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許彪孫, ?~1261남송의 인물이다. 시호는 개절(開節)이다.
2. 생애
허혁의 아들로, 본래 사천제치사의 참모관이었다. 1261년 유정이 노주를 바치고 몽골군에 항복할 때 앞서 문무장교를 소집해 항복을 선언했다.[1] 이조 한 명이 강력히 반대하여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다. 중경에서 곡물을 징발하기 위해 신비성(神臂城)에 파견된 관리도 죽였다. 그리고 문채가 좋은 허표손에게 사람을 보내 항복 문서를 작성하게 했으나 허표손은 단호히 거절한다.손목은 부러질 수 있지만 붓은 쓸 수 없습니다.
이에 허표손은 자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자살 직전 허표손은 아들을 가족에게 맡겼다. 가족은 아이를 데리고 성 밖으로 숨어들어 강가에 갔으나 배를 건널 수 없어 추격병을 만나 결국 살해당하였다. 사후 개절(開節)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3. 기타
사천성 노주시에 신비성유적이 있는데, 현지인들은 유정을 풍자하기 위해 신비성의 절벽에 '유정항원(劉整降元)'이라고 새겼다. 또한 유정의 옆에 허표손의 조각상이 있다.4. 가족관계
- 허혁(許奕, 1170~1219): 허표손의 아버지로, 자는 성자(成子)이다. 재상 한탁주가 북벌을 시도할 때 이에 반대했고, 오희가 반란을 일으켜 금으로부터 촉왕에 봉해지고 오희가 죽은 이후 사천성 지역을 안정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