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라틴어: Sextus Appulei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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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아버지) 대 옥타비아(어머니)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형제) 퀸크틸리아(아내)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아들) 아풀레이아 바리아(딸)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9년 |
전임 |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
동기 | 옥타비아누스 |
후임 |
옥타비아누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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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저명한 노빌레스 집안인 아풀레이우스 가문 출신이다. 이 가문은 기원전 300년에 퀸투스 아풀레이우스 판사가 집정관을 역임한 것을 시작으로 로마 공화국의 고위 관직을 여러 차례 역임했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아버지는 섹스투스라는 코그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이 인물이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와 안카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옥타비아누스와 소 옥타비아의 이복 누이인 대 옥타비아와 결혼한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와 동일인물이라고 추정한다. 형제로 기원전 20년 집정관을 역임한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가 있었다.1966년 키메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아풀레이우스'라는 인물이 유피테르 신전에서 플라멘(flamen: 사제)를 맡았으며 법무관을 역임했다고 한다. 이 인물이 아버지 섹스투스인지 아들 섹스투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원전 29년 옥타비아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가 그 해 중반에 사임하고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가 보결 집정관으로 선임되었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의 <개선장군 목록>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26년 1월 26일 히스파니아에서 귀환한 뒤 개선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집정관 역임 후 히스파니아 총독에 부임해서 군공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키메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17년 아시아 총독으로 부임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12년 아풀레이우스를 자신의 친척으로 인정하며 그의 기원을 의심하고 근거없는 소문을 퍼트리는 자들을 엄벌에 처하겠다고 포고했다고 한다. 기원전 8년 일리리아 대반란을 성공적으로 토벌한 티베리우스를 대신해 일리리쿰 총독에 부임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그의 딸이며 기원전 17년 로마에서 간통법 위반 혐의로 추방된 아풀레이아 바리아(Apuleia Varilla)가 아우구스투스의 누이의 손녀라고 한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고전 역사가 빌헬름 카를 아우구스트 드루만(Wilhelm Karl August Drumann, 1786 ~ 1861)은 이를 근거로 그가 소 옥타비아의 장녀인 대 클라우디아 마르켈라와 결혼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이 추정이 잘못되었다고 보며, 기원전 49년 재무관이었던 섹스투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의 딸인 퀸크틸리아가 그의 아내라고 추정한다.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참화를 초래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는 퀸크틸리아의 남자 형제였다. 또한 서기 14년 집정관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는 그의 아들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