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의 무장에 대한 내용은 등강(전진) 문서 참고하십시오.
鄧康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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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의 외척으로, 등우의 손자이자 이안후(夷安侯) 등진(鄧珍)의 아들이다. 형주 남양군 사람.2. 행적
형인 등량(鄧良)이 있어서 아버지의 작위를 이었으나,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등강이 그 작위를 이어받았다[紹封]. 당시 이런 식으로 작위를 이어받은 경우 옛 봉국의 영지에서 조세를 반으로 줄였는데, 등강은 황태후로서 섭정하고 있었던 화희황후의 일족이었기에 3분의 2를 받을 수 있었다.등강은 화희황후가 오랫동안 섭정하고 있고 일족이 극도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을 경계하여, 자주 황태후에게 상주하여 이를 경계하여 황실을 더욱 받들고 사사로운 집안의 권세를 줄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지만 들어지지 않았다. 등강은 멸문지화를 입을까 두려워하며 병을 칭하면서 조회하지 않았다.
이에 걱정이 된 화희황후가 내시를 시켜 문안하도록 하였는데, 이때 나간 궁인은 원래 등강 집안의 노비였지만 중대인(中大人)이라 자칭하며 등강을 문안하니 이를 매우 꾸짖었다.
이 궁인이 돌아와 화희황후에게 등강이 병을 사칭하면서 언사가 불손했다고 하자 화희황후가 대노하여 등강은 관직을 면탈당하고 봉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며, 족보에서 제명되었다[絕屬籍].
이후 화희황후가 사망하고 안제가 친정하면서 등씨 일족을 숙청하였지만, 등강은 오히려 안제의 부름을 받아 시중이 되었다.
순제가 즉위하고 태복을 지냈는데 행동이 방정하고 올바라 칭송을 받았으며 명성이 조정에 자자하였다.
후일 병이 들어 면직을 청하자 특진의 지위를 더하였다. 사망하자 시호를 의후(義侯)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