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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2:56:45

라인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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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동맹
Rheinische BundesstaatenDE
États confédérés du RhinFR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Flag_of_the_Confederation_of_the_Rhine.png 파일:Commemorative_Medal_of_the_Rhine_Confederation.png
<rowcolor=#fff> 비공식 국기[1] 비공식 문장[2]
파일:라인 동맹.svg
<colbgcolor=#2ca02c><colcolor=#fff> 1806년 ~ 1813년
성립 이전 붕괴 이후
신성 로마 제국 독일 연방
수도 프랑크푸르트 (명목상)
정치체제 국가연합 (사실상 프랑스 제1제국 괴뢰국)
언어 독일어, 프랑스어
종교 가톨릭, 개신교
1. 개요2. 특징3. 역사4. 구성국
4.1. 왕국4.2. 대공국4.3. 공국4.4. 후국4.5. 프랑스 제국 직할령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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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폴레옹 전쟁 시기 중 1806년 옛 신성 로마 제국의 수많은 영방 국가로 구성되었던 국가연합.

2. 특징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스위스 등을 제외한 중부유럽 독일어권 영방 국가들이 소속되었는데,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당시 나폴레옹에게 협력한 영방 국가들을 제외하면, 프랑스 대육군의 무시무시한 군사력 앞에서 눈치를 살피다가, 정복군주 나폴레옹의 설득(사실상 협박)으로 가입당했다.

겉모습은 독일 민족들의 연합국처럼 보여도, 실상은 라인 동맹의 보호자를 자처한 나폴레옹과 프랑스 제1제국이 독일 점령지에 설립한 종속국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라인 동맹 회원국들은 명목상 프랑스 제국의 동맹국으로, 프랑스는 라인 동맹이 공격받을 경우 13만의 병력을 제공해주며, 라인 동맹은 프랑스가 요구할 경우 11만의 병력을 제공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프랑스와 평등한 동맹 관계는 절대로 아니었다. 실질적으로는 프랑스 제국이 모든 권한을 쥐어, 프랑스인 관리들이 파견돼서 회원국의 정치·군사·행정 등을 도맡았으며, 회원국 군주 휘하의 주요 궁정 관리마저 모두 프랑스 사람들(나폴레옹의 측근, 코르시카 출신의 친척들)로 임명했을 정도로, 나폴레옹의 승인 없이는 사소한 것조차 할 수 없고 그저 병력과 물자만 제공하는 괴뢰국 신세였다.

