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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19:46:14

2003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연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세기
19세기 20세기 21세기 22세기 23세기
밀레니엄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력기원 2003년
대한민국 85년
단기 4336년
불기 2547년
간지 임오년 - 계미
주체 92년
대만 민국 92년
일본 헤이세이 15년
( 황기 2663년)
이슬람력 1423년 - 1424년
히브리력 5763년 - 5764년
페르시아력 1381년 - 1382년
에티오피아력 1995년 - 1996년
로마 숫자 MMIII

1. 개요2. 기후3. 참여정부 출범과 정치사의 세대교체4. 이라크 전쟁5. 경기도 서울의 인구수를 추월하기 시작한 해6. 지하철 풍경의 변화 원년7. 2003년 문화계
7.1. 변화기를 맞은 방송계7.2. 황금기를 보낸 영화계7.3. 스포츠계 e스포츠계
8. 사건
8.1. 실제
8.1.1. 1월8.1.2. 2월8.1.3. 3월8.1.4. 4월8.1.5. 5월8.1.6. 6월8.1.7. 7월8.1.8. 8월8.1.9. 9월8.1.10. 10월8.1.11. 11월8.1.12. 12월
8.2. 가상
9. 탄생10. 사망
10.1. 별들이 진 한 해
11. 데뷔12. 은퇴
12.1. 가요계12.2. 스포츠
13. 히트작
13.1. 드라마/시트콤13.2. 영화13.3. 애니메이션13.4. 가요13.5. 개그 코너13.6. 게임13.7. 특촬
14. 유행어15. 최초
15.1. 방송 프로그램 및 코너
15.1.1. TV15.1.2. 라디오
15.2. 인터넷 웹사이트
16. 출시 상품
16.1. 자동차16.2. 식음료16.3. 생활용품
17. 관련 문헌18. 달력

1. 개요

2003년 서울의 모습[1]
2003년 문화
2003년 초 서울의 모습
2003년 8월 15일 청주시의 모습
2003년 8월 15일 청주시의 모습 2
2003년 9월 10일 서울 서초구의 모습

2003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자 21세기와 제3천년기의 세번째 해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03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으며,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2003년 올해의 한자는 '虎(범 호)'였다. UN은 이 해를 '세계 물의 해'로 지정했고, 재미 한국인들은 1903년 하와이 도착을 기준으로 '이민 100주년'을 맞이했다.[2]

주말에 겹치는 공휴일은 설날 연휴 이틀, 삼일절, 식목일 등 총 4개로 2002년과 동일하다.

2. 기후

엘니뇨의 전형적인 기온을 띠었다. 그러나 2015년과 달리 비가 많이 왔으며, 여름철 기온이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전반적으로 포근한 해였으며 전년도 12월부터 5월까지는[3] 평년보다 높았다. 특히 5월은 초여름 더위가 나타났다. 그러나 6월이 되자 일부 지역에서는 냉해가 발생할 정도로 이상 저온 현상이 나타났다. 여름은 폭염이 없는 시원한 여름이었다. 서울에서는 이 해를 마지막으로 2023년 현재까지 폭염일수가 없는 해는 나오지 않고 있다.[4] 또한 장마가 길어졌지만 2002년에 중부 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려 큰 피해를 봤던 것과 비교하면 200 mm를 넘는 기록이 없어 별 다른 특징이 없다. 한편 추석 전후로 해서 태풍 매미 피해까지 겹쳤다. 때문에 남부지방에서는 명절 분위기를 망치고,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이후 10월에는 이상 저온을 보였지만 11월부터 이상 고온이 시작되어서 이듬해에는 일부를 제외하고 포근해서 전국 연평균기온 6위를 달성했다.

