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3:45:31

2007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연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세기
19세기 20세기 21세기 22세기 23세기
밀레니엄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2007년
대한민국 89년
단기 4340년
불기 2551년
간지 병술년 ~ 정해
주체 96년
대만 민국 96년
일본 헤이세이 19년
( 황기 2667년)
이슬람력 1427년 ~ 1428년
히브리력 5767년 ~ 5768년
페르시아력 1385년 ~ 1386년
에티오피아력 1999년 ~ 2000년[1]
로마 숫자 MMVII

1. 개요2. 설명
2.1. 기후2.2. 7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나다2.3. 도시재생사업의 시작과 격변하는 한국2.4. 2007년 가요계: 2세대 걸그룹의 데뷔, 가요계의 과도기 시작
3. 문화
3.1. 리얼 버라이어티의 서막3.2. 화제가 많았던 서브컬처계3.3. 화제가 많았던 게임계3.4. 11년만의 400만 관중 시대를 연 프로야구3.5. 다사다난한 국내 축구3.6. 해외축구
4. 주요 사건 및 사고
4.1.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탈레반의 납치극4.2.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5. 사건
5.1. 실제
5.1.1. 1월5.1.2. 2월5.1.3. 3월5.1.4. 4월5.1.5. 5월5.1.6. 6월5.1.7. 7월5.1.8. 8월5.1.9. 9월5.1.10. 10월5.1.11. 11월5.1.12. 12월
5.2. 가상
6. 탄생
6.1. 실존 인물6.2. 가상인물
7. 사망8. 히트작
8.1. 드라마/시트콤8.2. 애니메이션8.3. 만화8.4. 특촬8.5. 영화8.6. 개그 코너8.7. 가요
9. 데뷔
9.1. 가수9.2. 배우9.3. 스포츠9.4. E-Sports9.5. 만화계9.6. 예능인9.7. 인터넷 방송9.8. 유튜버9.9. 치어리더
10. 유행어11. 최초
11.1. 방영 프로그램 및 코너
12. 출시 상품
12.1. 자동차12.2. 식음료
13. 그 외14. 관련 문헌15. 달력

1. 개요

2007년은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자 21세기와 제3천년기의 일곱번째 해다.

2. 설명

2007년 서울의 모습
이해 7월 26일 코스피지수가 처음으로 2000포인트를 넘었지만 하루만에 2000선 아래로 떨어졌다. 다만, 이해 10월에 2064포인트까지 올라가기는 했다. 이후 2010년 10월 다시 2000포인트 돌파. 참고로 사상 최고치는 2011년 1월 3일이 되어서 돌파했다. 또한 이 해 11월에 잼 프로젝트가 세계 진출을 선언했다. IMF 외환위기 10주년을 맞았던 해인지라 전문가들도 경제 상황에 주목하기도 했다.

60간지로 치면 정해년(丁亥年)인데, 한국에서는 600년 만에 찾아오는 "황금돼지해"라는 속설(물론 그 600년 전인 1407년도 정해년)이 퍼져서[2] 출산율이 전년도(1.13명)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1.26명) 여전히 낮긴 하지만 출생아 수는 49만 7천명을 기록하여 2002년생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였다.[3] 흑룡띠인 2012년생보다도 1만명 정도 많다. 자세한 내용은 2007년 출산 붐 문서를 참고 바람.

서울특별시는 이 해 4월 23일, 기존 백열등 형식의 신호등들을 2010년까지 LED로 전량 교체하겠다 밝혔다. # LED형 신호등은 시인성이 우수함과 동시에 절전 효과가 높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교체 본격화 이전인 2006년까지만 해도 서울시가 신호등 전기요금으로 26억 원 가량을 지출했으나 2007년부터 차츰 줄어들어 사업이 완료된 2010년에는 약 70%가 절감되어 연간 8억 원이면 신호등 전기요금을 지출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 역사에서는 이 해 연초 애플 iPhone을 공개함과 동시에 6월 출시하였고, 11월에는 최초의 구글폰인 HTC의 Dream(T-Mobile G1)에 안드로이드 1.0이 탑재됨으로써 안드로이드형 스마트폰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또한 LG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컬러 액정을 탑재한 감압식 풀터치폰인 프라다폰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터치 폰'(touch phone)의 시대도 도래하였다. 2010년대에 도래한 스마트폰 시대의 첫걸음이었던 셈.

강원도 평창군이 지난번에 이어서 2번째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하였지만 러시아 소치에 역전패를 당하여 또 한 번 유치에 실패하고 말았다. 평창은 이후 2011년에 유치에 성공해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르게 되었다. 반면에 중국 상하이에게 2010년 엑스포 유치전에서 참패를 했던 전라남도 여수시는 2번째 도전 끝에 2012년 여수 엑스포를, 대구광역시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인천광역시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그리고 영화계에서는 심형래가 제작한 디 워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화려한 휴가가 개봉하면서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의 논란이 벌어진 해였다.[4] 또한 배우 전도연 칸 영화제에서 영화 <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미얀마에서는 1988년 8888 항쟁 이래 최대인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승려들이 주도하여 사프론 혁명(Saffron Revolution - (승려들의 옷 색깔인) 연황색 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위도 군사정권의 강경진압으로 짓이겨져 실패로 끝났다.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이기도 하다. 사실 17대 대선은 참여정부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5] 최종 승자에 대한 관심보다는 한나라당에서 누가 후보가 될 것이냐에 더욱 포커스가 맞춰진 선거였다. 한나라당에서는 서울특별시장을 지냈던 이명박과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 당대표를 지냈던 박근혜가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마지막까지 경쟁했고, 경선 과정동안 서로 날센 네거티브를 주고받으며 선거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경선 결과는 간발의 차이로 이명박의 승리였는데, 박근혜 캠프 진영에서 부정선거 및 재개표를 주장하며 경선불복을 시사하기도 했다.[6]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나온 이명박의 위장전입 논란과 특검까지 발의된 BBK 의혹은 본선에 가서도 이어졌고, 막판에는 이회창이 급하게 선거에 출마하면서 3자 구도까지 만들어졌으나 결과는 이명박의 승리였다. 정동영은 이명박에게 530만표 차이로 대패했으며,[7] 15대 대선 이후 10년만에 민주당계 정당에서 보수정당으로 헌정사상 2번째 정권교체가 발생하였다.

