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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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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한복[1]
파일:external/pbs.twimg.com/Bw3HJD2CEAAGF7i.jpg 파일:삼국시대 한복.jpg
삼국시대 여성 한복[2] 도식화

1. 개요2. 한복의 역사3. 한복 관련 정보
3.1. 한복의 양식3.2. 전통 장식3.3. 한복의 종류3.4. 한복에 대한 오해3.5. 바느질3.6. 원단3.7. 실루엣3.8. 말기와 가슴가리개3.9. 동아시아의 전통복식과 비교3.10. 입는 순서3.11. 관리하는 법3.12. 맞출 때 신경써야 할 부분
4. 현대 한국에서의 한복
4.1. 여자4.2. 남자4.3. 단점
4.3.1. 대량생산의 어려움4.3.2. 트렌드에 집착하여 한복의 원형이 소멸4.3.3. 고루한 양식으로 인한 대중의 외면4.3.4. 대중들의 편협한 인식4.3.5. 사극의 재현 오류
4.4. 현대화4.5. 한복의 입는 법
5. 해외 인식6. 대중문화 속의 한복
6.1. 한복을 입은 캐릭터6.2. 한복 일러스트
7. 관련 사건 사고8. 관련 영상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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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선비그림.jpg
파일:Josenhanbok1.jpg 파일:기생 사진 001.jpg
정자(한자) 신자체: 韓服 간체자: 韩服 Hanbok
a traditional Korean costume consisting of a jacket with long sleeves (= arms) and a long, wide skirt for women or loose trousers for men. The hanbok is a traditional costume that has been adapted for the modern era. 영국 Oxford 사전 한국 한복 (Hanbok) #
한복()은 한국의 전통의상이다. 대한민국과 같은 한민족 북한에서는 "조선옷"이라고 부르나 본질은 동일하다.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명칭은 한복(Hanbok)이다.

일반적으로 "한복"에 대하여 '조선 후기'의 복식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히 말해서 한복은 특정 시기의 특정 복식이 아닌 "한민족의 전통의상" 그 자체를 가리킨다. 대중들이 흔히 떠올리는 한복의 이미지인 옷고름이 달린 여성 전통 복장은 저고리다.

한 시대에도 다양한 양식의 한복이 동시에 존재했다. 즉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형태가 변해온 다양한 전통의상들을 모두 가리키며, 이러한 의상들은 시대의 유행과 타국과의 문화교류에 따른 상호작용으로 타국에 미치거나 타국의 요소를 받아들이며 지속적으로 변천해왔다.[3]

현재 대한민국에서 인식되는 한복에 대한 주된 고정관념은 어디까지나 조선 후기의 것에 지나치게 국한되어 있으며 그 이전이나 이후의 양식에 대한 정보는 질과 양도 매우 부족하다. 그렇기에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부분의 정보들 또한 조선 후기식 의복에 집중되어있으며, 그 이전의 옷들은 "고대한복" 또는 "삼국시대옷", "조선 전기 한복" 같은 식으로 구분되어 따로 정리되어지는 경우가 많다.[4] 그 시대의 한복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전통 한복의 역사 참고.

대한민국에서는 1950년대 까지만 해도 양복과 함께 사람들이 흔하게 입고 다녔으나 1960년대에 섬유공업이 육성되면서 대량생산이 쉽게 가능하고, 입기 편하며, 가격도 저렴한 오늘날의 사복에 밀려 입는 사람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현대 한국인들 사이에서 한복은 이미 생활복의 성격을 오래전에 잃고 문화 콘텐츠, 전통행사, 관광 자원, 명절 의복, 결혼식 또는 장례식 같은 경조사같은 특별한 날에 입는 옷으로써 제한적으로만 활용되는 편이다. 사실 양복마저 1990년대 까지는 남성들이 회사에 출근할 때 거의 매일 입는 생활복이었으나 캐주얼 차림이 일반화 된 2000년대 부터는 특별한 날에 입는 옷이 된 것과 동일. 한복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들이 있지만 주로 조선 말기 이후의 변형된 양식이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다.[5]

2022년에는 '한복 문화'라는 명칭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종목이다.

2. 한복의 역사

파일:근대식 한복.jpg
근현대 한국의 한복
파일:북한 한복 자료.jpg
북한에서의 한복[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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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복 관련 정보

3.1. 한복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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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통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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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성별과 상관없이 귀고리까지 착용하는 것이 기본 착장이었다.[7] 귀고리 유물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골고루 나타나며 조선 시대에서도 성별을 불문하고 귀를 뚫고 귀고리를 착용했다. 세종실록 3권, 세종 1년 1월 6일 신해 4번째기사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사대부 자손들이 귀고리를 착용했으며 금이나 은을 써도 법에 저촉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선조 5년(1572)에 젊은 남자로 한정해 귀고리를 금지시킨다. 선조실록 6권, 선조 5년 9월 28일 신해 두 번째 기사

이후 귀를 뚫는 귀고리가 아닌, 귓바퀴에 거는 귀걸이가 등장했다.[8] 선조실록 186권, 선조 38년 4월 19일 계해 두 번째기사에 '귀고리를 건 노파'가 언급되므로 여자까지 귀고리를 금지당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선조 30년(1597)에 남자의 귀 뚫은 자국을 보고 조선인인지 왜적인지 구분한다는 기록이 있다. 선조 5년에 남자들의 귀고리를 금지시켰음에도 오랜 풍습을 쉽게 바꿀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법으로 금지되기 전에 귀를 뚫었던 사람이거나. 선조실록 93권, 선조 30년 10월 4일 신유 여섯 번째기사

밑의 실루엣 문단에서 설명하겠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의를 크고 풍성하게, 전체적으로 봤을 때 A라인 처럼 만드는 특징이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3~5개 정도의 치마를 껴입었고 그 이상도 가능하다.

3.3. 한복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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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한복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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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겉으로 보기에 좋아보이지 않는 구한말 몇몇 사진들만 근거삼아 한복을 폄하하는 확증 편향된 억지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 일제가 한일병탄의 정당화를 위해 펼친 의도적인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인정하는 모습일 뿐이다. 제국주의 시절 서양에서도 비슷한 논리로 중국과 일본을 비하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로서 당시 중국, 일본의 좋지 않은 모습을 의도적으로 담은 사진이 다수 존재한다.

한복의 양식 항목을 보았다면 알 수 있듯이, 당시 조선 사람들은 대다수가 옷을 제대로 입고 다녔고 의복 수준 또한 나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자세한 사항들은 해당 항목 참고.

그리고 애초에 각 시대와 문화마다 노출이 허용되는 부위가 다 달랐다. 19세기 서구권에서는 여성은 지금보다도 가슴골을 노출하는 건 매력적이라고 여겼지만 감히 발목을 보이면 더럽고 헤픈 여자라고 학을 떼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짧은 치마와 반바지를 아무렇지 않게 입지만 서양에서는 다리 노출을 비교적 꺼리며 반대로 가슴 노출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관대하게 생각한다.

3.5. 바느질

3.6. 원단

3.7. 실루엣

예로부터 동아시아의 삼국은 전통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성과 가치가 다른 만큼, 옷에 대한 문화적 차이가 전체적인 선에서 드러난다. 중국은 옛부터 몸에 최대한 붙어서 '신체미'를 강조했고, 일본은 직사각형의 ‘단조롭고 깔끔한 아름다움’을 지향했다면, 한국은 정 반대로 붙지 않고 품이 "넉넉하다". 특히 하의를 엄청난 면을 써가며 풍성한 아름다움을 지향했다.

이는 남성도 마찬가지로 청의 사신은 '조선의 바지 한벌로 청의 바지 두벌은 만들 수 있다.'며 충격을 먹을 정도로 하체의 여유미를 추구했다.[14] 신라시대 때부터 상의가 아닌 하의를 정체성으로 삼고 노략질을 하는 놈들[15]도 있었으니 1000년을 넘는 미의식인 셈이다.

쉽게 말해서 중국과 일본, 여러 동아시아 국가들이 ■의 형상을 취한다면 조선은 ▲의 형상을 취한다고 보면 된다.

현재 알고 있는 포대자루같이 펑퍼짐한 치마저고리의 실루엣은 최소 구한말에 정립된 형태이며, 한민족은 여태껏 옷을 입은 이래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복은 남녀를 불문하고 허리 선이 드러나 엉덩이를 강조하는 디자인이었다. 특히 조선시대 한복은 흔한 인식과는 정반대로 조선 초부터 시대가 흘러갈수록 점차 몸매를 드러내는 형태로 바뀌어간다.
파일:여성한복변천사.png
파일:external/image.koreatimes.com/a-23-1.jpg
조선시대 여성 저고리의 변천사
상의 저고리가 점점 타이트해지며 짧아지더니 가슴 윗부분까지 올라가 버려서 가슴가리개라는 것을 허리에 두르지 않으면 가슴 아래 선이 전부 노출돼 버렸다.
파일:Yeonso_dapcheong_breast.jpg
신윤복의 풍속화 연소답청에 표현된 가슴가리개
상단 자료는 허리에 넓은 천을 두르고 띠로 고정시킨 것이다. 초기의 브래지어처럼 가슴을 가리고 조이는 역할을 하는, 상의의 맨 아래에 착장하는 속옷이다. 저고리가 너무 짧아져 이 속옷이 노출되는 지경에 이르자[16] 가슴가리개는 가슴부터 허리까지 꽁꽁 가리고 조이는, 맨 아래에 착장한 한복 속옷이다.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있는 퓨전 한복이나 한복 드레스에서 오픈숄더처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부분은 치마의 말기 부분이다. 기생들은 여기에 자수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 수를 놓은 가슴가리개는 전해지는 유물은 없고 이영희 디자이너가 현대에 창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구한말, 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인들의 사진이 유명한데, 이는 일제가 "미개한 조선을 우리가 개화해줬다" 라는 거짓된 의도로 연출한 날조된 사진이다. 19세기 말 당시 사진엽서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는데, 식민지의 모습을 찍은 엽서도 자연스럽게 유행했다. 그리고 일제는 조선의 미개하고 가난한 모습만을 골라 지배국의 시선을 투영했고, 일제의 식민지배가 박애주의적인 선택이었다는 타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하층민 중 아이를 낳은 여성이 수유를 쉽게 하기 위해 가슴을 드러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는 임산부라는 특별한 경우에나 해당되는 것이고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애초부터 평민 여성이나 양가집 규수가 공공연하게 밖에서 가슴을 드러낼 리도 없다. 게다가, 조선시대에는 정반대로 부녀자들이 장옷이나 쓰개치마로 얼굴만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 SBS 스페셜 일제 사진, 그 비밀과 거짓말, ##)

