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복궁에 있는 박물관에 대한 내용은 국립고궁박물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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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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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원 國立故宮博物院[1]宮博物院이라고 쓰는 게 원칙이다. 물론 원칙을 안 따르고 '宫'으로 적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참고로 宮/宫에 들어 있는 呂/吕(음률 려)는 원래 전통적으로 서로 통용되던 이체자이다.] National Palace Museum of the Republic of Chi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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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20> 국가 | 중화민국 |
운영주체 | 중화민국 행정원 |
설립 | 1925년 10월 10일 |
개관일 | 1965년 11월 12일 |
위치 | 타이베이시, 스린구 |
링크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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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본래는 중화민국 베이핑(현 중국 베이징시) 고궁( 자금성)에 있었으나 국공내전 시기인 1948년 장제스의 명령으로 그 유물 거의 대부분을 대만으로 실어와 타이중시 등지에 일시 보관하다가 1965년 11월 12일 타이베이에서 재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엄청난 양의 유물 때문에 가끔 세계 3대 박물관에 포함 된다는 말이 있긴 한데, 이건 일본에서 유행하는 세계 3대 떡밥중 하나로 실제론 그런 리스트는 없다.[2]
중국에서는 "국립"(國立)이라는 칭호를 빼고 대륙의 고궁박물원( 자금성)과 구분하기 위해 타이베이 고궁박물원(台北故宫博物院)이라고 한다.[3]
대만에서는 주로 故宮이라는 약자로 많이 쓰인다. 배경지식 없이 한자만 보고 타이베이시에 있는 궁궐로 착각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남부분원은 故宮南院으로 쓴다. 다만 영어로 museum을 병기하기에 그리 헷갈리지는 않는다. 참고로 타이베이에는 왕조의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궁궐도 없다. 물론 유물의 본 소재지가 베이징 자금성이라서 고궁이라는 명칭을 다는 것이다.
- 궁(宮) 한자 때문에 헷갈릴 수 있지만, 대만에 있는 宮은 대개 대만식 도교 사원이다. 타이베이 시내 한복판에 있는 행천궁(行天宮)이나 타오위안에 있는 경복궁(景福宮) 모두 대만식 도교 사원이다. 또한 고궁(故宮)이란 명칭은 '옛 궁'이란 뜻으로, 이미 망해 없어진 명, 청나라의 궁궐인 자금성을 옛날 궁궐이라는 뜻인 고궁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는 신해혁명~중화민국 초기 때부터 내려 온 명명법이라 현재는 대만도, 중국 본토도 같은 한자를 쓰는 것이다.
2018년 기준 입장료는 성인은 NTD 350(약 12,000원), 대만 국적자는 NTD 150, 학생은 무료이다(대학생의 경우 국제학생증을 지참하면 입장료가 할인된다).
2. 압도적인 유물 수
그 때 명실록 홍격본[5]과 자금성에 있던 사고전서 문연각본 역시 옮겨져 현재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 중이다. 그리고 중국사에서 중요한 문서들도 국립고궁박물원에 있다.
국내에는 일반적으로 2차 국공내전 후 자금성 고궁박물관에 있던 유물을 가져간 것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 상당 수 유물은 열하사변 시기에 일본군의 화북 침략으로 인한 유물 파괴와 약탈을 피하기 위해 난징시, 상하이시로 대피시킨 것이다.
이후 중일전쟁 전황에 따라 쓰촨성 오지에 분산 보관하고 있었다. 이 때의 유물 대피 과정은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스토리인데 홍콩 SCMP의 기사의 일러스트만 쭉 봐도 대략 이해할 수 있다. #
종전과 동시에 유물들을 다시 난징시로 옮겼는데 이후 국공내전이 재발하면서 베이징시로 옮기는 계획을 연기했다가 오히려 베이징 함락 직전 자금성에 남아있던 유물들 중 중요 유물을 난징으로 들고 왔다. 이 유물들 중에서 값어치가 나가는 3천여 상자만 추려서 난징에서 지룽시로 실어나른 것이 현재의 소장품이다.