애초에 이 거짓된 동맹 연합은 단순히 프랑스 제국의 무력으로 독일 영방 국가들을 억압하는 체제에 불과했으므로,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처참히 패한 후 프랑스 대육군의 군사력이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경지에 이른 이상, 더 이상 나폴레옹의 눈치를 보며, 협력할 이유가 없어졌다. 결국 라이프치히 전투를 기점으로 거의 모든 독일 영방 국가들이 프랑스 제국을 적대시하며, 라인 동맹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일부 나폴레옹 추종자들은 라인 동맹의 배신을 맹비난하지만, 사실상 프랑스 직할령이었던 베스트팔렌 왕국과 베르크 대공국을 제외한 나머지 라인 동맹 회원국들은 대체로 프랑스 제국에 강제 합병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라인 동맹에 억지로 가입했을 뿐이며, 프랑스 제국은 그 대가로 라인 동맹 회원국들을 아프리카 식민지의 노예처럼 착취했다. 일례로 바이에른 왕국은 라인 동맹 회원국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나라로, 국왕인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는 나폴레옹 전쟁 초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나폴레옹에 의해 왕으로 승격되고, 나폴레옹의 의붓아들 외젠 드 보아르네를 사위로 맞이했을 정도였는데, 이런 바이에른조차 프랑스의 수탈에 학을 뗐다. 러시아 원정에는 회원국 중에서 제일 많은 30,000명의 군사력과 보급품을 탈탈 털어서 지급했는데, 정작 대량의 동사자와 영양실조 사망자를 내놓고, 프랑스 제국의 사절단이 와서 유감을 표현하기는 커녕, 크게 패배를 한 주제에 황제폐하께서 이번 전쟁은 그대들의 형편없는 병사들이 군기가 빠져서 패배의 실책들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12세 이상의 남성들을 강제로 징집하고, 왕국의 국고를 전부 군비로 돌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게다가 전쟁비용을 대주느라 국내에는 심각한 식량난 상태인데, 추가로 왕국에 있는 군량을 최대한 프랑스군에 지급하라는 명령까지 덧붙였다. 이렇게 되니 중립이니 의리니, 사돈댁이고 나발이고, 단단히 원한을 사게 되어,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곧바로 손절하여 대프랑스 연합군에 합류해 반드시 나폴레옹의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다짐하며 파리로 진격했을 정도였다. 라인 동맹의 이탈은 나폴레옹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물론, 라인 동맹 회원국들이 얻은 것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나폴레옹은 자유도시와 라인 동맹에 합류하지 않은 영방 국가를 인접한 회원국들에게 나눠주면서 회원국 간의 국경선을 조정했는데, 영토가 확장된 만큼 프랑스에 지원해야 할 병력도 더 늘어나는 문제는 있었으나, 이때 확정된 영토는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에도 대체로 유지되었다. 그 결과 베스트팔렌 조약 당시 1,448개가 넘었던 각종 제후령은 40개 안팎의 영방 국가로 정립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는 왕으로 승격하거나 대공으로 대체되었으며, 백작급 제후들은 모두 후작(Fürst)으로 단일화되었다.[3]

또한 라인 동맹의 압제를 통해 역설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사상과 법령체계가 독일 지역에도 이식되는 결과가 초래되면서, 빈 체제의 반동으로 일어난 1848년 혁명이 독일 지역에도 확산되어 영방 국가들이 자유주의 헌법을 제정하게 만드는 영향을 미쳤다.

3. 역사

1800년 6월 나폴레옹의 2차 이탈리아 원정 마렝고 전투와 뒤이은 라인 전역에서 오스트리아는 참패했다. 이에 따른 1801년 2월 뤼네빌 평화조약으로 라인강 서안이 자연국경으로 프랑스에 합병되었으며, 나폴레옹은 1803년 레겐스부르크에서 개최된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 대표 회의에 간섭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5개 영방 국가를 선제후로 승격시켰다. 기존 4명의 선제후 중에 바이에른 공작과 작센 공작은 나폴레옹에 우호적이었고, 남은 2명은 합스부르크의 보헤미아 국왕 프로이센 왕국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뿐이었다. 1804년 나폴레옹은 '프랑스인의 황제'로 즉위했으며, 이대로 가다간 신성 로마 황제 지위마저 프랑스에 뺏길 것을 우려한 프란츠 2세 합스부르크 제국을 합쳐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했다. 이후 1805년에 영국이 아미앵 조약을 파기한 것을 시작으로 동맹국인 오스트리아 제국과 러시아 제국 등을 끌어들여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영국 상륙에 실패한 나폴레옹은 대신 오스트리아로 진격하여 11월 14일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에 입성하고, 12월 2일에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파일:Gillray-Tiddy-Doll.png
영국이 라인 동맹을 풍자한 그림. 레겐스부르크 대주교가 오스만, 폴란드, 기타 등과 같은 친프 성향을 가진 국가들을 한데 섞어 밑반죽을 하고,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의 수많은 제후국들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로이센 왕국을 땔감으로 이용해서, 오븐에서 자기 입맛에 맞게 구어낸 신흥국가(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를 보며 기뻐하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독일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은 확고해졌고, 나폴레옹은 자신을 따르는 선제후들과 함께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하려 시도했다. 1806년 6월 프란츠 2세에게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하지 않으면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위협했고, 7월 12일에 라인 동맹을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이에 프란츠 2세는 8월 6일에 신성 로마 제국을 해산했다. 이 무렵까진 라인 동맹은 오스트리아 제국을 제외한 독일 중·남부 회원국들로 구성되었으나, 프랑스의 세력 확장을 우려한 프로이센 왕국이 러시아 제국을 끌어들여 제4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을 일으켰다. 10월 14일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이 참패하면서 25일에 나폴레옹은 베를린에 입성했고, 나폴레옹의 눈치를 보고 있던 북독일 지역의 영방 국가들도 라인 동맹에 가입하기 시작한다. 이듬해 7월 틸지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프로이센의 엘베강 이서 북독일 영토가 대거 프랑스 제국으로 할양되었으며, 나폴레옹은 베스트팔렌 왕국을 세우고 획득한 영토는 대체로 프랑스 제국의 괴뢰국인 베스트팔렌 왕국과 베르크 대공국에 소속시켰다.

