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에 따른 국가 분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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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대국 超强大國 | Superpow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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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강대국( 超 强 大 國, Superpower)은 강대국의 수준을 능가하여 문화·경제·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를 가리킨다. 1944년 미국 출신 국제 외교 이론가 윌리엄 폭스(William T. R. Fox)가 본인의 저서 《초강대국(The Super-Powers: The United States, Britain, and the Soviet Union - Their Responsibility for Peace)》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인류사를 통틀어서 강대국으로 꼽히는 국가는 매우 많았지만,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법한 초강대국의 등장은 지리적인 한계를 극복할 통신과 교통, 정교한 사회 체제가 갖추어진 근현대에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 가령 로마 제국은 매우 강대했지만 잘 알려진 대로 그 세력은 전세계가 아니라 지중해 일대에 국한되었다. 구대륙을 제패한 몽골 제국 역시(아직 접촉하지도 못한 신대륙은 물론이고) 전세계에 그 세력을 떨치지는 못했다.[1]
초강대국이라는 용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양대 세력인 미국과 소련을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학계에서는 이견이 존재하긴 하나 대영제국도 현대 이전의 초강대국이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PAX BRITANNICA(1815~1914) 라는 칭호도 존재한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뒤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단극질서 체제를 유지했었다. 그러다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끝없는 전쟁의 수렁에 빠지고 2008년 금융위기로 세력이 위축된 사이에 중국이 성장하고 러시아가 재기하면서 신냉전이 격화되고, 다극화가 이뤄지면서 미국의 1극질서가 끝났다.
2. 목록
2.1. 대영제국
자세한 내용은 대영제국 문서 참고하십시오.일단은 초강대국이라는 용어는 냉전이 시작할 즈음에 만들어진 용어이기 때문에, 대영제국의 국력과는 별개로 당대에는 대영제국이 초강대국이라고 불리지는 않았고 당시에는 강대국 중의 강대국(The foremost power of the world) 정도로만 언급되었다. 위의 저서가 1944년에 나왔으니 1944 ~ 1947년 정도의 시기가 걸치기는 하는데 이는 대영제국의 존속 기간에 비하자면 매우 짧은 시간이다. 1944년부터 그렇게 불린 것은 책이 그때 나왔기 때문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초강대국에 가까운 국력을 지니게 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 승리 이후 해상 패권을 확실히 확립하고 인도와 서유럽 일대의 패권을 잡은 1815년을 기점으로 하며[5] 이후 제1차 아편전쟁에서 기존 전세계적인 강대국이었던 청나라를 굴복시켜 강대국에서 이탈시키게 만든 뒤 홍콩을 할양받은 빅토리아 시대에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엄이 절정에 달했다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한편 대영제국이 미국, 그리고 과거 소련과 같은 초강대국이었는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우선 식민지까지 합하면 영토는 식민제국답게 초강대국인 미국, 소련을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뉴기니 자치령까지 포함시킨 영토의 면적이 무려 현 영국의 145배(35,500,000km2)로, 소련 면적 22,402,200km²보다 1.5배 가량 넓다.[6] 또한 최전성기였던 빅토리아 시대 약 한 세기 동안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7] 영국이 유일하게 경계했던 대상은 부동항을 얻기 위해 크림 전쟁을 벌이던 러시아 제국과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해 대영제국의 총 경제력을 추월한 독일 제국 정도였으며 같은 식민제국이라는 면에서는 프랑스 식민제국이 맞설만 하지만 이 역시 격차는 컸다.[8] 대영제국 해군은 1위로 군림하면서 2, 3위를 합친 것보다의 우위를 19세기 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국력적 측면에서 다른 서구 열강들을 압도했는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경제 규모는 이미 1차대전 직전부터 독일 제국에 밀리기 시작했다.[9] 군사적으로도 대영제국군이 세계를 제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군중시 정책으로 육군력이 부족한 탓에 여타 서구 열강을 완전히 군사적으로 제압할 역량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10] 대영제국 정부도 이를 추구하지 않았다.[11] 인구 역시 대다수가 식민지인이었으므로 동원 가능한 병력이 크지 않았다.
