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이웃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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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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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관계로 유명한 한중일 관계를 풍자한 컨트리볼 만화 |
범례 | |
양국 간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 중이거나 국지전 이상의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경우 | 💥 |
서로 수교하지 않았거나 단교한 경우 | ❌ |
제재중인 관계[1]로 왕래가 자유롭지 못함 | ◆ |
회복에 성공했거나 점차 관계 개선의 조짐이 보이는 경우 | ◁ |
과거에 좋았거나 무난하게 지냈다가 최근 10년 이내의 특정 사건을 기점으로 급격히 관계가 악화된 경우 | ▶ |
2. 삼각관계
2.1. 한중일 삼국지
워낙 할 말이 많은 데다가, 셋 다 마냥 척을 져야만 하는 적대국으로도 사이좋은 우호국이라기도 보기도 애매하기 때문에, 따로 목차를 분리한다.2.1.1. 관계
- 한중일 3국은 국가적 자존심( 경술국치→ 일제강점기), 전쟁( 고조선-한나라 전쟁, 여수전쟁, 여당전쟁, 백강 전투, 나당전쟁,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중일전쟁, 6.25 전쟁 등), 역사교과서 사관( 동북공정, 새역모의 역사교과서 등), 이념, 영토 등과 연관된 사안들이 수시로 충돌하면서 갈등을 빚는다.
- 그렇지만 한중일 3국의 관계는 이스라엘-다른 아랍권 국가나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와 같이 험악하지 않으며 3국간에는 외교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일단 문화적으로도 같은
한자문화권이라서 서로 관련이 깊고 이를 흔히 동문동종(同文同種)이라 부르는데 이는 문자와 인종이 같다는 뜻이다.
일본어는 문장 자체에
한자가 상당히 많이 들어갈 뿐더러
가나 또한 한자를 변형한 문자이다.
한글은 한자와의 차별점이 뚜렷하지만 이 역시 한자와 같은 방형(사각형) 문자이며 결구법 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한자와 친근한 문자이다. 또한
한국어의 상당 부분이 한자 단어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 한자음을 한글로 쓰는 형식이기 때문에 치환이 자유롭다.[3]
- 이러한 역사적 배경의 공통점 때문에 국민 서로간의 왕래율은 여타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중국에 방문하는 외국인 1, 2위도 일본인과 한국인이 엎치락뒤치락. 일본의 해외 교포 중 중국 거주자 또한 압도적인 1위.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숫자는 중국, 일본이 압도적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2023년 한국관광통계 기준)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한중일은 많은 갈등과 교류가 상존하는 애증의 관계로 표현되고,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관계이다.
2.1.2. 관계 변천사
- 한반도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1950년대에는 한중일 모두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때는 3국 사이에 외교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미국과 대만을 통해 같은 자본주의 진영 국가인 대한민국과 일본이 간접적으로 얽혀 있었을 뿐이다. 한국과 일본은 재일교포 북송이나 니가타 일본 적십자 센터 폭파 미수 사건 등으로 자주 충돌했다.
- 이후 1965년 한국과 일본은 한일기본조약으로 외교관계를 맺었고, 중국과 북한에 대항하여 반공전선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과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에 조총련계 재일교포인 문세광이 범인이었음이 밝혀지는 바람에 한일간의 관계가 극도로 험악해지기도 했다.
- 1980년대는 한일관계가 가장 좋은 시기였다.[4] 공산주의 진영에 속한 북한은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기도하였고(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민간 항공기를 폭파하였으며(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동시기 적대관계였던 소련도 대한민국 민항기를 격추하였기 때문에(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반공 정서가 매우 강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전두환 - 나카소네 야스히로,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의 한미일 삼각보수동맹은 공산주의 진영에 대항하며 각별한 관계를 가졌다.
- 하지만 1982년과 1986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일어나 돈독했던 한일관계에 금이 가기도 했다. 그리고 1982년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에 열받은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충청남도 천안시에 한 박물관을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독립기념관이다. 그리고 1980년대 말 탈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과 밀접한 관계였던 동유럽 공산권 국가랑 수교하면서 양국은 다시 데면데면해졌다.
- 1990년대에는 중국이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에 따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나가기 시작하였고, 대한민국도 1992년에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일본이 중국과 수교한 것은 1972년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1998년에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짐으로써 약 50년간 닫혀 있었던 일본 문화 유입 금지의 빗장이 풀렸다.
- 2000년대 초는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취임하여 우익 노선을 걸은 데다가, 새역모에서 발간한 역사교과서 논란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불편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인해 한국에 일본 애니메이션 및 오타쿠 문화가, 반대로 일본에는 일본의 한류 문화가 정착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 2010년대 초반에는 한일 간의 갈등이 두드러졌으나 중반에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중국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실망한 한국이 THAAD를 도입하고 이로 인해 안보위협을 느낀 중국이 한국에 여러 경제 보복 조치를 감행함으로써 점점 한국 VS 중국 VS 일본의 삼파전으로 발전하였고 이러한 기조는 2010년대 내내 이어졌다.
- 2020년대에 들어서는 중국발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들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 크게 불거졌고, 특히 한국은 반중 감정이 반일 감정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심해졌다. 또한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며 중국의 패권주의, 팽창주의적 행보가 심화되고 북중러 3국이 점점 밀착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한동안 과거사 문제로 인해 갈등을 빚었던 한국과 일본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5]
2.1.3. 한중일 간 관계 비교
- 한국 VS 일본◁[6]: 야스쿠니 신사, 일본의 역사왜곡과 대한민국의 역사왜곡, 독도 영유권 분쟁, 위안부 등 여러 정치적 갈등이 남아 있다. 그나마 냉전 때는 소비에트 연방, 현재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항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형식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지만 미국의 영향이 별로 닿지 않는 역사적 사안에서는 대립이 첨예하다.[7]
물론
일본 대중문화 개방,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월드컵 공동개최,
일본의 한류 열풍 및 양국간 무비자 입국 실시 등으로 양국은 일시적으로 좋은 관계를 누리기도 했으나 그때에도 정치적 앙금은 남아있었고, 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도
한일 무역 분쟁으로 인한 일본 화이트리스트 제외등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 양상이 형성되었다.
다만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 이후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보가 심해지고
북중러 3국이 밀착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한국과 일본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 동안 응집력이 약했던 제1세계 진영이 다시 모이기 시작함에 따라 2010년대 내내 얼어있었던 한일 양국의 표면적인 협력도 2020년대에는 미국의 주도 하에 재개된 양상이다.
또한 현재의 일본과는 몇몇 정치적 갈등이 남아있을 뿐, 양국민들의 방한, 방일 인원은 전반적으로 증가세[8]이고, 일본 내 극우 세력의 영향력이 예전에 비해 크게 감소함에 따라 2020년대 이후 일본 화이트리스트 복귀등과 같이 한일관계는 점차 개선되어 가는 추세이다.
- 한국 VS 중국▶💥: 역사적으로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 중국의 통일 왕조들과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 등 한반도의 왕조국들 사이에는 충돌이 많았다.[9]
현대에도 6.25 전쟁 당시 중국은
북한을 지원하며 남한 주도의 통일을 방해하였고 여전히 중국은
한국의 주적 북한을 옹호하기 때문에 국군도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삼고 있다. 중국의 경우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를 자국의 안전 및 역내 패권을 위해 필요한 곳으로 보고 있어서,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자 상기 언급한 한국의 약점을 이용해
한한령을 시행하였고 이를 계기로 양국의 상호간 국민감정이 이전에 비해 크게 악화되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열악한 인권 상황, 후진적인 정치 체제 및 검열, 일부
중국인의 중화사상 및 민폐 등이 대대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여
반중/
혐중 정서가 심화되었다. 2017년 10월 31일 양국이 한중관계 개선에 합의한 이래로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다시 한한령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지만, 한국인들의 경우 한한령으로 냉담해진 대중 감정이 미세먼지, 코로나, 동북공정, 조선족, 중국의 친북 행보 등 후술하는 각종 이슈와 맞물리며 더욱 악화되었다.
거기에
2020년대를 기점으로 훨씬 노골화된 중국의
패권주의,
팽창주의적 행태와
홍콩 탄압 문제,
코로나19 펜데믹[10],
동북공정,
문화공정[11],
양산형 게임[12] 등이 쐐기를 박아 중국에 대한 인식이 더더욱 나빠지고 있으며,
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사드 보복) 조치,
CHIP4 등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은 사실상 적대 국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외교적으로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 중국 VS 일본▶💥: 청일전쟁과 21개조 요구, 중일전쟁 등으로 양국 간의 관계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2차 대전기 일본군이 중국 본토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도 양국 간의 관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후에 일본은 중국과는 절대 접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했으나[13] 1972년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수교했다.
1970~1980년대에는 중국과 일본은 이례적으로 좋은 관계를 누렸는데
6.25 전쟁 이후 내내
반공 스탠스를 유지하던
대한민국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친중적 행보로 일관하던
일본을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일수교 이후 중국 측에서 중국 내 진출한 일본 기업이 한국과 교류하는 것을 금지해서, 한국 기업이 피를 많이 봤다.
하지만 그 후 중국이 급성장하자
일본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결정적으로
센카쿠 열도 문제로 촉발된 2010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로 감정이 나빠졌다. 현재는 패권주의 성향을 보이는 중국에 맞서
중국위협론으로 세계를 무대로 한
반중 선동 및
미국,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외교를 통한 대(對)중국 포위망 형성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중국은 중국대로 일본의 이러한 행보와 역사적 이유, 영토 문제 등으로 일본을 고까워한다.
근래에는
한반도 정세에 따라 아베 정권이 중국에 간혹 추파를 던지기도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고, 근본적으로 이 두 나라는 각자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을 대표하는 지정학적 포지션, 진영 논리, 역사적 앙금, 그리고 정치 체제의 차이 때문에 관계가 가까워지기는 어렵다.
2.2. 영프독 ◁
말이 필요없는 중세부터 이어온 전통적인 앙숙관계. 한중일 관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유럽 쪽 사람들에게, 이 세 나라의 관계가 한중일 관계와 비슷하다고 하면 바로 이해한다는 말도 있다. 다만 21세기 국제정세 및 신냉전 시대의 안보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한중일 관계는 유럽으로 따지면 독일-러시아-폴란드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14]다만, 지금은 사이가 좋은 편이다. 한중일은 말 그대로 서로가 냉전에 가까운 사이인 반면 영프독은 한중일 관계에 비하면 단순한 지역 감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중일은 서로 감정 실어서 욕을 하는 것이고, 영프독은 친한 친구끼리 개드립치며 놀려대는 것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이야 피터지게 싸웠지만 2차 대전 때 서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동쪽에서 소련이 강성해지자 서로 힘을 합쳐야 된다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동구권의 경계에 선 독일이 다시 배신 때리기도 힘들어졌고, 미소양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관계회복의 계기가 되었다. 2010년대 후반에는 브렉시트 문제로 금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현재까지도 유로스타 등 국제열차를 잘 운행하는 등 항공기, 선박으로만 교류하고 있는 한중일 관계보단 낫다.
오랜 역사를 함께해온, 유서 깊은 앙숙. 많이 알려져 있듯
백 년 넘게 싸워댄 적이 있다. 그리고 몇백 년을 걸쳐 육지와 바다에서 서로를 털고 털린 관계.
파쇼다 사건으로 아프리카에서마저 충돌했고, 눈앞의 적인 독일 때문에 20세기부터는 협력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의외로 2차 대전 때도 서로 이를 가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할 당시, 프랑스가 보유한 군함들이 독일군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영국군이 동맹국인 프랑스의 전함들을 격침시켜버려 적잖은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군이 프랑스 식민지에 상륙할 당시 어떤 지역 지휘관은 일단은 독일에 항복한 현재의 프랑스 정부의 명령에 따라 저항하기도 했고, 어떤 지역 지휘관은 함께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연합군을 반갑게 맞아들이기도 했으며, 어떤 지역 지휘관은 미군이 상륙한다면 무저항이지만 아군에게 폭탄을 던지는 망할 영국놈들이 상륙한다면 결사항전을 하겠다는 태도를 비친 지휘관도 있었다. 현대에도 일단은 우방국[16]이지만, 정치적 이해관계부터 시덥잖은 루머까지 온갖 핑계를 들며 서로를 본능적으로 까며 심지어 사라지면 깔 대상이 없어 허전할 정도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현재도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를
까야 제맛인가 보다. 그런데
영국인인
디스크월드의 작가
테리 프래쳇이 인터뷰에서 한 얘기로는, 자신의
프랑스인 아내에게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전쟁을 시작하려면 얼마나 걸릴까?"라고 묻자 "20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때 2005년, 2012 하계올림픽 유치 때에도 런던과 파리 두 국가 수도간의 올림픽 유치경쟁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런던이 승리하였다.[17]
물론 현대의 이러한 대립 관계는 '
개구리나 먹는 놈들', '
이게 무슨 ㅈ같은 음식이야' 같은 느낌으로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친해진 상태고 우호적인 편이다. 영국인이 프랑스와 전쟁을 하자고 주장하거나 프랑스인이 영국에 전해준 문화 유산을 탈환하자거나 하는 소리를 하면 당장 자국인들에게도 정신나간 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애초에 서로
두 번 씩이나
세계대전을 벌이느라 유럽 전체를 말아먹을 뻔한 경험[18]이 있다보니
서유럽은 이웃나라를 함부로 증오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19]
-
영국 VS 독일
천 년 넘는 세월을 숱하게 치고 박던 나머지 두 경우와는 달리 영국과 독일은 20세기 이전에는 전쟁을 치른 적도 거의 없었고,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 족도 게르만 족이었는데다(특히 색슨족은 독일 북부 출신[20]), 독일계인 하노버 왕조, 작센 왕조가 영국으로 건너가 100년 넘게 영국의 군주를 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관계가 영불이나 불독 관계에 비하면 온건했다. 끽해야 진짜 제대로 치고박고 싸우긴 했는데 전쟁은 아닌 경우라면 아이작 뉴턴과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간의 미적분학 우선 발견 논쟁이 졸지에 영국과 독일 두 나라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 게 사실상 전부다. 그런데 두 번 세계대전을 치렀다. 그것도 적국으로. 제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앙숙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같은 편에 서서 두 번씩이나 독일과 전쟁을 치렀던 것. 그래도 2차 대전 이후로 이미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보니 앙금은 많이 가라앉은 편이다.
-
프랑스 VS 독일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 제국 시절 게르만족의 갈리아 침공부터 시작해서 1,2차 세계대전까지 수도 없이 싸웠다. 흔히 30년 전쟁 이후의 극심한 분열부터 프로이센 왕국 주도의 독일 통일 이전까지의 독일은 그야말로 프랑스의 빵셔틀이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 이전에는 독일이 당하기만 한 것으로 아는 경우도 있는데 파비아 전투에서 보듯 프랑스를 관광태운 적도 여러번 있었다. 물론 관광 몇번 당한거랑 아예 황제가 포로로 잡힌 것하고는 급이 다르긴 하다.[21]
프랑스가
나폴레옹 전쟁때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연합을 영혼까지 털어버리고 신성 로마 제국을 멸망시켰으며
라인 동맹으로 독일 대부분 지역을 속국화하였고, 독일은 근대 국가 성립 후
파리를
두
번 털었다. 1차 대전은 프랑스가 결과적으로 전승국이긴 했지만 독일군이 심하게 물고 늘어진 탓에 프랑스의 청년층 20~30%가 전사할 정도로 인구출혈을 야기했다. 또 거기에 프랑스-독일 국경 지역에 위치한
알자스-로렌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오랜 기간 영토 분쟁을 치렀다.[22][23][24]
다만 이런 악연도 이제 다 옛날 말인 것이, 유럽 내 민족주의가 절정이었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야 정말로 극악의 사이였지만
독일연방공화국의 수립 이후로 독일이 적극적인 친서방 외교정책, 그 중에서도 친프랑스 정책[25]을 펼쳤다. 현재는 영혼의 파트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당장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밀월관계를 빗대서 메르코지라는 신조어가 유행했을 정도이다. 단순히 외교관계뿐만이 아니라 양국 국민 사이의 감정도 많이 누그러든 상태다.[26][27][28]
2.3. 미국-캐나다-멕시코 ◁
이 항목도 참조.캐나다와 멕시코는 별 일 없이 괜찮은 관계이다.
- 미국 VS 멕시코: 19세기 중반에 멕시코 영토였던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텍사스, 유타 주, 네바다 등의 현재 미국이 영유하고 있는 서남부 지역 주들을 미국이 전쟁을 통해 가로챘다. 이 지역의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샌안토니오, 로스앤젤레스, 로스 앨러모스의 샌(San)과 로스(Los)로 시작하는 지명은 스페인/멕시코 땅이었을 때의 흔적이다. 이 때문에 멕시코 입장에서 그야말로 미국은 증오의 대상.
현재 미국은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나 살인범죄, 마약 밀수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동시에 멕시코를 범죄자, 살인자들이 사는 미개한 나라로 깔보고 있으며, 멕시코는 예전에 우리 땅 뺏어가서 발전한 작자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미국을 노골적으로 적대한다.
다만 멕시코는 현실적인 이유로 어쩔수 없이 친미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의 눈치도 엄청나게 보고 있다. 멕시코는 무역에서 수출/수입 모두 70% 넘게 미국에 의존한다. 또한 멕시코 내에서도 문제인 마약 카르텔 문제에 관해서는 양국이 협력중이며, 국민 감정도 항상 나쁜것도 아니다. 실제로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의료비가 저렴한 멕시코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가 꽤 있고,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가려고 난리를 치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사이가 마냥 나쁘기만 하다면 이 사실들을 가지고도 서로 물고 늘어져야만 하는데 그나마 후자는 미국의 일부 보수 쪽에서 물고 늘어지긴 해도 전자를 물고 늘어지는 멕시코인은 없다.
-
미국 VS 캐나다: 미국 VS 멕시코, 쿠바, 러시아 같이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정도는 아니고 민족, 종교, 언어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한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지만 사실 서로를 폭풍
디스해대는
사이다. 미국은 캐나다를 얼음덩어리에 북극곰 사는 촌동네로 인식하고 있으며 실제로 캐나다 하면 메이플 시럽과 북극곰, 아이스하키 정도밖에 생각 못 한다.
