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 라틴어: Gaius Claudius Centh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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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조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아버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루수스(첫째 형)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둘째 형)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동생)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아들)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40년 |
전임 |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티쿠스 퀸투스 루타티우스 케르코 |
동기 |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
후임 |
가이우스 마밀리우스 투리누스 퀸투스 발레리우스 팔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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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독재관.2. 생애
사비니에서 로마로 이주한 이래 기존의 로마 파트리키과 대등한 권세를 누린 명문 귀족 가문인 클라우디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조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는 기원전 337년 독재관을 역임했고, 아버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는 기원전 312~307년 감찰관을 역임하면서 아피아 가도를 건설하고 로마의 정치 및 행정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혁했으며, 기원전 307년과 기원전 296년에 집정관을 역임하고 기원전 285년 독재관을 역임했다. 형제로 기원전 268년 집정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루수스, 기원전 249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있었다.[1]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기원전 240년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올랐고, 기원전 225년 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와 함께 감찰관을 맡았다고 한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216년 칸나이 전투 이후 인터렉스에 선임된 뒤 독재관으로 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를 지명했다고 한다. 기원전 213년 고위 행정관 선거를 주관하는 독재관에 임명된 뒤 기병장관으로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를 지명했다. 이후 선거 결과, 그의 조카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와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가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로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
다만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뮌처는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의 아들이라 보기엔 고위 행정관을 역임한 년도가 지나치게 차이난다며, 카이쿠스와 두 형제 사이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클라우디우스'가 있었을 거라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