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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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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등장2.2. 김삿갓의 등장과 오버그라운드 힙합2.3. 언더그라운드 힙합과 라임 방법론2.4. 2010년대 : 쇼미더머니와 전성기2.5. 2020년대 : 쇠락과 새로운 국면
3. 비판과 조롱, 오해와 해명
3.1. K-POP과의 관계
4. 세계화5. 명반6.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 힙합을 소위 '국힙'이라 하는데 '국힙'의 특징 중 하나는 록 음악, 일렉트로닉 뮤직과는 달리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나름대로 견고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한 장르란 점이다.[1][2] 한힙이 아닌 국힙으로 줄여 부르는 이유는 한국 힙합을 위한 게시판을 '국내음악 게시판'으로 명명했던 힙합플레이야 이후로 각종 힙합 커뮤니티 유저들이 한국 힙합을 '국내힙합'으로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본토인 미국 힙합 역시 '미힙'이 아니라 '외힙'으로 줄여 부른다.

1980년대 초반 경에 국내 언론에 첫 언급된 이후, 199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로부터 촉발된 한국의 힙합 음악들은, 1997년부터 점차 김진표, 지누션, 업타운 등이 제대로 된 힙합 앨범을 내게 되면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드렁큰 타이거의 정규 1집 < Year Of The Tiger>가 발매되고[3] 이 앨범이 엄청나게 히트를 친 이후로 성장세를 유지해왔다. 이후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 리쌍 등의 무브먼트 쪽의 힙합 뮤지션들과 조PD 등의 곡이 히트를 치면서 가요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

클럽 마스터 플랜 PC통신 모임으로 1990년대 중후반기부터 시작된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도 국내에 힙합이 자리잡는데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현재 한국어의 랩 메이킹에 있어선 대중적인 힙합 뮤지션들보다 더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힙합 뮤지션들이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와서 인기를 구가한 경우도 많은 편.

2010년대에는 힙합 예능 쇼미더머니와 파생 서바이벌 랩 오디션 예능들의 거대한 흥행을 통하여 끊임없이 신인 아티스트들이 수혈된 끝에 몇몇 인기 뮤지션을 넘어서 한국 힙합 전체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기존의 한국 대중들이 잘 모르던 디스전과 붐뱁 트랩등의 세부장르, 힙합계에서 칭해지던 은어( 스웩, 플렉스) 등등 마이너한 요소들까지도 범 국민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면서 주류 문화의 일부로 크게 자리잡았다.

2. 역사

2.1. 등장

본토 미국에서도 1970년대 초중반기에 처음 로컬 클럽 뮤직으로 등장해서 말엽 무렵에야 싹을 틔우고 1980년대부터 이런저런 시도가 펼쳐지고 있던 마당에 원류도 그렇게 유구한 역사 및 뿌리를 가진 장르는 아니었다.[4] 더구나 통신 기술이 빈약하던 당시로선 이런 작법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는덴 시간이 필요했고 한국 또한 아무리 이르게 잡아도 1980년대 말부터 언론을 통해 힙합이 겨우 회자되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래핑'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구구절절한 라임을 읊조리는 형식을 최초의 힙합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례들도 찾아볼 수 있는데, 서영춘 서울구경같이 코미디언의 음악을 근저로 까는 만담을 최초의 힙합이라 한다던지,[5] 더 나아가선 김수한무까지 힙합의 원조로 여기는 억지스런 주장도 제기되기도 한다. 그리고 자꾸 '힙합=랩'으로 등치시키는 일부 대중들이 저지르는 실수인데 '랩은 힙합의 한 부분요소'[6]일 뿐이며 힙합에서는 랩 못지않게 어떤 비트나 사운드를 사용했는가?도 상당히 중요한 장르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랩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며 힙합이라는 음악적 장르 정체성을 구분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후대 들어서는 싱잉랩을 비롯한 굉장히 멜로디컬한 랩 가사도 나오면서 더욱 더 비트와 백그라운드 음악으로 장르의 정체성을 구별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좀 세게 말해서 보컬을 해도 힙합 장르풍의 비트와 소스를 사용하고 그 작법을 충실히 취했다면 그것이 힙합이다.[7] 비록 이러한 장르적 구분에 대해 왈가왈부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싱잉랩 자체를 배척한다기 보다는 떨어지는 랩 실력을 덮으려고 어설프게 멜로디를 넣어 부르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에 가깝다.

한국에서 '랩뮤직'이라는 장르의 음악이 최초로 보도된 것은 1986년 경향신문 Run-D.M.C. 관련 소개 기사였다. 당시엔 힙합이란 단어와 더불어 랩뮤직이란 단어도 중복적으로 사용된 경우가 많았다. 1986년이 한국에서 힙합, 그리고 랩이란 것에 대해서 최초로 언급을 하고 언론에서 인식을 시작한 시기이다.[8][9][10]
최근 영국과 미국팝계에서는 랩뮤직이 주목을 받고 있다. 랩뮤직(rap music)이란 흑인 하층민 사이에 유행되어온 브레이크댄스식 블랙뮤직의 한 형태로 통통 두드리는 리듬이 특징. 선두에 나선 랩뮤직그룹으로는 「런DMC」라는 3인조밴드로 최근 콘서트에서는 폭동이 일어날 만큼 관객을 흥분시키고 있다는 것.

그나마 미국 힙합이 생겨난 뒤 1988년 김수철 무엇이 변했나 노래에 랩과 매우 흡사한 구절이 발굴되기도 하지만 이 노래가 미국 힙합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는 불명. 단순 가미되는 나레이션을 랩으로 치환하기는 어려운 감도 있긴하다.

2.2. 김삿갓의 등장과 오버그라운드 힙합


홍서범 - 김삿갓(1989)

그리고 1989년, 홍서범이 ' 김삿갓'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다소 뜬금없는 노래 제목과 가사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엄밀하게 보자면 이 노래는 한국 최초의 힙합 음악이라 평가 받는다. 홍서범의 '김삿갓'이라는 곡은 펑키한 디스코 사운드에[11] 원시적인 미사여구에 가까운 랩을 올린 형태로 1970년대 후반 - 80년대 초중반기의 초창기 올드스쿨 힙합 음악의 작법을 그대로 유지했다.[12] 가사 또한 시대를 감안한다면[13] 운율을 통한 라임적 요소가 다분히 들어있다.

실제로 홍서범이 김삿갓을 만들게 된 계기도 1980년대 중반 나이트클럽을 가서 Run-D.M.C와 에어로스미스가 콜라보한 음악( Walk This Way로 추정된다.)을 듣고 감명을 받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복잡한 라임을 만드는 건 어렵기에 다소 생략했지만 그 대신 글자 수까지 디테일하게 계산하고 반복을 통한 운율을 넣어서 랩을 만든 것이라고 하며 당시 한국 방송가에서 '이건 음악이 아니니까 멜로디를 더 넣지 않으면 방송에 못나온다'라고 주문하여 추가 편곡한 것이지, 오히려 처음 만든 비트는 드럼이 더욱 강조된 당시 본토 힙합을 그대로 계승한 비트였다고 한다. 기사 즉,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자료로서 곡의 작법이나 만든 동기, 사용한 사운드 등이 모두 확인되니 김삿갓이 랩이 들어간 '상업적 한국 힙합곡'이라고 평가함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고 이 세박자를 전부 준수하던 사례는 김삿갓 이전엔 발굴된 사례가 없으니 '최초'라는 수식어도 정당한 것이다.

다만 가사가 인물 김삿갓을 소개하는 내용이라 굉장히 뜬금 없었고, 홍서범 개인의 랩 스킬이 선구자임을 감안해도 다소 부족한 데다 패션이나 춤 또한 현재 힙합과 무관[14]하게 정장 차림에 율동 정도였던지라 음악 외적으론 힙합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했다는 한계점은 존재했다. 더불어 홍서범은 본래 락커 출신에 힙합 음악도 '김삿갓' 일회성에 그쳤기에 김삿갓이 한국 힙합의 시초라고 선뜻 인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그저 희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하나 냈던 노래가 대중적으로도 크게 어필되진 못했고, ' 유재하처럼 뮤지션들 사이에서 우상으로나마 우뚝 섰는가'라고 묻는다면 후대의 현진영, 서태지 등의 홍서범 및 김삿갓을 향한 언사라도 있어야건만 그마저도 거의 발굴되질 않아 영향력마저 입증하긴 힘들다. 때문에 '최초'라는 상징성과는 별개로 이 노래가 뿌린 씨앗이나 반향은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건 사실이다.


