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정인지, 『훈민정음』‘해례’「서문」
한글로 이 세상 모든 발음을 구현할 수 있다는 주장. 또는 가장 많은 발음을 구현할 수 있다는 주장.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정인지, 『훈민정음』‘해례’「서문」
2. 문자와 소리 간 관계의 임의성
한글의 표음 능력에 대한 과신에 빠진 사람들은 문자의 확장과 변용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문자와 그 문자가 나타내는 발음의 관계는 고정되어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합의된 약속일 뿐으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역사상의 사례로 대만일치시기에 일본이 대만어를 가타카나로 표기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던 바 있다. 기존의 일본어 가나 표기법으로는 대만어를 가타카나로 표기하기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확장과 변용을 했는데, 대만어에는 없는 유성 치경/치경구개 마찰음 z 대신 유성 치경/치경구개 파찰음 j를 표기하기 위하여 탁점 붙인 サ행을 이용했고 지역에 따라 다른 o 발음을 구별하기 위하여 オ와 ヲ를 함께 이용했으며 n, m, ng 받침은 각각 ヌ, ム, ン으로 구분해서 표기하는 등의 변용 표기를 했다. 또한 홋카이도를 개척하며 아이누어 표기를 위하여 스테가나를 만들어 활용하는 등 가까운 일본에서도 예를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글이라고 해서 이런 원리를 적용하지 못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한글을 표기 문자로 수입한 아무개 언어 X가 있다고 하자. 이 언어에는 한국어에 없는 순치 마찰음(/f/)과 구개수 파열음(/q/)이 매우 자주 쓰이고, 반대로 한국어에 있는 자음의 거센소리/된소리 구분(예: ㅋ/ㄲ)은 없으며, 모음에서 ㅓ 소리는 없고, ㅔ 소리는 한국어보다 훨씬 많이 쓰인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 언어에서는 쓸모없는 된소리 글자 ㄲ과 ㅃ을 각각 /q/ 소리와 /f/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로 변용하고, ㅔ 소리를 나타내는데 획수가 많은 ㅔ보다 ㅓ를 쓰는 등의 변용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드시 한 글자가 한 소리에 고정되어 있을 까닭은 없는 것이다. 또한, 기존 자모로 나타낼 수 없는 음이 있다면 새 자모를 추가하면 그만이다. 당연하지만 한국어 원어민이 그렇게 적힌 한글을 한국어식으로 읽으면 정확한 발음과 거리가 멀다.
실제로 무수히 많은 언어 표기에 쓰이는 라틴 문자는 언어마다 다양한 확장과 변용 표기를 볼 수 있다. 역시 이 문자도 문자 자체로 따지면 전 세계 대부분 언어를 표기하기엔 어려움이 따르므로 라틴어나 몇몇 음소 적은 언어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언어가 확장이나 변용 표기를 하고 있다. 다른 예시로 키릴 문자 역시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러시아, 압하스어 등 언어마다 사용하는 문자가 다르며 특히 압하스어와 같은 경우 기본 키릴문자에서 추가된 문자가 많은 편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한글은 다른 언어 표기에 부적합하다는 반론이 나오면 옛글자를 부활시키거나 확장 및 변용 표기를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말은 맞는다. 그러나 문제점은 적절한 확장, 변용, 개정 과정을 거치면 지구상의 다른 모든 문자들도 똑같은 표음 능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맘 먹고 하면 다들 가능하다. 다만 그럴 필요가 없으니 안 할 뿐이다.[1] 실제로 다른 문자들도 얼마든지 한글과 똑같은 표음 능력을 유지하면서 한국어를 표기할 수 있다.[2]
만약에, 처음부터 한글이 없어서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베트남처럼 라틴 문자를 수입해서 쓰게 됐다고 가정을 하자. 라틴 문자의 모음 문자는 a(ㅏ), e(ㅔ), i(ㅣ), o(ㅗ), u(ㅜ)인데, 그렇다면 모음은 어떻게 변용을 하는 게 자연스러울까? ㅓ 소리가 ㅔ 소리보다 많이 쓰이기 때문에 e를 ㅓ 소리를 나타내는 데 쓰고 ㅔ 소리는 ei나 ë, ê 등으로 표기함으로써 글자 수를 줄이는 게 자연스럽다. 그리고 자음의 경우는 c와 k의 구분이 없으므로 ㅊ 소리를 쓸 때 ch를 쓰는 것보다 그냥 c를 써서 글자 수를 줄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면, ㅜ 소리와 ㅡ 소리의 구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ㅜ 소리를 나타내는 u에다가 별도의 기호를 붙여서 ŭ 정도로 ㅡ 소리를 표기하는 식으로 확장을 하면 된다.
