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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튀르키스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중국과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단체들을 설명하는 문서이다.2. 상세
위구르인들이 만든 동튀르키스탄의 깃발[1] |
동튀르키스탄의 국가 구원행진곡(Qurtuluş Marsi) |
위구르의 국장: 동튀르키스탄 제1 공화국 당시에도 쓰였으며, 지금도 비공식적으로 위구르의 파란 월성기와 함께 위구르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쓰기도 한다.
2014년 경찰 당국이 테러모의혐의로 체포했다고 발표한 위구르인들 |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는 약 50개가 있다. 한동안 위구르의 대모(代母) 레비야 카디르(رابىيه قادىر)가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 정부에서 반동분자로 찍혔으며 국외로 추방당한 상태다.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 14세만큼 가장 싫어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이후 레비야 카디르 한 명으로는 위구르인들의 의견을 전반적으로 반영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생기자 티베트 망명 정부를 벤치마킹하여 2014년 독일 뮌헨에서 세계 위구르 회의를 설립한다. 물론 중국에서는 해당 단체도 테러 단체라고 주장하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이사 위쉬프 알프테킨(1901~1995), 신장성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국민당에 소속되어 있던 알프테킨은 에흐멧잔 카심(ئەخمەتجان قاسىمى, Exmetjan Qasim, Әхмәтҗан Қасим)을 필두로 한 신장평화민주수호동맹의 지도부가 1949년 9월 소련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추락사고로 숨지면서 신장이 중국 공산당에 병합될 것을 우려하여 히말라야를 거쳐 인도령 카슈미르에 있는 라다크에 도착, 튀르키예로 망명했다. |
이제 95세에 이른 이사 위쉬프 알프테킨께서는 동튀르키스탄(Doğu Türkistan) 뿐만 아니라 튀르크 세계 전체를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투쟁으로 이사 위쉬프 알프테킨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튀르크 세계의 독립과 정의,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그의 공로는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 위대한 지도자의 이름을 딴 이 초라한 공원은 우리에게 언제나 그의 위대한 과제를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동튀르키스탄은 튀르크 민족들의 본거지일 뿐만 아니라 튀르크의 역사, 문명, 문화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잊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역사, 문명, 문화의 무지로 이어질 것입니다. 동튀르키스탄의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의 순교자들입니다. 그들의 기억을 영원토록 하고 그들의 혼에게 희열을 주기 위해 우리는 동투르키스탄 순교자들에게 이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들의 투쟁이 항상 기억되기를. 오늘날 동튀르키스탄인들의 문화가 체계적으로 한화(漢化)되고 있습니다.
1995년 7월 28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이스탄불 시장
1995년 7월 28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이스탄불 시장
튀르키예에서는 위구르 독립운동에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많으며, 반중시위를 벌이기도 한다.[2] # 1940~70년대 상당한 위구르인들이 튀르키예로 이주했으며 그 중에는 동튀르키스탄 독립운동의 지도자들인 메흐메트 에민 부으라(Mehmet Emin Buğra, محمد أمين بۇغرا), 이사 위쉬프 알프테킨(İsa Yusuf Alptekin, ئەيسا يۈسۈپ ئالپتېكىن) 같은 신장성 고위인사들도 있다. 이외에도 튀르키예는 최근까지 동남아 방면으로 탈출하는 위구르인들에게 몇차례 손을 내밀어준 바 있으며, # 2012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총리는 우루무치에 방중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튀르키예와 중국은 종종 위구르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기도 한다. #1, 2# 튀르키예가 범튀르크주의를 표방하고 에르도안 정부가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며 맹주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신경쓰는 사람이 많다. 다만 에르도안 정부가 중국과의 우호를 도모하는 탓에 일부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들은 해외로 이동하였으나 어차피 튀르키예는 남유럽과 중동에서 강한 국가라 위구르 독립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카자흐스탄 등 옆동네 튀르크계 공화국들은 국민 개개인들은 반중감정이 대단히 심하고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인들은 위구르인에게 연민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각국 정부 차원에서는 중국과 적당히 친하게 지내려는 정책을 펴고 있어서[3] 역시 위구르의 독립운동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위구르인 인권 문제는 높은 관심을 받고 있으나, 독립운동을 놓고 보면 티베트 독립운동과 비교하면 늦게 알려지기 시작한 편이다. 위구르인을 신장 재교육 캠프에 가둬서 고문하고 탄압하며 강간도 수시로 발생하고 중국 공산당에 대한 찬양교육과 가임기 여성에 대한 불임수술, 낙태, 감시, 심지어 부모와 자식을 격리하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 중국 당국은 위구르 전통 문화재까지 파괴한다. 쿠르드족 독립 문제나 카슈미르 문제와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의 이권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위구르 독립운동은 지지하고 지원하기가 껄끄럽다.