신해철 - 안녕(1990)

대한민국의 노래 중 최초의 한국어 랩을 선보인 곡이 홍서범의 '김삿갓'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영어로 된 랩이 수록된 곡은 1990년에 발매된 신해철의 '안녕'이다. 원래는 안녕도 한국어로 랩을 쓸려 했지만, 위에서 서술했듯이 홍서범의 '김삿갓'이 대중에게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 그 반응이 자신에게도 올까봐 영어 랩으로 수정했다고 한다. 평론가 임진모는 이에 대해 설명하면서 만약 신해철이 한발짝 더 나아가서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랩을 했다면 서태지가 한국 가요계에 일으킨 혁명을 신해철이 일으켰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현진영 - 슬픈 마네킹(1990)

최초로 한국에 힙합을 선보인 인물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많지만, 대중들에게 힙합적인 요소를 처음으로 각인시키고 인기를 끈 인물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현진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비록 김삿갓에 한끗 차이로 늦게 나왔지만, 이수만의 첫 작품이던 현진영은 오랜 트레이닝과 프로듀싱으로 실력을 갈고닦아 1990년 보여주던 '슬픈 마네킹' 노래에선 보컬 사이에 랩을 읊조리는 방식을 최초로 선보였고 여기에 뉴잭스윙 본위적인 비트와 댄스까지 접목시켜 힙합을 진일보시켰다고 평가받는다. 1992년 연말에는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발표하면서 세련된 사운드와 랩 플로우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멜로디 부분에서도 흑인 음악의 소울풀한 창법을 도입하여 흑인음악의 요소를 더욱 강조했다는 점에서 더욱 고평가받는다.

여기서 먼저 서태지와 아이들의 경우를 보면 서태지가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보여준 음악 성향은 록 음악을 기반으로 함은 부인할 수 없으나, 적어도 1집의 난 알아요는 한국에서 최초로 대중적으로 가장 크게 히트한 힙합 곡으로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곡 안에 들어있는 당시 유행하는 힙합곡에서의 사운드 샘플을 적극 활용한 샘플링, 밀리 바닐리의 '쿨랩'의 방법론을 참고하여 소개한 랩 플로우, 그리고 힙합과 떼어놓고 보기 어려운 브레이크 댄스의 표현 등에서 그와 같은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후 랩에 록적인 요소가 본격적으로 들어간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의 하여가 부터이므로 명확히 구분지을 필요가 있다. 이후 서태지는 록적인 요소를 사운드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해체 이후 솔로 활동부터는 록 음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여가'의 사례도 다르게 보면 서태지는 2010년대 중후반이 돼서야 한국힙합에서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얼터너티브 힙합을 199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되므로 이 또한 높게 평가되는 부분이다. 또한 4집의 컴백홈(1995)은 곡이 나온지 무려 20년이 지나 테이크원 - 코홀트·하이라이트 디스전에 그대로 쓰여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붐뱁비트로서, 그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히트시킨 곡 중 상당수는 명확히 초기 형태의 힙합으로서의 개념요소를 갖추고 있다.


듀스 - 나를 돌아봐

또한 듀스의 경우는 '나를 돌아봐'와 같은 곡에서 '난 알아요'에서 선보였던 초기 랩의 미흡한 부분을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가다듬었고, 장르적인 면에서도 뉴 잭 스윙을 국내 가요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는 점에서 고평가된다.

이처럼 힙합적인 요소가 매우 생소하던 1990년대 초반,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힙합이란 장르를 본격적으로 대중가요에 불러와 큰 인기를 끌며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다만 1990년대 당시 대중들은 흔히 이런 류의 노래들을 '랩송'이라고 싸잡아 불렀는데,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등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서태지와 아이들 - Come Back Home

그 중에서도 당시 서태지의 대중적인 인기와 파급력은 현 시대 그 어떤 힙합 아티스트들과도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댄스, 랩 뮤직 장르 최초의 앨범 100만장 돌파, 수차례 지상파 가요대상 수상 같은 음악적인 업적은 물론이고 저작권법, 사전심의제도 철폐와 같은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일부 바꿔놓았으며,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1인자', '문화 대통령'이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 듀스의 이현도는 당대 인기와 영향력은 서태지에 비해 약했지만 후에 록 음악으로 돌아간 서태지와는 다르게 꾸준히 힙합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갔으며, 힙합 장르의 기여도에 있어선 서태지와 맞먹는 비중을 자랑한다. 현진영은 힙합과 뿌리를 같이하는 알앤비나 쏘울의 연결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흑인 음악으로 전성기 이후의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다만 이 셋은 뉴잭스윙적 요소도 다분했기에 댄스 뮤직을 기반으로 힙합 요소가 가미된 느낌이 강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완전한 정통 힙합으로 보기엔 꽤나 무리가 있었다.[15] 또한 이들은 한국 힙합 이외에도 현 시대 한국 아이돌, K-POP 댄스 뮤직 장르의 개척자이자 선구자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된 가수들이 초석을 깔아놓은 후인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솔리드, 지누션, DJ DOC, 드렁큰 타이거, 윤미래, 피플크루, 원타임, 김진표[16], 업타운, 조PD 등이 출현하여 본격적으로 정통 힙합 사운드와 랩만으로 이뤄진 작업물들을 선보였으며, 음악 방송 같은 매체에도 모습을 드러내면서 상당한 대중적 인기도 갖추게 되었다. 특히, 드렁큰 타이거나 지누션 그리고 원타임의 테디는 미국 본토에서 힙합을 가까이 접하면서 자라왔던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나라 힙합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2000년대에도 이들의 뒤를 이어 리쌍,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 같은 아티스트들이 상업적, 예술적 성공의 최정점을 찍으며 더욱 더 파이를 키웠다. 이들이 바로 한국 오버그라운드 힙합이라는 판을 만들었다고 볼 수있다.

2.3. 언더그라운드 힙합과 라임 방법론

오버그라운드 한국 힙합씬이 서서히 형성되어 가던 1990년대에 힙합은 20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유행하였다.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 중반즈음에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았는데, PC통신 동호회가 유행하였고 여러 가지의 동호회 모임 중 힙합 동아리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Black Louder Exploders(Blex) Show N Prove(이하 SNP)가 있었다. 오늘날 한국 힙합 1~1.5세대들은 1990년대 말 즈음에 PC통신을 통하여 만난 사람들과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힙합을 즐기고 또는 직접 했던 사람들이다. 1998년 12월 21일자 KBS1 《 현장르포 제3지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편에서도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다.

버벌진트, P-Type, 데프콘은 나우누리 SNP 출신이고, 가리온 MC메타는 하이텔 동호회 였던 Blex에서 시삽[17]을 맡아 활동하였다. 메타의 회고에 따르면 그때는 미국의 힙합 음반을 구하기가 여러 모로 굉장히 어려웠는데[18] 누군가 음반을 구하거나 TV음악전문 프로그램에서 간간히 틀어주던 힙합을 녹음하면, 모두가 모여 그것을 함께 감청하고 들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도 하며 힙합을 즐겼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여러 힙합 아티스트들이 예전에 썼던 가사에는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들었다는 표현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 TV를 통해 알려지던 힙합과 미국 본토에서 어렵게 수입되던 힙합에는 언어적 차이점을 무시하고라도 상당한 모순이 있었다. 그것은 이 때까지 알려졌던 랩이라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대중의 인식이 그저 '배경음악 깔고 빨리 말하면 되는 것'에 머물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을 비롯한 1990년대 초반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스타일을 큰 발전 없이 그대로 본뜬 1세대 아이돌들을 비롯한 당대 댄스 그룹들의 비중이 컸는데, 1990년대 중반 댄스 그룹들이 했던 랩은 여전히 운율을 무시한 채 그저 말을 빨리 내뱉거나 또는 "내가 했었지, 나도 했었지"와 같은 반복적이면서 매우 초보적인 라임을 계속 사용했었다. 즉, 사람들이 힙합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알게 되긴 했는데, 랩 메이킹을 비롯한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원시적이고 심하게 무지했던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느꼈던 PC통신 힙합동아리 회원들은 이 문제에 심각하게 논의하였고, 이들 중 어느 사람들은 힙합을 듣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힙합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한국식 랩에 대한 방법론의 필요가 대두되었다. 마스터 플랜 같은 힙합 공연 클럽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도 PC통신 동호회 출신들이 본격적으로 작업물을 만들거나 공연하기 시작한 바로 이 시기이다.

이러한 모순점과 한국어로 내뱉는 랩에 대한 방법론은 당시 동호회들 사이에서 굉장한 논의거리였다. SNP와 Blex는 서로를 비판하며 충돌하고는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경쟁과 논쟁은 한국어로 뱉는 한국식 랩의 자양분이 되었다. Blex는 두 자리 라임을 주로 사용하고 반복되는 어휘를 최대한 피해 랩을 함에 있어서 운율이 주는 리드미컬함과 운율 자체의 다양성을 꾀했던 반면, SNP 멤버들의 방법론은 보다 다양해서 피타입은 랩을 드럼처럼 사용하여 비트에 맞게 억양과 발음의 강약을 조절하고 반복함으로서 리드미컬한 랩을 꾀했고, 반면 버벌진트 Modern Rhymes EP를 통해 다음절 라임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소개하여 말 그대로 억지 라임을 위해 문장의 구조를 파괴하지 않고 문장 곳곳에 다양하고 많은 음절로 이루어진 복잡한 운율을 자신만의 유려한 플로우와 결합시켜 리드미컬한 랩을 꾀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2000년대 힙합플레이야 리드머라는 힙합 전문 웹사이트로까지 이어졌는데, 이 때에도 사람들의 논의의 요점은 크게 나뉘어져서 모음과 자음을 이용한 운율에 대한 의견들과 더불어, 다음절 라임에 대한 실용성과 효과와 두세 음절 라임에 대한 효과와 실용성에 대한 비교와 토의가 논의의 주제였다. 그 중에서도 버벌진트의 다음절 라임이 사운드적으로 가장 세련되고 본토 힙합의 그루비한 리듬을 가장 잘 살려줬기에, 점차 다음절 라임을 활용하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여졌다.