한국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한복은 구한말에 유행하던 스타일인데,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허리에서 여며지던 치마를 길게 만들어 가슴 위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구한말의 여성해방과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 가슴가리개와 말기치마는 일단 조인다. 기능만 보자면 가슴조이개에 더 가깝다. 코르셋이 허리를 조인다면, 이건 가슴에서 허리까지 꽉꽉 다 조인다. 이는 여아들의 2차 성징에도 지장을 주었고 현대에 들어 가슴가리개&치마말기를 유지하고 있는 퓨전한복은 가슴둘레에 맞춰 제작함으로써 가슴부분을 조이지 않는 형태로 나오고 있다.

조선 중기까지는 저고리가 남성의 것처럼 길고 한복 치마는 허리에 둘렀다. 인체구조상, 치마가 허리부터면 대강 둘레만 맞으면 적어도 밑으로 내려가진 않는다. 그런데 저고리가 짧아지고 가슴가리개와 말기치마가 생기니, 이젠 죄지 않으면 치마가 그대로 벗겨진다.

구한말부터 유행한 치마는 치마에 어깨끈이란 안전장치를 달아, 짧은 저고리는 유지하면서도 여자들이 마음놓고 좀 뛰어도 괜찮게 하였다. 조끼허리 혹은 어깨허리[17]라 하여, 점퍼스커트처럼 어깨에 걸쳐서 입어 여민다. 이 형태는 개화기 때 이화학당 미국인 여교장 J.월터가 위의 가슴가리개가 청소년기 소녀들의 건강상 좋지 못한 것도 있었고 체조와 농구같은 운동를 하거나 뜀뛰기를 할때마다 치마가 흘러내렸기 때문에 개량해 보급한 것이다.

저고리를 다시 늘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한복 치마 형태에서 활동성을 극대화하려면 이렇게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어깨끈을 달며, 통치마로 만들어 여밀 필요가 없게 하고, 치마 길이는 땅에 쓸리지 않게 짤막히 하는 게 최고다. 즉 현재 북한의 한복 치마 형태나, 유관순이 입은 한복 치마를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이화학당 등 구한말 여학교들 중심으로 활동성 높은 통치마 입기를 권장했고, 이렇게 몸매를 드러내는 가슴가리개 한복에서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펑펑한 한복 형태로 바뀌어갔다.

묘하게도 현대에 들어서 만들어지고 있는(더욱이 일반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한복은 대다수가 이렇게 상하의 구분선을 생략하고 치마가 겨드랑이까지 올라가는 형태이다. 실생활에서 이러한 형태의 개량한복을 접할 수 있는 가장 흔한 기회는 바로 결혼식장인데, 컨벤션센터 위주의 현대 혼례에서도 신랑•신부의 어머니는 한복을 입고 참석하는 것이 정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아예 통치마 형태의 개량형 치마를 혼주치마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런 디자인도 충분히 매력이 있으며, 한복의 절제되면서도 가리는 멋과 치마의 풍성한 선을 높이 사기도 하지만 일부 젊은 한복 디자이너들은 이 디자인을 포대자루 같다며 까기도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이쪽이 수요가 워낙 많고, 가격대 역시도 만만치 않아서[18] 이쪽으로 디자이너가 많은 편이다.

그래도 이러한 긴 치마[19]를 응용한 한복 드레스도 만들어지고 있다.

3.8. 말기와 가슴가리개

말기 가슴가리개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치맛허리/바짓허리라고 사이시옷을 쓸데없이 넣어 표기하지 않는다. 또한 '고름'은 상의를 여밀 때 쓰는 끈을 지칭하는 것이지, 말기에 달린 끈을 고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치맛고름/바짓고름이라는 용어는 복식사 책에도 없고 학자들도 사용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용어이다. 남자 바지를 여미는 끈은 말기에 같이 달린 끈이 아닌 분리가 가능한 허리띠이며, 여자의 속옷으로 쓰이는 바지에 달린 끈도 그냥 '바지끈', '바지말기 끈' '바지허리 끈'으로 부르지 바짓고름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는 없다.

조끼허리(어깨허리)식 말기가 생겨나기 전 띠허리식 말기의 치마끈은 상의의 옷고름보다 넓고 길어서, 치마를 여민 뒤 남는 부분을 저고리 밑 치마 위로 늘어뜨리고 다녔다. 구한 말 사진이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하얀 치마끈을 마치 고름처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치마끈은 반드시 물들이지 않은 무명이나 마(삼베, 모시)재질로 만들었고, 자수 장식은 하지 않았다. 조선 전기의 출토복식부터 구한말까지 내려오는 전세유물까지, 치마끈이나 말기에 자수 장식을 한 물건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수 장식은 현대의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20]의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말기 가슴가리개 항목을 참조.

말기는 치마나 바지의 맨 위에 둘러서 댄 부분( 국어사전)이다. 즉, 치마허리나 바지허리. 별개의 의복이 아니다.

말기는 저고리에 동정, 길, 섶 등이 있는 것처럼 하의 속옷을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치마에서는 한복 치마를 허리에 두르는 부분이다. 조끼허리식 풀치마의 경우 어깨끈이 달린 그 부위. 이 경우 말기 부분이 가슴에 온다. 이 조끼허리식 풀치마가 혼동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원래 전통적인 치마는 띠허리풀치마라 치마를 허리에 둘렀으며, 어깨끈은 달려있지 않았다. 당연히 말기는 허리에 위치했다. 말기에 두르고 남는 말기끈[21]을 길게 늘어뜨려 장식성을 보이기도 했다.[22] 한복드레스에서 상의 부분으로 활발히 개량되는 것은 이 말기 부분을 가슴가리개처럼 보기도록 굉장히 넓게 개량한 말기치마를 다시 개량한 것이다.

가슴가리개는 가장 안쪽에 착장하는 상의 속옷이다. '대자'라고도 부르는 그것. 위의 속옷 단락이나 항목 참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가슴가리개

가슴가리개가 말기에 흡수되었다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 오히려 후기로 갈수록 저고리가 극단적으로 짧아져 가슴가리개가 더욱 중요해졌으며, 치마말기는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애초에 치마는 허리에 두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기는 가슴가리개의 아래쪽 절반 가량과 겹치게 된다. 게다가 말기는 허리를 고정할 정도면 됐고, 속옷 역할을 할 정도로 넓지 않다. 다시 한 번 작성하지만, 말기는 바지나 치마의 허리 부분에 천을 다시 덧대어 허리에 두르기 편하게 만든 것이다. 따로 분리되거나 속옷과 흡수된 적 자체가 없다. 저고리에서 동정이 별개의 존재라는 것과 같은 소리다.

애초에 조끼허리식 말기는 서양 선교사 이화학당의 교장 미스 월터에 의해 서양 복식 재단법을 일부 받아들여 만든 것이다. 조끼허리식 말기는 서구 문물이 들어온 구한말에 생긴 것으로 나이가 어린 여학생들이 받아들여 입었던 것은 맞다. 애초 그들을 가르치던 서양인 선교사가 고안하여 전파한 것이다. 조선식 의복의 가슴가리개와 그 위를 여러 겹 동여매는 하의의 허리말기가 신체를 압박하여 여성의 건강에 좋지 않고 활동성을 저해한다고 여겨, 어깨끈이 있고 가슴을 안정적으로 감싸주는 조끼허리를 고안하여 보급한 것이다. 조끼허리의 패턴 자체가 서양 의복의 몸통(토르소)을 만드는 방법을 응용한 것으로 입체재단의 일부이다. 현대까지도 이런 조끼허리식 풀치마를 주로 착용하는데다 옛 복식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슴가리개를 한 것처럼 흉내내겠다며 말기의 폭을 대폭 늘린 말기치마나 치마 위에 두르는 말기대같은 것들이 새롭게 탄생하니 이런 혼란과 착오가 생기게 된다. 더군다나 말기치마와 말기대는 전통적인 가슴가리개를 착용한 것을 흉내내려는 목적에서 탄생되었으나, 한복 하의류의 허리 부분을 칭하는 말기가 버젓이 이름으로 붙어버렸다.[23]

예로부터 입어온 전통적인 한복 치마는 띠허리식 풀치마로, 허리에 두르는 랩스커트 형식이었다.[24] 현대에 주로 입는 가슴 위로 올라오고 어깨끈이 달린 것은 조끼허리식 풀치마로, 띠허리식 풀치마에 비하면 비교적 현대에 생긴 것이다.[25] 그러므로 원래 말기 부분은 허리에 오게 된다. 한복은 전통 의상이고, 가슴가리개는 전통 속옷이기 때문에 현대에 입는 한복이 아닌 전통적인 한복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요즘에는 한복을 입더라도 가슴가리개를 비롯한 전통 속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 조끼허리식 풀치마형으로 나온 샤 등의 재질로 만든 속치마를 많아봐야 두 겹 입는게 전부다. 저고리도 전통식과 양장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러니 한복에 관심이 있더라도 전통 한복을 따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한복은 원래 하의는 허리에 둘러서 입지, 가슴 부근이나 그 위로 올라오지 않는 복식이다.

