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라틴어: Titus Statilius Taur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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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기원전 60년 이전 ~ 기원전 10년 이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이탈리아 루카니아 |
사망지 | 로마 제국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부스 호모(새로 귀족이 된 자) |
국가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가족 |
코르넬리아 시센나(부인)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장남)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차남) 시센나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삼남) 스타틸리아 피소니스(딸) |
참전 |
시칠리아 내전 옥타비아누스의 일리리아 원정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내전 칸타브리아 전쟁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7년 |
전임 |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
동기 |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
후임 |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6년 |
전임 |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
동기 | 아우구스투스 |
후임 |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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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정, 로마 제국의 군인, 정치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부하였다가 아우구스투스의 편으로 들어간 뒤 그의 휘하에서 시칠리아 내전,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내전, 칸타브리아 전쟁을 치르고 집정관을 2번 역임했다.2. 행적
이탈리아 루카니아 출신의 노부스 호모(Novus Homo: 새로 귀족이 된 자)로, 스타틸리우스 가문 최초로 로마 정계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부모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 없고 초기 생애 역시 알 수 없지만 일찍부터 군대에 입대하여 군공을 쌓은 끝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부관으로 발탁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7년 집정관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가 사임한 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입김으로 보결 집정관이 되어 옥타비아누스의 친구이자 부관인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와 공동으로 국정을 이끌었다.기원전 36년 시칠리아 내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를 돕고자 파견한 120척 함대의 지휘관을 맡았다. 그는 타렌툼에서 출격하여 아그리파와 합세한 뒤 기원전 36년 9월 3일 나우로쿠스 해전에서 섹스투스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적 함대 섬멸에 크게 기여했다. 섹스투스가 패전 후 시칠리아에서 소아시아로 달아난 뒤, 타우루스는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를 제압한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레피두스의 영지였던 아프리카로 보내져서 2년간 그곳을 안정시켜 옥타비아누스의 지배에 순종하게 했다. 기원전 34년 로마로 귀환한 뒤 옥타비아누스의 양해를 받고 아프리카에서 세운 공로를 기념하는 개선식을 치렀다.
기원전 34년 옥타비아누스의 일리리아 원정에 참여했다. 옥타비아누스는 달마티아 족의 근거지인 세토피아를 공격하던 중 적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정강이뼈가 부러지자, 그를 새 사령관으로 세운 뒤 로마로 귀환했다. 타우루스는 공성전을 이어간 끝에 기원전 33년에 함락했다. 그리하여 일리리아 전역이 평정된 후에도 그곳에 주둔한 군대를 계속 지휘했다. 기원전 32년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내전이 발발하자 옥타비아누스 편을 들었고, 기원전 31년 9월 2일 악티움 해전이 벌어졌을 때 지상에 남겨진 옥타비아누스 육군을 지휘해 안토니우스 측 육군과 대치했으며, 악티움 해전 승리 후 안토니우스 측 육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기원전 29년 옥타비아누스로부터 히스파니아 총독으로 선임되어 칸타브리아인들을 복종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가 옥타비아누스의 지시를 받들어 칸타브리아 전쟁을 개시한 이래 2년간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기록이 부족해서 알 수 없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를 칭한 옥타비아누스로부터 칸타브리아, 아스투레스, 바케오스 족을 정복한 공적을 인정받아 임페라토르 칭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칸타브리아인들은 이후에도 로마를 상대로 적대행위를 지속했기 때문에, 타우루스는 소규모 접전에서 몇 차례 승리했지만 완전 제압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29년 자신의 이름을 딴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원형경기장'을 세우고 검투사들의 대규모 경기를 개최했다. 로마인들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매년 법무관 중 한 명을 지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기원전 27년 히스파니아에서 로마로 돌아온 후 아우구스투스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다. 기원전 16년 아우구스투스가 갈리아로 가서 게르마니아 전쟁을 준비할 때 로마의 프라에펙투스 우르비(치안 장관)을 맡아 기원전 10년까지 역임했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코르넬리아 시센나와 결혼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전의 아내로부터 장남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를, 코르넬리아 시센나와의 사이에서 차남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와 삼남 시센나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딸 스타틸리아 피소니스를 낳았다. 장남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는 조폐국 관리를 맡았으나 집정관이 될 연령에 도달하기 전에 사망했다. 차남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는 서기 11년에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삼남 시센나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는 서기 16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딸 스타틸리아 피소니스는 기원전 1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의 형제인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