그러나 이러한 다음절 라임으로만 랩을 만들어내기가 까다로워 사람들은 이를 기반으로 단음절 ~ 두세음절 라임을 적절하게 혼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렇게 완성된 한국어 랩은 2000년대 힙합씬을 대표하는 레이블인 감성 힙합의 소울컴퍼니와 하드코어 힙합의 빅딜,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경에 믹스테이프 문화를 퍼뜨리며 혜성 같이 등장한 이센스, 사이먼 도미닉, 스윙스, Dok2, 빈지노, 산이와 같은 당시 신세대 래퍼들의 활약으로 순식간에 보편화되었다.[19]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대중매체에서 접하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시작이자 연대기이며, 또한 한국 힙합의 보편적인 랩 메이킹 토대가 완성된 중요한 시기이다. 현재 한국어 랩 형태의 기반은 전부 이때 나온 거라 봐도 무방할 정도.

그 이후 2010년대로 접어들어서는 씨잼, 키드밀리, 양홍원, 디보, 루피, 쿠기, 식케이, 오케이션 등의 음악처럼 가사의 어법이 완벽하지 않아도, 라임과 플로우를 위해 발음을 많이 흘려도, 한영혼용이 많아도 대중들은 이를 굳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힙합을 깊이 받아들이는데 자연스러워지고 더 다양한 장르를 대중들이 어느정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20]

2.4. 2010년대 : 쇼미더머니와 전성기

불과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방송과 메이저 공연을 중심으로 한 오버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과 홍대를 비롯한 소규모 클럽의 인디 래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 사이에선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고,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거나 경계하는 경향이 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메이저 무대로 진출한 아티스트들[21]도 있었고, 오버 뮤지션들을 통해 활동하기 시작한 언더 뮤지션들[22]이 존재하여 적잖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계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방송 매체와 언론이 힙합에 포커싱을 맞추고 대중들 사이에서도 각광받으면서, 이런 오버와 언더 힙합씬의 경계가 과거와 다르게 매우 흐릿해졌다. 더 이상 아이돌 출신 혹은 메이져 무대를 통해 데뷔한 힙합 뮤지션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많이 사라졌으며[23], 언더 뮤지션이라고 해서 방송 출연을 무조건 터부시하거나 배척하는 모습도 많이 사라졌다. 또한 이들 사이에서 음악적인 콜라보가 이전보다 더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 힙합 장르가 한국에 20년 이상 길게 자리잡으면서 더 이상 언더, 오버로 나누는 것이 아닌 힙합 장르에 기여하고 있는 대등한 뮤지션 동료로서 존중하는 풍토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또한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힙합이 대중들에게 꽤 많은 어필을 하게 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아티스트들의 음악적인 스펙트럼과 실험적인 사운드도 더더욱 많이 나오게 되었다.

2.5. 2020년대 : 쇠락과 새로운 국면

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불협화음 이찬혁 가사 中
이게 요즘 유행이라며 한국힙합 망해라
소년점프 마미손 가사 中
아직도 힙합이 유행인 줄 아는 병신들아 정신 좀 차려
지금 가장 뜨거운 건 랩이 아니라 SHOW ME THE MONEY

Kim Ximya X D. Sanders - Manual

한국 힙합은 전성기를 달리는 동안에도 아래 비판들과 함께 견제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그러다 2020년대, 새로운 디케이드에 접어들자 이전보다 부정적 면모들이 더 대두되는 중이다. 라임과 사운드적 자원의 고갈, 메말라가는 신인층[24], 신규 리스너의 부재 등 여러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대중의 피로감도 가시화되었다. 이는 힙합을 즐기는 대중층의 감소세로 이어졌으며, 중년세대 이상으로부터 각광받는 네오 트로트 붐과, 힙스터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는 모던 록 등 다양화되는 트렌드 속에서 힙합만의 매력을 확장시키는데 한계를 맞이했다는 위기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2023년 음악 이용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힙합을 향유하는 대중층이 11.3%라는 전성기에 한참 미치질 못하는 성적표를 받았고, 힙합 유행을 선도하던 쇼미더머니가 시즌 11이 시청률과 화제성, 작품성에서 역대 최저점을 기록하면서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면서 일리네어 레코즈[25], 하이라이트 레코즈, VMC 등의 주요 힙합 레이블이 해체되는 등 힙합의 사양세가 점차 가시화되어간다는 분석이 각종 커뮤니티에서 돌았다. 여기에 스윙스라는 당대 한국 힙합 빅네임 아티스트의 티켓 파워도 점점 떨어져간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한국 힙합이 서서히 몰락한다는 반응이 생겨났다. 게다가 2024년부로 대표적으로 힙합을 다루던 커뮤니티 힙합엘이조차 제목에서 힙합을 없애고 장르의 다양화를 시도하겠다고 하는 등 힙합 전문 꼬리표마저 점점 떨어져나가는 모양새다. #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 내부에서만의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2010년대 후반 ~ 2020년대부턴 힙합이라는 장르는 범세계적으로 약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본토 영미권 또한 힙합보단 컨트리와 전통적인 팝 음악이 강세를 보였고[26] 아예 힙합 음악에 컨트리, 팝 음악, 음악을 접목 시켜버렸다. 한국 또한 예외없이 세계의 음악 시장 흐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23년 상반기 빌보드 1위엔 힙합이 단 한개도 없어[27][28] 국내 한정으로 분석해도 대중음악계 수요층이 전혀 겹쳐지지 않는 트로트는 논외로 치더라도 청년층이 소비하는 장르로서도 K-POP(댄스), 특히 걸그룹에게 점유율을 완전히 압도당하는 실적이며, 20년부터 잔나비 - 새소년 - 실리카겔로 이어지는 모던 록과 인디 밴드[29]의 대두 앞에서도 밥그릇을 점차 헌납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론은 개래퍼 멘스티어가 쇼미더머니 세대 힙합씬의 실태를 풍자한 AK47(Men's Tear)를 발표하고, 여기에 기성 래퍼중 한명인 pH-1이 자극받아서 pH-1 - Men's Tear 디스전으로 폭발해버렸다. 다른 힙합래퍼들끼리의 디스전보다도 더 주목받는 이유가 정규 래퍼 vs 정규 래퍼가 아닌 정규 래퍼 vs 개가수의 구도인데다, 개그맨의 컨셉이라고는 하지만 AK47이라는 넘버가 현 K-hop의 실태를 신랄하게 풍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한국 힙합 몰락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비록 대중적인 관심도는 줄어든건 사실이지만 2023년은 웰메이드 힙합 명반이 대거 발매됐으므로 아직 몰락을 운운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느냔 반응이다. 기간을 과거부터 잡으면 2000년대 말, 늦어도 201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힙합씬의 투톱이라 불려온 이센스, 빈지노가 2023년에도 여전히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겨냥하는 게 성공했고 앨범 판매량 또한 건재하다는 걸 증명했다.[30]

위의 두 명과 비슷한 또래인 박재범, 더콰이엇 등은 사업쪽으로 방향성을 맞추긴 했지만, 그래도 신인 발굴과 레이블 확장을 통해 씬에 꾸준히 의미있는 기여를 하는 중이다. 이들보다 더 전 세대 랩스타들인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도 씬 내부의 언급은 덜해졌지만 여전히 투어나 활동면에서 대중성을 꽉 쥐고 있고, 한참 뒷 세대 래퍼들 중에서도 몇몇[31]은 저 위에 언급된 거물들 못지않거나 오히려 그 이상으로 대중적 + 씬 내부의 차후 기대감을 크게 가진 케이스들도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김심야를 필두로 익스페리멘탈 힙합[32]이 국내에서도 점차 빛을 보는 등 장르적 영역을 더 넓히는 시도하는 중이며, 신인 아티스트들도 행사나 협찬, 단발적인 컨셉을 동원한 상업적 요행수를 노리기보다는 DON MALIK, 스카이민혁처럼 보다 작품성에 집중해 양질의 앨범을 내놓는 등 더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힙합씬엔 진짜들만이 남았다'라는 담론도 생겨날 지경.

