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정이란 개념이 참 오묘하고, 독특하다. 영어, 불어 사전을 뒤져봐도 번역할 길이 없다”'
("The concept of affection is quite mysterious and unique. Even if you search in a French or English dictionary, there isn't a thing to translate.")
-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 1940년 ~ )[1]
("The concept of affection is quite mysterious and unique. Even if you search in a French or English dictionary, there isn't a thing to translate.")
-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 1940년 ~ )[1]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정서라고 주장되는 엉터리 개념.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표현으로 주로 '손님이나 구성원을 환대하거나 따뜻하게 챙겨주는 것', '내 사람을 호의적으로 대하는 행동과 심리 일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 정확히 정립된 뜻은 없다. 한국인 특유의 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타국과 구별되는 독특함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며, 설명을 하더라도 해당 내용은 이미 전세계 개발도상국에 폭넓게 존재하는 정서를 서술하는 결과가 나온다. 또는 ' 설명하지 못하는 미묘한 그 무엇'이라고 얼버무리면서 그것이 한국인의 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2. 전근대성
사실 '정'이란 것은 한국 뿐 아니라 전 근대 시대 지구상의 대부분의 농업국가에 존재했던 개념이다. 다만 조선의 경우는 타국들에 비해 이 것이 강한 편이었다.전제군주제가 오랫동안 성립되어 오면서, 중앙정부는 지방세력이 상업활동을 통해 부를 불리는 것을 경계하여, 시장경제를 억압하였고 대부분의 무역은 국가주도로 행하면서 완벽히 농본국가화 되어 국가의 백성들이 일정한 농업생산물만 바라보게 되었다. 농업의 발달과 주변국(일본,중국)에 비해 비교적 상당히 적은 세율을 유지하고 있던 조선의 백성들의 경제력은 근대 공산주의와 비슷한 하향평준화를 겪게 되었으며(잉여생산물을 지방 사족들이 몰수함), 춘궁기를 제외하면 최소한 굶어죽을 염려는 없는 조선인들은 모두가 동일한 수준의 경제력을 유지하면서 거의 '스머프 마을' 수준의 평등경제 체제를 유지해 왔다. 또한 조선인들은 공동체 문화에 기인한 결집 능력이 강해, 지주가 부당한 착취를 시도하면 무력시위등 여러 방법으로 대항해 근대 이전인 17세기에 소작농의 권리강화를 뒷받침 하는 '도지권'을 획득했다.
자연스럽게 공동농작 문화가 발달하였으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강력한 촌락, 마을단위의 집단의식은 공동체 문화와 평준문화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는 6.25전쟁 기간 중에 세계 최악의 민간인 학살률을 부추긴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쪽 촌락 사람이 빨갱이나 반동으로 몰려 죽으면, 두 촌락 사이에서 대량학살극이 일어나는 식의 사건이 전쟁기간 내내 벌어지곤 했으니...
외지인이 접근하면 이들을 마을 노동력 시스템에 끌어들이기 위한 '구애시도'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유교적인 예절과 맞물려 '인심좋은 한국인',즉 '정이 많은 한국인'을 만들었다. 이 모두가 철두철미한 농업국가였던 조선의 전근대 농업 시스템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3. 실체
애국심 고취를 강조하는 한국 정부와 일부 지식인의 주도로 생겨난 맥거핀이자 말장난.상술된 번역 불가능하다는 말은 말 그대로 실체가 불분명해서 그렇다. 정부와 일부 지식인이 억지로 한국만의 정서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개념. 한국인에게는 설명이 힘든 독특한 정이 있다라고 말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서양인이고, 그들은 자신이 한국에서 경험한 친절을 정의 근거로 삼고 있는데 서양인은 한국에서 대부분 따뜻한 환대를 받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이 받은 환대는 한국만의 정을 체험한 게 아니라 서양인에 한해 친절을 베푸는 한국의 정서를 체험했다고 봐야한다. 심지어 한국인의 정을 설파하는 지식인들끼리도 각자 설명하는 정의 개념이 다르다. 게다가 그들이 설명하는 정의 개념은 지식인 개인의 노스탤지어 혹은 그들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이타주의를 설파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한국인 특유의 병폐라고 지목 받는 '끼리끼리 친목질'의 병폐[2] 가 한국인만의 정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젊은 세대일 수록 ' 한국인의 정 ' 이라는 개념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타인의 개인사에 대해서 과도하게 신경을 써주고 호기심을 갖는 걸 '한국인의 정'이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도 있는데 이걸 그냥 다른 사람의 일상에 대입시켜보면 그런 짓은 그냥 오지랖이고 민폐다.
