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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아이티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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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티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근세2.2. 18세기2.3. 19세기2.4. 20세기2.5. 21세기
2.5.1. 2010년대2.5.2. 2020년대
3. 문화 교류
3.1. 스포츠
4. 교통 교류5. 아이티계 프랑스인6. 대사관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프랑스 아이티에 대한 관계로,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진-빵셔틀 관계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관계.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와 영향으로 프랑스어 아이티 크레올어가 공용어이지만, 과거 프랑스의 혹독한 지배와 탄압으로 사이가 굉장히 험악한 편이다. 또한, 이 프랑스의 식민지배와 독립 후 프랑스의 간섭으로 인해 아이티가 최빈국으로 남았다.

역사적인 이유로 아이티는 프랑스와 갈등이 존재한다. 아이티는 프랑스의 혹독한 지배와 탄압으로 지금도 반불감정이 심한 편이다. 다만, 프랑스와 아이티는 프랑코포니, 라틴 연합 회원국이다.

2. 역사적 관계

2.1. 근세

독립 이전 아이티는 생도맹그(Saint-Domingue)라고 불렸으며 프랑스의 주요 식민지 중 하나였다. 프랑스는 아이티 북부의 토르투가 섬을 해적 기지로 활용하다가 스페인으로부터 이스파니올라 섬 서쪽을 빼앗았고 차지했다. 당시 산토도밍고라고 불렸던 스페인의 지배하 있던 이스파니올라 섬은 프랑스가 서쪽을 차지하면서 생도맹그라는 이름이 되었고 서쪽의 프랑스령과 동쪽의 스페인령으로 나뉘어지면서 지금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뿌리가 되었다.[1] 프랑스는 생도맹그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서아프리카로부터 흑인 노예들을 들여왔고 아이티 내의 흑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노예 노동으로 착취당하였다. 당시 생도맹그는 프랑스의 세입의 4분의 1 이상을 담당하는 알짜 식민지였고 이곳의 사탕수수, 담배, 커피나무 재배와 설탕, 커피 생산은 근세 프랑스 경제에서 매우 중요했다.

2.2. 18세기

18세기 말에 아이티 내 흑백혼혈 크레올들을 중심으로 아이티 혁명이 일어났다. 프랑스군, 흑인노예, 백인 농장주간의 학살이 일어났고 여기에 영국, 스페인 등 외세마저 개입하면서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프랑스군은 알짜배기 식민지를 잃지 않기 위해 프랑스 본토에서 병력을 파견하였으나, 당시에는 병사들의 건강을 신경쓰지 않던 시절이었고 장기간의 항해를 통해 피로해진 프랑스군 병력들은 아이티에 상륙한 이후 대부분 황열병에 걸려서 전멸 수준의 피해를 입었다.

2.3. 19세기

프랑스군이 황열병을 이기지 못하고 철수하면서 19세기초에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 이후,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에 한동안 카리브해 인근에서 군사 강국으로 명성을 떨친다.[2]

아이티는 투생 루베르튀르의 지도 하에 독립전쟁을 거쳐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경제적인 종속은 사실상 그대로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과거 설탕 무역 거래처들을 백인 지주들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백인들이 거의 다 도망가거나 학살당한 이후라서 설탕을 생산해도 프랑스의 허락 없이는 팔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또한 당시 인종주의가 횡행하던 시대에 다른 서구 열강들이 순순히 독립한 흑인 노예들과 정직하게 무역한다는 보장도 없었다.[3] 결국 신생 아이티는 독립 이후 순순히 프랑스가 시키는데로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던 다른 열강들의 압박, 그리고 함대를 파견하여 압박하며 요구한 프랑스의 아이티 근대화 비용 및 아이티에 경제적 이권을 가지던 프랑스인들을 위한 배상금을 요구했다. 한마디로 프랑스가 아이티가 프랑스 농장주들의 재산인 농장과 흑인 노예들을 '도둑질'했으니, 그 대가로 배상금을 내놓으라는 소리이다. 프랑스의 최초 요구는 1억 5천만 금 프랑이었고 아이티가 빌고 빌어 9천만 금 프랑으로 깎았음에도 아이티는 없는 살림에 국가예산의 80%를 122년간 1947년까지 이를 지불하는데 지출하여야 했었다. 그나마도 프랑스가 더 받으려 한 것을 미국이 먼로 독트린에 따라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을 막기 위해 개입해서 이 정도로 끝난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아이티가 최빈국으로 남아있는 원인이 되었다. 샤를 10세 참고.

배상금 강요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프랑스 식민시절 확립된 노예제로 운영되는 플랜테이션 경제 체제였다. 노예 노동은 그야말로 맞기 싫어서 눈치껏 억지로 일하는 것인데, 일반 임금 노동자보다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근대 쿨리로 대표되는 계약 이주 노동자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바베이도스 등지가 새로운 설탕, 커피 재배지로 각광받으면서 노예제 경제가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던 아이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은 경쟁력을 잃고 점차 도태되었다. 생도맹그 식민지 시절 일부 혼혈 흑인들(주로 백인 남성과 흑인 노예 여성 사이의 사생아)를 제외한 흑인 노예들은 대개 당나귀나 노새보다 나을 것 없는 수준의 대우를 받았고, 이러한 혼란 상황에서 독립한 아이티는 자체적인 중산층 육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아아티가 프랑스에 바쳤던 배상금은 당시 아이티 독립정부의 연간 수입보다 10배나 많은 금액이었다. 신생 독립국가인 아이티는 교육과 재건, 보건 등에 사용해야 할 정부 수입의 80%를 옛 식민지배국에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2004년 아이티 정부는 프랑스에 ‘식민지 배상금’이 원인무효라며 전액 탕감을 요구했지만 프랑스는 거부했다. # 오늘날까지 아이티가 겪고 있는 너무나 큰 비극의 원인.[4]