VOCALOID계에선 크립톤 퓨처 미디어에서 하츠네 미쿠가 발매되었다. 지금까지 단순한 음악 소프트웨어가 불과한 VOCALOID는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가미네 린·렌이 발매되고 니코니코 동화 등도 인지도를 얻게 된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07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이었으며,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2007년 올해의 한자는 '僞(거짓 위)'였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국제기상기구에서는 이 해(2007년)부터 2008년까지를 '세계 극지의 해'로 지정했고, 방송계와 개신교계도 한국방송 80주년 및 한국교회 대부흥 100년을 각각 맞이하기도 했다.

구권 천 원권 지폐, 만 원권 지폐가 시중에서 사용된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당시 신권 지폐가 2007년에 나왔지만 유통량이 크지 않았던 탓에 유통 초기에는 구권 지폐와 신권 지폐가 혼용되었다.

이 해에 치러진 2008학년도 수능은 등급제로 등급만 나왔다.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듬 해 수능부터는 다시 점수제로 환원되었다.

주말에 겹치는 공휴일은 설날 연휴 첫 이틀[8], 어린이날 등 3개로 지난해보다 1일 줄었다. 그 당시에는 대체휴일이 없기도 했다.

2.1. 기후

겨울에 이상 고온이 심하였다. 그 밖의 계절은 고온이 심하지 않았고 대체로 평범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이며, 4월과 7월, 11월은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다만 1월, 2월, 12월의 이상 고온 여파가 심해서 결국 연평균기온 5위를 달성했다. 2007년 1월은 서울에서 영하 8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2월은 100년 기상관측 이래 최초로 2월 평균기온 4도 이상을 기록했다. 12월도 21세기 중에 서울 월평균기온이 두번째로 높고, 전국도 꽤 높았다.[9][10] 다만 3월 초에 며칠간 상당한 추위[11][12]가 왔었고, 여름은 비교적 선선해서 폭염이 딱히 없었다. 서울에서도 8월에 턱걸이로 폭염일수를 기록했다. 다만 6월에 폭염일수가 있어서 더웠다. 또한 이 해는 서울에서 한파일수가 없는 해이다. 이상 난동의 겨울과 심하지 않은 폭염으로 인해 서울의 연교차가 -8.6 ℃/33.2 ℃로 41.8 ℃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저치를 보였다.[13]

서울 기준 월별 평균기온은 다음과 같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서울 월평균기온(°C) 0.4 4.0 6.1 11.4 18.1 23.2 24.2 26.5 21.5 15.1 6.7 1.8 13.3
평년대비 편차(°C) 2.9 4.3 0.9 -0.7 0.7 1.3 -0.7 1.1 0.7 0.7 -0.2 1.6 1.1
연 최저기온 연 최고기온 연교차
-8.6 °C(0202) 33.2 °C(0618) 41.8 °C
[순별 기온/펼치기·접기]
단위: (°C)
평년대비 편차는 순별 평년으로 비교함
  • 1분기
1월 상순 1월 중순 1월 하순 2월 상순 2월 중순 2월 하순 3월 상순 3월 중순 3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1.1 -0.6 0.7 2.6 3.3 6.4 3.8 5.7 8.4
평년대비 편차 2.9 2.2 3.7 4.7 3.0 5.4 0.7 0.5 1.2
  • 2분기
4월 상순 4월 중순 4월 하순 5월 상순 5월 중순 5월 하순 6월 상순 6월 중순 6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8.4 11.1 14.5 17.1 16.8 20.2 21.2 24.7 23.6
평년대비 편차 -1.5 -1.0 0.2 1.3 -0.3 1.1 0.7 2.5 0.6
  • 3분기
7월 상순 7월 중순 7월 하순 8월 상순 8월 중순 8월 하순 9월 상순 9월 중순 9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23.6 23.5 25.3 26.0 27.1 26.3 21.4 22.8 20.5
평년대비 편차 -0.2 -1.1 -0.9 -0.1 1.2 2.1 -1.5 2.1 1.6
  • 4분기
10월 상순 10월 중순 10월 하순 11월 상순 11월 중순 11월 하순 12월 상순 12월 중순 12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18.2 13.7 13.5 10.5 5.3 4.4 1.0 1.9 2.3
평년대비 편차 1.3 -1.0 1.7 0.4 -1.6 0.7 -0.9 1.8 3.5

2.2. 7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나다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Large_115625.jpg
2007년 10월 2일, 퇴임을 불과 4개월 앞두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두번째 방북하여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영접을 받았다. 7년 만에 남과 북의 정상이 다시 만나 손을 맞잡았는데 김정일은 환영행사장인 평양 4.25 문화회관에 미리 도착해 노 대통령을 직접 영접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걸어서 넘었다.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남북의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노무현과 김정일은 다음 날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단독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 경제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KBS, MBC)


파일:external/keyframe.imnews.imbc.com/Large_230594.jpg
노무현과 김정일은 방북 마지막 날인 2007년 10월 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10개항의 평양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김정일은 노 대통령 방북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제안했다. 본인의 답방은 미뤘다. 남북은 해주일대를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로 만들어 공동조업을 허용하고 경제특구를 조성하기로 했다. 군사보장조치를 위해 7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국방장관 회담이 열렸다. 남북은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남북한과 미국 등 3-4개국 정상들이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백두산과 서울을 잇는 직항로가 개설되고 중국을 거치지 않고 3-4시간 만에 백두산에 도착해 관광을 즐길 수 있게 됐다.( KBS, MBC) 그러나 이러한 남북 화해의 분위기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그해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물거품이 되었다지만 10년 뒤에 다시 이뤄졌다가 북측이 2020년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별 성과없는 정상회담이 되었다.

2.3. 도시재생사업의 시작과 격변하는 한국

2006년 5·31 지방선거로 인해 2002년부터 시작된 민선 3기가 끝이 나고 민선 4기가 출범되면서 이 해는 2007년 ~ 2010년 사이 실시된 도시개발사업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희망으로 가득차있던 시대이다. 특히 서울시장 자리에 앉게 된 오세훈 시장이 전년도 9월 말에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발표함과 동시에 2007년 10월 11일 한강 수상택시 사업의 시행으로 첫 단추를 끼우면서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궤도에 접어들었다.[14] 2007년 6월 14일에는 '도심재창조 프로젝트 마스터플랜'이 발표되었으며 #, 이 프로젝트에는 그 유명한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건설, 서울 성곽 정비 사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대한주택공사의 도시재생사업단의 출범과 2007년 5월 '세계디자인총연합회'로부터 서울이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WDC)로 선정된 점, '창의문화도시'와 '컬쳐노믹스'의 등장, '여성이 행복한 서울 만들기' 프로젝트 시작, 120 다산콜센터 운영 등이 추진되었다.