한국인의 정이란 이런 것이라고 설파하는 지식인들이 가장 많은 예로 드는 게 시골 사회의 밀접한 인간관계인데, 그냥 이건 한국만의 독특한 정서가 아니라 세계 어느 시골에나 비슷하게 형성되어 있는 정서이다. 더군다나, 시골 사회의 밀접한 인간관계가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 예도 있으며, 이경우 위 지식인들의 논리는 역으로 그 '정' 이라는 것이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과거 한국인의 정이라는 단어를 다른 나라보다 우월한 한국사람만의 특징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많았다. 대표적인 수사가 '한국인은 처음에는 무뚝뚝하지만 사귈수록 마음을 주는 정이 많은 민족이다.'라는 한국인 예찬론이다. 이 논리에는 사실 '어디어디 민족은 한국과는 달리 처음 만났을 때에는 사근사근해 보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를 힘들게 한다.'라는 타국 비하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대상은 일본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의사소통 진입장벽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보편적으로 있는 것으로 '한국인만의 특수함'은 아니며 그것을 '우수함'으로 분류할 수도 없다.
이 개념이 반일 이데올로기와 섞여 나온 다른 논리로 '한국인은 속과 겉이 일치하는 정이 있고 일본은 속과 겉이 다르며 사람간의 경계가 확실한 정이 없는 냉혈동물이다.'가 있다.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에는 '한국인이 한 그릇에 수저를 섞어가며 국을 함께 먹는 것을 일본인들은 비위생적이라고 싫어하지만 우리는 한국인의 정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반면 21세기로 접어든 현 시점에서 한국에서도 공공식당 등에서 국그릇에 숟가락을 섞기보다 개인그릇에 떠먹는 문화가 널리 퍼졌다. 타액을 섞는 것이 '정'의 증거라는 뜻인데, 이는 정이라는 단어가 정해진 뜻이 없이 갖다 붙이기 나름인 애매모호한 용어라는 예 중 하나다.
사실 '정'이라는 개념은 근친성과 동류에 대한 호의적 반응이 그 실체이므로 바운더리 안과 밖에 대한 무조건적인 차별대우를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의 근간이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지능 높은 포유류들에도 이런 본능은 존재하며, 이는 현대 시민사회에서 미덕으로 생각하는 합리성, 공정성, 비정의성, 투명성, 법치주의 등과 충돌한다. 위에 나열한 예시 중 정을 따지는 사람들이 비판한 각종 내용은 조금만 돌려 생각하면 산업사회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다. 전통적 농경 사회가 갖고 있던 정서가 도회적 사고 방식과 충돌하면서 전자가 후자를 비하하는 표현들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최근 대한민국이 전체적으로 도시화, 서구화 되면서 이 '정'을 점차 타파해야 할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 부류에 대한 무조건적 호의와 다른 부류에 대한 배타성은 '부패'의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인데 한국의 부패인식지수가 소득수준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이유를 이 '정'을 강조하는 문화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는 연구가 많다. '이 사회는 부패했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한국인은 정이 넘치는 따뜻한 민족이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얘기이다.
'정' 문화는 한강의 기적처럼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놀라운 응집력과 단결력을 발휘하는 원인이 되었기에 나쁜 것으로 매도만 해서는 안 되며 이를 서구적 가치와 어떻게 조화시켜서 한국인의 가치로 정립 시키느냐가 중요하다는 이론가들도 물론 있다. 이는 결국 어떤 것이든지 '일맞은 정도' 라는 것이 유지되는 경우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낸다는 상식이 적용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정부도 대국민 프로파간다에 써먹기 힘든 개념이라고 판단했는지 더 이상 한국인의 정 이라는 테마로 정부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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