캐나다는 미국인들을 무식하고 뚱뚱한 양키놈들이라고 까대면서 조악한 의료보험과 조지 부시, 트럼프가 만든 온갖 빚더미와 혼돈을 까대며 저스틴 비버의 사건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미국: 캐나다 꺼야! 캐나다: 아니야! 미국 꺼야!" 라고 키배가 붙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
역사적으로도 영국령 캐나다군이 백악관을 불태운 적도 있고, 미국도 미국대로 캐나다 토론토까지 육박하는 등 은근히 투닥거려온 사이다. 참고로 이 두 나라의 관계는 이웃나라/좋은 사이에도 있다.
2.4.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문자 그대로 발칸 반도의 삼국지. 그리스와 세르비아는 역사적으로는 엄청 싸웠지만 현재는 괜찮은 관계이다.- 그리스 VS 불가리아: 발칸반도의 대표적인 국가들이고 같은 기독교 정교회를 믿는 정교권 국가들에 19세기까지 오늘날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게 식민지배를 당한 공통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언어적으로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없다.[29] 게다가 그리스를 지배했던 동로마 제국과 불가리아 제국은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수백년간 치고 박고 싸웠으며 동로마 황제의 머리를 도금해 술잔으로 사용한 불가리아, 불가리아 포로들의 눈을 뽑아 불가리아로 돌려보낸 동로마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불구 대천의 원수였다. 이후 양국 모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후 오스만 제국이 차지하던 발칸 반도 영토들을 놓고 발칸 전쟁을 치르는 등 서로 대립하였으며 제1,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국과 추축국으로 적국이 되어 서로 싸우기도 했고[30] 제2차 세계 대전 종전후 그리스는 미국 등 서방 세계 국가들의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고 불가리아는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냉전시대때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로 갈라져 이념적으로 대립하면서 아예 원수지간이 되었다. 그러나 1989년 냉전이 종식되고 불가리아가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 자본주의로 체제를 갈아타고 냉전 이후 힘을 키워가는 적국인 터키를 견제하고자 두 나라가 같이 군사훈련도 하고 협력하는 등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두 나라의 국가관계는 여전히 안 좋다... 심지어 축구에서도 라이벌 전이 벌어지며 같은 유럽연합의 회원국이면서도 발칸 반도의 지역 주도권을 놓고서 서로 대립한다. 게다가 불가리아는 그리스가 재정위기에 빠지자 부정부패와 무리한 유로존 가입으로 국가 경제를 말아먹은 그리스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 불가리아 VS 세르비아: 종교가 정교회에다 민족도 남슬라브족으로 같지만,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후 1885년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을 시작으로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 제2차 발칸 전쟁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까지 겪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쟁에서 패배한 불가리아의 땅을 뜯어 세르비아 영토에 흡수시킨 전례가 있다. 더욱이 2008년 2월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일방적인 독립을 선포하자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며 세르비아를 지지하는 척하다 약 한 달만인 2008년 3월 20일에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여 세르비아의 뒤통수를 갈겼다... 거기다가 같은 민족,종교적으로 같은 이웃나라들이지만 20세기 후반기에 불가리아는 냉전 붕괴되는 과정에서 공산당 독재 정권에서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로 체제를 전환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룩하는데도 성공하여 2007년에 유럽연합에도 가입한데 반해 세르비아는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분열,해체되던 과정에서 유고 슬라비아 주변국 들과 벌인 전쟁과 학살 행위로 대학살을 자행한 불량국가의 오명을 남기고 유럽연합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등[31] 동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서도 한 나라는 전쟁,학살국가로 한 나라는 경제적으로 가난하기는 해도 비교적 살기 좋은 국가로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이러한 20세기 말 탈냉전 과정에서 두 나라가 겪은 역사적인 행보 때문인지 불가리아 사람들은 세르비아를 멍청한 막장국가라고 비웃는다. 그러나 바다가 없는 내륙국인 세르비아의 입장에서 불가리아를 대놓고 적으로 돌릴 경우 흑해를 접한 불가리아를 통해서 바다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악감정은 있어도 세르비아는 불가리아와의 관계를 신경쓰는 편이다.
3. 대륙별
가나다순.3.1. 아시아
전술한 한중일을 뺀 나머지 아시아다.- 대한민국 VS 북한💥❌◆: 서로를 국가로 여길 생각조차도 안 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으며 왕래도 매우 어렵다. 이는 분단 당시 이 념 간의 대립으로 하나의 반도 속의 두 국가는 6.25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어 서로 간의 혐오 감정을 낳았으며, 이로 인해 지금도 군사적으로 대치 중이다. 그나마 냉전 종료 후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32] 서로 간의 정상회담을 열어 사이가 좋아지려 노력했지만 이마 저도 전부 오래 가지 못 했기 때문. 게다가 2020년대 들어서부터는 신냉전이 고조되며, 미래는 불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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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VS 시리아💥: 사이가 몹시 안 좋다. 현재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레바논 동부 내륙 지역의 영토들은 원래 레바논 땅이 아닌 시리아의 영토였었다. 그러나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에 의해 이들 지역들이 레바논에게 넘어가면서 레바논 땅이 되면서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독립 후 이들 지역을 자국의 영토라고 여기던 시리아와 이들 지역을 실효지배하던 레바논 사이에 영토 갈등이 불거졌고 1970년대 레바논 내전 발발 직후 시리아가 레바논에 시리아군을 주둔시키고 내정간섭을 행하면서 레바논인들의 시리아에 대한 반감은 매우 커졌다. 거기에 애초에 레바논은 팔레스타인과 함께 전통적으로 시리아로 분류되었고, 레바논이 시리아와 다른 별개의 국가가 되리라고 여겼던 레바논 사람들은 없었다. 시리아 입장에서 레바논은 역사적으로도 하나였고 작은 나라니까 만만해서 건드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 말레이시아 VS 인도네시아💥: 종교도 같은 이슬람을 믿고 언어도 비슷한데도[33] 워낙 사이 나쁜 나라들이다. 1960년대 보르네오섬에서 전쟁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싸운 적도 있었고, 1965년에는 말레이시아가 UN 비상임이사국이 되자 인도네시아가 항의 차원에서 탈퇴를 했다가[34] 다시 복귀한 일도 있었다. 전통 무용이나 음식, 옷감 염색 방식 등을 놓고 원조전쟁까지 벌인 사이. 단순 국력에서는 인도네시아가 우세하다. 일단 인구수에서 9배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당 국민 소득으로 따지면 말레이시아가 거의 3배 가량 높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에 허드렛일하러 건너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불법체류자도 발생하기 마련인데, 말레이시아에서는 불법체류자를 태형에 처하므로 이런 가혹한 처벌도 당연히 가뜩이나 악화된 양국간의 감정을 더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35]
- 북한 VS 일본❌◆: 과거사 문제를 비롯하여 납북 일본인 문제, 북한의 대일 도발 등 정치적 갈등이 겹치기 때문에 한국 이상으로 관계가 매우 좋지 않다. 애초에 일본은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지도 않고 있다.
- 중국 VS 몽골: 과거 몽골이 몽골 제국 후에 원나라로 중국을 지배한 적이 있었으며[36] 이후 명나라에 의해 중국에서 쫓겨나지만 명나라가 약해지는 틈을 타 다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내몽골은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37]에게 정복당했으며 지금의 몽골인 외몽골도 건륭제가 준가르를 멸망시켜 반 독립 상태로 복속되었다가 20세기 들어 적백내전에서 승리한 소련을 대동한 수흐바타르 장군에 의해 독립을 쟁취하고 후금 시절부터 중국과 호흡을 같이 해온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가 된다. 냉전 시대에는 겉으로는 같은 공산국가 동지로써 잘 지냈지만 그 이면에는 몽골은 중국과 대립하고 소련이랑 밀착했던 면이 있고[38], 냉전 체제 몰락후 내몽골자치구를 놓고 중국과 사이가 상당히 안 좋아졌으며[39] 역사적인 구원 때문에 몽골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을 호자[40]라고 부르며 혐오한다. 물론 내몽골의 몽골인도 한족과 대립하는 입장이지만 독립 의사는 없으며 외몽골인을 더 안좋아한다. 내몽골인은 차하르, 외몽골인은 할하 부족으로 내몽골인은 칭기즈 칸 혈통의 자부심이 있어 외몽골 할하인을 깔보며 할하인은 차하르인을 중국 앞잡이 정도로 생각하고 역시 깔본다. 역사적으로는 칭기즈 칸이 같은 몽골인인 할하 족을 몰살한 적도 있는 등 수틀릴 대로 수틀린 관계다. 여기에 몽골은 민주화 이후 미국과의 연대도 강화하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속이 탈 노릇이다.
- 미얀마 VS 방글라데시: 현재 방글라데시-미얀마 국경 지대 미얀마 영토인 라카인 주 북부의 나프 강(Naf River) 유역 이남 지역에는 로힝야라는 인도계 벵골인 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지로 합병하면서 이들을 전부 미얀마 토착민들의 영국에 대한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중간 관리 역할로 활용하여 영국 식민 당국을 등에 업고 미얀마인들을 탄압하면서 미얀마인들의 증오를 샀고, 1948년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자 미얀마 정부가 이들에 대한 탄압과 학살, 박해를 자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얀마 정부의 잔혹한 탄압을 견디다 못한 로힝야족들도 아예 미얀마로부터 분리독립해서 로힝야 독립국가를 세우겠다고 분리주의 반군 단체들을 결성해 미얀마군에게 저항하였고 결국 미얀마군과 로힝야 반군 간 충돌과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탄압이 더더욱 강화되면서 로힝야족들 대부분이 난민이 되어 미얀마를 탈출하여 방글라데시로 대거 밀려 들어오는 통에 방글라데시와 미얀마는 로힝야족으로 인해서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 미얀마는 이들 로힝야족이 원래 미얀마 일대에서 살던 토착 소수민족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 시절 방글라데시 지역에서 미얀마로 이주해온 불법 밀입국자라고 주장하며[41] 전부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한다며 방글라데시가 로힝야족 반군 지원을 통해서 라카인 주 영토 일부를 분할, 강탈하여 로힝야 독립국가를 세워 괴뢰국화하거나 아예 방글라데시에 강제합병하려고 한다며 방글라데시를 비난하고 있고, 방글라데시는 로힝야의 분리독립을 지원하지 않는다, 자국내 로힝야 족 난민 전부 방글라데시 국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전부 로힝야 난민들을 미얀마로 송환하겠다, 미얀마는 로힝야에 대한 탄압 중단하고 로힝야 난민들을 만들어내지 마라며 미얀마의 로힝야 탄압과 모국에 대한 일방적인 비방과 의심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 미얀마 VS 중국: 사실 사이가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미얀마와 중국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실제로는 그리 사이가 좋지만은 않다. 군사정권 시기 중국이 미얀마 군사 정권을 지원하여 미얀마 군정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억누르는 것을 방조하기도 했었고, 역사적으로도 중국의 이민족 정복 왕조인 원나라와 청나라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는데 특히 원나라의 경우 미얀마의 버간 왕조를 멸망시키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후에 중국이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부의 편을 들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반중감정이 악화되기도 했다.
- 미얀마 VS 태국: 캄보디아와 라오스, 말레이시아 등 태국의 다른 동남아시아 이웃나라들은 과거 태국 역대 왕조들에게 유린, 지배당했었지만, 미얀마는 오히려 태국 일대를 지배하던 아유타야 왕조를 멸망시키고 태국 북부 지역을 파괴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태국이 수도를 북부 내륙 지역의 아유타야를 버리고 중부 해안 지대인 방콕으로 수도이전을 한 것도 미얀마군의 잦은 침략으로부터 대응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도 있다.[42] 게다가 미얀마는 2016년 태국에서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이 서거했을 당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은 대통령이나 국왕, 총리가 푸미폰 태국 국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푸미폰 국왕의 서거에 애도를 표할 때도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고 틴 초 미얀마 대통령과 아웅산 수치 국가 자문역 등 미얀마의 정치권 지도자들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치가, 국가원수들과 달리 푸미폰 태국 국왕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43]
- 베트남 VS 태국◆: 육상 국경은 없지만 타이 만에 해상 경계가 있으며, 라오스, 캄보디아 너머로 지정학적인 거리가 가깝다. 양국도 오랜 숙적으로 응우웬 씨 왕조와 아유타야의 대립, 더 나아가 초기 베트남의 독립시절 베트남과 수코타이 왕조의 갈등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오스 및 캄보디아의 종주권을 둘러싸고 자주 치고 박고 싸웠고, 덕분에 캄보디아는 황폐화되었다. 현재도 베트남이 중국과 영해 분쟁을 일으키면 태국은 노골적으로 중국 편을 든다. 그리고 베트남인은 태국 입국 시 까다로운 심사를 받으며 베트남도 이에 대한 보복으로 태국인에 대해 까다롭게 심사한다. 베트남은 태국과 말레이시아 둘 다 싫어해서 태국, 말레이시아와 앙숙관계에 있는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다른 동남아시아 먼 나라들과 친하게 지내 두 나라를 견제하려고 시도한다.[44]
- 바레인 VS 카타르: 본래는 영국의 중동 식민지였으나 1971년 왕정국가로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독립 후 카타르와 인접한 하와르 섬을 놓고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바레인은 하와르 제도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카타르는 하와르가 지리적으로 카타르와 가깝다는 이유로 카타르의 땅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국제사법재판소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갔지만 국제사법재판소는 바레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여전히 바레인보다는 카타르와 더 가까워 하와르를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카타르는 바레인 왕실 부조리 등을 카타르 국영 방송사인 알 자지라를 통해 심심할 때마다 비난하며, 2017년 사우디 주도의 카타르 보복 사태에서도 바레인은 사우디의 편을 들며 카타르 말려죽이기에 앞장섰다.
- 베트남 VS 캄보디아: 가히 동남아판 한일관계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45], 베트남인들의 남진 과정에서 과거 캄보디아의 영역이었던 사이공 등 지금의 남베트남 땅 대부분을 베트남에 의해 빼앗기기도 했었고, 또 1979년에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무력 침공해 크메르 루주 공산 정권을 전복시키고 친베트남 괴뢰 국가를 캄보디아에 세운 적도 있었다.
- 부탄 VS 중국💥❌◆: 부탄의 상국이었던 티베트가 중국에 병합된 이후 부탄은 중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정치적으로 반중, 친인도 국가가 되었다. 현재도 부탄은 중국과 인접해있음에도 중국 식당을 찾기가 매우 힘든 나라인데다가[46] 중국인의 입국이 매우 까다로우며 중국인의 이민은 일체 금지되었다. 나아가 양국은 아예 수교조차 하지 않았다.[47]
- 사우디아라비아 VS 이란💥: 실질 육지 국경과 접해있는 이라크-이란 관계와는 다르게 육지 국경을 맞닿아 있지는 않지만,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거리가 가깝다. 양국은 매우 적대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와하브파의 종주국으로서, 이란은 시아파 12이맘파의 종주국으로서 중동 지역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 사우디와 이란은 이란 혁명 이전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혁명 이후 이란이 시아파 신정 국가가 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다.[48] #1 #2 #3 #4 #5 #6 사우디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앙숙인 이스라엘과 몰래 교류하였다. 2016년에 단교되었다가 2023년 중국의 중재로 재수교하면서 예멘 내전을 휴전 하겠다고 했으나 서로 휴전 합의를 파기하면서 아무런 진전도 없다보니 사실상 수교만 한 것일 뿐이고 다시 사이가 틀어졌다.
- 사우디아라비아 VS 이스라엘❌◆◁: 이 쪽도 육지 국경과 접해있지 않으나, 아카바 만과 요르단을 사이에 두고 거리가 가깝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의 종주국답게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이며 이스라엘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양국은 친미국가에다 이란을 적대한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이란 문제에 대해서는 공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며 최근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수교 합의를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 사우디아라비아 VS 쿠웨이트: 페르시아 만 해역의 섬 2개를 놓고 영유권 분쟁이 현재 진행중이다. 실질적으론 쿠웨이트가 지배하고는 있지만 막상 영유권 분쟁이 무력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 군사력 전력차에 있어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상당히 월등한 편이다. 심지어 쿠웨이트는 사우디 주도의 카타르 단교사태때도 카타르 단교에 동참하지 않으며 카타르를 지지했다.[49]
- 아르메니아 VS 아제르바이잔💥❌◆: 엄청난 앙숙지간으로 러시아 제국의 멸망 후 두 나라는 1918년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영유권을 가지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을 벌였으며 두 나라 모두 과거 소련의 공화국(SSR)이었던 시절부터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두고 갈등하다가 소련이 해체하기 전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 발발했고 1991년 소련 해체로 독립한 이후까지 아르메니아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고르노 카라바흐와 그 일대 지역을 둘러싼 영토 분쟁으로 대립하는 중이다. 서로 종교도 다르고[50], 사이가 너무 나빠서 유로 챔피언십 축구경기 같은 국제 행사에서도 서로의 홈에는 가지를 않아 경기를 못하며[51],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투표할 때도 2008년 이래로 서로 최하점을 주고받는다. 심지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두 민족 다 고유 종교가 특히 민족정 정체성에 큰 영향을 발휘하는 나라라 아르메니아 쪽에서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이슬람 모스크와 유적들을 싸그리 밀어버렸고, 아제르바이잔 쪽에서는 아르메니아 국경 지역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수백년 된 유서 깊은 교회들과 수도원들을 죄다 박살내고 군대 사격장으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 4월에는 양측이 서로 국경분쟁을 벌여 서로 수백여명 사상자를 냈으며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군 전사자 목을 잘라 이걸 당당하게 웹상으로 사진을 올리기까지 했다가 국제적 비난으로 삭제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리고 2020년 9월에도 양국 간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다만 아르차흐가 멸망하고 난 이후 최근에는 그나마 관개 개선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 아제르바이잔 VS 이란💥❌◆: 아제르바이잔은 이스라엘, 튀르키예와 우호적이고, 이란은 중국, 러시아, 아르메니아와 우호적이다. 그리고 튀르키예의 영향을 받아 세속주의가 강한 아제르바이잔과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극단주의의 온상인 이란은 적대 관계이다. 이란은 남 아제르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보니 아제르인들의 독립 및 아제르바이잔으로의 편입할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어, 서로 경계하고 있다.