즉, 식민제국이라는 체제가 현대의 기점이 된 제2차 세계 대전이후 몰락했기 때문에 현대 이후에 정립된 국제정세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현대의 초강대국은 식민지가 아닌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상대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포섭하며[12] 본토의 막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13]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식민제국은 근본적으로 영토의 대부분이 군사적으로 굴복시킨 식민지이며, 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군사력/경제력은 본토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아닌 게 아니라 이들 식민지는 본국에 대전쟁이 일어나면 같이 싸워주긴커녕 이때다 하고 독립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주둔군은 필요했고,[14] 오히려 군사력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식민제국의 대표격인 대영제국이 현대로 치자면 초강대국일까?" 라는 질문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식민제국이 현대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대영제국이 초강대국에서 밀려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제2차 세계 대전이다. 이 시기에 영국은 나치독일 유보트의 영국봉쇄로 미국으로부터 랜드리스로 식료품과 무기를 빌려야했고 본토 외에도 동남아, 중동 등의 식민지에서 박터지게 전쟁을 벌였다. 이로인해 대영제국은 막대한 경제적 타격은 물론 인적자원도 타격을 입었고 전후복구 하던 도중 6.25전쟁까지 터지는 바람에 1954년까지 식량 배급이 시행될 지경이었다. 전후의 질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아닌 공산주의 대표국가 소련과 자유주의 대표국가 미국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 그래도 종전 직후에도 대영제국 시절 당시의 영향력을 전부 잃어버리지는 않아서 몇 년간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는 어느 정도 유지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크긴 했지만 프랑스처럼 본토가 점령이 당한 수준은 아니며, 미국으로서도 (함께 승리한 소련은 영 못 미덥고) 나치 독일의 포화를 정면으로 받아내며 버틴 영국과 영국 식민지 출신을 향한 영국의 발언권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1947년 인도의 독립을 시작으로 식민지들이 줄줄이 독립을 하게 되면서 영향력이 축소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1956년 수에즈 위기 당시 미국과 소련의 압력에 밀려 물러서는 모습[15]을 보이면서 명백히 초강대국 지위에서 이탈한 모습을 보여준다.[16] 최종적으로 대영제국이 해체된 시점은 1997년 7월 1일의 홍콩 반환으로 본다. 그나마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영연방 체제가 성립되면서[17] 과거 식민지 지역들을 묶는 체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만이 위안이다.
2.2. 소련
자세한 내용은 소련 문서 참고하십시오.소련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 독일의 인재들을 흡수하고 전쟁 도중 점령한 영토에 위성 국가들을 세워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며 냉전을 벌인 초강대국이었다. 현대의 러시아 연방이 강대국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소련의 국력과 지위를 이어받은 덕분이기도 하다.
스탈린 정권의 5개년 계획 정책을 통해서 급속도로 발전을 시작하더니[18]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초강대국이 되었고,[19] 가난한 농업국에서 경제 순위 세계 2위의 공업국으로 최단기간 안에 발전하였다.[20] 더 나아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세계 최초로 우주에 개와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를 올려보내는 등 미국과 치열한 우주 경쟁, 패권 경쟁, 소련판 CIA인 KGB를 적극적으로 동원해 첩보전 등을 벌이며 초강대국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냉전이 과열되며 너무 많은 군비 경쟁에 따른 경제적 부담[21]과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한계점이 소련의 경제를 발목잡았고, 소련의 경제 성장률은 가면 갈수록 매우 저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공산주의의 한계 때문에 상황이 안 좋아지는 것은 공산주의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르바초프 정권이 등장했고 군비 축소를 위해서 미국 레이건 정부와 접촉하여 핵미사일 감축 제안을 하는 등 개혁을 시도했지만 그의 개혁 정책마저 실패, 소련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여기에 소련 공산당이 일으킨 8월 쿠데타로 인해 치명타를 입으며 소련은 붕괴되고 초강대국의 지위도 상실한다.[22]
이후 소련의 지위는 러시아가 승계했으며 보리스 옐친 시기 동안에는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한 2000년부터 서서히 발전을 시작하며 미국을 위협하는 강대국 지위를 되찾는 데 성공한다. 아직 소련 시절의 위상까지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거대한 영토를 가졌고 세계 최대 핵보유국이자 세계 2위의 군사력, 상임이사국 지위, 풍부한 자원 등을 이용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므로 잠재력은 충분하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유이하게 자급자족이 가능한 국가이다.[23]
2.3. 미국
