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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1 13:29:05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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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황제 겸 집정관 }}}
기원전 100년 기원전 99년 기원전 98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6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티투스 디디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95년 기원전 94년 기원전 93년 기원전 92년 기원전 9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코엘리우스 칼두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90년 기원전 89년 기원전 88년 기원전 87년 기원전 87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기원전 86년 기원전 86년 보결 기원전 85년 기원전 84년 기원전 83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기원전 82년 기원전 81년 기원전 80년 기원전 79년 기원전 78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77년 기원전 76년 기원전 75년 기원전 74년 기원전 73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72년 기원전 71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9년 기원전 68년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기원전 68년 보결 기원전 67년 기원전 66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5년 보결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64년 기원전 63년 기원전 62년 기원전 61년 기원전 60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기원전 59년 기원전 58년 기원전 57년 기원전 56년 기원전 55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54년 기원전 53년 기원전 52년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기원전 45년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sine collega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보결 기원전 4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2년 기원전 41년 기원전 4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페디우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기원전 40년 보결 기원전 39년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7년 기원전 37년 보결 기원전 3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5년 기원전 35년 보결 기원전 35년 보결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티투스 페두카이우스
기원전 34년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퀸투스 라로니우스
기원전 32년 기원전 32년 보결 기원전 31년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1년 보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티티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0년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기원전 29년 기원전 29년 보결 기원전 28년 기원전 27년 기원전 2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기원전 25년 기원전 24년 기원전 23년 기원전 23년 보결 기원전 2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기원전 21년 기원전 20년 기원전 19년 기원전 19년 보결 기원전 18년
마르쿠스 롤리우스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sine collega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기원전 17년 기원전 16년 기원전 16년 보결 기원전 15년 기원전 14년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기원전 13년 기원전 12년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아피아누스 가이우스 발기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0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 기원전 7년 기원전 6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술피키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기원전 5년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기원전 3년 기원전 2년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기원전 1년 기원전 1년 보결 연도 불명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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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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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833em; letter-spacing: -0.35px"
기원전 443년 기원전 435년 기원전 430년 기원전 418년 기원전 403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푸리우스 파쿨루스 푸수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불명)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마르쿠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푸블리우스 피나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마르쿠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기원전 393년 기원전 389년 기원전 380년 기원전 378년 기원전 366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 마르쿠스 푸리우스 푸수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스푸리우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퀸투스 클로엘리우스 시쿨루스 ( 포스투미우스 레길렌시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보결)
기원전 363년 기원전 351년 기원전 340년 기원전 332년 기원전 319년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카우디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불명)
기원전 318년 기원전 312년 기원전 307년 기원전 304년 기원전 300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사베리오
가이우스 마이니우스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기원전 294년 기원전 289년 기원전 283년 기원전 280년 기원전 275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르비나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구르게스) (불명)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카이디키우스 녹투아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
기원전 272년 기원전 269년 기원전 265년 기원전 258년 기원전 253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블라시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
마니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두일리우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페라
기원전 252년 기원전 247년 기원전 241년 기원전 236년 기원전 234년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 메살라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티쿠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부테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루타티우스 케르코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불부스
기원전 231년 기원전 230년 기원전 225년 기원전 220년 기원전 214년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푸블리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기원전 210년 기원전 209년 기원전 204년 기원전 199년 기원전 194년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카투스
기원전 189년 기원전 184년 기원전 179년 기원전 174년 기원전 169년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루스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64년 기원전 159년 기원전 154년 기원전 147년 기원전 142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기원전 136년 기원전 131년 기원전 125년 기원전 120년 기원전 115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또는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기원전 109년 기원전 108년 기원전 102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2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89년 기원전 86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4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불명)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루키우스 겔리우스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기원전 61년 기원전 55년 기원전 50년 기원전 42년 기원전 28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기원전 22년 기원전 8년 14년 46년 73년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라틴어: Lucius Munatius Plancus
파일:400px-Bust_of_Plancus_IMG_9753.jpg
생몰년도 기원전 87년 ~ 기원전 15년
출생지 로마 공화국 티볼리
사망지 로마 제국 가이타
지위 평민
국가 로마 공화정
가족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아버지)
가이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형제)
티투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형제)
마르쿠스 티티우스(조카)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아들)
무나티아 플란키아(딸)
참전 카이사르의 내전
무티나 내전
페루시아 내전
기원전 40년 파르티아의 시리아 침공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42년
전임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동기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후임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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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로마 제국의 군인, 정치인. 카이사르의 내전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지지했고,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에는 해방자파를 지지했다가 제2차 삼두정치가 결성되자 삼두정치파를 자처했다. 이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심복이 되었다가 옥타비아누스 편에 섰고, 내전 종결 후 아우구스투스 황제 치하에서도 거물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2. 생애