서류상으로 고궁박물원 유물의 주인은 대만 정부가 아니라 중국국민당이다. 국부천대 당시 장제스가 총통 자격[6]이 아니라 국민당 총재 자격으로 유물을 옮겼기 때문이다.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겨날 때 유물을 가져간 것은 무작정 '그냥 다 내꺼야!'하는 개인적 욕심 같은 건 아니었다. 장제스는 중국 전통 문화에 애착이 많았다. 그래서 신문화운동부터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고 모조리 뒤집자는 공산주의는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중일전쟁의 급박함 속에서도 유물 먼저 챙겨서 온 것이나 훗날 중화문명부흥운동 등을 보면 중화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알 수 있다.
동파육을 본떠 조각한 육형석(肉形石), 17세기. 취옥백채와 더불어 대만 최고의 유물로 손꼽는다. 2019년 2월부터 4월까지는 취옥백채와 함께 자이시 남부 분원에서 전시되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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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부분이 녹색, 아랫부분이 하얀색인 하급 자연 옥을 이용해 여치가 앉아 있는 배추를 조각해 낸 취옥백채(翠玉白菜), 19세기. 2018년 9월 8일 기준으로 본원에 전시되어 있다. 동릉 도굴 사건 때 서태후의 관곽에서 나온 보물이다. |
배추 위에 여치와 메뚜기가 올라가 있는 것에서 보듯, 원래는 부를 갉아먹는 벌레와 같은 부정부패를 경고하는 의미로 제작된 보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백채( 배추)의 중국어 발음이 '돈을 벌어다 준다'는 단어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어느 새 부정부패를 경고하는 의미는 퇴색되고 돈을 벌어다준단 의미의 배추만 남았다. 이 때문에 대만 집집마다 있고 기념품점마다 지겹도록 널려 있는 ' 옥 배추'도 취옥백채처럼 생긴 것보다는 그냥 옥으로 다듬어놓은 꽃핀 배추에 가깝게 생긴 게 대다수다.
중국 대륙에 남은 곳도 이름에서 ‘국립’만 빼고 고궁박물원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국부천대 이후에 나온 유물들까지 합세해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보다는 아직 훨씬 못하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지금 대만 고궁박물관의 유물들은 청나라 황실에서 가지고 있던 황실 유물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높으신 분들이 대대로 모은 유물들이다 보니 퀄리티가 상상을 초월한다. 즉 중국사에 나오는 대부분 유물이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건륭제가 수집하여 직접 목록까지 정리한 컬렉션은 압권. 실례로 법랑채 자기의 명품은 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1940년대 이전 발굴된 유물들도 죄다 대만 고궁박물원이 소유하고 있어 발굴유물 수준도 상당히 높다.
소장품이 너무 많아 옥제품·도자기·회화·청동의 작품들은 석 달 단위로 한번씩 유물을 바꿔서 전시하는데 60여 년째 겹치는 것이 없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상설배치를 뺀 순환배치 작품들은 진짜로 2018년까지 명단이 겹치지 않고 있다.
순환배치 작품은 연 8천여 점 정도로, 실제로 한 바퀴를 돌리려면 60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남부분원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남부 분원의 목적이 유물의 분산 배치 보다는 대만 북부와 남부 간의 문화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 게 주요 목적이라 많은 전시물이 배치되지 않고 있다.