1808년에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친정하여 프랑스 제국의 괴뢰국으로 전락한 스페인의 독립을 후원하는 영국군을 격파했고, 이듬해에 바그람 전투를 통해 또다시 오스트리아를 굴복시켜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을 마무리지었으나, 영국의 지속적인 파병으로 이베리아 반도 전쟁은 종결되지 못했다. 나폴레옹은 대륙 봉쇄령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불만을 품었고, 1810년 7월에 괴뢰국인 홀란트 왕국과 라인 동맹의 북해 연안 일대를 프랑스 직할령으로 편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12월에 라인 동맹 회원국인 올덴베르크 공국과 잘름 후국이 프랑스에 합병되고, 베스트팔렌 왕국과 베르크 대공국 영토의 일부도 프랑스로 할양된다. 하지만 당초 나폴레옹은 틸지트 조약을 통해 올덴베르크 공국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 보장을 약속한 상황이었기에, 이에 격노한 러시아는 프랑스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위해 라인 동맹에서 대량의 병력과 물자를 징발했으나 대참패를 당했고, 당연히 회원국에서 반발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듬해 1813년에도 다시 병력과 물자를 차출하여 크게 소모하면서, 프랑스의 수탈에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회원국들은 라이프치히 전투 이후 프랑스에 선전포고하여 라인 동맹은 실질적으로 해체된다. 애당초 라인 동맹의 존속은 오로지 프랑스 제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기존 라인 동맹의 회원국을 포함한 독일어권 국가들이 독일 연방을 형성했다. 프랑스의 괴뢰국이었던 베스트팔렌 왕국과 베르크 대공국은 당연히 해체되고, 프랑크푸르트·뷔르츠부르크 대공국이 바이에른 왕국에 합병되었으며,[4] 끝까지 나폴레옹에 협력하던 이젠부르크·라이엔 후국도 인접국에 합병되었다. 프랑스 제국에 해체된 나라들 중에 복구된 것은 하노버 선제후국·헤센 선제후국·올덴부르크 공국· 브라운슈바이크 공국·헤센-홈부르크 방백국 등 5개국 뿐이었으며,[5] 라인 동맹에선 독립적 지위가 부정되었던 자유도시 중에는 뤼베크· 함부르크· 브레멘· 프랑크푸르트 4곳만 복구되었다. 그외 라인강 서안에 네덜란드 국왕이 동군연합으로 겸하는 룩셈부르크 대공국이 형성되었고, 하노버 선제후국은 왕국으로 승격되었으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메클렌부르크슈베린·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올덴부르크 공국이 대공국으로 승격했다. 헤센 선제후국은 대공 지위를 인정받았으나 선제후 칭호를 유지했다.[6]

해체된 6개국 외에 기존 라인 동맹에 가담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작위를 승격시킨 기존 회원국들의 기득권은 그대로 인정되었고, 작센 왕국이 프로이센 왕국에 강제로 영토를 할양한 것과 복구된 5개국의 영토가 반환된 것 정도의 예외만 있었다. 프랑스에서 반환된 영토는 원래의 제후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사이좋게 나눠가졌으며, 대신 ' 슈탄데스헤어'라는 신분을 창설하여 옛 제후들의 귀족 지위를 유지시키는 결정만 내렸다.