지방으로 넘어가보면, 부산광역시는 ' 낙동강 하구 및 도심하천 환경 개선 사업'이 실시되었으며 시내버스 준공영제 시행과 북항 재개발 사업 확정, 전국 최대 광통신 자가망인 부산정보고속도로 구축 사업 등의 사업을 벌였고, 대구광역시는 대구문화재단 설립, 대구시립미술관 건립, 문화창작 교류센터 건립추진, 금호강 수질 개선 사업, 테크노폴리스 및 이시아폴리스 조성, 고속철도변 정비, 본격적인 동대구역세권 개발 추진 사업 등의 사업을 벌였으며, 광주광역시는 영산강 수계 오염총량관리제 시행과 금남공원 완공, 광주호 주변 호수생태원 조성, 용봉천과 합류되는 두물머리 나루에 서석대를 상징하는 인공폭포 건립 등을 시행함으로써 생태도시로 변모하였다. 대전광역시는 신국토계획 체계에 의한 택지개발사업,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 도시재정비촉진사업 등을 추진함과 동시에 '2020년 대전권광역도시계획' 확정 및 '2020년 대전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였고, 불합리한 도시계획 정비 및 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 수립 등 창조도시 대전의 기틀인 중·장기 도시계획을 수립 추진하였다. 울산광역시도 생태도시 건설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등 박차를 가하였다.

2.4. 2007년 가요계: 2세대 걸그룹의 데뷔, 가요계의 과도기 시작

2007년 히트곡 무대 모음 2007년 지상파 음악프로 1위곡 모음

2007년 가요계에서는 여전히 발라드/R&B가 지배하던 상황 속에서 상반기에 가수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15]와 여성그룹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댄스곡 ' 한번 더, OK?'로 돌풍을 일으켰고, 천상지희 The Grace는 데뷔 2년만에 댄스곡으로 지상파 음악방송 순위권에서 1위를 하여 정상에 올라 큰 인기를 끌던 해였다. 또한 지난해 연말에 일본에서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모습을 보인 신인가수 윤하 비밀번호 486이 대히트를 치기도 했다. 이해 막판에는 BIGBANG, 원더걸스가 각각 2007년 후반 최고의 히트곡인 ' 거짓말'과 ' Tell Me'를 발표했고, 이 노래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가요계는 발라드에서 아이돌로 중심축이 넘어가는 과도기가 시작된다.[16] 이 해는 한국에 걸그룹 열풍을 몰고 온 3대 걸그룹 원더걸스(2월 10일 데뷔), 카라(3월 29일 데뷔), 소녀시대(8월 5일 데뷔)가 한꺼번에 데뷔한 해이기도 하다.[17] 그리고 비운의 걸그룹 오소녀도 본래는 이 해에 데뷔할 예정이었다. 특히 원더걸스가 9월 ' Tell Me'에서 선보인 안무는 '국민 응원춤'이 됐는데, 이를 증폭시킨 건 미국에서 음반작업 중이던 박진영이 보낸 '원격 안무지도' 덕이었다.
원더걸스 - Tell me 빅뱅 - 거짓말
현재 이들보다는 주목을 덜 받지만 이 해에 한국 아이돌 밴드의 대표주자인 FT아일랜드도 데뷔하면서 SG워너비와 함께 몇 안되는 발라드 장르의 자존심을 지켜나갔다. 그러나 음반시장은 1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가수가 SG워너비, 에픽하이, 슈퍼주니어 이 세 팀밖에 존재하지 않았을 정도로 불황이 더욱 가속화되던 시기이고, 정규 CD음반 대신 디지털 싱글이나 싱글/미니음반이 메인스트림이 됐다. 당시 주 무대가 BIGBANG 거짓말[18] 원더걸스 Tell Me[19] 등 아이돌들의 메가히트곡들의 탄생으로 가요계의 메인 스트림이 음원시장으로 빠르게 바뀌어 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BIGBANG 원더걸스 뿐만 아니라 9인조 걸그룹 ' 소녀시대'의 ' 다시 만난 세계'와 ' 소녀시대' 두 음반도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이 해에 에픽하이 MKMF 올해의 앨범상, SG워너비 골든디스크 시상식 음반부문 대상, 아이비 골든디스크 시상식 디지털음원부문 대상, 멜론 뮤직 어워드 올해의 뮤직비디오상 수상 이후 비아이돌 가수들의 대상 수상은 2년 후인 2009년부터 현재까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20] 그리고 이 2007년에 빅뱅 원더걸스가 본격적으로 대세 자리에 오르고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YG JYP가 크게 성장을 하게 되었고, 전통의 강자였던 SM과 함께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3대 기획사 체제를 완성한다.

한편, 이해 여름엔 2000년 이후로 방송에선 더 이상 보이지 않던 박명수 바다의 왕자가 다시 한 번 유행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주행 현상은 2007년 5월 하나마나 특집 2탄 당시, 박명수가 연세대학교에서 바다의 왕자를 부른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당영상 13분 2초 참고 하나마나 특집 당시에 부른 바다의 왕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자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박명수는 2007 부산 바다축제 때 또 한 번 바다의 왕자를 불렀다. 해당 영상 2007년 여름엔 아이돌 그룹 LPG가 ' 바다의 공주' 앨범을 냈다.

기성 가수들 중에선 박진영 윤상, 토이 등 X세대들의 우상들이 건재를 과시했고, 90년대 후반 '여고생 가수' 신드롬을 일으킨 양파가 오랜만에 1위를 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도 데뷔 15주년을 기념해 피자 라지박스만한 상자에 CD 10장짜리 앨범을 묶어서 한정판으로 내 팬들의 가슴에 불을 붙여 광속 매진을 달성했다. 이 앨범의 희소성 때문인지 옥션 같은 경매사이트에선 몇백, 몇천만원까지 오를 정도였지만 2009년에 이를 바탕으로 한 정규 음반 1~7집 리마스터링판을 내서 해결시켰다.

3. 문화

3.1. 리얼 버라이어티의 서막

한국 방송계에서는 무한도전이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면서 1년 내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1박 2일도 이 해 후반에 준비됐어요 후속으로 처음 등장했지만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이듬해인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서 한국 예능계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반면에 X맨 여걸식스는 전년도에 이은 하향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해 4월과 2008년 5월에 각각 폐지되어 버렸고, 전체적으로 스튜디오 진행 예능들이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던 해였다. 그리고 이 해에는 SBS 연예대상이 처음으로 신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지상파 3사 모두 연예대상을 동시에 진행하게 된 첫 해이기도 하다.