말기는 애초에 섶, 길, 고름, 동정, 화장, 선처럼 의복을 구성하는 부분요소의 이름이기 때문에 독립된 별개의 속옷과 혼동되거나 합쳐질 이유가 없다.

치마말기는 엄연히 치마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가슴가리개는 전통 속옷이므로 구분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가슴가리개는 브래지어, 말기는 바지나 치마의 허리 부분이다. 벨트나 단추가 있는 그 부분. 말기에 달린 끈을 둘러 매어 치마나 바지를 여미고 고정한다.

3.9. 동아시아의 전통복식과 비교

일본 기모노 중국 한푸 만주 치파오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고, 각자 제조법도 남다르지만, 그중에서 한국의 한복이 가장 견고하고 만들기 까다롭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의 한복이 가장 어렵다. 일단 치파오는 서양복식에 가까운 형태, 한푸와 기모노는 재단을 하지 않고 옷감의 폭을 그대로 사용하여 봉제만을 하지만 한복은 안감과 겉감을 '창구멍' 이란 구멍을 통해 뒤집기 때문에 바느질이 어렵고 재단도 복잡하다.

하지만 만드는 데에 정성을 쏟은 만큼, 입는 절차와 활동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복이 가장 간편하다. 특히 여성 복장의 경우 활동성은 한푸, 기모노와 차이가 크다.[26] 또 한가지 큰 차이는 호복의 영향을 받기 전의 한푸와, 기모노[27]의 코소데나 후리소데가 한 벌 통옷인 반면, 알타이계 호복이 기초가 된 한복은 상의와 하의가 나뉘고 여성도 치마 안에 반드시 속바지를 착용한다.

삼국시대 한복은 한푸, 정확히는 호복의 영항을 받은 한푸나 기모노와 상당히 접점이 많다. 이 시절의 한복, 한푸, 기모노의 기본 형태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슷하다. 백제, 가야 쪽 한복은 아스카 시대 기모노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도 있다. 때문에 2020년대 들어서 일종의 문화 동북공정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한복과 기모노를 중국의 전통 복식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유하다면 '한반도에서 건너가 발전했으니 기모노도 한국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급의 논리이다.[28] 한복과 기모노가 한푸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어떤 복식이든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 상술했지만 한푸조차도 북방계 호복의 영향을 짙게 받았고, 서역에서 발생한 호복의 일종이었던 단령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 대부분)의 관복으로 쓰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기모노와 한복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옷깃이 목을 감싸느냐 감싸지 않느냐로 구분하려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의미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 깃이 섶과 구분되도록 재단하는 형태가 유행하긴 했지만,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깃의 형태에서 기모노와 큰 차이가 없다.

이는 2000년대 쌍화차 코코아라는 여초카페의 모 유저가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한 글( 스크랩본 링크)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옷깃이 목을 바싹 감싸고 동정이 있는 것이 조선시대 한복의 특징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기모노와 구분하긴 어렵다. 해당 글은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기모노를 낮잡아 보면서 한복을 띄우는 한편, 한국 만화의 한복 왜곡 사례로 동아시아 판타지 하백의 신부를 들거나, 허리띠를 뒤에 묶는 방식은 일본이 유일하다거나[29], 쾌자 도포라고 하는 등, 한복에 대해 극히 한정적이면서 편향된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졌지만,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었고 엽혹진, 오늘의 유머 등 각종 커뮤니티에 여러 차례 퍼지면서 한복의 특징에 대해 알리는 데에 공헌하는 한편, '한복=(후기) 조선시대 복장'이라는 선입견을 고착시키는 데에도 일조했다. 심지어 2010년도인 현재에도 여기저기 스크랩되면서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절찬리에 알리는 중이다.

중국에서 한복이 명나라에서 비롯하였다는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고려양으로 원나라 때에 고려의 풍속이 당시 원나라로 갔던 환관, 공녀들을 통해 유행하기 시작한 영향이었던 것이다. 자세한건 고려양 항목 참고. 한나라 이후 중국의 복식은 옷 폭이 넓지 않고 통이 좁은 데 반해, 한복은 고대부터 꾸준히 속옷을 여러 겹으로 받쳐 입어 풍성하다. 옷 자체도 한푸는 통옷에서 출발해 하의에 치마를 입었고, 한복은 설령 치마를 입더라도 바지를 필수적으로 입는다.

중세 이후, 각국의 복식은 전체적인 실루엣 자체가 다르다. 이후 명나라에서는 고려양이 요사스럽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되었다. 고려양 자체가 한족 몽골에 주권을 빼앗긴 원나라에서 비롯된 풍습이기에 중화사상을 중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치욕스러운 역사인지라, 중국에서는 이를 부정하며 고려양 한푸는 자신들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을 펴며, 오군(袄裙), 혹은 유군(襦裙)이라는 복식으로 영문 위키피디아의 한푸 문서에도 고려양 한푸가 오군(袄裙)이라 소개되었다. 그러나 유군은 원래 이렇게 생긴 옷으로, 짧은 윗옷에 긴 치마를 입는 복식을 뜻한다. 한복과는 전혀 다른 복식이다.

다만 한중일 삼국이 지리가 가까운 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기에 생긴 유사점도 있다. 특히 관리의 공복이나 고려, 조선의 궁중 예복이 그렇다. 다만, 애초에 동아시아의 관복으로 널리 쓰인 단령조차 서역의 호복이 건너온 것이다. 어쨌든 고려 이후로는 왕이나 관리들이 입는 공식 의관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거의 동일했다고 보면 되며[30] 왕의 관과 옷은 명나라에서 직접 내려주기까지 했다. 명나라 후금에 망한 후 강제 변발 시행과 치파오를 입게되고, 그 후 청나라에 온 조선 사신들의 옷차림(단령과 사모)을 보고 중국인(중에서도 한족)들이 "중화의 아름다운 풍속을 조선에서 지키고 있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한복의 기본 복식이 한푸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진성여왕 때 중국 공복을 도입한 이후 고유 복식과 중국 공복이 공존하는 이분적 복식제를 유지하였고 왕이나 관리들도 일상에선 기본 한복을 입었다. 예외적으로 명나라 복식은 고려양의 영향 때문에 이후 폭은 좁아졌어도 한복 같은 투피스 형태는 유지되었기에 비슷하게 보이는 탓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한푸도 처음엔 남방계 복식에서 시작하였으나 점차 북방계 호복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하였고 한복은 아예 처음부터 북방계 호복에서 시작하였으며 기모노는 한복과 한푸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한 옷이다. 한복의 시작이 한푸라는 것은 애초에 한국의 독자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중국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3.10. 입는 순서

여자는 바짓부리를 정돈하여 고정시키지 않기 때문에 버선을 언제 신어야 한다고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가난한 평민들이 저걸 다 챙겨입기에는 무리가 컸던데다 복식금제로 인한 제약 역시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계층이나 직업에 따른 변화가 있었다. 입는 옷에 따른 변화도 당연히 있었다.
평민 남자: 속적삼ㆍ속고의→속바지→저고리ㆍ바지→버선ㆍ대님→행전 정도,
평민 여자: 속속곳ㆍ가슴가리개→속저고리→속바지→단속곳→치마→저고리 (버선)
정도로만 입었을 것이다.

원래는 치마를 오른쪽 자락이 위쪽으로 가게 입는 것이 흔했으나,[31] 개화기 쯤부터 양반은 왼쪽 자락을 위로, 기생 등의 특수계층이나 천민은 오른쪽 자락을 위로 입게 되었다고 한다.

3.11. 관리하는 법

3.12. 맞출 때 신경써야 할 부분

4. 현대 한국에서의 한복

현재는 정장 자체가 양복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지만 6.25 전쟁 전후 시기만 해도 꽤 많은 국민들은 한복을 입었고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도시에서도 갓과 도포를 비롯한 흰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들을 종종 볼수 있었다.[35]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양반가 어르신네들이 갓과 도포를 차려입고 계셨고, 지금도 가끔 그런 분들이 계신다. 또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도 한복을 입고 나오는 일이 흔하였다.[36] 그리고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여고생이나 여대생들이 졸업식에 한복을 입고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1980년대 이전 학번에서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한복을 입은 학생을 볼 수 있었다. 전국노래자랑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1980년대만 해도 방송 속에 한복 차림으로 많이 나왔던 시절이 있다. 이 문서에서도 나오듯이 이 방송에서 제발 한복 좀 입고 나와달라고 하며 어쩌다가 한복 차림으로 나온다면 카메라가 더 일부러 그 사람을 방송한다고 할 정도였다.

정부에서 1996년부터 매년 10월 21일을 '한복의 날'로 지정했으며 2021년 3월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을 '한복 입기 좋은 날'로 지정했다. #1 #2

그런데 21세기 들어서는 명절이거나 경조사 같은날이 아니면 한복을 거의 입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의 경우 생일잔치에서 한복을 입기도 한다.[37] 과거 개량한복이 일부 유행하긴 했지만 요즘은 그다지 유행하지 않는다.[38] 물론 판소리나 국악 등에서는 예로부터 죽 한복을 이어입어 오고 있다.

