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김호호/1994 FIFA 월드컵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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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관련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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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4 FIFA 월드컵 미국 C조 4경기 1994년 6월 23일 목요일 19:30 (UTC-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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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버러 스타디움 ( 미국, 폭스버러) | ||
주심: 레슬리 모트램 (스코틀랜드) | ||
관중: 54,453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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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0 | |
대한민국 | 볼리비아 | |
- | - | |
- | 82' 루이스 크리스탈도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2. 경기 전 예측
보스턴 인근의 폭스보로에서 열린 24강 조별리그 2차전은 남미 예선에서 홈고지대에서 우승팀 브라질을 2:0, 우루과이를 3:1로 격파하며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남미 예선 3위로 통과한 볼리비아였다.[1][2] 대한민국은 3개 팀 중 그나마 약체인 볼리비아를 상대로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 더구나 볼리비아는 당시 골잡이었던 마르코 에체베리아가 전 경기에서의 어이없는 퇴장[3]으로 대한민국전에 출전할 수 없어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첫 승을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3. 경기 실황
대한민국 선발 명단
4-4-2 감독: 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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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1. 최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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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7. 신홍기 62' |
CB 5. 박정배 89' |
CB 20. 홍명보 |
LB 4. 김판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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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W 10. 고정운 38' |
CM 6. 이영진 |
CM 8. 노정윤 ▼ 71' 12. 최영일 ▲ 71' |
LW 9. 김주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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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11. 서정원 ▼ 65' 16. 하석주 ▲ 65' |
CF 18. 황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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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 |
C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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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 |
CDM |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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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B |
CB |
CB |
R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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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1. 카를로스 트루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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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선발 명단 ?-?-? 감독: 사비에르 아스카르고르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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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하이라이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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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하이라이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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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전반전
3.2. 후반전
4. 경기 평가
대한민국 월드컵 첫 무실점 클린시트와 역사상 남미를 상대로 첫 승점을 따긴 했지만 당시 대한민국 언론이 1차전 스페인과 무승부 승점 1점을 따며 순식간에 대한민국 축구 눈만 높아지며, 월드컵 1승과 16강(16위권)을 쉽게 보며, 설레발이 극에 달아 충분히 이길 만한 상대를 잡지 못했으니 비난도 뒤따랐는데, 특히 공격수 황선홍이 앞선 스페인전에 이어 이날 경기에서도 수많은 찬스마다 계속해서 똥볼을 차올리며 득점 기회를 죄다 날려먹는 바람에 전국민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5][6]이 볼리비아전 한 판으로 황선홍은 엄청난 비난이 될 정도.[7][8] 또한 황선홍 못지 않게 하석주도 만만찮게 욕을 먹었는데, 후반 추가시간에 황선홍의 힐패스를 받아 결정적인 1:1찬스를 맞았지만 이때 왼발로 찬 슛이 골키퍼에 막히고 만 것. 사실 황선홍처럼 똥볼도 아니었고 잘 못 찼다기보다는 키퍼가 잘 막은 거였지만 시간대가 시간대이고 16강 진출 여부가 달린 중요한 경기였던지라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9] 스페인전에서의 화끈한 프리킥 득점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홍명보는 이 경기에서는 무조건 실점을 막으라는 김호 전 감독의 특명을 받고 수비에만 전념했다. 남미 예선 3위, 시드(포트)2 최전성기 시절 볼리비아를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1승 상대로 쉽게 본것도 문제이지만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상대였기도 했기에 나왔던 결정.
5. 중계
국내 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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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완 | 신문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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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담
- 대한민국은 역대 월드컵 2차전에서 총 승점 4점 4무 7패 10득점 31실점으로 1승을 기록한 적이 없고, 이 경기는 아직까지도 유일하게 대한민국이 2차전에서 클린시트 기록한 경기로 남아있다.
- 만약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1:0 이상으로 이겼다면 당시 24강 조 3위 간 순위 결정에서 승점 동률인 미국과 이탈리아를 다득점 혹은 득실차로 제치고 16강에 갈 수 있었다.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에게 결정적인 찬스들이 매우 많았기에 대한민국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경기였다.[11]
7. 둘러보기
[1]
그래서 남미 볼리비아가 대한민국보다 높은 시드(포트)를 배정 받았다.