기원전 87년 티볼리 시에서 출생했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또는 조부 대에 로마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아버지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는 티볼리의 유지였다. 형제로 가이우스와 티투스가 있었으며, 조카로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의 처형을 명령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지지하고 나중에 옥타비아누스 편에 선 뒤 기원전 31년 집정관을 역임한 마르쿠스 티티우스가 있었다.

초기 경력은 불분명하나 평민으로서 출세를 위해 군대에 입대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 전쟁을 단행할 당시 참여하여 기원전 54년경과 카르누테에서 겨울 숙영하는 군대를 이끌었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했을 때 카이사르 편에 섰고, 히스파니아 원정을 떠난 카이사르를 따라갔다. 기원전 47~46년 카이사르의 아프리카 원정에도 동행했다.

기원전 45년 독재관 카이사르의 지시에 따라 히스파니아 총독을 잠시 맡았으며, 에풀롱네스(epulones: 축제와 경기 때 잔치와 공개 연회를 마련하는 사제 직급)에 소속되었다. 이후 기원전 43년 갈리아 코마타[1] 총독으로 예정되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가 암살되었을 때 로마에 있었다. 그는 3월 17일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키케로에 이어 카이사르를 암살한 '해방자파'와 '카이사르파'간의 화합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원로원은 이에 보답해 그를 기원전 43년 갈리아 코마타 총독에 예정대로 선임했다.

플란쿠스는 갈리아 코마타 총독으로서 3개 군단을 이끌어 라에티아 원정을 이끌고 임페라토르 칭호를 병사들에게 받았으며, 루그두눔(리옹), 아우구스타 라우리카(오늘날 스위스 어구스트)를 건설했다. 기원전 43년 초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를 현직 총독 데키무스 브루투스로부터 탈취하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이를 막으려는 원로원이 충돌하면서 무티나 내전이 발발했다. 이때 키케로는 그에게 접근하여 안토니우스를 토벌하는데 힘을 실어줄 것을 요청했고, 플란쿠스는 원로원의 대의에 공감한다고 밝히며 자신이 이끌고 있는 병력을 안토니우스 토벌에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가 후방을 위협한다는 핑계를 대고 관망하기만 하다가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가 갈리아에서 연합하자 한동안 망설이다가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의 중재를 받아들여 안토니우스-레피두스 편에 섰다.

그는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폴리오와 함께 이탈리아로 진군했고, 옥타비아누스가 이들과 접촉하여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했다. 이후 로마로 입성한 삼두가 대숙청을 단행했을 때, 그의 친척 몇 명이 명단에 올랐으나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고, 티볼리 시에서 가족과 경쟁하는 몇몇 사람을 숙청자 명단에 올리도록 했다. 기원전 42년 레피두스와 함께 집정관에 취임했고, 필리피 전투 기간 동안 안토니우스의 또다른 지지자인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와 함께 서방의 로마 영토를 통제했다.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참전 용사들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위원회를 결성했을 때 참여했다.

