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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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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博士 / Doctor's Degree
파일:DoctoralHooding.jpg
박사 학위 수여식 중 후딩(hooding)을 하는 모습[1]

1. 개요2. 명칭3. 어원4. 역할5. 취득 과정
5.1. 미국식 학제
5.1.1. 졸업에 필요한 연구 업적5.1.2. 졸업 기간5.1.3. 파트타임 박사5.1.4. 전문연구요원
5.2. 영국식 학제5.3. 독일식 학제5.4. 기타 국가
6. 박사 학위 취득 이후의 진로7. Degree Mill과 학력위조8. 학위복9. 박사 학위의 종류10. 대우11. 기타12. 한국인 최초의 박사13. 대중매체
13.1. 박사인 가상인물

[clearfix]

1. 개요

/ Doctor[2]

스스로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를 발굴하거나, 여태껏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의 정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의 학식을 갖추었다고 제도적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학위. 그만큼 따기도 무지하게 어려운 학위다.

'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수준까지 다다른\', 학사 석사 학위 또는 그에 준하는 자격[3]을 소지해야만 취득할 수 있는 최고의 학위라고 할 수 있다. 커리큘럼을 거치지 않고도 성과를 높이 사 박사란 이름을 부여하는 명예박사도 있다.

2. 명칭

: 문어 Gildong Hong, Ph.D.
: 구어 Dr. Gildong Hong
한국어 홍길동 박사
/ 洪吉童 博士

거의 모든 전 세계 대학들은 박사 학위의 약칭을 라틴어 'Philosophiae Doctor'에서 따온 Ph.D. 라고 표기하거나, 점(.)을 모두 생략하고 PhD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렇게 두 단어를 줄인 것이므로 'Ph.D'나 'PhD.'처럼 점(.)을 하나만 쓰는 것은 틀린 표기다.[4]

Ph.D.는 연구학문 분야에서 수여되는 학술 박사 학위이며, 일부 실무학문 분야에서는 Ph.D. 대신 “Doctor of [해당학문]”을 수여하기도 한다. 이를 전문박사 학위라 부르며 대표적으로 법학(JD), 경영학(DBA), 행정학(DPA), 교육학(EdD), 사회학(DSc), 간호학(DNP), 의학(MD), 약학(PharmD), 공학(EngD), 음악예술학(DMA) 등 각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것은 각 대학의 정책에 따라 상이하므로, 같은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더라도 수여하는 대학이나 과정에 따라 어떤 사람은 Ph.D.를 취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Ph.D. 대신 전문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한다

박사 소지자에게는 그 명예를 드높여주는 뜻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에게는 기존의 Mr. 나 Ms. 의 호칭이 Dr. 라고 바뀐다.[5] 공적인 자리에서는 지켜주는 것이 보편적인 예의고[6] 명찰, 명패 등에서도 별도의 직함이 없는 경우라도 이름 앞에 Dr.를 붙여주기 마련이다. 학계 관련 행사라면 말할 것도 없고. 당장 항공권만 봐도 모든 성인은 이름 앞에 MR, MRS, MS 중 하나가 붙지만, DR. PROF. REV.는 예외적으로 표기가 가능하다.

3. 어원

과거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박사(博士)는 어떤 학문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관직의 이름이었는데, 예를 들어 중국 한나라 시절 경전을 연구하는 오경박사 라는 관직이 있었고, 이를 본받아 신라에서는 기상 현상을 관찰하는 천문박사(天文博士), 의학을 관장하는 의박사(醫博士), 수학을 관장하는 산박사(筭博士) 등을 둔 기록이 등장한다. 근원이 다른 만큼 서양의 Doctor와 백퍼센트 대응하는 개념은 아니었지만, 19세기에 서양의 여러 개념을 받아들이고 한자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Doctor를 동양의 개념 중 유사성이 있는 박사로 번역한 것이다.

'박사'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 ' Doctor'의 어원은 라틴어로 가르치다, 지시하다 등을 뜻하는 Docere이며, 박사 학위는 중세 유럽 대학의 "교육 면허"인 '리첸치아 도첸디(licentia docendi)'[11]에서 비롯되었다. 참고로 영어 명칭인 Doctor[12]는 영어에선 박사와 의사 모두에 쓰이지만[13] 라틴어의 Doctor[14]에는 의사란 뜻이 없다.

Doctrine 등의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라틴어의 Doc- 어간은 '가르치다'라는 뜻을 갖는데 ( 부정형 Docere가 '가르치다'의 뜻) 이것으로 보아 원래 박사 학위는 독자적으로 해당 학문을 강의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학문에 통달했다는 뜻의 의미가 아닌가 추정된다. # 대부분의 대학에서 정교수 임용에 박사 학위를 요구하는 것을 봐도 그렇고.

중세 유럽에서는 대학이 생긴 이래로 박사 학위를 딴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중세 대학은 오늘날의 대학과는 구조와 체계가 달랐는데, 이른바 자유7과라 불리는 학문들을 배워 기초를 다지면 학사가 되었고 거기서 다시 몇 년 간 심화학습을 하고 연구 성과를 보이면 석사가 되었는데, 교수직을 맡을 자격을 부여받는 석사까지만 하여도 보통 10년 가까이 걸렸다. 박사는 거기서 다시 몇 년 간 연구를 거듭하여 자기 전공 분야에 정통해야 취득할 수 있었다. 따라서 박사 소지자는 학계의 권위자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상류층의 일원으로 대우 받았다. 이들은 전문가로서 관료나 가신으로서 중용되었고, 고위 공직을 역임하면서 귀족으로 서임받기도 하였다.[15] 그렇기에 서구권(특히 영어권/독어권)에서 박사 학위 소지자를 꼬박꼬박 "OOO 박사"라고 부르는 전통이 생성된 것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16세기 명나라에 도착했을 때 진사(進士)를 박사로, 거인(擧人)을 석사로, 수재(秀才)를[16] 학사로 번역 하려고 했으나 이는 학문적 소양 보다는 중앙 정부에서 인정한 관직내지 신분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기에 완전한 번역은 아니다.

다만, 영어에서 Doctor라는 말은 박사 말고도 다음 뜻일 수 있다.
  1. Medical Doctor ( 의사), Doctor of Dental Surgery (D.D.S. 치과의사),Doctor of Pharmacy (Pharm.D. 약사), Doctor of Veterinary Medicine ( 수의사) 등: 만화 가필드를 보면 John이 Liz(수의사)를 부를 때 'Doc'이라는 단어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 학제에서는 의사, 치과의사, 약사, 수의사 모두 박사로 인정하므로 문제가 없지만, 다른 나라에서 학사나 석사 등의 학위를 받은 사람들에게도 미국인들은 'Doctor(Doc)'라고 부른다.
  2. Dr. XXX로 소개되는 사람인데, 박사 학위 없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는 사람[17].
그래서 일반적으로 박사 학위를 가졌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문어체로 Ph.D.가 사용되곤 한다. 신학박사/법학박사/의학박사[18] 그 외의 분야에서는 철학박사(Ph.D.)로 전통적으로 표시하곤 했다.