보통 결혼식을 하게 되면 신랑, 신부의 아버지는 정장을 입고 어머니는 주로 한복을 입는다. 군부대에서 대대급 이상의 부대장이 취임을 하게 되면 부대장의 부인이 한복을 입는 경우가 흔하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412회에서는 3살 혜수가 한복만 입어서 화제가 되었고, 870회에서는 전라북도 남원시에 사는 75세 할아버지가 한복만 입었으며[39], 973회에서는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22개월 여아 김솔이 16개월 때부터 한복만 입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원더풀 금요일에는 한복 전도사 남녀가 나왔으며 직업은 둘 다 회사원이라고 한다.

한국의 한 젊은 여성이 한복을 입고 유럽 여행을 해 화제가 되었다. #

2020년대 들어 킹덤 등 사극의 영향, 중국의 한복 동북공정 논란 등으로 한복이 크게 주목받고 어느정도 유행하다보니, 최근에는 젊은층을 타겟으로한 한복브랜드도 늘고 있다. 리슬, 차이킴 등이 대표적이며, 리슬의 경우 국내 SPA 브랜드인 스파오와 콜라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현우진은 자신의 생일을 맞아 한복을 입고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투스의 사회탐구 강사 이지영은 설날을 맞아 한복을 입고 3시간 동안 윤리와 사상 수업을 했다. 2024년 설날에도 이지영이 한복을 입고 수업을 했다. 2022년에는 국어 강사 나연진이 한복을 입고 새해 인사를 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대학의 국악과에서는 실기 시험을 한복 차림으로 치르는 경우가 있으며 모든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곳도 있다. 대개는 학교에 비치된 한복을 입고 실기 시험을 치르지만, 만약 개인 한복이 있을 경우에는 개인 한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다만 이는 문화적 관점도 있지만 한복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도 한몫한다. 9할 이상의 한복 관련 용품점은 판매가 아닌 대여만을 고집하며 판매의 경우 주문제작이기 때문에 엄청난 가격을 요한다. 대여비가 수십만원인데 구매가는 얼마겠는가? 이 때문에 한복을 입고 싶어도 갖춰 입는 사람이 적은 탓도 크다. 수만원대의 한복은 정말 볼품없기 그지없는 구색만 맞춘 복장이며 이것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대여 위주의 방식으로 한복을 모르는 일반인들의 접근성을 원천차단한 것이 매우 크다. 때마다 입기 위해 전통 복식을 하나씩 마련하는 타 동아시아 국가와 다르게 한국은 제대로 된 한복을 한 번 입으려면 수십만원의 '대여비'를 지불하고 2박 3일을 겨우 대여해야 한다. 이는 한복의 제조가 복잡한 것도 문제이지만 복장 한 벌로 최대한의 수지타산을 내려는 한복 관련 업자들의 횡포도 한몫한다. 오죽하면 중국의 한푸나 일본 애니의 한복 비슷한 복장이 쿠팡이나 네이버 쇼핑에서 한복으로 둔갑된 채로 수만원에 팔리고 있겠는가. 자국 내에서 경쟁력이 있다면 외국의 전통 복식이 자국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활개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복식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한복과 비슷한데 구매는 수만원에 불과한 한푸를 구매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그들 눈에는 한복이나 한푸나 비슷해보이니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4.1.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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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보면 알겠지만 서양식 여성의복과 비교해도 여성 신체의 맵시를 잘 드러내는 편인데에다가 뭔가 싼티나는 느낌이었던 개량한복이 아닌 한복 특유의 전통적 스타일의 넓은 동정깃, 넓은 고름, 광택이 나는 단색의 재질, 붕어배래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4.2.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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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후 오버핏 코트가 유행하면서, 품넓은 로브코트를 연상케 하는 전통 방식 두루마기, 도포가 아이돌들 사이에서 패션 아이템으로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두루마기를 개량한 게 아니라 20세기 스타일 검정 두루마기를 그대로 코트처럼 입고 다니는 것이다. 원래 두루마기가 코트의 개념이었으니까. 예식용 남성 한복에서 두루마기나 도포 같은 겉옷은 사실상 외면받고 잘 해야 조끼나 마고자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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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복으로 입는 쾌자.

4.3. 단점

4.3.1. 대량생산의 어려움

전통 한복은 옷본이 입체패턴인 양장과 다른데다 재단이 복잡하며,[41][42] 만드는 방식이 손이 많이 가고[43] 만드는 법 자체가 어렵다. 가장 기본인 저고리를 잘 만드는지가 한복을 짓는 사람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취급될 정도다.[44] 특히 깃을 얹을 땐 무조건 손바느질로 해야 한다. 공그르기를 하기 때문에 재봉틀로 작업할 수 없다. 의외일지 모르나 반드시 치수에 맞게 만들어야 제대로 태가 나는 옷이기까지 한지라 여러모로 대량생산이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를 통해 양산되는 한복은 백이면 백 양장식이다. 얼마든지 대량생산 할 수 있는 양장 옷본을 바탕으로 한복처럼 보이게 디자인해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한복을 입으려면 사람이 직접 만들 수밖에 없다. 남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 여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 치마 옷본 그리기 여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다른 링크)

그 때문에 생활, 퓨전한복을 만드는 몇몇 업체에서는 대량생산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양장 패턴을 도입하면서 한복의 요소들을 넣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일장일단이 있는데, 이게 한복이긴 하느냐, 원형을 파괴한다, 퀄리티에 비해 너무 비싸서 차라리 시중에서 판매하는 양장 복식을 입는게 낫겠다는 비판과 전통 방식을 고수하기만 하면 후술할 흑요석의 지적처럼 한복은 박물관 속 박제 문화로 남을 뿐이고 현대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양장패턴을 배척하는 것은 발전을 저해한다는 반론이 공존하고 있다. 두 입장 모두 일리가 있으며, 어느 것이 무조건 옳다고 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전통과 원형의 보존도. 대중들이 일상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디자인과 가격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개량을 통해 생활 속에 녹여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4.3.2. 트렌드에 집착하여 한복의 원형이 소멸

예복용 한복의 틀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하여 기성복으로 쓰기에도 충분히 손색없는 여러 디자인의 생활한복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브랜드의 대다수가 양장 패턴을 사용하거나, 아예 양장에 깃과 고름을 달아놓은 정도이다. 생활 한복을 만든다 하여 찾아보면 대부분 양장에 깃과 고름을 달아놓고 차이킴의 허리치마[45]와 철릭 원피스를 모방한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한복 원단으로 양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복 원단만 사용했을 뿐 아예 양장인데도 한복이라 홍보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실제로 생활 한복을 원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렇게 양장과 차별화가 잘 되지 않을 바에는 굳이 개량 한복을 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비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현대적인 활동성 및 계절 감각(반소매, 민소매, 반바지, 스커트 등)을 차용하되, 겉으로 드러나는 멋은 한복 특유의 느낌이 멀리서도 한 눈에 살아나는 것이다. 단순히 셔츠에 고름 좀 단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각종 게임에서 명절 기념 코스튬 및 스킨으로 출시하는 개량형 한복을 생각하면 된다. 한복 특유의 멋은 한눈에 살리면서도 반소매, 민소매, 장신구, 구두 등의 현대적 실루엣 및 핏을 동시에 만족한 예가 많다. 이러한 디자인을 창작물에서만 적용할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적용한다면 한복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이런 생활한복에 대해 알고는 있으나 입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을 보면, 원단과 바느질이 미덥지 못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평도 있다. 특히 전통 한복은 얇은 천으로 옷을 지을 때 곱솔 바느질[46]로 최대한 얇고 깔끔하게 마감하는데, 시중 생활한복은 말아박기로 처리해놓고 '깨끼(곱솔)와 가장 유사하다'고 광고한다. 깨끼는 시접을 모두 자른 뒤 세 번 이상 접어 박기에 튼튼한 정도가 아예 다르다. 이건 그나마 신경 쓴 경우고, 다 비치는 천으로 치마를 만들면서 단을 두껍게 접은 뒤 오버록으로 처리한다. 얇은 감으로 지으면서 두껍게 오버록으로 끝내버리니 겉보기에 깔끔하지 않다. 깨끼 작업과 난이도[47]부터가 크게 차이 날 뿐만 아니라, 완성도도 깨끼가 훨씬 깔끔하고 튼튼하다.

원단도 그리 고급 원단이 아닌 경우가 많기에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전통한복처럼 제대로 작업하는 것도 아니고, 원단이 고급인 것도 아니고, 작업에 손이 많이 가기는커녕 양장 패턴, 양장 바느질, 양장 작업 방식(말아박기, 오버록 등)으로 만드는데, 그렇다고 바느질의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닌 경우가 무척 많다. 이런데도 10만원에서 30만 원 이상의 가격이 매겨진다. 포 종류로 가면 40만 원~50만 원 이상도 등장한다. 사실 30만 원 이상이면 한복집에서 인견 전통한복 한 벌을 맞출 수 있다. 전통한복 위아래 한 벌이 아닌 단품 맞춤가를 보더라도 원단이 화학섬유라면 생활한복과 큰 가격차가 없는 수준이다.[48]

저고리는 대강 봐도 전통식과 양장식을 구분할 수 있는데, 치마의 경우 대충 허리 달고 주름만 잡아놓고 한복이라고 파는 수준이다.