자세한 내용은 미국 문서 참고하십시오.현존하는 유일한 초강대국. 세계 최고의 경제력[24], 학문[25], 군사력[26], 문화력[27]과 국제적 발언권의 영향력[28][29] 을 가져 제시할 수 있는 모든 초강대국의 조건에 부합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 이후 초강대국에 올랐다. 2010년대부터 신냉전이 격화되고 다극화가 이루어져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여전히 미국이 초강대국이라는 근거들은 뚜렷하다. 아직까지 서방 세계에 대한 영향력은 압도적이며 서방 강대국들이 중국, 러시아 등 반서방 국가들로 이탈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이 국력 면에서 세계 최강이 된 시기는 사실 2차대전보다 훨씬 일찍인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인 20세기 초반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연맹 제안, 민족자결주의 주창, 파리강화회의의 Big 3, 전후 해군조약 등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단지 당시에는 미국이 그러한 국력을 발휘하지 않고 외교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어 세계 곳곳에 관여하는 최강대국의 면모를 보이지는 않았을 뿐이다. 물론 ( 먼로 독트린에 의해) '자기네 앞마당'이라고 선언한 아메리카 지역, 그리고 유럽 외의 중국, 일본,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동지역 에는 그 시기에도 어느정도 꽤 영향력이 있었지만 당대의 강대국들이었던 대영제국이나 프랑스 식민제국을 압도할 정도는 아닌 열강들 중 하나인 수준이였다. 그리고 소련이 존재하던 시절에도 미국은 경제력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었다.[30]
UN의 상임이사국이자 G7 국가인[31] 영국, 프랑스와 더불어서 추축국이었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도 미국이 초강대국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영국과 프랑스는 제2차 중동전쟁을 끝으로 독자노선을 포기, 미국의 영향력에 종속되는 것을 택했으며,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여 각각 레벤스라움, 대동아공영권으로 주변국들과 분쟁을 일으키며 몇십 년 동안 넓혀왔던 영토를 전부 상실하고 무너졌다.[32]
미국은 UN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에 더해서 국제 핵심 기관의 거부권을 두 개 더 가지고 있는데 바로 ' 세계은행'과 ' 국제통화기금'이다. 즉, 다른 UN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는 다르게 거부권이 두 개나 더 있는 것이다. 단 이러한 거부권은 경제 기관에서 갖는 거부권은 UN의 거부권처럼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라 지분으로 행사한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제1함대인 해안경비대를 제외하고도 태평양(3함대, 7함대), 대서양(2함대, 6함대), 인도양(5함대)등에 항공모함 전단을 위시한, 어지간한 강대국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엄청난 전투력을 가진 함대를 전세계에 파견하고 있는데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미군을 파견하여 주둔지를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5대양 6대주 전체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국가이다. 이렇게 촘촘하게 깔아놓은 포석 덕분에 미국은 선전포고 이후 전세계 어디든 48시간 이내에 전면적인 무력투사가 가능하다.[33]
미국은 미군을 위시한 군사력뿐만 아니라, 기축 통화국으로 기능할 수 있는 압도적인 경제력도 지니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분으로 미국 주도로 현재진행중인 대러시아 경제제재로 인해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2023년에는 천연가스를 비롯한 자원을 우회 경로로 더 비싸게 팔면서 이를 극복하고 있는 모양새지만, 하여간 세계적인 경제제재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초강대국이었던 소련 시절에는 철의 장막을 쳐 스스로 세계 경제와 격리시켰음에도(비록 여러 문제가 있긴 했지만) 수십 년 동안 독자적인 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과 대조된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영향력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9.11 테러이다. 9.11 테러로 심장부를 공격당한 미국은 전쟁까지 가더라도 테러 집단을 섬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말인 즉슨 국내•국외정치에 의해 어느 정도 제약을 받던 초강대국이 제약없이 그 힘을 행사할 명분을 얻고, 또 그 명분을 쓸 의지를 다졌다는 것으로, 이후 과장 없이 전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미국 앞에서 설설 기었다. 많은 국가가 미국의 테러 피해에 유감을 표하는 성명을 냈으며, 심지어 테러 집단이나 북한 등의 적대국도 유감을 표하며 자기들이 테러의 주체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34] 오직 이라크만이 이 테러가 "신의 응징"이라며 테러를 옹호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고, 2년 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라크 전쟁으로 박살이 났다. 소련 붕괴 후 약 10년 동안의 이 압도적인 1극 체제의 미국은 초강대국을 넘어선 극초강대국 상태였다고도 묘사된다. 이것도 논란은 있지만 사실상 극초강대국의 영향력을 휘두른 거나 다름없는데, 당시 중국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 전이었고 러시아는 소련 붕괴의 후유증과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국 본토는 그야말로 방장 사기맵이라고 불리는 축복 받은 땅이다. 양면이 바다라 무역이 쉽고, 대륙 깊숙이 뻗어있는 강줄기 덕에 수운이 용이하다. 대륙이 길쭉해 동부와 서부를 해운으로 연결하려면 희망봉을 돌아가야 한다는 단점은 파나마 운하로 극복했다. 천연자원 매장량도 어마무시하며 알래스카에서도 기름이 많이 난다. 게다가 워낙 땅이 넓어 전 세계 인구를 먹여살릴 만큼의 밀을 경작한다.