서울 기준 월별 평균기온은 다음과 같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서울 월평균기온(°C) -2.6 2.7 6.5 13.2 19.6 21.5 23.8 24.1 20.9 13.9 9.5 0.7 12.8
평년대비 편차(°C) -0.1 3.0 1.3 1.1 2.2 -0.4 -1.1 -1.3 0.1 -0.5 2.6 0.5 0.6
연 최저기온 연 최고기온 연교차
-15.5 °C(0105) 32.2 °C(0805) 47.7 °C
[순별 기온/펼치기·접기]
단위: (°C)
평년대비 편차는 순별 평년으로 비교함
  • 1분기
1월 상순 1월 중순 1월 하순 2월 상순 2월 중순 2월 하순 3월 상순 3월 중순 3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5.2 0.9 -3.2 1.7 2.1 4.5 3.0 6.7 9.5
평년대비 편차 -3.4 3.7 -0.2 3.8 1.8 3.5 -0.1 1.5 2.3
  • 2분기
4월 상순 4월 중순 4월 하순 5월 상순 5월 중순 5월 하순 6월 상순 6월 중순 6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12.4 13.2 13.9 17.3 19.5 21.7 22.4 20.9 21.3
평년대비 편차 2.5 1.1 -0.4 1.5 2.4 2.6 1.9 -1.3 -1.7
  • 3분기
7월 상순 7월 중순 7월 하순 8월 상순 8월 중순 8월 하순 9월 상순 9월 중순 9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23.7 23.5 24.3 25.1 23.7 23.6 21.3 21.8 19.6
평년대비 편차 -0.1 -1.1 -1.9 -1.0 -2.2 -0.6 -1.6 1.1 0.7
  • 4분기
10월 상순 10월 중순 10월 하순 11월 상순 11월 중순 11월 하순 12월 상순 12월 중순 12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16.6 14.6 10.9 12.6 9.1 6.9 1.9 -0.9 1.2
평년대비 편차 -0.3 -0.1 -0.9 2.5 2.2 3.2 0 -1.0 2.4

3. 참여정부 출범과 정치사의 세대교체

파일:김대중 대통령 퇴임.png 파일:노무현 대통령 취임 2.png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관련 뉴스(2월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관련 뉴스(2월 25일)
16대 대선 이후 당선자 시절 인터뷰(2003년 2월 15일)
2003년 제16대 대통령 취임식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참여정부가 출범했다. 노무현의 대통령 취임은 한국 정치사에서 일종의 세대교체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오랫동안 민주당계의 주류였던 동교동계가 아닌 비주류인 꼬마민주당 출신 인사의 당선이었으며 한국 정치인 중 최초로 인터넷 팬클럽을 가진 대통령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노무현의 대통령 취임을 기점으로 양당의 이념적 차이가 뚜렷히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삼김 정치로 일컫어지는 보스 정치와 지역주의 정치가 어느 정도 완화된 모습을 보인것도 있다. 이 때문에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언론에서는 노무현을 신세대 정치인으로 평가한 바 있다.[5]

허나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여러 과제에 휘말렸다. 이라크 파병 찬반논란을 비롯해 대북송금 특검, 불법 대선자금 수수, 한총련 합법화, NEIS 파동, 노동계와의 갈등[6], 송두율 사건 등 여러 정치/사회적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대북송금 특검 사건으로 당내에서 친노와 동교동계의 갈등이 극에 달했고, 결국 친노 인사들이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동교동계와 결별하게 된다.[7] 대한민국의 이혼률이 역대 최대치를 찍은 해이기도 했는데, 이는 카드 대란의 여파가 컸기 때문이다. 카드대란의 여파로 LG카드는 이 해 부도를 맞는다.

서울특별시에서는 청계천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되었다. 이명박 시장 취임 1주년에 시작된 복원공사는 2003년 8월에 끝났으며, 이 후 1년 6개월동안 하천 복원 등의 절차가 진행됐다.[8] 또한 2003년 9월부터 금강산 육로관광이 본격적으로 실시되어 버스편으로 금강산에 갈 수 있게 되었으며, 육로관광 개시로 기존의 해로관광은 2004년 1월 종료되었다. 다만 육로관광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은 대북송금 특검으로 수사를 받다가 같은 해 8월 4일, 현대 계동사옥 회장실에서 투신자살하였다.

중국에서는 이 해 3월, 장쩌민 국가주석의 퇴임과 동시에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임기가 시작되었다.[9] 그러나 후진타오 주석의 임기가 시작된 이 해에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한-중 관계의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합적으로 볼 때 2003년의 한국 사회는 정치적 논란만 빼면 큰 이슈가 된 사건이 유독 없었고, 임펙트가 별로 없는 시기로 기억된다.[10] 영화를 제외한 방송/문화계도 불황이었고, 여름에는 초대형급 태풍과 겨울에는 폭설이 오는 등 날씨도 영 좋은 분위기를 내지 못했다.

다만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하면서 한국 사회에 가진 안전불감증에 큰 경종을 울렸다. 화재 자체는 정신질환자인 방화범 김대한의 방화로 일어났지만, 여러 안전 메뉴얼이 부재하면서 결국 343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악의 참사로 끝나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철도안전 시스템이 대대적으로 개혁되었고[11] 덕분에 이 사고 이후에도 여러 모방범죄[12]가 있었지만 대형 참사로 번지지 않았다.[13]

4. 이라크 전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59px-AirForce_over_Iraq.jpg
이라크 영공을 비행하는 미영 전투기.

