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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대 | 제2대 | ||
로데베이크 1세 | 로데베이크 2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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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23636><colcolor=#ffffff> 홀란트 왕국 초대 국왕
로데베이크 1세 Lodewijk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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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프랑스어 |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Louis Napoléon Bonaparte) |
이탈리아어 |
루이지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 (Luigi Napoleone Buonapar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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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어 |
로데베이크 나폴레온 보나파르트 (Lodewijk Napoleon Bonapar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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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78년 9월 2일 | |
프랑스 왕국
코르시카
아작시오 (現 프랑스 코르시카 코르스뒤쉬드 아작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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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46년 7월 25일 (향년 67세) | |
토스카나 대공국
리보르노 (現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리보르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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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 홀란트 왕국의 왕 | |
1806년 6월 5일 ~ 1810년 7월 1일 | ||
배우자 |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1802년 결혼 / 1810년 이혼) | |
자녀 | 나폴레옹 샤를[1], 나폴레옹루이[2], 나폴레옹 3세 | |
아버지 | 카를로 부오나파르테 | |
어머니 | 레티치아 라몰리노 | |
형제 | 조제프, 나폴레옹 1세, 뤼시앵, 엘리자, 폴린, 카롤린, 제롬 | |
종교 | 가톨릭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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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도 많은 망명귀족들을 곁에 두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들에게 높은 지위를 허락해본 적은 없다. 왕들이 추구하는 사랑이란 남성적인 사랑이어야 하고, 경외심과 좋은 평판이 함께 따라야 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왕을 보고 마음 착한 사람이라고 평한다면 그 통치는 실패한 통치란다. 나의 동생아... 너희 나라에서 바보짓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내 나라에서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은 아무리 사랑스러운 나의 동생이라 할지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젊은 아내이자 나의 딸을 병사 다루듯 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사교계 활동과 무도회에서 춤추고 싶을 때 춤추도록 좀 내버려둬라! 원하는 대로 하게 해라! 네 아내이자 나의 딸은 이제 겨우 스물인데 유모처럼 집에 처박혀
아이젖이나 물리고, 목욕이나 시키길 바라는 거냐? 그녀는 내가 다스리는 왕국의 입지를 위해서라도
사교계에 한창 돌아 다녀야 할 그럴 나이가 아니냐? 그게 아니면 너의 아내와 아들을 외딴 섬으로 유폐시킬 생각인 거냐? 도대체 왜 이렇게 얼빠진 짓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구나.
나의 아내는 마흔이 넘었지만 그녀에게 크든 작든 무도회에 빠짐없이 매일 나가라고 나는 전장에서도 편지를 쓴다. 부디 널 믿고 네덜란드의 군주로 위임시킨 나의 결정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나폴레옹이 동생 루이에게 보내는 편지
나폴레옹이 동생 루이에게 보내는 편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동생이자 나폴레옹 3세의 아버지. 나폴레옹 2세에게는 숙부가 된다.
2. 생애
나폴레옹이 가장 아낀 동생으로, 형이 프랑스의 실권자가 된 후 홀란트 왕국의 왕을 지냈다. 나폴레옹이 낙하산으로 앉힌 친인척들이 대개 능력없고 부패했는데 그나마 그는 맏형 조제프 보나파르트와 함께 멀쩡한 인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그는 프랑스인임에도 네덜란드에 애착을 보여[3]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홀란트 왕국을 프랑스 제국의 속국 취급하던 형에 맞서 '홀란트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형은 프랑스나 잘 관리하시죠?' 하는 깡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군의 상륙을 막지 못해 프랑스군을 끌어들이며 자치권은 사라지고 그냥 속국이 되어버렸다.
나폴레옹 2세 탄생 전에는 나폴레옹이 루이의 아들들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을 만큼 총애했지만, 본인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데다 부인 오르탕스와의 사이도 좋지 못해 개인적으로 계속 불행한 삶을 살았다. 군사적 재능도 썩 훌륭하지 못했고 군주로서도 별 존재감이 없었다. 형이 몰락한 뒤에는 이름을 숨기고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살아갔다. 그래도 1840년에 프랑스로 귀국하여 형의 장례식을 보고 늘그막은 그럭저럭 평온하게 살다가 갔다.
막내 아들이 바로 나중에 또다시 프랑스 황제에 오르는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즉 나폴레옹 3세이다.
살아있던 동안은 물론 최근까지도 나폴레옹 3세가 친자인지 여부가 논란이 되어왔다. 당대에는 오르탕스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정적들로부터 나폴레옹 3세가 아내의 외도로 낳은 혼외자라는 소문에 계속 시달렸다. 이후 역사학계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설은 거의 근거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왔으나, 다시 2010년대 들어와서 나폴레옹 1세와 친족들 및 나폴레옹 3세의 아들 및 혼외자 후손들의 Y염색체 DNA 분석을 통해 형 나폴레옹 1세와 아들 나폴레옹 3세가 부계 쪽의 혈연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되면서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분석에 이용된 DNA 시료가 불완전하고 다른 근거로 교차 입증할 수도 없어 과학계 및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