2.3.1. 2010년대 이후의 변동
그러나 9.11 테러 이후 극초강대국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9.11 테러 사건은 미국이 얼마나 강한지 뼈저리게 알 수 있게 된 계기지만, 반대로 세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이 전쟁의 수렁에 빠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잇달아 공격했지만 테러단체들을 완전히 제거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에는 탈레반이 집권하게 됐다. 당시 미국이 군사력과 경제력 부분에서 엄청났다고 하더라도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35]202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패배하고, 탈레반이 승리하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이 되었다. 당시 영국 국방장관 벤 월러스는 '미국은 더이상 초강대국이 아니라 강대국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UK defence secretary suggests US is no longer a superpower
공격적 현실주의 학자인 존 미어샤이머는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2016년 무렵에 세계가 다극체제로 변했다고 말했다. 2019년 논문 Bound to Fail: The Rise and Fall of the Liberal International Order에서 더 이상 미국 유일패권의 단극 질서가 아니라, 세계가 다극 질서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미국 쇠퇴론의 논지를 주장한다. 다극 질서의 3개의 주요 강대국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를 지목한다.
하버드대학 교수로 방어적 현실주의 학자인 스티븐 월트는 2011년에 미국이 단극질서의 초강대국으로서 세계패권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는 끝났으며, 미국이 강대국들 중에서는 여전히 가장 강하겠지만, 세계를 더이상 마음대로 이끌지는 못 할 것이며, 세계는 다극화될 것이라고 예측하였었다. The End of the American Era 그리고 2016년에 미국의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붕괴하고 있다는 글을 기고했다. The Collapse of the Liberal World Order 2023년에 미국이 더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1극질서를 추구해서는 안되고 다극체제를 인정하여야 한다고 포린 폴리시에 기고했다. America Is Too Scared of the Multipolar World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유명한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2020년 미국이 헤게모니를 잃어가고 있다고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했다. The New Spheres of Influence 2024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아직 나라들 중에서 가장 강한 최강대국이지만, 헤게모니를 잃어버렸으며 더이상 단극 체제가 아니고 다극체제가 도래하였다고 한다. #
2021년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이코노미스트 기고 Francis Fukuyama on the end of American hegemony
2023년 포린 폴리시 기고 Yes, the World Is Multipolar
2024년 The Nation 기고 The US: No Longer the Ultimate Superpower
서방의 쇠퇴
서방은 오랫동안 세계 정치를 지배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초중반에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체가 자멸할 위기를 겪었음에도, 서방은 1990년대에 잠시나마 화려하게 부활할 것 같았다. 또한 미국은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평화롭게 끝나면서 세계 제일의 진정한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하기 직전인 듯 보였다. 국제 무대에서 정치적 입김 강화에 목이 마르고 활발한 경제체제를 갖춘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과 세계를 이끌고 있는 미국을 보면, 서방이 다시 한 번 국제사회에서 두드러진 존재가 되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EU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미국의 위상도 흔들리는 듯 보인다. 현재 서방은 대체로 결속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이들의 정치 유산이 지속될지도 의문시되고 있다. 과거에는 잠깐이긴 했지만 전 세계에 확산되는 민주주의, 세계 평화, 그리고 잘 이뤄지는 사회 합의가 서방의 인류유산으로서 오래 지속될 듯했다. 그러나 글로벌 강대국의 분포가 변하고, 정치 각성이 강대국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최근 들어 미국의 대외정책 및 미국의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그에 따른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도 보인다. 이 모든 요인이 어우러져 앞서 언급한 서방의 유산들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심되고 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략적 비전, 16~17p
서방은 오랫동안 세계 정치를 지배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초중반에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체가 자멸할 위기를 겪었음에도, 서방은 1990년대에 잠시나마 화려하게 부활할 것 같았다. 또한 미국은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평화롭게 끝나면서 세계 제일의 진정한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하기 직전인 듯 보였다. 국제 무대에서 정치적 입김 강화에 목이 마르고 활발한 경제체제를 갖춘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과 세계를 이끌고 있는 미국을 보면, 서방이 다시 한 번 국제사회에서 두드러진 존재가 되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EU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미국의 위상도 흔들리는 듯 보인다. 현재 서방은 대체로 결속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이들의 정치 유산이 지속될지도 의문시되고 있다. 과거에는 잠깐이긴 했지만 전 세계에 확산되는 민주주의, 세계 평화, 그리고 잘 이뤄지는 사회 합의가 서방의 인류유산으로서 오래 지속될 듯했다. 그러나 글로벌 강대국의 분포가 변하고, 정치 각성이 강대국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최근 들어 미국의 대외정책 및 미국의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그에 따른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도 보인다. 이 모든 요인이 어우러져 앞서 언급한 서방의 유산들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심되고 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략적 비전, 16~17p
미국과 동맹들은 우리의 준비태세와 자원이 전략에 못 미친다는 것을 솔직하고 냉철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우선 자원을 제대로 확보해야 합니다. 또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한국은 미국을 여전히
1999년의 미국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엘브리지 콜비, VOA 미국의 소리 #
엘브리지 콜비, VOA 미국의 소리 #
미국이 비난받아야 할 점은 동맹들에 상황의 심각성과 현실에 대해 충분히 경고하거나 각성시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의 말과 달리 우리는 모든 걸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두 개의 전쟁을 벌일 수 없고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지도 않을 겁니다. 포기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북한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중국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살고 싶지 않고요. 여러분도 중국이 지배하는 아시아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상황의 긴박함과 심각성을 이해해야 하며, 오래된 전통이나 가치관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엘브리지 콜비, VOA 미국의 소리 #
엘브리지 콜비, VOA 미국의 소리 #
(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문서, 위키피디아 영어판 문서.)
