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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4 08:59:31

라오스-캄보디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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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캄보디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2.2.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

라오스 캄보디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8세기부터 라오족들은 인도차이나 반도 내륙 메콩 강 연안에 내려오면서 정착해서 살았다. 캄보디아 남부 시엠렙 호수에서 시작된 크메르 왕조는 영토를 넓혀 북쪽으로는 지금의 라오스가 있는 메콩강 북동부도 점령했다. 이 시기 크메르 왕조는 번영을 누렸다보니 문화 역시 라오스에 미친 영향이 컸다.

그러다 훗날 14세기에 라오족은 파응움 장군에 의해 부족들이 통합되었고, 라오족들은 이곳을 점령한 동남아시아의 주요 제국 중 하나였던 크메르 제국의 통치를 받았지만 동시에 파응움을 도와줬고 이후 크메르로부터 독립되어 1353년에 루앙프라방에 란상 왕조를 세웠다.

이후 란상 왕조는 크메르 제국의 위성 국가가 되었으나 동시에 동등한 지위를 갖추었다. 크메르 제국은 1300년대에 수코타이에게 루앙프라방을 잃기도 했었으며, 1431년 아유타이 왕국의 침략으로 앙코르에서 수도를 여러번 옮겼다가 최종적으로 지금의 프놈펜을 수도로 정했다.

크메르는 이후 태국와 베트남의 응우엔 왕조 등에게 시달랄 때도 많았지만 캄보디아 남부 해안을 통해 무역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며, 외교 사절단을 보내어 필리핀 군도에는 스페인인들에게, 마카오에는 포르투살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조총부대 및 용병들과 힘을 합쳐 이들을 막아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베트남과 태국에게 시달리는 건 변함이 없었으며, 바다를 통한 해외무역, 사신 파견 외에는 여러 가지로 약해지면서 내분으로 더 일찍 다른 나라들에게 망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반면 라오스의 란쌍 왕국은 힘이 세졌는데, 란쌍왕국은 1400년대부터 1570년대까지 베트남, 아유타이, 버마의 따웅우 왕조와 싸우면서 경쟁하여 자신들의 영토를 넓히거나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켰다. 1640년대에는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란쌍은 왕국이 분열되어 루앙프라방 왕국, 비엔티안 왕국, 짬빠싹 왕국으로 나뉘어졌고 내분 때문에 서서히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라오족과 크메르족들은 딱히 이렇다할 갈등은 없었으며, 전쟁이 많지도 않았고 둘 다 서로 무역과 문화 교류들이 있었다. 물론 분쟁들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베트남, 버마, 타이 등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관계였다.

한 편 1853년부터 프랑스를 포함한 서구 열강들이 동남아시아 일대를 노리고 있었다. 베트남, 태국 등에게는 그들이 얼씬거리는 외세로 껄끄럽게 여겨졌다. 프랑스는 크메르 왕국의 처지를 를 이용해 크메르 왕국과 동맹을 맺어 태국과 싸워 승리한 후 태국 영토의 동부 일부는 크메르 왕국에게 되돌려주었다.

프랑스는 분열된 라오족 왕국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이용해 북부의 루앙프라방 왕국을 보호국으로 삼아서 태국으로부터 완전히 영토를 빼앗아 태국의 세력들을 약화시킨다. 또한 프랑스는 베트남을 복속시켜서 베트남의 힘을 약화시키는 등 크메르와 라오족들의 왕국들 입장에서는 프랑스애 대해 안심했다. 그러나 이후 프랑스가 1887년 베트남과 함께 크메르 왕국, 라오족들의 왕국들을 합병시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만들어서 이 지역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지역들이 되고 만다.

1940년대 후반에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한다. 일제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프랑스인들을 감옥에 가두었고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처음에는 크메르족과 라오족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머지 않아 일본이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괴뢰 정권을 세워 이들을 통치함으로써 결국 현지의 신뢰를 잃게된다.

1945년 일본 제국의 패망과 프랑스의 개입으로 일본은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한동안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그에 독립 운동과 여러 저항들이 생겨났고, 결국 라오스는 1947년, 캄보디아는 1953년에 독립이 성공된다.

하지만 라오스와 캄보디아 두 나라는 여전히 정치적으로는 미성숙한 점이 많은 나라였다. 캄보디아에서는 종교적 내부성향이나 민족주의 등을 이용하여 사이누크, 훗날 쿠데타로 정권을 강점한 론 놀처럼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독재자들이 나타난다. 라오스에서는 우파와 왕족들의 내전으로 정세가 혼란해진다.

마침 이 시기에는 주변 국가인 베트남에서 베트남 전쟁이 터진다
. 그런데 미군이 베트남에 던진 폭탄들이 주변의 라오스, 캄보디아 국경에도 폭탄이 터지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왔다. 결국 또한 베트남이 공산화 중심의 통일이 되었는데 1975년에는 라오스, 캄보디아에도 공산주의 국가들이 성립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가 동맹을 맺었는다. 그러나 라오스와 캄보디아 모두 공산독재로 가혹한 시기들이 많았다. 특히 캄보디아에서는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의 광신적인 사상에 빠져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내전과 베트남과의 전쟁은 더욱 경제를 악화시켰다. 라오스에서도 가혹한 탄압,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을 제외한 나라들과의 단절로 인해 손해를 입었으나 크메르 루주는 라오스, 베트남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결국 1989년 미국과 소련의 화해와 냉전 종식, 동유럽 혁명을 계기로 하여 공산권들의 붕괴와 약화 등으로 동남아시아에서도 공산주의는 약해졌다. 라오스는 현실을 인정하여 개혁과 개방적 정책으로 어느정도 바꾼다. 반면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는 세력이 약화되었음에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해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린다. 게다가 캄보디아에선 내전으로 크메르 루주의 세력이 약화되고 유엔의 중재로 전쟁이 끝난다. 1993년에는 캄보디아에서는 공산 독재가 끝나고 투표의 결정으로 크메르 루주는 끝내 물러나서 캄보디아 정치에서 사라지고 캄보디아는 왕정사회로 돌아갔다.

2.2. 21세기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아세안 프랑코포니에 가입된 나라며 둘 다 가난하여[1] 무역, 기술, 개발, 교육 등에서는 서로 협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국경 분쟁으로 인한 갈등도 약간 있어 옛날부터 사이가 안 좋기도 했다.

2019년 8월에는 협정을 맺어 양 측이 군사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

3. 관련 문서



[1] 단 1인당 국민소득은 해안국인 캄보디아가 내륙국가인 라오스보다 조금 더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