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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4 01:59:33

레티시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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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The Leticia Incident 또는 the Leticia War 또는 the Colombia–Peru War

1. 개요2. 경과3.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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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콜롬비아 페루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콜롬비아-페루 전쟁이라고도 한다.

2. 경과

이 전쟁이 일어나기 앞서 1922년 두 나라 사이에 아마존 강, 푸투마요 강 열대 우림 지역의 영유권을 놓고 국경분쟁이 발생하자, 1922년 두 나라는 살로몬 로사노 협정을 맺었는데, 이 때 콜롬비아가 차지하던 푸투마요강 이남 지역은 페루령이 되었고, 두 나라의 국경 도시였던 레티시아는 콜롬비아령이 되었다. 하지만 두 나라의 이러한 영토 할양 결과에 푸투마요강 이남 지역을 페루에게 양도했던 콜롬비아와 레티시아를 콜롬비아에게 넘긴 페루 두 나라 모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1]

1932년 페루 아마존 지역인 이키토스에서 주민봉기가 발생하였는데, 9월1일 이키토스 과격시민들은 국경을 넘어 레티시아를 침입, 점거했다. 이러한 상황을 본 당시 페루 대통령 산체스 세로(Luis Miguel Sánchez Cerro)는 페루 육군 2연대를 파견하여 레티시아를 점령하게 된다.

처음에 콜롬비아 정부는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콜롬비아 입장에서 레티시아는 아마존강을 통한 항로확보에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워낙에 국내 다른 지역과는 거리도 있고 아마존 밀림속에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존강 지류인 푸투마요강에서 레티시아로 향하는 배를 페루군이 잡아둔 것을 계기로 콜롬비아 내부에서 애국심이 들끓게 된다. 결국 콜롬비아 정부는 알프레도 코보를 아마존 함대사령관에 임명한후 유럽에서 중고함선을 구입하여 함대를 편성하고 레티시아 탈환을 위한 군사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레티시아 지역은 콜롬비아에게는 중요한 지역이긴 하지만, 워낙에 오지이다 보니(레티시아까지 가는 도로도 없었다.) 해당지역에 육군병력도 두지 않았다. 그래서 페루군은 초반에는 해당지역에 반격이 있을거라고 생각치 않았다. 그러나 이 예상은 빗나가 3개월도 안되어 해군과 공군이 해당 지역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군대는 타라파카 지역을 먼저 공격하였다. 페루군도 반격에 나섰지만 명중탄은 거의 없었다. 결국 1933년 2월 15일 콜롬비아 함대는 타라파카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그러나 남단의 레티시아에서는 페루군이 콜롬비아군을 압도하여 저항하였고 결국 콜롬비아군은 페루군에게 패해 레티시아 함락에는 실패했다.

3. 결과

1933년 4월 30일 리마에서 페루 대통령 산체스 세로가 암살되자, 뒤를 이은 오스카르 베나비데스 라레아는 5월 15일 콜롬비아 자유당의 당수 알폰소 로페스 푸마레호와 회담하고 레티시아는 국제연맹의 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한동안 레티시아는 국제연맹의 관리하게 놓인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양국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의정서에 서명이 이루어졌다. 이 의정서에 따라 살로몬 로사노 협정은 다시 한번 재확인되었으며, 레티시아와 타라파카 지역은 콜롬비아에 귀속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1934년 5월 레티시아는 완전히 콜롬비아 정부에 반환되었다.

이 사례는 유명무실했던 국제연맹이 국제 간 분쟁해결에서 그나마 성공한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1] 푸투마요 강 이남 지역의 영유권을 페루에게 할양하는 과정에서 레티시아 시가 위치한 페루-콜롬비아 국경 지역의 콜롬비아와 페루의 영토가 그만 길고 비좁은 땅거스러미 형태로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