3. 후보
초강대국으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은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국가를 비공식적인 용어로 'Potential superpower'라고 한다. 현재 후보군으로 중국, 러시아, 인도, 유럽연합[36]이 꼽힌다.-
중국
폭발적인 경제성장, 산업화된 대규모 인구에서 오는 세계 최대의 공업력, 2001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국력 소모,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서구 자본의 위세 하락 등으로 크게 부상한 국가로, 세계 2위의 경제력과 세계 1위의 수출과 세계 3위의 군사력, 핵보유국과 상임이사국이라는 강력한 지위를 지니고 있다.
다만 2020년대 기준으로 여러 내부적인 문제점과 부실한 외부 영향력 등 초강대국으로 간주되기 부족한 문제들이 산적해있으며, 현 중국의 국력과 영향력 역시 냉전기 소련에 비하면 미진한 편이다. 증거로는 서방 견제가 단독으로 불가능하고 러시아와 합동해야 가능하다는 점이 있다.
중국이 초강대국에 등극할지는 미중 패권 경쟁의 동향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인권 문제나 맹목적인 패권 추구가 명분을 잃게 해 중국에 유리한 외교 판짜기에 발목을 잡고 있어서 전망은 어둡다. 최악의 지정학적 위치도 걸림돌이다. 아시아권 국가들은 강대국이 쉽게 등장하는 유럽·아프리카 세계와 다르게 영토와 인구규모가 상당한 지역강국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도 중국의 영향력 부실에 한몫한다. 힘으로도 경제력으로도 어느 한 나라 찍어 누르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비록 현대적인 초강대국의 정의에는 어긋나나, 이 지역은 한나라를 시작으로 주변국들을 위성국화하고 주변 세계에 초강대국의 위세를 떨친 중화제국의 역사가 있다.나라 이름부터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이다.이 가운데 세계적으로 선진 문명이었던 송나라의 경제력도 특기할 만하다. 중근세에는 거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산업혁명 이전까지 국가 별 GDP에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였다. 이런 중국은 청조에 산업혁명과 식민지 경영으로 급부상한 대영제국에게 1위를 내주었고, 서구 열강의 확장으로 근대적인 주권개념의 질서가 아시아 세계에 수입됨에 따라 중국의 리더십을 유지하던 조공책봉 체제가 무너져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
러시아
초강대국 소련의 유산을 물려받아 커다란 영토에 매장된 막대한 자원, 강력한 군사력과 상임이사국으로서 높은 영향력 등을 가졌다. 무시 못할 국력을 가진 나라로서 잠재력이 높은 후보 중 하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독재 체제의 한계와 불확실한 미래 성장동력과 같은 여러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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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산율이 높고, 매년 고성장을 이어간 결과 2020년대 들어서 강대국에 진입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제 막 강대국에 들어선 신흥 강국이라 기존 강대국들보다 국력이 강한 편은 아니며 오히려 뒤떨어지기도 한다.[37] 때문에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시장을 가지고 있으나, 내부적으로 부패와 비리가 만연한 정·재계, 지구온난화로 계속 악화되는 초고온 열대 기후가 경제성장과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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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38]
그나마 국가연합 가운데 제일 단일화된 권한을 지닌 한 축으로, 일이 잘 풀린다면 한 개 국가에 불과한 다른 나라들을 능가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다.[39]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각 국가가 자국의 권한을 유럽연합에 온전히 이양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군사적으로는 독자 운용 가능한 군사력이 전무하며 사실상 NATO에 의존하고 있다. 일단 독자적인 유럽군의 창설을 준비하고는 있다.
유럽연합이 경제/정치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다면 통합에 가까워지는 변화를 예측해볼 수 있었겠지만, 2010년대에 유로존 위기, 브렉시트, 확장이 힘든 내부규칙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든 상황이다. 그나마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겪은 후폭풍 때문에 유럽연합 해체론은 내부애서 고개를 감추긴 했다. 국력에서 미국보다 한 수 아래인 러시아[40]를 상대로 에너지 외교부터 시작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만장일치라는 전제가 필요해서 회원국들의 의견 수렴도 상당히 힘들다는 점도[41] 아직까지 연방이라기보다는 국가연합에 가까운 과도기의 모습이다.