2021년 월간조선에서는 워싱턴 D.C.의 동투르키스탄 망명정부 지도자 살리 후다야르와 인터뷰를 가졌다. #
2.1. 무장투쟁
동튀르키스탄 인민혁명당(위구르 공산당)이 예전부터 지속적인 무장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대원들 |
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수장인 에미르 압둘 하크 알 투르키스타니(Emir Abdul Haq Al Turkistani, 1971년 10월 10일 ~ ). 중국 정부의 제거 1호 대상이다. 2010년 2월 15일에 중국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사망한 줄 알았지만 부상만 당했지 생존하였고 2014년 6월에 치료를 끝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위구르 무장단체들 중 가장 큰 조직인 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ast Turkestan Islamic Movement, ETIM)은 중국을 상대로 폭력적인 무장투쟁독립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게릴라전, 폭발물과 독극물을 통한 인명살상, 암살 등을 통한 테러를 일으켜 중국 정부 역시 ETIM을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규정하고 군경을 동원해 소탕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그 실체가 불분명한 단체로 전락했다. 왜냐하면 탈레반이 2001년 이래로 합류한 외부 무장단체를 미군에 맞선 총알받이로 내세워 줄곧 소모시켰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기본적으로 파슈툰 최상부가 우즈벡, 타지크, 투르크멘 등의 비파슈툰계 무장단체를 지휘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따라서 미군의 공습에서 가장 먼저 죽음에 내몰린 것은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이하 IMU)이었다. IMU의 리더인 타히르 욜다쉬는 2009년, 행동대장이었던 주마 나망가니는 그보다 앞선 2001년 각각 미군에게 사살되었다. 그리고 IMU는 타히르 욜다쉬의 아들 손으로 넘어가면서 2010년까지 근근히 명맥을 이어갔지만 최근에는 탈레반 조직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과거 우즈베키스탄을 위협하고 키르기스스탄 남부를 유린하고, 타지키스탄 내전까지 개입하며 큰 위세를 떨친 IMU가 이렇게 와해된 현재, ETIM처럼 규모도 작고 조직력도 허술한 군소단체가 살아남을 확률은 높지 않다. 현재는 투르키스탄 이슬람당으로 개명했다고 하나 역시 그 활동은 거의 감지되지 않으며, 결국 2020년 11월 5일, 미국이 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을 해외 테러단체(FTO)에서 지정 해제했다. # #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국내의 모든 테러사건을 ETIM이 기획한 것이라 주장하며 한껏 경각심을 높이지만, 지금까지 위구르족에 의해 발생한 테러의 양상을 보면 대부분 테러범이 독자적으로 기획한 것으로 ETIM과의 연관성에 대한 증거는 중국의 말 뿐이다. 무엇보다도 ETIM의 활동은 2016년 여름을 기점으로 뚝 끊긴 상태인데, IMU의 조직원 대부분이 우즈벡인이었던 것처럼 ETIM도 위구르인을 모집해야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
신장에서 중앙아시아로 넘어가는 밀입국 루트는 굉장히 제한적이며 다프타르의 중-아프간 국경은 2001년 이래 현재까지도 폐쇄된 상태이다. 최근까지 위구르인의 유일한 탈출구는 바로 윈난성을 이용해 태국 등 동남아 방면으로 도주하는 길이었다. 2014년 발생한 쿤밍역 칼부림 테러 역시 이 동남아 루트와 관련이 있다. 쿤밍역 사건은 사실 ETIM이 기획한 조직적인 테러범죄가 아니라 윈난성을 경유해 동남아로 탈출하려는 위구르 일가족이 윈난성 탈출구마저 차단되자 극단적인 자폭행위를 벌인 것이다. 실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모두 일가족이었으며 그 가운데는 임신부도 있었다. ETIM은 물론이고 IMU와 탈레반 모두 여성을 전장에 내보내진 않는 편이다. 기사 원문[4]
최근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활동하는 ETIM 대원들의 무장 상태가 진보된 것이 확인됐다. #
3. 가능성
한족과 동화되기는 했어도 아직은 티베트족이 대부분인 티베트 자치구와는 다르게 위구르 자치구는 위구르족 외에도 한족과 나머지 민족들이 많이 존재하며, 지역에 따라 민족 비중이 크게 다르다.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한족의 비율은 41% 가량이며, 한족의 이주로 인해 증가하다가 2000년 이후 위구르인의 비율은 늘고 한족 비율은 오히려 감소하게 되었다. 2020년대 현재는 신장 재교육 캠프 등의 통제정책도 있지만, 회의를 느낀 한족의 이탈도 있어 비율 변화를 알기 힘들다. 위구르족(45%), 비위구르족(55%)이다.신장 위구르 지역은 유전이 존재하는 데다,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교류하고 중동이나 남아시아 서북부 지역까지 자신들의 영향을 손쉽게 펼쳐나갈 수 있는 지역이고, 한족이 4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중국은 신장의 독립을 허용할 리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신장 지역으로 묶여도 남부와 북부는 차이가 난다. 