위의 세 가지 박사 학위의 명칭은 중세 대학에서 신학, 법학, 의학으로 커리큘럼을 나누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중세 때는 공통된 교양과목(논리학, 수사학, 문법, 산술, 기하, 천문, 음악)을 이수한 후 신학, 법학, 의학 학부에 진학한 후 전공을 공부했다. 그중에서도 4학부의 맏이인 신학부의 신학박사를 박사 중의 박사로 높이 쳐줬다. 전통 3학부 중에는 더럽고 험한 일을 하는 의학박사가 가장 하위. 르네상스 시대 이후 철학이 중세 신학에서 분리되며 학문의 왕 자리를 차지하는데[19] 자연철학→과학, 도덕철학→사회학&경제학 등등으로 수없이 분화되어 가면서 철학박사(Ph. D.)의 원래 의미가 모호해져 버렸다.

그러다가 19세기 독일에서 현대적 박사학위 제도가 철학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다른 나라에 퍼지면서 박사하면 Ph.D.로 부르는 전통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은 Ph. D. in ≪분야≫로 표기하며, 철학박사도 Ph.D. in Philosophy라고 쓴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박사를 Ph.D.라고 표기하는 것은 Philosophy란 말의 어원적 의미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적절한 말인지도 모른다. 지식을 사랑하는 박사라는 뜻이니까. (참고로 doctor는 라틴어 어원적인 의미로 따지면 '규범을 만드는 사람' 정도의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혼자서 연구를 하고 교수를 하는 거겠지.)

4. 역할

지방 학교(studium paticulare)와는 달리, 대학들은 학생과 교수를 도처에서 받아들이고 또 대학들이 주는 학위가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 어디에서나 유효하였다(studium universale)는 것이 특히 두드러진 점이었다. 대학들에서 통일된 서구 정신의 보편성 같은 것이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권(sacerdotium) 및 왕권(Imperium)과 나란히 학문을 독립된 제3의 "세계적 직권"으로 평가하였다. 쾰른의 참사회원인 로에스의 알렉산데르는 1284년에 재치가 많은 은유시 「파보」(pavo)에서, 이탈리아인에게는 성권을, 독일인에게는 왕권을, 프랑스인에게는 학문을 서구 민족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한 각기의 특별한 사명으로 돌렸다. 이러한 대학 중 하나에서 박사 학위의 수여는 귀족과 동등의 지위를 의미하였다. 학문이 귀족의 일원이 된 것이다!
-August Franzen · Remigius Bämer·Roland Fröhlich. 《세계 교회사》. 최석우 옮김
박사 말년차이던 어느 날,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논문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누구도’ 라는 말은 우리 연구실이나 학교뿐만이 아니라,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전 인류의 누구도…라는 말이다.
이제 이 주제에 대해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한 해답은 교과서에도, 논문에도,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진 사람은 현재 지구상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이제 적어도 지엽적인 나의 연구 주제에 관해서는 인류가 가진 지식의 최전방에 도달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 너머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개척해나가는 것과 같다. 이제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은 다름 아닌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내 질문에 대한 ‘정답’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가설과 실험을 거쳐서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것이 학계에서도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이 논문이 되고, 또한 인류의 새로운 지식이 될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 경계를 넓혀간다는 것은 내게 아주 숭고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 지식의 경계를 미증유의 세계로 넓혀가는 탐험가였다. 아마 평생을 다 바쳐도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내가 넓혀갈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은 정말 미미한 것일 테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이자, 내 인생을 바칠 만큼 가치있는 것이었다.
나에게 박사 학위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졌거나,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박사 학위의 의미는 바로 내가 그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를 앞으로도 평생 스스로 넓혀갈 수 있을 만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중략)
"저는 이제 독립된 연구자로서 스스로 연구를 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문제가 주어지더라도 거기에 맞는 가설을 세우고, 논리적으로 사고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최윤섭. 박사 학위라는 것의 의미
오늘날 많은 대학에서는 박사 학위를 "한 명의 학자로서 홀로설 수 있는 독립적 연구자"에게만 수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박사 과정 학생들과 연구원들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석사 과정 학생들과는 달리, 박사 과정의 경우 교수가 그렇게 세세하게 관리해주려 하지 않으며, 보통은 키워드 몇개 던져주고는 알아서 성과물을 만들어 오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20] 일명 "방목형 교육".[21] 심지어는 지도교수조차 잘 모르는 분야를 오히려 박사 과정 학생이 주도적으로 파고들면서 교수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경우도 있다!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학계일수록 이런 관계가 당연시되고 또 반가운 상황으로 간주된다.[22] 그러나 한국에서는 교수가 "사회 지도층이자 어른으로서 학문함의 심오한 참뜻을 알려주고 제자가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지대한 관심을 쏟아주는 인생의 스승" 정도로 여겨지는지라, 교수가 "자네 좋을 대로 알아서 찾아 공부해 보게" 식으로 나오면 당황하는 유학생들이 왕왕 있다. 읽어볼 만한 관련 글 #2 물론 세세한 코치를 하는 교수들도 있다. 교수의 지도 스타일은 교수의 개인적인 성향에 많이 의존한다.

결국 박사 학위가 있다는 것은 "이 학위논문에 한정된 주제에 대해서 '납득가능한 연구방법'을 통해 타인에게 설득력이 있는 성과물을 낼 수 있는 전문가"임을 공적으로 인증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수가 가르치면 학생은 배운다'는 식의 수동적이고 일방향적인 주입식 교육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한국에서는, 학사까지 또는 잘해봐야 석사까지는 우등생 소리 듣던 학생이 박사 과정 유학 갔다가 몇 년 동안 시간만 버리며 개고생했다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종종 들리곤 한다. 이걸 적응 못 하니, 아무리 악착같이 배우고 물어보고 해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자네 이대로는 졸업이 어렵네" 같은 차가운 답변뿐이다.[23]

이 때문에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박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간혹 장기간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도 학위수여는 요원한 사람들도 있는데, 놀랍게도 이들 중에는 조교수들보다 훨씬 방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특정 종의 식물은 언제 어디서 마주치더라도 곧바로 그 분류와 학명을 전부 알아맞힌다거나 아니면 온갖 별의별 역사적 사건들의 연대와 연표를 달달 외우고 있다. 그러나 지식의 양으로는 박사 학위가 나오지 않는다. 실제 박사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들로부터 기막힌 아이디어와 통찰을 뽑아낼 수 있기에 박사인 것이다.[24] 석사생이 자신이 알게 된 것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면 포닥이 그걸 듣고 있다가 "그거 재밌네, 이런 가설도 세워볼 수 있지 않을까? 저것도 비벼볼 거리가 있는데?" 하고 몇 개 던져보는데, 이것들이 석사 과정 입장에선 "아니, 어떻게 이런 쌈빡한 생각을 해낼 수가 있지?"[25] 싶은 것들이 많다. 앞의 예를 다시 들자면, 생물들의 학명과 분류를 잘 알아서 박사가 아니고, 그 종의 생물이 하필 그곳에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지역 생물권에 대한 통찰을 끌어내고 흥미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기에 박사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마추어 내지 준프로와 진짜 프로의 클래스의 차이.[26] 박사논문은 이렇게 인류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그것이 실험을 통해 논리적으로 성립됨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통과되므로 취득이 상당히 어려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대학원에서 도는 우스개 중에는 " 학부 졸업생 자신이 이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석사생은 자신이 이렇게나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걸 알고 좌절한다. 박사생은 자신이 모르는 걸 남들도 모른다는 걸 알고 좋아한다"[27]는 말이 있다. 박사들은 실제로 " 남들이 모르고, 남들의 관심이 없고, 이상하리만치 주목받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연구 수요는 높은 것"을 눈이 시뻘개진 채로 찾아다닌다. 각 분야들에는 수많은 세부 분야들이 있고 그 분야들에서 수많은 박사와 학자들이 저마다 땅따먹기를 한 뒤 제각기 자기 영역의 터줏대감이 되는 식인데, 그 사이에 존재하는 블루 오션을 용케 찾아내 낑겨 들어가서 "이 주제만큼은 내가 전문가!" 를 선언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남들에게 "이게 왜 중요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를 이해시키는 세일즈의 과정도 여간 고단한 것이 아니다.[28]

