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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안 좋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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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삼각관계
2.1. 한중일 삼국지
2.1.1. 관계2.1.2. 관계 변천사2.1.3. 한중일 간 관계 비교
2.2. 영프독2.3. 미국-캐나다-멕시코2.4.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3. 대륙별4. 두 대륙 간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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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한중일.jpg
삼각관계로 유명한 한중일 관계를 풍자한 컨트리볼 만화
이웃나라들 중 사이가 좋지 않은 사례를 정리하는 문서지만, 이 상위 문서에서도 서술된 내용과 같이 붙어있는 나라들이 사이가 좋은 경우는 보기 드물다. 오랫동안 같이 있으니 충돌할 일이 많기 때문. 따라서 사실상은 각 이웃 국가의 사이가 나쁜 이유를 개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범례
양국 간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 중이거나 국지전 이상의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경우 💥
서로 수교하지 않았거나 단교한 경우
제재중인 관계[1]로 왕래가 자유롭지 못함
회복에 성공했거나 점차 관계 개선의 조짐이 보이는 경우
과거에 좋았거나 무난하게 지냈다가 최근 10년 이내의 특정 사건을 기점으로 급격히 관계가 악화된 경우

2. 삼각관계

2.1. 한중일 삼국지

워낙 할 말이 많은 데다가, 셋 다 마냥 척을 져야만 하는 적대국으로도 사이좋은 우호국이라기도 보기도 애매하기 때문에, 따로 목차를 분리한다.

2.1.1. 관계

일단 문화적으로도 같은 한자문화권이라서 서로 관련이 깊고 이를 흔히 동문동종(同文同種)이라 부르는데 이는 문자와 인종이 같다는 뜻이다. 일본어는 문장 자체에 한자가 상당히 많이 들어갈 뿐더러 가나 또한 한자를 변형한 문자이다.
한글은 한자와의 차별점이 뚜렷하지만 이 역시 한자와 같은 방형(사각형) 문자이며 결구법 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한자와 친근한 문자이다. 또한 한국어의 상당 부분이 한자 단어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 한자음을 한글로 쓰는 형식이기 때문에 치환이 자유롭다.[3]
위와 같은 이유로 한중일은 많은 갈등과 교류가 상존하는 애증의 관계로 표현되고,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관계이다.

2.1.2. 관계 변천사

2.1.3. 한중일 간 관계 비교

물론 일본 대중문화 개방,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월드컵 공동개최, 일본의 한류 열풍 및 양국간 무비자 입국 실시 등으로 양국은 일시적으로 좋은 관계를 누리기도 했으나 그때에도 정치적 앙금은 남아있었고, 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도 한일 무역 분쟁으로 인한 일본 화이트리스트 제외등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 양상이 형성되었다.
다만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 이후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보가 심해지고 북중러 3국이 밀착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한국과 일본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 동안 응집력이 약했던 제1세계 진영이 다시 모이기 시작함에 따라 2010년대 내내 얼어있었던 한일 양국의 표면적인 협력도 2020년대에는 미국의 주도 하에 재개된 양상이다.
또한 현재의 일본과는 몇몇 정치적 갈등이 남아있을 뿐, 양국민들의 방한, 방일 인원은 전반적으로 증가세[8]이고, 일본 내 극우 세력의 영향력이 예전에 비해 크게 감소함에 따라 2020년대 이후 일본 화이트리스트 복귀등과 같이 한일관계는 점차 개선되어 가는 추세이다.
현대에도 6.25 전쟁 당시 중국은 북한을 지원하며 남한 주도의 통일을 방해하였고 여전히 중국은 한국의 주적 북한을 옹호하기 때문에 국군도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삼고 있다. 중국의 경우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를 자국의 안전 및 역내 패권을 위해 필요한 곳으로 보고 있어서,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자 상기 언급한 한국의 약점을 이용해 한한령을 시행하였고 이를 계기로 양국의 상호간 국민감정이 이전에 비해 크게 악화되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열악한 인권 상황, 후진적인 정치 체제 및 검열, 일부 중국인의 중화사상 및 민폐 등이 대대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여 반중/ 혐중 정서가 심화되었다. 2017년 10월 31일 양국이 한중관계 개선에 합의한 이래로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다시 한한령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지만, 한국인들의 경우 한한령으로 냉담해진 대중 감정이 미세먼지, 코로나, 동북공정, 조선족, 중국의 친북 행보 등 후술하는 각종 이슈와 맞물리며 더욱 악화되었다.
거기에 2020년대를 기점으로 훨씬 노골화된 중국의 패권주의, 팽창주의적 행태와 홍콩 탄압 문제, 코로나19 펜데믹[10], 동북공정, 문화공정[11], 양산형 게임[12] 등이 쐐기를 박아 중국에 대한 인식이 더더욱 나빠지고 있으며, 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사드 보복) 조치, CHIP4 등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은 사실상 적대 국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외교적으로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1970~1980년대에는 중국과 일본은 이례적으로 좋은 관계를 누렸는데 6.25 전쟁 이후 내내 반공 스탠스를 유지하던 대한민국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친중적 행보로 일관하던 일본을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일수교 이후 중국 측에서 중국 내 진출한 일본 기업이 한국과 교류하는 것을 금지해서, 한국 기업이 피를 많이 봤다.
하지만 그 후 중국이 급성장하자 일본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결정적으로 센카쿠 열도 문제로 촉발된 2010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로 감정이 나빠졌다. 현재는 패권주의 성향을 보이는 중국에 맞서 중국위협론으로 세계를 무대로 한 반중 선동 및 미국,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외교를 통한 대(對)중국 포위망 형성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중국은 중국대로 일본의 이러한 행보와 역사적 이유, 영토 문제 등으로 일본을 고까워한다.
근래에는 한반도 정세에 따라 아베 정권이 중국에 간혹 추파를 던지기도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고, 근본적으로 이 두 나라는 각자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을 대표하는 지정학적 포지션, 진영 논리, 역사적 앙금, 그리고 정치 체제의 차이 때문에 관계가 가까워지기는 어렵다.