또한 샤이보이토비, 공공구와 같은 많은 신인 래퍼들이 등장하였다.

3. 비판과 조롱, 오해와 해명

한국 힙합은 2010년대~20년대에 들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큰 인기와 인지도를 얻었고 한국 가요계에서 나름대로 탄탄한 입지를 세웠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 ## ### ####

한국 힙합이 비판받는 고질적인 이유 중 하나는 병역의 의무 문제이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수의 힙합 뮤지션이 정신질환 혹은 신체 질환을 이유로 공익근무나 면제 판정을 받은 경우가 있다. 정확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힙합 뮤지션들을 놓고 봤을 때만 해도 이 정도 수준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힙합 뮤지션들도 다른 연예인, 유명인들과 다를 게 없이 건강, 국적 등 합법적인 이유로 면제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도 유독 더 많이 주목받고 비판받는 경향이 있다.

또 한국 힙합이 크게 비판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마약 문제다. 이는 2010년대부터 불거져온 문제로 실제 사례만 따져봐도 이센스가 대마초 흡연 혐의가 2회나 적발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며, 이후로도 빌스택스, 씨잼, 나플라, 루피, 오왼, 불리 다 바스타드 등 마약류 복용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복역을 마친 뮤지션들이 상당하다. 그런데 여기서 파생되는 또다른 문제점은 일반 여론 중에서는 이런 사건 사고를 두고 "한국 힙합은 다 그런다", "욕 먹는 게 당연하다."라며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일반화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 힙합 씬의 이미지가 나빠진 것은 씬 내부의 잘못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마약 문제와 같이 사회 통념상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무조건 죗값을 치르거나 개선하는 게 옳다. 단 자성을 원하는 건전한 비판을 벗어나서 한국 힙합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고, 조롱과 혐오를 당연시하고, 지나치리만치 힙합 장르 자체를 전혀 들을 가치가 없는 쓰레기로 치부하고 공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힙합에 대한 몰이해까지 겹치면서 완전히 잘못된 편견을 통해 비난받기도 한다.
부디 곡해는 마시라. 지금 이들의 저항 정신이 다 계산되고 얻어 걸린 것이었다고 말하거나 업적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핵심은 힙합에 저항 정신이 입혀진 건 랩퍼들의 노골적인 의지가 아니라 마케팅적인 측면의 고려에 의해, 혹은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길 담은 음악이 반향을 일으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거라는 사실이다. 하물며 앞서 밝혔듯이 힙합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저항 정신과 거리는 더 멀어지고 말이다. 힙합이 대중음악의 중심부에 자리잡게 되고, 더 나아가 문화적 현상으로 거론된 데에는 분명 '저항'과 '비판' 정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힙합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을 '저항 정신'이라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지금 한국에서처럼 저항 정신을 마치 힙합의 뿌리, 혹은 전부인 걸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리드머 전 편집장, 음악 평론가 강일권의 칼럼
"힙합과 저항정신 사이의 오해에 관하여" 중 일부 #
저희들은 진짜... 힙합이 양아치냐고... 그것이 십대들이나 이십대들이 가지고 있는, 치기어린 그런 거가 절대 아니고, 정말 순수한 음악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자신이 진실인 삶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문화라고 보거든요. 네. 그렇습니다. 힙합에는 괜한 정의를 많이 내려요. 이건 너무 거품이 많아요. 너무 많이 포장되어 있고요. 껍질이 너무 많아요. 힙합은 단 한가지입니다. True예요. True. Truth. 진실. 진실. 정말 자신이 진실하다면... 아니에요. 정말 아무리 기지바지 입고 그렇게 입고 다니더라도, 그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해서 자신있고 진실되는 삶이라면은, 그 사람은 힙합적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KBS 2TV 다큐멘터리 현장르포 제3지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中 MC 메타의 발언

201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는 "힙합은 저항, 비판,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장르다.", "한국 힙합은 돈 자랑 하는 유치한 가사밖에 없다.", "한국 힙합은 사회 비판이 없어서 못 들어주겠다", "진짜 본토 힙합처럼 갱스터 활동도 안 하면서 허세만 부린다"라는 식의 잘못된 비판 여론이 크게 형성되어 있고 이들이 한국 힙합을 조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힙합에 대한 완전히 몰이해적인 의견에 불과하다. #

일단 "힙합은 저항, 비판,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장르다."라는 주장부터 완전히 틀렸다. 힙합은 기본적으로 파티 음악에서 파생된 장르이고 원래 놀고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아주 자유로운 장르이다. 그러므로 스펙트럼이 일반 가요나 다름없을 정도로 넓고 가사로 어떤 주제를 다뤄도 아무 상관이 없다. 소위 말하는 사회 비판, 저항은 컨셔스 힙합 장르의 일부 요소에 불과하다. 힙합의 역사를 따라가보면 컨셔스 힙합이 주목을 받거나 주류였던 때도 있었지만, 사회 비판 힙합은 어디까지나 힙합이란 큰 틀 내의 하위 장르에 불과하며 힙합 전체를 대표한다거나 힙합의 근본, 힙합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순 없다.

이 사회 비판 운운하는 것이 한국에서 "힙합의 필수 요소"로 잘못 받아들여지게 된 계기는 힙합이 한국에 첫 도입되던 당시 시대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힙합이 1970년대부터 클럽 음악에서 시작해 꾸준히 성장해온 뿌리가 명확한 장르인데, 한국에서는 단순히 한국과 가깝고 교포들이 많은 1990년대 서부 힙합 위주로 다소 갑작스럽게 유입되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N.W.A를 필두로 한 극단적인 컨셔스 힙합 기조가 커다란 화제였다. 그런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한국에서도 전파가 되었고, 사회 풍자가 익숙한 한국의 정서와도 잘 맞아떨어져서 더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1990년대 한국은 대중음악에도 상당히 높은 사회적 가치와 성취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실제 성취 여부는 별개로, 민중가요 등 1970, 80년대부터 쭉 이어진 청년들의 사회비판 경향과 공익적 가치에 대한 존중은 2000년대, 2010년대보다 훨씬 강렬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의 힙합은 사회 비판이란 요소가 더욱 강조되었고, 이를 통해서 성공적으로 본인들의 영향력을 알릴 수도 있었다. 힙합과 비슷한 시기에 유행한 조선 펑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한국 힙합이 사회 비판이라는 주제와 그 주제의 이점을 이용해서 한국에서의 정착과 성장의 기반을 마련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 비판이 아직까지도 한국 힙합의 중심축이라는 말은 너무나 낡은 의견이다. 이런 주장은 한국 힙합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의 본질과 존재 의의가 '어떤 특정 메시지만을 강조,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듣고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는 선후관계를 간과했기에 나온 말이며, 1990년대 한국 힙합 도입 시기엔 그런 사회 풍자가 주요 소재이자 트렌드였다면 지금은 시간이 흐르면서 소재들이 더욱 더 다양해졌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힙합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장르이다. 그래서 유행을 크게 타는 편이고, 가사가 자기 자랑일 수도 있고, 디스가 될 수도 있고, 감성적인 노랫말일 수도 있고, 스타일리시할 수도 있고,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텔링일 수도 있다. 그저 래퍼 본인이 사회를 비판하고 싶을 때 그런 가사를 쓰는 것이다.

"한국 힙합은 돈 자랑 하는 유치한 가사밖에 없다.", "한국 힙합은 사회 비판이 없어서 못 들어주겠다"라는 주장 또한 틀렸다. 200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힙합은 대세와 유행에 따라서 수많은 뮤지션들이 다양한 앨범과 작업물을 내놓았다. 소위 말하는 돈 자랑 가사는 스웩이라는 유행에 따라서 우후죽순으로 나온 것이고 그만큼 미디어에 많이 노출돼서 돈 자랑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에 불과하다. 2000년대 이후에 컨셔스 랩을 주로 하거나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뮤지션만 꼽아봐도 MC 스나이퍼, UMC/UW, 에픽하이[33], 제리케이, 화나, 화지, 디템포, 허클베리피, QM, 김심야, 쿤디판다 등 계속 있어왔다. 돈 자랑만 하네, 사회 비판을 안 하네 운운 하는 것은 한국 힙합의 뮤지션과 작업물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주장인 것이다.