- 요르단 VS 시리아: 서로 국경을 접한 중동의 아랍 국가들이고, 이스라엘과의 중동 전쟁에서 아랍 연합군의 일원으로 이스라엘과 싸우기도 했었지만 두 나라의 사이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데 영국과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에서 독립국으로 독립할 당시 요르단은 하심 왕가 통치하의 군주국으로 독립하고, 시리아는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이후 양국의 정치 체제가 갈렸고, 1970년 검은 9월 사태에서 시리아가 요르단 정부를 상대로 내전을 일으킨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지원하면서 사이가 냉각됐고,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당시에는 요르단이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퇴진을 주장하며 남부동맹 등 시리아 반군 단체들을 지원하고,[52]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대거 요르단으로 몰려들면서 양국관계가 아주 나빠졌다. 애초에 요르단은 친미국가고, 시리아는 반미, 반서방을 주장하는 국가이다.
- 아프가니스탄 VS 파키스탄: 인도와 파키스탄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도 사이가 몹시 앙숙이다. 그나마 종교적으로 힌두교와 이슬람으로 종교적 차이가 상이한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와 달리[53] 종교적으로 같은 이슬람을 믿는 이슬람권 국가이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가히 앙숙이다. 현재 파키스탄이 차지하고 있는 발루치스탄 등 파키스탄의 서부 해안 지역은 원래는 아프가니스탄의 영역이었지만 국경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고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영국의 외교관이었던 듀랜드가 듀랜드 라인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영토를 200km에 달하는 내륙 영토로 줄이고 본토보다 더 많은 아프간 쪽 아프간 영토 3분의 1과 발루치스탄 지역을 옆동네의 식민지령 국가였던 파키스탄에 귀속시키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가가 되어버렸고 이 때문인지 본래 자국 영토였던 곳을 옛날 영국의 끄나풀이었던 파키스탄이 삼켰다고 파키스탄과는 몹시 사이가 나쁘다. 게다가 현재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 반군 단체인 탈레반 문제를 놓고서도 갈등이 심한데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정권의 폭정을 지원, 방조하고 뒤에서 내전을 선동하는 악질 국가라며 파키스탄을 비난하고 있으며[54] 파키스탄은 툭하면 우리 땅에서 테러, 학살 등 행패부리는 탈레반들이나 단속하라고 아프가니스탄을 비판한다.[55] 지금이야 내전과 내분으로 혼란한 상황이지만 만약 아프가니스탄이 국가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는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파키스탄과 앙숙인 인도와 손을 잡고 파키스탄을 양면에서 견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 오만 VS 아랍에미리트: 같은 아랍어권, 이슬람 문화권의 중동 국가들이지만 국경, 영토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다. 현재 오만 본토 지역과 단절되어 있는 무산담 반도와 내륙도시 마다 시등 오만의 소규모 월경지 영토들은 본래 오만보다 아랍에미리트 쪽과 더 지리적으로 더 가까웠으나 두 나라가 영국 통치령이었던 시절 영국이 이들 지역을 오만에 편입시켰고, 오만이 1951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오만 땅이 되었다. 하지만 아랍 에미리트도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면서 원래 무산담과 마다는 원래 우리나라 영토였다며 오만과 영토문제로 대립하였으나 오만은 지리적 요충지에 가까웠던 무산담의 반환을 거부하면서 대립이 심해졌고 오만이 차지하고 있는 격리된 월경지 영토 두곳 뿐만 아니라 본토의 국경 영토를 놓고 오만과 아랍 에미리트는 국경 분쟁을 빚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2003년에 두 나라가 영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하면서 오만-아랍 에미리트 북부 국경 지역의 영토 일부을 정식 국경선으로 인정하고, 월경지인 무산담 반도 지역을 오만 영토로 인정하면서 어느정도 분쟁을 해결하였으나 아직 다른 지역의 국경 설정 범위를 놓고 두 나라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두 나라는 아직까지 국경을 제대로 획정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몆몆 세계 지도에서는 오만과 아랍 에미리트의 국경 지역이 점선 내지 분쟁 지역으로 그려진 지도들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는 아랍에미리트 영토 안에 갇혀 있는 오만의 월경지 내륙 영토인 마다 시의 내부에 나흐와라는 조그마한 아랍에미리트의 월경지 영토가 존재하고 있어 마다와 나흐와 등 내륙 월경지들을 둘러싼 두 나라의 영토 갈등도 있다. 게다가 과거 오만이 아라비아 반도와 인도양 일대에서 이슬람 세계의 강국으로 떨치던 시절 오만 왕조에게 지배와 침략, 간섭을 받아 오는 등 영토 문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아랍에미리트 국민들의 오만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못하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카타르 단교사태때 사우디아라비아가 카타르에 대한 경제봉쇄와 외교단절 등 보복을 가하자 아랍에미리트의 사우디의 편을 들어 카타르 단교에 동참하는가 하면, 오만은 카타르와 국교관계를 유지하며 사우디 주도의 카타르 보복에 불참하여 카타르를 지지했다.
- 예멘 VS 오만: 오만은 또한 예멘과도 사이가 안좋다. 아라비아 해에 위치한 쿠리야무리야 제도를 두고 영토 갈등을 빚기도 했으며,[56] 2014년 예멘 내전에서 오만이 후티 반군을 비공식적으로 도와서 후티와의 관계는 좋으나, 예멘 정부와의 사이는 더 나빠졌다.
- 우즈베키스탄 VS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의 맹주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 사실 이 두 나라는 1991년 이전까지만 해도 나란히 같은 소련의 한 지역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이 훨씬 발전된 지역이었다. 타슈켄트는 소련 중앙아시아의 중심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였고 인구도 많고 소득도 높았다. 그러나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이 막장 독재국가가 된 반면 카자흐스탄은 (물론 이쪽도 독재자가 통치하지만)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기 때문에 지위가 역전되었다. 현재 소득수준에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카자흐인은 우즈벡인을 농사짓는 촌놈이라고 욕하고 음흉하고 거짓말 잘하는 장사꾼 사기꾼이라고 한다. 그리고 4촌간의 결혼이 가능하기 때문에 근친상간에 의한 바보들만 산다고 극단적으로 깐다. 카자흐스탄은 위로 7대까지 혈연이 없어야 결혼 가능. 우즈벡은 카작을 유목민이라 대인관계시에 오늘보고 내일 안볼 사람이라는 마인드라 거짓말을 쉽게하고 사기 잘치고 거짓말이 들통나도 죄책감 이 없다고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곤 한다. 인구 백만을 헤아리는 카자흐스탄 3의 도시 쉼켄트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와 가깝고 우즈벡족이 많이 산다고 해서 서북쪽 카자흐인들은 대놓고 무시한다. 영화 보랏에서 괜히 까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 경쟁의식도 있고 생김새를 보면 민족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우즈벡은 페르시아인이 많이 섞여 반쯤은 백인 같고 순수 돌궐 후손인 카자흐는 덜 섞여서 전형적인 동양인의 얼굴이다.[57] 영토는 카자흐스탄이 훨씬 크지만 인구는 우즈베키스탄이 많다.(카자흐스탄 1,900만, 우즈베키스탄 3,400만 정도) 다만 과거 소련 시절에는 우즈베키스탄에 일자리가 많았고 평균 소득도 높았다. 비록 사이가 좋지 않기는 하지만 아래 후술할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보단 훨씬 국민 감정도 좋다.
- 우즈베키스탄 VS 키르기스스탄: 소련에 의해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 때문에 키르기스스탄 남부에는 우즈벡인이 많이 거주하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생활 수준이 높은 우즈벡인과 키르기스인의 대립으로 분쟁이 일어났고 양국 간의 사이가 극단적으로 악화되었다.
- 우즈베키스탄 VS 타지키스탄: 소련 시절, 소련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이 민족 분포는 고려하지 않고 인구 분포만 생각하여 공화국들의 국경선을 일방적으로 그렸고 결국, 이로 인해 타지크인들이 살던 땅이 우즈베키스탄 땅이 되었고, 반대로 우즈베크인들이 살던 땅이 타지키스탄 땅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민족 갈등으로 이어진 것은 물론, 1991년 소련 해체 과정에서 독립 후 국경, 영토 분쟁으로도 이어져서 지금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서로 사이 좋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실제로 타지키스탄 북부 지역의 우즈베크인들은 한 때 우즈베키스탄과 합병을 하겠다고 주장한 적도 있었고 반대로 타지키스탄은 사마르칸트 등 우즈베키스탄 남부를 과거에 타지키스탄의 영토라고 생각한다.
- 이라크 VS 이란💥: 중동 서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적대 관계를 자랑한다.[58]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 세계에서 가장 일찍 문명을 꽃피웠는데, BC 4000여년 때부터 이란 산악지대의 엘람 문명인들과 서로 적대 관계였다. 이후 이라크는 지금의 이란 땅을 기반으로 제국을 세운 페르시아에 흡수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원한의 싹을 틔우게 되고, 같은 이슬람 영향권에 놓이면서도 줄곧 주변 제국에 병합당한 이라크와 달리 이란은 페르시아라는 민족적 자신감에 바탕한 독립 세력을 유지하여 역사적 노선이 판이하게 다른 편. 좀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란인들은 이슬람을 믿으면서도 아랍인들이 쳐들어와서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한' 일에 대한 민족적 분노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게다가 이란은 골수 시아파여서 이웃 이라크의 수니파를 눈엣가시로 삼았으며 국경선의 샤트 알 아랍강을 놓고 영토 분쟁까지 벌어졌다. 이렇게 계속 쌓여가던 양국의 악감정은 1980년 두 나라간 전쟁으로 폭발하여 100만 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낳았으며 이라크는 생화학 무기를 풀어 이란을 지원하던 수많은 쿠르드족을 학살하기도 했다.[59]
- 이라크 VS 쿠웨이트💥◆: 언어, 문화적으로 비슷한 아랍계열 국가들이지만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일어난 걸프 전쟁으로 인해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다. 민족, 언어로 다르고, 역사적으로도 갈등의 뿌리가 오래된 이란-이라크 관계보다 더 앙숙인 것이 이 쪽은 같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쿠웨이트 정부에서 이라크 국민의 자국 입국조차 금지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걸프 전쟁 당시 전쟁 피해 배상금을 이라크가 쿠웨이트 정부에게 지급하며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 이스라엘 VS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모두 💥❌, 이집트와 요르단 제외 ◆[60]):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 중동 아랍 국가들은 전부 이스라엘의 적성국으로 간주된다. 게다가 심지어는 이라크,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리비아, 튀니지 등 국경을 접하지 않은 다른 아랍 세계 국가들도 이스라엘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이들 사이에는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이래 4차례씩이나 중동전쟁이 발생했으며 전부 이스라엘이라고 쓰고 미국이라고 읽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그나마 이집트와 요르단과의 관계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고 포기한 대신 두 나라가 이스라엘을 정식국가로 인정하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레바논, 시리아는 여전히 험악해서 현재까지도 서로 전투기 폭격하고 미사일 쏘고 서로 매일 같이 전쟁급으로 싸우고 있다. 게다가 레바논, 시리아는 현재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이웃 아랍 국가들의 공격에 대비해 비공식적으로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시리아는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IS와 시리아 반군들과 전쟁하는 통에 예전처럼 이스라엘에 신경쓰지 못 한다.
- 이란 VS 파키스탄💥▶: 파키스탄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에 외국인 노동자를 보내고,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는 이란과 관계가 좋지 않다. 그런데다 세속적인 파키스탄 동부에 있는 이슬라마바드, 펀자브, 신드를 중심으로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시각도 좋지 않고, 국경 분쟁도 있다. 최근에는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갈등이 있었고, 급기야 전쟁까지 발생했다.
- 인도 VS 중국💥: 카슈미르 분쟁을 두고 종종 군사 충돌이 벌어질 정도로 양국의 관계가 좋지 않다. 카슈미르 지역이나 인도 점령지 아루나찰프라데시 국경분쟁도 원인이고 티베트 독립 문제도 원인으로 이 두 나라는 서로가 서로의 훼방을 놓는 사이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과 더불어 갈등을 빚고 있는 사이이며 티베트 문제는 티베트의 망명정부를 인도에서 마련해줘 티베트 독립 운동을 지원했다. 게다가 인도 최대 숙적인 파키스탄은 인도와 핵개발 경쟁을 벌인 후 중국과 손을 잡았다.. 이후 코로나19로 반중감정이 커진 인도는 2020년 6월 16일 2020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이 발생해 관계가 더욱 악화됐으며, 아에 인도에서 중국산 불매운동이 발발했다.
- 인도 VS 파키스탄💥: 힌두교 VS 이슬람이라는 서로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다신교와 일신교 사이의 종교 문제로 인해 영국의 식민지배가 종식된 이후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열되었고, 카슈미르와 타르사막, 동파키스탄에서 세번씩이나 전쟁을 벌였으며 미국, 영국, UN 등 국제 사회의 반발을 무시하고 핵무기 개발도 강행했다. 워낙 유명한 앙숙이라 항상 국제적인 이목을 끌고 있다.
- 인도 VS 방글라데시◁: 아래의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에 비해 그리 유명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쪽도) 정치적, 외교적으로 앙숙이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이 독립할 수 있도록 인도가 지원해줬으나 독립 이후 영토 문제, 종교 문제 등으로 대립하면서 관계가 많이 악화되었고 1979년과 2001년에는 국경 지역에서 양국 군인끼리 무력 충돌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는 먼 나라이자 옛 지배국인 파키스탄에 더 이를 갈고, 서로 갈등이 있다 해도 인도랑 외교, 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기에 함부로 맞서고자 하지 않는데다가 인도 역시 방글라데시와 우호적으로 지내려고 하기에 2015년 방글라데시와 인도가 양쪽에 속했던 마을들을 각각 인도와 방글라데시로 반환하면서 국경문제도 해결되었고 영토 분쟁도 해결되었다. 또한 현 집권당인 아와미연맹도 친인도 성향이 있어 인도에게 우호적이다. 하지만 국력상으로 인도가 더 강대하고 경제적으로 더 잘사는지라[61] 경제적으로 가난한 빈국인 방글라데시인들은 인도에서 차별받는 편이며 일부는 인도에서 불법 체류와 범죄 등 사회 문제를 야기하기에 양국간 국민 감정은 별로 좋지 않다.
- 인도 VS 네팔: 종교적으로도 서로 비슷한 힌두교권 국가들이지만 히말라야 산맥 인근 인도-네팔 국경 지대의 자그마한 영토인 칼라파니와 나머지 국경 지역에 위치한 영토 2곳의 영유권을 놓고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네팔 사람들 상당수가 잘 사는 인도에 와서 일을 하러가지만 이들이 인도에서 받는 대우는 아주 최악인데 엄청 낮은 월급에, 그마저도 안 주기도 하며, 게다가 구타와 폭력, 사기에 휘말리거나 인도 현지인들에게 맞아 죽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거기다 네팔은 힌두교를 믿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와 종교적으로 앙숙지간인 이슬람교를 믿는 이슬람 국가이자 힌두교 국가인 인도와 견원지간인 파키스탄과는 사이가 좋다.
- 중국 VS 베트남💥: 같은 유교 국가에 한자 문화권에 공산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늘 엇박자를 보이는 관계. 역사적으로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 가장 격렬한 저항을 보였고, 심지어 몽골까지 격퇴한 전적이 있기에 중국에 대한 한 동남아의 방파제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래도 베트남전 와중엔 중국이 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물자를 원조해주는가 싶더니 미국과의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중월전쟁으로 충돌, 양국이 우호적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관계임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결국 2014년 5월 중국에서 베트남 국경에 원유 시추선을 설치하면서 이에 반발하여 베트남에서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일어나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때는 박터지게 싸우던 미국, 호주, 한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내고 마찬가지로 중국과 사이 안좋기로 유명한 강대국인 인도에게 군사 훈련을 부탁할 정도. 베트남인은 홍콩인에게 동족 의식이 있는데 이는 홍콩이나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하이난성은 원래 남월의 영토로 북부 베트남과 같은 나라여서이다. 지금도 몇몇 베트남 극우들은 광동 및 광서를 중국에 빼앗긴 땅이라고 여기며 고토 회복을 주장한다. 그래서 우산 혁명 및 남중국해 분쟁으로 중국이 홍콩/베트남과 갈등을 빚자 베트남 극우들이 군대를 보내 홍콩을 독립시키자는 주장도 하였다. 다만 현실적으로 베트남의 국력이 훨씬 열세이고 광동인들과 베트남인 사이에는 동족 의식이 없다.[62]
- 중국 VS 필리핀💥: 2012년 필리핀 서부지역에 있는 섬 지역인 스카버러 섬을 두고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중국은 이 섬을 황옌다오라고 부르며 필리핀을 자극하면서 결국에는 중국이 필리핀산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 수입을 금지시키고 국민감정으로도 악화되어 필리핀에서 반중 감정이 일어났다. 게다가 2012년 7월 4일 필리핀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한 기자가 "미국에 대한 지원 요청을 놓고 중국 언론이 도발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어떻게 보는가?"라고 묻자 중국계 출신의 대변인 라시르에다가 "중국에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샤오신이뎬([ruby(小心, ruby=xiǎoxīn)][ruby(一点, ruby=yìdiǎn)]; 조심해라)"라고 말해버린 것. #
이로 인해
중국에서도 반(反)
필리핀 운동이 격화되어 중국 정부가 중국인들의 필리핀 방문 및 여행을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여기에
필리핀이
미국에
군사 기지를 제공하여
중국을 자극했다.
- 카타르 VS 사우디아라비아💥: 1992년에 국경 지역에서 무력 충돌도 벌였었고, 2017년에 있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카타르 보복 정책으로 인해 사이가 매우 나쁘다. 실제로도 카타르는 국영 방송사 알자지라를 통해서 사우디가 중동에서 깡패짓을 저지르다 싶으면 비난하기도 한다. 결국 사우디 주도의 카타르 보복 조치는 초반에 사우디의 보복에서 밀리던 카타르가 석유/가스 등 애너지 자원 채굴 중심의 광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산업분야를 다각화하면서 외교 단절과 경제봉쇄를 통한 카타르에 대한 사우디의 보복은 완전히 실패하였고, 2021년 미국과 쿠웨이트의 중재와 압박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한 발 물러서며 봉쇄를 해체하고 단절되었던 국교를 재개하면서 단교 사태를 둘러싼 양국간 갈등은 사우디의 카타르 보복이 단행된지 약 4년만에 종료되었지만 이 사태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카타르 국민들의 감정은 몹시 안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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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VS
라오스: 언어도 민족도 비슷하고 같은 불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라오스는 태국으로부터 침략과 약탈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우리나라는 식민지배도 받은 적도 없는데 저쪽은 프랑스 애들한테 식민 지배 당해서 꼴좋다는 패드립을 불사하는 바람에 사이가 나빠지기도 하였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주변국한테 혹시 이와 같이 나올까?