2.2. 영프독

말이 필요없는 중세부터 이어온 전통적인 앙숙관계. 한중일 관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유럽 쪽 사람들에게, 이 세 나라의 관계가 한중일 관계와 비슷하다고 하면 바로 이해한다는 말도 있다. 다만 21세기 국제정세 및 신냉전 시대의 안보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한중일 관계는 유럽으로 따지면 독일-러시아-폴란드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14]

다만, 지금은 사이가 좋은 편이다. 한중일은 말 그대로 서로가 냉전에 가까운 사이인 반면 영프독 한중일 관계에 비하면 단순한 지역 감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중일은 서로 감정 실어서 욕을 하는 것이고, 영프독은 친한 친구끼리 개드립치며 놀려대는 것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이야 피터지게 싸웠지만 2차 대전 때 서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동쪽에서 소련이 강성해지자 서로 힘을 합쳐야 된다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동구권의 경계에 선 독일이 다시 배신 때리기도 힘들어졌고, 미소양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관계회복의 계기가 되었다. 2010년대 후반에는 브렉시트 문제로 금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현재까지도 유로스타 국제열차를 잘 운행하는 등 항공기, 선박으로만 교류하고 있는 한중일 관계보단 낫다.
오랜 역사를 함께해온, 유서 깊은 앙숙. 많이 알려져 있듯 백 년 넘게 싸워댄 적이 있다. 그리고 몇백 년을 걸쳐 육지와 바다에서 서로를 털고 털린 관계. 파쇼다 사건으로 아프리카에서마저 충돌했고, 눈앞의 적인 독일 때문에 20세기부터는 협력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의외로 2차 대전 때도 서로 이를 가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할 당시, 프랑스가 보유한 군함들이 독일군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영국군이 동맹국인 프랑스의 전함들을 격침시켜버려 적잖은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군이 프랑스 식민지에 상륙할 당시 어떤 지역 지휘관은 일단은 독일에 항복한 현재의 프랑스 정부의 명령에 따라 저항하기도 했고, 어떤 지역 지휘관은 함께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연합군을 반갑게 맞아들이기도 했으며, 어떤 지역 지휘관은 미군이 상륙한다면 무저항이지만 아군에게 폭탄을 던지는 망할 영국놈들이 상륙한다면 결사항전을 하겠다는 태도를 비친 지휘관도 있었다. 현대에도 일단은 우방국[16]이지만, 정치적 이해관계부터 시덥잖은 루머까지 온갖 핑계를 들며 서로를 본능적으로 까며 심지어 사라지면 깔 대상이 없어 허전할 정도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현재도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를 까야 제맛인가 보다. 그런데 영국인 디스크월드의 작가 테리 프래쳇이 인터뷰에서 한 얘기로는, 자신의 프랑스인 아내에게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전쟁을 시작하려면 얼마나 걸릴까?"라고 묻자 "20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때 2005년, 2012 하계올림픽 유치 때에도 런던과 파리 두 국가 수도간의 올림픽 유치경쟁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런던이 승리하였다.[17]
물론 현대의 이러한 대립 관계는 ' 개구리나 먹는 놈들', ' 이게 무슨 ㅈ같은 음식이야' 같은 느낌으로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친해진 상태고 우호적인 편이다. 영국인이 프랑스와 전쟁을 하자고 주장하거나 프랑스인이 영국에 전해준 문화 유산을 탈환하자거나 하는 소리를 하면 당장 자국인들에게도 정신나간 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애초에 서로 두 번 씩이나 세계대전을 벌이느라 유럽 전체를 말아먹을 뻔한 경험[18]이 있다보니 서유럽은 이웃나라를 함부로 증오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19]
프랑스가 나폴레옹 전쟁때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연합을 영혼까지 털어버리고 신성 로마 제국을 멸망시켰으며 라인 동맹으로 독일 대부분 지역을 속국화하였고, 독일은 근대 국가 성립 후 파리 털었다. 1차 대전은 프랑스가 결과적으로 전승국이긴 했지만 독일군이 심하게 물고 늘어진 탓에 프랑스의 청년층 20~30%가 전사할 정도로 인구출혈을 야기했다. 또 거기에 프랑스-독일 국경 지역에 위치한 알자스-로렌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오랜 기간 영토 분쟁을 치렀다.[22][23][24]
다만 이런 악연도 이제 다 옛날 말인 것이, 유럽 내 민족주의가 절정이었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야 정말로 극악의 사이였지만 독일연방공화국의 수립 이후로 독일이 적극적인 친서방 외교정책, 그 중에서도 친프랑스 정책[25]을 펼쳤다. 현재는 영혼의 파트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당장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밀월관계를 빗대서 메르코지라는 신조어가 유행했을 정도이다. 단순히 외교관계뿐만이 아니라 양국 국민 사이의 감정도 많이 누그러든 상태다.[26][27][28]