그해 3월 20일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며 국제 정세는 혼란에 빠진다. 이미 직전 해인 2002년 보고서 채택을 통해 이라크에 대한 무력침공을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미국은 후세인 부자가 48시간 최후통첩을 씹자 바로 침공에 들어갔다. 91년 걸프전 때와 달리 2003년 이라크군은 거의 전력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미군의 폭발적인 공세에 밀려 결국 2주만에 바그다드가 함락되었다. 이로써 후세인 정권은 24년만에 종말을 고했으며, 이라크 주민들은 미군의 진격에 환호하며 후세인 동상을 부수는 등 미군을 환영으로 맞이했다. 후세인은 자신의 고향 티크리트에 은거하며 아들들과 함께 도망하는 도망자 신세가 됐다가, 2003년 12월 전격 체포되어 전범재판에 피고인으로 서게 된다.

후세인 정권의 붕괴로 이라크 주민들은 평화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였지만...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고 이후 21세기 내내 중동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는 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민간정부가 세워지고 미군까지 승전을 선언하며 철수하였지만, 후세인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함께 찾아온 혼란이 낳은 내전은 현재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라크 전쟁은 현재 와서 실패한 전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베트남 전쟁과 더불어 미국의 가장 큰 오판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라크 전쟁 문서 참조.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이 종말되면서, 세계는 20세기의 잔재와 완전한 결별을 이루었다. 1990년대까지 중동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탈레반 정권과 후세인 정권의 바트주의 이라크가 무너지고, 오랜 내전체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라크 전쟁이 발생하고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된 이듬 해 2004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21세기 중동 정세의 판이 맞춰졌다.

5. 경기도 서울의 인구수를 추월하기 시작한 해

경기도 도민의 인구가 천만명을 기록하고 서울특별시 시민의 인구를 처음으로 추월한 해이다. 직전 해인 2002년까지만 해도 경기도 내 인구가 970~980만명대로 천만명을 못 넘기는 상황이었는데, 2003년에 접어들어 서울과 인천 및 지방 소도시에서 인구유입이 이루어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3년 2월 경기도의 인구는 천만을 넘었으며 연말 들어 서울의 총 인구를 뛰어넘었다.

경기도 인구의 증가는 출산에 의한 자연적 증가가 아니라, 생활여건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울의 비싼 집값과 전셋값 폭등을 피해 상대적으로 주거비가 저렴하고 교통 여건도 나쁘지 않은 경기도로 전입하는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 또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존 서울에만 집중되던 개발이 경기도 및 위성도시로 확대되어 인프라로도 서울에 별로 꿀리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이 후 경기도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2023년 현재는 서울과 인천의 인구수를 합친 것보다도 인구가 많다. 급격한 인구유입으로 인해, 경기도에 있는 고등학교들은 공립학교 남녀공학인 경우가 90% 이상일 정도로 남녀공학의 비율이 높다.

6. 지하철 풍경의 변화 원년

2003년에 발생한, 사회적 약자가 저지른 2건의 대형사고[14]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지하철 풍경을 상전벽해급으로 바꿔놓았다. 각 전동차량의 내장재가 불연재로 교체되면서 푹신푹신한 가연재 직물 시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충무로역, 신금호역 등지에 있던 인공암벽도 화재시 유독가스를 내뿜는다는 지적에 따라 철거가 검토되기 시작했다. 또한 각 지하철 역마다 스크린도어 설치가 본격적으로 검토되었다.[15]

7. 2003년 문화계

소위 ' 인터넷 소설'이 귀여니를 필두로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도 이 해이다. 그 외에 와피스 사건, 팥죽송, 존나세, 엽기 국어듣기평가(전국욕설듣기평가), 연꽃소녀 같은 비범한 컨텐츠가 출현했던 해이기도 하다. 웹툰에서는 역사상 큰 획을 그은 해이기도 한데 강풀의 순정만화가 세로 스크롤 형식의 웹툰을 정립하고, 장편 웹툰도 다른 매체의 장편 작품들처럼 흥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가정용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2의 한국 출시 1주년을 맞이하여 SCEK가 업소용 플레이스테이션 2를 정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했고, 영상등급물위원회에서 업소용 플레이스테이션 2의 사용가능 게임 지정이 발표되었으나 이전에 이미 영업 중인 대부분의 플스방들이 불법 영업소로 취급당하는 문제가 발생하여 한동안 분쟁이 이어지기 시작한 해이다. 또한, 도타가 만들어져 AOS 장르의 서막을 연 해이기도 하다.

