병을 거느리고 나와 그들을 도왔다. 북위군은 사면으로 동진군의 진지를 포위한 채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으나, 결국 유유의 진지를 파훼하지 못하고 도망쳐 무너졌다. 북위군의 시체는 산처럼 쌓이고 기주자사 아박간까지 전사하자, 장손숭은 군대를 이끌고 반성(畔城)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동진의 녕삭장군 주초석, 녕삭장군 호번, 녕원장군 유영조(劉榮祖)가 그들을 추격하여 또 다시 격파하였고, 죽거나 사로잡힌 자들은 1,000여 명을 헤아렸다. 뒤늦게 장손숭이 유유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명원제는 다시 장손숭에게 조서를 내려 유유에게 편의를 제공하라 명하였다. 유유 또한 배에서 장손숭의 대장기와 수레 덮개를 보고, 영주(酃酒)와 강남의 음식을 보냈다. 장손숭은 이를 모두 수도로 보내며 유유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였고, 명원제는 장손숭에게 후하게 답례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태상 2년(417년) 5월, 명원제는 또 장손숭에게 정예병을 선별하여 전투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였다. 만약 유유가 동쪽으로 지나간다면 정예병을 이끌고 남쪽 팽(彭), 패(沛)로 진격하고, 그렇지 않으면 군대를 이끌고 그의 뒤를 따르라고 지시하였다. 명원제가 이러한 명령을 내린 이유는 유유가 효함(崤陜) 지역에 도달하면 반드시 요홍과 대치하게 될 것으로, 한쪽은 전멸하거나 크게 다칠 것이니, 유유의 병력도 피폐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 예견했기 때문이었다. 또, 이때가 되면 가을 무렵이 될 것이니, 그때를 틈타 공격하면 유유의 목을 큰 전쟁 없이도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숙손건(叔孫建) 등도 명원제의 지시를 받고 황하를 따라 낙양(洛陽)을 향했고, 결국 관중(關中)으로 들어가, 장손숭과 함께 성고(成皋) 남쪽으로 강을 건너 진군하였다. 이때 동진의 수비병들은 북위군이 일으키는 먼지만 보고도 흩어졌다.
태상 2년(417년) 8월, 후진의 황제인 요홍이 맥없이 항복하여 명원제의 예상과는 다르게 유유는 병력을 멀쩡히 보존할 수 있었고, 유유가 손쉽게 장안(長安)을 떨어뜨렸다는 소식을 들은 장손숭 등은 군대를 돌이켜 철수하였다.
태상 2년(417년) 10월 11일[5], 장손숭은 수도로 돌아오라는 명원제의 명령을 받고 수도 평성(平城)로 향하였다.
태상 2년(417년) 11월, 장손숭의 군대가 악평(樂平)에 도착하였을 때, 명원제는 다시 조서를 내려 진위장군 아청(娥清), 장수 주기(周几) 등을 보내, 정직장군 숙손건(叔孫建)과 함께 서산(西山)의 정령족 적촉(翟蜀)과 낙지(洛支) 등을 모두 소탕하고 돌아오게 하였다.
태상 7년(422년) 5월, 명원제는 해마다 한식산을 복용하였는데, 결국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병상에 눕게 되었다. 명원제가 병석에 누워 있던 중, 장래 국정에 대해 장손숭을 불러 물었다. 이에 장손숭이 아뢰었다.
"장남을 세우는 것은 순리를 따르고, 덕으로써 다스리면 사람들이 복종합니다. 지금 장황자(長皇子)께서는 현명한데다, 세적(世嫡)으로서 하늘이 명한 바이니, 청컨대 그를 세우십시오."
이에 따라 궁중에서 황위를 계승할 계획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태자
탁발도에게 임시로 조정에 나아가 국정을 감독할 것을 명하였고, 장손숭은 좌보(左輔)로 삼아 탁발도를 보좌하게 하였다.태상 8년(423년) 11월, 명원제가 승하하고, 태무제 탁발도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2.4. 태무제의 치세
태상 8년(423년) 12월, 장손숭은 북평왕(北平王)으로 작위가 승격되었고, 사주중정(司州中正)으로 임명되었다.시광 2년(425년) 3월 2일[6], 태무제가 장손숭을 태위(太尉)로 임명하였다.
시광 3년(426년) 6월, 태무제는 공경(公卿)들을 소집하고 물었다.이때 장손숭은 평양왕 장손한, 사공 해근 등과 함께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혁련(赫連)은 땅에 정착하고 있음에도 아직 큰 위협이 되지 못하나, 연연(蠕蠕)은 대대로 국경을 침범하며 피해를 끼쳐 왔으니, 먼저 대단(大檀)[7]을 토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때에 맞춰 그들의 가축과 자원을 거두어 들이면 나라를 부유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음산(陰山)에서 사냥을 하며 짐승들을 더 많이 죽이고 가죽, 고기, 힘줄, 뿔 등을 얻어 군수 물자로 충당해야 하니, 역시 소국(小國, 북하) 하나를 무찌르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태상
최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대단(大檀)은 거처를 옮기는 것이 마치 새가 날아가듯 유동적이니, 신속히 추격하면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다면 그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혁련굴개는 영토가 천 리를 넘지 않고, 그 형정(刑政)은 잔혹하여 사람과 신령으로부터 버림받았으니, 그를 먼저 토벌함이 마땅합니다."