과거에 유력한 후보군에 들었으나 이제 후보로 거론되지 않는 국가는 일본이 있다. 일본은 1980년대 초반~1990년대 초반의 약 10여년 간 미국 GDP의 70% 이상을 따라잡으며 세계 GDP 2위의 강대국으로 군림한 적이 있으나, 플라자 합의를 비롯한 여러가지 국내외의 상황과 거품 경제 붕괴로 인하여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국력이 추락해 후보군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4. 외부 링크
- 영어
[1]
다만 마찬가지로 교통/통신의 한계로 해당 지역 일대의 주민들도 다른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교류도 매우 적었기 때문에, 당대인들에게는 세계 제국으로 여겨졌다. 특히
로마 제국은 서구권에서 세계 제국 이미지를 형성한 국가로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세계화 과정에서 로마 제국을 모티브로 삼곤 했다.
[2]
주로 1815년으로 보지만 진입 시기에 이견이 있음.
[3]
사실 1930년대에도 대영제국은 순수 국력에서 미국에 열세였고 나치 독일, 소련에도 다소 밀리고 있었기에 이미 전간기 후반부터 초강대국 지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2차대전으로 결정타를 맞았고 결과적으로 1956년 수에즈 위기에서 영국은 미국과 소련의 압박에 완전히 굴복하며 초강대국의 지위에서 완전히 추락했다.
[4]
단 순 국력에서는 하술되듯
1차대전 이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을 기점으로 사실상 대영제국과 대등한 지위를 얻었기에 순수 국력으로는 대략 1918년 ~ 1922년 정도부터 초강대국의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대개
팍스 브리타니카는 1815년에서 1914년까지로 규정되는 편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대영제국은
2차대전이 종전된 이후인
인도제국독립
1947년까지 존속되었으며
1956년 수에즈전쟁이 일어나
미국과 (약간의)
소련의 압력으로 굴욕적인 철군이 있기 전까지
미국으로부터 주도적인 강국으로 남아있었다.
[6]
현
러시아는
소련 붕괴로 동유럽/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떨어져나가 면적이 25% 줄어든 17,098,246km²이다. 그래도 전세계 영토 순위 1위의
영토 대국인 것은 여전하다.
[7]
일례로 지금은
미국 해군이 담당하고 있는
카리브 해역의
치안 단속을 19세기에는
영국 해군이 담당했다.
[8]
다만 프랑스는 대륙 국가로서 육군력이 강력했기에 유럽 대륙 내에서의 영향력은 대영제국보다도 더 컸다.
[9]
이것은 결국에
비스마르크 체제, 그리고 장기간의
벨 에포크가 파국을 맞는 계기 중 하나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대영제국의 (1극 체제라고까진 어려워도 상당한 수준의) 우위가 유럽의 평화의 한 요인이었던 셈이다.
[10]
이에 따라
독소 불가침조약 당시에 영국과 러시아 사이의 의견 차가 존재했다. 러시아 측에서 전쟁 시 몇 개 사단을 보내줄 수 있느냐는 말에 영국이 4개 사단이라고 했고, 러시아는 당장 120개 사단을 동원해도 될까말까한 상황에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벌어진
독소전에서 그 정도 규모의 사단은 전쟁 전체도 아니고 전투 1번에 소멸할 것이 분명했다.
[11]
영국의 주된 외교 방침은
세력균형으로, 유럽의 강국이 나타나면 그 맞은 편에 가세해 해당 강국이 유럽을 장악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대륙의 강국인 프랑스나 떠오르는 강국이던 독일과 사사건건 부딪힌 것이다. 현대까지 이러한 외교 기조는 변하지 않아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러시아의 맞은편인 우크라이나를 매우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중이다.
[12]
소련의
위성국 역시 소련의 지시를 받는 세력이 추동한 것이긴 하지만 일단 해당 국가 내에서 지지 세력을 세운 것이다. 물론 소련은 직접 삼킨 나라도 많긴 했다(...).
소련 붕괴로 이런 나라들은 다 내뱉었지만.
[13]
소련의 경제는 미국에 비해 양적/질적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지, 소련에게도 전세계 공산주의 국가에 인적/물적 지원을 할 여력은 존재했다.