현대 중국 입장에서는 중국사의 정수가 담긴 콜렉션을 빼앗긴 것이니 통탄할 일이다. 그래서 국공내전 이후부터 공식적으로 도둑질한 유물들을 반환하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물론 대만은 이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오히려 이 유물들이 중국에 있었으면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다 파괴했을 것이라면서 국립고궁박물원을 옹호하기도 한다. 오늘날 중국에서도 반환 요구를 잘 하지 않는데, 하나의 중국을 주창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자기 나라'에 있는 유물의 반환을 요구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9] 그리고 극단적인 대만 독립세력은 "다른 나라에서 도둑질해 온 것들이니 유물들을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10] 이런 주장에 말려들지 않아야 할 필요도 있다.[11]
2008년 마잉주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중국 고궁박물원에서 오히려 유물을 대여해준 적도 있다. 원래는 국립고궁박물원에서도 중국 측에 유물을 대여해주려 했는데 중국에서 안 돌려주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 ##
다만 유물의 대부분이 중국 고대의 청동기와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은 단점이다. 아무래도 국민당 정부가 급하게 튀면서 챙긴 것이 대부분인데다가 자금성에 있던 청나라 황실의 입맛에 맞는 유물들을 가져왔으므로 상당수의 유물이 고대 청동기, 그리고 유명한 서예나 그림 작품들, 그리고 명, 청시대의 궁중유물에 편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12]
비록 문화대혁명이 있었지만 50년대 이후에도 중국에서는 진시황 병마용갱, 마왕퇴, 삼성퇴 등등의 굵직한 고고학적 성과들이 있었고, 나름 체계적인 수집과 기증도 이어졌다. 그래서 자금성의 고궁박물원은 현재 소장품이 160만 점,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과 위상이 같은 중국국가박물관은 소장품이 100만 점으로 소장품 60만점의 국립고궁박물원을 이미 까마득히 뛰어 넘었다. 베이징 수도박물관의 30만 점, 국사박물관, 원명원박물관 등등을 합치면 베이징에 있는 유물의 수는 결코 만만치 않다. 다만, 유물 대다수가 손실없이 보관중인 국립고궁박물원과 달리 중국 본토 유물 상당수는 문화혁명당시 깨지거나 훼손된 게 꽤 많다. 그나마,이 와중에도 숨겨서 겨우 무사했던 유물도 많지만 말이다.
그래서 중국의 전체 역사와 전체 지역을 돌아보고 싶다면, 베이징의 자금성이나 중국국가박물관을 찾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타이완 섬의 역사를 보고 싶으면 타이난의 국립대만역사박물관이 낫다.[13]
그럼에도 중국 고대 왕권의 상징인 정(鼎)이 이렇게 널렸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양이 소장되었다. 3층에 가 보면 최소 2~3천년 된 고대의 청동 정과 종[14]들이 널려있다.
그리고 신석기시대의 옥 유물들을 위시로 2~3천 년 된 옥 유물들이 3층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너무 오래 되어 정확한 연대 측정이 안되는 토기 잔부터 국사 교과서에서 어쩌다 마주쳤을 당삼채(唐三彩) 중에서도 거대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전시되었으므로 보기도 전에 실망부터 하지는 말자.
북송 때 만들어진 자기인 여요연화식온완(汝窯蓮花式溫碗) |
1층의 중국 역사 오리엔테이션 전시실에 가면 중국 역사 마지막 부분이 중화인민공화국도 분단도 아니고 중화민국으로 되어 있는 것이 포인트. 여기 중국 대륙인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는 걸 생각해보면 중화민국의 정통성 강조에 이만한 것도 없다.
대만 정부와 중국국민당, 그리고 대만인들이 경매시장에 나온 물건들을 사들여 기증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진보당 정부에서도 외성인들의 민심을 고려하여 유물 사 모으기는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꾸준히 3천여 점씩 컬렉션이 늘어나는 중. 2019년에는 상반기에만 무려 7천 점이 추가됐다. 2019년 8월 차이잉원 총통이 참석한 가운데 고궁박물원 유물 70만 점 돌파행사도 개최되었다.
2020년 제15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를 앞두고, 차이잉원 총통은 2035년까지 국립고궁박물원 100만 점 돌파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한궈위 국민당 후보는 100만 점 돌파 기간을 2030년으로 단축하고 모든 유물에 대한 디지털베이스화를 공약으로 내놨다. 그런데 한궈위가 제안한 모든 유물 DB화는 이미 추진 중인 사업으로 2013년부터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까였다.