7.1. 변화기를 맞은 방송계

2003년은 대한민국 방송가와 연예계에 큰 변화새로운 태동기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가요계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인기를 끌은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시기다. 2세대 아이돌들이 등장하기 전이었으며, 아이돌 그룹들이 힘을 못 쓴 대신 솔로가수였던 임창정, 이정현, 보아, 장나라 등이 여전히 건재했다. 음악시장 역시 불황기였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음반업계 측은 온라인 음원사이트에 강경하게 법적 대응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이 법정 투쟁은 음반업계에 유리했지만 이렇다할 대안이 없었다.

음반 시장에서는 기성 가수들 중 김건모가 8집을 내 총 52만장으로 당해 최고기록을 달성했고, 이수영은 5집으로 42만 5천장, 조성모는 39만 8천장 등을 각각 기록해 발라드 강세는 여전했다. 또 '가왕' 조용필이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어 폭풍 매진을 달성했다.

보이그룹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데뷔했던 NRG, 신화,[16] god,[17] 클릭비, 2000년에 데뷔한 UN이 많이 활동했다. 그 중 NRG가 2년 만에 'Hit Song'을 통해 큰 인기를 얻어 각종 1위와 시상식에서의 본상을 수상하는 등 예전에 비하면 보이그룹계 전체적으로 부진한 성적이었어도 사정이 그나마 나았지만 걸그룹은 그야말로 암흑기 그 자체였다. S.E.S., 핑클이 2002년을 끝으로 물러가면서 여러 기획사에서 걸그룹을 데뷔시켰으나 모두 실패했다. 심지어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마저도 걸그룹 시장에 실패했으니 당시 얼마나 아이돌들의 암흑기가 심각했는지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본전을 뽑은 걸그룹이 베이비복스, 샤크라, 쥬얼리, 슈가였다. 이러한 걸그룹 암흑기는 2007년 카라,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데뷔하고 아이돌 전성기가 시작된 2009년 이전까지 약 5년간 이어졌다.

반면 지난해의 보아 장나라에 이어 이효리 이수영의 활약으로 인해 여성 솔로 가수들의 양강구도가 이어졌다. 먼저 이효리는 소위 '이효리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그녀는 각종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번의 1위 수상은 기본에 각종 가요 시상식들에서 대상 수상뿐만 아니라 그녀의 패션이나 춤, 노래 등이 대중에게 큰 관심을 넘어 신드롬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로 이 2003년을 그녀의 해로 만들었다. 실제로 이효리는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과 KMTV 코리안 뮤직 어워드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서울가요대상 대상, SBS 가요대전 대상, KBS 가요대상 대상 등 연말의 수많은 주요 가요시상식들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이수영은 자신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덩그러니'가 수록된 정규 5집이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그 해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이효리를 꺾고 대상을 차지하였다. 참고로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은 조성모가 수상하였다.

한편 임창정이 이해 6월 10집 앨범 "BYE"[18]를 끝으로 가수 은퇴를 선언한다고 밝혔다.[19] 전 해 밝은 분위기의 'Sea Of Love'로 이름을 알린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2000년대 발라드의 정석과도 같은 곡인 'Missing You'로 인기를 모은다.

또한 음치가수로 유명세를 떨친 이재수 2001년 서태지 Come Back Home을 패러디하여 그에 대하여 씁쓸하게 앨범 판매 금지라는 맛보았는데, 그는 음치가수 컨셉을 버리고 이재수밴드라는 이름으로 송대관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차표 한 장'과 발라드곡 '일기장', 자신의 처지를 나타낸 'Normal man', 'Game of pain', 그의 동생 이승주가 직접 작곡한 '미안해요'를 발표하여 뮤지션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였다.

한편 이 해부터 본격적으로 음반시장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음원시장으로 완전히 판도가 바뀌게 된다.[20] 그 결과, 2003년 전체 음반판매량은 2002년에 비해 800만장 이상 줄어들었다.

드라마계에서는 영화 시장 못지 않은 엄청난 황금기를 보낸 해로 평가 받는다. 지금도 회자되는 레전드급 작품들이 많이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MBC의 대장금, 다모, 옥탑방 고양이와 SBS의 올인, 천국의 계단이 그렇다. 그 외에도 장희빈, 반올림 등 작품도 흥행에 성공하며 다변화된 장르가 안전하게 정착된 시기로 평가된다.

방송계에서는 내부적으로 민주화의 진전이 전보다 폭넓게 보이기 시작한 때인데,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언론인 서동구가 KBS 사장으로 임명됐으나 그가 전년도 대선 때 노무현 캠프에 몸담았다는 이유로 노조가 '낙하산'이라 규탄하며 파업을 일으켜 서 사장을 퇴진시켰고, KBS 이사회 측은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진보 언론인 정연주를 사장으로 선임해 종전의 내리꽂기식 선임구조를 바꾸고자 노력했으며, 신임 사장 정연주는 전임 사장들과 달리 기자 및 프로듀서들의 제작/편성권을 자유롭게 보장해줬다.

