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전차의 임무는 대전차전투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자주포이기도 하지만 차체부분은 16~25mm의 추가장갑이 설치되어 수치상으로는
치하보다 두꺼운 장갑을 장비했다. 포순(砲盾) 부분의 장갑도 50mm에 육박했다. 단 이 시기의 자주포는 상부구조물이 오픈식이라 상부와 배면장갑은 없었다. 차체에 장비된 기총도 폐지되었다.
1942년에는
독일군의
베스페 자주포의 콘셉트를 본받아 97식 전차의 차체에 91식 유탄포를 탑재한 1식 자주포도 제식화되었다. 이것은
호니2 (ホニ II)라고 구별한다. 1식 자주포에 장비한 91식 유탄포는 초속이 떨어져 장갑관통력이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아 대전차전투는 포기하고 원래의 자주포로 활용되기로 상정되었다. 대신 후에 대전차용으로
호니3가 만들어 졌다.
1식 포전차는 1941년에 제식화되었지만 생산력의 부족으로 인해 1943년 11월에 생산이 재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식 포전차는 호니 1과 1식 자주포 호니 2를 합해 138량(자료에 의하면 124량 또는 55량이라고도 함)이 생산되었다.
야전포병학교를 근간요원으로 하는 1식 포전차를 장비해 편성된 독립자주포 대대는 1944년 말의
필리핀 상륙작전시 수송선에 실려가다 공습으로 선박이 격침되면서 장비의 태반과 요원의 과반수를 잃어버려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 필리핀 상륙에 성공한 전차 제 2사단의 독립자주포 중대가
루손 섬 클라크필드에서 전투에 참가했는데 이 때
미군에 의해 노획된 차량이 현재 애버딘의 실험장에 전시되고 있다. 그 외 전차 제 14연대에 의해
버마 등지에서도 사용되어졌지만 그 수량은 극히 적었다. 또
중국전선의 전차사단에도 일부가 배치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단 주포 자체는 관통력 등이 쓸만했기 때문에
M4 셔먼을 정면에서 격파할 수 있었으나 생산량 자체가 적고, 그나마 실전에 투입된 숫자는 더 적어서 어차피 전황을 바꾸기에는 미미한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