- 태국 VS 말레이시아: 현재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해 있는 태국 남동부 나라티왓과 얄라, 빠타니 지역은 태국에게 정복당하기 이전 이슬람교를 믿는 말레이계 민족들이 대다수를 이루던 지역이었다. 근데 이 지역들을 태국이 무력으로 침략하여 태국 땅으로 만들어버렸고, 태국 정부의 통치에 저항하는 말레이계 지역들에 대해 차별, 억압, 인권 탄압을 벌여서 말레이시아와는 사이가 무척 나쁘다. 태국 측은 이런 소요가 말레이시아의 지원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고, 말레이시아는 태국이 무슬림들의 학살로 국내 문제를 덮는 행각을 지적한다. 당연히 국경선에서 총질도 종종 벌어진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는 태국과는 앙숙관계에 있는 미얀마나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다른 태국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태국을 견제한다. 또한 태국과 미얀마/캄보디아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 말레이는 미얀마와 캄보디아의 편을 들며 태국을 비난한다. 14번째 주 문서 참조.
- 태국 VS 캄보디아: 이 두 나라는 과거에도 국경 분쟁으로 갈등을 빚었으며 유적 문화재 앙코르와트 영유권 분쟁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63] 또한 쁘레어 비히어(Preah Vihear) 사원을 두고도 교전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옛 수도 시엄리업(Siem Reap)의 뜻은 대놓고 '시암(태국) 격파의 땅'이다. 게다가 군사 쿠데타로 실권한 태국의 딱신 전 수상이 캄보디아로 망명하자 이에 태국 정부가 딱신을 내놓으라고 딱신 전 수상을 숨겨준 캄보디아를 비난하기까지 하는 등 딱신의 처리 문제를 놓고 양국이 갈등을 빚었다.
3.2. 유럽
영프독, 그리스-불가리아-세르비아를 뺀 나머지 유럽이다.-
그리스 VS 북마케도니아◁: 1991년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 과정에서 마케도니아가 유고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에
마케도니아의 국명을 가지고 남쪽의 이웃나라인 그리스와 대립했다. 특히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독립 당시
국기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유인 즉 마케도니아의 국기에 그려져 있는 빨간 바탕에 금빛 햇살 무늬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무늬를 본뜬 것이라며 인정 불가를 내세웠기 때문. 그 때문에 국기 수정을 요구함에 따라 결국
마케도니아가 이를 받아들여 국기의 햇살 무늬를 일부 수정하기도 했으나 국호 문제에서 만큼은 그리스와 양보하지 않으면서 갈등이 격화되었다. 그러다가 2018년 6월 17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조란 자에프 마케도니아 총리가 양국의 국경지대인 프레스파에서 국명 변경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기나긴 국명 분쟁 역사를 끝내는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2019년 1월 11일 마케도니아 의회가 국명을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변경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1월 25일 그리스 의회에서도 이를 인준함으로써 마침내 양국 사이의 국명 분쟁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마케도니아는 2019년 2월 12일자로 새 헌법을 발효시키며 공식적으로 국명을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변경하였으며, 그리스 측도 북마케도니아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가입 신청에 대한 안건을 의회에서 인준함과 동시에 향후 북마케도니아의
유럽 연합(EU) 가입도 막지 않기로 하였다.
제1차,
제2차 세계 대전,
유고슬라비아 전쟁,
코소보 전쟁 등으로 20세기 내내 피로 얼룩졌던
발칸반도에서 모처럼 만에 평화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여 양국의 총리들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다만 그리스와 국호 문제로 오랫동안 대립해온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 일반 북마케도니아 국민들 사이에선 그리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으며 대표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을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제우스,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라, 아레스 등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익히 잘 알려진 그리스 식 이름이 아닌 유피테르, 디아나, 미네르바, 유노, 마르스 같은 로마 식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할 정도로 그리스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안 좋다고 한다.[64]
- 그리스 VS 알바니아: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알바니아계와 그리스계는 굉장히 사이가 나빴는데, 일단 알바니아계 유목민들이 펠로폰네소스 반도 일대까지 계속해서 남하하고 있었던데다가 현재도 이피로스 지방을 두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알바니아에서 공산정권이 붕괴된 이후 주변 국가들중 그나마 잘 사는 그리스로 내려와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때문에 적개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다. 한편 알바니아에도 현재 그리스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이피로스 지방에(지로카스터르, 베라트 일대) 의외로 많은 그리스계 알바니아인[65]이 있는데, 이들을 모두 그리스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알바니아인들도 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알바니아는 알바니아 대로 그리스가 중국, 러시아에 밀착하지 못하게 하려고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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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VS 이탈리아: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 시기에 현재 이탈리아의 영토인
시칠리아 섬과 이탈리아 반도 남부 지역 일대에 아그리젠토, 크로토네, 카타니아, 메시나 등 식민도시들을 세워 점령한 적도 있었으며 146년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서 시작된
로마 제국의 침공을 받아 로마에게 지배당하기도 했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추축국과 연합국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기까지 하는 등 질긴 대립을 이어왔으며 같은 남유럽권 국가에 종교적으로 같은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그리스는
정교회, 이탈리아는
가톨릭을 믿는 등 기독교의 종파가 크게 갈려있는 데다가, 역사 및 종교적인 이유[66] 때문인지 그리스인들은 이탈리아를 역사적 앙숙관계인
터키나 같은 정교 국가이지만 민족,언어적으로 다른 나라에 동로마, 냉전 시절 내내 대립하던
불가리아, 유고 연방 해체 후 국명 문제로 죽어라 싸우는
마케도니아보다 더 크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 나온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그나마 덜 험악한 축에 들긴 하지만.
유로화 사태 이후로는 경제적 문제로도 갈등의 여지가 생겼는데,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이 나았던 시절 그리스에게 꿔 준 돈이 많고 그 빚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 참고로,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터키와 그리스,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불가리아와 그리스처럼 서로 육지 방면으로 국경으로 맞대고 있진 않으나 지중해 너머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과 이탈리아 반도 남부 지역과 서로 마주보고 있고 거리도 가까운 이웃나라다. 한국과 일본의 거리와 비슷하게 볼 수 있다. 물론 이탈리아 문서와 그리스 문서의 지도에는 둘 다 잘려서 안 나오지만 알바니아 문서에 있는 지도와 남유럽 문서에 있는 지도를 같이 보면 알제리와 프랑스 간의 거리보다 가까운 이웃나라다.
- 그리스 VS 튀르키예◁: 오스만 제국에 의한 동로마 제국 몰락을 전후로 지배-피지배 관계가 역전되어 민족적 앙금이 굉장히 깊다. 게다가 이전에도 셀주크 제국이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아나톨리아 반도를 강탈한 바 있다. 훈족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는 튀르키예 민족주의자들의 경우 아예 자국과 그리스의 악연이 시작된 시기를 트로이 전쟁 시기로 보기도 한다. 튀르키예 공화국 출범 당시엔 역사적 보복이랍시고 그리스군이 튀르키예 본토까지 쳐들어가 전쟁을 벌인 적도 있다. 이런 역사적 원한의 골이 너무 깊어 TV에 그 국가 사람만 나와도 토마토를 던질 정도라고. 게다가 서로 같은 NATO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가상 적국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에게 해의 영해범위를 두고 영토 분쟁을 빚고 있다.[67] 그리고 요즘도 유튜브에는 튀르키예 VS 그리스 전투기들의 도그파이트 영상들이 올라온다.[68] 그리스-튀르키예 관계 문서 참고. 일단 21세기에 들어서는 관계는 많이 개선되었고 각각의 문화와 언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으며 그리스는 튀르키예의 EU가입을 지지하고 있으며 난민문제에서 서로 협력하기도 한다.
- 독일 VS 폴란드◁: 16세기 폴란드 최전성기에는 독일계 주요 국가였던 프로이센 공국이 폴란드에 복종할 정도였지만, 러시아와 18세기부터 강성해진 프로이센,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폴란드를 분할 통치하는 바람에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이 패하기 전까지 폴란드는 주권을 잃었고[69] 제2차 세계 대전 때 또다시 독일에 점령당했다. 당시 유럽에서 처음으로 독일의 무력 침공에 희생된 나라가 폴란드였으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되었다. 또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도 폴란드였다. 수도 바르샤바의 85%가 파괴되었으며 인구의 약 20퍼센트 정도가(유대인 300만 명, 비유대인 300만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때 유대인 학살로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폴란드에 있다.[70] 종전 후에는 1971년,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를 직접 방문해 무릎꿇고[71] 사과한데 이어 폴란드가 가져간 구 독일 영토[72]의 영구 포기 선언 및 공동으로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는 등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양국간 감정은 마냥 좋진 않은 편.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 스웨덴 VS 노르웨이◁: 나폴레옹 전쟁의 혼란을 틈타 북방의 강자로 맹위를 떨치던 스웨덴이[73] 1814년 이웃 노르웨이를 전격 병합해버린 것이 국민적 앙금의 시작. 이후 노르웨이는 꾸준한 항쟁을 통해 덴마크의 지원을 받아 1905년 스웨덴의 통치를 청산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중 스웨덴은 나치 독일의 노르웨이 점령을 묵인했으며[74], 현재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의 어머니인 스웨덴 공주 출신의 마르타가 아이들을 데리고, 스웨덴으로 입국하는데 스웨덴인들이 이에 대해 엄청난 반감을 표시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고 결국 마르타 왕비와 그녀의 아이들은 미국으로 망명한다.[75] 이 일은 지금까지도 양국간 악감정의 떡밥으로 회자된다. 다만 1960년대 이후 노르웨이 영해에서 유전이 터지면서 1970년대 이후부터는 1인당 국민소득은 노르웨이가 더 높다. 스웨덴 국민이 노르웨이로 일하러 온다고도 한다. 참고로 노벨상도 평화상만 노르웨이에서 시상하고 있고 나머지 분야는 모두 스웨덴에서 시상한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정치적으로는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감정으로 좀 안좋을 뿐이다. 물론 그마저도 갈수록 라이벌 친구와 같은 느낌이 강해지는 추세다. 재밌는 건 실제로 노르웨이인들과 스웨덴인들은 서로를 무척 장난스럽게 디스하기를 좋아하면서도 서로의 언어의 억양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노르웨이인들은 스웨덴어가 노르웨이어를 따라하려다 실패한 것처럼 들린다 하고 스웨덴인들은 노르웨이어가 스웨덴어를 따라하려다 실패한 것처럼 들린다고 한다. 두 언어는 실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으로 가까운 언어들이다.
- 러시아 VS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모두 ◆[RU]): 발트 3국은 러시아 제국 이래로 소련 시대까지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다. 이들 3국은 소련에서 독립하려고 엄청나게 애를 썼으며 1990년에 겨우 독립을 쟁취한다. 이들은 독립하자마자 바로 EU와 NATO에 들어가서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현재까지도 높은 대러시아 경제의존도가 흠이라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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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VS 우크라이나💥❌◆[RU]: 사실 종교도 모두
정교회를 믿고, 민족 혈통적으로 동슬라브 족인데다 러시아의 역사적 출발점이 우크라이나 땅의
키예프 공국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서로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지만, 18세기에 폴란드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반반씩 나눠먹었고 19세기에 폴란드가 망하면서 자연스레 러시아의 완전지배하에 떨어졌다. 이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탈출한 귀족들, 백군들과 함께 독립을 시도했다가 붉은 군대가 밀고 들어오면서 실패.
소련 아래의 공화국으로 70년을 지내는 동안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겨우 1991년에 소련 해체로 독립했으나, 친러시아파와 독립파 간의 정치적 다툼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다[78][79] 러시아 역시 NATO 가입을 희망하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유럽 전역)를 길들이려는 시도를 자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매년 겨울철마다 일어나는 가스관 봉쇄. 일단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친러파 후보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친서방 정책을 열심히 예전대로 돌려놓고 있다. 그러나 2014년 유로마이단이 발생했다. 게다가 2014년에는 크림 반도를 놓고 두 나라가 전쟁까지 했다. 그러고도 점점 더 사이가 나빠지더니 결국 2022년부터 두 나라의 관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 러시아 VS 조지아💥❌: 2004년 민주혁명으로 조지아에 친미파인 사카슈빌리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미정책과 NATO 가입을 추구하면서 러시아와 갈등이 불거져 결국 2008년 8월에는 전쟁까지 일어나 버렸다. 조지아의 자치공화국인 남오세티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막기위해 조지아군이 남오세티아를 침공하여 점령하였으나 하필 상대를 잘못 만나버렸다. 결국에는 러시아군이 쳐들어와서 조지아를 5일만에 박살내버렸다.[80]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처럼 분리주의 세력을 명분으로 러시아에게 공격받자 우크라이나에 군수물자를 보내고 조지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군에 입대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에서 양국 미녀간의 설전으로 이어질 정도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VS 크로아티아: 네움이란 이름의 바닷가 마을와 그 인근 해안가 지역들을 두고 서로 영토 분쟁을 빚고 있다.[81] 거기다 1995년에는 종족간 내전으로 헬게이트가 되어버린 보스니아에 크로아티아군이 국경을 넘어 침범하기까지 했다. 거기다 같은 슬라브족인데도 불구, 종교까지 다르니 결국 종교적으로도 융화할 수 없는 사이기도 하다.[82]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VS 세르비아: 보스니아 전쟁 당시 스릅스카 공화국군의 학살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다.
- 세르비아 VS 크로아티아: 같은 유고슬라비아로 있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사이가 험악하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크로아티아는 슬로베니아와 함께 세르비아에 합류하였으나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주도권은 세르비아인에게 있었고 크로아티아인은 세르비아가 상전마냥 나대는 것을 넘어서 아예 세르비아화 시키려는 것에 큰 불만을 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크로아티아인은 우스타샤를 조직하고 크로아티아 독립국을 설립하여 나치 독일과 손잡고 세르비아인을 대량학살했고, 세르비아인은 체트니크를 조직하여 크로아티아인을 대량학살했다. 1990년대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으로 매우 치열하게 교전했으며, 양측 간의 학살도 있었다.
- 불가리아 VS 튀르키예: 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어 그리스-터키 못지 않게 서로 앙숙이다.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발칸 전쟁 당시 불가리아군이 불가리아 남부에 거주하는 튀르크계 주민 수십만을 학살하거나 추방한 전적이 있고, 그후 공산주의 정권 붕괴때까지 튀르크계 주민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차별과 탄압을 벌였기 때문에 악감정이 여전히 남아있다. 참고로 현재도 불가리아에는 남부 플로브디프, 크르잘리, 하스코보 일대를 중심으로 대략 8~9%의 튀르크계 인구가 존재하고 있다. 크르잘리 같은 경우 조그만 구멍가게 주인도 터키어를 하고, 불가리아어를 거의 모르는 주민들도 많은데다 시장부터가 튀르크계다.
- 러시아 VS 스웨덴 : 러시아의 월경지인 칼리닌그라드가 발트해에서 해상으로 스웨덴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두 나라는 14세기 스웨덴 국왕 망누스 4세와 모스크바 공작 유리 3세 시절부터 핀란드와 카렐리아를 두고 다퉜으며 1808~1809년 핀란드 전쟁까지 수 차례 충돌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스웨덴은 구 소련 시절의 냉전기에도 중립 노선을 유지했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핀란드와 함께 중립노선을 포기하고 NATO에 가입하려고 하자 이에 러시아가 반발하고 비우호국가로 지정하였다.
- 스위스 VS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의 통치 가문인 합스부르크 가문은 본래 스위스 북부의 아르가우 출신이었다. 합스부르크 호족이었던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 4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대공위시대를 끝내기 위해 독일왕 루돌프 1세로 선출되었고, 루돌프 1세는 라이벌이었던 보헤미아 왕국 국왕 오타카르 2세를 패사시켜 오스트리아 공국과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을 맏아들 알브레히트에게 분봉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은 스위스를 버리고 오스트리아로 거점을 옮겼다. 알브레히트 1세의 아들들, 특히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1세는 전쟁 등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세금을 크게 물렸고 이에 반발한 스위스인 합스부르크 가문을 쫓아냈다. 막시밀리안 1세가 1499년 도르나흐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스위스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완전히 포기했다. 현대에는 스위스가 독립한지 수백 년이 지난데다가 오스트리아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작은 나라가 되어 충돌할 일이 딱히 없어졌기 때문에 심각한 악감정은 없는 편이다. 과거에 그런 일도 있었지 하는 수준. 그리고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둘 다 영세중립국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우호적으로 지내려고 하기도 한다.
- 스페인 VS 포르투갈: 과거 스페인의 전신이었던 카스티야 왕국이 포르투갈 왕국 내정에 간섭하려 든 사례가 있었고, 대항해시대엔 중남미 식민지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하면서 포르투갈의 브라질 영유를 상호 합의했다. 아비스 왕조는 카스티야 연합 왕국- 아라곤 왕국의 트라스타마라 왕조와 수 차례 통혼했는데 이는 압스부르고 왕조의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세바스티앙 1세가 크사르 엘케비르 전투에서 전사하자 펠리페 2세는 자신의 어머니 포르투갈의 이자벨이 포르투갈 공주였고, 세바스티앙의 어머니 후아나가 자신의 여동생임을 근거로 아비스 왕조 방계들의 도전을 모두 물리치고 1580년 포르투갈에 입성하여 이베리아 연합을 형성했다. 그러나 펠리페 3세, 펠리페 4세를 거쳐 포르투갈을 스페인의 주로 아예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벌어지자 포르투갈 귀족들은 포르투갈 독립 전쟁을 일으켰고 아비스 왕조의 방계인 주앙을 주앙 4세로 옹립하여 브라간사 왕조가 열렸다. 현대에 들어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 경기에서 그야말로 라이벌전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특히 비교적 당한게 많다고 할 만한 포르투갈 측에서는 이를 바득바득 갈고 덤벼든다. 다만 국민 감정이란 측면에서는 두 나라 모두 영영 사라진 영광의 세월인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 열강의 자리에서 비껴나 있어 서로 싸움질 할 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감정의 골이 그다지 깊다고 보기는 힘들다. 애초에 두 나라가 공유해온 역사적, 문화적 동질감을 생각해보면[83] 이상하리만치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는 감정적으로나, 실제 외교적으로나 의외로 참 접점이라 할게 없다. 유럽 연합으로 한꺼번에 묶이기 전까지는 서로 딱히 경제적 협력을 한 것도 아니고, 외교적으로도 스페인은 혼자 노는 반면 포르투갈은 영국과 프랑스를 따라 다니니 애증의 관계가 될수 밖에.