시사/교양쪽에서는 공영방송 KBS가 보수/극우 세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물현대사>, <한국사회를 말한다>, <미디어 포커스>, <생방송 시사투나잇> 등 진보적인 프로그램들을 잇따라 편성해 관영방송 이미지를 씻고자 했으며, 예능계에서는 일요일은 101%, 웃음을 찾는 사람들, X맨을 찾아라, 야심만만 같은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들을 준비하여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KBS2 간판 개그프로 <개그콘서트>는 심현섭, 박성호, 김준호, 김대희 등 기존 인기스타들의 SBS 이적에도 불구하고 '갈갈이 패밀리' 사단을 중심으로 인기를 이어나갔으며, 전년도 <도레미 트리오>, <박준형의 생활사투리>에 이어 <우비 삼남매>, <대단해요> 등 킬링코너를 배출해 무명이던 권진영을 스타로 만들어줬다.

그리고 방송 기술도 새로워졌는데, 특히 자막과 CG도 많이 발전을 해 바뀌었다. 특히 2001년 ~ 2002년까진 일부 방송에서 1990년대 중후반에 많이 쓰이던 휴먼엑스포체와 HY태백체가 간간이 보였는데, 직전 해인 2002년에 빠르게 감소하며 이 해부터는 거의 사라졌다. 1993년부터 사용한 KBS의 녹색 로고도 이 해부터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7.2. 황금기를 보낸 영화계

가장 한국 영화가 좋았던 시절. 가장 한국 영화의 창의력이 정말 굉장한 에너지를 보여주었던 시절하면 아무래도 2003년이 아닌가.(중략) 2003년은 정말 한국 영화의 화양연화 같은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동진[21]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들 중 하나인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이 개봉하여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특히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면서 그야말로 영화계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해가 되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인 지구를 지켜라!도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비평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그 외에도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장화, 홍련, 클래식, <질투는 나의 힘>, 여고괴담 3 - 여우 계단과 같이 다양한 장르의 수작들이 개봉하여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영화 팬들에게는 축복과 같은 해. 이동진 평론가는 2003년을 한국 영화의 화양연화라고 표현하였다.

그 한국 영화계 입장에서 2003년이 특히 의미 있는 것이, 바로 직전해인 2002년에 긴급조치 19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따위가 개봉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한국 영화계를 붕괴시킬 수도 있었던 때였기 때문.[22] 한국 영화계에 상업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일도 있었는데 이 해 12월 실미도가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 관객을 달성하며, 천만 관객 돌파 영화라는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기준점이 만들어졌다.

7.3. 스포츠계 e스포츠계

스포츠계에서는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당시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인 56홈런을[23] 쳐낸 해로 이 해 가을 전국 야구장의 외야 관중석이 홈런볼을 낚아 채려던 잠자리채로 북적이기도 했다.[24] 아울러 어윤태 사장-유성민 단장- 이광환 감독 체제를 택한 LG 트윈스 6668587667을 찍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2000년 창단한 SK 와이번스가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해이기도 하다. 정규시즌 한때 1위 자리를 꿰찼던 SK는 후반기 부진 끝에 4위로 포스트시즌 문턱에 턱걸이했으나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각각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를 2전 전승, 3전 전승으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랐으나 정규시즌 우승팀 현대 유니콘스가 SK를 4승3패로 꺾고 3년 만에 왕좌에 올랐다.

미국 MLB에선 약체팀 플로리다 말린스가 노장감독 잭 맥키언의 주도 하에 팜 출신 선수들을 주축으로 WS까지 올라가 제왕 뉴욕 양키스를 꺾어 6년만에 트로피를 들었다. 반면 시카고 컵스는 14년만에 NLCS까지 가 WS 진출 기회를 노렸으나, 6차전 파울볼 사태 때문에 WS 진출을 13년 뒤로 미루고 말았다.

