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라틴어: Gnaeus Aufidius Orest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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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아버지?)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양부)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71년 |
전임 |
루키우스 겔리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
동기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
후임 |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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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 정계에서 활약한 노빌레스 가문인 아우렐리우스 씨족의 일원으로, 일각에서는 기원전 103년 집정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가 그의 친아버지라고 추정하지만 불확실하다. 그는 모종의 시기에 법무관을 역임했던 노인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에게 입양되어 이름을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로 개명했다. 아우피디우스는 기원전 6세기 말의 사료에 언급될 정도로 오래된 파트리키 가문이었다. 로마식 작명법에 따르면 '그나이우스 아피디우스 아우렐리아누스'라는 이름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친아버지의 코그노멘인 오레스테스를 물려받는 쪽을 택했다.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 따르면, 그는 초년기에 호민관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럼에도 경력을 이어가서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가 집정관이던 해(기원전 77년)에 법무관에 선임되어 로마시에서 로마 시민들을 상대하는 법정을 주관해싿고 한다. 그는 이 직책과 관련해 한 번만 언급되었다. 이에 따르면, 자신의 의지로 재산을 자모신의 사제 게누티우스에게 양도하기로 한 네르비우스 수르디누스의 요청을 승인했다. 그러나 당해 집정관들은 게누티우스는 내시이니 남성이나 여성으로 간주할 수 없으므로 상속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발표하고 이를 무산시켰다.
기원전 71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지만 별다른 행적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키케로에 따르면, 로마의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과를 무료로 배포해 "큰 영예"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