자유분방한 사고를 지녔다는 서구 학생들도 날마다 머리를 쥐어뜯는 것이 바로 이 관문인데,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머리를 고스란히 가지고 박사 과정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논문 주제를 정하다가 그 주제에 대한 선행문헌이 이상하리만치 나오지 않으면 석사 과정생들은 정말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혀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반면, 박사 과정생들은 블루 오션을 찾았다는 기쁨에 화색이 돈다. 하지만 아무도 안 한 주제 대부분은 블루오션이 아니라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남들도 포기한 분야임을 곧 알게 된다.[29] 그러다 엄청 운좋으면 진짜 블루오션 찾아내는 거다.

석사 과정생들이 실력을 쌓기 위해 자기 분야의 수많은 전공서적과 핸드북, 리뷰, 논문을 미친듯이 읽어야 한다면, 박사과정생들은 실력을 쌓기 위해 온갖 수많은 인접분야에 기웃거려 보는 게 권장되곤 한다. 물론 현대 들어서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자기 학문에서 보지 못하던 것을 남의 학문을 통해 볼 줄 아는 것도 자기만의 고유한 연구의 화두를 찾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분야들에서는 박사 과정생들끼리 의기투합해서 독서 스터디를 하다가 정말 우연찮게 접한 책 한 권으로부터 기발한 연구 아이디어를 찾아낸 경우가 있다.[30] 게다가 대부분의 사회과학에서는 자기만의 독창적인 연구방법론을 제안하거나 설계하는 것 역시 박사 학위에 있어 엄청난 이점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한 다양한 방법론을 경험해 보고 차용해 보는 것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정치학 전공자가 사회 네트워크 분석을 들고 덤벼든다거나, 사회복지학 전공자가 빅데이터 분석을 시도한다거나 하면서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일이 많다. 실제로 이런 젊은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저널들은 이러한 방법론적인 파격성을 적극 환영하는 경향이 크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되었지만 박사 학위가 어떤 주제인가는 곧 그 학자의 학문적 정체성이 무엇인가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한 명의 학자로서 평생 씨름해야 할 화두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박사 논문 주제는 대충 정하면 안 된다. 나중에 일자리를 구할 때에도 박사학위 논문의 분야와 주제는 결정적이다. 예컨대 리더십에 관련된 박사 논문을 쓴 A씨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A씨는 평생의 커리어에서 리더십을 뺄 수가 없게 된다. 이후로도 각종 연구소와 기업체들에서 리더십 얘기만 나오면 A씨를 불러댈 것이고, A씨는 리더십의 스페셜리스트로 간주될 것이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교수를 임용할 때 박사 논문의 분야를 기준으로 심사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만으로 논란이 빚어진 것을 알 수 있다.[31]

더불어 박사 학위를 어느 학교의 어느 교수에게 받았는지도 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다. AcademicTree.org 같은 학술 계보 사이트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학교의 학풍을 따라, 어떤 학자의 전통을 이어받아 연구하게 되었는지를 통해 그 사람의 학술활동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 좋게 말하자면 박사 과정생들은 지도교수와 장기간 함께하며 지도교수의 안목과 관점, 통찰로부터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32] 나쁘게 말하자면 일종의 파벌싸움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박사 학위 논문이 전달할 수 있는 정보는 의외로 많다. 일부 학문의 경우에는 누구네 일파에 소속되었는가에 따라 정부 프로젝트를 따내거나 못 따내거나, 일자리를 구하거나 못 구하거나 하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한다.[33]

그러니 박사 진학은 "나는 일생 동안 이 분야를 너무 좋아하고 있고, 이거 아니면 도저히 못 살겠다."라는 식으로 모 아니면 도인 성격이 강하다. 조금이라도 학생들을 배려해주는 교수님이라면 특히 이런 걸 강조하고 이럴 자신 없으면 아예 박사 과정 오지 말라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학석사 마인드로 박사 과정 했다간 한국이건 미국이건 유럽이건 시간만 버리게 된다. 이런 환경이라면 다양한 인간관계를 쌓기 어려우니 이미 있는 인간관계, 즉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더욱 잘 챙기는 재주가 필요하다. 먼저 졸업하고 사회로 나간 박사 학위 소지자나 거의 2년을 하고 나간 석사 학위 소지자들이 어느 직장이나 위치에 있을지 모르므로 박사 과정 중에 인간관계를 엉망으로 해놓았다간 졸업 후 인생에 어떤 애로사항이 꽃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송유근 논문 표절 사건에 과학계가 왜 거품 물고 단단히 분노했는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흔히 대중적으로 도는 소문처럼 잘 나가는 어린 천재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능한 철밥통 연구자들의 트집잡기라고 이해하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다. 게다가 박사 학위라는 것이 흔한 편견 및 고정관념처럼 " 유치원생 시절부터 미분 적분을 배워 이해해서 문제를 술술 풀어내는 속칭 천재" 들을 위한 것도 아니다. 박사 학위는 남이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는 풀이법과 설명을 얼마나 어린 나이에 얼마나 빨리 소화하느냐가 관건이 아니라[34], 지금까지 세상에 아무도 모르던 전혀 새로운 문제 풀이법과 설명자기 스스로 찾아내서 남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송&박 논문에 그런 학문적 혁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편 명예박사는 학위 과정 이수나 논문 작성과는 관계 없이 수여된다. 학술적인 업적의 인정이라기보다는 해당 대학이나 분야에 대한 공헌을 고려하여 수여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현행법에 의하면, 박사학위과정이 있는 대학원을 둔 학교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고(고등교육법 제35조 제5항), 학술발전에 특별한 공헌을 하였거나 인류문화의 향상에 특별한 공적이 있는 자에 대하여 대학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여할 수 있다(같은 법 시행령 제47조).

