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라틴어: Publius Silius Nerv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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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가족 |
푸블리우스 실리우스(아버지) 코포니아(아내) 푸블리우스 실리우스(장남)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차남) 가이우스 실리우스(삼남)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0년 |
전임 |
마르쿠스 롤리우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
동기 |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
후임 |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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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기원전 56년 법무관, 기원전 51~50년 비티니아 총독을 역임한 푸블리우스 실리우스의 아들이다. 옥타비아누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로 발탁된 이래 그의 여전을 함께한 충직한 장군이었으며, 옥타비아누스가 최종적으로 로마 제일의 권력자가 된 뒤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은 후 그동안의 공헌을 인정받아 파트리키로 지명되었다. 기원전 20년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기원전 19년 히스파니아 타라코텐시스 속주에 레가투스로 부임해 기원전 17년까지 통치했다. 이후 일리리쿰의 레가투스로 부임하여 기원전 16년까지 통치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기원전 49년 법무관을 역임한 가이우스 코포니우스의 딸 코포니아와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다. 장남 푸블리우스 실리우스는 서기 3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는 리키니우스 가문으로 입양된 뒤 7년에 집정관으로 선임되었다. 세번째 아들 가이우스 실리우스는 13년 집정관을 역임했지만, 24년 대 아그리피나와 친분이 두텁다는 이유로 세야누스에게 고발당하고 당해 집정관 루키우스 비셀리우스 바로에게 갈리아 반군을 묵인하고 사크로비우스의 음모를 숨긴 혐의로 비난당하자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