SBS 연예대상의 첫 대상 수상자는 강호동이었고, MBC 방송연예대상에서는 유재석이 다른 무한도전의 팀원들이었던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그리고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전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이순재와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이 해를 기점으로 2011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는 유강체제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이 유강체제를 통해 연예대상도 2010년까지 방송3사에서 연기대상, 연말 가요제 못지 않는 화제성과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보다는 아니지만 KBS 연예대상에서는 상상플러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신정환과 함께 큰 활약을 보여준 탁재훈이 대상을 수상하였다.

3.2. 화제가 많았던 서브컬처계

한국 웹툰계에서는 정열맨으로 유명해질 귀귀 최의민이 나왔으며, 애니메이션계에도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라라의 스타일기, 다오 배찌 붐힐 대소동, 태극천자문이 나와 중박 정도를 냈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는 작년처럼 한일 양국을 막론하고 각종 화제작들이 연이어 방영되거나 출시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해이다. # # 그 중에서 2분기가 가장 화제작들이 몰려있었는데 세토의 신부, 럭키☆스타, 지어스,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StrikerS, 엘 카자드,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 클레이모어, 소녀왕국 표류기, 로미오X줄리엣, 강철신 지그, DARKER THAN BLACK -흑의 계약자-, 꼬마여신 카린, 크게 휘두르며, 괴물왕녀, sola, 정령의 수호자, 러브 콤플렉스, 지구로, 천원돌파 그렌라간, 게게게의 키타로, 하야테처럼!, 히로익 에이지 등의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들이 한꺼번에 방영되었다. 그리고 4분기에도 렌탈 마법사, 미나미가, 수신연무, 뱀부 블레이드, 스케치북, 역경무뢰 카이지, 마인탐정 네우로, 현시연 2기, 드래고너트 -더 레조넌스-, Myself; Yourself, 고스트 헌트, 체포하겠어 3기, CLANNAD, 작안의 샤나 Ⅱ, 모야시몬, 아이들의 시간, 수호캐릭터, 기동전사 건담 00, ef - a tale of memories., 키미키스 등 2분기 못지않게 큰 화제작들이 한꺼번에 방영되었다.

그 외에도 다른 분기의 학원 유토피아 마나비 스트레이트!, 히다마리 스케치, 노다메 칸타빌레, 메이저 3기, SHUFFLE! 2기, Yes! 프리큐어 5, 제로의 사역마 2: 쌍월의 기사, 무시우타, 건강 전라계 수영부 우미쇼, 스쿨데이즈, 좀비론, 모노노케, 바카노!, 쓰르라미 울 적에 2기, 안녕 절망선생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TVA뿐만 아니라 OVA도 기존의 인기작들이자 화제작들이었던 오늘부터 마왕, 딸기 마시마로, 사쿠라 대전, 테일즈 오브 심포니아, 박살천사 도쿠로, 오! 나의 여신님 등의 작품들과 도쿄 마블 초콜릿과 같은 새로운 작품들도 많이 등장하였다. 기존 작품들 중 원피스는 워터세븐편 후반기 애니화와 고잉메리호 퇴역, 프랑키의 밀짚모자 일당 합류 등으로 팬들에게 임팩트를 선사했으며, 가히리 애니판도 고쿠요~vs. 바리아편 애니화로 팬덤이 폭증했다.

또한 이 해에는 극장판도 각종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노비타의 신 마계대모험 ~7인의 마법사~, 죠죠의 기묘한 모험 팬텀 블러드(극장판), 초속 5센티미터, 작안의 샤나 극장판, 키노의 여행 극장판, 태풍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 감벽의 관, 디아루가 VS 펄기아 VS 다크라이, 지니어스 파티, 피아노의 숲, 에반게리온: 서, 스트레인저 무황인담, 극장판 공의 경계, Yes! 프리큐어 5 극장판, 블리치 극장판 2기 등의 작품들이 연이어 이해에 개봉하였다.

또한 이 해에는 현재까지도 일본 서브컬처계 음악의 한 축을 맡고 있는 하츠네 미쿠가 출시된 해이기도 하다. 이 해를 기점으로 VOCALOID 문화가 급성장하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니코동의 큰 축 중 하나인 MMD 영상 역시 미쿠로 인해 탄생한 것이다.

동방 프로젝트에서는 동방삼월정의 1기 단행본이 발간되었고, 동방맹월초의 연재가 시작되었다. 3부작 풍지성 중 첫 번째 작품인 동방풍신록 ~ Mountain of Faith.이 출시되었고, 앨범 요악단의 역사 4, 5가 나왔다. 한편 동방 프로젝트의 제작자인 ZUN이 제작에 참여한 황혼주점이라는 작품도 나왔다.

이 해를 기점으로 2쿨 애니가 늘고 4쿨 애니가 줄면서 일본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타격을 심하게 받았다. 아동용 시리즈물을 제외하고 1~2년 정도 방영하던 정기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작품 수가 줄면서 영향력이 축소되거나 아니면 찬밥신세를 겪었다. 마찬가지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중성과 작품성도 변하기 시작하면서 침체기에 빠져들기 시작한 시기도 이 해 전후이다.

9월 9일, 픽시브가 개설되기도 하였다.

3.3. 화제가 많았던 게임계

한편 게임계에서는 한국닌텐도가 출범해 닌텐도 DS를 출시하였고,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코리아에서도 플레이스테이션 3을 출시하였으며, 플레이스테이션 2는 90000번대, PSP는 2000번대가 출시되었다. 그리고 FPS마니아들이 가장 행복했던 한 해였다고 할 수 있는데 FPS사에 남을 만한 명작들이 쏟아진 해다. 바이오쇼크,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 포탈, 헤일로 3, 매스 이펙트, 크라이시스로 양적으로도 많고 질적으로도 평균적으로 훌륭했으며 컨셉들도 다양한 편으로 FPS내의 세부 취향으로도 선택권이 많았던 해로 남았다.

