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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9:56

도미니카 공화국-아이티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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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2.2. 19세기2.3. 20세기2.4. 21세기
3. 문화 교류4. 논란
4.1. 아이티인 추방 관련
5. 관련 기사6. 관련 문서

1. 개요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의 관계에 대한 문서.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는 같은 이스파니올라 섬에 위치해 있지만, 양국은 국경을 두고 언어, 문화, 민족, 자연환경, 소득 수준 등에서 차이가 매우 크다. 동부의 도미니카 공화국이 인간도라면, 서부의 아이티는 무간지옥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도미니카 공화국은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딱히 잘 사는 나라는 아니다.[1] 하지만 아이티보다는 경제력과 생활 수준이 열 배 이상으로 높은 데다 아이티가 모든 지표에서 최악을 달리는 최빈국 신세이다보니, 그래도 국가 기능이 그나마 돌아가는 개발도상국인 도미니카 공화국이 비교적 좋게 비춰지는 것. 이런 격차도 있고, 한때 도미니카가 아이티의 침공을 받은 바 있는 역사적 앙금까지 더해져 도미니카 공화국은 정부와 국민을 막론하고 아이티와 아이티인을 굉장히 하찮게 여기며 차별 대우한다. 대략 미국 국민들이 바로 남쪽의 멕시코 쿠바를 마약 범죄자들이 난무하고, 자유가 없는 공산당 감옥 취급하며 혐오하는 것이나 이탈리아인들이 지중해 바다 건너 서쪽의 그리스를 돌산에 신전 유적지밖에 없는 낙후된 찌질이 국가로 취급하고[2],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이 이웃한 북쪽의 아랍국가인 이라크[3] 요르단을 거지 국가로 악평하거나, 알제리 국민들이 모리타니 말리, 니제르 등 남쪽 사헬 지대의 아프리카 이웃국가들을 생지옥, 무법천지로 보거나, 인도 사람들이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이웃 남아시아 지역 나라들을 독사나 바퀴벌레 취급하는 것보다 더 맞먹을 정도로 도미니카 공화국 국민들이 아이티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좋지 않다.

과거 아이티는 프랑스의 부유한 식민지이자 카리브 최초의 독립국으로서 자부심이 높은 곳이었던 반면, 도미니카 공화국은 스페인 식민지 중에선 딱히 가치가 높지 않은 농업 지역에 불과했다. 그리고 먼저 독립한 아이티는 잠시나마 도미니카 공화국을 식민 지배하기도 했다. 그런 관계에서 세계 최악의 헬게이트 vs 그럭저럭 살 만한 개도국으로 역전된 것.

가장 큰 변화는 20세기 후반에 있었다. 1970년대, 1980년대 아이티는 독재 정권 하의 부실한 산림 관리 정책으로 그나마 있던 산림마저 모두 베어버려 암반이 노출될 정도로 심각한 토양 유실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식량생산도 급감하여 1991년부터 2002년 사이에는 무려 30% 이상이 감소했다. 이러다 보니 안 그래도 아이티는 옆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바다 건너 쿠바에 비해 기후상 강수량이 적었는데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는 옆나라 도미니카 공화국과 다르게 부실정책으로 인해 달리 숲이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어 기본적인 땔감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원래 이스파니올라 섬 타이노인들이 많이 거주했다. 스페인이 이스파니올라 섬을 정복한 이후, 타이노인들은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전염병이 퍼지고 탄압받으면서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다. 타이노인들은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500~800만 인구가 수십년만에 2만 6천여 명만 남은 상태로 전락했으며, 1535년에 혼혈 외에는 거의 전멸한 상태가 되었다.

이스파니올라 섬은 스페인의 지배하에선 산토도밍고라고 불렸다. 이후, 프랑스가 1697년부로 이스파니올라 섬 서쪽을 차지하면서 지금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되었다. 프랑스는 아이티 지역을 생도맹그로 불렀다. 또한,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차이도 생겨났다.[4]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던 생도맹그는 당시 프랑스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당시 비옥하던 생도맹그에서 생산되는 설탕과 담배가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인 노예들에게는 대가가 돌아가지 못했으며, 프랑스의 지배하에서 억압을 많이 받았다.

