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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벨라루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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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벨라루스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중세2.2. 근세2.3. 근대2.4. 20세기2.5. 21세기
2.5.1. 2020년대
3. 관련 문서

1. 개요

폴란드 벨라루스의 외교. 양국은 역사적인 이유로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현재에도 폴란드와 벨라루스 양국은 정치적으로 갈등이 있다. 폴란드는 반러국가이며 벨라루스는 친러국가에 속한다.[1]

오늘날 벨라루스에는 2019년 통계 기준 288,000여 명의 폴란드인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그로드노 주를 중심으로 거주한다. 이 외에도 폴란드에서 취직한 벨라루스인 이주노동자도 적지 않은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폴란드와 벨라루스 사이의 국경이 무슨 거대한 산맥이나 바다로 나뉘어진 것도 아닌데 서로간의 언어와 정체성이 달라진 계기는 바로 역사적/종교적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폴란드는 신성 로마 제국과 체코의 영향으로 가톨릭을 받아들이는데, 연대기 기록에서는 미에슈코 1세가 966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을 계기로 폴란드가 가톨릭화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독일의 엘베 강 동쪽에는 여러 갈래의 서슬라브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 중 폴란인들이 기독교를 비롯한 서유럽 문물을 받아들여 먼저 국가 체계를 갖춘 이후 이웃 서슬라브 부족들을 하나하나 병합해나가면서 중세 폴란드 영지, 나아가 폴란드 왕국을 구성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 오늘날 벨라루스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키예프 루스의 갈래에 해당하는 폴로츠크 공국, 투로프 공국, 나바흐루다크 공국 등이 들어섰다. 이러한 도시나 공국들은 자생적으로 발생했다기보다는 서기 5세기에서 9세기에 이르는 기간 사이 슬라브인들이 발트어파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다시 이들이 키예프 루스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은 이후, 키예프 루스가 정복한 지역 각지에 무역기지를 세움으로서 건설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볼로디미르 1세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정교회를 받아들인 것을 계기로 벨라루스 일대의 주민들도 정교회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13세기 초 독일계 십자군인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폴로츠크 공국에게 공납을 바치던 발트해의 여러 부족 집단들을 복속시키고, 폴로츠크 측의 다우가바강 무역로를 봉쇄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예프 루스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여러 루스 공국들은 사분오열되기 시작하였다. 키예프 루스 멸망 이후 이러한 여러 공국들은 하나하나 이름을 다 열거하기는 힘들고, 이런 공국들이 모여 있는 지역들은 라틴어로 러시아를 뜻하는 루테니아라고 지칭되곤 했다. 오늘날 벨라루스는 중세 당시 백루테니아와 흑루테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을 그 기원으로 한다,

폴로츠크 공국이 힘을 잃은 이후 나바흐루다크 공국이 세력을 얻어 벨라루스 일대의 중심지가 되었다. 1237년 나바흐루다크의 공작 이쟈슬라프가 사망하자 베체는 리투아니아의 대공이었던 민다우가스를 대공으로 임명하는데, 이는 나바흐루다크가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수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투로프, 핀스크, 폴로츠크, 민스크, 비쳅스크 등 흑루테니아와 백루테니아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통일되었다.

백루테니아와 흑루테니아의 정교회 귀족들은 리투아니아 대공국 사회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였다. 한편 리투아니아의 민다우가스는 발트 토속 신앙에서 동방 정교회로 개종했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가 나중에 다시 발트 토속 신앙으로 원복하였던 바가 있었는데, 중세 리투아니아인들은 필요에 따라 종교나 종파를 갈아타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중세 벨라루스인들과 리투아니아인들 관계에 다른 한 가지 변수가 추가되었다.

튜튼 기사단이 리투아니아 본토와 폴란드 왕국을 위협하자, 폴란드의 여왕 야드비가 브와디스와프 2세의 결혼을 통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동군연합을 이루고, 브와디스와프 2세는 그 대가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다른 리투아니아인들 역시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벨라루스를 중심으로 한 정교회 신도들과 리투아니아의 발트 토속 신앙 신봉자들은 가톨릭 개종 정책에 반발하자, 브와디스와프 2세는 자신의 사촌이었던 비타우타스를 복권시키고 리투아니아 대공국 일대를 관할하는 대공으로 삼았다. 중세 리투아니아의 역사를 다룬 독일과 폴란드의 역사서에는 비타우타스 대공이 가톨릭 신자와 정교회 신자, 그리고 발트 다신교 숭배자 이렇게 3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소유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2.2. 근세