또, 상서 유결(劉潔)과 무정후 안원(安原)은
북연의
풍발을 먼저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대신들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태무제는 결국 서쪽의 순시를 결정하였다. 시광 3년(426년) 9월, 북하에서 혁련발발이 죽고 관중이 혼란에 빠지자, 태무제는 본격적으로 북하 정벌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때 장손숭 등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저들이 만약 성을 지키며 지구전을 펼치게 된다면 우리는 피로해질 것이고, 대단(大檀)이 이 소식을 듣고 허를 찔러 침략하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입니다."
이에 태무제는 천사(天師) 구겸지(寇謙之)에게 은밀한 계책을 물었고, 구겸지는 출병을 독려하며 행군할 것을 권하였다. 이후 두초지(杜超之)도 출병을 찬성하였고, 최호 또한 서쪽으로의 정벌이 이롭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장손숭 등은 강력히 간언하며 출병이 불가함을 아뢰면서 최호와 심하게 다투었다. 결국 태무제가 크게 노하여, 장손숭이 관직에 있으면서 탐욕과 부정을 저질렀다며 그를 꾸짖고, 무사(武士)를 시켜 그의 머리를 바닥으로 꺾게 하여 공개적으로 수모를 주었다. 신가 2년(429년) 4월 29일[8], 태무제가 친히 유연을 정벌하고자 출병할 때, 장손숭과 광릉공 누복연(楼伏連)을 수도 평성에 남겨 지키게 하였다.
신가 4년(431년) 9월 13일[9], 태무제는 장손숭에게 주국대장군(柱國大將軍) 직위를 더하였다. 이후로 태무제가 친히 출정할 때마다, 장손숭은 원로로서 자주 수도에 남아 지휘를 맡았다. 그는 조당(朝堂)에 앉아 형옥(刑獄)을 공정하게 판결하였다.
태연 3년(437년) 정월 12일[10], 장손숭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시호는 '선왕(宣王)'이라 하였다.
훗날 효문제가 선조의 공신들을 추모하며 공적을 기록할 때, 장손숭을 배향하여 종묘에 모시도록 하였다.
3. 후계
- 장손퇴(長孫頹) : 장손숭의 아들. 기마와 궁술에 뛰어나며, 300근의 활을 당길 수 있었다고 한다. 장손숭 사후 북평왕의 작위를 계승하였고, 시중(侍中)•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죄를 범하여 파면되어 변경의 수비병으로 강등되었다가, 이후 작위를 회복하였다. 시호는 '안왕(安王)'.
- 장손돈(長孫敦) : 장손퇴의 아들. 자는 효우(孝友). 장손퇴 사후 북평왕 작위를 계승하였고, 관직은 북진도장(北鎮都將)까지 올랐으나, 재물을 탐한 죄로 작위가 강등되어 공작이 되었다. 이후 문성제 재위기에 그의 선조가 세운 공훈이 중대하다는 이유로 왕작을 회복받았다. 시호는 '간왕(簡王)'
- 장손도(長孫道) : 장손돈의 아들. 자는 념승(念僧). 북평왕 작위를 계승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효문제 재위기에 관례에 따라 작위가 강등되어 공작이 되었으며, 관직은 우위장군(右衛將軍)에 이르렀다. 시호는 '신공(慎公)'.
- 장손열(長孫悅) : 장손도의 아들. 북평공 작위를 계승하였다. 건의 초기에 본래의 왕작을 회복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공작으로 강등되었다. 관직은 광록소경(光祿少卿)에 이르렀다. 사후 사공(司空)으로 추증되었다.
[1]
병술년 경인월 무신일. 음력으로는 1월 6일이고, 양력으로 2월 20일이다.
[2]
무술년 정사월 임술일. 음력으로는 4월 1일이고, 양력으로 5월 2일이다.
[3]
신해년 신축월 을유일. 음력으로는 411년 12월 13일이고, 양력으로 412년 1월 12일이다.
[4]
임자년 계묘월 계미일. 음력으로는 2월 12일이고, 양력으로 3월 10일이다.
[5]
정사년 신해월 기유일. 음력으로는 10월 11일이고, 양력으로 11월 5일이다.
[6]
을축년 경진월 정사일. 음력으로는 3월 2일이고, 양력으로 4월 5일이다.
[7]
당시 유연의 가한인 욱구려대단.
[8]
기사년 기사월 경인일. 음력으로는 4월 29일이고, 양력으로 6월 16일이다.
[9]
신미년 무술월 경신일. 음력으로는 9월 13일이고, 양력으로 11월 3일이다.
[10]
정축년 임인월 무자일. 음력으로는 1월 12일이고, 양력으로 3월 4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