2.3. 미국-캐나다-멕시코

이 항목도 참조.

캐나다와 멕시코는 별 일 없이 괜찮은 관계이다.
현재 미국은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나 살인범죄, 마약 밀수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동시에 멕시코를 범죄자, 살인자들이 사는 미개한 나라로 깔보고 있으며, 멕시코는 예전에 우리 땅 뺏어가서 발전한 작자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미국을 노골적으로 적대한다.
다만 멕시코는 현실적인 이유로 어쩔수 없이 친미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의 눈치도 엄청나게 보고 있다. 멕시코는 무역에서 수출/수입 모두 70% 넘게 미국에 의존한다. 또한 멕시코 내에서도 문제인 마약 카르텔 문제에 관해서는 양국이 협력중이며, 국민 감정도 항상 나쁜것도 아니다. 실제로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의료비가 저렴한 멕시코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가 꽤 있고,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가려고 난리를 치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사이가 마냥 나쁘기만 하다면 이 사실들을 가지고도 서로 물고 늘어져야만 하는데 그나마 후자는 미국의 일부 보수 쪽에서 물고 늘어지긴 해도 전자를 물고 늘어지는 멕시코인은 없다.

2.4.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문자 그대로 발칸 반도의 삼국지. 그리스와 세르비아는 역사적으로는 엄청 싸웠지만 현재는 괜찮은 관계이다.

3. 대륙별

가나다순.

3.1. 아시아

전술한 한중일을 뺀 나머지 아시아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도 반(反) 필리핀 운동이 격화되어 중국 정부가 중국인들의 필리핀 방문 및 여행을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여기에 필리핀 미국 군사 기지를 제공하여 중국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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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유럽

영프독, 그리스-불가리아-세르비아를 뺀 나머지 유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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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아프리카

3.4. 아메리카

미국-캐나다-멕시코 이외의 나머지 아메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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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오세아니아

4. 두 대륙 간

ㄱㄴㄷ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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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