힙합은 타 장르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절대적인 역사가 짧은 장르이다. 당장의 인기와는 별개로 한국 사회에서 넓은 세대에 걸쳐서 깊게 스며들지 못했다. 한국 힙합을 개척한, 소위 1세대라고 불리는 아티스트들의 연령대가 적게는 30대 후반, 많아봐야 40대에서 50대 초반인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로 계층이 폭 넓지 못하고, 시기상으로 전 세대에 걸쳐 크게 자리잡았다고 보기 힘들다. 발라드, 트로트, 록 음악, 포크 등등 타 장르의 중견급 뮤지션들이 30, 40대가 넘쳐나고 50, 60대, 심지어 70대 이상의 원로 뮤지션들도 심심찮게 보이는 것에 심히 대비될 정도로, 한국 힙합은 이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여전히 어리고 미숙한 부분이 있으나 잠재력이 크고 젊은 장르이다. 이는 힙합을 소비하고 아끼는 계층이 더욱 더 두터워질 때까지 힙합 뮤지션들이 오랫동안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활동하며 어필하면서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해결될 문제이다. 대중들 역시 사건사고들과는 별개로 하나의 예술이나 문화로서 힙합 음악 자체를 존중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힙합에 대한 비판과 혐오 의식은 점차 힙합에 대한 저변과 대중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던 2010년대 초반이 최대 피크였다. 쇼 미 더 머니를 필두로 힙합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반면 힙합을 낯설게 느끼고 싫어하던 기성세대와 힙합을 멀리하던 부류의 목소리 또한 커질 수 밖에 없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대중화된 힙합이 점차 한 두 세대를 아우를 정도로 스며들고 나름대로 주류 음악에 준하는 수준으로 주목을 받게 되면서, 힙합에 대해 적대하는 부류에게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역으로 비판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사실 모든 음악 장르들의 출현과 이것이 대중적으로 퍼지는 시점에서의 사회 문화적 반발은 한국 힙합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항상 벌어졌던 현상이다. 블루스 재즈가 태동하고 한참 퍼지던 1920~40년대 초반까지 서구권 클래식 매니아들에게 당시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적인 분위기와 더불어서 '저질스러운 노예 음악' 취급을 받았고 1950~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를 필두로 로큰롤을 비롯한 초기 록 음악이 퍼지던 시기에 받은 견제와 멸시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특히 군사 독재가 지속되던 한국에서 록 음악은 무려 1970~80년대까지 법적 차원에서 규제를 받았고, 90년대에도 민간에서의 인식은 여전히 심하게 호불호가 갈렸다. 미국 본토에서 힙합을 무시하던 경향은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고, 힙합의 도입이 늦어진 한국에서는 이게 2010년대까지 길게 이어진 것이다.

한국에서 힙합이 생소했던 시절에는 부족한 랩 스킬, 비트 등으로 간신히 구색만 갖춘 정도였다. 이에 대해서 기성세대를 포함한 기존의 대중들은 웬 양아치들이 희한한 옷과 머리를 하고 중얼중얼거리는 이상한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최신 유행하는 '사회비판 장르'를 한국화한다면 훨씬 모양이 그럴듯해 보일 것이 자명했다. 1990년대 말은 인디 락씬, 특히 조선 펑크도 그렇듯, 청년들 사이에서 사회 비판에 대한 전통적인 감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주류로 유행하는 댄스, 발라드의 수요가 엄청난 게 사실이지만, 1970~80년대의 민중가요와 포크 등으로 대변되는 언더그라운드 감성에 대한 수요도 분명히 존재했고, 그 틈새를 새로운 사운드와 문화적 아비투스로 무장한 인디 락과 힙합이 세대교체를 점진적으로 성공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당시 한국에서 힙합이라고 하면 주로 갱스터 랩, 컨셔스 랩 정도에 한정되었다. 비단 드렁큰 타이거나 업타운 등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들뿐만 아니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수많은 아티스트들도 하나같이 비슷한 갱스터 랩이나 컨셔스 랩을 시도했다. 물론 이는 H.O.T.로 대변할 수 있는 세기말 반항아적인 감성도 큰 비중을 차지한 원인도 있었다.

알아둬야할 부분은 한국에서의 힙합이 이렇게 시작되었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힙합이 시작된 지 30년이 넘어가는 시점이 되었으며, 그 사이에 너무도 많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회 비판과 풍자만을 유독 강조했던 1990년대 한국식 갱스터 랩의 모습은 2000년대 초중반 이후 소울컴퍼니로 대표되는 언더그라운드 감성 힙합과 무브먼트로 대표되는 오버그라운드 래퍼들의 대중적인 곡들에 의해 진작 세대교체 되었다.

그 이후로도 2010년대 초반 일리네어로 대표되는 본토 힙합의 머니 스웩과 트랩 장르가 유행하기도 했고, 이센스, 딥플로우, 허클베리피 등 본인의 생각과 가치관, 음악적 취향들을 담담하게 표현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도 등장했고, 힙합이라는 장르를 유행시킨 쇼미더머니와 같은 예능 매체도 등장했다. 그리고 R&B의 색채를 더해 풍부한 음악성으로 무장하고 사운드나 비주얼적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보인 DEAN, DPR LIVE가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한국 힙합과 타 장르의 조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소위 언에듀케이티드 키드, 염따 등 특이한 이미지와 개성으로 무장한 기믹 래퍼가 유행하거나, Dbo, 래원 등 가사 내용에 중점을 두지 않고 극단적으로 청각적 쾌감만을 중시하는 래퍼들이 인기를 얻는 등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또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사회 비판에 대한 오해와 더불어 공격적이거나 퇴폐적이라는 이미지는 느리지만 조금씩 희석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도 생겨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언더에서 할 말, 안할 말 다 하고 살던 MC 들이 오버로 나오면서 발라드곡에 피쳐링으로 나와 부드러운 이미지가 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힙합의 본토인 미국에서조차 보다 장르가 다양해지고 실험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힙합이라는 장르의 흐름으로, 1980, 1990년대 힙합 특유의 공격적인 성향, 갱스터 랩 등의 요소는 도태되는 게 전세계적인 추세다. 그렇기에 이와 같이 힙합이 다양하게 변하고 있는 추세는 단순 한국 힙합만의 안타까운 근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2020년 들어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온라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아마추어들이 대폭 늘어났다. 타 장르에 비해 배경음악이 되는 비트를 구하기 쉬우며, 가사 쓰고 랩을 하면 돼서 비교적 접근성이 높기 때문이다. 웬만한 힙합 커뮤니티에는 자작곡 올리는 게시판이 거의 다 있다. 제대로 된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여기서 프로로 전향한 사람은 정말 손에 꼽힌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산이, 빈지노, 블랙넛, 테이크원 정도가 있다. 이는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본토인 미국에서도 유튜브, 사운드 클라우드와 같은 온라인 매체를 통해 녹음물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 역시나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보아야 한다.

3.1. K-POP과의 관계

BIGBANG, iKON, 블락비, 방탄소년단, BLACKPINK 등. 힙합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아이돌 그룹이 큰 성공을 거둔 입장이고, 이들을 롤모델 삼아 힙합을 차용한 케이팝 그룹이 셀 수 없이 많다. 애초에 한국에서 힙합 장르가 뿌리 내리게끔 활약한 시조격 아티스트들이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현진영 등이 있고, 동시에 이들은 아이돌 댄스 뮤직 장르를 개척한 아티스트들이기에 적어도 한국 힙합과 아이돌 뮤직은 태생적으로 많이 엮일 수밖에 없다. 20년 이상의 세월을 거치며 아이돌 뮤직과 한국 힙합이 갈라져 나간 현재에도 보이그룹, 걸그룹 상관없이 꼭 한두 명씩 껴있는 랩 담당 멤버이나, 지금은 힙합씬에서 많이 사장되었지만 발라드 랩, 랩 댄스 뮤직 장르의 존재 등등 그 흔적이 몇몇 남아있는 편이다.

방탄소년단, BLACKPINK 등 힙합 중심의 아이돌 그룹이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등, 2021년 현재는 해당 장르가 아이돌 중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 BLACKPINK 외에도 (여자)아이들, ITZY, aespa와 같이 인지도가 높은 그룹들 역시 많다. 위에서 서술했듯이 그룹마다 래퍼 포지션 한두 명 정도는 항상 있는데, 그 중에서는 정말 랩 실력이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가창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는 경우도 있다.[34]

한국 힙합계에서는 자체적으로 음악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 부족하고 기획사의 기획에 의해 많은 부분이 계획되는 아이돌 그룹이 힙합을 내세운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있고, 넷상에선 아이돌과 힙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동시에 받기도 한다.

이러한 시선은 2010년대 후반에 한차례 변화를 겪는다. K-POP 아이돌 업계의 주도권이 3세대 후반에서 4세대로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시점에서, 작사작곡이 3~4세대 케이팝 아이돌의 기본적인 스킬로 갖춰지고, 아이돌도 창작자이자 뮤지션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직접 개인 작업실에서 시퀀스를 만지고, 프로듀싱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보이며, 힙합 뮤지션으로서의 개개인의 개성, 주도성, 능력치 적인 측면에서 인지도를 얻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가 잦아지면서, 아이돌 래퍼의 넓어진 음악 스펙트럼이 서서히 인식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아이돌 랩, 아이돌 래퍼에 대한 일종의 스트레오타입이 존재하는 편이다.

