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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09:10:44

허표손

1. 개요2. 생애3. 기타4. 가족관계

1. 개요

許彪孫, ?~1261
남송의 인물이다. 시호는 개절(開節)이다.

2. 생애

허혁의 아들로, 본래 사천제치사의 참모관이었다. 1261년 유정 노주를 바치고 몽골군에 항복할 때 앞서 문무장교를 소집해 항복을 선언했다.[1] 이조 한 명이 강력히 반대하여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다. 중경에서 곡물을 징발하기 위해 신비성(神臂城)에 파견된 관리도 죽였다. 그리고 문채가 좋은 허표손에게 사람을 보내 항복 문서를 작성하게 했으나 허표손은 단호히 거절한다.
손목은 부러질 수 있지만 붓은 쓸 수 없습니다.
이에 허표손은 자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자살 직전 허표손은 아들을 가족에게 맡겼다. 가족은 아이를 데리고 성 밖으로 숨어들어 강가에 갔으나 배를 건널 수 없어 추격병을 만나 결국 살해당하였다.

사후 개절(開節)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3. 기타

사천성 노주시에 신비성유적이 있는데, 현지인들은 유정을 풍자하기 위해 신비성의 절벽에 '유정항원(劉整降元)'이라고 새겼다. 또한 유정의 옆에 허표손의 조각상이 있다.

4. 가족관계



[1] 유정은 본래 북방 한인으로, 처음에는 조방의 수하였다가 이후에는 맹공의 수하로 활동했다. 이후 여문덕이 유정의 계책을 듣지 않고 그의 공을 가로채는 등 유정을 무시하고 신임 재상 가사도가 타산법을 빌미로 상사벽과 조세웅 등 장수들을 처벌하자 불안감을 느꼈으며,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유흥이 사천제치사로 부임하자, 이에 불안해하여 몽골에 투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