[1] 해당 국가에서 사이 안 좋은 국가로의 방문을 금지하거나 심하게 제한하는 경우 혹은 해당 국가에서 안 좋은 사이의 국가의 국민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심하게 제한하는 경우. [2] 예시로 북한은 대한민국(한지붕 두가족)/일본(안 좋은 사이)/중국(좋은 사이)과의 사이 역시 삼색이다. [3] 애당초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까닭 중 하나가 제멋대로였던 한자음을 통일하기 위함이었다. [4] 다만 당시에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이었던 데다가 일제강점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기성세대의 영향으로 인해 민간에서는 반일감정이 강하게 남아있던 시기였다. [5]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는 한국의 국익을 지나치게 희생하는 굴종 외교라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일본 호감도가 어느 정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 예로 2024년 일본 정부의 라인야후 네이버 지분 매각 압박 논란이 불거지며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반일 여론이 생기긴 했지만 예전처럼 반일감정이 격하게 번지지는 않았다. [6] 2050년을 넘기면 아예 본 문서에서 빠질 수도 있다. 이 시기쯤 되면 한국 국민 99.9% 이상이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대심 자체가 매우 희미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빠르면 2030~2040년대도 무리라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불가능은 아니다. [7] 현재는 물론 냉전시절에도 마찰이 없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제1공화국 시절엔 독립 직후인 탓도 있고 해서 양국간에 정상적인 왕래조차 불가능했고, 박정희 대통령 재임 때에도 김대중 납치 사건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국교 단절을 고려할 정도로 그 사이가 나빴다. [8] 특히 쓰시마 섬 혐한 감정이 심한 지역임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일본 불매운동 당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도 쓰시마였다. [9] 송나라와 명나라는 고려, 조선과 우호적이었으므로 제외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세세히 따지면 마냥 그렇진 않았다. 송나라의 경우 남송 때는 고려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외교가 단절되었고, 명나라 또한 조선 초기였던 태조 이성계 시기에는 조선과의 사이가 안 좋았으며(심지어 이성계는 요동 정벌에 반대해 위화도 회군을 일으켜 요동정벌로 명나라와 전쟁을 벌이려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린 사람이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군이 조선군을 도와 일본군을 물리치기도 했지만 약탈 등 조선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도 했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패하여 조선과 명나라의 국교가 단절될 때까지 명나라 사신들이 조선에 대한 보상심리로 조선에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으며 병자호란 이후에는 조선이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청나라의 명나라 침략을 돕기 위해 군사를 보내면서 명나라와 완전히 적대관계가 되었다. [10]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방권이나 다른 먼 나라들 사이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일례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중국 내 관중만 입장시키고 예정대로 치르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여 전세계를 상대로 어그로를 끌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대회는 21세기 역대 최악의 국제 스포츠 대회로 남게되었다. [11] 현재 중국의 김치공정, 한복공정과 더불어 중국의 문화뺏기가 한국인들의 반중 감정을 더욱 복돋고 있다. [12] 기적의 검을 위시한 중국발 양산형 게임의 저질&허위 광고들이 유튜브 등지에 지속적으로 송출되어 수많은 이용자들이 불만을 표하고 있는 상태이다. [13] 중국대표권 분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내 중국대표권 획득에 반대했다. [14] 실제로 유럽과 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으로 보아 독일을 일본에, 러시아를 중국에, 폴란드를 한국에 빗대면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15] 예외적으로 프랑스-스코틀랜드 관계는 프랑스-잉글랜드 관계보다 좋은 편이다. 