4년제든 전문대든 대학 교수로 임용되려면 반드시 따야 하는 학위처럼 여겨지지만 본질은 아니다. 교수 임용은 석사부터 가능하지만, 요즘 상황에서 석사 교수를 임용해줄 리 없는 것뿐. 박사 학위가 워낙 귀했던 70년대(그러니까 50년대 출생자들이 대학에 다니던 시절)까지만 해도 석사 교수가 종종 있었다.[35][36] 50년대에는 학사만으로 교수가 되곤 했다. 해방 후 경성대학의 교원 명단 항목으로.[37]

또한 일반적인 전공과 달리 실기나 실무 능력이 학문적 능력만큼이나 대접을 받고 중요한 하위 분야로 자리잡고 있는 전공의 경우에는 지금도 박사 학위가 없는 사람도 교수직에 아무런 문제 없이 잘만 임용된다.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해 중퇴한 고졸이나 학사 학위만 가지고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정도까지 한 법관들이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된다거나, 뛰어난 실력의 음악가 미술가, 무용가, 소설가 음대, 미대, 무용과, 문창과 교수가 된다거나 올림픽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가 체대 교수가 되는 것은 해당 분야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이며, 학위만 없을 뿐 실무 분야에서는 그들이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평가만 제대로 되었다면 그 분야의 박사 학위 소지자들도 크게 불만이 없다. 특히 전문대의 경우 실용적, 실무적인 분야가 4년제보다 더 많은 관계로 비 박사 교수의 비중도 4년제보다 높은 편이다. 관련 분야의 유명 기업에서 충분한 실적과 성과를 쌓으면 된다. [38] 시간강사로는 박사 학위가 아니어도 임용하기도 하는데, 석사 학위를 취득한 상태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인 대학원생이 시간강사를 맡아 수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39]

하지만 우스개소리로 "박사 학위 딸 시간에 운전면허증이나 따서 버스& 화물차& 지게차& 굴삭기 등을 운전할 수 있는 운전기사나 할걸!"이라며 자조하는 학생도 많다.운전 기사가 만만한가 진짜 전문가들의 세계에서는, 박사 학위는 시작일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박사 학위는 지식수준을 묻는 것이 아니다. 박사 학위가 있다는 것은 "나는 나 혼자서 정확한 연구방법을 통해 정확한 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이 사람한테는 연구비를 맡겨도 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면허증이라는 것이다. 사실 갓 박사 학위를 딴 사람은 이제 막 학계에 들어온 신참이다. 아직도 쌓아야 할 지식의 양, 연구 방법이 무수히 많다. 학계에서 박사 학위 수여자는 그야말로 신입사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자조적으로 운전면허증이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한다.

5. 취득 과정

5.1. 미국식 학제

미국식 학제를 지닌 미국, 한국의 경우이다.[40]

요약하면 박사 1, 2년차에 코스워크(coursework)라 불리는 대학원 과목들을 수강하고, 3, 4년차에 논문제출자격시험[41]을 통과하고, 1~2회에 걸친 예심(중간발표)를 거쳐[42], 박사 학위 청구논문을 제출하고 논문심사위원회(본심)를 통과하면 된다. 박사 학위 논문심사위원회는 지도교수를 포함한 5인으로 구성되며 보통은 교내 교수들[43] 이 위촉되지만 최소 1인 이상은 박사 학위를 소지한 외부 전문가[44]를 반드시 포함하게 되어 있다. 또한 지도교수는 심사위원장이 될 수 없다. 2~3회에 걸친 본심사에서 5인 중 4인 이상이 (조건부)통과 판정을 내리면 심사는 통과한다.

1~2년차 때는 코스워크(coursework)라 하여 모든 학생들이 해당학문의 기초과정( 연구방법론, 이론 등 공통과목)을 공부하며, 1년차 혹은 2년차 공부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박사자격시험(Qualifying Exam, Qual) 혹은 사전자격시험(Preliminary Examination, Prelim)을 치러 1차적으로 공부할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평가하게 된다. FM대로 하면, 여기서 두 번[45] 이상 떨어질 경우 박사 과정에서 탈락이며 그래도 공부하고 싶다면 재입학을 해서 1년부터 다시 시작해야된다. 한마디로 중도탈락. 학석사 마인드로 대충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때 줄줄이 갈려나가고, 나머지는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46] 또 학과에 따라서 TA(수업조교)를 일정량 의무적으로 시키는 경우도 있다.

3년차부터는 대개 개인논문 연구에 매진하면서 주요 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하여 경력을 쌓거나, 연구실에서 담당하는 프로젝트의 핵심연구원(이공계)으로 활동하면서 프로레벨의 학자생활을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과목이나 기초전공과목의 강의를 담당하는 일도 있다. 상당수의 대학 강사들이 이런 사람들인데, 석사 시절과 달리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학비를 대주지 않고 자기 스스로 해결하도록 요구하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3년차나 4년차 중반 즈음에 논문제출자격시험을 보는데 여기에 합격한 다음, 예비심사(proposal)를 거쳐 박사 학위 청구논문을 제출하여 논문심사위원회[47]의 최종심사를 통과하면(인준을 받으면)[48] 드디어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박사 학위는 해당 계통의 전문가들이 "동학으로서 수평적인 위치에서 독립적으로 의미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석사 학위에 비해 상징적이며, 때문에 그 심사 절차와 기준도 석사 학위에 비해 굉장히 엄격하다. 대부분의 경우 5년 내에 좋은 졸업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아 연구를 계속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49] 드물게 심하게 어려움이 있어도 결국 포기하지 않고 휴학, 자퇴, 재입학까지 거쳐 박사학위를 10년 만에 받는 사례도 있다.

한국에서는 원격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수 없었으나,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2024년부터 원격대학에서도 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5.1.1. 졸업에 필요한 연구 업적

국내 명문 공대 대학원들의 경우 SCI급 논문 1편, 많으면 2~3편 게재(어셉트도 게재로 간주)를 요구한다. 이것이 없으면 졸업을 신청해도 심사를 해 주지 않는다.[50] 하지만 이것도 분야별로 달라서, 어떤 학과는 졸업 전에 SCI 딱 한 편 쓰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해외 명문 공대, 심지어 MIT도 이런 졸업 규정 자체가 없어서, 유명 프로시딩 한두 편만 쓰고 졸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국내에선 프로시딩을 업적으로 아예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곳으로 진학한 후 보통 미국 애들이 하듯이 대충 논문 1~2편 이하로 쓰고 툭 졸업해 버리면 국내에 들어오기 힘들다. 미국인이나 미국에 애초에 연고가 있는 외국인들은 이렇게 학위를 받은 후 높은 몸값에 좋은 기업에 취직되지만, 그냥 한국에서 학부석사 마치고 미국 건너간 한국인들은 졸업과 동시에 입장이 곤란해진다.[51] 한편, 일본의 경우는 문서로 졸업 요건을 자세히 규정해 놓는다. 보통 논문 1저자로 풀 페이퍼 1.5개[52] 등이 졸업 요건으로 걸려 있다.[53][54]

자연과학도들과 공학도들의 취직 경로가 다른 것도 어느 정도는 감안하자. 공학도들은 많은 경우에 학계를 제외한 산업계, 연구소에서 요구되는 필수 능력이 논문 쓰기가 아닌 특정 분야에 필요한 실무 개발 능력인 경우가 많다. 즉, 공학도 한정으로 박사 학위 논문 및 SCI 논문 출판 경험은 취직의 충분 조건이 아니라, 필요 조건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어떤 분야든 공학도가 소위 산/학/연 3개 구분에서 학교를 제외한 산업계와 연구소에서는 팔자 좋게 논문 쓰는 게 자기 업인 경우는 많지 않다. 좋은 논문은 아무래도 산업화가 활성화 되기 직전의 새로 성장하는 분야에서 쓰기 좋은 반면에, 개발 실무에서는 산업화가 어느 정도 성숙된 분야의 실무 경험이 중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한민국의 산업 동향이 아직도 선진국들을 따라서 하되, 그 효율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하자. 미국도 그렇고, 구직자를 판단할 때 공학 분야에서는 실무를 같이 해본 경험을 최우선으로 중시한다. 즉, 잘 모르는 상대가 겉으로 보이는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직접 같이 일하면서 얻은 연구/개발 능력의 판단 없이 함부로 구직자를 고용하지 않는다. 만약 직접적인 연구/개발 능력의 판단이 어렵다면, 추천서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즉, 자기가 신뢰할 만한 상대로부터 얻은 연구/개발 능력의 간접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삼는다.

