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라틴어: Lucius Sestius Albanianus Quirinal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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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지위 | 노부스 호모(Novus Homo: 신참자) |
국가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가족 |
루키우스 세스티우스(조부)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아버지)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3년 |
전임 |
아우구스투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
동기 |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
후임 |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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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조부 루키우스 세스티우스는 기원전 100년에서 91년 사이에 호민관을 역임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 따르면, 이 인물은 현명하고 경건하며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버지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는 기원전 55년 법무관을 역임했고, 기원전 49년부터 49년까지 킬리키아 총독을 맡았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총독을 맡고 있을 때 키케로가 복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설득했으며, 정치 테러를 가하는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에 대항했다가 2차례 기소되기도 했다.그는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이 벌어진 후 대표적인 카이사르 암살자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지지했고, 기원전 42년 마케도니아 속주에서 브루투스의 재무관으로서 활동했다. 필리피 전투 후 옥타비아누스에게 귀순했고, 기원전 23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중병에 걸린 여파로 사임한 뒤 보결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후 기원전 22년부터 19년까지 스페인 북서부의 트란스두리아나 지방의 총독을 맡았는데, 이곳에서 아우구스투스를 기리기 위해 3개의 제단을 세웠다. 호라티우스는 그의 친구였으며, 저서에 그를 위한 송사를 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