결국 표기할 수 있는 음가가 얼마나 되느냐를 가지고 문자 체계의 우열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반대로 한글이 표시할 수 있는 소리가 라틴 문자보다 적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의미 없는 소리. 라틴 문자가 다양한 발음을 표시하게 된 것도 다른 언어를 쓰는 국가/민족들이 라틴 문자를 받아들이면서 자기들 언어에 맞게 확장과 변용을 거쳤기 때문이다. 결코 로마인들이 라틴어 쓰던 시절에 그것까지 감안해서 체계를 만든 것이 아니다.
일반 언어의 문자는 그 음성 언어를 시각적으로 효율적으로 전달하면 훌륭한 것이다. 모든 언어의 발음 표기라는 부분에 방점 찍히신 분들은 이미 IPA[3]라는 음성학 전용 결전 병기가 있으니 그걸 익혀서 음성학을 공부하면 된다. 물론 IPA도 언어끼리 구별 가능할 정도의 기호만이 있지 모든 발음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3. 구현 가능한 발음 수 비교 및 음운과 문자와의 개념 혼동
어떤 언어든 음운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기에, 한 언어 내에서 다른 음운 체계를 지닌 외국어의 발음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문자란 한 언어의 음운 체계를 상징 구현하는 체계로, 이 문자가 다양하다고 해서 실제로 한 언어의 발음이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예를 들어, 한글만능론에서는 흔히 '한글 조합으로 구현 가능한 소리의 가짓수는 몇 십만 개가 넘는다'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문제는 설령 그것을 쓸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제한된 한국어의 음운으로 그것을 발음할 수 있는가이다. 설령 '쯇', '꿻', '쀲' 이런 걸 쓸 수 있다고 해도, 한국어 내에 그에 대응하는 음가가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게다가 이러한 특성이 딱히 한글에 특유한 것도 아니고, 라틴 문자 같은 것으로도 'rthokrpt qwttronsrt' 같은 조합은 무한에 가깝게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이런 걸 쓸 수 있다고 해서 이 표기에 대응하는 음가가 해당 언어에 자동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이는 전형적인 '소리'와 '문자'의 개념 혼동 때문에 생기는 오류다.
쯇, 꿻, 쀲 등의 문자 조합을 [t͡ɕjult̚], [k͈welp̚], [p͈ypt̚] 등으로 발음할 수 있다고 쳐도, 그것이 꼭 한글 조합이 라틴 문자 조합보다 많은 발음을 구현할 수 있다는 뜻이 되지는 않는다.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게 '간'과 '낙'이 다른 문자로 인정되는 것은 한글이 모아쓰기를 하기 때문이지, 낱자로만 보면 둘 다 'ㄱ', 'ㄴ', 'ㅏ'로 같은 문자이다. 이렇게 모아쓰기로 인해 생기는 한글 조합 하나하나를 다른 문자로 치면서 한글이 라틴 문자보다 많은 소리의 가짓수를 구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비교 대상을 잘못 잡은 명백한 논리적 오류이다.
라틴 문자도 'kan'과 'nak'을 다른 문자로 인정해야 비교 대상이 똑같이 되는데, 현대 한글은 한 음절에서 가능한 최다 음소 조합이 CVC[4]임에 반해, 라틴 문자는 그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한 음절 내에서 가능한 음소 조합을 기준으로 하면 오히려 라틴 문자 조합으로 구현되는 소리의 가짓수가 한글보다 많아진다.