신장 지역 북부( 중가리아)는 건륭제가 준가르족을 제노사이드할 때까지 원래 티베트 불교가 주류인 몽골계 민족들[5]이 살던 곳으로, 현재는 한족이 많아졌기 때문에 갈등이 더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기어이 독립하겠다면 분할 독립은 불가피할 것이며 애매한 지역을 어떻게 할지의 갈등, 국가가 분할되는 가정에서 인도 분단이나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 수준의 우여곡절이 예상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리스인과 튀르키예인은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언어( 그리스어/ 튀르키예어)와 종교( 정교회/ 이슬람)으로만 서로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혈통, 문화적으로 엄청나게 섞여 살아 왔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서로 거의 통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족과 위구르족의 관계와는 동일선상에 놓기 힘든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6] 그리고 저 두 나라들은 래드클리프 선, 로잔 조약으로 서로의 영역에 대해 합의를 본 상태였다. 신강의 지도를 보면 한족-위구르족-카자흐족 외의 주요 거주지가 칼같이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데, 애초에 경계선이 없던 곳에 누구 땅인지를 가르겠다면 보스니아의 사례에서 보듯 내전을 거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지역은 한족과 위구르족만 사는 것이 아니라 회족, 몽골족,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우즈베크인, 사리콜리인와 와키인[7], 토르인[8] 등과 같은 이슬람 혹은 중앙아시아계 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멀리 갈 것도 없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의 중앙아시아 5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도 이러한 민족간 갈등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바 있다. 비한족-비무슬림인 시버족 또한 원주지인 만주에 사는 동포들과 별도로 이 지역에 사는 집단이 있다.
중국으로서는 홍콩이나 티베트 등의 분리주의를 자극할 가능성이나 중국 내부에서 공산당의 위상 하락 가능성도 분리 독립을 막는 요인이다. 그렇지만 중국공산당이 무너진다면 분리독립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수도 있다.[9]
2020년 이후 중국의 인권 탄압은 심해지는 반면 국제사회의 제재와 비난 여론도 늘고 있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 티베트 독립운동에 비해서 인지도가 낮았던 것과 다르게 오늘날에는 중국의 위구르 인권 탄압이 매일 해외토픽에 오르내리고 위구르 문제에 대한 세계의 인지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서 Clubhouse 앱에서 사람들이 위구르 문제에 대해 일반 중국인들이나 중국 내의 위구르인들이 토론을 했다고 한다.
4. 관련 문서
[1]
튀르키예 국기를
파란색으로 바꾼 디자인을 하고 있다. 당연히 중국 내에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2]
일례로 튀르키예 극우파의 위구르 문제와 관련한 반중시위에 애먼 한국인들이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린치를 받기도 했다.
#
[3]
중앙아시아 각국은 대부분
친러에 비교적 가까운 나라들이고, 러시아와 중국은 따지고 보면 사이가 좋지만은 않지만
더 강력한 공통의 적이 있어 국제정세상으로는 적당히 협력하는 편이다.
[4]
위구르족 관련해 10년 이상 연구한 전문가의 글이다. 다만 반중 시각으로 적혀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읽을 것. 당장 이 문서에서도 이슬람주의 세력과 독립운동 세력을 동일한 문서에서 작성하기 때문에 둘이 혼동되기 쉽다.
[5]
대표적으로
오이라트인.
[6]
그리스 튀르키예 인구 교환 당시에는 그리스인과 튀르키예인은 칼처럼 정확하게 가르고 구분하기가 애매하지만, 위구르인과 중국인의 문화, 정체성 차이는 오늘날에도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다.
[7]
두 민족은 중국 내에서
타지크인으로 분류되며,
파미르인의 일부.
[8]
카슈가르와
호탄,
야르칸드 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저지대 인도유럽계 민족으로 인구는 약 5,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서투르키스탄 지역에서 이주해온 타지크인의 후손들이란 추측이 있다. 고유 언어는 사멸했으며, 현재는 주로
위구르어와
우즈베크어를 구사한다.
[9]
다만 중국의 민주화, 중국의 분열, 중공의 붕괴는 전혀 다른 얘기이므로 만약 새 중국이 공산당만 없는(현 러시아와 비슷한) 자본주의 독재국가로 계속 남는다거나 하는 쪽으로 갈 경우, 마찬가지로 소수민족의 분리주의는 막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민주주의 국가조차도
2017년
카탈루냐 사태에서 보듯 분리주의를 좋아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