아이돌 래퍼가 은연중에 비 아이돌 래퍼와 동등한 힙합 아티스트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SHOW ME THE MONEY 고등래퍼에 아이돌 래퍼가 출연했을 때의 취급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다. 비프리의 방탄소년단 디스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비 아이돌 래퍼가 아이돌 래퍼의 힙합적인 스킬과 음악성을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과는 별개로, 한국 힙합씬에서 K-POP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나 피처링 등의 형태로 협업하는 경우는 많은 편이다. 특히 싱잉랩에서의 K-POP 믹싱, 아이돌의 참여는 대중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는 아이돌이 힙합에 얼마나 전향적인지에 대한 여부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코 박재범처럼 힙합에 전념하는 아이돌 래퍼가 비 아이돌 래퍼와 동등한 힙합 아티스트로 인정받기도 한다. 반면에 방탄소년단이 힙합에 디스코를 도입하는 시도를 하면서 한국 힙합씬이 방탄소년단을 힙합 그룹으로 잘 인식하지 않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 힙합이 알게 모르게 정체성 의제에 집중하면서, K-POP내의 힙합의 정체성은 한국 힙합계의 거대한 떡밥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한편, 해외에서는 한국의 힙합을 논할 때, 아이돌 래퍼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비 아이돌 래퍼들은 해외 히트곡과 인지도가 없는 한 아예 언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ATEEZ 홍중, 방탄소년단 슈가 RM, (여자)아이들 전소연, 2NE1 CL, EXID LE, Stray Kids 창빈, 더보이즈 선우, NCT 마크, 블락비 지코 등의 아이돌 래퍼와 3RACHA, Stray Kids, 방탄소년단, 몬스타엑스, BLACKPINK 등의 힙합 성향이 강한 아이돌 그룹은 힙합 곡이 히트하면서 그 성과로 인해 많이 알려져있으며 몇몇은 해외 힙합 리스너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역으로 적당한 힙합 BPM에 합성음악의 형태로 K-POP에 도입되기도 했다. 특히 YG는 808베이스의 힙합 비트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2010년대 마지막의 작곡 트렌드를 이끌었다.

아이돌랩은 훅을 강조하는 대신 곡에 따라 코러스를 약하게 구성하고, 가사의 의미보다 운율을 강조하고, 비속어 사용을 절제하거나 쓰더라도 비슷한 발음의 외국어로 돌려서 표현하는 언어유희를 하고, K-POP의 작곡 스타일을 도입하기 때문에, 노래에 기승전결구조가 있는 경향이 있다. 멜로디와 보컬이 강화되고, 댄스가 없는 곡에서도 댄스 비트를 자주 쓰며 퓨처베이스, 하우스, 국악, 디스코 등 여러 장르가 힙합과 같이 시도되는 실험적인 시도도 활발히 진행된다.

가사마다 포인트 안무가 있기 때문에 챌린지가 일어나기도 하며, 아무노래 이후, 아이돌랩의 챌린지 안무 형태가 캐주얼하고 따라하기 쉬운 형태로 구성하는 방식이 정립되었다.

또한 아이돌랩에는 110bpm ~ 130bpm의 빠른 댄스곡에다가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가사에 사용되는 한국어의 문법이 비 아이돌 힙합에 비해 간단하고, 영어 네이티브의 발음을 비슷하게 구현하는 별도의 발성과 딕션을 구현하는 그룹들도 있다.

4. 세계화

K-POP의 대중적 인기와 비교하진 힘들지만 쇼미더머니 고등래퍼의 해외 수출 및 방영, 인기 아티스트의 SNS와 뉴미디어 홍보를 통해 국힙도 해외에 소개되고 있다, 장르의 특성상 서로간의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하지만 아이돌 음악 지분이 높은 K-POP과 다른 점은 힙합 아티스트들이 철저히 국내를 타겟팅하고 있다는 점, 팬덤의 의존성이 K-POP보다 작은 점, 비주얼 퍼포먼스보다 음악성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한국 힙합 아티스트들은 철저히 국내 수요에 의존하고 있으며, 한국 힙합이 알려진 건 이들이 해외시장 진출을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닌, 엠넷의 방송 수출에 의한 예능 프로그램의 부수적인 파급효과인 경우가 많다.

물론 예외도 있다. 대표적으로 잊지마나 응 프리스타일 등의 곡들은(비록 해외 진출을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방송과 무관하게 꽤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아이돌 출신인 박재범을 필두로 한 AOMG/ 하이어뮤직의 경우 해외 팬들이 상당히 많은 상황이다. Dream Perfect Regime도 마찬가지.

단적으로, 해외 진출을 위해 K-POP이라는 브랜드를 일관되게 밀고 나간 한국 가요계와 다르게[35] 한국 힙합을 지칭하거나 홍보하는 단어가 없다. 한국 내에서도 이를 지칭할 수 있는 단어는 국힙 정도이며, 외국에서는 대체로 Korean hiphop song 이라는 특색없는 단어로 불린다. K-POP의 영향을 받아 비공식적으로 K-hiphop, khh 정도의 단어가 그나마 독자적으로 국힙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이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K-POP 팬임을 의미한다.

음악 장르적으로도 한국 힙합은 고유성과 독창성보다 히스패닉, 미국계 흑인의 힙합 스타일의 로컬라이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해외 힙합 리스너들에게 음악성이나 스킬적인 부분 외에 한국 힙합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기 힘들다. 그나마 발라드랩이나 아이돌랩 같은 독창적인 장르가 존재하지만, 한국 힙합씬에서의 주류가 아니며, 발라드랩의 경우, 해외에서의 영향력이 없는 편.

그렇지만 국내 랩퍼들 중에도 국내 활동 위주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에픽하이, 비와이나 창모 등 해외 투어를 하거나, 해외 활동에 신경쓰는 힙합 아티스트 중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는 힙합 아티스트들도 존재하는 등 해외 시장에 관심이 없지는 않다. 일종의 국내 힙합씬의 해외 진출 과도기인 셈.

이외에도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레이블이 생기는 등 한국 힙합은 급격히 레드오션화 되고 있어, 한국 힙합 레이블과 아티스트가 언제까지나 국내 시장에서의 수익으로 안주할 수 없으므로, 해외 진출을 위한 힙합 아티스트들의 실험적인 시도와 세계화가 보다 많은 팬을 확보하면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1990년대의 K-POP이 이러한 과정 속에서 POP과 결별하고 독자 노선으로 성공했던 것을 미루어보면, 한국 힙합도 세계적인 음악 장르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5. 명반

연도별 국내 힙합 주요 수상/선정작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접기·펼치기 ]
<rowcolor=#000,#fff> KHA[1]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2] 리드머 선정[3] 온음 총결산
2001 ?[A] -[5] ?[6] -[7]
2002 #
Welcome To The Infected Area
2003 파일:MapOfTheHumanSoul.jpg 파일:Lesson4ThePeople.jpg
Map of the Human Soul Lesson 4 The People
2004 파일:8000279.jpg #
Taxi Driver Beats Within My Soul
2005 파일:8012852.jpg 파일:8012852.jpg
Double Dynamite Double Dynamite
2006[8] ?[A] 파일:The Quiett Q Train.jpg
# Q Train
More Than Music
2007 파일:external/imgs.ototoy.jp/00031284.1369143195.3885orig.jpg 파일:external/imgs.ototoy.jp/00031284.1369143195.3885orig.jpg
Remapping The Human Soul Remapping The Human Soul
2008 -[10] 파일:external/board.rhythmer.net/20110221225805.jpg
누명
2009 파일:Feel gHood Muzik : The 8th Wonder.jpg 파일:Feel gHood Muzik : The 8th Wonder.jpg 파일:Feel gHood Muzik : The 8th Wonder.jpg
Feel gHood Muzik: The 8th Wonder Feel gHood Muzik: The 8th Wonder Feel gHood Muzik: The 8th Wonder
2010 파일:garion2.jpg 파일:garion2.jpg 파일:garion2.jpg
Garion 2 Garion 2[올해의음반] Garion 2
2011 파일:external/images.rapgenius.com/6413f75d3134253acc313fe70c298a4a.920x920x1.jpg 파일:SIMO&MOODSCHULA.jpg 파일:SwingsU2.jpg
열꽃 Mood Schula Upgrade II
2012 파일:external/img.maniadb.com/718778_1_f.jpg # #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 소리헤다 2 M.O.B
2013 파일:hi-life.jpg 파일:ChiefLife.jpg 파일:ChiefLife.jpg
Hi-Life Chief Life Chief Life
2014 파일:external/hiphopplaya.com/20140613_140262870608.jpg 파일:2015_Hwaji.jpg 파일:2015_Hwaji.jpg
파급효과 (Ripple Effect) EAT EAT
2015 파일:external/ilyricsbuzz.com/E-SENS-The-Anecdote.jpg 파일:external/ilyricsbuzz.com/E-SENS-The-Anecdote.jpg 파일:external/ilyricsbuzz.com/E-SENS-The-Anecdote.jpg
The Anecdote The Anecdote[올해의음반] The Anecdote
2016 파일:작은 것들의 신.jpg 파일:2016_Hwaji_Zissou.jpg 파일:2016_Hwaji_Zissou.jpg
작은 것들의 신 ZISSOU ZISS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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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k Drunk Love 재건축 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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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탕아 flaw, flaw[13]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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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LANGUAGE[올해의음반]
2020 파일:BSDETOX.jpg 파일:가로사옥.jpg 파일:FREE THE BEAST.jpg 파일:garlic album.jpg
DETOX 가로사옥 FREE THE BEAST Garlic
2021 파일:UGRS_albumart.jpg 파일:독립음악.jpg 파일:UGRS_albumart.jpg 파일:Cliché.jpg
UNDERGROUND ROCKSTAR 독립음악 UNDERGROUND ROCKSTAR Cliché
2022 파일:Lil Moshpit AAA.jpg 파일:넉살 까데호 당신께.jpg 파일:넉살 까데호 당신께.jpg 파일:LILCHERRYGOLDBUDDASPACETALK.jpg
AAA 당신께 당신께 SPACE TALK