이론적인 예시로 'ptkfampst'를 발음해 보자. CCCCVCCCC 구존데도 한 음절로 발음할 수 있다. 더 갈 수도 있다. 'ptksfampsps'. CCCCCVCCCCC 구조이다. 여전히 표기, 발음이 둘 다 가능하다. 한글로는 저런 음절을 표기할 수 없으나, 라틴 문자는 조합이 무궁무진하다.[5] 옛한글은 현대 한글의 CVC 제약이 없으니 옛한글을 쓰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훈민정음 창제 당시로 돌아가더라도 한글은 CCCVCCC까지밖에 표기할 수 없다. 참고 모아쓰기를 하는 한글 특성상 특정 개수 이상의 많은 음소를 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ptkfampst'나 'ptksfaimpsts'는 옛한글까지 끌어오더라도 표기가 불가한 음절 조합이다.
훈민정음 조합으로 구현 가능한 소리의 가짓수가 많긴 해도, 모아쓰기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풀어쓰기를 하는 라틴 문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 표기할 수 있는 음가가 얼마나 되느냐를 가지고 문자 체계의 우열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기에, 어느 문자가 더 많은 가짓수의 소리를 구현할 수 있냐를 비교하는 것 또한 쓸데없는 일이다. 다만 "한글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식의 거짓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당 문단의 서술이 그에 대한 반박 근거는 되는 것이다.
현대 한국어만 나타내는 데는 오히려 현대 한글도 과분한데, 한국어의 발음을 나타내는데 꼭 필요한 글자는 광범위한 한글의 범주에 비하자면 아주 적다. 이론상으로 조합 가능한 한글의 가짓수는 옛한글까지 포함하면 1,656,000개(방점 제외)다.[6] 하지만 표준 한글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가짓수는 11,172자이고, 이 가운데서 실질적으로 표현 가능한 음절의 수는 2,793개밖에 안 된다. 25%밖에 안 쓰고 있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한글을 표음성 100% 문자로 바꾸는 경우 현대 한국어를 표기하는데 필요한 받침음은 ㄱ, ㄴ, ㄷ, ㄹ, ㅁ, ㅂ, ㅇ 7개면 충분하고 모음도 'ㅐ'와 'ㅔ'의 구별이 사라진 여파로 ( ㅐ, ㅒ, ㅔ, ㅖ)[7]와 ( ㅚ, ㅙ, ㅞ)[8]가 각각 하나의 소리로 합쳐지는 중이라 모음도 더 줄여야 한다.[9] 하지만 표음 문자 문서에도 언급된 것처럼 사람은 문자를 하나하나 떼어서 보지 않고 덩어리로 인식하기에 표음성 100%를 추구하면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모아쓰기의 한계 때문에 풀어쓰기의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있다. 풀어쓰기를 도입한다면 한글의 창제 원리를 무시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위와 같은 어두자음군의 표기 제약에서는 적어도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는 한글이 음절문자가 아닌 음소문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4. 외국어의 한글 표기
덴마크식 빨간 죽 이름 외기 | 흔한_ 나미비아_가정의_대화.mp4 | 쿠란 |
이 영상들에서 나오는 발음을 '한글'로 정확히 전사할 수 있는 지 보자. |
특정 언어의 발음을 정확히 표기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문자가 열등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곤란하다. th, r/l, f 발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한글이 라틴 문자보다 떨어지는 문자일까? 반대로 ㄱ/ㄲ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라틴 문자는 한글보다 열등할까? 문자는 본래의 언어만 제대로 표기할 수 있으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또한 확장과 변용을 통하여 해당 발음을 글로 옮긴다고 하더라도 한국어 화자들이 모든 발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외국어의 발음을 정확히 한글로 구현해 봤자 그것은 외국어의 어원에 충실하고자 하는 목적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 한글은 '한국어만을 표기하는' 개념으로 다듬어졌으며, 한국의 언어 정책은 이에 대응하고 있다. 현대 한글은 순전히 한국어에 대응하는 문자 체계임이 분명하다. 국립국어원에서도 "한글은 다른 나라의 언어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쓰는 말을 표기하기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진 문자"라고 주장한다.
