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07년 4월 17일 당시 나가사키시장이었던 이토 잇초가 암살당한 사건.2. 상세
3선을 마치고 4선 시장 선거 유세 중이던 2007년 4월 17일 이토 잇초는 야쿠자인 시로오 데쓰야에게 총격 피습을 당해서 다음날인 4월 18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기사 범인 시로오 데쓰야는 야마구치구미 계열 하부단체인 스이신카이(水心会)[1]의 회장 대행으로 드러났으며 5연발 리볼버로 시장을 암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출이나 자동차 사고를 두고 시장에게 협조를 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이에 원한을 품고 저지른 단독 범행으로 밝혀졌다.3. 사건 이후
사건 이후에는 범인에게 1심에서는 사형을 선고했지만 2심에서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범인은 2020년 1월 수감처인 오사카 의료감옥에서 72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스이신카이는 사건 이후 야마구치구미의 최고 지도부 긴급 회의에 따라 제적되었으며 해산되었다.[2]이토 잇초 시장의 유족에게는 국가배상이 이루어졌으며 종4위 욱일중수장이 추서되었다. 다만 시장선거에서 이토 시장의 사위가 대신해서 선거에 나섰으나 가족 세습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결국 시장 암살이라는 큰 사건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이때 이긴 다우에 도미히사 시장이 나가사키시 4선 시장을 역임했다.
4. 기타
공교롭게도 나가사키 시장에 대한 암살 시도는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이토 잇초가 승리를 거둘 당시의 시장, 즉 전임 시장이었던 모토시마 히토시 시장 역시 천황에게도 전쟁 책임이 있단 발언으로 극우 인사의 총격을 받아 암살당할 뻔했다. 당시엔 미수에 그쳐 살아남았지만. 모토시마 시장은 인터뷰에서 2대에 걸쳐 나가사키 시장이 총격을 받아 암살당할 뻔 하다니 이상하단 말을 남겼다.
[1]
2차 단체긴 하지만 갈등으로 인해 같은 야마구치구미 계열 하부 단체와 항쟁을 벌이기도 했고 세력이 그다지 크지 않아 2007년 당시 조직원 30명 규모의 조그마한 단체였다.
[2]
다만 나머지 젊은 조직원들은 와카가시라 기요다 다카노리를 중심으로 기요다카이라는 후계 조직을 만들었으며 후쿠오카의 야마구치구미 하부 단체인 이즈구미 소속으로 들어갔다가 2008년 내부 승격되어 다시 야마구치구미 2차 단체로 남았지만 버티기 어려웠는지 2010년에 다시 제적되어 해산되었고 나머지 젊은이들은 타이하쿠카이라는 조직을 새롭게 만들어서 이즈구미를 거쳐 야마구치구미 세키소카이 하부 단체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