혹은 한복 특유의 기계 작업의 어려움 때문에 수제작으로 된 것이 많아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많다. 가격이 부담스러우니 함부로 입고 다니기에도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4.3.3. 고루한 양식으로 인한 대중의 외면

' 왜 한복은 사랑받지 못할까?'라는 통계청 블로그 기사에서 나온 한복을 선호하지 읺는 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 쉽게 접할 수 있는 한복은 매우 촌스럽다. 예식용도 잘 해봐야 통짜 치마저고리나 알록달록한 저고리와 조끼, 마고자 정도이고, 생활한복은 나이 지긋하신 국사선생님이나 스님이 입을 법한 전형적인 형태를 지닌 칙칙한 황토색, 감색 개량한복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참조: 네이버 쇼핑에 '남성 생활한복'을 검색해 본 결과)[49]

또한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입는 대부분의 한복들의 대다수가 구한말 스타일이며, 이조차도 실제 당대에 흔히 입던 일상용 한복보단 정장용 한복 베이스가 많다. 2020년대 들어서야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상당히 세련된 제품들이 점차 나오고 있지만, 전통 장인이 만드는 정장용 맞춤 한복은 십중팔구 구한말 스타일이다. 물론, 가장 최근의 복식을 재현하기가 수월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점도 있으며, 중국의 한푸 입기 운동처럼 조선 한복을 배제하고 '우리도 고구려 한복을 입자!'는 식의 주장까지 갈 필요는 없고 그런 아집도 위험하지만, 한복의 정의를 굳이 축소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대중들은 한복이라는 복식 자체가 조선시대, 그중에서도 구한말 한복에 한정해서 인식하는 경향이 짙고, 기술자들이나 디자이너들 역시 출토복식 재현을 제외하면 구한말 한복을 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재질을 전통적인 비단으로 하면 활동성이 제약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옛날에 농민들이 입었던 옷 같은 경우엔 재질이 빳빳하고 튼튼해서 동적인 활동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한복집에 가도 그런 빳빳하고 튼튼한 한복은 찾기 어렵고 양반들이 입었을 법한 고운 재질의 한복뿐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세탁도 불가능하고, 무조건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며 다림질까지 정성들여서 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에 드는 노력이 기성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이 경향이 개량한복에도 반영되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 이런 요소들도 (개량) 한복을 꺼리게 만들고 있으며, 높은 가격 또한 개량 한복에 대한 접근을 막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4.3.4. 대중들의 편협한 인식

"그렇게 보인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더라"라는 주관적 평가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게 연상되게 만든 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선 연상하는 부족함(지식)을 채우는 게 맞습니다.
생활한복 브랜드 '리슬' 대표 디자이너 황이슬
대중들이 한복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전통 문화라는 인식은 공고해서인지 보수적인 시각이 상당히 흔한 편이다. 후술하겠지만, 디자이너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복을 보고 한복이 아니다라거나 전통을 파괴한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지는 일이 2024년까지도 이어지는 중이다. 따라서 대중적으로 인식되는 한복은 직접 접하기보다는 일종의 박물관 속 박제 문화라고 할 수 있으며, 대중들이 인지하고 있는 한복도 조선시대 스타일에 국한되고, 잘 해야 재현이 정확하지 않은 사극에 등장하는 복식 정도로 인지되곤 한다.

예로 2017년에는 게임 오버워치 한국인 캐릭터 D.Va 한복 스킨이 공개됐는데, 아티스트 데이비드 강은 인터뷰에서 '한복 치마를 짧게 바꿔봐서 이게 괜찮을지 몰랐는데 다행히 이런 부분에 대해서 큰 이슈가 없어서 안심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7년에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건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다. 비단 전통 의상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문명은 자유로운 해석과 표현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개인이 저마다의 생각으로 영역을 탐구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여기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자유를 이해하는 수준을 의미한다)이 구축되어야 비로소 해당 문화의 영역이 확장되고, 깊어지며, 풍성해짐으로써 거시적 관점에서 발전하는것이다.

게다가 오로지 전통의 원형만을 고수하는 것만이 현대사회에서 전통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평소에는 결국엔 현대식 복장을 입고 다니고, 한복은 명절 때 반짝 입거나 그마저도 안 입는 정도가 되었다. 이게 원래의 형태를 유지한다고 해서(실제로는 그렇지도 않고 계속 변화해 왔지만) 전통을 잘 보존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개량으로 평상시에도 입어 볼만한 한복을 만들고 입는 것이 오히려 전통 보존에 있어선 훨신 유효한 방법이다. 또한 기성 세대가 으레 잘 알지는 못해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류 컨텐츠 시각으로 봐도 세계에 더 알리고 접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개량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야한 언더붑 한복은 조선후기에 실존하였고 유학자가 작성한 칼럼도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게다가 대중들의 한복에 대한 견해가 대단히 짧다는 건, 비단 개량한복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조선 이전의 한복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하다보니 고대 한복을 표현한 그림이나 재현품을 보면 " 기모노 아니냐"는 말이 꼭 나온다.[50] 비단 고려 이전 한복 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한복조차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왜색이라는 주장이 꼭 따라붙곤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기모노에만 있는 형태'라면서 주장하는게 대단히 웃긴데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외에도 치마가 짧은 경우 한복 치마는 저렇게 짧지 않다며 '일본 옷 같다'는 이야기가 더러 나오기도 하는데, 당연하지만 쿠노이치 캐릭터 등으로 대표되는 오덕 분야에서 종종 보이는 짧은 기장의 기모노도 21세기에 들어서 현대인의 관점에 따라 예쁘게 개량한 한 갈래일 뿐이다. 애초에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전통의상 중 무릎 언저리로 올라올 정도로 치마가 짧은 경우는 거의 없다. 같은 동아시아의 한푸나 치파오, 기모노 역시 원형은 발목을 덮는 기장이지만 형태와 기장이 변한 것일 뿐이다. 다리를 드러내는 이미지로 각인된 치파오 역시 본디 바지를 입는 형태인 게 하의실종이 된 것으로, 길이가 짧다고 한복이 아니라는 것부터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트집.

2009년, 뒤로 맨 허리띠와 매듭장식을 가지고 한복에는 허리띠가 없다(...), 이건 기모노의 오비라며 격한 왜색 논란이 일었던 다음 웹툰 환상스케치 왜색 매도 사건 당시 직접 각종 서적과 논문을 참조하고 이대 복식관이나 운현궁, 한복 전문점 등을 탐방하며 논란에 일일이 반박한 유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럼 어찌하여 왜색 복식 논란이 일어났는가. 모르기 때문이다. 위에 사료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중국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어 유사한 것들도 많다. 헌데 이 유사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일본것을 먼저 접하고 한국것을 나중에 접했다면 당연히 일본것을 따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만약 조선 초중기의 한복 양식으로(저고리는 길고 배래는 직선이며 소매는 길고 소맷부리통을 넓음)그렸어도 지적이 나왔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게 익숙한 한복 양식은 조선후기때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환상스케치 복식논란. 그 오해와 진실. 아카이브

이후 14년이 흐른 2023년에도 신라 한복을 보고 동일한 논란이 벌어지는 절망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보이다시피 답답해 하는 대체 누가 누굴 댓글의 내용은 물론 좋아요 개수까지 가관이다.

파일:한복 허리띠 매도.png

대중들이 한복에 대해 편향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현상의 또다른 예로 네이버에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웹툰 문아를 연재했던 팬마 작가는 2014년 9월, "등장인물들의 옷이 일본 옷같다"는 댓글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것에 분노하여 트위터에 '둥근 소매와 옷깃의 동정이 달린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라는 설명이 달린 고려 복식에 대한 간단한 도식화(원문 삭제됨)와 함께 "고중세 배경에 흔히 알고있는 한복이 나오면 그건 재현이 틀린 것이다. 작품에 나오는 한복은 일본옷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일본의 기모노가 만화나 게임 등의 매체 속 자유로운 개량을 통한 적극적인 대외 홍보로 널리 알려지자, 기모노와의 디자인적 접점이 큰 고대 한복까지 이미지 잠식이 일어나 버린 게 크다.[51] 2020년대 들어서는 중국의 고장극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원신 등의 게임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한중이 공유하는 베이스인 포와 요선철릭을 기반으로 하는 무사복 디자인 및 남성 캐릭터의 장발 스타일을 전부 중국풍이라고 지적하는 일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52] 결국 20년 가까이 전통이라고 쓰고 조선 후기 및 구한말이라고 읽는 왜곡된 보수성에만 집착하고 국내 콘텐츠 창작자들을 못살게 군 결과 현재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한국이 제일 자국 전통 문화 홍보와 재생산에 뒤처지게 되었다.