훈민정음의 구조를 보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목적은 상당히 야심찬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래의 한글은 한국어를 기본으로 하여, 각지의 방언을 포괄하고 주변 주요 국가의 말까지 표현할 수 있는 표기 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즉, 당시의 언어학적 기준으로 판별할 수 있는 모든 범위를 포괄하려 한 것이다. 세종대왕은 '방언의 표기'까지 고려하고 있었으며[11] '외국어의 표기'[12]까지 고려했던 것은 당시 한국어에서도 쓰이지 않는 중국어 치두음과 정치음 표기(좌우가 불균형한 ㅅ, ㅆ, ㅈ, ㅉ, ㅊ)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는 태국 문자가 산스크리트어를 제대로 표기하기 위해 태국어에서 쓸 일이 없는 글자를 보유한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한글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인터넷 초창기 몇몇 누리꾼들이 ㅸ, ㆄ, ㅿ 등을 이용하여 v, f, z 등을 표기하려는 시도(예: 도레미ᅗᅡ솔라시도, ᄫᅵᆨ토리, ᅀᅩ로)를 한 적이 있으나 대개의 경우 무의미한 시도라고 여겨져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왜냐하면 글로는 쓸 수 있으나 자판으로 타이핑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효율성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11172자의 완성형 체계로는 이런 옛한글을 소화하기에는 무리이다. 이런 시도는 한글 맞춤법이 제정되는 초창기에 외국어 표기를 대상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외래어 표기법이 정리되면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일본식 외국어 표기를 비웃는 사람들도 많은데, 한글도 외국어를 원음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스트라이크'라는 한국식 발음도 그냥 한국어에 존재하는 음가를 사용하여 원어 발음을 최대한 표현한 것 뿐이다. 원래 영어 단어 'Strike'는 1음절이지만 한국어로 'Strike'를 옮길 경우 '스트라이크' 5음절, s가 붙을 경우 6음절이 되어 원 발음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생기게 된다. 한글의 한 글자는 무조건 한 음절이므로, 원음을 정확하게 적고자 한다면 원어의 한 음절은 한글 표기에서 한 글자에 대응돼야 한다. Marx도 1음절이므로 '마르크스'나 '맑스'로 적을 게 아니라 'ᄆ/ᅡ/ᇌ'처럼 한 글자로 적어야 한다. 물론 받침으로 활용된 ㄹ, ㄱ, ㅅ이 원 발음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 또한 아니다. 일본어 발음을 한글로 정확히 표현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대다수 한국인들의 오해와 달리 일본어도 외국인이 완벽하게 발음하기는 힘든 언어다. 괜히 보아가 일본 진출할 때 아나운서 데리고 발음 트레이닝을 한 게 아니다. つ, ざ 등의 발음은 현대 한글로 표기할 수 없다.[13]
이와 별개로 일본어는 전세계적으로도 음소가 적은 언어인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어의 복잡한 종성, 음소를 늘리는 조합성들이[14] 맞물리고, 개화가 빨라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만들어 온 오랜(옛날) 표기법 탓에 일본식 영어 표기가 구려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뒤에 설명하듯 한 언어의 음소의 다양하다고 그 언어가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애초에 이러한 시도가 의미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언어' 간의 발음은, 설령 1:1 대응이 가능하고 닮은 발음이 있다고 해도(예: あ - 아 - 독일어 'a') 그 두 발음이 100% 같다는 보장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음성 주파수, 해당 발음의 지속 시간, 억양, 액센트, 조음법 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확성만 따진다면 한글 낱자를 끝없이 만들어 내야 하고 한글의 구조도 뜯어고쳐야 할 것이며, 한글을 확장하지 않고 현대 한글에 쓰이는 한글 낱자만을 생각한다면 한글로 '정확히' 적을 수 있는 외국어 단어가 거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예를 더 들자면 일본어의 つ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쓰'로 표기하지만, 일본어의 つ와 한국어의 '쓰'의 발음에는 실제로 인지할 수 있을 만한 차이가 있다. ㅆ과 ㅉ 사이, ㅜ와 ㅡ 사이라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발음. 