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라틴어: Publius Cornelius Sul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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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45년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삼촌) |
참전 | 카이사르의 내전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무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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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의 정치인, 군인. 그 유명한 독재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조카로, 카이사르의 내전 때 술라 가문 중 유일하게 카이사르를 지지했다.2. 생애
아버지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동생이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신상명세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어머니 역시 알 수 없다. 그는 미트리다테스 6세와의 전쟁을 마무리하고 이탈리아에 돌아와서 내전을 벌인 삼촌의 부관으로 복무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78년 삼촌이 죽은 뒤 재산 일부를 상속받았을 것이다. 이후 조영관, 재무관, 법무관 등 명예로운 경력을 거쳐 기원전 66년 집정관 선거에 출마하여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와 함께 당선되었다. 그러나 낙선한 두 후보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그와 아우트로니우스를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하였고, 그는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집정관 자격을 박탈당한 뒤 원로원에서 추방되었다.그 후 기원전 65년 집정관 선거에 다시 출마하려 했지만, 원로원으로부터 "부정 혐의로 추방된 자가 어찌 출마하려 하느냐"며 거부당했다. 이후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의 음모에 가담하여 정권을 뒤엎으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카틸리나가 죽은 이듬해인 기원전 61년에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키케로가 직접 변호를 맡아준 덕분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반면 그와 함께 카틸리나의 모반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은 아우트로니우스는 키케로가 변호하길 거부했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고 추방당했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술라 가문의 일원으로서 유일하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편이 되었다. 이는 자신을 외면한 원로원 계급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그리스 원정에 동행했고, 디라키움 공방전 때 한 개 부대를 맡아 폼페이우스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했지만, 퇴각하는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지 않고 진영을 그대로 지켰다. 카이사르는 내전기에서 만약 술라가 그대로 폼페이우스를 공격했다면 내전 자체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 것이라 평했지만, 술라는 진영을 지킨다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기에 술라를 탓하지는 않았다. 이후 파르살루스 전투 때 우익 부대를 이끌어 승리에 일조했다. 기원전 45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5년 집정관을 역임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그의 아들이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