3. 재건축 논의
자이시에 있는 남부 분원이 개장한 뒤로, 타이베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원 전체를 재건축하자는 안건이 올라와 있다. 오래된 박물관이라 동선이 불편한데 동선을 개선하고 100만 점 이상도 최대한 상설 전시할 수 있게끔 유물 전시량을 크게 늘리는게 목적이다.현재의 고궁박물원은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문화재 개수가 4만 점 정도인데, 적어도 30만 점 이상을 상설 전시할 수 있게 타이베이 본원 규모를 열 배 이상으로 키우려고 하고 있다.
중국국민당과 민주진보당 모두에서 대만인 민심 잡기에 이만한 물건이 없는지라 둘 다 긍정적이다. 2017년부터 공론화되었다. 타이베이 첩운 환상선 국립고궁박물원역이 개통될 때에 재건축 착공을 하는 것을 목표로 2021년 현재 사전 검토중이다.
4. 남부 분원
남부 분원의 명칭은 故宮南院 亞洲藝術文化博物館(아시아 예술 문화 박물관)이며, 본원이 중화의 문화유산이 컨셉이라면 남부는 아시아권을 망라하는 유물전시를 하고 있다. 남부분원은 중국 유물뿐만 아니라, 테마에 따른 여러 나라의 유물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건물크기에 비해 전시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적고 아시아 불교 문화 등을 테마로 하고 있어 본원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기에는 시범 개관을 한지 채 이레도 안되어 건물에 비가 새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
5. 찾아가는 길
타이베이 본원 교통편(한국어 공식 홈페이지)
세계적인 박물관이지만 주변 지역이 산기슭이여서 타이베이 첩운과의 접근성은 별로 좋지 않다. 가장 쉽게 가는 방법은 타이베이 첩운 단수이신이선을 타고 스린역[15]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이다. 이런 버스들 중 거의 다수는 종점이 고궁박물원인 버스다. 타이베이 첩운 원후선 다즈역이나 젠난루역에서 버스를 타고 올 수도 있으나 배차간격이 좋지 않다.
더울 때는 정문까지 나갈 필요 없이 박물관 본관 지하 1층 출구 바로 앞에 정차하는 紅30, 小18(스린역), 棕20(젠난루역)번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시내에서 택시를 탈 경우 타이베이역을 기준으로 350~400NTD 정도 지불하면 갈 수 있다. 스린역에서 하차한 뒤 택시룰 타면 NTD130~150 정도에 입구로 갈 수 있다. 향후 순환선인 타이베이 첩운 환상선이 국립고궁박물원을 지날 예정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최소 2025년에나 개통된다.
남부분원 교통편(영어 공식 홈페이지)
남부분원 홈페이지에 한국어 안내도 있으나 교통편에 대한 설명이 부실한 편이다.
남부 분원은 타이완 고속철도 자이(嘉義)역에서 버스나 택시로 접근할 수 있다. 고속철도역에서 택시 이용시 NT$150~200 정도이다.
버스 이용 시 매시 30분 전후로 이 곳을 경유하는 7212번 버스나 매시 45분 출발하는 고궁박물원 셔틀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주말 기준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106번 버스(주중에는 2시간 간격)와 매시 30분에 이 곳에서 출발하는 166번 버스(1일 4회)도 이용 가능하다.
버스 이용 시 고속철도 2번 출구로 나오면 되는데, 일반버스와 셔틀버스는 환승센터처럼 생긴 버스 베이를 이용하면 되고, 7212번은 BRT라고 적힌 정류장을 이용하면 된다. 버스로 10분이면 박물원에 도착하지만 이 곳은 역이나 박물관 모두 시내와는 멀리 떨어진 시골이라 걸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나올 때는 택시 이용이 좀 힘들고 실제 이용할 수 있는 버스는 이 곳에서 출발하는 7212번 버스와 무료 셔틀버스이므로 두 버스의 시간표를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셔틀버스는 매시 30분, 7212번 버스는 매시 50분 출발한다.