상기 사유로 공학도의 경우 해외 유명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는 경우 학위과정에서 얻은 이런 저런 인맥으로 해외 취업이 더 쉽다. 한편, 미국 학위 소지자가 수요도 많고 그만큼 일찍 짤리기 쉬운 국내 유수 기업(예를 들어 현대/기아차 그룹, 삼성전자 등)이 아닌 정부출연연구소에 취직하고자 한다면, 그때는 국외 학위 과정의 실적만큼 석사 학위 지도교수가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인맥이나 위상에도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외 유수 대학에서 좋은 논문을 쓰고 졸업해도, 정부출연연구소에서는 자리를 잡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국내 유명 공대 출신이고 논문 실적은 적지만 각 기관의 핵심 연구개발 사업과 관련된 실무에서 좋은 성과를 낸 박사 과정 학생이 기관에 취직이 되는 경우도 많다.[55]

그리고 옛날에는 학교마다 SCIE급 논문 3편을 SCI급 논문 1편으로 인정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웹 오브 사이언스를 필두로 SCI/SCIE를 통합하였기에 지금은 둘을 구분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참고로 SCI와 SCIE의 평가기준은 동일하며 SCI와 SCIE사이에 질적인 차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SCI를 관리하는 톰슨 로이터사에서 밝혔으며 SCI저널이 탈락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SCI저널이 등재되지도 않는다. 국내에서는 2019년까지 SCI와 SCIE에 차이를 두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잘못된 평가기준이다. 미국을 포함한 많은 다른 국가들에서는 SCI와 SCIE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으며 실제로 SCIE 저널의 논문 퀄리티가 SCI에 뒤지지 않는다.[56]

5.1.2. 졸업 기간

우선 대한민국에서 박사를 받는 방법에는 크게 5가지의 방법이 있다.

석사가 대개 4학기 종료 시점=학위 받는 시점인 반면 박사 학위를 받는 시간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풀타임 기준으로, 경영학, 사회과학, 이공계(실험) 쪽에서는 5년 정도가 보통이나, 국내 최상위권 대학의 경우 교수에 따라 졸업여건을 엄청나게 빡세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 악덕 랩은 평균 10년 찍고 나가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인문대학 쪽에서는 10년이 평균인 전공도 많다.

이렇게 긴 이유는 연구방법론의 차이 때문이다. 이공계(실험) 쪽에서는 수치해석, 실험을 보여주면 박사 학위 논문이 되고, 통계적 방법을 이용한 전공들은 대체로 면담이나 설문조사를 여러 번 하면 박사 학위 논문이 된다. 물론 단순히 실험이나 면담만 한다고 박사 학위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논문의 주제에 대한 개념화(conceptualization), 이와 관련된 실험 설계, 그리고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험 결과가 가설과 다르게 나온다거나, 또는 동료평가에서 리뷰어가 중요한 비평을 했다면 그에 대한 해석 및 보완 실험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또한 철학, 비교문학, 역사학 같은 인문학의 경우 연구자의 생각이 실험, 면담 같은 것으로 증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지금까지 인류가 해당 분야에 대해 연구한 모든 문헌들을 검토하고 비평하며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생각을 해내야만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졸업에 대한 전권은 지도교수가 잡고 있다. 석사는 준비기간으로 취급되어 어지간해서는 졸업을 시켜주도록 위에서 압력이 들어오기에 정말 논문이 쓰레기가 아닌 이상 심사는 형식에 불과한 경우가 많지만, 박사는 전혀 다르다. 특히 미움을 받고 있다거나, 혹은 프로젝트에 꼭 필요하다거나, 뚜렷하지 않은 이유 등으로 졸업을 안 시켜줘서 계속 대학원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 악덕 교수의 경우 졸업 심사까지 끝난 학생의 졸업 서류 사인을 안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 때문에 더러워서 학위는 따지 않고 수료만 한 후에 그냥 취업하는 경우도 많으며, 미국 중국 선진국들과 강대국들에서도 이러한 "중도포기자"를 더러 볼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는 19년이나 학위를 안 줘서 교수가 살해당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57] 이런 현실 때문에 영구수료 받은 경우 학력으로 취급하지 않는 학사와 석사와는 달리 박사는 수료로도 학력으로 인정해주기도 한다.[58]

학사 시설 지도교수에게 미움을 받거나 하는데 학위는 필요한 경우에는 대부분 석사만 취득하고 박사 과정은 다른 대학을 들어간다. 석사는 어지간해서는 주기 때문에 역으로 해당 지도 교수가 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석사까지 갖고는 알 수가 없다.[59]

경영학이나 사회과학의 경우 저질 파트박사로 돈 주고 학위를 살 거면 코스웍 포함 3년 만에 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미 돈을 지불했는데 학위를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여기저기 그 박사 과정에 대한 욕을 하고 다닐 것이며 그러면 더이상 대학원대학교의 장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도 대가가 따른다. 시간제 대학원의 박사 학위 논문은 학술적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편이다.

미국의 석박사 통합과정(MS/PhD)은 박사 과정(PhD)과 완전 다르며[60] 학사 후 석사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바로 박사를 받을 수 있고[61] 이러한 예는 미국 및 전 세계 인터내셔널들에서도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 과정에 입학한 학생과 학사를 졸업하고 박사 과정에 입학한 학생은 완전히 동일하게 취급된다.[62] 미국 박사 과정 시 필요한 박사 과정 자격시험[63]과 프로포절 그리고 디펜스 모두 석사를 가지고 있는 학생과 동일한 기준으로 채점되며, 이에 합격에야 졸업할 수 있다. 물론, 학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으로 입학한 학생도 석사만 받고 졸업할 수 있고, 박사 과정 중에 석사 학위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졸업기간은 복불복이 심해서 사람에 따라 4년 만에 학위를 따는 경우도 있고 평균 7-8년 걸리는 랩도 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지도교수의 사정 때문에 통상적인 기간보다 빨리 등을 떠미는 경우가 있다. 연구실의 연구비가 메말라서 대학원생 인건비도 주기 힘든 경우, 지도교수가 자리를 옮기거나 은퇴하는 경우 등이다.

최단기간만 따지자면 성기수 전 동명대 총장이 하버드 대학교에서 2년 1개월 만에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바 있고, 2년 5개월 걸린 정진혁 씨의 사례도 있었다. 정진혁 씨의 사례를 보면 1981년 1월생으로, 미국 고교 시절 AP로 8과목을 이수한 뒤 1999년 9월~2000년 5월 KAIST를 다녔고 2000년 8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생물물리학 및 생화학'을 전공했다. 학부 2학년을 마친 여름학기에 대학원 실험에 참여, 독자적 연구실적을 내자 실험실 담당 교수와 학교가 특별한 배려를 해서 2002년 8월 곧바로 박사 과정에 입학하였고 학사와 박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 이후 2년 5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64]

미국에서 괄목할 만한 어린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는 노버트 위너가 꼽힌다. 위너는 천재적인 수학자이자 컴퓨터공학자로, 생후 18년 9개월인 1913년에 하버드 대학교 수리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위너의 최연소 기록은 미국 내에서 100여년 간 깨지지 않았다가 2023년도에 깨지게 되었다[65] 이외에도 스티븐 울프럼 옥스퍼드 대학교의 학업수준이 맞지 않는다고 자퇴하여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물리학 박사학위를 생후 20년 7개월에 취득하였다.