잉글랜드에 대항하기 위해 오랫동안 동맹을 형성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군에서는 스코틀랜드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로버트 브루스군의 행진곡을 군대음악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동맹관계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16] 영국-프랑스는 군사적으로 우방국이고 서로 합동훈련도 자주하기는 하는데, 미국/영국이 설치는 꼴을 보기 싫다고 꽤 오랜 기간 프랑스는 NATO에서 탈퇴한 상태였다. 하지만 NATO 통합군에서만 탈퇴한 것이었고, 1995년에는 군사위원회에 복귀, 2009년 통합군에도 정회원으로 복귀했다. 사실 프랑스는 전통적인 강국이었지만 최근 수십 년들어 영향력이 약해지고 신흥강자 미국이 들어선 데에 대한 반감이 없지 않아 있는 편이다. [17] 그러나 그 다음날 바로 테러가 발생하고 말았다. [18] 두 번의 세계대전 모두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같은 편으로 맞서 싸웠다. [19] 독불관계와 더불러 유럽의 대표적 라이벌 구도라는 평가가 있는 듯하다. [20] 색슨=작센 [21] 단, 신성 로마 제국은 독일만으로 치기는 어렵긴 하다. 카를 5세 참조. [22] 알퐁스 도데의 소설 < 마지막 수업>이 이것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독일이 알자스-로렌 지방을 점령하게 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23] 한편 자를란트 역시 프랑스와 독일의 영향이 같이 미치던 곳이었다. 1959년 독일에 편입하기 전까지 자를란트의 화폐에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병기되기도 했다. [24] 알자스-로렌 지역은 공식적으로 프랑스령과 독일령을 번갈아가며 실효통치국들이 7번 바뀌었다. [25] 서독의 초대 수상 콘라트 아데나워가 대표적인 친프랑스 인사였다. 이 양반은 서독 수립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때도 원체 친프랑스적인 행보를 보여서 1차대전 패배 이후 프랑스에 대한 원한이 뼛속 깊이 사묻혀있던 당시 대다수 독일인들에게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들었을 정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돌프 히틀러의 출현과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그로 인한 엄청난 피해로 인해 그가 내린 판단은 적절했다. [26] 2011년의 여론 조사에서는 프랑스 국민이 가장 호감을 느끼는 국가로 독일이 뽑히기도 했었다. [27] 다만 이와는 별개로 라이벌 순위에선 영불이나 영독보다 높은 순위에 두는 경우도 있는 편이다. [28] 영불관계와 더불러서 유럽의 대표적 라이벌이라는 평가도 있는 듯하다. [29] 그리스는 헬라족, 불가리아는 남 슬라브족이며 같은 백인 인도 유럽 민족에 이웃한 나라들임에도 민족, 언어적인 차이가 있다. [30] 물론 불가리아는 추축국이긴 했으나 대전 기간 내내 독일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는 등 가해국으로 보기에는 다소 애매하다. 자세한건 추축국, 상임이사국 문서 참고. [31] 2009년에 유럽연합에 회원국 가입 신청서도 내고 2012년 후보국 지위도 받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더군다나 유럽연합 가입은 회원국가들의 만장일치로 승인되는데 불가리아가 먼저 가입해 회원국이 된 이상 승인될 가능성은 없다. 다만 불가리아는 발칸반도를 나가 중/서부 유럽으로 나가 무역하기 위해서 세르비아의 육로가 필요하기에 세르비아의 EU 가입에 반대하지 않는 편이다. [32] 특히 민주당 정권 에만 그랬다. 민주당은 대체로 평화적 통일과 대북 대화에 긍정적인 입장이라서 가능했지, 보수정당은 이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북한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고 설사 추진한다 해도 대북강경이라는 대외적 이미지 때문에 대놓고 공개적으로는 추진하기 어려운 입장이기 때문. [33]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는 언어학적으로 보면 동일한 언어의 방언에 해당한다. 마인어 참고. [34] 탈퇴와 관련된 규정이 따로 없어서 당시 UN의 골치를 썩혔다. 거기에 탈퇴한 것으로 쳐도 인도네시아가 재가입을 하게 되면 신규가입 절차를 밟아야 하니 이 또한 귀찮은 문제였기에 UN은 인도네시아가 복귀하자 그동안 탈퇴한 것이 아니라 출석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하였다. 이로서 재가입 절차도 치를 필요가 없고 굳이 탈퇴에 대한 규정을 새로 만들 필요도 없게 되어 유야무야 넘어갔다. [35] 2005년부터 5년간, 말레이시아에서는 29,759명의 이민법 위반자가 태형에 처해졌으며 그 중 60%가 인도네시아인이다. [36] 물론 중국은 이를 자국 역사로 간주한다. [37] 물론 후금은 만몽연합정권의 성격을 띄기 때문에 한족 입장에서는 유목민족 지배기 시즌2. 그리고 제일 원흉인 만주족은 조용히 기어들어갔다. [38] 사실 중국이 외몽골을 독립국가로 놔둔 것도 국공내전 당시 외몽골 공산당이 공산당을 지원한 덕택이다. 그 때문에 대만은 외몽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미수복 영토로 여겼었다. [39] 그런데 사실 몽골은 중국 내몽골의 몽골인들을 몽골 사람으로 생각 안하고 중국 한족만큼이나 안 좋아한다. 