[14]
그리고 이들은 식민지 통치 체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이었기에, 분명 전체 국력으로는 대영제국보다 한 수 아래인
일본 제국이 침략해오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 병력을
나치 독일에 전력 투사해야 했던 당시 상황의 영향이다. 비단 대영제국뿐 아니라 모든
식민제국들이 본국의 총력전 수행으로 인해 식민지 지역을 군사적으로 방어할 수 없는 상태였고,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다수 식민제국은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영연방이라는
국가연합으로 전환된
대영제국이나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처럼 무혈 해체된 경우에는 어느 정도 영향력이 남아있으나,
해방 전쟁에까지 이르고 이를 진압하다 실패하는 식으로 몰락한 식민제국은 이전의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15]
요약하자면 수에즈 운하를 먹은 이집트에 대해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격분하며 이집트를 공격하려고 했으나(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하기는 했다), 소련이 이집트 편을 들어주며 핵 위협을 했고, 미국도 소련이 핵을 쏘면 자신은 도와주지 않겠다며 압박하며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결국 못 버티고 물러난 사건이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가 세계 패권 지위를 상실했고 그 지위는 미국, 소련에게 넘어갔음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6]
이 즈음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1965년 사망하자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은 "영국은 이제 더 이상 강대국이 아니다"라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 물론 영국은 지금도
강대국이지만 이 발언은 처칠이 활동하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대영제국만큼의 강대국이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후 프랑스는 영국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독자 행보를 강화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드골로서 처칠이 살아있을 때에는
자유 프랑스 시절 망명정부를 떠안아준
영국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7]
구체적으로는 19세기 말부터
자치령이 성립되어 점차적으로 자치권 확립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캐나다가 1867년으로 가장 이르고 그 다음 호주와 뉴질랜드가 1907년 자치령이 되었다.
[18]
당시 소련의 경제 성장률은 매년 20%에 이르렀다.
6.25 전쟁 이후 쑥대밭이 된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폭발적으로 올랐을 때도 15%를 넘긴 적이 없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이는 수많은 희생과 지지부진한 경공업 등 여러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5개년 계획 정책은 소련이 초강대국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정책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19]
독소전쟁이 벌어질 당시만 해도 소련이 패배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소련은 미국과 영국의 대반격인 오버로드 작전까지 독일의 침략을 막아내는 탱킹역할을 제대로 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소련은
러시아 제국 시절과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20]
그래서 소련의 영향을 받아 세계 곳곳에 사회주의 국가가 확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가 국가 중심으로 똘똘 뭉쳐 돌아가는 소련의 저력을 두려워했는데, 실제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는 전쟁 탓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대다수 지식인들은 소수 정치인의 야망과 돈이 많은 자본가의 욕심 때문에 전쟁이 계속된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사회주의 주장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영국,프랑스,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21]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양국은
데탕트를 통해 이를 완화하려고 하기도 했다.
[22]
하필이면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
주권국가연맹이 발표되기 하루 전이었다. 쿠데타만 안 일어났으면 소련은 지금까지도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23]
같은 반서방 진영으로서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도 자급자족은 불가능하다.
[24]
미국 중심의 경제 블록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며 경제 제재만으로도 어지간한 국가에게 영구적인 경제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는 동맹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보통 유리한 협상 카드를 수십 장 더 쥐고 있다는 점이 미국의 외교적 입지를 알려 준다. 이에 대항하려고 반미 국가들이 중국, 러시아, 이란 중심의 경제로 새로운 블록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5]
세계 최고의 대학 랭킹(
THE 세계 대학 랭킹,
U.S. 뉴스 & 월드 리포트 등)의 20위권 안의 60~80%는 미국이 차지할 정도로 고등교육과 연구 역량에서 비교를 불허한다. 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모든 분야에서 금전적 제약도 거의 없이 가장 자유롭게 최고의 인력들과 교류하며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다. 유수의 과학자, 수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들이 끝없이 미국에서 배출되어 미국의 튼튼한 과학력과 미국 사회의 안정성에 기여하고 세계 학계를 이끈다.
[26]
미국이 가히 독보적인 분야.
지구방위대라는 이야기도 있다. 각종 조약으로
모든 대륙의 다양한 국가들의 영토에 주둔 육·해·공군을 두고 있고 오대양에
항모전단을 전개하여 역사의 모든 국가들 중 유일무이한 전지구적인 군사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심지어 미 해·공군은
나머지 전 세계랑 싸워도 이길 전력이다. 본체가 워낙
미친수준이라 그 분산된 군사력도 어지간한 국가들은 대항하지 못한다. 가격이 폭락했음에도 충분히 위협적인 냉전기 현대 무기들로 무장한 무장 단체와 군벌들이 제3세계에 창궐한 현재까지도 19세기의 제국주의를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전쟁 자원, 군사 기술, 군사 교리, 명령 체계, 실전경험 등 모든 분야에서 첨단을 달리기에 타국과 격차가 수 십년은 나기 때문이다. 괜히
미제국주의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겠는가.