이런 점 때문에 다른 언어의 발음을 신경 쓰며 표기법을 수정하는 일은 끝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외국어 발음을 위해 새로운 자모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보면 대개 자음만 있고 모음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 call, tall 등의 모음인 [ɔ] 발음은 한글 표기와는 다르게 ㅗ도 아니고 ㅓ도 아닌데, 이 [ɔ] 발음에 대응되는 한글 자모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영어 rich와 reach는 단순히 모음의 길이로만 구분되는 게 아니라 모음 자체가 [ɪ]와 [i]로 다른데(파형적으로 보면, [i]는 F2 값이 평균 2200Hz인 반면, [ɪ]는 1900Hz 정도다.)[15], 저 [ɪ] 발음에 대응되는 한글 자모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보이지 않는다. 이 외에도 표기가 불가능한 모음은 많다. 예로,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ㅐ, ㅚ, ㅟ로 표기되었던 이중모음인 ai, oi, ui 등의 이중모음은 현대 한글에선 문자 발음의 변화로 표기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au, eu, ou나 wo, wu 같은 발음들도 현대 한글로는 표기가 불가능하다. 훈민정음을 쓰면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는데 훈민정음으로도 표기 못하는 발음은 많다. 당장 프랑스어만 봐도 프랑스어는 단모음만 17개(oral vowel 13개 + nasal vowel 4개)로, 훈민정음의 단모음 7개나 현대 한글의 단모음 10개를 훨씬 뛰어넘는다. 대표적으로 /ɛː/나 /a/[16]와 같은 모음은 훈민정음이나 현대 한글로 표기할 수 없으며, [ø]와 [œ]의 구분은 불가능하다.[17] 또한 이중모음 [wi]와 [ɥi], 그리고 단모음 [y]는 다른 발음, 다른 철자임에도 모두 '위'라고 표기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비모음 [ɑ̃], [ɛ̃], [œ̃], [ɔ̃]는 표기할 방법이 없다. 외래어 표기법은 종성 'ㅇ'을 써서 표기하도록 하고 있지만 종성 'ㅇ'은 [ŋ] 발음으로 자음이지, 모음이 아니다. 이래서는 프랑스어 알파벳에서 구분되는 [ɑ̃]와 [aŋ] 발음을 한글로는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음소 /ŋ/는 'zhuang', 'camping', 'brainstorming'과 같은 외래어에서 쓰인다.
한글에 자모를 도입하는 데에 있어 '자음만 신경 쓰는' 예시로 이런 걸 들 수 있다. 해당 기사에서는 옛한글을 부활시켜 영어 단어 'this'를 'ᄕᅵ스'로 표기할 수 있다고 했는데, 'ᄕᅵ스'로 표기한다고 해서 'this'의 완벽한 표기가 되는 게 아니다. 영어 단어 'this'의 발음은 [ðɪs]로, 한글로는 'ð', 'ɪ',[18] 's' 셋 다 못 표기한다. 's'가 왜 표기 안 되냐 할 수 있는데, 어말에 왔기 때문이다. 한글로는 모음 앞의 's' 발음만 표기할 수 있지 이외의 's' 발음은 표기할 수 없다. '스'라는 표기는 제대로 된 표기라고 할 수 없다. 'ᄕᅵ스'라는 표기는 자음 [ð]를 표기하기 위해 옛한글 조합인 'ᄕ'을 도입한 것이지만, 모음인 [ɪ]나 어말 [s]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외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확장한글이라는 것도 나오지만 흥하지 못한다.
5. 구체적인 반례
자세한 내용은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 문서 참고하십시오.6. 둘러보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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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장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봐도 바로 앞에 예로 든 한국어 라틴 문자 확장/변용법까지 가진 않았다. 애초에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라는 게 외국인이 한국어를 읽기 쉽게 하기 위한 목적이지 한글을 대체하기 위한 목적까지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거다. 실제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에선 ㅔ를 e로, ㅊ을 ch로 표기하고 있다.
[2]
단적으로 말하자면 25 ~ 28개의 낱자가 있는 음소문자는 어떤 음소문자든 간에 한글을 대체할 수 있다. 한글 자모 각각에 1대1 대응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3]
사실 여기에서 영어 약자를 라틴 문자 그대로 사용한 것도 관점에 따라 한글의 한계라면 한계다. 물론 영어 약자 IPA를 한국어 '국제음성기호'로나, 음차한 '아이피에이'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집필자는 나름대로의 이유로 영어 약자를 사용했다. 이것은 이 부분에서 한국어 표기 문자 한글을 쓴다는 것에 나름 어색함을 느껴서일 수도 있다. 결국 한글은 이런 것에 적합하지 않다고 '나름' 생각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영어 약자를 음차나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쓰는 사람들은 한글만능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도 꽤 된다.