한복 콘텐츠 방면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흑요석은 2017년 10월, 트위터를 통해 섹시하게 만든 한복을 만드는에 디자이너에 대한 기사에 전통을 파괴한다거나 기모노같다는 억지 비난이 쏟아지는 현상에 대해 '전통을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대적인 코드를 가미해서 생활에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한복은 박물관 속 박제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또 해당 기사에 전통을 파괴했다거나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며 "전통 한복을 조선시대로만 국한하는 것도 애매한 이야기이다. 조선시대 한복조차도 생김새는 계속 변했고 18세기 한복은 저고리가 짧아 섹시하다. 심지어 우리가 아는 '전통' 한복은 상당히 근대에 들어 정착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본문은 물론 앞서 흑요석의 트윗으로도 언급되었듯 대중들은 전통 한복을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 스타일로 국한해 인식하고 있고, 대부분의 업체가 만드는 한복 역시 그 시대 한복으로만 제한되어 있다. 아니, 사실 현대의 한복은 조선 후기도 아닌 구한말 이후 스타일에 가깝다. 한복만의 단아한 곡선 운운하는 붕어배래부터가 조선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양식이고, 가슴 위로 올라오는 조끼허리풀치마는 개화기에 외국인 선교사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고려 이전의 한복은 사극이나 행사 재현용으로나 만들어질 뿐이고 그조차도 당시의 형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 이 문제는 한복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중들이 고대 복식을 왜색으로 치부하는 부끄러운 현상에는 이런 편향성도 한 몫 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

유명 생활한복 브랜드인 '리슬'의 대표 황이슬 디자이너 역시 상기 논란들로부터 5년에서 10년은 더 지난 2022년에도 스파오와 콜라보한 생활한복, 2023년에는 한국전통문화전당 근무복으로 왜색 논란에 시달렸다. 옷의 바탕색이 검은색이고, 동정이 얇다는 황당한 이유 때문. 심지어 이러한 지적들이 전문가로부터 이루어졌다고 기사에 나와 있는데, 이에 황이슬 디자이너가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독 권장.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전통문화전당 한복 근무복을 제작한 한복 디자이너 황이슬입니다. 한국전통문화전당 한복 근무복 '왜색 논란'이라는 기사에 유감을 표합니다.

제가 만든 한국전통문화전당(이하 전당)의 한복 근무복이 일본풍이라는 의견에 대해서, 전문가 입장에서 자료에 근거하여 명백히 한복임을 밝히고자 합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한복을 두고 오히려 일본옷이라는 논란을 만들고 있는 잘못된 기사내용 정정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1. 일본의 하네리와 비슷?
일본 하네리(또는 한에리는 속옷 위에 장식을 목적으로 덧대는 헝겊으로 겉옷이 아닌 속옷에 부착하고 겉에서 일부만 드러납니다. 동정에 문양을 넣거나, 색을 쓰는 것은 한복에서 자주 시도하는 디자인입니다. 동정에 문양이나 장식을 넣으면 일본식 무늬없는 흰색은 한국식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2. 전체적인 모양이 일본풍?
이 옷은 조선시대 칼깃 저고리를 기본으로 하여 제작된 의상입니다. 칼이란 칼끝처럼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깃을 말합니다. 간혹 깃이 가슴 아래까지 길게 내려오는 것은 일본식이다. 깃이 겨드랑이쪽까지 바짝 붙은 것은 일본식이다. 고름이 좁고 얇은 것은 일본식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적이다 아니다의 유무를 가르는 요소가 아닌 조선시대 안에서 다양하게 존재하는 양식입니다.

3. 검은색과 좁은 동정이 일본풍?
색은 전통 오방색 중 하나인 검은색(현색)을 적용했습니다. 검은색은 예로부터 왕의 면복 현의와 학자들의 심의 등에 사용되어 왔으며 현대의상에서는 유니폼, 정장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색입니다. 검은색이 일본 의상을 연상케한다는 것은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동정이 좁아서 일본식이라는 의견도 사실과 다릅니다. 동정의 너비는 시기에 따라 달려져왔습니다. (유물자료 참고) 동정에는 전당의 로고를 문양화하여 인쇄했습니다.

4. 수십년 째 반복되는 한복논란
저는 한복을 한국복식 전공하여 석사졸업한 17년차 현직 전문가 입니다. 한복의 왜색 논란, 중화풍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매년 수십 년째 반복되는 내용입니다. 왜일까요?

4-1. 조선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조선적인 것을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의 양식에 국한된 것만을 전통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큽니다. 흔히 봐오던 조선후기의 저고리와 치마에서 벗어나면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4-2. 아는 만큼 보인다.
생활한복 업계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허리치마는 일본 하카마라고 하며, 블랙핑크가 입은 모던한복은 기모노라고 하고, 미스 유니버스에 참가한 이지선님의 한복은 일본 무녀옷이라고 합니다. "한복에는 그런게 없다" "그렇게 보인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그렇게 보인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더라"라는 주관적 평가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게 연상되게 만든 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선 연상하는 부족함(지식)을 채우는 게 맞습니다.

5. 끝으로 드리는 말
저는 평소에도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저와 같이 평소에 한복을 입고 다니시는 분들이 제일 힘들 때가 '북한 사람이냐, 유관순같다. 초밥집 사장님 같다'와 같은 말을 들을 때입니다.
악의가 없이 하신 말씀이시겠지만 들으면 크게 상처받고 위축됩니다. 한복을 괜히 입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분들, 유관순 열사, 일식에 종사하시는 분을 빗대서 부정적 의미로 말하는 것도 잘못됐을 뿐더러 한복입기를 실천하시는 분들의 열의를 꺾는 일입니다.
우리 한복을 두고도 '일본옷 같다' '중국옷 같다'는 말을 들을 때 '한복의 다양성을 더 많이 알려야겠구나. 한복의 선입견을 깨야겠구나' 하는 의지가 생깁니다. 그게 제가 모던한복을 만드는 이유입니다.
한복은 최근 한복공정이라는 역사왜곡을 겪는 와중에 한복을 근무복으로 도입한 일은 자랑하고 칭찬해줄 일입니다. 기사가 정정되지 않을 꺼라는거 알고 있습니다. 혹여 비슷한 글을 접하시거든 따뜻한 응원댓글 부탁드립니다.

황이슬 올림

이와 같이 상당수 사람들은 '창작물을 통해 접하여 형성된 한복의 스테레오 타입'만이 전통 한복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그것이 조선시대에 존재하였던 것이라 할 지라도 익숙하지 않다면 한복이 아니라고 몰아가며, 심지어는 일본이나 중국의 옷이라고 남 좋은 주장까지 한다. 애초에 '한복이란 옷의 요소는 어떤 것이 있는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선 답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기존의 익숙한 이미지가 아니면 아예 한복이라고도 부를 수 없다고 떼를 쓰는 것.

심지어는 이런 오해와 편견 몰아가기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벌어지기까지 했다. 2018년 서울 종로구청에서 각종 '퓨전 한복'들에 대한 고궁 입장권 할인을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 이 때문에 2018년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들이 아예 한복을 입고 출석해서 '한복의 기준을 너무 가볍게 다루려 하고 있다', '복식 문화의 절대적 보존이 아니라 효율적 보존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게 더 옳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문화재청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퓨전 한복'에게도 기존의 입장권 할인 혜택을 계속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더 안타까운 부분은, 이러한 잘못된 스테레오 타입의 정착과 오해가 한복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는 점이다.


대중의 편협한 인식과는 달리, 퓨전한복의 역사는 알고 보면 이미 조선 말기의 개화기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즉 객관적인 기간을 따져도 이미 100년은 넘은 셈이다. 서양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우고 국가적으로도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한복도 근대 문물과 자연스레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두루마기는 양모로 제작되기도 하는 등 정장 코트의 특징이 가미되기도 했으며, 흔히 유관순 교복으로 대표되는 당대 일상용 한복은 치맛폭이 다리를 전부 덮는 전통 한복보단 스커트에 가까웠다. 또한 앞서도 언급되었듯이 이 때부터 한복 치마에 어깨끈이 달렸으며, 심지어는 체크무늬 한복치마가 교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링크

또한 1950년대에는 벨벳 같은 서양 원단을 소재로 한 한복이 등장했고, 브로치를 달기도 했다. 할머님들이 한복 옷고름에 브로치를 착용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영향이다. 링크

이 시절에 탄생한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여사가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위해 디자인한 아리랑 드레스이다. 이 의상은 무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심지어는 청자의 형상을 모티브로 한 파격적인 의상까지 등장했다.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난 지 불과 몇 년 밖에 안 되었던 열악한 시절에 활동했던 패션 디자이너들의 생각이 오히려 현대의 대중보다 앞서갔던 것. #

이러한 분위기는 8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 자료를 보면 오히려 이 시절의 한복 디자인이나 패턴 사용, 배색이 지금보다 파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디자인이 전통미가 아니라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평양냉면 논쟁과 비슷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노라노 여사의 아리랑 드레스도 당시 언론 기사를 찾아보면 논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벨벳 한복이나 한복에 서양식 브로치를 착용하는 것 정도는 문제 삼지 않았다. 적어도 80년대까지는 한복의 형태만 갖추고 있으면 원단이나 패턴이 전통식이 아닌 것은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거다.

앞서 문제점으로 언급된 고루한 양식도 사실은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불거진 문제점으로 적어도 80년대까지는 나름 힙한 한복이 많았으며 어린이들도 명절이면 한복을 입는 것을 즐거워했다.

4.3.5. 사극의 재현 오류

2000년대 이후의 사극 속 재현은 퓨전 사극이 아닌 전통 사극에서조차 안드로메다 저 너머로 간 지 오래다. 여성의 두식의 경우 첩지에 가체를 합쳐 정체불명의 가체빵떡첩지배씨댕기가[53] 날이 갈수록 화려하고 거대해지고 있으며, 상투같은 경우 상투관을 쓰고 나올 때에는 안채에서 몰래 꺼내온 듯한 화려한 비녀로 장식하는 것은 기본에[54] 쌍상투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55] 멋이 없잖아 더군다나 상투를 고정시킬 목적으로 사용하능 동곳이라는 일종의 상투용 비녀 역시 보이는 경우가 드물다. 상술한 것처럼 가슴가리개에 수를 새기는 것 역시 현대에 들어 창작된 것이지 재현에 맞지 않다.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고려나 삼국시대가 배경인 경우 더욱 심각해서 아예 시대를 초월한 국적 불명의 의상이 버젓이 등장한다.