최근까지 한국인 최연소 박사 기록은 1963년 정근모 박사가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만 23세 5개월에 취득한 것이었는데, 2018년 유효정이 만 22세 8개월의 나이로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에서 생명공학 분야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드디어 기록이 경신되었다. #

5.1.3. 파트타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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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전문연구요원

미필 남학생의 경우 이공계/기초의학계 박사과정에 진학하면 전문연구요원으로서 병역을 이행할 수 있다. 전문연구요원 시험에 합격하면 박사 3년차~5년차의 3년간을 인정해준다. 즉, 한국 내에서 박사를 할 거면 이런 식으로 병역을 수행하고 기초군사훈련만 받아도 된다. 유학해서 박사를 받아와도 전문연구요원이 되긴 되는데, 복무기간 동안 한국에 있어야 하므로 취득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유학을 원하는 이들은 석사 전문연구요원을 해서 그 경력으로 유학을 가거나 학부 때 병역을 해결해 놓는 경우가 많다.

군대 가기 싫어서 박사를 진학하려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이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전문연구요원은 그만큼 전문성을 요구하며 업무가 고되기 때문에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것이지, 대체복무를 목적으로 지원하는 자리가 아니다. 적성에 맞지 않다면 박사 과정이 군대보다 훨씬 더 가혹할 수 있으며, 이걸 못 버티고 중도 포기해서 몇 년의 시간을 날리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최근 병무청이 전문연구요원의 T.O를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복무만을 노리고 진학했다가 전문연에 탈락할 리스크가 존재한다. 최악의 경우 군 문제도 해결 못하고 학위도 취득하지 못해서 인생이 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병역 해결이 목적이라면 학부 1학년 마치고 바로 현역을 갔다 오는 게 더 안전하고 확실하다.

5.2. 영국식 학제

영국식 학제는 영국 외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 있다. 영국식 박사는 미국과 달리 코스웍이 없는 게 가장 큰 특징이며, 랩실 중심이 아닌 철저한 개인연구 수행 비중이 높다. 물론 아예 랩실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고, 전공 분야나 랩실마다 차이가 있는 편이다. 코스웍이 없기 때문에 QE시험도 없으며, 학위 기간이 더 짧고, 한국처럼 저널논문 규제도 없다. 그래도 세계적으로 연구 인프라가 좋은 국가이기 때문에 잘 인정받는 박사학위이며, 박사학위로 요구하는 연구의 질적 수준이 결코 낮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기본적인 학제는 다음과 같다.
학생의 수준에 따라 다음과 같은 식의 코스를 타게 된다.
한국인이 유학을 갈 경우 기존에 연구경력이 있어서 연구계획서도 쓸 줄 알고 학술지 논문도 쓸 수 있는 경우에 한해 Ph.D 입학이 가능하다. 한국 명문대의 석사 학위가 있어도 영국 명문대의 눈에 차지 않으면 Ph.D.가 아닌 M.Phil.부터 시작하게 한다. 개중에는 끝내 교수의 눈에 차지 못해 한국 석사+영국 MPhil+한국 박사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대졸 한국인이 연구계획을, 그것도 영어권 학풍의 맥락에 맞추어 세울 수 있는 경우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은 Taught master부터 시작한다. 다만, Taught master라고 Ph.D.에 못 가고 M.Phil. 거쳐서 가야 하는 식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와 학부(패컬티)마다 차이가 있고[69], 특히 학생 능력과 교수 마음에 달렸다. 1년간 Taught master 하면서 졸업논문에 대해 말할 때 교수가 "그건 박사 과정에 들어가서 해라" 같은 식의 말을 한다면 교수는 PhD에 받아줄 마음이 있다고 보면 된다.

영국의 경우, EU 비국적자에게 주는 장학금이 거의 없어서 많은 학생들이 자비로 다니며, 등록금은 매우 비싸다. 비EU 기준으로 연간 2천만 원 정도. 거기에 생활비가 연 1500만 원 정도 잡힌다. 유명 종합대 다수가 국공립대인 호주와 8개 대학이 모두 국립인 뉴질랜드는 정부 및 기관이 후원하는 장학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영주권자를 포함한 내국인에게 당연히 기회(라운드)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영국과 다른 점은 외국인에게 최소 기회는 돌아온다는 것.뉴질랜드는 해외 인재 유치 차원에서 PhD 과정 학비는 유학생에게도 3년 간 내국인 학비와 배우자 워크비자 혜택을 준다. 박사과정학생 일자리 검색 과제와 관련해서 과제 회의라든지 워크샵에 참여해야 할 수는 있으며, 기업과 관련된 과제라면 회사 일에 참여해야 할 수 있다.

영국식 박사 과정에는 코스웍이 없다. 지도 교수의 의무적인 지도는 월 1회 정도뿐이다. 아무것도 가르쳐주는 것이 없는데 논문은 써야 하니 학생들은 공포에 시달린다. 그래서 논문이 늦어지고 있는 박사 과정 학생에게 논문에 대해 묻는 것은 큰 실례라고 한다. 박사에 입학할 때 임시 연구계획서, 학점, 추천서, 영어 시험점수(외국인 한정)가 필요한데, 연구계획서를 쓰려면 연구방법론과 해당 논문 주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입학이 되면, 임시 연구계획서를 확정 연구계획서로 전환하는 학칙상 통과 의례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이를 임시 후보생(Provisional candidature)에서 확정 후보생(Confirmed/full candidature) 전환이라고 하는데, 입학 후 통상 1년이 주어진다. 한번에 통과하지 못하면, 약간의 유예 기간과 재심사 시간을 주지만 그럼에도 실패한다면 당연히 학교를 나가야 한다.

반대로 얘기하면, 논문 주제와 연구 모델이 독창적이고 자료 수집/분석 전략이 확보되어 있으며, 영어에 의한 연구방법론이 탄탄하면 영국식 박사는 (논문 제출 전까지 저널 게재 조건만 충족한다면) 8할은 끝난 것이다. 아울러, 영국식 박사 과정 학생은 박사 논문 주제가 될 과제와 관계없는 잡일을 전혀 안 한다. 교수의 잡일은 대학원생이 아니라 대학원 행정실 직원이 한다. TA는 강제가 아니라 옵션이다. 이러한 사유로 박사 과정 안내를 보면 자신의 연구 과업을 단독으로 완수할 수 있는 역량을 제1조건으로 강조한다. 프로젝트를 안 하기 때문에 과제 제안서를 쓸 일도 없다.