[4]
반모음이나 'ㅢ'를 따로 치면 CGVC나 CVGC도 된다. 겹받침을 따로 쳐도 CGVCC, CVGCC다.
[5]
현실적으로 저런 조합은 너무 인공적이니 자연어를 바탕으로 제약을 두어 보자면, 영어에서 음절 초성에 올 수 있는 최다 자음의 수는 3개고(예: splash/splæʃ/), 종성에 올 수 있는 최다 자음의 수는 4개이며(예: glimpsed/ɡlɪmpst/), 한 음절에서 가능한 최다 음소 조합은 CCCVCCCC 정도로, 이렇게 제약을 둬도 라틴 문자는 한글로 구현 가능한 소리의 가짓수를 훨씬 뛰어넘는다. 물론 자연어 중에는 조지아어의 'მწვრთნელი'(mts'vrtneli) 같은 어두 6중 자음이 존재하는 언어도 있기에, 이를 포함하면 CCCCCCVVCCCC 조합도 가능하다. 동사 변형 형태도 포함하면 'გვფრცქვნი'(gvprckvni)도 있으니 CCCCCCCCVVCCCC이며, 조지아 문자로 표기되는 언어임에도 라틴 문자는 별 문제 없이 저 단어들을 표기하는 반면, 한글은 저 단어들의 자음군을 절대로 구현할 수 없다.
[6]
방점이 2개이므로 방점까지 포함하면 조합이 수백만에 이르는데 이게 사람이 유의미하게 사용 가능할 리가 없다. 게다가 n중 모음, n중 자음 대부분은 현대의 한국인이 제대로 발음할 수가 없는데 억지를 써서 정식 글자로 사용해 봐야 표기만 가능하고 발음은 불가능한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수백만 개의 조합을 다 쓴다 하더라도 어차피 풀어쓰기를 하는 음소 문자에 비하면 발음 수가 적은 건 마찬가지다. 괜히 과거부터 로마자 표기를 위해 풀어쓰기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꾸준히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7]
ㅔ 발음으로 합쳐지고 있다. 'ㅒ'와 'ㅖ'는 특정 자음이 앞에 오는 경우에만 'ㅔ' 발음이 난다.
[8]
ㅞ 발음으로 합쳐지고 있다.
[9]
세대를 거듭하면서 상대적으로 어려운 발음이 상대적으로 편한 발음을 닮아가는 현상은 한국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10]
일례로 모노어에서 사용되는
순치 탄음의 경우에는 최근에서야 IPA에 추가되었다.
[11]
ᆜ 등의 실용성이 거의 없는 문자를 방언을 나타내기 위해서 집어넣었다.
[12]
정확한 중국어 발음. 즉, '운서를 바로잡는 것'
[13]
일본어 문서의 '현대 한국어·한글과의 표기 호환성' 섹션 참고
[14]
예를 들어 자와 쟈는 음성학적으로 같은 발음이지만 문화적으로 구분하고, 종성의 모음도 실제로 발음하지 않는 모음도(ㅋ,ㅌ,ㅂ,ㅍ,ㅎ 등) 붙여 사용한다.
[15]
비슷한 예로 'fool'과 'full'의 모음 차이를 들 수 있다.
[16]
/ɛ/나 /ɑ/와는 다른 모음이다. 파리에서라면 몰라도 벨기에, 스위스, 퀘벡에서는 저 모음들을 다르게 발음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Help:IPA/French
[17]
당장 네이버 프랑스어 사전을 들어가서 'sœur'와 'ceux'의 발음을 들어보자. 분명 두 단모음의 발음이 다른데도 한글로는 둘 다 '쇠(르)'라고 표기한다. 거기다가 'ㅚ'를 'ㅞ'처럼 이중모음으로 읽는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모음의 발음과 프랑스어 특유의 가래 끓는 R이 합쳐져 이 발음을 제대로 내기 힘들다.
[18]
'i'와는 다른 모음이다. 위 문단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