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풀비우스 파이티누스 라틴어: Marcus Fulvius Paetin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그나이우스 풀비우스(조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아버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켄투말루스(형제)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99년 |
전임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퀸투스 아풀레이우스 판사 |
동기 |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
후임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켄투말루스 |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행적
기원전 4세기부터 로마의 고위 행정관에 연이어 이름을 올린 노빌레스 씨족인 풀비우스 가문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 모두 그나이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298년 집정관을 역임하고 기원전 독재관을 맡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켄투말루스는 그의 형제로 추정된다.기원전 299년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지난해 집정관 퀸투스 아풀레이우스 판사가 공격을 시작했지만 함락에 실패한 움브리아의 네퀴니움(오늘날 이탈리아 나르니) 공방전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2명의 네퀴니움 시민이 그에게 도시로 들어가는 지하 통로를 알려줬다. 그는 병사들을 거기에 투입시켜 도시를 공략하는 데 성공한 뒤 식민도시를 세웠다. 이후 로마로 귀환해 개선식을 거행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