확정 과정생이 되면 정식 명함도 제공하고 준직원처럼 대우해 주는 학교가 많다. 각종 해외 세미나와 학술 발표 출장도 훨씬 수월하다. 단과대학에서 세미나나 워크샵이 열리기도 하지만 이게 코스웍은 아니다. 영국 박사과정에는 퀄 시험도 없다. 중간 중간, 박사 논문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발표시키고 연 1~2회 연구 진행 보고서를 제출하고 지도 교수가 이를 승인해 주는 것이 퀄을 대신한다. 지도 교수가 '이 부분은 잘못되었다, 이 이론을 이용해보라' 이상의 조언은 해 주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죽든 살든 학생이 알아서 헤쳐나가야 한다. 최악은 대학원윤리위원회에서 도덕상/과정상 하자를 사유로 자료수집 계획을 반려할 때이다(이렇게 되면 1년 정도는 그냥 날아간다). 연구 패러다임이나 자료 분석전략이 지도 교수들과 근본적으로 이견이 있는 사안도 (합리적으로 정당화 하지 못하면) 최소한 차악급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박사과정 논문 심사 구술시험 (Viva)을 통과해야 하는데 사회과학 및 인문과학의 경우 이 시험이 매우 어렵다. 최소 2시간에서 하루 종일 진행된다. 특히 외국인 학생들은 질문을 알아듣고 대답하기가 힘들어서 더 고통을 겪는다. 대개 6년 내에 학위를 받아야 하는데, 2/3 정도만이 6년 내에 졸업할 수 있다. 분량이 53,000단어에 214쪽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학교와 단과대마다 차이가 있다. 대개 인문학 계열은 6만~8만단어(관련 문헌 제외)가 일반적이고 그 이상은 승인을 요하지만, 경영대에서도 마케팅, 국제경영, 경영정보 분야는 350쪽에 10만 단어에 달하는 논문도 적지 않다. 이에 반해 이공계열의 경우 일반적인 박사졸업 디펜스와 유사하게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5.3. 독일식 학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은 영국과 유사하다. 즉, 코스워크 없이 학위기간 동안 본인의 고유한 연구를 진행해서 논문을 작성, 제출하면 된다.[70] 박사과정 입학부터 논문작성, 졸업까지 지도교수의 역할이 막강하다는 것도 동일하다.[71] 지도교수를 찾아가 연구계획을 설명하고 프로포절(독일어권에서는 주로 엑스포제라고 한다)을 제출한 뒤 지도승낙서를 받는 순간 박사과정생으로 승인된다. 이후 절차는 원서를 작성하고 학비(학기당 40만 원쯤)를 내는 정도로 간단하다. 인문학 박사과정생의 경우는 보통 논문작성 기간동안 혼자 작업하며 자신의 결과물을 가끔 지도교수와 상의하는 식으로 지도받게 된다. 이게 심각하게 고독하다. 때문에 본인이 생활계획을 조금만 느슨하게 잡는 순간 한정없이 유학기간이 길어지게 된다. 이공계 박사과정생의 경우 연구실에 소속되어 회사원처럼 월급을 받으며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포함한 4대 연구소 프라운호퍼, 헬름홀츠, 라이프니츠 연구소에서도 박사학위를 취득할 기회가 주어진다. 산학 연계가 잘 되어있는 독일에서는 이러한 루트를 거친 박사 출신들도 매우 일반적이다. 이 경우, 연구소는 법적으로 학위를 수여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대학교 또는 디렉터가 교수 직함을 가지고 있다면 소속 해당 학교에서 디펜스를 거친 후 학위를 수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근무 기간동안 학생이 아닌 근로자와 같은 느낌으로 연구를 진행하며 생활하게 된다.[72]

5.4. 기타 국가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처럼 학사과정을 석사와 통합하여 수여하는 석사 중심 국가들의 경우 한때 DEA(Diplôme d'études approfondies, Diploma de Estudios Avanzados) 또는 MAS(Master of Advanced Studies)처럼 박사준비과정이 존재해서 이를 수료해야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볼로냐 프로세스 채택 이후 석사학위(MA, MSc, MPhil)를 취득하면 박사 진학이 가능하다.

프랑스에서는 30년 만에 박사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학 및 학과에 따라서 코스웍을 마치고 제한 기간 이내에 졸업 논문을 내지 못하면 수료로 끝내거나, 어떤 경우는 수료 후 논문을 통과하면 20년 뒤에라도 학위를 준다. 한상구 교수가 대표적인 예. 하지만 프랑스도 사르코지 대통령 때부터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규정이 생기면서, 이전처럼 오래기간 무기한으로 석사, 박사과정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박사과정의 경우 2년차부터 교수들과의 면접을 통해서 논문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절차가 생겼다. (물론 박사과정 입학 시 체류증은 3년치를 받게 된다.)
이후 3년차 이상이 되면 까다로운 서류심사와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서 체류증 연장과 학업 지속 여부가 결정된다. 박사과정의 연장이 몇년차까지 이루어질 수 있는지는 연구분야, 지도교수, 연구에 성실하게 임해 왔는지의 여부 등의 요소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통상 5~6년이면 박사논문을 다 완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거의 통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 대학마다 다르긴 하지만 영국식 학제와 유사하게 코스워크 없이 학위기간 동안 연구를 진행해서 논문을 작성, 제출하는 방식의 대학이 많다.[73] 박사논문과 관계없는 잡일을 하는 경우는 없으며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도 드물다.[74]

북한에선 박사 학위를 대학의 전임교원이나 국책 연구기관의 책임급 연구위원이 된 이후에 취득하는 학위로 여겨져 대단히 엄격하고 짜게 주는 편이다. 2021년 기준으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시기까지 합쳐도 박사학위 취득 누적 인원이 8천명을 겨우 넘을 정도이다. 그만큼 사회적 위상이 어마어마하게 높으며, 반정권적인 발언만 하지 않으면 발언과 언론의 자유를 꽤나 보장 받을 정도이다. 심지어 고난의 행군 시기 현세의 헬게이트가 열렸을 때도 박사 학위를 가진 가정에는 식료품과 일용품을 정상 배급하도록 김정일이 직접 지시했으며, 파멸적 상황에서도 최소한 쌀은 절대 끊어지지 않게 정권 차원에서 신경을 쓸 정도[75]였다. 석사학위까지는 각 대학에서 심사, 수여권한이 있으나 박사 학위는 중앙기관인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가 심사하고 수여한다. 박사 학위 수여자 명단은 국무위원장인 김정은이 직접 최종 결재한다. 20세기에는 연간 100명 미만의 인원에게만 박사학위를 수여했으며, 박사 학위 수여가 이뤄지면 로동신문 등 중앙일간지에 박사 학위 수여자 이름과 학위 논문 제목이 실릴 정도였다. 2000년대 들어서야 연간 박사 학위 수여자 수가 100명을 넘어서게 되었고 이 때부턴 이름만 신문에 실린다. 김정은 정권 들어서는 북한 내 대학과 연구기관 규모를 대대적으로 확장하면서 박사 학위 수여자 수 역시 증가하고 있긴 한데 여전이 매년 150-250명정도가 받는다. 기본적으로는 상반기에 1회, 하반기에 1회 수여하는 것이 원칙이나, 핵실험 성공, 정찰위성 발사 성공 등과 같은 국가적 경사가 있으면 관련 분야에 한정하여 특별 심사와 수여[76]가 이뤄지기도 한다.

