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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캄보디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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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캄보디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2.2. 현대
3. 관련 문서4. 외부 링크

1. 개요

태국 캄보디아의 관계.

두 나라 다 같은 불교를 믿고, 왕실이 존재하는 동남아시아의 군주국들이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이 존재한다. 캄보디아인들은 태국을 좋게 보진 않으나, 적어도 베트남에 비하면 그나마 태국을 보는 시선이 좋은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타이인들은 현재의 태국 땅에 크메르인들보다 훨씬 후에 들어온 민족이다. 언제 들어왔는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서기 13세기 이전만 해도 태국 상당수 영역을 크메르 제국이 지배해왔다. 하지만 대리국이 멸망하고 타이인들의 수가 늘어난 이후로는 타이인들이 자체적으로 수코타이, 란나, 란쌍 등의 나라를 건설하면서 크메르 제국의 세를 크게 축소시켜나갔다.

타이인들이 현재의 태국 영토에 들어온 이후로 캄보디아가 오랜기간 동안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태국은 역사적으로 베트남과 더불어 캄보디아의 양대 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디 동남아의 패권국이던 캄보디아(크메르 제국)을 몰락시킨 원흉이 바로 태국이기 때문이다.

태국인, 즉 타이족은 본래부터 동남아에 터잡고 살던 민족이 아니라 쓰촨성 남부- 윈난성- 광둥성 일부에 퍼져살던 남방계 민족들이 10세기 쯤부터 알음알음 동남아로 남하하기 시작하더니 13세기에는 그야말로 민족 대이동을 한다. 중세 타이족의 대이동은 가히 동남아판 게르만족의 대이동, 혹은 5호 16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타이인의 남하로 최대의 변화를 겪은 나라는 캄보디아였다. 아주 안좋은 쪽으로. 타이인들의 남하 초기에는 아직 건재하던 크메르 제국의 위세에 짖눌려 타이인들은 여러 도시국가들을 형성하고 크메르 제국에 복종하였다. 그런데 타이인들의 힘이 점점 강해지면서 크메르 제국의 서쪽 영토에 수코타이 왕국을 건설하여 크메르 제국은 서쪽 영토를 왕창 상실하였고 다시 북쪽에는 또 다른 타이계 국가인 란쌍 왕국이 생겨나 크메르의 북쪽 영토도 왕창 날아갔다.[1]

여기서 끝이 아니라 태국은 아유타야 왕국 대에 이르러선 아예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를 초토화 시키며 크메르 제국을 멸망시켜 버렸다. 그 뒤로 캄보디아는 다시는 동남아 역사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채 서쪽의 태국과 동쪽의 베트남 양쪽으로부터 얻어터지는 동네북이 되어버린다.

2.2. 현대

현재 경제적으로 태국이 훨씬 우월한 상황인지라 캄보디아인들 사이에서 태국을 고깝게 여기는 정서가 많다. 정치적으로는 자치 독립유지 및 왕정 국가와 프랑스의 식민지 및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차이도 있었고 국경 분쟁까지 벌이면서 사이가 나빠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가난한 캄보디아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태국으로 일용직으로 일하러 가는 경우가 많고, 문화적으로도 태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태국에서 캄보디아를 가난뱅이의 국가라 여기면서 깔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반대로 태국인들이 본국에서 불법인 도박을 즐기기 위해 캄보디아로 오기도 하며, 국경 도시인 포이펫에는 카지노가 많다. 그래 봐야 그 카지노도 전부 태국 부자들의 소유라서... 애당초 그곳에 카지노를 건설한 것도 태국인들이다.

태국(씨암)이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 지역을 일부 지배했던 적이 있다. 애초에 씨엠립이라는 지명이 '패배한 태국'이라는 뜻이다. 태국에선 이 막대한 관광자원을 놓친 게 아쉬워서인지 종종 앙코르와트가 자국 것이라는 망언도 터뜨린다. 2003년에는 태국 연예인이 방송 중 인터뷰로 앙코르와트가 태국 것이라고 말했다는 루머가 퍼졌는데, 본인은 부인했지만 성난 군중들에 의해 태국 국기가 불태워지고 대사관이 습격당하는 등 반태국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때의 분쟁은 캄보디아 쪽에서 바로 고개를 숙이면서 끝났다. 그 이유는, 캄보디아 자체의 발전 시설이 부족해서 씨엠렙 지역은 태국에서 송전선을 연결해서 전기를 끌어다쓰고 있었는데, 캄보디아에서 난리가 나자 빡친 태국에서는 전기를 끊었고, 그걸로 상황 끝.

하지만 잠시 고개를 숙였을 뿐 여전히 사이는 나쁘다. 2011년 2월에도 북부 쁘레아뷔히어 지역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지역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원으로, 위치가 진입로는 태국에 있지만 사원 자체는 캄보디아 땅인 이상한 지역이다. 덕분에 해당 지역은 여전히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곳. 게다가 과거에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지배할 때 지도상에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캄보디아에 속하는 것으로 표기해서 태국-캄보디아간의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

그 외에 태국이 차크리 나루에벳을 소환해서 무력시위를 시전한 적도 있다.

무에타이를 두고 양국은 원조 논쟁을 벌였다. # 동남아 지역에는 각국마다 무에타이와 비슷한 무술이 있었고, 캄보디아측의 원조 주장도 '앙코르 와트에 새겨진 벽화가 증거다' 정도로 빈약한 데다, 현대의 무에타이는 20세기에 현대화를 거치며 형태가 많이 바뀐 무술이기 때문에 결국은 후발주자인 캄보디아 측의 감정적 주장에 불과하다. 이런 국가감정 때문에 캄보디아는 태국의 국기인 무에타이 대신 쿤 크메르라고 하는 캄보디아판 무에타이를 하는데,[2] 감정과는 별개로 무에타이와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해방 이후 가라데를 수용하기 어려웠던 한국이 가라데를 기반으로 태권도를 만든 것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3. 관련 문서

4. 외부 링크


[1] 같은 시기 원나라의 침공으로 크메르 제국이 대량의 공물을 뜯기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국력과 위상이 손실된 것이 컸다. [2] 현대화한 무에타이에 가까운 룰은 쿤 크메르, 고대 무술에 가까운 룰은 보카토르, 이렇게 두 형태로 계승하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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