복식 재현은 차치하고서라도 현대에 생긴 어휘가 대사로 등장하는 판국이기에, 옛 복식이나 두식을 공부한다고 사극을 보면 부정확한 정보를 얻기 쉽다. 커뮤니티에서도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가 상당히 퍼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을 읽는 게 낫다.[56] 또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간한 왕실문화도감- 조선의 왕실복식이라는 책도 좋은 자료로 참고할만 하다. 대한제국 ~ 일제강점기 황실 복식이긴 하지만 왕족들도 일과가 끝나면 평상복을 입었기 때문에 조선 말기 양반계층 일반 복식 참고 용도로도 사용할만 하다.

4.4. 현대화

전통 장신구는 아니지만, 최근 한복 업체나 동호인들에 의해 생겨나는 부속품들이 있다.

4.5. 한복의 입는 법

5. 해외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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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작품
파일:external/i2.cdn.turner.com/131008171525-korean-hanbok-9-horizontal-large-gallery.jpg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57002c8cee78e03eee147f76eab20306.jpg
아르마니 미우치아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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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리나 헤레라 2011SS 컬렉션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존 갈리아노 역시 2011SS 파리 컬렉션에서 한복 모티브 드레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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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0.wp.com/6-11-1-NUVO-Magazine-Spring-2008-contents_page_06_image_0001-453x560.jpg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465f39023572b35f3f7eaa4aacfe26ef.jpg 파일:external/static.squarespace.com/nicky-hilton-hanbok.jpg

6. 대중문화 속의 한복

현대에 들어서는 각종 사극, 게임이나 패션쇼 등에서 활발하게 복원과 재창작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6.1. 한복을 입은 캐릭터