- 스페인 VS 프랑스: 위의 스페인-포르투갈 관계가 포르투갈 쪽에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관계라면, 이 쪽은 반대로 프랑스인들은 무덤덤하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스페인인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제이다. 역사적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전신인 서고트 왕국이 507년 부이에 전투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전신인 프랑크 왕국에 패하여 아키텐을 빼앗기면서 그 과정에서 서고트 왕국 국왕이 전사하기까지 했고,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의 동군 연합으로 스페인이 형성되기 이전인 중세부터 프랑스는 아라곤, 카스티야 양쪽에게 왕위 계승권 문제로 심심찮게 간섭, 개입을 했으며, 특히 아라곤 왕국의 핵심 지배층을 형성했던 카탈루냐 쪽에서는[84] 원래 자기들 권역이었던 피레네 산맥 이북의 영토를 알비 십자군 때 빼앗기기도 했다. 스페인 제국의 부상과 패권 또한 지정학적,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양쪽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 중부 유럽에서 온갖 자원과 인력을 다 긁어 내어 15세기 말~16세기 중반 유럽의 정치적 판도를 뒤집어 놓은 이탈리아 전쟁에서 무려 50년에 가까운 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꺾어서 이룬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페인 제국 리절 시절이었던 16세기~17세기 초반까지 스페인 외교의 지상과제는 위그노 전쟁에 개입하던,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전신인 사보이아 공국과 편을 먹든, 교황을 구워 삻던 프랑스가 다시 패권 국가로서 영향력을 발휘 못 하도록 재정신 못 차리게 대내외적으로 압박하는 것이었고, 프랑스 또한 자국 내 가톨릭 매파를 선동하고, 프랑스의 그로기 상태를 최대한 지속 시키려는 스페인의 영향력을 미워했다. 결국 이런 스페인의 유럽 패권을 깬 것 또한 안그래도 네덜란드, 영국, 독일 내 개신교, 지중해 대오스만 전선에서 동시에 싸우느라 이미 한계에 달한 스페인의 국력의 허리를 부숴 버린, 르크루아 전투로 대표 되는 30년 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참전이었다. 프랑스 자신 또한 가톨릭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국가들과 편먹어 스페인을 다굴 놓은걸 보면 당시 스페인 패권 분쇄가 프랑스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와중에서 루시용, 세르다뉴 같은 역사적 카탈루냐 영토를 뺏어간 건 덤이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 양국이 부르봉 왕조로 같아지며 일단은 소강상태가 되었으나 프랑스에 대한 스페인의 악감정은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연관하여 지속 되었다. 일단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스페인이 당한 피해는 모두가 공유했고, 보수파는 프랑스 혁명의 급진주의와 '불순한 사상'의 씨앗을 스페인에 뿌렸다고 싫어하고, 반대로 자유주의자나 좌파들은 나폴레옹 실각 이후 1823년 무능한 페르난도 7세 대신 입헌군주제와 헌법에 의한 통치를 추구한 자유주의 내각을 샤를 10세의 프랑스군이 개입하여 박살냈다고 미워했다. 20세기 들어서도 반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스페인 좌파는 프랑스의 중앙집권적 공화주의 이념 자체가 체질에 안 맞다고 경원시하고, 우파는 프랑코 정권 당시 공화파 망명객이나 ETA를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을 프랑스가 비호해 주었다고 프랑스의 영향력을 원망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스페인에게 '당했다'고 인식할 만할 역사적 사건이 늦어도 17세기면 끝났으니 별로 악감정이 없지만, 스페인 내부에서는 카스티야와 카탈루냐인들이 일치단결하여 통일된 의견을 내는 게 프랑스에 대한 불신일 정도이다. 게다가 이런 역사적 원한 관계 빼고도 스페인도 어디 남부럽지 않을 만한 찬란한 예술적, 문화적 유산을 자랑하지만 프랑스란 거대한 덩치가 바로 옆에 있으니 항상 2등이로 비교당할 수 밖에 없다는, 어쩌면 열폭성의 질투 또한 강한 편이다. 나머지 서유럽 내에서의 악감정 비슷하게 여기도 어디 감히 전쟁 운운할 만큼의 긴장 관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스페인에서 함부로 불빠 행세하고 다니면 바르셀로나에서든, 마드리드에서든 토마토 가 날아온다.
- 슬로바키아 VS 헝가리: 슬로바키아는 1,000년 가까이 헝가리 왕국의 북부(Felvidék)로 일개 주 취급을 당하며 헝가리인에게 지배당하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체코인과 손잡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가 되었다가 1993년 독립했다. 슬로바키아가 독립국이 되긴 했지만 인구의 10% 가까이는 헝가리인이었고, 슬로바키아인과 헝가리인 사이에 분쟁이 계속되었다. 슬로바키아가 언어법을 제정해 소수민족 인구가 20%가 안 되는 곳에서 헝가리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 헝가리인들이 반발하기도 했고, 이중국적 문제로 양국이 충돌하기도 했다.
- 슬로베니아 VS 크로아티아: 1526년 이후로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으며[85],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에 속했다. 그러나 1991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분리독립한 이후 아드리아해 피란만의 영해를 놓고 영해 분쟁이 불거졌다. 본래는 이 피란만의 바다를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반반씩 나누어 가지려고 했었지만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가 차지하고 있는 영해까지 자국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피란만의 영해를 둘러싼 외교 분쟁이 시작되었다. 다만 다른 발칸 국가들에 비하면 갈등이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다.
- 영국 VS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대구 전쟁으로 앙숙을 넘어 원수가 되어버렸다. 이 당시 조업권 문제는 갈수록 쪼들고 말라 죽어가는 많은 영국 어부들에게 핵심적인 문제였는데, 아이슬란드 측에서 '저 나쁜 영국놈들 보소! 아직도 제국주의 시절 버릇 못 고치고 약소국을 못 살게 괴롭히네!'라는 식으로 일방적인 언론 플레이를 하여 그나마 관심을 가지던 국제 여론이 분쟁 자체의 자세한 내부적인 사항은 고려 안하고 일방적으로 아이슬란드 쪽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영국 측에서 굉장히 억울해했다. 실질적으로 이 지역에 그나마 이권이 걸쳐진 덴마크, 노르웨이 등 다른 노르딕 국가는 문화적, 역사적 측면에서 아이슬란드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이슬란드는 현재에도 어업을 주요 경제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 아일랜드 VS 영국: 이 기나긴 앙숙 관계는 본래 영국 본토에 있던 켈트족이 앵글로색슨의 침입으로 아일랜드로 쫓겨간 것이 시초이며 잉글랜드는 나아가 아일랜드 섬까지 병합했다. 특히 잉글랜드의 직접 통치가 강화된 16세기 부터는 아일랜드의 반란→영국의 진압→보복성 학살의 패턴이 수 십년이 멀다고 반복되었다. 게다가 영국이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던 19세기 중엽에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무려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고[86], 또한 100만 가량의 인구가 고향을 뒤로 하고 아메리카로 떠났다. 이 엄청난 재난의 주원인은 흔히 알려진 감자 역병 못지 않게 영국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과 착취 또한 큰 요소였다. 꾸준한 투쟁으로 독립을 달성한 지금도 북아일랜드는 영국이 점유한다. 현재는 북아일랜드 지방의 다수가 친 영국 성향 주민들로 이루어졌고, 양국의 협의로 테러 활동도 많이 줄어들었다. 또한 과거 영국의 식민 국가들이 구성한 영연방에서도 아일랜드는 탈퇴했다.
- 오스트리아 VS 체코: 합스부르크 가문의 초대 독일왕 루돌프 1세가 보헤미아 왕국 국왕 오타카르 2세를 마르히펠트 전투에서 전사시켜 보헤미아 왕국의 전성기가 꺾이기도 했고, 페르디난트 1세가 집권한 1526년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이 보헤미아 국왕으로 선출되었지만 30년 전쟁 이후 보헤미아 왕국은 합스부르크 가문으로부터 크나큰 억압을 당했다. 프란티셰크 팔라츠키 등이 친합스부르크 성향의 오스트로슬라브주의(Austroslawismus)를 제창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차악을 선택한 것이지 합스부르크 가문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들어서면서 오스트리아와 체코의 민족 감정은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체코인은 슬로바키아인과 손잡고 제일 빨리 독립을 선언했다. 21세기 들어 체코는 친서구 성향이 강하지만 오스트리아는 보수, 친러 성향이 강해 짙어 유럽연합 안에서도 정치적인 견해 차이가 있으며, 체코 사학계에서 합스부르크 시대는 암흑시대 취급을 받고 있다.
- 우크라이나 VS 벨라루스▶💥: 소련 해체 전까지만 해도 양국은 한나라에 속해 있었고, 교류가 많았다. 독립 이후에도 무난히 지냈지만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가 명확한 반러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본래 친러였던 벨라루스와 관계가 약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벨라루스가 러시아군에 국경을 열어주고 노골적으로 러시아를 비호하면서 관계가 매우 약화됐다.
- 우크라이나 VS 헝가리: 트란스카르파티아의 우크라이나인 농노들은 헝가리 왕국 시절부터 수탈과 억압을 당했다. 현재는 우크라이나어 언어법으로 인해 헝가리계 우크라이나인들의 헝가리어 사용 제한, 헝가리 정부의 공공연한 헝가리계 우크라이나인 지원,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친러적 행보 및 2023년 우크라이나 곡물 금수 사건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다.
- 이탈리아 VS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탈리아반도를 두고 프랑스 왕국과 충돌하여 이탈리아반도가 전장이 되었다. 19세기 이후로는 이탈리아 통일을 달성하려는 사르데냐 왕국과 통일을 막으려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대립 구도로 바뀌었으며, 이탈리아 왕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트렌티노알토아디제, 트리에스테, 달마티아 등 이탈리아인이 거주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 때문에 둘은 앙숙이었다. 현재는 이탈리아 영토인 쥐트티롤이 오스트리아로 돌아가려는 움직임도 있는 등 두 나라는 이런 식으로 상호간에 사이가 좋지 못하다.
- 키프로스 VS 튀르키예❌: 튀르키예는 그리스계가 다수인 키프로스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좋지 않은 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같이 참고하자. 북키프로스도 같이 보자.
- 튀르키예 VS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인 학살 및 튀르키예의 아제르바이잔 지원 때문에 사이가 상당히 안 좋다.
- 폴란드 VS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제외 ◁) 등 구소련권 이웃 나라들: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 체코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같이 과거 구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었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같은 다른 이웃한 유럽 국가들과도 사이가 안 좋은데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과거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당시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에 의해 국토가 분할되고(그 후 우크라이나는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협력하며 폴란드인들을 학살한 적이 있다), 리투아니아는 빌뉴스와 그 일대를 빼앗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폴란드 분할 이전 폴란드가 강성했을 당시 리투아니아는 폴란드 문화에 잠식당해 리투아니아인 귀족 대부분이 폴란드화되어 리투아니아 문화가 거의 사라질뻔했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준식민지 취급을 받았다. 결국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이들 지역은 소련으로 편입되었지만 폴란드에게 영토들을 빼앗긴 적이 있던 이들 3개국들은 여전히 폴란드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리투아니아는 수도인 빌뉴스를 도시 시민 대다수가 폴란드인이란 이유로 폴란드한테 강탈당하고 카우나스 시를 임시 수도로 삼았을 정도였다. 다만 21세기에 와서는 양국의 관계는 우호적으로 변한듯 한다. 폴란드-리투아니아 관계 참조.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관계 역시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했을 때 국경을 넘어온 다수의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주고 다량의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타국의 인도적 지원을 위해 보급선을 열어주는 등 상당히 개선되었으나 스테판 반데라 등 역사 문제로 인해 폴란드인 상당수가 여전히 우크라이나인을 싫어하고, 벨라루스는 폴란드가 적대하는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중이기에 여전히 사이가 좋지 못하다.
- 폴란드 VS 체코: 서슬라브 대표 국가들답게 은근히 라이벌 의식이 있는 편이고,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양국이 독립한 직후 치에신 지역을 두고 치고받은 역사 문제에다가 냉전 시절 프라하의 봄으로 인해서 약간의 앙금이 있다. 물론 지금은 유럽연합, 북대서양 조약 기구로 뭉쳐있긴 하지만 여전히 의식하는 사이다. 심지어 체코는 폴란드보다 경제적, 정치적 의식 수준이 더 높다.
- 폴란드 VS 러시아◆[RU]: 폴란드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때문에 15세기부터 모스크바 대공국과 전쟁을 치렀으나 18세기 이후 국운이 쇠하여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에 123년 동안 분할점령되어( 폴란드 분할) 지도에서 사라졌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주권을 되찾았다. 그러나 나치 독일과 소련은 미리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침공하여 다시 분할점령했다. 또한 소련은 카틴 숲 외 여러 장소에서 폴란드 지식인들을 학살했으며 약 2만 명이 사망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해 1989년에 가서야 그 마수에서 벗어났으며 현재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러시아를 싫어하는 나라들과 깊은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 프랑스 VS 이탈리아: 이탈리아 통일 이전 이탈리아반도 북부 지역에 난립하던 밀라노 공국 등 여러 소국들은 프랑스 왕국의 침략과 간섭을 받았다. 특히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전신 사보이아 공국- 사르데냐 왕국은 아메데오 9세 시기부터 프랑스 왕국의 내정간섭에 시달렸고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등은 프랑스와 싸워서 주권을 겨우 확립할 수 있었으며, 파르마 공국,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 왕국 등은 18세기에 부르봉 왕조의 스페인계가 통치하기도 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사르데냐만 남은 사르데냐 왕국과 시칠리아만 남은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 왕국 동군연합을 제외한 전 이탈리아반도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제1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등 프랑스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역사적 반감은 굉장히 심하다. 양국은 유럽문화의 종주권을 놓고 서로 대립하는데 아예 음식이나 와인, 패션 등을 가지고 자기네 것이 월등하다고 양국 국민들끼리 싸움이 벌어질 정도다. 둘 다 세계적인 축구 강국이기도 하다 보니 축구로도 당연히 박터지게 싸운다.
- 핀란드 VS 러시아◆[RU]▶: 핀란드 대공국이라는 괴뢰국으로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소련과 겨울전쟁, 계속전쟁을 치르는 등의 갈등도 있었던지라 핀란드는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다. 이후에는 그럭저럭 지냈으나,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더욱 악화되었으며, 핀란드는 아예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스웨덴과 함께 NATO에 가입했다.
- 헝가리 VS 루마니아: 양국의 악감정은 트란실바니아에서 비롯되는데 트란실바니아는 900년 가까이 헝가리 왕국의 영토였던데다가 트란실바니아 공국, 1848년 헝가리 혁명 등 헝가리 문화와 독립을 상징하는 지역과도 같았다.[89] 그러나 이 지역의 인구 과반수는 루마니아인 농노였고 이들은 헝가리인부터 사람 취급도 못받았으며 살아있기에 존재가 용인되는 수준 취급을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루마니아 왕국이 트리아농 조약으로 트란실바니아를 합병하고 국왕 페르디난드 1세가 옛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수도 알바이울리아에서 대관식까지 치르는 어그로를 끌었으며, 이에 빡친 헝가리는 복수의 칼을 갈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빈 중재로 헝가리인과 세케이인이 다수 거주하는 트란실바니아 북부를 되찾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다시 반환하는 등 트란실바니아를 두고 전간기 내내 불편한 감정을 이어왔다. 지금은 그냥저냥 지내는 것 같지만 국민 감정은 여전히 험악하며 빅토르 오르반 정부는 옛 헝가리 왕국 영토를 내세우며 어그로를 끌고 있다. 루마니아인에게 일제강점기를 제외한 한일관계를 이 관계에 대입해서 설명하니 1초도 안 돼서 이해했다는 후문.
- 헝가리 VS 세르비아 : 헝가리는 이웃한 국가들 중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 보통 사이가 좋지 않은데 헝가리 왕국 시기 이웃 국가의 민족들이 소수민족으로 헝가리인의 가혹한 지배를 받았다는 점이 있고 세르비아와는 옛 헝가리 왕국 영토였던 보이보디나 자치주의 헝가리인 소수민족 문제에 더해 2015년들어 불거진 유럽 난민 사태로 샅바 싸움을 하고 있다. 다만 세르비아는 경제력이 좋지 않아 헝가리에 하소연할 처지가 되지 못하는데다가 EU 가입을 위해 하는 수 없이 잘 보이려 할 수밖에 없다.
3.3. 아프리카
- 수단 VS 남수단: 가장 악명높은 관계이자 수단 내전 하나로 정리가 가능하다. 본래는 종교, 민족, 언어 모든 배경이 다른 지역들이었으나 영국의 잘못된 식민 유산에 의해 1956년, 한 나라로 강제 통합되어 수단으로 독립되었다.[90] 독립 이후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와 흑인 혼혈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북부와 흑인계 주민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남부간 내전이 발발. 1972년,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평화 협정을 맺고 남부 지역에 자치권을 주면서 좀 나아지나 싶었으나 1983년, 수단 정부가 자치권을 박탈하고 남부 지역에 대한 강제적인 이슬람화 정책을 시도하면서 남부 주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했고 결국 존 가랑, 실바 키르 등 남부 출신 반정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수단 인민 해방군이 결성되어 수단 정부군을 상대로 무장 반정부 투쟁에 돌입하면서 다시 내전 상태로 돌입하였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 등이 수단 정부와 수단 인민 해방군 지도부를 상대로 중재에 나서보기도 했지만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2005년, 케냐 나이바샤에서 새로운 휴전 협정에 합의하면서 내전은 비로소 막을 내렸다. 그리고 2011년, 남부 지역의 지위문제를 결정할 주민투표가 실시되어 남부 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남부의 독립을 찬성하면서 수단 남부 지역은 남수단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아비에이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싼 영토 분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남수단의 일반 국민 감정은 수단 내전 기간 동안 민간인 학살과 인종 청소, 여성 강간을 자행한 수단군의 잔인한 만행을 잊지는 않되 수단을 용서해주자는 정서가 강한 편이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 VS 나미비아◁: 나미비아는 본래 독일의 식민지였으나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패전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의 백인계 인종들이 정권을 쥐고 있었던 남아공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본국에서 실시하고 있었던 흑백 인종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적용하며 나미비아의 흑인들을 폭압적으로 억눌렀고 1960년대 이후 나미비아의 흑인들이 남아공의 지배에 맞서 게릴라 독립전쟁을 일으켜 국제사회와 유엔의 지지를 받아[91] 남아공 군대과 싸워 1990년 남아공에서 독립하는데 성공했다.허나 나미비아가 독립한 이후 남아공도 지배하던 주체 세력이 백인 정권에서 다수의 흑인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92] 갈등의 소지는 많이 줄어들었고 양국간 경제 교류도 활발해 다른 나라들보다는 좀 많이 나은 편이지만 나미비아와 남아공의 하천국경인 오렌지강을 두고 두 나라들은 국경 분쟁을 빛고 있어 이 두 나라 간 갈등이 아예 사라진건 아니다.