한편 e스포츠계에서는 2004년에 이어 가장 화제거리가 많았던 해로 기억되는데 당시 본좌라 불리웠던 마에스트로, 프로토스의 대재앙라는 별명을 가진 마서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곰TV MSL 시즌1에서 살인적인 일정과 저그에게 불리한 맵들, 역상성 종족인 테란과의 여러번의 다전제라는 불리한 조건들을 모두 극복하고 양대리그 동시 결승 진출에 성공하고 이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상대로 세트스코어 3:1에 경기내용적으로 무참하게 짓밟아버리며 첫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과 동시에 로열로더 우승을 기록하면서 절대본좌에 등극하였지만 이후 1주일 후 정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신예 프로토스 플레이어 김택용 곰TV MSL 시즌1 결승전에서 당시 프로토스의 대재앙이라 불린 마재윤을 상대로 3:0으로 승리하면서 우승을 차지하는 3.3 혁명을 일으키면서 생애 첫 MSL 우승 및 로열로더 우승을 기록하게 된다. 이를 통해 김택용은 프로토스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었고, 이후 택뱅리쌍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시작점이라고 평가받게 된다. 그리고 김택용은 곰TV MSL 시즌2에서도 송병구를 상대로 3:2로 승리를 차지하며 2연속으로 우승하게 되고, 곰TV MSL 시즌3에서도 프로토스 최초로 MSL 및 단일리그 3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하고 준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12월에는 EVER 스타리그 2007 3위를 차지하며 최초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4강 진출에 성공한다.

또한 같은 해 7월에는 Daum 스타리그 2007 결승전에서 김준영 변형태를 상대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사상 최초로 결승전에서 0:2에서 3:2로 역전 우승을 달성하는 리버스 스윕 우승을, 그것도 저그가 역상성 종족인 테란을 상대로 달성하면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들 외에도 곰TV MSL 시즌3에서 당시 31번 시드를 가지고 있던 신예 테란 박성균이 결승전에서 김택용을 상대로 마패관광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로열로더 우승과 동시에 역대 MSL 최연소 우승을 기록하고,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리그에서는 에이스였지만 개인리그에서는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았던 이제동 EVER 스타리그 2007 결승전에서 송병구를 상대로 3:1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하고 로열로더를 기록한다. 한편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는 1월에 MBC GAME HERO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결승전과 SKY 프로리그 2006 통합 챔피언전에서 각각 CJ 엔투스, SK텔레콤 T1을 차례대로 꺾으며 팀 사상 최초로 프로리그 우승 및 통합 챔피언전, 팀단위대회 최초 우승을 기록하였고, 삼성전자 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에서 팀 사상 최초로 프로리그 우승을 기록하였고, 르까프 오즈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결승전에서 팀 사상 최초로 프로리그 및 팀단위대회 준우승을 차지한다. 또한 SK텔레콤 T1 SKY 프로리그 2006 통합 챔피언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해 3월에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가 터져버리면서 본격적으로 한국e스포츠협회에 대한 팬들과 방송사들간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이후 주5일제와 엔트리 예고제가 도입되지만 훗날 이 두 제도는 훗날 대한민국 e스포츠 최악의 승부조작 사건에 크게 영향을 미쳐버린다.

거기에 대회들도 이전과는 다르게 그래픽이든 방송 형태든 바뀐 점이 많이 보였는데 먼저 온게임넷 스타리그 Daum 스타리그 2007부터 오프닝을 비롯해 자막 그래픽 패키지가 바뀌면서 매회 다른 컨셉의 오프닝과 자막효과로 화제를 모았고, 맵 소개시 3D로 보여주는 등의 눈길을 끌게 만들기도 했다. 리그 방식은 2006년의 24강 조별리그 본선 방식에서 다시 16강 조별리그 본선 방식으로 회귀하였다. 그리고 MSL 곰TV MSL 시즌2에서 공식전 경기 최초로 실시간 시간 카운팅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비롯하여 전체적인 자막 그래픽 패키지가 변경되고, 추후 온게임넷도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실시간 시간 카운팅 시스템과 자원, 인구수 카운팅 시스템을 도입한다. 또한 MSL은 곰TV MSL 시즌2부터 32강 원데이 듀얼 본선 체제로 확장된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또한 로고가 변경되었으며 온게임넷 MBC GAME에서의 방송 그래픽 패키지도 크게 변경되었다. 거기에 이 해부터 본격적으로 공군 ACE가 창단되어 2010년까지 12개 프로팀 체제로 거듭나게 된다.

반면으로 이 시점부터 기존 올드 게이머들의 몰락이 시작된 반면에 드래프트 세대 게이머들의 본격적인 도약이 시작된 해다. 이윤열이나 박성준은 꾸준히 개인리그 본선에는 진출했지만[21], 박태민 서지훈은 이해에 개인리그 4강을 가면서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2008년부터는 하락세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홍진호, 박정석은 개인리그 본선에 자주 진출조차 하지 못하고 프로리그 개인전에서도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는 등 2007년에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22] 임요환, 최연성, 강민, 박용욱도 2007년을 마지막으로 개인리그에서는 보기 힘들어졌고 프로리그에서도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23] 결국 강민도 2008년 이후로는 해설자의 길로 전향하고, 최연성, 박용욱은 코치의 길로 전향하였다. 또한 조용호는 이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그리고 2008년부터 택뱅리쌍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나서부터는 올드 게이머들은 기량차이를 좁히기 힘들어졌다.

이후 2008년부터는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로 인해 프로리그에서는 지나친 경기 수 증가와 개인리그에서는 인기가 많았던 올드 게이머들의 은퇴 및 부진 가속화로 인한 본선진출 실패로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의 인기는 이전 1999년부터 2007년까지의 시기와는 다르게 서서히 하향세를 겪게 된다.

3.4. 11년만의 400만 관중 시대를 연 프로야구

프로야구는 1998년 IMF 이후 극심한 암흑기를 겪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200만 관중을 5년 연속으로 찍는 등 매우 암울했던 시기였다. 그나마 2005년과 2006년은 300만 관중이었지만, 2006년은 WBC 4강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관중이 주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2007년에는 4,104,429명이라는 1996년 이후 11년만의 400만 관중을 기록했다. 그 이유를 들자면, 롯데가 일단 2005년 이후 탈꼴찌를 기록해서 사람들이 다시 야구장으로 발길을 돌린 점이 있고, 이대호라는 스타플레이어의 탄생도 한몫했다. 한화도 류현진이라는 스타가 등장해서 한화 팬들을 야구장으로 다시 오게끔 만들었다. LG도 이 시기에 5등을 기록해서 흥행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SK 와이번스의 급부상이다. 김성근 감독 취임 이후 전력이 업그레이드되어 그해 창단 이래 최초의 우승을 기록했다. 거기에 관중도 SK는 전년대비 32만이나 증가하는 쾌거를 보였다. SK의 실력과 스포테인먼트라는 팬 친화적인 행보를 보인게 컸다. 대표적인 것이 이만수 코치의 팬티 세레머니. 올스타전도 대박이었던게, 이택근의 인사이드 파크호텔[24], 정수근의 헐크호건 세레머니, 우규민-강민호의 재미있는 벤클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이 해에 김광현이라는 새로운 얼굴도 등장했고,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엄청난 호투를 보였다. 안타까운 점은 현대 유니콘스가 KBO리그에 구단으로 활동하며 경기를 치렀었던 마지막 해였다. 현대 유니콘스는 2007년 10월 5일,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2008년 1월 7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은 2008년 새로 창단된 우리 히어로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3.5. 다사다난한 국내 축구

K리그에서 종전의 전기리그-후기리그 제도가 폐지되고, 6강 플레이오프가 도입되었다. 정규리그는 전통의 강호 성남 일화가 우승했지만 정작 챔피언결정전은 정규리그를 5위로 마쳤던 포항 스틸러스가 도장깨기에 성공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돌풍의 팀은 박항서가 이끈 경남 FC로 까보레, 뽀뽀, 산토스 등의 활약의 힘입어 공격축구를 펼치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한편 4월 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슈퍼매치에서는 총 55,297명의 관중이 들어오며 K리그 최다관중 기록을 세웠다.