6.2. 한복 일러스트

7. 관련 사건 사고

8. 관련 영상

9. 관련 문서



[1] 사진 자료와 같은 형태는 클래식한 한복 유행에 따라 조선 후기 스타일로 돌아온 것이다. 과거에는 대한민국도 북한식 한복과 같은 구한말 스타일이 유행했었다. 현 시대의 한복은 근래 역사를 통틀어 상당히 클래식한 형태에 해당한다. 인터넷에 90년대 결혼식의 어머니 한복을 찾아보거나 경복궁 근처에서 대여해주는 퓨전 한복과 비교해보면 형태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 기본 치마저고리 위에 포(袍)를 입고 허리띠를 둘렀다. [3] 예를 들어 고려양 원나라 명나라 초기에 영향을 미치거나 이로 인해 칙령으로서 금지된 바 있고, 반대로 북송, 명나라의 복식인 심의, 단령 조선 동아시아 각국에 유입되어 자리잡기도 하였다. 한편 단령의 유래가 호복이라던지, 한복의 기원이 스키타이 민족과 관련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동아시아의 복식 문화는 고정적이기보단 유동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셈. [4] 이렇게 조선 후기식 한복으로 한복의 이미지가 고착화되면서 그 외 시대 한복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한복을 엉터리 개량한복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가령 서울 고궁에서는 한복을 입은 관람객에게 무료입장 혜택을 주는데 사진 촬영을 위해 조선 전기식 장저고리나 통일신라식 한복을 입은 모델의 무료입장을 창덕궁에서 한복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정작 수문장 등 고궁 관련 행사에서는 조선 전기식과 후기식을 혼동하는 것을 보면 문화재청의 내로남불 그 자체. [5] 예를 들어 여성 한복의 경우 붕어배래, 조끼허리풀치마, 조끼, 마고자 등 구한말 이후에 변형된 형태 위주로 착장된다. [6] 개화기 한국에서 여학생들이 자주 입던 흰색 저고리와 검은 치마의 조합이다. 이를 아우르는 명칭은 없으나 흔히 유관순 교복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대한민국보다 북한에서 자주 취급되는 스타일인데 대한민국에서는 삼일절과 같은 민족 기념일 정도에만 취급이 되지만 북한에서는 일상에서도 여학생들 사이에서 꽤나 자주 취급되는 양식이다. [7] 부수적으로 목걸이, 팔찌, 가락지, 반지 등의 장신구도 착용했다. 이 역시 남녀불문이었다. [8] 맞춤법 상으로는 귀고리와 귀걸이를 같게 볼 수도 있지만, 역사 쪽에서는 귀고리는 귀를 뚫고 착용하는 장신구를, 귀걸이는 귀를 뚫지 않고 귓바퀴에 거는 장신구를 뜻한다. [9] 기사에는 깨끼의 원초적 형태라 한다. [10] 이 링크를 일부 참조했다 [11] 호다: 헝겊을 겹쳐 바늘땀을 성기게 꿰매다. (네이버 국어사전) [12] 위사. 가로실 [13] 경사. 세로실 [14] 그래서인지 왕이 직접 염색해라 타령을 해도 주구장창 흰색만 입던 조선백성들이 최소 하의는 염색을 하고 다녔다. [15] 적고적 [16] 원래 치마는 허리에 둘렀다. [17] 어깨치마라는 명칭은 현대 동호인들이 간편히 부르는 명칭이다. 말기 부분을 조끼로 만든 치마는 구한말에 생겨난 조끼허리 풀치마와 어린 아이들이 입는 조끼허리 통치마로 나뉜다. [18] 결혼식장에 한 번 입는 한복 대여만 하더라도, 2-30만원대에 양가의 어머니들이 입는 한복까지 생각하면 상당한 가격이다. [19] 어깨끈도 있겠다. 원피스 형태겠다. 저고리만 제거하면 그야말로 우아한 드레스가 된다. [20] 저고리 없이 치마만을 입는 "바람의 옷" 스타일을 창시하고 세계에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디자이너이다. 배우 전지현의 시할머니이기도 하다. [21] '치마고름'이라는 용어는 복식사/의상사에서 쓰지도 않는 정체불명의 말이다. 쓰지 말자. 흔히 가슴가리개를 치마말기로 서술하며 가슴가리개의 끈을 말기끈으로 서술하곤 하는데,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22] 말기끈은 조끼허리식 말기가 생겨난 후로 말기끈이 작고 짧아진 1960년대 이후 향대, 혹은 눈물고름이라는 이름의 장식품으로 나왔다. 시집가며 이걸로 눈물을 훔쳤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허구. 현대에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다. 치맛'고름'도 아마 이 눈물'고름'이라는 허구의 장식품이 생겨난 이후로 오개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말기끈은 그냥 끈일 뿐 고름이 아니다. [23] 말기는 치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 치마를 보면 속옷 겸용이라 하기에는 말기 부분의 폭이 매우 좁다. 딱 치마끈 정도의 폭. [24] 어린 아이들은 실용성을 이유로 조끼허리식 통치마를 입었다-지만 이것도 구한말에 조끼허리가 보급되고 나서 생긴 것이지, 조끼허리식 말기 보급 이전에는 애들일지라도 띠허리식 치마를 입었다. 애초 서양식 재단법을 모르던 시기인데 어떻게 서양 의복의 토르소 재단법에서 나온 조끼허리를 만들어 입었겠는가? [25] 개화기에 한국에 온 선교사에 의해 생겼다 [26] 한복을 처음 접한 일본인들이 제일 놀란 것이 성큼성큼 걷는 여성들이었다는 말도 있다.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은 옷의 특성상 종종걸음을 하게 된다. [27] 남성용 기모노, 쥬니히토에, 무녀복은 한복처럼 상의와 하의가 나뉘어져 있다. [28] 문화대혁명 이후로 역사자료가 희박해진 중국에서 중국문화 복원을 위해 유교제례가 보존된 한국의 전통문화 전반을 참고 하고있는데, 수입문화든 파생문화든 고유문화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중국문화라고 왜곡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9] 한국 내에 매우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인식이다. 다음 웹툰의 <환상스케치>라는 작품에서 비슷한 이유로 왜색이라는 비난을 받다가 그것을 보다못한 어떤 유저가 직접 자료를 조사해 비난에 대해 일일이 반박한 사례가 있다. 실제 한복에서 허리띠를 뒤에 묶는 경우는 흔한데, 삼국시대 복식은 허리띠를 앞이나 뒤에서 매듭짓는 게 일반적이었고, 링크에도 나와있듯 정재복(呈才服)의 대대 역시 뒤로 묶는다. [30] 세부 형태는 한복과 같았으나, 외형은 중국에서 도입할 때 모양새가 유지되었다. [31] 딱히 정해진 게 없었다. [32] 일반적인 고름은 외고름이었다. [33] 조선 말기에 천민은 치맛자락을 오른쪽으로 여미고, 고름도 오른쪽으로 고를 만들었다. 이전에는 방향을 크게 따지지 않았다. 치마나 바지를 여미는 방향 역시 마찬가지로 딱히 방향을 신경쓰지 않았다. [34] 여기서 그냥 잡아빼지 않고 고를 만들면 쌍고름이 된다. 허리띠를 맬 때에나 사용하는 방식이다. [35] 지금은 드물지만 과거에는 서울의 대치동이나 잠실, 천호동, 홍대앞에서까지 어른고 아이를 막론하고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36] 대표적으로 김대중의 경우에는 대통령 선거를 하던 80년대 당시에도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으로 유세를 하였고, 국회의원들 역시 평소에 한복을 입고서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 또한 현대에도 가끔식 한복을 입고서 국회에 나오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 [37] 다만, 이는 유치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서 생일잔치를 2~3개월에 한 번씩 할 경우 생일이 훨씬 지난 사람이 한복을 입고 생일잔치를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38] 절에서 템플스테이할때 일반인이 입는 경우로는 지금도 많이 쓰인다. 혹은 무속인들이나 나이든 불자들이 종종 입기도 한다. [39] 그는 평생 한복만 입고 살던 그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면서 입기 시작했다. [40] 사진의 인물은 오마이걸의 멤버 유빈, 지호, 미미 [41] 서양 복식처럼 다트(평면인 천을 입체적인 몸에 맞추기 위해 일정 부분을 긴 삼각형으로 주름 잡아 꿰매어 줄이는 것. 가슴 다트)를 넣어 곡선을 만들지 않으며, 평면재단이다. 당연히 겨드랑이의 암홀이 없다. 평면 재단이기 때문에 바닥에 놓으면 납작하게 붙는다. 시접을 모두 안감 안으로 넣는다는 점 역시 큰 차이다. 재단의 차이로 인해 옷 주름의 차이도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입었을 때 어깨와 겨드랑이, 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복은 겨드랑이에서 어깨까지 八자 모양의 주름이 생기며, 어깨 부분이 뾰족하게 각지지 않는다. 팔 부분에도 여러 주름이 생긴다. 이는 전통 저고리와 양장 저고리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42] 여자 민저고리 기준으로 양쪽 소매와 뒷길 두 장, 앞길 두 장, 깃, 안섶, 겉섶, 고름이 필요하다. 회장저고리인 경우 그 부분을 따로 재단한다. 색동저고리 역시 색동을 각각 재단하기 때문에 조각이 더 늘어난다. 치마의 경우 몇 폭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바지는 허리, 마루폭 두 장, 작은사폭 두 장, 큰사폭 두 장이 필요하다. 하의의 경우 말기를 덧대고 고름을 달기도 한다. 여자 속바지류는 말기와 고름을 달지만 남자 바지는 허리끈으로 여민다. 허리에 고리를 달아놓고 허리띠를 끼우는 것은 서양의 벨트를 차용한 개량식이다. 해평윤씨 묘역 출토 사폭바지. 염의로 쓰였다. 해평 윤씨 묘역 출토 남자아이 바지 [43] 도저히 기계로 하기 어려운 작업이 많다. 얇은 천은 전통 바느질은 곱솔(깨끼)이라고 하는 시접 처리법을 이용한다. 완성선에 맞춰 박은 뒤 남은 시접을 최대한 바짝 잘라 여러 번 접어 박는 바느질법이다. 전통 방식으로는 네 번, 요즘에는 세 번 접어 박는다. 접을수록 천은 두꺼워지는데, 최대한 가늘고 탄탄하게 박아야 한다. 방법 자체가 어렵기에 자동화가 어렵고 재봉틀을 쓰더라도 자를 때는 사람이 직접 해야한다. 여분 시접을 남기지 않아 튿어진 경우 수선하기 어렵다. [44] 봄, 여름에 주로 입는 얇은 옷감(일명 깨끼감)으로 저고리를 지을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곱솔 바느질의 난이도가 저 위로 올라간다. [45] 원래 띠허리풀치마는 구멍이 없다. [46] 깨끼 바느질이라고도 부른다. [47] 말아박기는 말아박기 노루발을 장착하고, 오버록은 오버록 재봉틀이 따로 있다. [48] 물론 원단이 본견이거나(종류가 다양하다), 전통 자수, 전통 돌금박이 들어갈 경우 가격이 수직 상승한다. 전통 자수와 돌금박은 모두 수작업인데다 그걸 전문으로 하는 장인에게 따로 작업을 의뢰해야 해서 그렇다. 자수의 경우 국내 장인은 무형문화재 자수장 이수자 이상 급이 아니더라도 몸값이 정말 비싸다. 가성비로 중국이나 베트남에 맡기는 경우도 있는데, 꼰사와 푼사의 차이가 있는데다 자수 기법도 다르다. 경로는 알 수 없으나국내에 비해 가성비 좋으면서 똑같이 꼰사를 사용하고, 자수 기법도 같은 북한에 작업을 맡겼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도는데, 지금도 가능한지는 불명이다. 돌금박도 크기와 난이도에 따라 의뢰비가 올라간다. 사실 전통 자수와 돌금박을 할 정도면 인견은 잘 안 쓴다. 인견이면 다리미로 찍는 스탠실 금박에 자수패치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퀄리티와 별개로 훨씬 저렴하긴 하다. [49] 그리고 이러한 디자인은 더더욱 한복을 기피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50] 기모노의 동아시아 전통의상 이미지 잠식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라 서구권의 사람들 역시 고대 한복을 기모노로 인식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중국인들도 자국의 고대 한푸를 보고 기모노로 인식한 사례가 있다. [51] 과거 중국도 재현된 고대의 한푸를 보고 상당수 중국인들이 한복이나 기모노 아니냐며 불편해한 적이 있다. [52] 실제 역사에서 중국 남성은 무조건 상투를 틀어야 했으며, 각종 콘텐츠 속 장발/포니테일/반묶음은 현대적 캐릭터 디자인이다. [53] 욕이 아니다(...) 눌러 놓은 떡같은 납작한 첩지 장식이란 뜻이다. [54] 상투관은 상류층의 전유물인데, 특히 머리숱이 적은 노인들이 사용했다. [55] 원래 머리숱 많으면 상투를 두 개 틀었다. 젊은 사람은 특히 쌍상투가 흔했는데, 신체발부수지부모와 미적인 이유로 인해 배코치는 것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56] 한복에 대한 최초의 책은 이여성의 「조선복식고」이다. 현대에 출간된 대다수의 한복 서적 역시 제작 관련이 아닌 이상 조선복식고를 참고하였다. 그러나 조선복식고 역시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오류가 지적되는 상황이므로 폭 넓고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간혹 일부 서적은 학계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서술을 싣는 경우도 있어 역사와 고고학 및 복식(한복, 한푸, 북방계 호복, 남방계 복식, 기모노 등 복식 전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다소 곤란할 수 있다. 애초에 이러한 책은 대부분 전문도서라 관련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술술 읽을 난이도가 아니긴 하지만. [57] 여담이지만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서양의 이런 무지로 인해 여러 차례 굴곡을 겪은 사례가 존재한다는걸 알 수 있다. 중국공산당 확장과 태평양 전쟁이 대표적이다. [58] 어디까지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 뿐이지 학술적으로 동아시아 전통의상이란 개념 자체를 기모노라고 보통명사화 했다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패션 분야에서 동아시아스러운 분위기를 띄는 y자 옷깃+넓은 소매+넓은 허리띠 같은 디자인 요소들을 흔히 기모노 스타일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단지 인지도 상의 편의적인 표현일 뿐이므로 진지하게 동아시아 복식사를 얘기할 땐 이런 요소들이 기모노가 원조인 것도 아닐 뿐더러 기모노에만 있는 요소들도 아니라는 걸 동아시아 복식에 관심있는 서구인들이라면 다들 안다. 서구와 중앙아시아의 주식인 음식을 포르투갈어인 빵이라고 부른다고 이런 음식들의 기원이 포르투갈이라고 생각하진 않지 않듯이 말이다. [59] 아마 찰갑 요소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에겐 비슷하게 보일수도 있기 때문인 듯 하다. [60] 하지만 원래 어느 나라든지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지 않는 이상 대중들이 잘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당장 한국인 중에서도 서양이나 중동은 둘째 치더라도 중앙아시아나 러시아 전통의상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61] 한 프랑스 K-POP 커버 댄스팀은 생활한복 치마를 단체로 맞춰 입고 촬영하기도 하였다. [62] *현애의 경우는 오버라이드 터미널에서 change_outfit 명령어를 입력해서 한복으로 바꿀 수 있다. [63] 어나더 버젼 한정. [64] 맥시멈임팩트2 새로운 복장 한정. [65] 이나 홍화처럼 한복과 현대 복식을 결합한 옷도 보인다. [66] 인게임에 등장한 순서이며 K국(한국)의 전차소녀이자 전투복이 한복이다. [67] 정확히는 설정상 해당 제국의 복장이 한복이다. [68] 저 둘은 하르벤타 제국 사절단으로 간 에피소드 한정으로 한복을 입었다. [69] 일러스트에서는 한복과는 다른 느낌이 들지만, 강성훈의 4권 독백으로 보아 한복. [70] 웨펀마스터, 아수라 한정. 검귀는 일본 무사에 가깝다 [71] 한복만 입고 다닌다. 변장할 때에나 사복으로 갈아 입는 편. [72] 구미호 스킨 한정 [73] 취미가 개량한복 만들기이며, 명아연 납작이에게 한복을 입힌 것도 그녀다. 하지만 본인이 입고 있는 옷은 한복이라기보단 무복에 가깝다. [74] 물론 스킨으로... [75] 기본 복장이 개량 한복이다. [76] K2는 개량한복 형태, K5는 전통한복에 가까운 형태. [77] 재현 오류가 있다. 스토리 배경은 정여립의 난 시대인데 한복은 20세기의 것과 똑같이 저고리가 매우 짧고 가슴가리개가 아예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다. [78] 1기 퇴마복, 어린 시절 한정 [79] 과거 한정 [80] 본모습 한정 [81] 어린 시절 한정 [82] 1부 한정. [83] 세종대왕급 구축함네임쉽인 세종대왕함을 모에화한 함희다. [84] 스킨으로 한복이 추가되었다. [85] 잔잔한 햇빛 스킨 한정 [86] 평상시엔 곤룡포를 입고 전투시엔 서양 갑옷을 입는다. 다만 각성 이후에는 전투 시에도 곤룡포를 입는다. [A] 스킨한정 [A] [A] [A] [A]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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