[1] 전신이었던 힙합플레이야 어워드 포함. [2] 힙합/댄스 음반 → 힙합 음반 → 랩/힙합 음반 [3]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리드머 어워드라는 자체적인 시상식을 열어 선정하였다. 2009년에는 단지 웹진에 선정작을 정리해놓는 것에 불과했지만 2010년부터는 어워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상자들에게 트로피까지 시상을 했다. [A] 선정 결과를 찾을 수 없음. [5] 2003년 첫 시상. [6] 2009년 여름에 사이트 전체가 날라가는 사고가 일어나 선정 여부 확인 불가. [7] 2018년 첫 선정. [8] 힙플어워즈는 상반기, 하반기 나눠 2차례 선정. [A] [10] 2008년에는 힙플어워즈를 진행하지 않았다. [올해의음반] 올해의 음반 수상/선정 [올해의음반] [13] 다른 곳에서는 모두 알앤비라고 분류를 하나, 리드머에서만 이걸 힙합으로 분류한다. [올해의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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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과 수작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것을 판단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만 다수에게, 더 나아가서는 각종 매체에서도 명반이라고 인정받는 앨범들은 일부 정해져 있다. 장르를 넘어서 2010년대 최고의 음반으로 꼽히는 이센스 The Anecdote, 대중들과 매니아층 모두에게 호평받는 빈지노 24 : 26, 그리고 한국어 랩 라임의 체계화를 이룬 버벌진트 누명, 한국 힙합 씬에서 이모 힙합의 유행을 이끈 씨잼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이센스의 The Anecdote는 2010년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위에 선정되며 기념비적인 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아예 장르를 뛰어넘어 201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최고 명작 중 하나로 인정받은 전적이 있다.