[2]
당시 볼리비아는 1993년 에콰도르 코파에서 콜롬비아와 1:1, 멕시코(초청국)와 0:0 각각 무승부로 승점 기록과 1995년 우루과이 코파에서 미국(초청국)을 1:0으로 이기고, 칠레와 2:2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하며 8강 8위까지 기록하며 1997년에 코파 준우승과 FIFA 랭킹 18위를 기록할 정도로 볼리비아 최전성기 시절이었다. 20세기(1901~2000) 시절 볼리비아는 친선 경기가 아닌 코파 아메리카와 월드컵 남미 예선 홈 & 원정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상대로 승리와 무승부 승점 1점도 획득하였으며, 1963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한 경력이 있었다.
[3]
대한민국전을 대비한답시고 독일전에서 후반 막판에 컨디션 조절차 교체 출전했는데, 이 선수와 교체되어 나와야할 선수가 착각하여 피치에서 나오지 않아 12명으로 플레이하였다는 사유로 들어가자마자 퇴장당했다.
[4]
당시는 추가 시간을 따로 표시해서 알려주지 않고 주심의 재량으로 적용했던 시절이라 가능했다.
[5]
황선홍은 훗날
무릎팍도사에서 스페인 전 때 1대1 찬스를 날렸던 것이, 결국 이날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말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6]
그 후 황선홍은
30년 후
대한민국 축구 사상 최악의 대형참사를 만들었다.
[7]
당시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축구하다가 홈런을 날리면 '아 이런 황선홍 같은!!'(...)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 후 황선홍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해서 폴란드전에서 선제골과 8강 준준결승전 스페인전에서 승부차기 골을 득점함으로써 겨우 이 오명을 벗을 수 있었으며, 그 후 이 불명예스러운 오명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결정적 찬스를 날려먹은
염기훈 그리고 16강 우루과이전에서 1대1 찬스를 놓친
이동국에게 넘어갔다 2014년
박주영, 2022년
황의조로 이어졌다.
[8]
대한민국에서는 한번 실수한 것 갖고 미개하게 죽어라 까다 잘하면 칭찬한다고 냄비라고 까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대한민국 뿐만 아닌 전세계 모든 국가, 심지어 축구 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브라질에서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결승까지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승전에서 0:3으로 진 것 때문에 놀랍게도 청문회까지 했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브라질이 8강에서 프랑스에 져서 탈락하자
호나우지뉴 동상이 파괴되기까지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월드컵 준우승 및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연속으로 기록하자
리오넬 메시를 축구 못한다고 깠던데다 잉글랜드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
데이비드 베컴이 퇴장 당해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패배하자 22명의 사자들과 하나의 멍청이라는 제목의 신문 헤드라인이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전세계가 그런다고 똑같은 짓을 옹호하지는 말자. 막상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패배 선수들을 징계한다고 하자 미개하다 했으면서 우리나라가 스웨덴전에서 패배하자 똑같이 징계 소리를 하는걸 보면...
[9]
당시 어린 나이였던
하석주는 심적 충격이 너무 커서 그 때문에 김호 전 감독에게 독일전을 못 뛰겠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왼발 킥을 엄청 연습해서 후에 왼발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다음 대회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전에서 그 왼발 프리킥으로 득점도 올렸으니 하석주 개인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 골을 넣은 직후 상대에게 백태클을 잘못해서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가린샤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가린샤 이후에 월드컵 경기에서 득점을 하고 퇴장 당한 선수는
하석주가 36년 만에 최초였다. 가린샤 클럽을 창시하는 주역(...)이 되기도 한 셈.
[10]
실제로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24강 본선에서 3무와 1승 1무 1패의 승점이 3점으로 같았으나 1994년부터 1승이 승점 3점으로 올라서 1승 1무 1패는 승점이 4점이 되고 1승 2패가 승점이 3점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3무로 실제로 16강 진출을 쟁취해낸 팀이 있었으나, 1994년 미국 월드컵 24강 본선에서 16강 진출 커트라인은 결국 승점 4점 이상이었다.
[11]
그러므로 만일 이 경기를 대한민국이 잡았다면 이탈리아의 해당 대회 준우승은 역사에 없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또한 대한민국은 당시 24강 조 3위 간 순위 결정을 통해 16강에 진출해 A조 1위 루마니아와 16강전을, 아르헨티나는 루마니아 대신 '''브라질과 16강전을
두 대회 연속으로 치르게 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