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어떤 용도로 만들어 졌는지 밝혀진 바가 없다. 엔진도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히 몰라서 운전자 뒤나 밑에 장착했다고 추측한다. 뒤쪽에 차체가 굴러가는 것을 방지하고 방향 전환을 하는 듯한 작은 바퀴가 있다. 무장도 없고[3] 장갑도 5mm로 빈약해서 영거리에서 소총탄에도 뚫린다.[4] 애초에 어떻게 탑승하는 지조차 알 수 없다.[5] 소련군도 노획한 이래 연구를 해봤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통신병의 케이블 설치와 정찰을 목적으로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최전선에서 통신 케이블을 매설하는 통신병들은 무방비한 고가치 표적으로서 항상 저격수들의 주 타겟중 하나였기에[6] 통신병들에 대한 방호를 제공하기 위해 이런 물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1차 세계대전에서 연락병으로 몇번이나 생사를 넘겼기에 이런 물건의 개발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자료를 참고하면 내부에서 케이블 매설을 하기 어렵고, 방호력이 충분하지 못한데다, 속도도 느릴것으로 추측되기에 프로토 타입에서 그친 것으로 보인다.[7] 그렇다면 이런 물건을 왜 일본에까지 보냈는지[8]가 의문으로 남는데, 독일 무기를 구매하러 온 일본인들이 시험장 같은 곳에서 우연히 쿠겔판처를 보고 관심을 보여 3호 전차를 보내는 김에 겸사겸사 같이 줬을(...) 가능성이 높다. 태평양전쟁은 주로 교통이 좋지 않은 섬에서 일어났고, 이런 지형에서는 가벼운 경전차가 유리했다.[9] 보급, 군수, 공업능력 모두 딸리던 일본에게 기름도 적게 먹는데다 자신들도 쉽게 만들수 있을것 같은 1인용 전차인 쿠겔판처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장갑을 조금 강화해 소총탄만 방호되어도 전선에서 쓸모가 많을 것이고, 자폭용 무기로도 만들수 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일본인들이 관심을 보이자 독일은 대단한 물건도 아니고 오토바이용 엔진 정도 엔진만 달린 물건이기에 그냥 줬을거고, 일본은 자기들이 만들수 있어보여서 좋다고 가져왔단 이야기. 허나 만주에서 발견된걸 보면 일본도 테스트해보곤 영 아니라고 생각한듯 하다.[10]
비슷한 복원품이 있다.
영상 이걸 보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구동되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1]
1943년에 티거와 판터를 구매했지만 수송이 불발되고, 판터 설계도와 3호 전차를 수송할 때
유보트로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2]
전시품에선 제거됨.
[3]
역사가들은
MG34나
MG42를 한두 정 탑재했으리라고 본다.
[4]
물론 기관단총이나 먼 거리에서 날아온 소총탄, 일부 파편에 대한 방호력을 제공할 수 있지만, 5mm 장갑은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소총탄에 대한 방어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약한 수치다.
[5]
바퀴를 떼어 생기는 구멍으로 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지만 쿠겔판처를 분해한 적이 없어서 정확한 사실은 없다.
[6]
독일, 소련 모두 통신 케이블 매설중 저격당한 사상자가 매우 많아 골머리를 앓았고, 따로 대책 마련도 힘들었다.
[7]
채택했어도 전쟁 후반의 부족한 공업능력으로 생산순위가 밀릴것이고, 기름 부족으로 인한 보급문제로 별로 보급되진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효용성 자체가 의심스러운 물건인지라..
[8]
해당 물건을 비밀병기라고 소개하는 글들은 유보트로 일본까지 수송했을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9]
일본의 보급, 공업문제까지 겹쳐, 일본은 주로 경전차를 운용했으며 일본에서 중형전차로 분류한 치하도 서방 기준으론 경전차 체급이었다.
[10]
장갑을 개조하려면 엔진도 바꿔야 하는데, 그러면 기름도 많이먹는데다, 처음에 생각한 싸게 만들 수 있는 엔진이 아니게 된다. 그냥 써먹기엔 방호력이 너무 약하고, 개조하자니 가성비가 영 안나와서 포기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