국가대표팀은 이해 다소 아쉬운 성적을 냈다. 출범한 지 1년 된 베어벡호 2007 AFC 아시안컵에서 3위로 마감하기는 했지만 1승 4무 1패에 3득점 3실점이라는 성적에 조별예선에서 바레인 쇼크까지 겹쳐 경기내용은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프리미어리거 박지성, 설기현, 이영표가 한꺼번에 부상으로 낙마한 것이 뼈아팠고, 설상가상으로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룸살롱 음주파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우성용, 김상식, 이동국, 이운재가 징계를 받았다. K리그 구단들과 국가대표팀 간 선수 차출 관련하여 갈등의 골이 깊어 올림픽 대표팀 감독까지 겸임하던 베어벡 감독은 아시안컵을 마치고 사퇴했고, 2007년 하반기에는 아예 A매치가 열리지 않았다.

박성화가 맡은 올림픽 대표팀도 졸전의 연속이었다.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3연승 이후 3연속 0-0 무승부로 가까스로 본선에 성공했지만 경기 내용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 유명한 기성용의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라는 발언도 여기에서 나왔다.

청소년 축구대표팀에서는 U17 월드컵과 U20 월드컵에 나섰으나, 둘 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특히 한국에서 개최된 U17 월드컵에서는 페루와 코스타리카에 첫 두 경기에서 무득점으로 패배하며 마지막 경기 토고전에서 이겼음에도 조 3위 6팀 중 꼴찌로 탈락했다. U20 월드컵에서는 한창 주가를 높이던 알렉산드르 파투가 이끈 브라질에 2-3으로 석패했으나 미국과 폴란드에 무승부에 그치며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3.6. 해외축구

2006-07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 EPL 팀 3팀을 배출하여 EPL이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기 시작했다. 특히 8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세리에 A의 강호 AS 로마를 7-1로 꺾은 것은 해축 팬덤에 충격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작 우승은 준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꺾고 아테네에서 열린 결승에서 리버풀 FC를 2-1로 꺾고 2년 전 이스탄불에서의 패배를 복수한 AC 밀란의 몫이었다. 그 중에서도 밀란의 최고 에이스 카카는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해 FIFA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됐다. UEFA컵에서는 세비야 FC가 글래스고에서 열린 결승에서 RCD 에스파뇰을 승부차기로 꺾고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유망주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가 팀의 주축으로 성장하며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기 시작한 해이다.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리빌딩에 성공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2002-03 시즌 이후 4시즌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박지성은 한국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됐다. 지난 두 시즌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이었던 첼시 FC는 칼링컵 및 FA컵을 우승하며 아쉬움을 만회했으나 주제 무리뉴 감독이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와의 불화로 2007-08 시즌 초반에 첼시와 결별하며 충격을 주었다. 리버풀 FC 아스날 FC가 3,4위를 차지하며 빅4 체제를 공고히 했다. 토트넘 홋스퍼 FC 에버튼 FC, 볼턴 원더러스 FC가 UEFA컵에 진출했으며, 승격팀 레딩 FC가 구단 역사상 첫 프리미어리그 시즌에서 8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2부리그인 챔피언십에서는 왕년의 강팀 리즈 유나이티드 FC는 3부리그인 리그 1으로 강등당했다. 2003년 첼시, 2005년 맨유, 2006년 포츠머스 FC 아스톤 빌라 FC,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에 이어 이번에는 맨체스터 시티 FC 리버풀 FC가 각각 태국의 탁신 친나왓과 미국의 조지 질레트 & 톰 힉스 등 해외 자본에 인수되며 프리미어리그 내 외국계 자본의 유입 러시가 가속화되었다.

라리가에서는 레알 마드리드 CF가 2002-03 시즌 이후 4시즌만에 우승하며 바르샤의 독주체제에 제동을 걸었다. 데이비드 베컴이 MLS의 LA 갤럭시로 이적하여 화제를 모았다.

세리에 A에서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칼초폴리로 얻게 된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2연속으로 스쿠데토를 획득하게 된다. 한편 세리에 B로 강등당했던 유벤투스 FC는 1년만에 재승격에 성공했다. 재정난 및 파산으로 세리에 A에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SSC 나폴리도 승격한 해였다.

분데스리가에서는 VfB 슈투트가르트 FC 바이에른 뮌헨을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돌풍을 선보였다.

UEFA 유로 2008 지역 예선에서 잉글랜드가 크로아티아, 러시아에 밀려 조3위로 충격적인 탈락을 당했다. 이는 잉글랜드 FA에서 '프리미어리그 25인 로스터제'를 도입하여 자국 유망주 육성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2007 AFC 아시안컵에서는 이라크가 전쟁의 아픔을 딛고 첫 우승에 성공했다. 2007 코파 아메리카 베네수엘라에서는 브라질이 숙적 아르헨티나를 결승에서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4. 주요 사건 및 사고

4.1.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탈레반의 납치극


2007년 7월 19일, 단기 선교 활동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방문 중이던 분당 샘물교회 교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탈레반은 수감자들과 인질의 맞교환을 내걸며 한국 정부를 압박해오다 7월 25일 배형규 목사, 7월 31일 심성민 선교사를 각각 살해하며 한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탈레반, 인질 한 명 추가 살해" 한국 정부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탈레반에게 거액의 달러를 지불하였으며, 탈레반에게 붙잡힌 나머지 21명 모두 8월 30일에 석방되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인질들을 모두 풀어준 탈레반은 AP통신과의 통화에서 한국인 납치가 매우 성공적이었다며, 아프가니스탄의 동맹국 외국인들을 또 납치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어 탈레반은 몰락한 무장세력에 불과했던 탈레반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부각시켰다며 자축하는 분위기였으며, 탈레반의 사령관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이번 인질사건은 자신들의 전략적 승리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탈레반 "아프간 동맹국 외국인 계속 납치할 것"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2.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 바다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로 크레인선 '삼성 1호'와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 호'의 충돌로 촉발되었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사건

5.1. 실제

5.1.1. 1월

5.1.2. 2월

5.1.3. 3월

5.1.4. 4월

5.1.5. 5월

5.1.6. 6월

5.1.7. 7월

5.1.8. 8월

5.1.9. 9월

5.1.10. 10월

5.1.11. 11월

5.1.12. 12월

5.2. 가상

6. 탄생

황금붉은돼지띠로 전년 대비 출산율이 10% 이상 올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88년~2000년대 출생자 중 유일하게 분리되지 않은 연생이다.