해외축구에서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 팀끼리 만나 AC 밀란 유벤투스를 승부차기로 제압하고 통산 6번째 왕좌에 오르며 밀란 제너레이션의 부활을 알렸다. UEFA 컵 결승에서는 주제 무리뉴 감독의 FC 포르투 셀틱 FC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징이었던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며 갈락티코 군단의 절정을 이루었다. 러시아의 부호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FC를 전격 인수하며 첼시는 로만 체제를 시작하게 됐다. 여름에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가 개최되었는데 카메룬의 비비앙 푀가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하며 2005년 대회부터 2년 간격이 아닌 4년 간격으로 개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e스포츠계에서는 대회에 많은 변화들이 생기는데 먼저 그동안 2002년 네 번의 정규시즌을 진행한 KPGA 투어는 MBC GAME이 정식으로 Stout MSL을 시작으로 MBC GAME 스타리그를 런칭시키면서 본격적으로 개인리그는 양대 리그 체제에 돌입한다. 또한 온게임넷 스타리그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최초의 로고와 엠블럼이 공대되면서 사용되었고, 스폰서 캐치프레이즈 사용 시작, 스타리그 오프닝에 사용될 선수들의 이미지를 직접 촬영하고 제작하기 시작하는 등 큰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한빛 스타즈 아이디얼 스페이스의 양대체재하에 군소 프로게이머 단체가 통합되고 이후 동양 오리온, KTF 매직엔스, GO 등의 팀들이 하나둘씩 대두되고 팀 팬덤이 생겨나는 것으로 인해 온게임넷 프로리그, MBC GAME 팀리그가 생겨나는 등 본격적인 공식 팀단위대회가 시작되었다. 반면 기존의 공식 대회였던 GhemTV 스타리그는 GhemTV 방송국의 위기로 3차 대회까지만 진행되고 폐지되어 버리고, 훗날 GhemTV는 게임TV로 하반기에 재탄생 하게 된다. 그리고 역대 최대 규모의 이벤트 대회였던 KT-KTF 프리미어 리그도 이 해에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그런가하면 이 해 7월, 강원도 평창군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첫 도전을 하였던 해이기도 하였지만 아쉽게도 캐나다 밴쿠버에게 3표차로 탈락하였다.[25] 이 당시 IOC 위원으로 있었던 김운용은 IOC 부위원장 출마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방해공작을 펼쳤다는 논란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8. 사건

8.1. 실제

8.1.1. 1월

8.1.2. 2월

8.1.3. 3월

8.1.4. 4월

8.1.5. 5월

8.1.6. 6월

8.1.7. 7월

8.1.8. 8월

8.1.9. 9월

8.1.10. 10월

8.1.11. 11월

8.1.12. 12월

8.2. 가상

9.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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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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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별들이 진 한 해

2003년은 2022년과 더불어 유독 유명인들의 사망소식이 많이 들렸던 한 해였다. 영국의 록밴드 비지스 모리스 깁, STS-107 승무원 7명, 프랑스의 축구선수 알프레드 아스통, 홍콩의 영화배우 장국영,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육우당, 미국의 영화배우 캐서린 헵번, 독일의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 미국의 컨트리가수 조니 캐쉬, 엘리엇 스미스, 홍콩의 영화배우 매염방 등이 이 해에 사망했다.[40]

정/재계 인사들 중에서는 현대그룹 회장 정몽헌,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주인 서성환,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교보그룹의 창업주인 신명호, 삼풍건설산업의 건물주 이준,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 여사, '허주' 김윤환(1932) 등도 이 해에 사망했다. 이 밖에 김승훈 신부, 여행가 김찬삼 등도 작고했다.

11.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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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은퇴