참고로 칭기즈칸의 일족에 가까운 건 내몽골 쪽이다. [40] 몽골어로 돼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한 마디로 돼지새끼라며 욕하는 격이다. [41] 실제로도 원래 영국 식민지화 이전에 미얀마 일부 지역에서 살았던 인도계 토착 소수민족이었는지, 아니면 영국의 식민지배에 의해 인도와 방글라데시 일대에서 미얀마로 이주해온 집단들이었는지 기원에 논란이 있는 종족들이다. 자세하건 로힝야 문서 참조. [42] 아유타야-방콕 사이의 거리는 100km 조차도 안된다 (부산-대구 거리). [43] 심지어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라오스는 태국과 역사적, 정치적으로 좋은 감정이 전혀 없거나 사이가 안 좋은데도 푸미폰 태국 국왕의 서거에 조의를 표했었다. [44] 다만 미얀마는 숙적관계인 태국을 견제하고자 남사군도와 암발랏 영유권 문제로 인도네시아, 베트남과도 사이가 나쁜 말레이시아와도 사이가 긴밀하다. [45] 베트남을 일본에, 캄보디아를 한국에 빗대면 적절하다. [46] 북한보다도 중국 식당이 없다. [47] 참고로 일반적으로 중국과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 수교한 경우가 많은데 부탄은 대만과도 수교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교 정책 상 대만과 부탄은 충돌할 거리가 없어서 미수교 상태라는 점 때문에 양국 간 사이가 나쁘지 않으며, 부탄은 20세기 중반까지 쇄국 정책을 폈던 영향으로 현재도 수교국이 20~30개국에 불과하다. [48] 호메이니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이단자라고 대놓고 까버린 것이 원흉이였다. [49] 본래 쿠웨이트는 2017년 카타르 단교 사태 초반에 카타르와 사우디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려 했으나 협상이 실패하자 사우디에게 얻어 맞는 형국이었던 카타르를 지원했다. [50]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51]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2019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이다. 헨리크 미키타리안이 아르메니아 출신이라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올림피아 스타디온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참가하지 못했고, 결국 당시 소속팀 아스날 FC 첼시 FC에게 1:4로 완패했다. [52] 물론 아사드 정권이 내전에서 승기를 잡게되면서 반군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지만 요르단 정부는 아사드 정권을 달갑게 보지 않고있다.. [53] 근데 인도 역시 이슬람교도의 숫자도 힌두교도 못지 않게 많이 있다... [54] 실제로 1990년대 후반 파키스탄은 개판이 된 아프간을 파키스탄의 괴뢰국가로 만들기 위해 정보부 ISI를 시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정권 장악을 지원한 적이 있었다. 괜히 블랙 옵스 2 같은 게임에서 ISI가 악역으로 나온 게 아닌 셈이다. [55] 하지만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현재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탈레반 등이 일으키는 테러와 민간인 학살, 내란 등에는 1990년대 말 탈레반의 아프간 정권 장악을 지원 및 방조한 파키스탄 쪽에도 잘못이 매우 많이 있다. [56] 물론 지리 거리상으로 예멘보다 오만 본토와 더 가깝다. [57] 다만 카자흐스탄 역시 백인 형질이 강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있다. [58] 성경의 구약 시점에서도 시편 등지에서 언급이 되는데 바빌론(=이라크, 메소포타미아)이 페르시아에 줘터졌을 때 다니엘 예언자가 이직을 하기도 했다. [59] 이는 미국이 이라크에 생화학무기가 있다고 주장한 가장 강력한 근거 중 하나였으나, 다 때려부순 뒤 찾아보니 결국 발견되지 않아 아랍인들의 혈압 상승에만 크게 일조하고 말았다. [60] 이집트, 요르단은 미국의 반강제적 화해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61] 물론 인도도 방글라데시만큼 빈부격차가 심하며, 빈곤층도 굉장히 많다. 하지만 경제력이나 군사력, 영토 규모 등 총체적으로는 인도가 방글라데시보다 더 강대국이다. [62] 실제로 광동은 중국의 정치지형 변화의 근원지로 손 꼽힌다. 쑨원도 광동인이다. 그리고 광동은 베이징 등 북방 지역 위주의 현 중화인민공화국을 무작정 따라가기에는 너무 이질적이다. 말도 생김새도 너무 확연히 다르다. [63] 2003년 태국의 유명인사가 앙코르와트를 태국의 문화재라고 발언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64] 반면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같은 다른 구 유고권 국가들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제우스, 헤라 같은 그리스식 이름을 더 많이 쓴다. [65] 8~11%. [66] 로마 제국(당연히 동로마 제국 포함)과 기독교의 정통성 문제 [67] 현재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반도 지역과 가까운 레스보스나 로도스, 사모스, 히오스 등 에게 해의 그리스령 섬들은 모두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로잔 조약에 의해 그리스가 흡수합병하면서 전부 그리스 영토가 되었다. 