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19 16:37:39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황제 겸 집정관 }}}
기원전 100년 기원전 99년 기원전 98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6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티투스 디디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95년 기원전 94년 기원전 93년 기원전 92년 기원전 9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코엘리우스 칼두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90년 기원전 89년 기원전 88년 기원전 87년 기원전 87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기원전 86년 기원전 86년 보결 기원전 85년 기원전 84년 기원전 83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기원전 82년 기원전 81년 기원전 80년 기원전 79년 기원전 78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77년 기원전 76년 기원전 75년 기원전 74년 기원전 73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72년 기원전 71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9년 기원전 68년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기원전 68년 보결 기원전 67년 기원전 66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5년 보결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64년 기원전 63년 기원전 62년 기원전 61년 기원전 60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기원전 59년 기원전 58년 기원전 57년 기원전 56년 기원전 55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54년 기원전 53년 기원전 52년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기원전 45년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sine collega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보결 기원전 4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2년 기원전 41년 기원전 4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페디우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기원전 40년 보결 기원전 39년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7년 기원전 37년 보결 기원전 3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5년 기원전 35년 보결 기원전 35년 보결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티투스 페두카이우스
기원전 34년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퀸투스 라로니우스
기원전 32년 기원전 32년 보결 기원전 31년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1년 보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티티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0년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기원전 29년 기원전 29년 보결 기원전 28년 기원전 27년 기원전 2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기원전 25년 기원전 24년 기원전 23년 기원전 23년 보결 기원전 2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기원전 21년 기원전 20년 기원전 19년 기원전 19년 보결 기원전 18년
마르쿠스 롤리우스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sine collega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기원전 17년 기원전 16년 기원전 16년 보결 기원전 15년 기원전 14년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기원전 13년 기원전 12년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아피아누스 가이우스 발기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0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 기원전 7년 기원전 6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술피키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기원전 5년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기원전 3년 기원전 2년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기원전 1년 기원전 1년 보결 연도 불명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8px; padding: 0 6px"
}}}}}}}}}}}}}}}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라틴어: Gaius Aurelius Cotta
생몰년도 기원전 124년 ~ 기원전 74년 말 또는 기원전 73년 초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지위 노빌레스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아버지)
루틸리아(어머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형제)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형제)
아우렐리아 코타(사촌)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75년
전임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동기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후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2. 생애

기원전 3세기부터 로마 정계에서 활약한 노빌레스 가문인 아우렐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파스티 카피톨리니에서 그의 아버지로 언급되었지만 그 외에 별다른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다. 어머니 루틸리아는 기원전 105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의 누이였다. 형제로 기원전 74년 집정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기원전 65년 집정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있었다. 또한 사촌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 코타가 있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그가 기원전 88년 호민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와 "거의 같은 나이"였다고 밝혔다. 그는 술피키보다 앞선 기원전 91년 가을에 열린 호민관 선거에 입후보했기에 술피키우스보다 몇 달 더 많았을 것이다. 또한 키케로는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보다 10살 많았다고 기술했다. 학자들은 이 점을 근거로 그가 기원전 124년에 출생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는 기원전 90년대부터 정치 경력을 시작했는데, 특히 변호사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키케로는 그를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오라토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스트라보 보피스쿠스와 함께 전대에 로마에서 가장 인기있는 6명의 변호사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키케로는 그와 술피키우스가 웅변에서 모든 동시대 사람을 능가했으며, 그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오라토르를 본받았고 술피키우스는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술피키우스를 추종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키케로는 그가 폐가 약했기 때문에 힘이 다소 떨어졌지만 가장 재치있고 미묘한 말을 구사해 청중의 이목을 사로잡았으며, 설득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칭찬했다. 그는 자신의 연설문 일부를 출간했다고 전해지나 현존하지 않는다.

그는 소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와 절친한 관계를 맺었고, 기원전 91년 호민관이 된 드루수스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을 때 절대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개혁은 당해 집정관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등의 거센 반대로 인해 난항을 겪다가 드루수스가 암살당하면서 무산되었다. 이에 드루수스가 로마 시민권을 나눠주려 했던 이탈리아인들이 분노해 동맹시 전쟁을 감행했다.

드루수스의 정적들은 코타 등 드루수스의 추종자들이 이탈리아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기원전 90년 호민관 퀸투스 바리우스 세베루스 히브리다가 동맹시들이 로마에 반기를 일으키도록 선동한 자들을 처벌하자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따라 드루수스를 지지했던 인사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코타 역시 재판에 회부된 뒤 추방되었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그는 법정에 출두한 뒤 자신의 행동 방침에 대해 인상적인 연설을 하고 공개적으로 에퀴테스를 비난한 뒤 표결이 시행되기 전에 로마를 떠났다고 한다. 기원전 88년 호민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가 그를 포함한 망명자들이 로마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시했지만 술라의 쿠데타로 인해 목숨을 잃으면서 실패했고, 그는 망명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기원전 82년 술라의 내전의 최종 승리자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망명지에서 복귀하는 것을 허락한 덕분에 로마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이에 고마움을 느끼고 술라의 확고한 지지자가 되었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아우렐리우스 코타'를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술라에게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숙청 명단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수에토니우스는 아우렐리우스 코타라는 이름의 프라이노멘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가이우스일 가능성이 있다. 술라는 투덜거리며 카이사르를 사면하겠다고 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당신들 좋을 대로 그 친구를 데려가시오. 다만 당신들이 그리도 살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언젠가는 당신들이 나와 함께 지켜온 귀족층의 대의에 치명타를 날릴 거라는 점만 알아두시오. 이 카이사르라는 친구 안에는 마리우스가 여럿 들어 있으니까."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히스파니아 총독 '코타'는 기원전 80년 마우레타니아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간 퀸투스 세르토리우스와 맞섰지만 멜라리아 해전에서 패배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이 인물에 대해 그 또는 형제 마르쿠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학계에서는 행정관들의 법적 취임 가능 연령을 설정한 술라의 법에 의거해, 그가 기원전 78년 이전에 법무관을 맡았을 거라고 추정한다. 기원전 77년,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마케도니아 총독 기간 동안 속주민들을 상대로 착취를 일삼았다는 혐의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를 고발하면서 열린 재판에 참석하여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와 함께 돌라벨라를 변호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기원전 75년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와 함께 집정관이 되었다. 당시 로마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히스파니아에서는 세르토리우스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국고는 텅 비어버렸고, 로마 시에는 기아의 위협이 엄습했다. 이에 빈민들은 각지에서 폭동을 일으키려 들었다. 그는 평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연단에 서서 연설했지만, 그들이 오히려 그를 죽이려 들자 옥타비우스의 집으로 피신해야 했다. 이후 시칠리아 등 다른 지방에서 대규모의 밀을 수입해 민심을 가까스로 수습했다. 이후 술라파와 결별하기로 한 그는 술라가 호민관을 맡은 이가 다른 관직을 맡을 수 없게 한 조치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집정관 임기가 만료된 후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를 임지로 맡은 그는 소규모 폭동을 진압한 것 외에는 별다른 전투를 치르지 않았지만 개선식을 거행하길 희망했다. 기원전 74년 말 또는 73년 초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원로원으로부터 개선식을 거행할 자격이 있다는 인정을 받고 즉시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개선식이 열리기 전날, 그는 망명 생활 동안 입었던 상처가 악화되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