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8년부터 1700년까지
예수회 소속의 프랑스인 선교사들이 청나라를 방문하면서 청나라와 프랑스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니콜라스 트리고, 알렉상드르 드 로도스, 장 밥티스트 레지, 장 드니 아티레, 미셸 베누아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활동하였다. 프랑스의 선교사들은 청나라 황제와 프랑스 사절단의 만남을 주선하였고 많은 교류를 가졌다.
청나라와 프랑스의 관계는 이후 유럽에서 제국주의가 대두되고
제1차 아편전쟁이 일어나면서 역전되었는데, 제1차 아편전쟁 이후 프랑스는 청나라와 황포 조약을 체결하였다. 황포 조약의 내용은 영국과 청나라가 체결한 호문 조약이나 청나라와 미국이 체결한 망하 조약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황포 조약을 체결한 결과 프랑스는 조계지를 설치하였고
태평천국의 난에서는 청나라를 도와 태평천국을 진압하였다. 프랑스는 자국의 선교사가 처형된 것을 구실로 영국과 연합하여 청나라에 전쟁을 선포하였고
제2차 아편전쟁에서 승리하여
원명원을 파괴하고 베이징을 함락시켰다. 프랑스는 1858년 청나라에
톈진 조약 체결을 요구하였고, 1860년에는
베이징 조약을 체결하였다.
다른 한편 이른바
쿨리로 불렸던 중국인 계약 노동자들이 인도양 각지의 프랑스령 식민지로 이주, 정착하였다.
모리셔스,
세이셸,
레위니옹에 정착한 중국계들은 청나라 말 이주한 계약노동자들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