대략 일본 큐슈 주변의 쓰시마 이키, 고토 제도 등 일본령 소규모 섬들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부 한국 영토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68] 물론 무장은 사용하지 않고 꼬리잡고 락온만 한다. 하지만 명백한 영공 침해일 경우 진짜로 날려버릴 때도 있다. [69] 해당 시기에 폴란드인들은 독일인들에게 엄청난 종교 탄압을 받았다. 현대 폴란드의 구 독일령 지역에 살던 프로이센 치하 폴란드인들은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루터교회로 개종하도록 강요당했으며, 러시아 치하 폴란드인들 중 정교회로 개종한 이들은 훗날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 제국 러시아령 폴란드를 점령한 이후 폴란드 토착 문화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구 러시아령 폴란드의 러시아계 이주민들을 탄압함에 따라 함께 탄압당했다. 가톨릭을 믿는 대다수 폴란드인들과 정교회를 믿는 폴란드인들이 일치단결로 의견을 내놓는 것으로 대표적인 게 프로이센 왕국·독일 제국의 비개신교인 탄압에 대한 비판일 정도다. 만약 폴란드에서, 특히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프로이센 왕국·독일 제국의 비개신교인 탄압을 종교 개혁이라며 옹호한다면 성 요한 대성당(가톨릭)에서든 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정교회)에서든 수많은 신자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이다. [70] 폴란드 발음은 오시비엥침. [71]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정확히는 비 오는 날에 바르샤바 봉기 기념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몇 시간 동안 참배했다. 이를 계기로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 ostpolitik)이 탄력을 받았고, 나아가 독일 통일의 주춧돌까지 놓게 되었다. [72] 1차 대전-서프로이센, 포젠, 2차 대전-슐레지엔, 포메른, 브란덴부르크 동부, 동프로이센 남부. [73] 물론 그 이전에도 러시아랑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참교육 하는 등 동유럽의 패자로 군림하기도 했지만. [74] 2차 대전 당시 스웨덴은 중립노선을 유지하여 나치의 침공을 면하였지만 노르웨이는 덴마크에 이어 나치의 침공을 받았다. [75] 사실 마르타와 당시 스웨덴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5세는 조카로 그리 가까운 관계도 아니었기에 국왕 역시 이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노르웨이 왕실을 보호해주면 나치 독일이 스웨덴마저 침공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녀를 꺼렸다고 한다. [RU] 2022년에 러시아에서 정한 러시아에 대한 비우호국 [RU] [78] 우크라이나 영토를 흐르는 드네프르 강의 동부는 러시아어를 쓰는 친러시아 성향이고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를 쓰며 독립 성향이 강하다. 이 갈등을 유발한 게 바로 니키타 흐루쇼프. 흐루쇼프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라 그 지역에 인심 쓰느라 러시아인이 많은 지역까지 떼줬다. [79]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때 친서방계 후보였던 빅토르 유셴코(이 대선에서 대통령 당선)와 친러계 후보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와 그들의 지지자들 간의 갈등이 결국 오렌지 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 [80] 이탈리아 AC 밀란 소속 축구선수 칼라제는 조지아인으로 시즌 중 징집(!) 당했다. 지금은 은퇴하고 부총리로 선임되었다. [81] 원래 네움 등 보스니아 남부 해안가 지역은 크로아티아의 영토였는데 두 나라가 유고슬라비아였을 당시 티토 유고 대통령이 이 지역을 보스니아에게 할양하면서 국경이 이상해졌다. 그래서 지금도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관광지인 두브로브니크 월경지로 남아 있다. [82] 크로아티아는 가톨릭, 보스니아는 이슬람. [83] 단적으로 스페인의 공식 언어 중 하나인 북서부 지방의 갈리시아어 포르투갈어의 직계 조상인 반면 주류 스페인어인 카스티야어와는 별로 연관이 없다. [84] 말이 좋아 아라곤 왕국이지, 애초에 아라곤 지방은 바위산으로 뒤덮인 별로 영양가 없는 땅이라 늦어도 12세기 후반부터 아라곤의 수도 사라고사는 대관식만 치르는 곳이고, 실제로 국력을 창출하는 부와 인구의 핵심은 지중해 교역망의 서부 관문 역할을 했던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 발렌시아 일대였다. [85] 다만 슬로베니아는 오스트리아 관할, 크로아티아는 헝가리 관할로 주체가 달랐다. [86] 대기근 이전의 아일랜드 인구는 900만 명이었는데, 1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남북 아일랜드 인구 합쳐봐야 600만 명에 불과하다. [RU] [RU] [89] 일례로 헝가리의 유명한 작곡가 버르토크 벨러의 출생지는 현재 