12.1. 가요계

12.2. 스포츠

13. 히트작

13.1. 드라마/시트콤

13.2. 영화

13.3. 애니메이션

13.4. 가요

13.5. 개그 코너

13.6. 게임

13.7. 특촬

14. 유행어

15. 최초

15.1. 방송 프로그램 및 코너

15.1.1. TV

15.1.2. 라디오

15.2. 인터넷 웹사이트

16. 출시 상품

16.1. 자동차

16.2. 식음료

16.3. 생활용품

17. 관련 문헌

18. 달력

1월 2월 3월
1 2 3 4 1 1
5 6 7 8 9 10 11 2 3 4 5 6 7 8 2 3 4 5 6 7 8
12 13 14 15 16 17 18 9 10 11 12 13 14 15 9 10 11 12 13 14 15
19 20 21 22 23 24 25 16 17 18 19 20 21 22 16 17 18 19 20 21 22
26 27 28 29 30 31 23 24 25 26 27 28 23 24 25 26 27 28 29
30 31
4월 5월 6월
1 2 3 4 5 1 2 3 1 2 3 4 5 6 7
6 7 8 9 10 11 12 4 5 6 7 8 9 10 8 9 10 11 12 13 14
13 14 15 16 17 18 19 11 12 13 14 15 16 17 15 16 17 18 19 20 21
20 21 22 23 24 25 26 18 19 20 21 22 23 24 22 23 24 25 26 27 28
27 28 29 30 25 26 27 28 29 30 31 29 30
7월 8월 9월
1 2 3 4 5 1 2 1 2 3 4 5 6
6 7 8 9 10 11 12 3 4 5 6 7 8 9 7 8 9 10 11 12 13
13 14 15 16 17 18 19 10 11 12 13 14 15 16 14 15 16 17 18 19 20
20 21 22 23 24 25 26 17 18 19 20 21 22 23 21 22 23 24 25 26 27
27 28 29 30 31 24 25 26 27 28 29 30 28 2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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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월 12월
1 2 3 4 1 1 2 3 4 5 6
5 6 7 8 9 10 11 2 3 4 5 6 7 8 7 8 9 10 11 12 13
12 13 14 15 16 17 18 9 10 11 12 13 14 15 14 15 16 17 18 19 20
19 20 21 22 23 24 25 16 17 18 19 20 21 22 21 22 23 24 25 26 27
26 27 28 29 30 31 23 24 25 26 27 28 29 28 29 30 31
30