기원전 41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동생 루키우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를 상대로 페루시아 내전을 단행했을 때, 폴리오와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와 함께 퀸투스 살비우스 살비디에누스 루푸스가 히스파니아에서 이탈리아로 진군해 옥타비아누스와 합류하는 걸 저지하고자 군대를 이동시켰다. 그러나 세 장수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동생 루키우스의 내전 유발에 동의했는지 확신하지 못했고, 안토니우스의 명시적인 지시 없이 옥타비아누스를 제거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적극적인 군사 활동을 하지 않고 천천히 이동하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가 루키우스 안토니우스를 페루시아에 가둬놓고 포위 공격했다. 루키우스는 조금만 더 버티면 바수스, 플란쿠스, 폴리오가 도와주러 올 것이며 형 마르쿠스도 동방에서 구원하러 오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세 장수는 페루시아에 포위된 루키우스를 도와주길 주저했다. 그들은 마르쿠스로부터 어떠한 지시도 받지 못했기에 그가 이번 내전을 원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게다가 세 장수 중 누가 최고 지휘권을 맡는지도 문제였다. 폴리오는 군사 경력이 일천한 서생 취급을 받았고, 플란쿠스는 천박한 인성을 갖췄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벤티디우스는 과거에 노새를 닦던 노예라는 비방을 받았다. 마르쿠스의 절친한 친구 마니우스가 세 장수에게 "마르쿠스는 분명 동생을 구하고 싶어할 테니 어서 도와달라"라고 호소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보다못한 풀비아가 벤티디우스와 폴리오에게 보다 단호한 조치를 취하라고 강하게 요구하자, 두 장수는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페루시아로 진군했다. 이에 아그리파는 살비디에누스에게 페루시아 요새를 계속 포위하게 하고, 자신은 폴리오와 벤티디우스를 물리치려 했다. 이에 폴리오는 라벤나로 이동했고, 벤티디우스는 리미니로 후퇴했다. 이후 풀리오와 벤티디우스는 플란쿠스 휘하 병력과 합세한 뒤, 페루시아로 진군했다. 그러나 페루시아에서 20마일도 채 되지 않은 풀기니움에서 아그리파에게 저지되었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벤티디우스와 폴리오는 즉시 결전을 벌이자고 주장했지만, 플란쿠스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는 사이, 갈리아에서 11개 군단에 달하는 병력을 거느리고 있던 칼레누스가 이탈리아로 남하하려고 군대를 소집했다가 돌연 병사했다. 그의 아들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휘하 병력을 고스란히 넘겼다. 이리하여 병력을 급속도로 불린 옥타비아누스가 페루시아에 원군을 대거 파견하자, 플란쿠스, 벤티디우스, 폴리오는 페루시아를 운명에 맡기고 마르쿠스가 올 때까지 버티고자 아드리아 해로 후퇴해 식량 창고를 건설하고 마르쿠스가 상륙할 지점을 확보했다. 이후 루키우스를 돕고자 식량 운송 부대를 한 차례 보내봤지만, 아그리파와 살비디에누스가 분견대로 가로막자 도로 후퇴했다.

결국 루키우스는 기원전 40년 2월 말 또는 3월 초에 옥타비아누스에게 항복하고 히스파니아 속주 총독으로 보내졌다. 이후 브룬디시움에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도착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찾아갔지만 냉대받았고, 고대 문헌은 그에게 루키우스를 구하지 않은 '겁쟁이' 또는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다만 현대 역사가들은 플란쿠스가 섣불리 내전을 단행하기 보다는 안토니우스의 지침을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보고 신중을 기했을 뿐, 옥타비아누스와 싸우길 주저하거나 루키우스를 저버린 건 아니었다고 본다.

기원전 40년 아시아 총독으로 부임했으나 파르티아군이 아시아로 쳐들어오자 곧바로 도망쳤다. 이후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참여하여 파르티아와의 전투에 참전했다. 아시아에는 기원전 39년까지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며, 후임자는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안토니우스를 따라 이집트로 가서 클레오파트라 7세가 주최한 연회에 참석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한 번의 식사로 많은 돈을 쓰는 대결을 벌일 때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 그는 클레오파트라가 귀걸이에 달린 큰 진주를 식초에 넣고 삼키고, 뒤이어 또다른 귀걸이에 달린 진주를 녹이려 하자 즉시 멈추게 하고 그녀의 승리를 선언했다.