무료 셔틀버스는 번호가 없어서 故宮南院 免費接駁라고 쓰여진 버스를 이용하면 되는데 대부분 시간대에 마이크로 버스가 투입되고 있으니 혼잡할 가능성이 있다. 고속철도 이용시 티켓을 제시하면 7212번의 경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참고로 7212번과 무료 셔틀버스는 박물관 본관 앞에 내려주며, 나머지 버스는 박물관 입구 버스 승차장에서 내려주는데 건물 입구까지 거리가 은근 멀다.
6. 방문 시 참고 사항
- 대부분의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큰 가방과 음식, 음료는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빈 물통이라고 해도 물병은 절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므로 입장할때 미리 맡기자. 가방검사에서 물병이 발견되면 나가서 보관소에 맡기고 다시 들어가야 한다. (매표소 오른편에 물병만 무료로 보관해 주는 곳이 따로 있다.)
- 백팩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보관해야 하며, 크로스백 등은 괜찮다.[16] 짐은 매표소 옆에 있는 물품보관소에 맡긴다. 물품보관소는 대형마트에 있는 코인락커랑 유사하다. 비용은 무료이다.
- 입장할 때 검표를 하고 금속탐지기를 지나간다.
- 박물관 소장품들을 카메라로 찍을 수는 있으나 카메라 플래시를 절대로 써선 안된다. 과거에는 완전 촬영금지 상태였던적도 있지만 지금은 플래시만 쓰지 않으면 사진 촬영을 저지하지 않으며, 전시품이 진열된 유리벽에도 과거의 사진촬영금지 스티커를 떼고 찍어도 된다는 스티커가 새로 붙어있다. 만약에 직원이 다가와서 뭔가 얘기할 경우, no flash라고 대답하면 괜찮다고 얘기하고 지나간다. 국보급 문화재나 중요 유물은 아예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표시를 유물 제목 옆에 두기 때문에, 촬영금지 표시가 없으면 촬영해도 무방. 다만 2층 회화실은 대부분 촬영 금지니 포기하는 게 속 편하다.
- 한국어 팜플렛이 제공되며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대여할 수 있어 유물 앞에 붙어있는 음성 해설 번호를 입력하면 해설을 들을 수가 있다. 입장권과는 별개의 요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해설 내용이 매우 상세하며, 서혜정, 문선희를 비롯한 전문 성우들이 녹음해 퀄리티가 대단히 높다. 박물관을 제대로 즐기려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꼭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도록 하자. 기타 유물 표제에는 한국어가 없이 중국어 정체/간체, 일본어, 영어만이 제공되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오디오가이드는 150NT이고, 대여 시 신분증을 맡겨야 한다. (여권뿐 아니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도 된다.) 여담이지만 오디오가이드 터치스크린의 위, 아래 끝에서 스와이프를 하면 알 수 있는데 이거 iPod touch 뜯어서 만든거다 심지어 계산기와 시계 앱까지 구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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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일과 휴일 낮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여기 유물들은 앞에서 설명했듯
중화권 문화유산의 정수다. 즉 박물관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야시장마냥 우글우글하는 중국대륙 여행객들의 인파 물결과 소란함에 유물 구경도 제대로 못할 수 있다. 특히 유명한 박물품의 경우 이어진 줄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박물관 구경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평일, 그리고 되도록 오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육형석이나 취옥백채를 편하게 보려면, 평일 오전에 도착하자마자 3층으로 직행하거나, 평일 3시 이후에 가는 것이 좋다. 오전 9시 오픈에 맞춰서 가도 조금 지나면 단체 여행객들이 시간차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반대로, 금요일을 제외한 평일 기준으로 평일 오후 3시 지나서는 줄도 안서고 제법 한산하게 육형석이나 취옥백채를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다.