- 레소토 VS 남아프리카 공화국◁: 나미비아와 남아공 관계 못지 않게 레소토와 남아공도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데 유럽 열강들의 아프리카 대륙 식민침탈 이전 현재의 레소토의 주민족인 소토족과 남아공 일대에 살던 줄루등 여러 흑인 부족 세력들로부터 침략과 공격을 받기도 했었고 1960년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할 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합병 요구를 거부하며 독자적인 주권국가로 독립을 선택하는 등 남아공과 대립각을 세운 이력이 있었다. 게다가 아파르트 헤이트 당시, 반쯤 고립되다시피 했으며, 남아공 난민들이 몰려오기도 했었다. 그나마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진 뒤에는 수교했고, 우호적인 관계로 변했다.
- 말라위 VS 탄자니아: 말라위 호수의 경계 수역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탄자니아는 말라위 호수 북동부 지역 절반이 탄자니아령이라고 주장하는데 비해 말라위는 말라위 호수의 북동부 지역도 자국령이라고 주장하면서 대립하고 있는 중이다.
- 말리 VS 부르키나파소: 1985년, 국경지역에서 조그마한 전쟁을 벌였다.
- 모로코 VS 알제리💥❌: 알제리와 모로코는 영토 문제, 서사하라 문제로 갈등도 있고 국경에서 총격전도 치른 바 있다. 더불어 지금도 알제리는 모로코에 저항하는 서사하라 독립군들을 지원하며 서사하라 망명정부를 받아주기에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이후 서사하라 문제로 2021년에 결국 모로코는 알제리와 단교를 선언하게 된다.
- 모잠비크 VS 말라위: 모잠비크는 과거 1960-70년대 포르투갈 식민지였을 때 이웃나라였던 말라위가 포르투갈이 모잠비크의 독립 운동 억압, 진압하는 것을 지원한 역사가 있어 말라위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안 좋다.
- 보츠와나 VS 짐바브웨◁: 보츠와나는 짐바브웨를 제외한 다른 이웃나라들과는 사이가 괜찮지만, 짐바브웨와는 정치적인 갈등이 있다. 다만, 짐바브웨에서 음낭가과가 집권한 이후에는 사이가 개선되고 있다.
- 에리트레아 VS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의 식민 통치를 경험했으며 반세기에 걸친 독립전쟁 끝에 독립을 성취했다. 그 뒤로 심심하면 서로 폭격과 포격을 주고받는 사이. 심지어 국경, 영공까지 폐쇄할 정도로 두 나라는 얼굴도 안 돌아볼 정도로 가히 앙숙...이었지만 2018년에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대사관재개설, 항공노선개설 등에 합의하면서 우호적인 관계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티오피아의 지배를 겪고 전쟁을 벌였던 역사 때문인지 에리트레아 일반 국민들의 에티오피아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않다.
- 에티오피아 VS 소말리아: 본래 소말리인들이 살던 지역인 오가덴이 1948년 에티오피아로 귀속되면서 분쟁의 씨앗이 뿌려졌다. 소말리아의 시아드 바레 정권은 대소말리아주의를 내세우며 오가덴 전쟁을 일으켰지만 소련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에게 참패했고 이는 소말리아가 막장으로 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추가로 소말리아가 자국 영토로 주장하는 미승인국 소말릴란드를 에티오피아가 2024년 국가로 승인하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 이집트 VS 리비아: 고대 이집트 시기 나일강을 젖줄삼아 찬란한 문명 간지 뿜던 이집트에게 매일 같이 침략받고 두들겨 맞은 반면 이집트에 왕조를 세우기도 했던게 지금의 리비아였고, 이집트와 리비아가 아랍화와 이슬람화를 거친 이후 한동안 잠잠해지나 싶었더만 1977년에 사하라 사막 국경 한복판에서 전쟁을 벌였다. 결과는 몇몇 전사자만 낸 이집트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최근 카다피 정권 붕괴 후 리비아에서 IS,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이 발호하자 리비아가 이집트에게 IS 진압 지원 등의 도움을 청하면서 이전보다는 많이 가까워진 편이었으나 2023년 최근 수단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이집트가 수단 정부군을 지원하고, 리비아가 수단 정부군과 대립하는 다갈로 장군의 신속지원군을 지원하면서 다시금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 이집트 VS 수단◁: 이쪽도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앙숙. 고대 이집트와 누비아 시절부터 싸워댔으며 이집트가 누비아를 복속시켰던 적도 있었지만 이집트가 약해지자 누비아가 역으로 이집트를 정복하고 누비아 왕이 이집트 파라오를 겸한 적도 있다. 근대에는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가 수단을 정복하고 마흐디가 이집트에 저항하기도 했으며 둘다 영국 식민지가 되었는데 명목상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령이었고 수단은 이집트와 영국의 공동통치지역이었다. 또 영국 식민지 시절 할라이브가 이집트의 영토가 됐다가 수단의 영토가 된 역사가 있는데 이 때문에 이집트와 수단이 할라이브를 놓고 영토 분쟁을 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시절 서로가 할라이브와 맞바꾼 비르 타윌이 무주지로 남겨지게 되었다.[93] 다만 2011년부터 나일강 상류에 에티오피아가 댐을 짓기 시작하니 나일강 중류와 하류에 위치한 이 둘은 큰 타격을 입게되자 양국은 에티오피아 문제로 화해하기 시작하여 이집트와 수단은 한 편이 되어 에티오피아와 대응하였으며, 예멘 내전 당시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국에서 양국은 이란과 후티에 대응하는 등, 관계가 회복되고 있으며 최근 일어난 수단 내전에서 이집트는 수단 정부를 지원하였다.
- 차드 VS 수단 공화국◁: 상호간에 국경 분쟁도 있고, 수단이 2005년 차드 내전 당시 이슬람 반군들을 지원했으며, 차드 역시 다르푸르에서 반군을 지원해 2008년에 외교관계 단절까지 있었다. 다만, 2010년 이후에 차드의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가 같은 군정으로써 수단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면서 양국간 관계는 호전되는 중에 있다.
- 케냐 VS 남수단: 일레미 삼각지구 영토 문제로 상호간에 갈등이 깊다. 케냐가 남수단의 독립을 지지하긴 했어도, 영토 문제로 이전 수단 시절부터 국경에서 총격전을 벌인 적도 있으며, 남수단 난민들에 대하여 가혹하게 대했다. 난민들을 받아줬지만, 심심하면 케냐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밀수를 단속한다면서 생필품을 빼앗아가기도 하고 여자 성폭행 및 난민 구타같은 일을 벌였다고 한다. 때문에 남수단에서 앙금이 큰 편이다. 하지만 내륙국인 남수단에서는 석유 수출을 하자면 케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현실에서 고민 중이다.
3.4. 아메리카
미국-캐나다-멕시코 이외의 나머지 아메리카다.- 가이아나 VS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가 과야나 에세키바, 즉 가이아나 영토의 2/3에 대해서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어서 상호간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물론 베네수엘라는 막장국가라 남미국가들 사이에서도 시선이 나쁜 국가이기도 하다. 심지어 가이아나는 친미인데 반해 베네수엘라는 반미를 표방하고 있기도 하다.
- 과테말라 VS 벨리즈: 이 두 나라는 과거에 마야 문명의 영역권이었으나 마야 문명이 멸망한 이후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17세기 이후 영국이 진출하여 스페인을 몰아내고 벨리즈 지역을 차지하면서 스페인령과 영국령으로 갈렸다가 이후 스페인령이었던 과테말라가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면서 과테말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상 벨리즈 지역에 대한 영유권까지 이어받았다고 벨리즈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했으나 영국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지배하다 1981년 영국이 벨리즈를 독립시키자 과테말라는 벨리즈의 독립을 반대하며 계속해서 벨리즈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1991년까지 벨리즈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며 벨리즈와 대립했다. 하지만 1991년에 벨리즈의 독립을 인정했음에도 과테말라는 벨리즈의 영토의 절반이 과테말라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어 두 나라의 갈등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심지어 국경 지대에서 두 나라 군인들의 교전이 간간히 벌어지기도 하고, 2018년 과테말라에서 푸에고 화산 폭발로 심각한 인명피해가 났을 때도 정작 벨리즈에서는 저 작자들은 용암에 불타 죽어도 싸다며 비웃기까지 했다.
- 니카라과 VS 코스타리카: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는 산후안 강을 사이로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데, 이 하천의 소유권 및 관할권을 놓고서 두 나라간의 국경, 영토 분쟁이 극심하다... 게다가 니카라과는 아예 코스타리카와 산후안 강을 가지고 국경 분쟁을 치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래 코스타리카 서북부의 과나카스테 주 등 코스타리카 일부 영토들도 자기네 땅이라고 영토 억지 주장을 부리는 등 코스타리카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 도미니카 공화국 VS 아이티: 두 나라가 위치한 히스파니올라 섬은 원래 스페인령의 섬이었으나 서부에 프랑스가 진출하였고, 이후 1804년 서부의 아이티가 먼저 독립하였고, 1821년 도미니카 공화국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자마자 아이티의 침략으로 1844년까지 아이티가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배하기도 하였으며,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은 독립 이후부터 1856년까지 전쟁을 치렀다. 20세기 들어 양국의 국력이 역전된 이후로는 아이티인들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이주하기도 하였는데 1937년 도미니카 공화국에선 아이티인 2만 명이 대량학살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아이티의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100만여 명의 아이티인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들어왔으며 언어도, 민족도(아이티인: 흑인, 도미니카 공화국인: 흑백혼혈) 문화도 상이하며 도미니카 공화국 주민들은 아이티를 아프리카의 일부로 보며 멸시한다. 게다가 아이티의 어부들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물고기를 팔기 위해 많은 시간동안 배를 타고 오지만, 실제로 차별 속에서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려울 뿐이다.
- 미국 VS 쿠바◁: 자본주의 국가 VS 공산주의 국가. 태생부터 서로가 서로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거기에 쿠바는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있던 정부가 바로 미국의 후원을 받던 무능한 독재 정권이었다. 케네디 시절에 미국이 반카스트로 세력을 지원하고 쿠바를 전복시키기 위해 피그만 침공을 일으키자 쿠바에서는 소련에게 부탁해서 핵 미사일을 배치해두려 했고, 그 때문에 미국은 경제봉쇄를 시켰다. 아직도 그렇게 사이가 좋지는 않으며, 공식적인 외교 관계도 없었으나 2014년 12월 1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와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할 것임을 선언했고, 라울 카스트로 쿠바 최고지도자도 이에 호응하였다. 그리고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정치적 요소 한정이다. 쿠바 국민들은 미국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한다.[94]
- 볼리비아 VS 칠레❌, 브라질, 파라과이: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이후에 안토파가스타와 아크레, 그란 차코 등의 영토들을 각각 칠레와 브라질, 파라과이에게 빼앗겼다. 특히 볼리비아는 그 중에서 칠레와의 전쟁에서 안토파가스타 등 해안 지대를 칠레에게 빼앗기고 해안 지대의 상실로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로 전락하여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나마 다른 지역들은 볼리비아가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으며 브라질, 파라과이와의 외교적 분쟁을 자제하고 있지만[95], 칠레로부터 빼앗긴 해안 지대 영토인 안토파가스타만큼은 칠레가 무력으로 뺏어간 바다를 되찾아 내륙국에서 탈피하겠다며 칠레와 국교관계조차 맺지 않으며 현재까지도 대립하고 있다. 거기다가 칠레는 안토파가스타와 메히요네스, 토코피야, 파포소 등 이전 볼리비아 영토였다가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에 합병되었던 이 지역 영토들에 칠레인 이주민들을 대량으로 이주/정착시켰는데 이 지역에 정착한 칠레인 이주민들 대부분은 현재 안토파가스타 지역의 지역 주민사회를 형성하여 칠레와 볼리비아 간 외교 분쟁에서 압도적으로 칠레령 잔류와 칠레 정부의 볼리비아에 대한 강경 외교정책 고수를 주장하며 볼리비아로의 재합병이나 볼리비아가 칠레로부터 항만을 빌려쓰는 것에 대해서도 격렬하리만치 반대하고 있다.[96] 그런데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칠레가 볼리비아와의 관계개선을 희망하는 서한을 볼리비아 정부에게 보내기도 했고, 2022년 두 나라의 국경선을 흐르는 실라라 강에 대한 수자원 공동사용에 합의하면서 태평양 전쟁 당시 볼리비아령이었다가 칠레에 합병된 안토파가스타 주 지역에 대한 외교 분쟁과는 별개로 관계 회복이 이뤄질 가능성도 차츰 높아지고 있다.
- 아르헨티나 VS 칠레: 둘다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안데스 산맥과 파타고니아 남부 지역의 영토, 국경 문제로 수없이 영토분쟁 갈등을 빚었으며,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중 영토 면적이 방대한 나라들이다 보니 양국 모두 라틴아메리카 스페인어권의 대국 자리를 두고 경쟁 의식도 존재하고 있다.[97]
- 브라질 VS 아르헨티나: 각각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지배의 영향을 받아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등 언어도 다르고 인종 구성에서도 브라질은 백인, 인디오, 흑인 노예 후손, 여러 혼혈 인종들이 차지하는데 반해[98] 아르헨티나는 건국 이후 백인 이민을 장려하여 백인들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한다. 역사적으로도 1825년 스페인령이었다가 브라질에게 합병된 시스플라티나 주의 독립을 아르헨티나가 지원하여 브라질과 전쟁을 벌인 결과 브라질로부터 우루과이를 독립시킨 적이 있었고 심지어는 축구에서도 서로 으르렁거린다.[99] 실제로 서로 상대 국가대표 선수가 다치면 좋다며 대놓고 공개하는 수준. 국력이나 인구면에서도 남미에서 서로 비교되고도 남을 나라들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와 관련해서도 브라질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다만 요즘 국민들 사이에서의 악감정은 축구경기에서만 나오며 평소에는 평범한 관계이다.
- 브라질 VS 우루과이: 원래 우루과이는 시스플라티나라고 하는 브라질의 속주였는데, 아르헨티나의 도움으로 끝내 독립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브라질은 다시 우루과이를 병합할 기회만 엿보고 있고 우루과이는 국가보존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브라질과 맞서고 있다. 게다가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우루과이가 브라질에게 마라카낭의 비극이라는 희대의 빅엿을 먹인 과거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브라질에게 있어서는 우루과이만큼 얄미워 죽겠는 존재도 없을 정도다. 브라질에게 우루과이는 차라리 아르헨티나가 친한 이웃이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의 대앙숙이다. 우루과이의 입장에서 브라질이란 호시탐탐 자국을 복속시키려 드는 국가의 중대하며 또한 영원한 숙적이고 브라질에게 우루과이는 빼도 박도 못할 반란군이자 이 행성에서 가장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족속들이다. 우루과이에 대한 브라질의 증오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지라 월드컵이나 코파 아메리카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대회에서 브라질은 우루과이만 만났다 하면 네놈에게는 절대로 못져!로 일관하고 있다.
- 브라질 VS 콜롬비아: 같은 남미권의 국가들이지만 브라질은 포르투갈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포르투갈어를 쓰고, 콜롬비아는 스페인 식민통치의 영향으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등 언어적으로도 상이하고 과거 브라질에 의해 콜롬비아가 차지하던 남부 아마존 밀림 지역 일대를 대거 강탈당한 적이 있어 감정이 좋지 않다. 게다가 아마존 지역 남부 영토들을 브라질에게 빼앗겼던 역사 때문인지 콜롬비아는 브라질과 앙숙관계에 있는 다른 남미 국가인 아르헨티나와 함께 브라질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 브라질 VS 페루: 브라질과 페루도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양국관계도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나쁘다. 1909년에 브라질에게 영토 일부를 반강제적으로 할양당한 적이 있었고, 강대했던 잉카 제국의 후손을 자부하는 페루 입장에서는 브라질에 대해 땅만 컸지 아마존 밀림지역에서 사냥이나 하는 변방 야만인들이라고 엄청 무시하기도 한다. 거기다 페루는 브라질과 라이벌 관계인 아르헨티나와는 또 상당히 우호적이며 아르헨티나와 함께 브라질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결사반대한다.
- 에콰도르 VS 페루: 스페인의 남미 식민지 진출 이전 지금의 에콰도르 일대에는 키토 왕국 등 여러 남미 원주민들의 소왕국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페루 지역에서 살던 잉카족이 건국한 잉카 제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당했고. 이 일대의 나라들을 멸망시키고 정복한 잉카 제국은 이 지역의 남미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착취하였다. 이들은 전부 잉카 제국의 지배에 대항해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으나 번번이 잉카군대에 의해 진압당했다. 그러다가 잉카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다가 두 나라가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이후에는 국경 사이에 위치한 내륙 열대림 지역을 놓고 영유권 분쟁을 겪었고 이런 열대림 지역을 둘러싼 두 나라의 영유권 분쟁은 결국 1941년, 에콰도르-페루 전쟁으로 이어졌으나 결과는 페루군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에서 패배한 에콰도르는 브라질 리오에서 페루와 분쟁중인 열대림 지역 상당수를 페루에 양도하는 리오 조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열대림 지역의 자원확보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던 에콰도르는 1960년, 리오 조약을 파기하며 해당 지역에 대한 영유권 회복을 주장하며 페루와 대립하여, 그 결과 다시 페루와의 영토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올라 1981년과 1995년에 페루와 전쟁을 벌였지만 인구와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 했고[100] 결국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 미국 등의 중재하에 평화협정이 맺어져, 1999년, 에콰도르 대통령이 페루를 방문하면서 지금은 많이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영토 문제로 전쟁을 세 번씩 치른 만큼 에콰도르 사람들의 페루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축구에서도 두 나라 국가 대표들끼리 축구 경기만 붙어도 브라질-아르헨티나 사이 못지 않게 라이벌 전으로 번질 정도이다. 참고로 페루인들은 에콰도르인들에게 에콰도르를 자국 화폐를 포기하고 미국 달러를 채택한 미국의 남미 월경지라고 폄하한다.