6.1. 실존 인물

6.2. 가상인물



파일:CC-white.svg 이 탄생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0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탄생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0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7. 사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2007년/사망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8. 히트작

8.1. 드라마/시트콤

8.2. 애니메이션

8.3. 만화

8.4. 특촬

8.5. 영화

8.6. 개그 코너

8.7. 가요

9. 데뷔

9.1. 가수

9.2. 배우

9.3. 스포츠

9.4. E-Sports

9.5. 만화계

9.6. 예능인

지난해 공개 코미디의 활황세에 힘 입어 3사를 통틀어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이 개그맨으로 데뷔했다.[59] 그러나 1년 만에 코미디 열풍이 꺼지면서 KBS 22기와 일부 MBC 16기를 제외한 나머지 개그맨들은 설 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MBC, SBS 개그맨 중 일부는 KBS 공채로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9.7. 인터넷 방송

9.8. 유튜버

9.9. 치어리더

10. 유행어

11. 최초

11.1. 방영 프로그램 및 코너

12. 출시 상품

12.1. 자동차

12.2. 식음료

13. 그 외

14. 관련 문헌

15. 달력

1월 2월 3월
1 2 3 4 5 6 1 2 3 1 2 3
7 8 9 10 11 12 13 4 5 6 7 8 9 10 4 5 6 7 8 9 10
14 15 16 17 18 19 20 11 12 13 14 15 16 17 11 12 13 14 15 16 17
21 22 23 24 25 26 27 18 19 20 21 22 23 24 18 19 20 21 22 23 24
28 29 30 31 25 26 27 28 25 26 27 28 29 30 31
4월 5월 6월
1 2 3 4 5 6 7 1 2 3 4 5 1 2
8 9 10 11 12 13 14 6 7 8 9 10 11 12 3 4 5 6 7 8 9
15 16 17 18 19 20 21 13 14 15 16 17 18 19 10 11 12 13 14 15 16
22 23 24 25 26 27 28 20 21 22 23 24 25 26 17 18 19 20 21 22 23
29 30 27 28 29 30 31 24 25 26 27 28 29 30
7월 8월 9월
1 2 3 4 5 6 7 1 2 3 4 1
8 9 10 11 12 13 14 5 6 7 8 9 10 11 2 3 4 5 6 7 8
15 16 17 18 19 20 21 12 13 14 15 16 17 18 9 10 11 12 13 14 15
22 23 24 25 26 27 28 19 20 21 22 23 24 25 16 17 18 19 20 21 22
29 30 31 26 27 28 29 30 31 23 24 25 26 27 28 29
30
10월 11월 12월
1 2 3 4 5 6 1 2 3 1
7 8 9 10 11 12 13 4 5 6 7 8 9 10 2 3 4 5 6 7 8
14 15 16 17 18 19 20 11 12 13 14 15 16 17 9 10 11 12 13 14 15
21 22 23 24 25 26 27 18 19 20 21 22 23 24 16 17 18 19 20 21 22
28 29 30 31 25 26 27 28 29 30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그레고리력 2007년 9월 11일이 에티오피아력의 2000년 1월 1일이다. [2] 사실 2007년은 붉은돼지해. 당시에도 잘못된 정보임을 지적하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미디어와 업계의 호들갑으로 인해 사장되었다. [3]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50만명의 벽은 넘지 못했다. [4] 디 워의 경우 흥행은 성공했으나, 작품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평가가 극명히 갈리고 있다. [5]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의 지지율은 준수했지만,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복구 불가 수준이어서 사실상 집권 연장의 가능성은 없었다. 급기야 열린우리당은 임기 말, 자신들의 정치적 이미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노무현을 탈당 권유를 빙자해 사실상 내쫓았다. 이는 정동영이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가 된 이후에도, 노무현이 그에 대한 명확한 지지를 끝내 꺼리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6] 다만 박근혜가 승복연설에서 지지자들을 다독이고, 선거운동 시즌이 시작되자 명목으로나마 이명박을 지지하는 의사표현을 하면서 마무리지었다. [7] 선거가 끝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년하례회에서 "내 생애 민주세력이 이렇게 처참하게 진 건 처음이었다"며 한탄을 하기도 했다. [8] 2006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설날 연휴 3일 중 2일이 주말과 겹쳤다. [9] 이 고온 현상은 다음해 1월까지 이어졌다가 2월에 한파가 찾아왔다. [10] 훗날 2020년의 날씨는 10월까지 2007년과 거의 일치했다. [11] 서울이 3월 6일 최저 -7.6℃, 최고기온도 -1.6℃. 중부 지방에선 -10℃ 이하도 기록하고 부산까지도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등 아예 한겨울 날씨였는데, 3월 기온으로는 21세기 최저 2위이며 과거에서 이보다 추운 3월 날씨를 찾으려면 1985년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 심지어 이해 겨울은 이상 난동이어서 연 극값도 -8.6℃ 에 불과했는데도 그렇다. [12] 2024년이 이해 3월과 비슷했다. 월초에는 강력한 꽃샘추위가 찾아오며 추웠지만(특히 2024년 3월 2일에 무려 -8.1°C까지 떨어지며, 이해가 갖고 있던 21세기 3월 최저 극값 기록을 17년만에 경신하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고온이 심해지며 결국 월평균은 평년보다 높았다. 