사실 막상 보면 대부분 이게 뭔가 싶어서 사진 한장 찍고 간다.[17] 중국인 관광객을 피해서 추천받는 관광 코스로는 보통 화요일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화요일에 가면 의외로 한산하고 조용하게 관람할 수 있다.
- 상기한 이유로 인해 모든 전시실을 꼼꼼히 느긋하게 관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고로 고대 청동기 시대 및 명/청대의 유물이나 취옥백채 등을 위주로 알짜배기만 관람하고 나오거나,[18] 그냥 아예 박물관 관람에만 하루 전체를 투자한다는 식으로 한나절 넘게 구경하거나 하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 가이드들도 6시간 정도 관람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하니 알아서 타겟을 정해서 갈 것.
- 전시관 안을 구경하다 보면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전시실이 상당히 많다. 예전에 설계되어 그런지 동선이 다소 중복되거나 움직임이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지 않아 많이 걸어야 한다.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욕심 내서 너무 많이 보려고 하지 않는 게 좋다. 휴게 장소라도 건물 내부인 경우 신발을 벗지 못하게 제지하므로 주의하자.
- 택시를 이용하고 싶다면, 박물관 지하1층의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얘기하면 택시를 불러준다. 대체로 5분 이내에 택시가 오는 것 같고, 인포데스크 왼쪽 출구 앞에서 곧바로 탑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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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오후 6시반에 문을 닫으나 매주 금, 토요일은 9시까지 야간개장을 하므로 넉넉히 보고싶다면 금토 오후 시간대를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본관 옆에 있는 제2전시관은 오후 5시에 문을 닫고 상설 개관이 아니므로 미리 검색해보고 가는 것이 낫다.2023년 기준으로 월요일은 국경일 제외 휴관이며, 화요일 ~ 일요일 역시 박물관 전체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관람할 수 있으니 방문 시 유의할 것.
동단왕출행도(東丹王出行圖) |
7. 기타
중국 역사에 관심있거나 박물관 덕후라면 이 곳 말고도 하남(河南)박물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국립역사박물관(國立歷史博物館) 관람도 추천한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국민당에서 유물들을 모아 임시수도 충칭시까지 옮겼다가 국공내전으로 원대복귀 시키지 못하고 계속 보관하던 중 국부천대할 때 모두 가져왔다. 박물관 자체는 아담하지만 당삼채 등을 여럿 보유하고 있어 규모에 비해 볼 만한 전시품이 많다. 게다가 고궁박물원에 비해 훨씬 여유있게 관람할 수 있다. 고궁박물원에서 버스를 타고 스린역으로 가 샹산 또는 다안행 지하철을 탄 다음 중정기념당역 1번 또는 2번 출구로 올 수 있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온다면 쑹산신뎬선 샤오난먼역이 좀 더 가까우며 박물관 입장료는 30NTD. 하지만 2023년 말까지 리모델링으로 인한 휴관이 예정되어 있다.국립고궁박물원 근처 도보 5분 정도 거리에 대만 원주민을 주제로 한 사설박물관인 순이[19]대만원주민박물관(順益台灣原住民博物館)이 있다. 중화권 문화의 총본산과 대만 고유문화의 상징이 서로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느낌을 준다. 대만원주민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원의 통합 티켓도 팔고 있으니, 방문 예정이라면 참고하면 좋다. 3층짜리 작은 건물 하나를 박물관으로 쓰고 있기에 전시 규모는 작다.
중국 본토 유물 위주가 아닌 대만이란 지역에 대한 역사를 다루는 곳은 국립대만역사박물관(國立臺灣歷史博物館)이 있다. 타이베이가 아닌 타이난에 있는데 타이난 시내가 아니라서 교통편이 매우 불편하다. 고속철도역에서 바로 오는 교통편은 없으며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융캉역이지만 간선열차가 일부만 정차하는 역이라서 타이난역에서 내려서 오는게 낫긴한데 버스편도 적다. 대만 역사에 대해서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긴 하나 전시된 유물이 적을 수 밖에 없는지라 커다란 교육전시관 느낌을 준다.