기원전 38년 안토니우스가 파르티아 원정을 단행했을 때, 그는 시리아 총독을 맡아 후방 지원을 수행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의 원정이 실패로 끝나자, 그는 조카 마르쿠스 티티우스와 함께 편을 바꾸기로 했다. 플루타르코스는 두 사람이 클레오파트라의 초대에 불응했다가 눈밖에 났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안토니우스가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참패하면서 위세가 약해진 걸 보고 대세가 옥타비아누스에게 기울었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안토니우스의 다른 지지자들과도 마찰을 빛곤 했으며, 시리아 총독을 맡고 있을 때 불법행위를 저지른 게 안토니우스에게 발각될까 두려웠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로마로 이동한 뒤 옥타비아누스에게 안토니우스가 발표한 알렉산드리아 영토분할령에 대해 낱낱이 보고했다. 또한 안토니우스가 유언서를 화로의 여신을 숭배하는 사제 처녀들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밀고했고, 옥타비아누스는 신성모독죄를 무릅쓰고 이를 탈취해 선동의 도구로 이용했다. "내가 죽으면 로마가 아닌 알렉산드리아에 묻어달라"는 안토니우스의 유서가 진짜인지 위조된 것인지 여부는 오래도록 논란이 이어졌다. 로마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인 로널드 사임 교수는 이 유언서가 진본이 아니라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날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존 로버트 존슨 등은 유언서가 진본이라고 주장했으며, 현재 역사학계는 유언서가 진본일 가능성이 크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유언장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상관없이, 이것은 안토니우스를 회복 불가능한 궁지로 내몰았다. 이 유언서는 옥타비아누스 진영이 그간 소문으로만 퍼뜨렸던 온갖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의 구실을 하였다. 옥타비아누스는 광범위한 정치조직을 동원하여 안토니우스가 원로원의 동의 없이 로마의 속국들을 불법적으로 분할했다는 주장, 정실부인인 소 옥타비아를 내쫓고 클레오파트라를 정식 아내로 맞이했다는 주장, 카이사르의 적장자로 카이사리온을 지명했다는 주장, 안토니우스가 죽으면 알렉산드리아에서 클레오파트라 곁에 묻히고 싶어한다는 주장 등을 유포시켰다. 로마 시민들은 이에 안토니우스를 마녀의 유혹에 빠진 얼간이로 여기게 되었고, 이제까지 옥타비어스의 정치적 야욕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중립적인 인사들까지 안토니우스를 비난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결국 양자간의 전쟁이 발발했고, 로마인들의 지지를 상실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패망했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안토니우스를 무찌르고 로마로 귀환한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체택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또한 고위급 사제를 맡아 사투르네아 신전 복원에 관여했으며, 기원전 22년에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감찰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임기는 재앙 수준이었다고 한다. 마르쿠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에 따르면, 파울루스가 능력 부족이었다면 플란쿠스는 소심해서 감찰관의 직무인 규탄과 처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고 하며, 두 사람의 의견이 자주 충돌했기에 임기가 대실패로 끝나고 명예가 떨어졌다고 한다. 기원전 15년 가에타에서 사망했다.

플란쿠스는 생전에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는 서기 13년 집정관을 역임하였으며, 14년 라인 군단의 반란을 진압하러 출진한 게르마니쿠스를 도왔다. 딸 무나티아 플란키아는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와 결혼하여 두 아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와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피소를 낳았다. 그녀는 훗날 남편과 함께 게르마니쿠스를 독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 당시에는 사면되었지만, 서기 34년에 다시 기소되자 자살했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는 오명을 산 아버지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로 개명했고, 서기 39년 아프리카 총독이 되었다.

3. 여담

파일:플란쿠스 영묘.jpg

고대 로마의 인물들 중 매우 드물게도, 그의 무덤은 현존한다. 시신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이탈리아 가에타에 있는 무덤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무덤 양식은 아우구스투스 영묘와 유사하며, 에트루리아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뚜렷하게 받았다. 이 무덤에는 그의 생애를 요약한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졌다.
l . mvnativs . l . f . l . n . l . pron
plancvs . cos . cens . imp . iter . vii . vir
epvlon . trivmp . ex . rætis . ædem . satvrni
fecit . de manibis . agros . divisit . in . italia
beneventi . in gallia . colonias . dedvxit
lvgvdvnvm . et . ravricam

루키우스 무타니우스, 루키우스의 아들, 루키우스의 손자, 루키우스의 증손자, 플란쿠스
집정관, 감찰관, 두번째 임페라토르
에블론 사제 계급의 셉템비르(septemvir)이며 라이티아의 승리자
전쟁의 전리품으로부터 사투르네아 신전을 복원하였으며,
갈리아에 루그두눔과 라우리카 식민도시를 건설하였고,
베네벤툼에서 이탈리아 토지를 분배했다.


[1] 일명 장발의 갈리아.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을 끝내면서 설치된 임시 속주로 후에 아퀴타니아, 벨기카, 루그두넨시스로 분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