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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0 11:32:21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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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라틴어: Publius Cornelius Dolabella
생몰년도 기원전 69년 ~ 기원전 43년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시리아
지위 파트리키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아버지)
참전 카이사르의 내전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44년
전임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동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후임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퀸투스 페디우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의 정치인, 군인. 대표적인 옵티마테스파인 키케로의 사위였지만 카이사르의 내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편에 섰으며, 카이사르 암살 후 시리아 속주를 맡아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와 대적했으나 끝내 패배를 면치 못하고 자결했다.

2. 생애

대표적인 명문 로마 귀족 집안인 코르넬리우스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는 기원전 69년 법무관이었으며 아시아 속주 총독을 역임했다. 아피아노스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될 때 돌라벨라가 25세였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학자들은 그가 기원전 69년생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젊은 시기 희대의 방탕아로 악명 높았다. 돈을 노리고 10살 많은 여성 파비아와 결혼했다고 하며, 살인 혐의로 2번 재판을 받았지만 키케로의 변호 덕분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루푸스와 친구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51년 호민관에 선출된 그는 전 킬리키아 속주 총독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가 "로마인의 존엄성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고발했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는 아피우스를 변호했고, 돌라벨라는 키케로와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루푸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실패했다. 그 결과, 아피우스는 무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기원전 51년 무렵 열살 많은 아내와 이혼하고 키케로의 딸 툴리아와 약혼했으며, 기원전 50년 5월에 결혼식을 거행했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장인을 따라가지 않고 카이사르의 편에 섰다. 폼페이우스는 이에 대해 키케로에게 물었다.
"당신 사위는 어디 있소?"

키케로가 응수했다.
"당신 장인과 함께 있소."[1]

카이사르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폼페이우스를 따르는 적을 무찌르기로 하면서, 폼페이우스가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아드리아 해 입구를 통제하는 2개 군단 중 한 개 군단 사령관으로 돌라벨라를 선임했으며, 다른 한 개 군단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지휘했다. 그해 말 이탈리아로 돌아온 카이사르와 함께 브룬디시움에서 일리리아로 건너가 디라키움 공방전에 참여했다. 이때 돌라벨라는 키케로에게 서신을 보내 카이사르와 합류하라고 촉구했다. 이후 파르살루스 전투에 참여했으나, 질병에 걸려서 카이사르의 원정에 더 이상 참여하지 못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돌라벨라는 로마에서 호민관이 되기로 했고, 이를 위해 평민의 양자로 입양되어 귀족에서 평민으로 신분을 바꿨다. 이후 여러 문헌에서 그를 '렌툴루스'라고 칭했는데, 이로 볼때 그의 양아버지는 렌툴루스 집안 출신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기원전 48년 12월 10일 호민관을 맡아 기원전 47년 초 주택 비용을 낮추고 부채를 탕감하는 등 일련의 사회 개혁을 제안했다. 그러나 동료 호민관 루키우스 트레벨리우스 피데스가 이를 반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두 호민관의 지지자들은 로마에서 각자 무력 집단을 갖추고 시가전을 벌였다.

당시 카이사르를 대신해 로마를 이끌어가야 할 인물은 기병장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였다. 안토니우스는 로마에서 혼란이 일어나길 원치 않은 카이사르의 뜻에 따라 트레벨리우스를 심정적으로 지지했지만, 돌라벨라와 친구 사이였기에 어느 한쪽을 선뜻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가전이 갈수록 심각한 수위로 이어지자, 그는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군대를 도시에 투입하여 최대 800명의 돌라벨라 지지자들을 죽이고 돌라벨라를 체포했다. 일설에 따르면, 돌라벨라는 안토니우스의 아내와 간통했고, 안토니우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돌라벨라에게 등을 돌렸다고 한다.

기원전 47년 9월 중순에 로마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감옥에 갇힌 돌라벨라를 풀어주고 용서한 뒤, 아프리카 원정에 동행했다. 돌라벨라는 탑수스 전투에 참전했으며, 6월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이후 투스쿨룸 근처의 자신의 별장에 있는 키케로를 방문하였고, 11월에는 카이사르와 함께 이베리아 원정을 떠나 문다 전투 때 부상을 입었다. 기원전 45년 여름 이탈리아로 돌아와 카이사르로부터 그동안 충실한 봉사를 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상당한 보상을 받았다. 그는 이전에는 막대한 빚에 허덕였지만, 이제는 광할한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다.

기원전 44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어 파르티아 원정에 나서는 카이사르를 대신해 정부를 이끄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돌라벨라 선임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카이사르는 3월 15일 원로원 회의 때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회의가 시작될 때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등 여러 의원들에게 암살당했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돌라벨라는 카이사르를 죽인 암살자들의 입장에 동의를 표했으며, 폭군을 죽인 것에 찬사를 보내는 연설을 공개적으로 했다고 한다. 3월 16일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사이의 협상을 중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토니우스와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의 협상을 중재했다. 그 결과 원로원에서 카이사르파와 '해방자'파 간의 모순을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기원전 44년 4월, 돌라벨라는 카이사르를 애도하는 빈민들 사이에서 자신을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손자라고 선언하여 수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모은 아마티우스를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아마티우스는 살해되었고, 그의 지지자들은 흩어졌다. 키케로는 그가 옵티마테스파로 돌아섰다고 확신하고,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곧 툴리아와 이혼했고, 지참금을 반환하는 걸 거부하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나빠졌다. 얼마 후 안토니우스로부터 시리아 총독으로 임명되자 키케로를 부관으로 임명했지만, 키케로는 시리아로 가길 거부했다. 그는 기원전 44년 9월 2일 원로원 회의를 주재한 것을 끝으로 이탈리아를 떠나 시리아로 갔고, 키케로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비난하는 필리피카이를 연이어 발표할 때 돌라벨라에 대해 매우 정중하게 언급했다.

그는 카이사르가 파르티아와의 전쟁 때 동원하고자 마케도니아에 미리 주둔시켰던 6개 군단의 지휘를 맡을 예정이었지만, 안토니우스는 이 군단을 이탈리아에서 사용하고 싶었기에 돌라벨라에게 단 하나의 군단만을 남겼다. 돌라벨라가 아시아에 도착했을 때, 이 지역엔 카이사르의 암살자 중 한 명인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가 통치하고 있었다. 트레보니우스는 돌라벨라에게 식량을 공급하긴 했지만, 그를 따르길 거부했다. 돌라벨라는 부유한 아시아 도시들에게서 군자금을 얻어내길 희망했지만, 트레보니우스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분노한 그는 여러 요새를 공격했지만 실패했고, 최후의 수단으로 야습을 택해 스미르나 시를 공략하고 이곳에 있던 트레보니우스를 살해한 뒤 그의 목을 총독의 관저에 전시했다.

이후 리키아에서 함대를 끌어모은 뒤 기원전 43년 5월 킬리키아에 상륙하여 안티오키아를 포위했지만 함락에 실패했다. 그러던 중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12개 군단을 이끌고 자신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리오디케아로 후퇴하여 농성했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 구원 요청을 하였으나, 클레오파트라가 파견한 함대는 역풍에 의해 저지되었다. 카시우스는 라오디케아를 지속적으로 공격했지만 쉽게 함락되지 않자 성문을 지키는 백인대장에게 뇌물을 줘서 성문을 열게 했다. 이리하여 도시가 함락되자, 돌라벨라는 호위병 중 한 명을 시켜 자신을 검으로 찌르게 하는 방식으로 자살했다.


[1] 폼페이우스는 지난날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를 아내로 두었는데, 키케로는 이 점을 비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