2.4. 20세기

뒤발리에가 1986년에 권좌에서 물러나 25년 동안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

2.5. 21세기

2004년에 아이티 사태가 일어나자 미국과 프랑스가 군대를 파견했다. #

2005년 6월 1일에 포르토프랭스에서 프랑스 명예 영사가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

2.5.1. 2010년대

2010년에는 지진과 콜레라로 고통받던 아이티 아이들 300여명이 프랑스 가정으로 입양된 사례가 있었다. #1 #2 그리고 아이티에서 강진이 일어나자 프랑스는 아이티에 지진 지원금을 지원했다. # 또한, 지원금을 크게 확대했다. # G7 회원국들은 아이티의 부채를 탕감하기로 했다. # 프랑스는 아이티 출신 불법이주민들의 추방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

2015년 5월 12일에 올랑드 대통령은 아이티를 방문했고 아이티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 올랑드 대통령이 아이티를 방문하자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

2016년 3월 9일에 프랑스의 한 여성이 아이티 출신 아이를 불법적으로 입양시킬려다 적발된 일이 일어났다. # 12월 18일에 프랑스의 외무장관이 아이티를 방문해 허리케인의 피해를 입은 아이티를 도왔다. #

2.5.2. 2020년대

2021년 4월에 아이티에서 프랑스인 신부를 포함한 5명의 신부와 2명의 간호사가 납치된 적이 있었다. # 7월 7일에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프랑스는 대통령 암살에 대해 비판했다. # 미국, 유럽연합, 독일, 프랑스 등의 아이티 주재 대사들로 이뤄진 이른바 코어그룹은 앙리 총리와 만난 후 성명을 내고 선거를 통해 포용적인 정부를 구성하고 민주주의 기능 정상화를 조속히 회복하려는 총리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갱단 폭력사태를 수습 중인 아이티 과도위원회를 "멍청이들"이라고 비난한 영상이 SNS에서 공유되면서 아이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3. 문화 교류

역사적으로 갈등이 존재하는 것과 별개로 프랑스의 영향이 남아 있어 중남미 및 카리브해 지역에서 프랑스령 지역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고, 또다른 공용어인 아이티 크레올어도 프랑스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 부두교는 아이티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흑인 노예들의 영향으로 들어왔다. #

3.1. 스포츠

아이티 출신의 축구 선수들이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경우가 존재한다. # 그리고 아이티 출신 축구 선수들중에는 프랑스로 귀화하는 경우도 존재하며 아이티, 프랑스 이중국적자들이 존재한다.

2007년에 프랑스 축구팀이 아이티 축구팀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

4. 교통 교류

양국을 이어주는 항공 노선이 존재한다. 양국간의 항공 노선을 통한 교류가 존재한다. 2004년에 아이티 사태와 관련해 에어 프랑스가 아이티 노선을 중단한 적이 있었다. #

5. 아이티계 프랑스인

아이티인들 중에도 프랑스로 건너간 경우도 있다. 프랑스로 건너간 아이티인들은 아이티계 프랑스인이 됐다. 프랑스내에는 아이티계 프랑스인 커뮤니티가 존재하며 아이티 크레올어 화자들이 존재한다. 다만 아이티와 프랑스 사이의 항공권 비용이 아이티인 소득 기준으로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오늘날 아이티인 난민들은 프랑스보다는 카리브해의 프랑스 영토들 아니면 캐나다의 프랑스어권인 퀘벡 주 등으로 이민하는 편이다. 사실 여기보다도 미국으로 더 간다.

6. 대사관

포르토프랭스 시에 주 아이티 프랑스 대사관, 파리 시에 주 프랑스 아이티 대사관이 존재한다.

2024년 3월 4일, 주 아이티 프랑스 대사관은 아이티에서 갱단에 의한 혼란이 일어나자 비자와 행정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 그리고 아이티 내의 프랑스 시민권자의 철수를 권고했다. #

7. 관련 문서



[1] 또한, 언어, 문화, 혈통적으로도 차이가 나게 되었다. [2] 이후 스페인령이었던 섬 동부(오늘날의 도미니카 공화국 일대)를 점령하고 40년간 지배했지만, 현지의 스페인어 사용자들이 아이티의 지배에 반발했고 아이티에서 다시 독립했다. [3] 여기에는 아이티인들의 실책도 없지 않았는데, 보복으로 프랑스인 백인 여성들과 아이들을 강간 학살했다. [4] 다만 이 배상금 때문에 프랑스가 아이티한테 꼼짝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 아이티 출신 불법이주민들의 추방을 보류 건이나 지진과 콜레라로 고통받던 아이티 아이들 300여명이 프랑스 가정으로 입양된 사례, 아이티에 지진 지원금을 지원하거나. 물론 배상금 때문에 고통 받았던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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