2.2. 19세기

18세기말에 생도맹그에선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8세기말에 아이티에서 아이티 혁명이 일어났고 생도맹그는 흑인 노예, 농장주, 프랑스군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생도맹그의 격렬한 내전 끝에 아이티는 아이티 제국으로 독립했다. 스페인령 산토도밍고는 1795년 이후에 잠시 프랑스령이 됐다. 그러다가 스페인과 영국이 협력해 프랑스로부터 스페인령 산토토밍고를 탈환하고 1809년에서 1821년까지 스페인령이었다가 스페인 아이티 공화국이란 국명으로 독립했지만, 아이티가 스페인령 산토도밍고를 침략하여 1822년부터 1844년까지 지배했다. 아이티가 도미니카 공화국을 억압하고 탄압하면서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였다. 이후 1844년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2.3. 20세기

1900년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오류로 인하여 아이티의 영토를 침범하여 국경선을 표시한 지도우표가 발행됐다. # 아이티에서는 우표를 당장 수정하라고 요구했으나 당연히 무시. 결국 아이티에서 전쟁을 선포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우표를 새로 만들겠다고 협상하면 끝날 것을 선전포고를 받아들여 전쟁을 무려 29년간 질질 끌었다. 전쟁 중에 아이티에서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영토를 침범하여 국경선을 그은 우표를 발행했다. 이 무익한 전쟁을 끝낸 이는 다름아닌 미국. 미국이 왜 이런 일로 싸우냐며 제대로 된 우표를 새로 만들자는 제안을 하여 29년간의 전쟁이 끝났다. 그냥 우표 핑계대고 싸운 꼴.

2.4. 21세기

경제적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에 비해 12배 정도 부유하며 아이티는 카리브 해의 최빈국으로 남아 있다.[5] 도미니카 공화국내에도 아이티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차별과 학대를 당하고 있다.[6]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돈도 안 주고 배째라하는 기업도 많이 있고, 아예 아이티의 흑인 남자들은 죽도록 착취 폭행당하고 여자들은 성폭행 당해 혼혈아를 임신 출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도미니카 공화국 사람들도 미국인들이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싫어하듯 아이티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티가 거의 다 흑인인 것과 다르게 도미니카 공화국 인구 상당수가 물라토라서 차별이 더 심해진다고 한다. 국경선에서도 도미니카 공화국이 상전 나라인 양 군다. 더욱이 도미니카 공화국은 공교육이 어느 정도 돌아가는 나라인 반면 아이티는 현재도 문맹률이 높고 컴퓨터 관련 활용 능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도 차별 대우를 부채질한다.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아이티나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한 나라이다 보니 도미니카 공화국이 아이티인들을 어떤 방법으로 부려먹어도 다른 나라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도 있고.

한 술 더떠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와 그 후임자들의 산림 녹화 산업으로 숲과 자연 환경이 잘 보전된 것과 대조적으로 아이티의 자연 환경은 장 클로드 뒤발리에 시절 산림 파괴로 초토화된 상황이다. 위성 사진을 보면 국경을 기점으로 색상이 완전 달라지는 수준이다. 결과는 아이티 농업 생산량 22% 감소 크리...

물론 대놓고 적대관계만 있는 건 아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엔 도미니카가 처음으로 아이티에 지원을 하러간 적이 있었다. 물론 이것도 도미니카가 단순히 국가 차원의 동정심 때문에 한 게 아니라 대지진으로 인해 난민이 된 아이티인들이 대규모로 자국에 난민으로 유입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국내 케이블 방송에서 현지 취재 중 도미니카 국경 경찰들이 거들먹거리면서 아이티 사람들을 조사하는데 외국 취재진들이 보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고 욕하는 장면이 촬영된 적이 있었다. 그나마 아이티 사람들 말에 의하면, 외국 기자들이 보니까 구타는 안 하고 이 선에서 멈추는 것이라고 한다.

