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05 17:43:51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황제 겸 집정관 }}}
기원전 100년 기원전 99년 기원전 98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6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티투스 디디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95년 기원전 94년 기원전 93년 기원전 92년 기원전 9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코엘리우스 칼두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90년 기원전 89년 기원전 88년 기원전 87년 기원전 87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기원전 86년 기원전 86년 보결 기원전 85년 기원전 84년 기원전 83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기원전 82년 기원전 81년 기원전 80년 기원전 79년 기원전 78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77년 기원전 76년 기원전 75년 기원전 74년 기원전 73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72년 기원전 71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9년 기원전 68년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기원전 68년 보결 기원전 67년 기원전 66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5년 보결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64년 기원전 63년 기원전 62년 기원전 61년 기원전 60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기원전 59년 기원전 58년 기원전 57년 기원전 56년 기원전 55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54년 기원전 53년 기원전 52년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기원전 45년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sine collega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보결 기원전 4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2년 기원전 41년 기원전 4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페디우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기원전 40년 보결 기원전 39년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7년 기원전 37년 보결 기원전 3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5년 기원전 35년 보결 기원전 35년 보결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티투스 페두카이우스
기원전 34년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퀸투스 라로니우스
기원전 32년 기원전 32년 보결 기원전 31년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1년 보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티티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0년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기원전 29년 기원전 29년 보결 기원전 28년 기원전 27년 기원전 2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기원전 25년 기원전 24년 기원전 23년 기원전 23년 보결 기원전 2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기원전 21년 기원전 20년 기원전 19년 기원전 19년 보결 기원전 18년
마르쿠스 롤리우스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sine collega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기원전 17년 기원전 16년 기원전 16년 보결 기원전 15년 기원전 14년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기원전 13년 기원전 12년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아피아누스 가이우스 발기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0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 기원전 7년 기원전 6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술피키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기원전 5년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기원전 3년 기원전 2년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기원전 1년 기원전 1년 보결 연도 불명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8px; padding: 0 6px"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라틴어: Gnaeus Cornelius Lentulus Marcellinus
파일: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jpg
생몰년도 기원전 105년 ~ 미상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지위 파트리키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조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아버지)
코르넬리아(어머니)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형제)
스크리보니아(첫번째 아내)
파비아(두번째 아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아들)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56년
전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동기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후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2. 생애

조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는 파트리키 가문인 클라우디우스 씨족의 평민 지파이며 제2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 바르카를 상대로 분전한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의 후손이다. 그는 킴브리 전쟁에서 가이우스 마리우스 휘하 레가투스(Legatus: 군단장)을 맡아 아쿠아이 섹스티아이 전투에서 3,000명 가랴의 분견대를 이끌고 후방에서 킴브리족을 습격해 대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후 동맹시 전쟁 때 집정관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 레가투스를 맡았으나, 이번에는 이세르니아 시에서 적에게 포위되자 수비대가 항복하고 본인은 겨우 빠져나오는 등 잘 싸우지 못했다.

마르켈루스의 막내는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가문인 코르넬리우스 씨족의 렌툴루스 지파에 입양되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로 개명했다. 이 인물은 화폐 주조관을 역임했지만 그 이상으로 경력을 쌓지 못했다. 아내 코르넬리아는 기원전 111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1]의 딸이다. 푸블리우스와 코르넬리아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는 기원전 74년 재무관을 역임했다. 차남인 그나이우스가 이 항목의 주인공이다.

그는 기원전 105년경에 출생했다. 기원전 74년경 화폐 주조관으로 근무했으며, 고고학자들은 이 시기에 주조된 데나리우스를 상당수 발견했다. 기원전 70년 시칠리아 속주민들을 심하게 수탈한 총독 가이우스 베레스 재판이 열렸을 때, 그는 자랑스러운 선조가 시칠리아와 연관이 깊은 점을 고려해 시칠리아인들의 편에 섰다. 기원전 67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휘하 레가투스로서 지중해 해적들과의 전쟁에 참여해 아프리카 해안에서 해적들을 몰아냈다. 키레네 주민들은 이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아폴로 사원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기원전 61년 보나 데아(Bona Dea: 순결과 출산의 신) 여신에게 바치는 비밀제의에 몰래 침입해 신성 모독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를 고발한 인사들에 가세했으며, 기원전 60년 법무관에 선임되었다. 이후 시리아 속주에 총독으로 부임해 2년간 통치해 아랍인들의 습격을 격퇴했다. 로마로 돌아온 후 기원전 56년 집정관에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와 함께 선임되었다. 그는 동료 집정관과는 달리 제1차 삼두정치의 구성원들에 반대했고, 클로디우스가 불법으로 평민이 되어 호민관으로서 악행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클로디우스 지지자들에 의해 파괴된 그의 집이 있었던 팔라티노 언덕의 부지를 키케로에게 넘기는 안건을 제시해 원로원의 승인을 얻었지만 한 호민관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되었다.

한편,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이집트 파라오에 복위시키는 방안을 놓고 원로원에서 회의가 열렸다. 폼페이우스는 군대를 이집트에 파견하려 했지만, 그는 외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원로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시리아 총독이자 폼페이우스의 심복인 아울루스 가비니우스가 원로원의 허락을 받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에 들어가서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복위시키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기원전 56년 4월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루카에서 카이사르와 만나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그는 원로원 회의에서 두 사람에게 "세간에 당신들이 카이사르와 짜고 집정관이 되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데, 정말로 집정관이 되고 싶은가?"라고 대놓고 물었다. 폼페이우스는 옵티마테스 때문이 아니라 선동을 일삼는 자들 때문에 로마의 정세가 불안하니 집정관을 맡아야 한다면 맡겠다고 답했다. 반면에 크라수스는 자신은 카이사르와 짜고 집정관으로 지명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몇 달 후 두 사람이 집정관 선거에 동시에 출마하면서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것이 드러나자, 그는 이에 격분해 두 사람의 출마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호민관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를 회유하여 선거를 마르켈리누스가 퇴임한 후인 기원전 55년 1월로 미루는 법안을 통과시키게 했다. 마르켈리누스는 "이것은 공화정의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다!"라며 공개적으로 항의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집정관에서 퇴임한 뒤 삼두정치의 권세가 로마를 지배하는 것에 신물이 났는지 더 이상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삼두정치가 무너지고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 별다른 언급이 없는 걸 볼 때, 그는 몇 년 안 되어 사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학자들은 기원전 48년 재무관을 맡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마르켈리누스가 그의 아들로 추정한다. 또한 아우구스투스의 두번째 아내였던 스크리보니아의 첫번째 남편이 그였으며, 스크리보니아와 이혼한 뒤 파비아와 결혼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1]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를 살해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