[1] 2003년 12월에 외국인 관광객이 촬영한 영상이며 당시 서울 명소를 제대로 담았다. [2] 2003년 5월에는 하와이에서 이민 100주년 기념 행사와 콘서트가 성대하게 열리기도 했다. 보아, NRG 등이 참여했다. [3] 단 1월은 상순과 하순의 한파로 조금 낮았다. [4] 다만 범위를 8월로 한정하면 2022년 8월의 최고 극값이 32.9도를 기록하면서 아슬아슬하게 폭염일수가 기록되지 않은 8월이 되었다. 7월은 이 해 이후에도 2006년~ 2010년, 2013년, 2020년에 폭염일수가 기록되지 않았다. [5] 다만 2003년까지는 민주계, 민정계, 동교동계 등 정당 내 기존 계파들이 힘이 여전히 강력했고 김종필 등 중진 정치인들이 여전히 현역이었던 시절이라 완벽한 세대교체라고 말하긴 무리가 있다. 엄연히 노무현이 정권을 잡았다지만, 새천년민주당 내 친노계는 여전히 동교동계와 대립하는 관계여서 주류로서 제대로 된 파워를 행세하지 못했다. 결국 2003년 말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며 친노 세력이 떨어져나갔고, 이듬 해 총선에서 탄핵 사건의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1당을 차지하고 기존 중진 정치인들이 줄줄이 은퇴하면서 완벽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게 된다. [6] 배달호, 이용석, 김주익, 이경해 등 노동자/농민들이 잇달아 자살을 택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이 때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 는 입장을 냈고 이에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하기도 했다. [7] 이 때 노무현도 민주당을 탈당했다. 다만 열린우리당 입당은 이듬 해 5월에 이루어졌다. [8] 공사 시작 2년 뒤인 2005년에 최종 완공되었다. [9] 다만 주석 자리는 물러났지만 공산당 군사위원회 서기 직은 2005년까지 2년을 더 맡았다. [10] 물론 앞뒤 해인 2002년 2004년에 워낙 큰 사건들이 많아서 그 중간에 낀 2003년이 상대적으로 뭍힌 감도 없지 않다. 2002년은 월드컵에서의 4강 신화와 대통령 선거 등 재밌고 임펙트 있는 사건들이 많았지만 2004년에는 안 좋은 일들만 여러차례 터졌다. [11] 참사 이듬 해인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전국의 모든 지하철 객차 내 시설을 불연재로 바꾸었고, 비상시 대피 요령을 전동차에서 승객들에게 수시로 안내하는 것으로 메뉴얼이 바뀌었다. 또한 전국 지하철역 내 비상등과 비상 타일 등이 대대적으로 교체되어 화재 상황에서 승객들이 쉽게 경로를 파악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12] 2005년 서울 지하철 7호선 방화 사건과 2014년 도곡역 열차 방화 사건이 대표적이다. [13]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한국의 건축 안전 매뉴얼을, 교육계의 안전불감증을 세월호 참사가 대대적으로 변화시킨 것과 동일한 과정이다. [14]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대구 지하철 참사 노숙자가 저지른 회현역 지하철 떠밀기 사건 [15] 스크린도어 설치 공사로 인해 가장 크게 변모한 역이 상술한 지하철 떠밀기 사건이 발생한 회현역이었다. 보라색 벽면과 승강장 기둥 장식이 스크린도어 설치 공사 과정에서 뜯겨져 나갔다. [16] 단 이 시기의 신화는 SM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등 그룹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17] 2003년 상반기 조금을 제외하고는 아예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다음해인 2004년에는 멤버인 윤계상이 탈퇴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18] 임창정 대표곡 중 하나인 "소주 한 잔" 이 수록된 앨범이다. [19] 원래 이전부터 10집까지만 음반을 내고 가수를 은퇴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가수와 배우 활동을 병행하는 것에 지쳐 연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보기 위해 가수 활동을 접은 것이라고 밝혔다. [20] 사실 밀리언셀러는 2001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으나, 2002년까지는 밀리언셀러 앨범은 없었어도 월드컵으로 인한 가요계 불황, 무료/불법다운 증가 등 여러가지 요소가 겹쳤었고 또한 앨범이 꽤 팔리던 때였다. [21]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29 [22] 하지만 장준환 감독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가 잘못된 마케팅 때문에 손해를 봐야만 했다. [23] 이 기록은 10년 뒤인 2013년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60개의 홈런을 쳐내며 경신하게 된다. [24]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즌 이후부터 야구장에 잠자리채를 가져오는 행위는 금지됐다. 경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물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5] 1차 투표에서 앞서서 유치를 이루는 듯 하였으나 2차 투표에서 밴쿠버에 밀려서 역전패로 결국 탈락하였다. [26] 본격적 사용은 2004년부터. [27] 첫 적용대상은 전임 주석 후진타오. [28] 원래 8명이 사망했으나, 몇달 뒤에 사망자 1명이 추가되어 9명으로 늘어남. [29] 이렇게 되면서 수원역은 1호선은 29년만에 종착역 지위를 잃게 된다. [30] 그 후 2013년 어버이날 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10점차 역전승으로 최다점수차 역전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31] 그리고 17년 후 이 날, KIA는 현대의 뒤를 이어 수원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kt wiz와의 수원 원정경기에서 kt의 2020 시즌 첫 영봉승의 제물이 되었다. [32] 10년 뒤에 일본 야쿠르트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60홈런을 기록하면서 깨졌다. [33] 공교롭게도 해당년월일이 뽀로로의 탄생년월일이다. [34] 이 영화가 개봉되면서, 도시에서 구조물을 이용해 맨몸 스턴트를 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국내에서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 영화의 첫 개봉은 2001년 4월 4일 프랑스이다. [35] 공사기간: 2000년 5월 22일~ 2003년 12월 30일 [36] 현 서울역사의 영업 시작은 2004년 1월 1일. [37] 8월 1일부터 8월 5일까지의 5일간을 다룬다. [38] 4월부터 8월까지의 4개월간을 다룬다. [39] 정확히는 목 수술을 위해 쉬는 것이고 이후 변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는 이후 16세에 정식으로 자기 이름으로 재데뷔한다. [40] 특히 장국영과 매염방의 죽음 중 홍콩을 넘어 아시아 사회를 공황 상태에 빠트릴만큼 충격적인 죽음으로 각인되었다. [41] KBS2 재방영 [42] 2003년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 수상곡 [43] 이영현의 솔로곡. [44] 사실 다른 엽기송도 히트를 치긴 했지만 그 중에서도 숫자송과 당근송, 우유송은 1990년대~2000년대생이라면 거의 누구나 알 정도로 파급력과 인지도가 굉장하다. 물론 2020년대인 지금은 핑크퐁에 밀려 인기가 다소 떨어졌지만 그래도 유튜브 밈이나 유치원 학예회 등으로 쓰일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은 편이다. [45] 2003년 MBC 최고인기가수상 수상곡 [46] SBS 드라마 야인시대 2부의 메인 테마곡이다. [47] 2003년 KBS 가요대상 대상/SBS 가요대전 대상/서울가요대상 대상/KMTV 대상/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 수상곡 [48] 두 노래 모두 2001년에 발표되었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은 영화 클래식, <보물>은 영화 선생 김봉두 삽입곡으로 유명해졌고, 그 중 <보물>이 2006년 개그콘서트 마빡이에 다시 사용되었다. [49] 2003년 골든디스크 대상 수상곡 [A] Absolution 수록곡 [A] Absolution 수록곡 [52] 개그콘서트 - 봉숭아 학당의 '노통장'. [53] 코미디하우스 - 3자 토론에서 자주 사용했다. [54] 6년 후인 2009년 개콘 남성인권보장위원회에서 개그맨 박성호가 이 발언을 따라했다. [55] 이쪽은 폭소클럽에서 나온 유행어이다. [56] 극 중 어린 장금 역 [57] 2003년 5월 8일 해피투게더에서 처음 나왔다. [58] 이 유행어들은 신혜성이 2003년 신화의 공홈 메세지보드에서 처음 사용한 유행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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