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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5 15:41:09

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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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량 · 손휴 , 이형, · 손호 , 장제, 유요 , 착융 유기, · 태사자 · 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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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7권 「장고제갈보전(張顧諸葛步傳)」 8권 「장엄정감설전(張嚴程闞薛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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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4권 「오주오자전(吳主五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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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8권 「오범유돈조달전(吳範劉惇趙達傳)」 19권 「제갈등이손복양전(諸葛滕二孫濮陽傳)」 20권 「왕누하위화전(王樓賀韋華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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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輔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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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손책 손권 휘하의 장수이며 는 국의(國儀)로 손견의 큰 형인 손강의 아들, 손분의 동생, 손권에게는 사촌형이 된다. 낙통의 장인으로 양주 오군 부춘현 사람이다.

2. 생애

손강이 죽었을 때 손분이 손보를 직접 길렀기 때문에 형제간의 우애가 매우 돈독했다고 한다.

양무교위의 신분으로 손책의 강동정벌을 도와 손책이 단양을 토벌할 때는 역양에 주둔해 원술군을 대비하면서 그 땅에 남아있던 문중들을 설득해 뿔뿔히 흩어지게 했으며, 여릉 태수가 되어 능양의 조랑을 공격할 때 조랑을 사로잡는 전공을 세웠다. 유훈과 싸울 때는 형 손분과 함께 8천명을 이끌고 평택에서 매복해 사졸보다 앞서 싸우니 유훈은 초강으로 달아나고 손보는 여강태수로 봉해졌으며, 후에 단양 사람인 동지가 스스로 여릉태수라 칭하자 손분과 함께 남창에 주둔해 손책의 계책대로 행동하면서 그를 토벌했다.

후에 평남장군으로 봉해지고 가절을 받아 교주 자사의 작위[1]를 수행했는데, 손책이 죽고 손권이 즉위하자 손보는 손권이 강동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해서 손권이 동야로 나간 틈을 타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 강동을 바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손권은 곧 바로 돌아와 장소와 함께 손보를 만나서
형은 행복이 이제 지겹습니까? 왜 다른 사람을 불러 들이십니까?
라고 추궁했다. 손보는 자신이 한 일을 부정했지만 곧 편지를 꺼내 장소에게 주어 손보에게 보여주니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권은 모든 손보의 측근[2]을 죽이고 손보의 지휘 아래 있던 부대를 나눠 다른 장수들에게 분할시킨 다음 동쪽으로 이주시켜 손보의 세력을 와해시켰다. 손보는 죽지 않았지만 유폐되었다가 몇 년 후에 죽었다.

이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유돈이 이후 손권 밑으로 들어가 손익의 죽음을 예측했기에 손익이 죽기 이전 즉, 손권이 손책의 뒤를 이은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자치통감에서는 200년의 일로 두었다.

상술했듯 본인은 매국 행위를 하려다가 추방됐고 유돈을 제외한 측근들도 모두 주살당했지만 자식에게까지 죄를 묻지는 않았는지[3] 아들인 손홍, 손소, 손위, 손흔은 모두 관리로 있었다고 한다. 중국어 위키백과나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궁지쟁 당시 손패를 지지했던 손기가 손보의 손자라고 한다.[4] 사실이라면 할아버지나 손자나 손권의 눈에 찍히는 짓을 했다가 몰락한 셈.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손보(국의).jpg
삼국지 14 일러스트

삼국지 1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능력치는 통솔 67, 무력 65, 지력 48, 정치 42, 매력 43이며 개성은 장구, 주의는 명리, 정책은 학익강화 Lv 3, 진형은 학익, 전법은 견제, 교란, 강습, 친애무장은 손분, 손책, 혐오무장은 손권이다.

삼국지 8 리메이크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2, 무력 64, 지력 36, 정치력 40, 매력 47인데 삼국지 14와 달리 매력이 4 상승한 대신 지력이 12, 통솔력이 5, 정치력이 2, 무력이 1 하락했다.

3.2. 삼국지톡

파일:손보(삼국지톡).jpg

조조를 두려워 하여 조조에게 항복하려는 톡을 치다가 날아온 화살에 폰과 손을 같이 관통당하고 나타난 사촌동생 손권에게 행복이 지겹냐고 한 소리 듣는다. 이에 자신은 이게 우리 집안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변명하지만 사촌동생은 조조놈이 북방 4주를 먹고 그것도 모자라 강동을 노리는데 가족인 날 돕진 못할 망정 등에 칼을 꽃냐고 일갈하고 죽이진 않겠지만 죽은것보다 비참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하며 유폐 시킨다.

3.3. 화봉요원

여기서는 손책의 종제로 나오며, 손책과 함께 수춘에서 원술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원술은 자기가 거둬들인 손가 측 사람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각자에게 일감을 안겨주는데, 손보가 맡은 일은 원가의 정신병자들을 모아놓은 병동에서 그들과 한바탕 몸싸움을 하며 놀아주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손책 일행은 그 중 원역이라는 환자를 이용해 수문장을 속여 수춘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환성으로 가는 도중 객잔에서 손책은 매복에 당해 기령에게 옥새를 뺏기고 감녕의 화살에 죽게 되는데...

[ 스포일러 펼치기 · 접기 ]
사실 지금까지 손책 행세를 한 사람은 손책이 아니라 그의 옛 신하 능조였다. 손책의 죽음을 가장해 원술의 의심을 풀고, 원술이 옥새를 차지함으로서 칭제해 역적이 되도록 만들려고 일부러 죽음을 자처한 것. 그리고 능조를 미끼로 삼아 유유히 탈출해 주유와 만난 손보는, 배신한 객잔 주인 일행에게 화살을 쏘며 자신의 정체가 손책임을 밝힌다.



[1] 일단 손책의 지휘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손분, 손보 형제가 칭하고 있는 지위는 오히려 손권, 손책보다 높았다. [2] 측근 중에 점술가 유돈은 살아남았다. [3] 일단 자기의 조카들이기도 하니까... [4] 위키백과에서 근거라고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동오에서 산기시랑과 무위도위를 역임한 '손기'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평남장군이고, 아버지는 분위장군이었다고 한다. 손보 역시 평남장군이라는 기록이 있었기에 손기의 할아버지라고 못 박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