근세 당시 폴란드 귀족 문화는 동유럽 각지에서 최첨단 문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정교회 문화의 본산인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정교회권은 계속 위축을 거듭하는 가운데, 폴란드 상류층들은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독일은 물론 이탈리아로부터 여러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동쪽의 오스만 제국과도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전근대 당시에는 교육 기관들이 대개 종교 시설과 연계되어 관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당대 최신 고등교육을 받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교회를 고수하던 귀족들이 폴란드인들과 통혼하거나 폴란드어를 사용하며 폴란드인들과 급속히 동화되는 것이 당연했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폴란드 귀족 가문 상당수는 무슨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지주마냥 멀리서 굴러들어온 사람들이 아닌, 가톨릭으로 개종한 루테니아 가문 출신이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사이의 동군연합은 루블린 조약을 통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통일되었고, 벨라루스 지역의 귀족들 역시 폴란드인 귀족들과 더 빠른 속도로 동화되기 시작했다. 루테니아 귀족들이 폴란드 귀족들과 같은 대접을 받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루테니아 일대의 농노들의 처우 및 루테니아 정교회 신자들에 대한 입장이 시간이 지날수록 개악되었기 때문에[2]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가 교차한다. 벨라루스 일대의 기득권층이 가톨릭화, 폴란드화하는 과정에서 벨라루스의 농노들은 정교회를 고수하였는데, 이는 지주와 농노 사이의 갈등이 단순한 계급 갈등을 넘어 종교/민족 갈등으로 번지게 됨을 의미했다. 벨라루스 민족주의자들이 폴란드 관련하여 느끼는 반감은 이러한 배경을 두고 이해해야 한다. 폴란드와 벨라루스 사이의 역사적 갈등은 폴란드가 벨라루스를 무력으로 침략해서 발생했다기보다는, 폴란드화한 벨라루스 기득권층과 벨라루스어를 보존한 피지배 계급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 하에서 벨라루스의 정교회 신도들이 반강제로 동방 가톨릭으로 개종되기도 했다.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문서 참조. 벨라루스 현지 농노들은 그리스 가톨릭(비잔틴 전례를 유지하되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는 형태의 교회)으로 개종된 이후에도 폴란드인 혹은 완전히 폴란드화한 현지 기득권층으로부터 차별을 받아왔다.

2.3. 근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보흐단 흐멜니츠키 봉기를 계기로 쇠퇴하고 결국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로 멸망했다. 폴란드 분할 과정에서 연방의 동부 영토에 해당하던 벨라루스 지역은 러시아 연방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장악했을 당시 벨라루스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지주 계층은 이미 폴란드화가 완료된 상황이었고 자신들을 폴란드인, 폴란드-리투아니아인으로 인식했으며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이 아닌 로마 가톨릭을 믿고 모국어로 폴란드어를 사용하는 상황이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서 벨라루스 지역은 가톨릭을 믿는 귀족들은 11월 봉기 1월 봉기 전후하여 상당수 추방당하거나 프랑스 등으로 망명하고, 벨라루스어를 사용하고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을 믿던 벨라루스인 인구 대부분은 다시 정교회로 개종하게 되었다.

1861년 러시아 제국에서 농노 해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3] 불온 세력으로 간주되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가톨릭 지주들에게는 일부러 토지 재분배 관련 보상을 최소한만 해주었으며, 벨라루스 농부들에게는 비교적 가벼운 토지세와 이자가 부과되었다.

2.4. 20세기

1918년에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몰락하고 러시아 제국,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는 독립했다. 독립한 뒤에 소비에트 러시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을 벌인 폴란드는 러시아와 함께 벨라루스를 동서로 분할했다.

전간기 들어선 폴란드 제2공화국은 상당수의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이 거주했는데, 벨라루스인 정교회 신도들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신생 폴란드 공화국 내에서 2등 시민으로 차별을 받았고, 상당수의 벨라루스인들이 차별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벨라루스계 아르헨티나인 문서 참조

다른 한편으로 소련 영토로 편입된 벨라루스 지역에서도 폴란드계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일어났다. 상당수의 폴란드계 벨라루스인, 폴란드계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는 과정에서 나치 독일 폴란드를 침공했고, 소련군은 나치 독일군과 대치하던 폴란드군의 후방을 공격한 이후 스몰렌스크 근처에서 카틴 학살을 벌였다. 이후 나치독일이 독소전쟁을 시작하면서 벨라루스 지역 역시 나치 독일군의 침략을 겪었다. 폴란드와 벨라루스는 2차대전 당시 가장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지역 중 하나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공유한다. 자세한 내용은 폴란드 침공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벨라루스 점령 문서 참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벨라루스 서쪽은 소련의 영토가 되고 폴란드도 소련의 영향으로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세워졌다. 폴란드와 벨라루스 사이의 국경이 폴란드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불리한 방향으로 재조정되었으며, 대신 폴란드는 독일의 동부 영토를 보상으로 받았다.