6. 관련 문서


[1] 물론 록 음악도 1970~80년대 대학가요제와 그룹사운드로 대표되는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1990년대까지는 한국 가요계에서 비중이 제법 있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인디 록 뮤지션들이 지상파에도 출연하는 등 입지가 어느 정도 있었으나, 카우치 사건으로 인한 여파와 영미권과 유럽을 대표로 하는 본토의 록 음악 자체가 세계적인 음악 트렌드에서 조금씩 밀리면서 지지기반이 약했던 한국의 록 음악은 더 빠르게 잊혀져갔다. 이 공백을 힙합이 채웠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한국이 유독 록 음악이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일찌감치 사그라들긴 했지만, 현재 전세계적으로도(심지어 록의 중심지였던 미국과 영국마저도) 2010년대부터는 대중음악계에서 록 음악의 비중이 흑인음악에 밀려 많이 낮아지긴 했다. 이는 시대적 환경의 영향도 적잖게 존재한다. 한국에서 록 음악의 최전성기나 다름없었던 1960년대~ 1980년대까지 당시 한국은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이었으며, 지속적인 정부의 탄압과 규제(두발 및 복장 규제, 활동명 규제, 노래 가사 검열, 금지곡과 방송출연정지 등의 징계, 건전가요 강제 수록 등), 그로 인해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경직되었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 더해서 경제적으로도 매우 열악했기에 알맞은 시기에 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그라든 점이 크다. 전 세계적으로 힙합 열풍도 불기 시작하고 한국에 힙합이 도입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이후 민주화가 되고 경제적으로도 나름 윤택해진 상황이어서, 대중들에게 큰 리스크 없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게 된 차이점도 있다. [2] 그나마 일렉트로닉 뮤직의 경우 세칭 EDM이라고도 하는 메인스트림 일렉트로닉 뮤직을 2010년대 이후의 K-POP에서 어느정도 수용하였고(물론, 세부적으로는 일렉트로닉 하우스나 US 덥스텝같은 당대의 주류 장르에 한한다), 트랩처럼 EDM과 힙합의 교집합이 엿보이는 경우도 있어서 록 음악보다는 그나마 입지적인 사정이 눈꼽만치 나으나, 신인 아티스트가 주목받을수 있는 환경은 한국 록 못지 않게 암울하다. [3] 이미 리더 타이거JK가 1995년 미국에서 앨범을 제작해 한국에 소개했지만 빨리 묻혀졌다. [4] 록 음악의 경우는 흑인 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 로큰롤을 모태로 삼고 있듯 흑인 본위적 힙합도 펑크(Funk)를 원조로 삼는 주장도 있지만, 크게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캡 캘러웨이의 'Minnie The Moocher'나 제임스 브라운의 ' Get Up (I Feel Like Being a) Sex Machine'은 그럭저럭 힙합의 전신격으로 인정받는 정도. [5] 일본에선 이토 세이코란 만담가가 최초의 일본 힙합으로 추앙받는 점을 보면 그렇게 선례없는 주장까지는 아니다. [6] 힙합은 하나의 문화(랩 이외에도 디제잉, 그래피티, 비보잉 등도 힙합이다)를 총체적으로 이르는 말이지 힙합=랩은 아니다. 다만 대중적인 인식은 거의 이에 가까운 것이 문제. [7] 물론 이런 힙합 보컬의 경우, 일반 발라드와는 다르게 어미 부분의 라임과 운율을 충분히 살려줘야 한다. [8] 이것이야말로 1980년대 중후반 이전까지는 한국 사회에서 힙합이나 랩이란 개념 자체를 사실상 아예 몰랐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언론에서 첫 언급한게 1986년이었으니 대중들에게 힙합이나 랩이란 글자가 퍼지고 "음 이게 힙합이란건가?"라며 인식을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인 1990년대나 되어서였다. 김수한무같은 한국 원로 코미디언들의 유행어가 한국 힙합의 시초다라는 증거도 없는 억지 주장을 간단하게 논파하는 셈이다. 당장 미국 본토에서도 1980년대부터 이제야 막 인기를 얻고 수면 위로 올라가던 신생 장르 취급이 힙합이었다. [9] 배우 이서진 뉴욕 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때를 어서옵SHOW란 예능에 나와 말했는데 "그때 미국에서도 힙합이 이제 막 퍼지고 애들이 좀 알아가기 시작한 음악이었다. 내 또래들은 미국 애들조차도 흑인 아니면 랩이나 힙합 잘 몰랐어"라고 지나가듯이 말했다. 의외로 이는 꽤 정확한 과거 회상이다. 힙합의 기원이 1970년대인 것은 맞지만 엄연히 몇몇 클럽에서 트는 쌈마이한 리믹스 댄스 음악이었다. 인터넷도 없던 1970년대에 클럽에서 힙합이 생겼다고 바로 그 다음날 아침부터 모든 미국 대중들이 힙합에 열광하거나 찬양했을까? 본토 힙합 뮤지션의 나이대를 살펴보면 1970년대에 활약한 턴테이블 DJ들 정도를 제외하고는 Run-D.M.C., 라킴, 닥터 드레, 이지 이를 비롯한 힙합씬 초창기에 큰 영향을 끼치거나 힙합 대중화의 물꼬를 튼 유명 프로듀서나 래퍼들도 1960년대 출신 흑인들이 대부분이다. 본토에서도 1960년대 생(넓게봐야 195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생)이 무려 '선구자' 역할을 해낸 엄청 젊은 장르가 힙합이란 것이다. 이서진이 빠른 1971년생, 사실상 1970년생이고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 유학을 한 장본인이니 이는 정확하게 그 시대상을 바라본 것이 맞다. 당시 힙합에 일찌감치 빠져들었던 몇몇 흑인 부류를 제외하고는 당시 1960~70년대 생 미국 청년들 대부분이 힙합보다는 록 음악(정확히 메탈이나 펑크)에 훨씬 더 익숙하고 이를 더 즐기던 세대이다. 괜히 흑인들이 1990년대 초반의 바닐라 아이스를 보고 손가락질하거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에미넴을 보고 고깝게 여긴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10] 한 마디로 본토로 치면 1970년대가 이제 막 힙합이란게 뉴욕 클럽에서 리믹스하며 태어난 시대, 1980년대는 젊은 미국 흑인 청소년과 청년들 사이에서 "야 이게 요즘 죽이는 음악이다"하는 막 대중화되고 뜨는 분위기였다면 1990년대가 되어서야 "야 요즘 서부의 투팍이 좋지않냐?", "음 나는 비기나 나스가 더 쩔던데?"하는 주류 수준으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괜히 본토 힙합씬에서 1990년대를 골든 에라(Golden Era, 황금기)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힙합이란게 처음으로 젊은 흑인 힙스터들을 넘어서 미국 전 대중들한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시기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기서 딱 20년 씩 늦은 감이 있다. 1990년대에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를 통해 "오 저게 뭐냐?"는 식으로 시작되어 2000년대부터 타이거JK 같은 뮤지션들을 통해 유명해지더니 2010년대에 씬 전체가 대중적으로 제대로 주목받은게 한국 힙합씬이라고 볼 수 있다. [11] 당시 홍서범은 가사 뿐만 아니라 비트도 한국적 뽕삘이 약간 있긴해도 당시 뉴잭스윙 요소가 들어간 클럽풍 힙합 내지는 펑키한 초기 뉴욕 올드스쿨 힙합의 작법을 그대로 차용했다. [12] 슈거힐갱의 래퍼스 딜라잇이나 기타 Run-D.M.C. 이전 올드스쿨 힙합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본토 힙합조차도 다양한 형태의 라임이 그닥 많지 않던 시절이다. 라임의 적극적인 활용도를 높이기 시작한 건 1980년대 후반 라킴 같은 뮤지션들의 등장 이후이다. [13] 한국 힙합에서의 다음절 라임은 90년대 후반 ~ 00년대 초반에 나우누리 동아리였던 SNP 회원들을 위시로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2001년에 버벌진트가 발매한 Modern Rhymes EP를 계기로 씬에 본격적으로 도입이 되기 시작했다. [14] 다만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패션, 문화, 제스쳐 등등의 문화의 상당수는 미국 힙합계의 레전드 Run-D.M.C.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 전엔 디스코나 훵크 밴드 음악 베이스에 패션도 디스코 음악에 춤추던 복장 그대로였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티아라의 '롤리폴리' 복장이 80년대 초반 힙합 뮤지션들의 패션이었던 것이다. [15] 물론 이들이 정통 힙합을 완전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 Come Back Home', 현진영은 ' 너는 왜 (현진영 Go 진영 Go)', 듀스는 ' 이제' 등 이들 역시 정통 힙합을 기반으로 한 노래를 하곤 했다. [16] 한국 힙합 최초로 라임을 도입한 가수. 다만 김진표는 한국 힙합에 많은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정작 자신은 그냥 래퍼이지 힙합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그런 평가가 좀 쑥스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17] 시스템(system)과 운영자(operator)의 합성어로, PC통신 내의 각종 동호회나 소모임 게시판 등을 관리하거나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를 뜻한다. 그냥 운영자라고 보면 되고, 부운영자는 부시삽이라고 불렸다. 같은 맥락으로 PC통신이 퇴색해진뒤 바톤을 이어받은 포털사이트 카페의 운영자와 똑같은 개념이다. [18] 생각해보라. 그들은 음반 사장이 난생 처음 듣는 생소한 음악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1997년 미국에 'mp3.com'이란 음원 다운로드 사이트가 생겼고 와레즈 사이트들도 애용했으나, 1999년 이전까진 인터넷이 ADSL 방식이 아니라 전화접속 네트워킹이라 음악 하나 다운받는 데 거액의 전화세를 감당해야 했다. [19] 특히 이 중에서도 이센스가 2008년에 발매한 ' New blood, Rapper Vol.1'은 본격적으로 믹스테잎 문화를 힙합계에 보편화시켰을 정도로 씬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당장 타 아티스트들의 수준급 정규 앨범들을 퀄리티로 압도할 정도의 음악성을 자랑하며, 발매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테이크원의 'TakeOne For The Team'과 함께 한국 힙합계 역사상 최고의 믹스테잎으로 인정받는다. [20] 다만 이에 대해선 맞춤법과 국문법에 대한 관심의 저하 때문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20세기에는 문화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가 어느정도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에게 제한적으로 주어졌다면, 21세기 들어 다원주의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 또한 문화적 생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이들이 주도하는 문화가 인기를 누리고 급격하게 재생산되며 문화를 소비하는 풀 자체가 저변으로 확대되면서 일종의 반지성주의적인 문화가 기류를 형성했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리스너들이 관용적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새로 성장해 다수를 차지하는 래퍼나 리스너가 단순히 문법을 모르기 때문에 문법적으로 옳지 않은 문장을 사용하고, 거기에 대해 지적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21] 대표적으로 2000년대 오버 힙합씬을 대표하던 리쌍,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가 있다. 리쌍의 , 개리는 마스터플랜에서 언더 생활을 경험한 허니패밀리 출신이며, 다듀의 개코 최자, 에픽하이의 타블로, 미쓰라 진도 언더 출신 래퍼로 먼저 데뷔했다. 이센스 사이먼 도미닉 역시 언더그라운드 최고의 루키로 활약하다가 슈프림팀으로 오버 데뷔를 한 케이스였다. [22] 대표적으로 Dok2, 팔로알토가 있다. 도끼는 다듀 피처링을 통해 데뷔했으며, 팔로알토는 데뷔는 아니지만 타이거JK 소속사에서 활동하며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애초에 이런 것들을 다 떠나서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이 형성된 것도 90년대에 서태지, 듀스와 같은 메이저 스타들의 음악을 미디어를 통해 보고 들으며 영향받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이나 클럽 등지에 모여 음악을 시작하면서 생긴 것이다. 언더 힙합씬의 1세대이자 거물인 버벌진트의 노래를 보면 선구자인 서태지와 듀스 이현도를 존경하는 의미의 가사들도 상당수가 존재한다. [23] 물론 개인 역량이 부족한 대다수 랩 파트 담당 아이돌들은 여전히 냉대받지만, 실력파 가수들이 실력 부족한 보컬 담당 아이돌을 냉대하는 수준이다. 이는 힙합을 떠나서 뮤지션으로서의 행보와 업적을 중요시 여기고 이를 존중하는 지극히 당연한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다. [24] 이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저출산 기조와도 무관치 않다. [25] 다만 산하 레이블이었던 앰비션 뮤직은 멀쩡하다. [26] 테일러 스위프트의 2023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선정이 대표하듯 2023년은 말 그대로 컨트리의 해로 불릴 정도로 주요 히트곡들은 대부분 컨트리 장르였다. [27] 7월이 되어서야 릴 우지 버트의 ‘Pink Tape’가 1위를 달성하며 겨우 체면치레를 유지했다. 다만, 2024년 초부터 칸예 웨스트 VULTURES 메트로 부민 퓨쳐 WE DON'T TRUST YOU가 HOT100과 HOT200 차트를 휩쓰는데에 성공하면서 미국 본토에 한정해서 힙합이 아직 죽지는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28] 2024년 4월부턴 켄드릭 라마-드레이크 디스전이 발발하면서 힙합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폭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29] 예시로 든 밴드들은 메이저 수준으로 성장해서 대중들에게 사랑받기도 한다. [30] 2010년대 한국 힙합씬 최고의 스타성을 가졌다는 빈지노는 커리어 사상 가장 실험적이었던 노비츠키마저도 잠깐이지만 차트인도 상당히 올려보고 앨범 판매도 흥행시키며 지금도 여전히 씬 최고의 스타인것을 증명했다. 대마초 사건 이후로 아예 10년 가까이 대중 노선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센스조차도 단단한 코어팬층을 통해 앨범 판매 또한 상당한 수준으로 해냈으며, 3집 저금통에서 엄청난 랩 실력을 보여주면서 대중들에게 다시금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별다른 홍보 없이 혼자 이태원에서 선공개 리스닝 무대를 하겠다고 알리자 다음 날 무려 1,000명에 달하는 관객이 몰릴 정도로 화제성도 여전하다. [31] 특히 유력한 차세대 아이콘으로 창모 씨잼을 향한 씬 내부 리스너들의 리스펙과 향후 음악적인 행보에 대한 기대치는 위의 직전 세대 투톱이라 불린 이센스, 빈지노와 버금가거나 몇몇 리스너들에게 있어서는 더 할 정도이다. [32] 물론 그 이전에도 없던건 아니었다. 활동 초창기의 윤키같은 사례도 있었다. [33] 대중적인 곡들이 유명해서 그렇지 매 앨범마다 사회비판적인 노래가 하나씩은 들어간다. [34] 소나무도 힙합 중심의 그룹이였지만, 비주얼, 가창력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35] K-POP이라는 단어는 한국 가요계가 도입한 브랜드이다. 이 브랜드의 적극적인 홍보가 없었다면, K-POP은 Korean music, Korean electronic dance music 정도의 특색 없는 단어로 불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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