루마니아에 있다. [90] 물론 종족들의 구역을 무시하고 자기들 편의에 의해 획정한 것도 있지만, 종교의 경우 분열 정책을 써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종교와 민족을 초월해 단결해서 영국을 물리치자는 마흐디 운동을 진압한 후, 영국은 수단 통치 때 철저한 분열 정책으로 남북이 서로 다르다는 인식을 심었다. [91] 유엔과 국제사회의 여러 국가들은 남아공의 나미비아 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나미비아를 남아공의 정식 영토로 인정하지 않았다. [92] 애당초 남아공이 나미비아를 지배했을 당시 남아공의 권력층들이 백인 세력이었으니. [93] 현재는 그 자리에 북수단 왕국이 생겼다. [94] 2016년 여론조사에선 쿠바국민의 70%이상이 미국을 호의적으로 바라본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으며 쿠바로 관광온 미국인들도 좋게 바라보고 있다. [95] 특히 브라질은 영토, 인구가 볼리비아보다 더 크고 막강한 강국이기 때문이다. [96] 덕분에 볼리비아는 현재 해안선을 접한 다른 이웃 국가들인 페루의 일로 항과 리마 항,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항을 빌려서 쓰고 있다. [97] 하지만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방대한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가 4500만명에서 1000만명 남짓으로 워낙 적어 실질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스페인어권 국가들중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멕시코이다. [98] 다만 아르헨티나보다 인구 비중이 적어서 그렇지, 브라질도 인구 비중상으로는 백인이 근소하게 더 많다. [99] 이 둘은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월드컵의 개최지 문제로 서로 싸웠다. 브라질이 일본을 지지하자 아르헨티나가 이에 반발하며 한국을 지지했고, 남미 전체가 둘로 나뉘어 으르렁거리다 FIFA의 중재로 공동 개최라는 결과를 만들었다.그리고 브라질은 한국에서, 아르헨티나는 일본에서 조별리그 경기를 했고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 광탈 [100] 영토, 인구 규모에서 페루가 에콰도르보다 더 숫적인 우위에 있었다. 물론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여서 현재 페루의 인구가 3251만명인 것에 비해, 에콰도르는 자국 인구 수가 1737만명으로 페루보다 적다. [101] 스페인어로는 토끼. [102] 결국 콜롬비아는 페루와 맺어진 살로몬 로사노 협정에 의해서 푸투마요강 유역 이남 지역을 페루에게 넘겼다. [103] 이는 뉴질랜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로, 뉴질랜드 인구는 약 500만명, 양은 3000만 마리가 있다. 사람보다 양이 더 많은 나라라는 것이 농담이 아니다. [104] 호주에는 수백 개가 넘는 뉴질랜드와 양에 관한 농담이 있다. [RU] [106] 단, 대한민국의 경우 대러 제재를 다른 서방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형식적으로 했으며, 러시아의 경우 대한민국을 비우호국으로 정했으나 타 비우호국에 비해 한국을 비교적 소극적으로 제재하고 있으며, 여행금지구역(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을 제외하면 입국이 다소 까다롭긴 하나 실질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RU] [108] 예전에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는데 채산성이 없다고 생각한 러시아가 미국에 싸게 팔아치웠다. [109] 알래스카는 이나 사이판, 미국령 사모아 같은 해외영토 자치령과 달리 엄연히 미국의 50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월경지이긴 해도 미국의 다른 주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진짜로 이웃나라 맞다. [RU] [111] 결국 이는 중소결렬로 이어졌고, 중국의 베이징 지하철 건설에 큰 차질을 주었다. 지하철 사업이 소련과의 합작사업이었기 때문. [112] 그나마 국경을 직접 맞대지 않은 이웃나라인 카자흐스탄은 몽골과 나쁜 사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좋은 사이도 아니다. [113] 다만 원래는 이래야 정상이지만 문제는 에르도안의 역행하는 외교에 북키프로스 때문에 중국, 러시아에 기울고 있다는게 함정. [114] 이 두 나라를 이웃나라로 보기엔 좀 거리가 멀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두 나라는 지중해만 건너면 바로 마주보고 있고 그 거리도 가까운 편이다(대략 부산에서 오사카 정도 거리다). 그리고 알제리와 이탈리아 사이의 거리(여기는 대략 알제리 동북부에서 사르데냐 섬까지의 거리), 알제리 서북부지방과 스페인 사이의 거리를 보면 훨씬 더 가까워서 논란의 여지없이 그냥 이웃나라다. [115] 해안 지역은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행정구역, 즉 본토 프랑스로 취급되었다. 물론 대우는 식민지와 다를 바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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