4. 구성국

라인 동맹 구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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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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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동맹의 명목상 '수석군주(Fürstprimas)'는 레겐스부르크 대주교였다. 회원국들은 라인 연맹 의회를 구성하며, 왕국과 대공국은 '제왕원(諸王院, Kollegium der Könige)'에 소속되고, 공국과 후국은 '제후원(諸侯院, Kollegium der Fürsten)'에 소속되었다. 연맹 의회 및 제왕원의 의장은 수석군주인 레겐스부르크 대주교였고, 제후원 의장은 나사우-우징겐 후작이었으나, 라인 연맹 의회는 단 한번도 개최된 적이 없기에 별 의미는 없었다.

4.1. 왕국

4.2. 대공국

4.3. 공국

4.4. 후국

4.5. 프랑스 제국 직할령

5. 여담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영역이 브란덴부르크[12], 니더작센 일부와 브레멘, 함부르크를 제외한 현재의 독일과 일치한다.

베르사유 조약 체결 당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처럼 찢는 방안으로 라인강 이서를 분할하는 방안이 있었는데, 독일은 유난히 민족주의가 강하고 소수민족이 거의 없어 구태여 독일을 찢어 나누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그 방안대로 독일 분할을 시도했으나 독일의 저항과 영미의 반대로 물러나야 했고, 결국 라인강 이서를 비무장지대로 만들고 자르 분지 지역 국제연맹의 관할지로 편성하는 데에 그쳤다. 그마저도 1935년에 자르 주민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독일에 환원되었고, 1936년 라인강 이서에 독일군이 재배치되면서 무력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시 자르 보호령을 편성해 프랑스로 편입시켜려 시도했으나, 1955년에 주민 투표로 서독에 반환되는 것이 결정되었으며 프랑스 국내에서도 베르사유 체제가 붕괴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비난만 들었다.