80년대에 폴란드는 민주화가 되자 공산정권이 몰락하고 새 정권이 출범했다. 반면, 벨라루스는 91년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국이 되었지만, 루카셴코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독재국가가 되었다.

2.5. 21세기

벨라루스와 폴란드는 독립한 이후에 수교했으며 폴란드는 벨라루스를 국제적으로 승인한 최초의 국가이다. 하지만 양국은 정치적인 문제로 갈등이 있다. 폴란드는 반러 감정이 있다보니 친서방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 90년대에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하고 2000년대에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하지만 벨라루스는 루카셴코가 정권을 잡으면서 친러성향의 국가가 되는 등 정치적인 문제로 갈등이 심한 편이다. 루카셴코의 독재 정치에 반대하는 야권에선 폴란드나 벨라루스 주변국으로 망명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폴란드 내에는 벨라루스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벨라루스 내에도 폴란드인들이 많이 거주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학살과 추방으로 대부분 줄어들었다.

2019년에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갈등을 빚으면서 양국간의 관계가 바뀔 가능성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2020년에 벨라루스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폴란드측은 벨라루스를 제재했다.

루카셴코 정권의 독재를 피하기 위해 폴란드로 망명하는 벨라루스인들이 늘고 있다. #

2.5.1. 2020년대

2021년, 폴란드에서 한 벨라루스 남성이 폭설 속에 갇혀 꼼짝 못하는 버스를 도우려 밀어준데 대해 바르샤바시로부터 90일 간의 바르샤바 교통 무료 이용권과 바르샤바 어학원의 폴란드어 무료 수강권을 받았다. #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벨라루스의 크리스치나 치마노우스카야 육상 선수가 갑작스럽게 본국 소환이 들어오는 바람에 이에 반발한 그녀는 망명을 하기로 결심하고, 주일 폴란드 대사관에 가서 폴란드로 망명하였다.[4] #

2021년 8월 6일, 폴란드 정부는 벨라루스가 불법 이민자를 보내 EU와 하이브리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밝혔다. # 9월, 벨라루스 국경지대에 비상상태 선포가 내려졌다. #

10월, 폴란드가 4억불을 들어서 국경 장벽을 건설 하기로 했다. 11월 들어 폴란드와 벨라루스간 국경 난민 사태가 악화되면서 러시아와 EU국가 간에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 벨라루스 측 여행사에서 난민들을 위한 밀입국해 독일로 향하는 여행상품을 출시하면서 파장이 더 커졌다. 벨라루스와 러시아 공수부대들이 훈련을 벌이는 등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상태이다. # 폴란드와 벨라루스간 난민사태가 발생되면서 국경을 수비하던 폴란드 군인 한 명이 사고로 사망하고 9명의 난민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시리아인 20대 남성의 동사체가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

다른 난민사태들과 달리 서로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난민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

2022년 6월 30일, 폴란드는 벨라루스 국경에 불법적인 난민들을 막기 위한 장벽을 세웠다고 밝혔다. #

벨라루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 저항군 묘지를 파괴하자 양국간 갈등이 일어났다. #

9월 8일, 벨라루스가 폴란드 국경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

2023년 3월 21일, 폴란드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미군이 폴란드 내에 영구주둔 미군기지를 만들면서 벨라루스가 러시아 뒷배를 믿고 폴란드를 향해 도발을 한다거나 하는 전쟁위협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6월 28일,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 도착하자 폴란드 측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게다가 바그너 그룹과 벨라루스군이 훈련하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

벨라루스가 폴란드 영공 침공을 시도하는 등 도발을 하고 있다. #

3. 관련 문서



[1] 벨라루스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정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러시아군이 벨라루스 영토를 이동하는 것 관련해서 협조하고 있으며, 2022년 퓨 리서치 조사 결과 폴란드 국민의 98%가 러시아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바 있다. [2] 훗날의 러시아령 폴란드와는 반대로 가톨릭 국가가 자국 치하의 정교회 신자들을 탄압한 케이스다. [3] 자세한 내용은 알렉산드르 2세 문서 참조 [4] 남편도 본국에서 떠나 우크라이나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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