2021년 7월 7일에 아이티의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되자 도미니카 공화국측은 아이티와의 국경을 폐쇄하고 다시 개방가다가 2023년 9월부로 무기한 폐쇄했다. # 10월에 다시 일부분만 개방했다. #

2024년 3월 19일, 아이티에서 갱단으로 인한 혼란이 일어나자 도미니카 공화국 측은 자국민 20여명을 탈출시켰다. #

3. 문화 교류

언어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있어서 아이티는 프랑스어 아이티 크레올어가 공용어이고 도미니카 공화국은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종교에선 아이티 지역에서는 천주교 부두교를 동시에 믿는 인구 비율이 80~90%에 달하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은 천주교를 그대로 믿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아이티는 도미니카 공화국, 주변국과 경제교류를 위해 스페인어를 주요 외국어로 지정해서 배우고 있다.

한편, 위와는 별개로 스포츠를 통하여 관계 개선을 꽤하려는 시도도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 연맹(FEDOBE)과 아이티 야구 연맹은 스포츠가 평화를 조성하고 양국의 두 민족 사이의 우정과 상호 존중을 강화하기 위한 발전 요소라는 점을 바탕으로 아이티(특히 국경 지역)에서 야구를 발전시키고 진흥시키기로 합의했다.
2017년 당시,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 연맹(FEDOBE) 회장은 도미니카 공화국 스포츠부(우리의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에 힘입어 "이를 통해 우리 연맹이 아이티를 야구계에서 돕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아이티 야구 연맹을 국제기구와 연계시키겠다고 약속했으며,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 연맹은 기술 과정, 심판, 득점원을 위해 코치들을 아이티로 파견할 예정이며, 아이티 연맹은 훈련 프로그램의 실행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4. 논란

4.1. 아이티인 추방 관련

아이티인들에 대한 도미니카 이민청 직원등에 의한 상습적인 불심검문, 짐 뒤지기 등의 수색은 외국인이 봐도 지나치다고 인식될 정도이다. 목적은 불법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에 들어온 아이티인들에 대한 단속과 불법 체류에 대한 추방.

다만 이 점에서는 무능하고도 가난한 아이티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여권 발급과 주민 등록 등의 행정 인프라가 자리잡지 못한 아이티 때문에 아이티인들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보장하는 2년간의 체류 허가조차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도 아이티의 상대적으로 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목적으로 허가를 내줌에도 정작 아이티 정부 때문에 시민들이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여권용 책, 종이가 부족해서 여권 발급을 중단할 정도였다. 극소수이지만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부터 필요한 서류들을 제출하고 거주권을 보장받은 아이티인들의 상황은 훨씬 나은 편이다.[7]

도미니카 공화국 쓰레기장 주변 등에 가난한 아이티 주민들이 모여 살기도 하는데 상당수가 불법체류자라서 도미니카 공화국 소속 공무원, 경찰 등이 이들을 단속해서 추방한다. 때문에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살던 이웃이 다음날 단속에 끌려나가서 생활하던 그대로 집이 방치되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 문제는 아이티인으로 머물면서 합법적 거주권을 얻은 이들까지 흑인 계열이라고 다짜고짜 추방한 것이다. 그나마, 재산이 있어 경제적으로 괜찮은 이들은 도미니카 국적을 인정받았다.

5. 관련 기사

6. 관련 문서



[1] 2021년 IMF 통계기준 1인당 GDP는 8550달러. 대한민국의 1/4 수준이며 아이티는 730달러다. 참고로 북한도 1000달러 미만이다. [2] 물론 이탈리아도 북부 지역의 경우 경제적으로 잘 사는데 비해 남부 지역은 경제적으로 가난하여 남북 간의 지역 격차가 심하긴 하지만 남부와 북부 지역 둘 다 경제적으로 소득이 낮은 그리스보다 그래도 국제적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될 정도로 1인당 GDP가 더 높은 편이다. [3] 단, 인구수로는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다. [4] 동시에 아이티인 도미니카인들의 차이도 커지게 되었다. [5]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것외에도 1825년에 샤를 10세가 배상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1947년까지 배상금을 갚아야 했을 정도로 아이티는 프랑스와의 관계가 매우 안 좋은 정도이다. [6] 아이티인들은 캐나다와 미국으로도 이민을 많이 떠났으며 캐나다 퀘벡하고 미국 루이지애나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7] 차별은 받지만 거주권이 있기에 도미니카 공무원들도 이들을 추방하진 않는다. [8] 도미니카 공화국은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다. [9] 아이티는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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