타이베이역 근처에 위치한 국립대만박물관(國立臺灣博物館)도 있는데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다르게 건물 규모도 작고 전시 컨텐츠도 적은 편이다. 타이완성의 기능이 정지되면서 국립으로 전환된 타이완성 성립기관이라 규모가 작다. 1913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현존하는 박물관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바로 옆에는 2.28 사건을 추모하는 2.28 평화 기념공원이 있다. 본관과 분관이 있는데 박물관 맞은편 옛 대만토지은행 건물에 위치한 토지은행 전시관은 자연사박물관 같은 곳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옛 토지은행 관련 물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입장권 한 장으로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중정기념당 근처에 위치한 남문분관은 옛 국영공장으로 여러 잡다한 내용이 전시되고 있다. 베이먼역에 있는 철도부분관은 과거 타이완철로관리국 건물로 쓰였던 곳을 철도박물관으로 개조하였다.
KOF 98 UM에서 대만 스테이지로 등장한다.
스페셜포스2 에서 고궁박물관 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1977년에 MBC 예능프로그램 묘기대행진 대만특집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1]
중국에서 쓰는
간화자로는 国立故宫博物院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정체자를 사용해야 할 때에는 國立
[2]
사실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다른 세계적 박물관에 비하면 규모가 굉장히 작다. 여러 문명과 시대를 다루는 다른 박물관과는 다르게 중국 관련 유물만 있기도 하고...
[3]
국공내전 직후 모든 시설을 국유화하였고 1950년대 초반 중화민국 시절에 붙인 국립이라는 글자를 일제히 떼어낸다. 이런 비슷한 사례로는
국립칭화대학이 있다.
[4]
현재는 약 69만 7천여 점에 이른다.
[5]
청나라 때 보관용으로 제작한 명실록 사본이다. 명나라 때 제작된 원본은 홍격본 제작 후 폐기되었다.
[6]
당시 장제스는 총통직을 사임한 상태였기 때문에 총통이 아니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대만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장제스였다.
[7]
타이베이에서 꽤 유명한 호텔인 리젠트 타이베이에서 위탁 운영한다.
[8]
육형석 요리는 380 NTD(한화 1만 X천원 대), 취옥백채는 220 NTD(한화 8천원 대 중반). 취옥백채는 당연하겠지만 여치와 메뚜기 대신 새우를 올린다.
[9]
국립고궁박물원이 대만의 자랑거리로 남는게 대만인들의 '중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10]
이러한 주장은 대만 내에서도 매우 극단적인 주장이라 동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11]
사실 이들은 '동산'인 이 유물들뿐만 아니라 '부동산'인 진먼과 마쭈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진먼,
마쭈가 정치적으로 국민당 성향이 매우 짙은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2]
그래도 고대 청동기와 자기 유물들은 상설전시, 명청대 유물은 순환전시로 진행되고 있어 둘러보는 데 있어서 비율상으로 모자라지는 않다. 그만큼 소장품의 수가 방대하다는 이야기.
[13]
전시품은 대다수가 복제품이지만 타이완 섬의 역사를 전시 순서에 따라 잘 보여주고 있다. 유물을 보고 싶다면 그리 추천할만하지는 않으나, 역사를 보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
[14]
복제품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태가 좋은 유물이 널려있다.
[15]
장제스 부부가 살던 스린관저가 근방에 있으며 관람할 수 있다.
[16]
이는 많은 인파때문에 등에 맨 가방이 통행에 불편을 줄 수 있고 예술품들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7]
솔직히 전시 설명을 자세히 정독하지 않으면 그저 '사람들이 많이 보는 유물'에 불과하다.
[18]
단체 관광객들이 주로 이렇게 한다.
[19]
미쓰비시자동차를 수입판매하는 중견그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