- 엘살바도르 VS 온두라스💥: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이후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을 결성했다가 이후 연방 해체로 별개 국가들로 갈라선 뒤 국경 문제와 엘살바도르에서 온두라스로 넘어오는 엘살바도르인 불법 이민자들의 문제로 대립했었고, 결국 이로 인해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예선전 경기를 빌미로 전쟁까지 했었다. 게다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국경 지역의 폰세카 만 해역에 위치한 꼬네호(Conejo)[101]라는 이름의 섬이 있는데 이 섬의 영유권을 놓고 두 나라 사이에 영토 갈등도 있다.
- 콜롬비아 VS 베네수엘라: 한때 그란 콜롬비아의 일원이었지만 갈라졌고, 베네수엘라가 계속해서 콜롬비아 반군을 지원했기에 양국은 갈등을 겪고 있다. 게다가 콜롬비아는 남미의 강력한 친미 국가이고 베네수엘라는 강력한 반미 국가라는 차이점도 있다.
- 콜롬비아 VS 페루: 둘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후 푸투마요 강 유역 이남 지역 영토들을 두고 양국이 국경분쟁을 벌인 바 있었고,[102] 1930년대에는 페루-콜롬비아 국경 지역의 국경 도시 레티시아(Leticia)와 타라피카 등 인근 지역의 영유권을 놓고 전쟁도 했었다.
- 에콰도르 VS 콜롬비아◁: 한때 그란 콜롬비아 연방의 일원이었으나 에콰도르 지역에서 고위직 진출이 힘들었으며 그외의 정치적 혼란으로 결국 갈라섰다. 이후에는 국경지역에서 서로 군사적인 무력충돌까지 일으켰고 안데스 산맥 이북 지역의 에콰도르 영토들을 콜롬비아가 빼앗아가기도 했었다. 거기다 반군, 정부군 내전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콜롬비아를 탈출해 그나마 안정적인 에콰도르로 밀려들어오는 콜롬비아 난민의 수용 처리 문제와 콜롬비아군의 자국 영토 침범등으로 갈등을 빚기까지도 했다. 그래도 2010년대 들어 산토스가 집권한 이래로 국가관계는 나름대로 호전되어서 콜롬비아 정부군과 반군과의 협상을 중재해줄 정도가 되었다.
- 파나마 VS 콜롬비아◁: 한때 콜롬비아 영토의 일부로 콜롬비아와 한 나라를 이룬 적이 있었으나 콜롬비아 중앙 정부로부터 억압과 차별을 받아왔고 결국 파나마 운하 건설을 노리던 미국의 지원을 받아 콜롬비아에서 독립하는 등 파나마 국민들의 콜롬비아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콜롬비아로서는 파나마를 대놓고 적대하면 파나마 운하의 이권을 쥐고 있는 미국까지 적으로 만들수도 있는데다 남미와 북중미를 연결하는 파나마의 지정학적 특성상 무역, 교통등 여러 문제에서 콜롬비아가 남미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두 나라는 되도록이면 역사적으로 갈등은 있어도 사이 좋게 지내려고 하는 편이다.
- 파라과이 VS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벌어진 삼국동맹전쟁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게 크게 패배해 북부와 남부 지역 영토 절반 가량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영토로 넘어갔고, 인구는 절반 넘게 줄었으며, 남녀 인구비는 1:9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사이가 매우 안 좋기로 유명하고, 파라과이와 전쟁 당시에는 사이가 더 안 좋았으며, 삼국동맹으로 참전한 우루과이 역시 아르헨티나와는 사이가 좋지만 브라질과는 사이가 매우 안 좋은데 파라과이는 기어이 저 셋을 연합시켰다.
3.5. 오세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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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VS 뉴질랜드: 오세아니아는 국가 대부분이 섬나라로 이루어져 있어 해당 사항이 거의 없기에,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두 나라의 사이를 기술한다. 일단 정치적으로는 매우 가까운 사이인 반면에, 사석에서 이 두 나라 사람들은 상대국을 무시무시하게 조롱, 농담따먹기, 폭풍 디스질해가면서 서로 까고 논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술좌석에서나 어울리는 농담일 뿐이고, 정말로 정치적인 비난이나 상대국에 대한 증오심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호주인은 뉴질랜드를 양떼밖에 없는 촌동네[103][104]라고 여기며, 뉴질랜드인은 호주인을 술에 쩔은 얼간이정도로 본다. 이 농담의 강도가 장난아닌지라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간혹 사이가 나쁜 것 아닌가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냥 자기네들끼리만 낄낄대는 수준으로 막상 상대국 국민을 만나면 잘 지낸다. 이런 점에서 미국-캐나다와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사이가 좋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명백히 이웃나라/좋은 사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다만, 이웃나라들이 다 그렇듯 스포츠, 특히 럭비에 있어서는 상당히 경쟁심이 치열한 편. 참고로 호주에서는 뉴질랜드를 침략하자!(Invade New Zealand)는 내용의 TV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유튜브. 뉴질랜드의 군사력이 호주보다 약한 것을 까면서 놀리는 내용인데, 호주인이건 뉴질랜드인이건 누구나 농담으로나 여기지 이 광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뉴질랜드인이 대인배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 이들은 서로서로 이렇게 까면서 논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중국과 일본에서 한국을 침략하자 또는 한국에서 중국 또는 일본을 침략하자라는 내용의 TV 광고가 나온다면 어찌될지 한 번 상상해 보자. 특히나 이 두 나라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좋아지게 된 계기는 갈리폴리 전투 때 희생된 앤작군을 기리는 앤작데이의 영향이 크다. 이 두 나라가 앤작데이만큼은 국가 공휴일로 공동 지정할 정도다.
- 키리바시 VS 투발루◁: 영국 식민지 시절 때는 엘리스길버트 제도로 통합되어 있었으나, 투표를 통해 1978년 투발루가 독립, 1979년에는 키리바시로 분리독립이 되었다. 같이 있었던 시절에는 그다지 서로 좋은 관계는 아니었고, 독립 이후 해양 국경 문제가 2012년까지 있었으나 2012년 8월 29일, 각각의 지도자들이 바다 경계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고 서명함으로써 그래도 어느 정도 나아진 셈이다. 참조. 게다가 둘 다 해수면 상승 및 해일 등의 자연재해를 겪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도 해결하려는 모습도 조금씩 보이는 듯 하다.
- 파푸아뉴기니 VS 솔로몬 제도: 부건빌 내전으로 인한 영향이 있어서이다. 부건빌 섬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솔로몬 제도가 부건빌을 도와주었는데 이유는 부건빌 섬의 원주민들은 솔로몬 제도 원주민과 같은 민족계열이었기 때문이었다. 부건빌 섬은 솔로몬과 가까워서 북솔로몬이라고도 불렸다. 부건빌 전쟁으로 인해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제도는 관계가 좋지 않다.
4. 두 대륙 간
ㄱㄴㄷ 순.- 대한민국 VS 러시아▶◆[RU][106]: 6.25 전쟁때나 1970~80년대까지는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는데, 페레스트로이카의 일환으로 한국-소련이 수교한 이후에는 그렇게 사이가 나쁘진 않다. 실제로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 #에서도 한국인의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나쁘지 않고(긍정적 53%, 부정적 35%), 러시아도 해외문화홍보원 내 조사에서 두번째로 한국에 호감도가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 다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한국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에 속하기에 동맹 수준까지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운 편이긴 하다.(다만 일본에 대한 견제로 인해 러시아를 지지하는 진보쪽층이 있다.) 그러나 푸틴 행정부가 대두하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 한국이 대러제재에 참여하고 러시아를 비판하면서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함으로서 다시 나빠졌다. 게다가 2024년에는 북러조약으로 북러 양국간 사이가 밀착되면서 양국 관계는 냉각되었다. 한국인의 반러감정도 냉전 때 수준으로 치솟는 중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한러관계에서.
- 호주 VS 동티모르: 원래는 호주가 동티모르 독립을 지원하고 각종 인프라를 구축해 주어 좋은 관계였다. 그러나 호주는 동티모르의 석유자원을 꿀꺽하려고 도청장치를 설치했다. 그래서 이 도청장치 하나로 호주는 동티모르의 석유자원을 많이 가져갔다. 결국 나중에 동티모르 정부 청사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되고, 즉각 동티모르 정부는 호주 출신 변호사를 고용하여 국제사법재판소에 호주의 자국에 대한 내정간섭 행위를 제소하였다. 그런데 호주는 반성은 커녕 적반하장으로 증인을 감금하고 해당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문서를 압수하는 등 수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한술 더 떠서 국제사법재판소의 중재 역시 철저하게 무시한다. 당연히 두 나라의 외교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으며, 동티모르도 더 이상 호주에 호의는 없다는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 미국 VS 러시아◆[RU]: 러시아 극동의 추코트 반도와 알래스카[108]가 베링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109] 특히 냉전 당시 공산진영의 대장 노릇을 하던 소련과 자유진영의 대장 노릇을 했던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미러관계 참고.
- 일본 VS 러시아◆[RU]: 러시아의 사할린과 쿠릴 열도, 일본의 홋카이도가 각각 라페루즈 해협과 네무로 해협을 끼고 있다. 200년이 넘어가는 역사적인 숙적 관계다. 러일전쟁과 쿠릴 열도 분쟁으로 설명 끝. 최근 일본 우경화와 군사대국화가 러시아에게 위협적이다. 쿠릴 열도 분쟁에서 러시아가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가장 원한관계가 없는 편에 똑같이 일본이랑 영토문제로 대립하는 대한민국에 접근하고 있다.
- 중국 VS 러시아(?)◁: 러시아는 중국과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쪽도 청나라때부터 충돌한 역사적인 숙적으로 냉전 당시엔 공산권의 패권을 두고 다퉜고 국경분쟁도 있었다.[111] 그리고 현재도 연해주가 큰 떡밥이 되며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으나 양국의 주적인 미국,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는 중이라 복잡한 관계다. 더 자세한 것은 중러관계 참고. 소련은 중국과 분쟁 이후 장제스가 끊어놓은 대만과의 비공식 관계를 복원했고 현재도 유지 중이다. 대만 총통인 장징궈는 부인이 소련인이기도 했다.
- 러시아 VS 몽골◁: 중국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관계도 좋지는 못한 편이다. 유이하게 인접한 두 나라가 군사력 2~3위의 강대국에다가 둘 다 몽골과 안 좋은 사이들이다.[112] 러시아 입장에서는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몽골과 그 후신국가들의 지배를 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고, 또한 몽골 입장에서도 소련 위성국 시절 몽골이 자신들만의 자랑인 칭기즈 칸을 악마로 그려내고 모든 민족 관련 문화를 부정하게 했던 70년 가까운 역사가 있기 때문. 심지어 1960년대에는 몽골의 교육부 장관이 조상의 역사를 알자며 칭기즈 칸 유적지를 발굴하고 논문을 펴내자, 관직에서 박탈하고 시골로 쫓아냈다가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소련은 유목을 금지하고 몽골의 전통을 파괴했는데 할힌골 전투를 계기로 몽골과 만주 지역의 유목민들에게 반제국주의, 몽골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몽골 전체인구의 5%나 되는 몽골인들이 숙청당했다. 지금도 몽골은 러시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좋은 것도 또 아니다. 다만 요즘들어서는 중국의 깡패짓이 너무커서 그런지 몽골정부는 러시아하고 친하게 지내려하며 몽골인들의 대러감정도 상당히 좋은편이다.
- 스페인 VS 모로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한 때 모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며 지금도 영토 분쟁 문제로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다만, 난민 관련 문제는 양국에서 서로 협력하고 있으며,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 이탈리아 VS 리비아: 지중해에서 해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탈리아에게 침략당해서 이탈리아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이탈리아에 저항하는 리비아 시민들은 학살당했다.
- 인도네시아 VS 호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간의 갈등에서 호주가 말레이시아를 편든 적이 있으며, 동티모르 독립을 호주가 지지하면서 갈등이 많다. 동티모르 문제로 인해 양국 관계가 파탄에 이르기 직전에 대한민국이 해당 국가들의 외교관계를 중재해주기도 했다.
- 튀르키예 VS 시리아💥❌◆: 시리아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으며, 시리아 독립 이후 바트당이 집권하며 반서방 정책을 펼치면서 친서방 정책을 펼치던 튀르키예와 갈등이 적지 않았다. 2010년대에는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자 튀르키예가 자유 시리아군을 지원하고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면서 사이가 이전보다 훨씬 안 좋아졌다.
- 튀르키예 VS 이란💥❌◆: 튀르키예와 동맹인 아제르바이잔과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가 이란이고, 이슬람교라는 것 외에는 양 국간 공통점이 거의 없다. 튀르키예는 친미 + 반중 + 반러 국가, NATO 회원국이고, 세속주의가 강한 국가이고[113], 반대로 이란은 반미 + 친중 + 친러 국가, NATO의 주적,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튀르키예는 EU에 가입하려고 하고, 이란은 미국, 영국과 갈등을 겪으며 이슬람 극단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시리아와 달리 양국은 수교 관계지만 이란의 불안한 정치,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난민이 발생하며, 이는 튀르키예에 오는 관광업에 마이너스가 된다.
- 프랑스 VS 알제리[114]: 이슬람 국가 VS 기독교 국가. 알제리는 본래 프랑스의 식민지[115]였으나 알제리 전쟁을 통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프랑스는 그 과정에서 독립군, 민간인 할 것 없이 수많은 알제리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그 때문에 알제리인들은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몹시 심하고 프랑스인들을 공공연히 배척하고 있다.
5. 관련 문서
[1]
해당 국가에서 사이 안 좋은 국가로의 방문을 금지하거나 심하게 제한하는 경우 혹은 해당 국가에서 안 좋은 사이의 국가의 국민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심하게 제한하는 경우.
[2]
예시로 북한은 대한민국(한지붕 두가족)/일본(안 좋은 사이)/중국(좋은 사이)과의 사이 역시 삼색이다.
[3]
애당초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까닭 중 하나가 제멋대로였던 한자음을 통일하기 위함이었다.
[4]
다만 당시에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이었던 데다가
일제강점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기성세대의 영향으로 인해 민간에서는 반일감정이 강하게 남아있던 시기였다.
[5]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는 한국의 국익을 지나치게 희생하는 굴종 외교라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일본 호감도가 어느 정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 예로 2024년
일본 정부의 라인야후 네이버 지분 매각 압박 논란이 불거지며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반일 여론이 생기긴 했지만 예전처럼 반일감정이 격하게 번지지는 않았다.
[6]
2050년을 넘기면 아예 본 문서에서 빠질 수도 있다. 이 시기쯤 되면 한국 국민 99.9% 이상이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대심 자체가 매우 희미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빠르면 2030~2040년대도 무리라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불가능은 아니다.
[7]
현재는 물론 냉전시절에도 마찰이 없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제1공화국 시절엔 독립 직후인 탓도 있고 해서 양국간에 정상적인 왕래조차 불가능했고, 박정희 대통령 재임 때에도
김대중 납치 사건과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국교 단절을 고려할 정도로 그 사이가 나빴다.
[8]
특히
쓰시마 섬은
혐한 감정이 심한 지역임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일본 불매운동 당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도 쓰시마였다.
[9]
송나라와 명나라는 고려, 조선과 우호적이었으므로 제외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세세히 따지면 마냥 그렇진 않았다. 송나라의 경우
남송 때는 고려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외교가 단절되었고, 명나라 또한 조선 초기였던 태조 이성계 시기에는 조선과의 사이가 안 좋았으며(심지어 이성계는 요동 정벌에 반대해 위화도 회군을 일으켜 요동정벌로 명나라와 전쟁을 벌이려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린 사람이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군이 조선군을 도와 일본군을 물리치기도 했지만 약탈 등 조선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도 했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패하여 조선과 명나라의 국교가 단절될 때까지 명나라 사신들이 조선에 대한 보상심리로 조선에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으며 병자호란 이후에는 조선이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청나라의 명나라 침략을 돕기 위해 군사를 보내면서 명나라와 완전히 적대관계가 되었다.
[10]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방권이나 다른 먼 나라들 사이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일례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중국 내 관중만 입장시키고 예정대로 치르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여 전세계를 상대로 어그로를 끌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대회는 21세기 역대 최악의 국제 스포츠 대회로 남게되었다.
[11]
현재 중국의 김치공정, 한복공정과 더불어 중국의 문화뺏기가 한국인들의 반중 감정을 더욱 복돋고 있다.
[12]
기적의 검을 위시한 중국발 양산형 게임의 저질&허위 광고들이 유튜브 등지에 지속적으로 송출되어 수많은 이용자들이 불만을 표하고 있는 상태이다.
[13]
중국대표권 분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내 중국대표권 획득에 반대했다.
[14]
실제로 유럽과 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으로 보아 독일을 일본에, 러시아를 중국에, 폴란드를 한국에 빗대면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15]
예외적으로 프랑스-스코틀랜드 관계는 프랑스-잉글랜드 관계보다 좋은 편이다. 잉글랜드에 대항하기 위해 오랫동안 동맹을 형성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군에서는 스코틀랜드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로버트 브루스군의 행진곡을 군대음악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동맹관계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16]
영국-프랑스는 군사적으로 우방국이고 서로 합동훈련도 자주하기는 하는데, 미국/영국이 설치는 꼴을 보기 싫다고 꽤 오랜 기간 프랑스는
NATO에서 탈퇴한 상태였다. 하지만 NATO 통합군에서만 탈퇴한 것이었고, 1995년에는 군사위원회에 복귀, 2009년 통합군에도 정회원으로 복귀했다. 사실 프랑스는 전통적인 강국이었지만 최근 수십 년들어 영향력이 약해지고 신흥강자 미국이 들어선 데에 대한 반감이 없지 않아 있는 편이다.
[17]
그러나 그 다음날 바로 테러가 발생하고 말았다.