[27]
음반 시장,
영화 시장, 게임 시장 규모 1위. 현대 대중음악의 많은 장르의 발상지가 미국에 있다. 영화사에서도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20세기 게임 산업의 역사는 미국과 일본의 이야기라고 봐도 된다. 다만 영화, 게임 시장규모는 현재 중국과 격차가 적으나 중국은 대부분이 내수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할 수 있다.
[28]
긴 말 할 거 없이
유엔 본부가 뉴욕 맨해튼에 있다. 미국 자신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미국과 한패거리인 영국과 프랑스까지 합치면 상임이사국의 과반수를 차지한다. 외교적으로는
마셜 플랜,
NATO,
한미상호방위조약,
미일안전보장조약 등으로 수많은 제1세계 국가들과 동맹 관계를 구축하고 신뢰에 기반해 현재까지 이어 오고 있으며 현재 이들 대부분이 선진국으로 세계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군사력과 강압으로 동유럽의 동맹국들을 유지한 과거 초강대국 소련과 구분된다. 미국은 단독으로 국제 기구를 창설할 수도 있고
탈퇴해 시체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29]
아메리카에서의
제국주의적 행보와
20세기 말~
21세기 초
중동에서의 삽질로 빛이 바래긴 했으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명분도 갖고 있다. 케바케지만
지미 카터 등 인권을 중시하는 행정부가 들어서면 인권 외교를 하는 국제경찰 미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무지성 이스라엘 옹호 행보가 미국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깎아먹고 있다. 씁쓸하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의 이스라엘 비호를 우방국들이 규탄하지 못하는 것도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를 보여주는 점이다.
[30]
1962년 CIA 통계에 따르면 미국 GDP는 GDP 2위이던 소련 GDP의 2배에 3위이던
독일(정확히는
서독)의 5배를 훌쩍 넘겼고,
나토 유럽 회원국 또는 공산권의 모든 국가들의 GDP를 합친 게 미국 한 국가 GDP의 2/3이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31]
한 마디로 자본주의 체제 하 경제 선진국이자 강대국들의 모임.
[32]
독일의 경우 소련의 서쪽 지역과 전 유럽을 석권했을 때 독일 본토와 점령지의 국력을 합한 상태에서 휴전되었다면 일단 겉으로는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설 만한 국력을 보유하기는 했다. 하지만 초강대국은 순수한 국력뿐 아니라 그 국력의 행사도 중요한데 나치 독일은 세계 각국에 국력을 관철시키기는 커녕 적국으로 싸우고 있었으니 초강대국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33]
사실 48시간이라는 것도 국제법과 외교관례상 24시간이나 48시간의 기한으로
최후통첩 이후
선전포고를 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인 것이지, 이걸 무시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24시간 이내에도 전면적인 무력투사가 가능하다.
[34]
파키스탄은 영공을 열라는 미국에 반발하려다
석기시대로 돌아가게 만들 것이란 말이 나오자 바로 영공을 활짝 열었다. 참고로 미국과 사이 나쁘기로 유명한 북한과
중국,
러시아마저도 이 사태에선 테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나아가 자신들이 관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35]
미국이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약 2조 달러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한화로 약 2,719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다.
소련과 군비경쟁을 할 때도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등골이 휘어질 판이었으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미국도 이렇다 할 재정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동안 잠잠하다가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또 미국 재정에 타격을 주게 된 것이다. 거기에 이 틈을 타 러시아와 중국이 급속도로 발전을 했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만 본 셈이다.
[36]
강대국 중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강대국의 최소)가 EU 소속이다.
영국도 있었지만
탈퇴했다.
[37]
총 경제력은 영국, 프랑스보다 높고 군사력도 세계적으로 뛰어난 강국이나 소프트파워는 이탈리아, 대한민국보다 뒤떨어지며 1인당 경제력은 약소국인 캄보디아, 방글라데시보다 낮은 후진국이다.
[38]
실질적으로 이를 이끄는 수장 국가는
독일과
프랑스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영국까지 더하면 서유럽의 역사를 주도했던
영프독이 되지만 영국은 2020년
유럽연합을 탈퇴했다.
[39]
사실 현재 초강대국인 미국 역시 대부분의 주들이 사실상의 국가에 준하는 권한과 규모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여기서 더 나아가 캘리포니아 주 같은 영국, 프랑스 같은 어지간한 강대국 급으로 체급이 엄청난 주도 있다.
[40]
특히 군사력은 말이 GFP 2위이지 1위인 미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
[41]
때문에 만장일치는 민주적 정당성이 큰 데에 비해 역사적으로는 국가 규모가 작았던 시절에만 제한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모두 합의가 되면 좋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잘 풀리지 않고, 만장일치만 고집하다 보면 흐지부지 무산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