그러나 반대로, 이해는 4월 들어 뒤늦은 꽃샘추위가 찾아오며 4월은 전반적으로 쌀쌀했지만, 2024년은 4월에 역대급 이상 고온을 보이며 1998년의 월평균기온 기록을 26년만에 경신했다. [13] 역대 최고치는 1931년으로, -22.5 ℃/36.0 ℃로 무려 58.5 ℃이다. [14]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는 한강 수상택시와 반포대교 분수 설치, 인공 섬 조성, 잠수교를 보행자 전용 공간으로 교체하는 사업 등의 중요 사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15] 발라드곡 '이럴거면'도 히트쳤다. [16] 이 과도기는 대략 2008년까지 이어져서 이 해들의 연간 멜론차트에 SG워너비, KCM, 씨야 등 발라드 가수들과 BIGBANG,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 아이돌 그룹이 공존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2009년~2010년 이후 발라드 곡들은 연간차트에서 맥을 못 추다가 2018년 즈음부터 시작된 리메이크 발라드곡들이 발매되고 MSG 워너비로 정점을 찍은 복고 열풍이 불면서 간간이 순위에 랭크되고 있다. [17] 다만 카라는 2년 후에 뜨게 된다. [18] 이 곡도 2007년을 강타한 메가히트곡인데 하필 Tell Me 때문에 그해 콩라인을 먹은 비운(?)의 곡이다. 갤럽조사에서 2007년 올해의 가요부문에서 2위로 17.2%를 기록했다. 1위인 텔미가 두 배에 가까운 33.9%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를 얻었다. 이 17.2%도 다른 해의 1위(2012년 강남스타일 제외)를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인데, 2009년 소녀시대 Gee가 15%다. [19] 특히 이 곡은 신드롬이 불 정도로 전연령 국민들에게 인지도를 확보했으며, 이 곡으로 인해 가요계의 판도를 뒤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 2019년 기준으로 보았을 때 2009년부터 각종 가요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비아이돌 가수들은 싸이, 버스커 버스커, 조용필, 정기고 밖에 수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아이돌 그룹 혹은 아이돌 출신 솔로가수들이 2019년 현재까지 각종 가요시상식 대상들을 휩쓸고 있다. [21] 사실 이 두 선수도 2007년은 부진한 해로 볼 수 있다. 박성준은 2007년만 놓고보면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모두 부진하였고, 이윤열도 2007년 초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준우승, 신한은행 마스터즈 우승을 제외하면 2007년 전체는 부진하였다. 그나마 2008년에 박성준은 EVER 스타리그 2008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골든마우스를 획득하고, 이윤열 곰TV MSL 시즌4, Clubday Online MSL 2008에서 8강에 진출하면서 그나마 다른 올드 게이머들보다는 이 두 선수가 꾸준히 상위라운드에 진출하였다. [22] 그나마 박정석 Daum 스타리그 2007 8강까지 갔지만 그 뒤로는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개인전에서 계속 부진했다. [23] 그나마 임요환은 공군 시절에는 프로리그 개인전에서 5할 성적을 기록하였다. [24] 원래는 인사이드 파크홈런이 정답이지만 박노준 위원의 멘트가 워낙... [25] 국내에서는 동년 5월에 출시되었지만 통신사의 압박으로 몇 가지 기능이 빠졌다(...). [26] 처음 1000포인트를 돌파한 것은 1988년. 처음 1000포인트를 돌파한 지 19년이나 된 것. [27] ABS에 돈 넣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모든 돈을 날린 것이다!!! [28] 물론 이 날은 바로 다음 해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인해 다시 깨진다. [29] 말 그대로 무력 충돌이다. 사원을 지키기 위해 승려들이 , 을 들었다. [30] 미얀마가 천도를 하면서 양곤은 옛수도가 되었다. 만달레이도 옛 수도였다. [31] HDD로 사용된 기존 라인업으로는 6세대에 해당한다. [32]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사람을 풍자하는 말이다. 출전: 『주자어류』 외 다수 [33] 법적으로 처벌은 하지만 10년간 집행하지 않는 국가. 거꾸로 말하면 1997년엔 사형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사형집행은 1997년 12월 30일에 23명의 사형수에게 집행되었다. 인터뷰 다음 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제를 사실상 폐지할 것이었기에 몰아서 집행한 셈. 사형폐지국가선포식 준비위원회의 축하일은 10월 10일. # [34] 실제로도 2007년 5월호에 망가타임 키라라에서 연재가 시작되었다. [35] 기본 룰북의 무한세계 꼭지 기준 홈라인 연도 2024년, 노스트라다무스 연도 1599년, 프리드리히 연도 1214년. 무한세계 서플에서는 이보다 3년 정도 늦추어져 있다. [36] 작중에서는 24살이지만 미래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2007년생으로 2023년 기준 고등학교 1학년이다. [37] '보글보글 스폰지밥'으로 방영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칭함. [38] 뱀이다로 가장 유명한 노래이다. 참고로 이 노래는 1994년에 나왔지만 2007년 1박 2일에 기상송으로 나오면서 노래가 매우 유명해졌다. [39] 2007년 MKMF 올해의 노래상 수상곡 [40] 2007년 싸이월드 뮤직 연간차트 1위 [41] 2007년 서울가요대상 대상 수상곡 [42] 2007년 MKMF 올해의 가수상 수상곡 [43] 2007년 MKMF 올해의 앨범상 수상곡 [44] 2007년 멜론 뮤직 어워드 올해의 노래상 수상곡 [45] 2007년 멜론 연간차트 1위곡 [46] 14년 후 보라미유가 리메이크곡을 불렀다. [47] 14년 후에 리메이크되었다. [48] 2007년 골든디스크 디지털 음원 부문 대상 수상곡 [49] 2007년 골든디스크 음반 부문 대상 수상곡 [50] 한국 데뷔 기준, 1월 10일 중국에서 먼저 데뷔했다. [51] 현아가 이 때 데뷔했다. [52] 멤버 교체로 합류 [53] 데뷔 당시에는 'I The Tri Top'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54] 코요태, C2K 출신인 차승민과 친구 엘빈이 활동했던 그룹이다. 5개월만에 해체됐다. [55] 승무원 출신으로, 데뷔 당시 예명은 '샤인'. 2008년 요절. [56]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 3쿨 OP, 8/10/13쿨 ED을 불러 잠깐 화제가 된 록밴드. [57] 입단은 2006년에 했다. [58] 2007년 2차 1라운드로 들어오긴 했으나, 정작 2007년에는 패전조로 활약하고 2009년에 반짝하고 2014년부터 제대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59] KBS 22기 21명, MBC 16기 11명, SBS 9기 16명 [60] 하하가 무한도전에서 자주 사용하면서 무한도전 관련 유행어로도 분류된다. [61] 예: 안녕하셨쎄요?/식사하셨쎄요?/오셨쎄요? [62] 하하가 이 말을 하면 십중팔구 유재석이 “맞거든요~” 하고 받아친다. [63] 하하의 어머니.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