[18]
두 번의 세계대전 모두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같은 편으로 맞서 싸웠다.
[19]
독불관계와 더불러 유럽의 대표적 라이벌 구도라는 평가가 있는 듯하다.
[20]
색슨=작센
[21]
단, 신성 로마 제국은 독일만으로 치기는 어렵긴 하다.
카를 5세 참조.
[22]
알퐁스 도데의 소설 <
마지막 수업>이 이것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독일이 알자스-로렌 지방을 점령하게 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23]
한편
자를란트 역시 프랑스와 독일의 영향이 같이 미치던 곳이었다. 1959년 독일에 편입하기 전까지 자를란트의 화폐에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병기되기도 했다.
[24]
알자스-로렌 지역은 공식적으로 프랑스령과 독일령을 번갈아가며 실효통치국들이 7번 바뀌었다.
[25]
서독의 초대 수상
콘라트 아데나워가 대표적인 친프랑스 인사였다. 이 양반은 서독 수립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때도 원체 친프랑스적인 행보를 보여서 1차대전 패배 이후 프랑스에 대한 원한이 뼛속 깊이 사묻혀있던 당시 대다수 독일인들에게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들었을 정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돌프 히틀러의 출현과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그로 인한 엄청난 피해로 인해 그가 내린 판단은 적절했다.
[26]
2011년의 여론 조사에서는 프랑스 국민이 가장 호감을 느끼는 국가로 독일이 뽑히기도 했었다.
[27]
다만 이와는 별개로 라이벌 순위에선 영불이나 영독보다 높은 순위에 두는 경우도 있는 편이다.
[28]
영불관계와 더불러서 유럽의 대표적 라이벌이라는 평가도 있는 듯하다.
[29]
그리스는 헬라족, 불가리아는 남
슬라브족이며 같은
백인 인도 유럽 민족에 이웃한 나라들임에도 민족, 언어적인 차이가 있다.
[30]
물론 불가리아는 추축국이긴 했으나 대전 기간 내내 독일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는 등 가해국으로 보기에는 다소 애매하다. 자세한건
추축국,
상임이사국 문서 참고.
[31]
2009년에 유럽연합에 회원국 가입 신청서도 내고 2012년 후보국 지위도 받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더군다나 유럽연합 가입은 회원국가들의 만장일치로 승인되는데 불가리아가 먼저 가입해 회원국이 된 이상 승인될 가능성은 없다. 다만 불가리아는 발칸반도를 나가 중/서부 유럽으로 나가 무역하기 위해서 세르비아의 육로가 필요하기에 세르비아의 EU 가입에 반대하지 않는 편이다.
[32]
특히
민주당
정권
시
기에만 그랬다.
민주당은 대체로 평화적 통일과 대북 대화에 긍정적인 입장이라서 가능했지,
보수정당은 이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북한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고 설사 추진한다 해도 대북강경이라는 대외적 이미지 때문에 대놓고 공개적으로는 추진하기 어려운 입장이기 때문.
[33]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는 언어학적으로 보면 동일한 언어의 방언에 해당한다.
마인어 참고.
[34]
탈퇴와 관련된 규정이 따로 없어서 당시 UN의 골치를 썩혔다. 거기에 탈퇴한 것으로 쳐도 인도네시아가 재가입을 하게 되면 신규가입 절차를 밟아야 하니 이 또한 귀찮은 문제였기에 UN은 인도네시아가 복귀하자 그동안 탈퇴한 것이 아니라 출석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하였다. 이로서 재가입 절차도 치를 필요가 없고 굳이 탈퇴에 대한 규정을 새로 만들 필요도 없게 되어 유야무야 넘어갔다.
[35]
2005년부터 5년간, 말레이시아에서는 29,759명의 이민법 위반자가 태형에 처해졌으며 그 중 60%가 인도네시아인이다.
[36]
물론 중국은 이를 자국 역사로 간주한다.
[37]
물론
후금은 만몽연합정권의 성격을 띄기 때문에 한족 입장에서는 유목민족 지배기 시즌2. 그리고 제일 원흉인 만주족은 조용히 기어들어갔다.
[38]
사실 중국이 외몽골을 독립국가로 놔둔 것도
국공내전 당시 외몽골 공산당이 공산당을 지원한 덕택이다. 그 때문에
대만은 외몽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미수복 영토로 여겼었다.
[39]
그런데 사실 몽골은 중국 내몽골의 몽골인들을 몽골 사람으로 생각 안하고 중국 한족만큼이나 안 좋아한다. 참고로 칭기즈칸의 일족에 가까운 건 내몽골 쪽이다.
[40]
몽골어로
돼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한 마디로 돼지새끼라며 욕하는 격이다.
[41]
실제로도 원래 영국 식민지화 이전에 미얀마 일부 지역에서 살았던 인도계 토착 소수민족이었는지, 아니면 영국의 식민지배에 의해 인도와 방글라데시 일대에서 미얀마로 이주해온 집단들이었는지 기원에 논란이 있는 종족들이다. 자세하건 로힝야 문서 참조.
[42]
아유타야-방콕 사이의 거리는 100km 조차도 안된다 (부산-대구 거리).
[43]
심지어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라오스는 태국과 역사적, 정치적으로 좋은 감정이 전혀 없거나 사이가 안 좋은데도 푸미폰 태국 국왕의 서거에 조의를 표했었다.
[44]
다만 미얀마는 숙적관계인 태국을 견제하고자 남사군도와 암발랏 영유권 문제로 인도네시아, 베트남과도 사이가 나쁜 말레이시아와도 사이가 긴밀하다.
[45]
베트남을 일본에, 캄보디아를 한국에 빗대면 적절하다.
[46]
북한보다도 중국 식당이 없다.
[47]
참고로 일반적으로 중국과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 수교한 경우가 많은데 부탄은 대만과도 수교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교 정책 상 대만과 부탄은 충돌할 거리가 없어서 미수교 상태라는 점 때문에 양국 간 사이가 나쁘지 않으며,
부탄은 20세기 중반까지 쇄국 정책을 폈던 영향으로 현재도 수교국이 20~30개국에 불과하다.
[48]
호메이니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이단자라고 대놓고 까버린 것이 원흉이였다.
[49]
본래 쿠웨이트는 2017년 카타르 단교 사태 초반에 카타르와 사우디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려 했으나 협상이 실패하자 사우디에게 얻어 맞는 형국이었던 카타르를 지원했다.
[50]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51]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2019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이다.
헨리크 미키타리안이 아르메니아 출신이라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올림피아 스타디온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참가하지 못했고, 결국 당시 소속팀
아스날 FC는
첼시 FC에게 1:4로 완패했다.
[52]
물론 아사드 정권이 내전에서 승기를 잡게되면서 반군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지만 요르단 정부는 아사드 정권을 달갑게 보지 않고있다..
[53]
근데 인도 역시 이슬람교도의 숫자도 힌두교도 못지 않게 많이 있다...
[54]
실제로 1990년대 후반 파키스탄은 개판이 된 아프간을 파키스탄의 괴뢰국가로 만들기 위해 정보부
ISI를 시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정권 장악을 지원한 적이 있었다. 괜히
블랙 옵스 2 같은 게임에서 ISI가 악역으로 나온 게 아닌 셈이다.
[55]
하지만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현재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탈레반 등이 일으키는 테러와 민간인 학살, 내란 등에는 1990년대 말 탈레반의 아프간 정권 장악을 지원 및 방조한 파키스탄 쪽에도 잘못이 매우 많이 있다.
[56]
물론 지리 거리상으로 예멘보다 오만 본토와 더 가깝다.
[57]
다만 카자흐스탄 역시 백인 형질이 강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있다.
[58]
성경의 구약 시점에서도 시편 등지에서 언급이 되는데 바빌론(=이라크, 메소포타미아)이 페르시아에 줘터졌을 때 다니엘 예언자가 이직을 하기도 했다.
[59]
이는 미국이 이라크에 생화학무기가 있다고 주장한 가장 강력한 근거 중 하나였으나, 다 때려부순 뒤 찾아보니 결국 발견되지 않아 아랍인들의 혈압 상승에만 크게 일조하고 말았다.
[60]
이집트, 요르단은 미국의 반강제적 화해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61]
물론 인도도 방글라데시만큼
빈부격차가 심하며, 빈곤층도 굉장히 많다. 하지만 경제력이나 군사력, 영토 규모 등 총체적으로는 인도가 방글라데시보다 더
강대국이다.
[62]
실제로 광동은 중국의 정치지형 변화의 근원지로 손 꼽힌다.
쑨원도 광동인이다. 그리고 광동은 베이징 등 북방 지역 위주의 현 중화인민공화국을 무작정 따라가기에는 너무 이질적이다. 말도 생김새도 너무 확연히 다르다.
[63]
2003년 태국의 유명인사가 앙코르와트를 태국의 문화재라고 발언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64]
반면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같은 다른 구 유고권 국가들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제우스, 헤라 같은 그리스식 이름을 더 많이 쓴다.
[65]
8~11%.
[66]
로마 제국(당연히
동로마 제국 포함)과
기독교의 정통성 문제
[67]
현재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반도 지역과 가까운 레스보스나 로도스, 사모스, 히오스 등 에게 해의 그리스령 섬들은 모두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로잔 조약에 의해 그리스가 흡수합병하면서 전부 그리스 영토가 되었다. 대략 일본 큐슈 주변의
쓰시마나
이키, 고토 제도 등 일본령 소규모 섬들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부 한국 영토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68]
물론 무장은 사용하지 않고 꼬리잡고 락온만 한다. 하지만 명백한 영공 침해일 경우 진짜로 날려버릴 때도 있다.
[69]
해당 시기에 폴란드인들은 독일인들에게 엄청난 종교 탄압을 받았다. 현대 폴란드의 구 독일령 지역에 살던 프로이센 치하 폴란드인들은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루터교회로 개종하도록 강요당했으며, 러시아 치하 폴란드인들 중
정교회로 개종한 이들은 훗날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 제국이
러시아령 폴란드를 점령한 이후 폴란드 토착 문화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구 러시아령 폴란드의 러시아계 이주민들을 탄압함에 따라 함께 탄압당했다. 가톨릭을 믿는 대다수 폴란드인들과 정교회를 믿는 폴란드인들이
일치단결로 의견을 내놓는 것으로 대표적인 게
프로이센 왕국·독일 제국의 비개신교인 탄압에 대한 비판일 정도다. 만약 폴란드에서, 특히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프로이센 왕국·독일 제국의 비개신교인 탄압을
종교 개혁이라며 옹호한다면 성 요한 대성당(가톨릭)에서든 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정교회)에서든 수많은 신자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이다.
[70]
폴란드 발음은
오시비엥침.
[71]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정확히는 비 오는 날에 바르샤바 봉기 기념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몇 시간 동안 참배했다. 이를 계기로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
ostpolitik)이 탄력을 받았고, 나아가 독일 통일의 주춧돌까지 놓게 되었다.
[72]
1차 대전-서프로이센, 포젠, 2차 대전-슐레지엔, 포메른, 브란덴부르크 동부, 동프로이센 남부.
[73]
물론 그 이전에도 러시아랑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참교육 하는 등 동유럽의 패자로 군림하기도 했지만.
[74]
2차 대전 당시 스웨덴은 중립노선을 유지하여 나치의 침공을 면하였지만 노르웨이는 덴마크에 이어 나치의 침공을 받았다.
[75]
사실 마르타와 당시 스웨덴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5세는 조카로 그리 가까운 관계도 아니었기에 국왕 역시 이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노르웨이 왕실을 보호해주면 나치 독일이 스웨덴마저 침공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녀를 꺼렸다고 한다.
[RU]
2022년에 러시아에서 정한 러시아에 대한 비우호국
[RU]
[78]
우크라이나 영토를 흐르는 드네프르 강의 동부는 러시아어를 쓰는 친러시아 성향이고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를 쓰며 독립 성향이 강하다. 이 갈등을 유발한 게 바로
니키타 흐루쇼프. 흐루쇼프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라 그 지역에 인심 쓰느라 러시아인이 많은 지역까지 떼줬다.
[79]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때 친서방계 후보였던
빅토르 유셴코(이 대선에서 대통령 당선)와 친러계 후보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와 그들의 지지자들 간의 갈등이 결국 오렌지 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
[80]
이탈리아
AC 밀란 소속 축구선수 칼라제는 조지아인으로 시즌 중 징집(!) 당했다. 지금은 은퇴하고 부총리로 선임되었다.
[81]
원래 네움 등 보스니아 남부 해안가 지역은 크로아티아의 영토였는데 두 나라가
유고슬라비아였을 당시
티토 유고
대통령이 이 지역을 보스니아에게 할양하면서 국경이 이상해졌다. 그래서 지금도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관광지인
두브로브니크는
월경지로 남아 있다.
[82]
크로아티아는
가톨릭, 보스니아는
이슬람.
[83]
단적으로 스페인의 공식 언어 중 하나인 북서부 지방의
갈리시아어는
포르투갈어의 직계 조상인 반면 주류
스페인어인 카스티야어와는 별로 연관이 없다.
[84]
말이 좋아 아라곤 왕국이지, 애초에 아라곤 지방은 바위산으로 뒤덮인 별로 영양가 없는 땅이라 늦어도 12세기 후반부터 아라곤의 수도
사라고사는 대관식만 치르는 곳이고, 실제로 국력을 창출하는 부와 인구의 핵심은 지중해 교역망의 서부 관문 역할을 했던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 발렌시아 일대였다.
[85]
다만 슬로베니아는 오스트리아 관할, 크로아티아는 헝가리 관할로 주체가 달랐다.
[86]
대기근 이전의 아일랜드 인구는 900만 명이었는데, 1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남북 아일랜드 인구 합쳐봐야 600만 명에 불과하다.
[RU]
[RU]
[89]
일례로 헝가리의 유명한 작곡가
버르토크 벨러의 출생지는 현재 루마니아에 있다.
[90]
물론 종족들의 구역을 무시하고 자기들 편의에 의해 획정한 것도 있지만,
종교의 경우 분열 정책을 써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종교와 민족을 초월해 단결해서 영국을 물리치자는 마흐디 운동을 진압한 후, 영국은 수단 통치 때 철저한 분열 정책으로 남북이 서로 다르다는 인식을 심었다.
[91]
유엔과 국제사회의 여러 국가들은 남아공의 나미비아 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나미비아를 남아공의 정식 영토로 인정하지 않았다.
[92]
애당초 남아공이 나미비아를 지배했을 당시 남아공의 권력층들이 백인 세력이었으니.
[93]
현재는 그 자리에
북수단 왕국이 생겼다.
[94]
2016년 여론조사에선 쿠바국민의 70%이상이 미국을 호의적으로 바라본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으며 쿠바로 관광온 미국인들도 좋게 바라보고 있다.
[95]
특히 브라질은 영토, 인구가 볼리비아보다 더 크고 막강한 강국이기 때문이다.
[96]
덕분에 볼리비아는 현재 해안선을 접한 다른 이웃 국가들인 페루의 일로 항과 리마 항,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항을 빌려서 쓰고 있다.
[97]
하지만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방대한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가 4500만명에서 1000만명 남짓으로 워낙 적어 실질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스페인어권 국가들중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멕시코이다.
[98]
다만 아르헨티나보다 인구 비중이 적어서 그렇지, 브라질도 인구 비중상으로는 백인이 근소하게 더 많다.
[99]
이 둘은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월드컵의 개최지 문제로 서로 싸웠다. 브라질이 일본을 지지하자 아르헨티나가 이에 반발하며 한국을 지지했고, 남미 전체가 둘로 나뉘어 으르렁거리다
FIFA의 중재로 공동 개최라는 결과를 만들었다.그리고 브라질은 한국에서, 아르헨티나는 일본에서 조별리그 경기를 했고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 광탈
[100]
영토, 인구 규모에서 페루가 에콰도르보다 더 숫적인 우위에 있었다. 물론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여서 현재 페루의 인구가 3251만명인 것에 비해, 에콰도르는 자국 인구 수가 1737만명으로 페루보다 적다.
[101]
스페인어로는
토끼.
[102]
결국 콜롬비아는 페루와 맺어진
살로몬 로사노 협정에 의해서 푸투마요강 유역 이남 지역을 페루에게 넘겼다.
[103]
이는 뉴질랜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로, 뉴질랜드 인구는 약 500만명, 양은 3000만 마리가 있다. 사람보다 양이 더 많은 나라라는 것이 농담이 아니다.
[104]
호주에는 수백 개가 넘는 뉴질랜드와 양에 관한 농담이 있다.
[RU]
[106]
단, 대한민국의 경우 대러 제재를 다른 서방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형식적으로 했으며, 러시아의 경우 대한민국을 비우호국으로 정했으나 타 비우호국에 비해 한국을 비교적 소극적으로 제재하고 있으며, 여행금지구역(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을 제외하면 입국이 다소 까다롭긴 하나 실질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RU]
[108]
예전에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는데 채산성이 없다고 생각한 러시아가
미국에 싸게 팔아치웠다.
[109]
알래스카는
괌이나
사이판,
미국령 사모아 같은 해외영토 자치령과 달리 엄연히 미국의 50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월경지이긴 해도 미국의 다른 주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진짜로 이웃나라 맞다.
[RU]
[111]
결국 이는
중소결렬로 이어졌고, 중국의
베이징 지하철 건설에 큰 차질을 주었다. 지하철 사업이 소련과의 합작사업이었기 때문.
[112]
그나마 국경을 직접 맞대지 않은 이웃나라인 카자흐스탄은 몽골과 나쁜 사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좋은 사이도 아니다.
[113]
다만 원래는 이래야 정상이지만 문제는 에르도안의 역행하는 외교에 북키프로스 때문에 중국, 러시아에 기울고 있다는게 함정.
[114]
이 두 나라를 이웃나라로 보기엔 좀 거리가 멀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두 나라는
지중해만 건너면 바로 마주보고 있고 그 거리도 가까운 편이다(대략
부산에서
오사카 정도 거리다). 그리고 알제리와
이탈리아 사이의 거리(여기는 대략 알제리 동북부에서
사르데냐 섬까지의 거리), 알제리 서북부지방과
스페인 사이의 거리를 보면 훨씬 더 가까워서 논란의 여지없이 그냥 이웃나라다.
[115]
해안 지역은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행정구역, 즉 본토 프랑스로 취급되었다. 물론 대우는 식민지와 다를 바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