[1] 비공식 도안으로, 나폴레옹이 라인 강의 영감을 받아 도안한 깃발이라는 말도 있으나, 실제 출처나 용도는 불확실하다. 역사적으로도 이 깃발을 사용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며, 구성국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독립된 깃발을 고집했다. 여담으로 시에라리온 국기와 매우 비슷하다. [2] 비공식 문장(紋章)으로, 사실 프랑스에서 발행된 라인 동맹 창설 기념 메달의 뒷면 도안이다. [3] 원래 신성 로마 제국에서 'Fürst'는 황제 직속 제후라면 자칭할 수 있는 칭호였다. 다만 정식으로 후국(Fürstentum)으로 승격하기 위해서는 황제의 승인이 필요했기에, 신성 로마 제국 말기까지 변경백국·방백국·백국 등이 남아있던 것이다. 관례적으로 Fürst를 칭하고 있으나 후국으로 승격되지 않은 백작령은 'Gefürstete Grafschaft'으로 지칭되었는데, 일반적으로 '후백국'으로 번역되며, 영어로는 'Princely County'로 번역된다. [4] 프랑크푸르트 대공을 겸하던 레겐스부르크 대주교는 라이프치히 전투 이후 작위를 포기했고, 뷔르츠부르크 대공은 원래의 지위였던 토스카나 대공으로 복귀했다. [5] 모두 강대국과 특수한 관계가 있는 나라들이다. 하노버는 애초에 영국과 동군연합이고, 브라운슈바이크 공가는 하노버 왕가와 같은 집안이다. 올덴부르크 공가는 덴마크 왕실의 분가로, 당시 러시아 황실과 스웨덴 왕실과 같은 집안이기도 하다. 헤센 가문은 러시아 황실과 인척 관계였다. [6] 헤센 가문의 종가인 헤센-카셀은 당초 나폴레옹에 협력하여 1803년에 선제후로 승격했으나, 라인 동맹에는 반대했다. 때문에 나폴레옹은 헤센-카셀 대신 방계 가문인 헤센-다름슈타트를 대공으로 승격시켰고 헤센-카셀은 해체해버렸다. 헤센-다름슈타트의 헤센 대공국은 빈 체제 이후에도 그 지위를 유지했고, 이에 헤센-카셀의 선제후는 헤센 지방의 고대 게르만 부족인 카티족에서 따온 '카텐 왕(König der Chatten)'으로 승격해달라고 청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공 지위만 공인받았다. 결국 헤센-다름슈타트의 헤센 대공국보다 우월함을 내세우기 위해 헤센-카셀은 종전대로 '헤센 선제후국'을 유지하면서 풀다 대공(Großherzog von Fulda)을 보조 칭호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7] 브라운슈바이크 공국과 그 이남의 하노버 선제후국 영토는 베스트팔렌 왕국에 합병된 상태였다. 아마도 영국과의 강화 협상을 위해 북부를 점령지 상태로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8] 홀란트 왕 로데베이크 1세의 아들, 루이나폴레옹(후의 나폴레옹 3세)의 형. 홀란트 왕국이 프랑스에 합병되기 직전 홀란트 왕 로데베이크 2세로 즉위하기도 했다. [9] 참고로 교황이 교구 변동을 정식 승인한 것은 1805년 2월 1일이다. 달베르크는 원래 콘스탄츠 주교후였는데, 나폴레옹의 독일 침공을 지지하여 1802년에 마인츠 선제후가 되었고, 이후 레겐스부르크 선제후로 옮겨 최종적으로 프랑크푸르트 대공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나폴레옹에게 기대를 걸었던 독일인들이 대체로 그랬듯이(...) 나폴레옹의 행보에 실망하여 점차 소원해졌고, 1812년 무렵부터는 대놓고 프랑스에 반기를 들었다. 1813년 9월에는 피난을 명목으로 아예 거처를 스위스로 옮겼고,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에 독일로 돌아왔다. 달베르크는 레겐스부르크 대주교 직책을 남은 평생 유지했으나, 달베르크가 1817년에 죽으면서 대주교 직책은 다시 레겐스부르크 주교로 환원되었다. [10] 원래 나사우 가문의 분가인 '나사우-딜렌부르크'였으나 오랑주 공국을 상속받으면서 새로운 분파를 개창한 것이다. 프랑스의 오랑주(Orange)는 네덜란드어로 오라녀, 독일어로 오라니엔(Oranien)으로 발음된다. [11] 공가인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은 당시 덴마크 왕실인 올덴부르크 왕조의 분가이며, 러시아 황실 및 스웨덴 왕실과 같은 가문이다. 라인 동맹 시기의 공작인 빌헬름과 후계자인 페터는 4촌 형제이며, 표트르 3세와는 6촌 형제로 당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표트르 3세의 손자인 만큼 두 사람과 8촌 관계가 된다. 또한 당시 스웨덴의 섭정이었다가 조카의 왕위를 승계한 칼 13세는 4촌 형제이다. 페터는 알렉산드르 1세의 여동생을 며느리로 들였기에, 올덴부르크 공가는 러시아 황실의 인척이기도 하다. [12] 브란덴부르크는 프로이센 왕국의 핵심 영토이자 발원지였기 때문에 라인 동맹에 포함되지 않았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프로이센은 이름만 빌려온 것이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프로이센 왕국이 된 것이다. 브란덴부르크가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한 독일 왕국 산하 국가여서 왕을 칭하면 독일왕이기도 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동격이 되는 문제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하지 않은 역외지인 프로이센의 국왕을 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