6. 박사 학위 취득 이후의 진로

박사를 소지한 사람이라면 취업 관련 선택지가 크게 대학 교수, 정부출연연구기관, 사기업, 박사후연구원 정도로 나뉜다.

6.1. 교수

교수는 사실상 많은 박사 학위 보유자들이 선호하는 직업이지만, 최근의 스펙 인플레, 학생 수 감소 등의 영향으로 인해 신규 임용이 끔찍할 수준으로 어려워진 상황이다. 덤으로 대부분의 대학에서 영어 강의 실력해외 연구 경력을 당연하다시피 요구하는 상황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2010년 이후에는 MIT 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도 한국에서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 애초에 그런 레벨의 사람들끼리 수십명씩 몰려와 경쟁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가 있다고 하면 모셔가던 1980년대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나마 교수직 외에도 사기업 등 일자리가 많은 전공의 경우 모두가 교수에 매달리지는 않는 반면, 대학원 위주로 학문 연구가 이루어지고 사기업 등의 일자리가 많지 않은 전공[77]의 경우 박사들 대부분이 교수직이나 정출연 등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78][79] 다만 후자처럼 일자리가 많지 않은 분야의 경우에는 박사 과정을 밟는 사람 자체도 상대적으로 적다. 그리고 어느 학교의 누구 밑에서 지도받고 학위를 땄는지[80]에 따라서도 교수임용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는데, 학계 내의 탑스쿨에서 학위를 딴 경우에는 아무래도 확률이 많이 올라간다. 예를 들어, 산업공학의 경우 포항공대는 박사 졸업생 중 40% 가량이 교수로 임용되었다고 홈페이지에 써 놓았으며, 대부분 대학에는 서울대 카르텔이 형성될 정도로 서울대 출신 교수들이 일정 비율 이상을 항상 차지하고 있다. 또한 교수 선발과정에서는 연구업적을 매우 중시 여기므로, 박사를 취득한 후 포닥[81]을 몇 년씩 하면서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82] 그리고 경력[83]역시 주요 평가요소 중 하나인데, 개중에는 국내 교수 임용을 위한 경력을 쌓기 위해 미국 등의 해외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영어다.

또한 교수나 박사급 연구원에 대한 티오가 일반적으론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전세계 박사는 연간 수십만명 배출되는데 교수 자리는 연 1.6만개에 불과하다. 박사 학위의 임금 프리미엄이 26%인데 석사 학위가 23%다. 즉, 수입이 충분치 않은 사람이라면 진학 전 충분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2012년 기준 조교수 평균연봉은 6,011만원이었고, 10여년이 흐른 현재도 이에 비해 크게 상승하지는 않았기에 사회에서의 인식이나 대우받는 수준에 비해서는 많다고 할수는 없다.[84] 특히 사회에서의 평균 봉급이 꾸준히 상승한 것에 비해 상승폭이 크지 않아 이공계 등의 직업군에서는 학부를 졸업하고 갓 취직한 제자보다 연봉이 낮은 경우도 있다. 물론 연구비 급여, 자문료, 강의료, 인세 등으로 실질소득은 연봉보다 훨씬 높은 편이긴 하고, 연구실이 제대로 운영되는 상위권 이상 공대 교수의 경우 최소 억대에서 웬만한 전문직만큼의 수입은 보장된다. 한편 전공에 따라서도 편차가 있는데, 이공계, 의학계 교수들의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고 인문사회계 조교수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학교에 따라서도 연봉에 큰 편차가 있다.[85] 한편 갓 조교수가 되었다고 무작정 좋아하면 안 되는데, 조교수는 보통 2-3년 계약직이기 때문이다.[86] 물론 조교수를 넘어 살아남아 종신 교수직(테뉴어)을 획득하면 이제부터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 하면서 살 수 있다. 교수들 중에 간혹 학생들에게 폭언도 하고 성격도 막장인 사람들이 있는데 조교수 때부터 참다가 나중에 종신 교수가 되고 나서 본성이 드러난 것. 사실 인분교수 수준만 아니면 잘릴 일은 없으니까 자신만만하다.[87]

교수라는 직업 자체가 사회적으로 명예롭게 인정해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수라는 직업을 선망하지만, 그 이면에는 힘든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새로 임용된 교수가 가장 먼저 맞이하게 되는 것은 업무 폭탄이다. 학과 혹은 학교에서 필요하지만 딱히 본인에게 도움은 되지 않는 온갖 짬처리 업무가 누구에게 내려오겠는가. 또한 본인의 연구실을 꾸려나가고, 동시에 강의 준비까지 해야하는 것도 교수 본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새로 들어온 학생을 관리하면서도 연구실 연구 기반을 세우고, 동시에 과제를 따와서 연구 장비를 꾸리고 학생에게 월급을 줄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제를 따와야하는데, 과제라는게 한정적인 파이를 두고 교수들이 경쟁해서 따오는 구조이다보니 RFP를 보고 제안서를 쓴다고 해서 꼭 과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연구실에는 연구 과제의 진행을 대신 봐줄 선배 학생이 없다보니 교수 본인이 학생의 학위 연구 진행 및 과제 진행을 일일이 봐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야 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교수로 신규 임용이 되면 그 교수는 교수 사회에서 막내가 된다. 공과 계열의 경우 세부 전공이 비슷한 교수끼리 교류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분과 교수들은 학술대회, 심포지움, 워크숍 등을 연다. 이렇게 열린 행사에 참여율이 저조하면 큰 일이 나기 때문에 막내 교수들은 장소 대여, 투고 독려, 명사 초청 등의 온갖 잡일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온갖 업무를 맡는 와중에 정교수가 되기 위해 정해진 연구 실적을 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5년 동안은 많이 힘들 것이다'라는 선배 교수의 얘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이다. 어쩌면 정교수가 된 다음에 연구를 등한시 하는 교수들이 많은 이유는 초년에 연료를 다 태워버려서일지도 모른다. 쉽게 이야기해서 명문대 가기 위해 고등학교 3년을 하루종일 공부에만 몰두하다 명문대 입학하고 나서 1학년을 놀자판으로 만들기 바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6.2.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직업으로는 국책연구소의 정규직 연구원이 있다. 국책연구소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먼저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공계열에서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인문사회계열에서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정출연들이 있고, 이외에도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자체 소관 연구원들도 있다.

국책연구소의 연구원은 사기업 대비 50%에서 70% 정도로 연봉은 낮다. 그 대신, 공무원에 맞먹을 만큼 신분이 안정적으로 보장되고 업무 강도가 현격하게 낮아서 평균 근속연수가 20년을 훌쩍 넘어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박사 학위자들은 교수 다음으로 국책연구소 정규직을 선호하지만, 스펙의 인플레이션이 심해진 현 시점에선 국책연구소 또한 가기 매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6.3. 연구직공무원

연구직공무원의 경우는 업무강도가 꽤 있는데다 말만 연구직이지 실제로는 연구보단 행정 및 기타 잡무를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정말 연구자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거쳐가는 코스로 여겨지기도 한다. [88] 소방관의 경우 박사 졸을 6급 상당으로 채용하는데 경쟁률이 1:3이었다. 물론 이렇게 경쟁률이 낮은 건 수많은 석사들이 박사 따기 전에 미리 걸러지기 때문이다.

6.4. 사기업

박사 학위 소지자는 대체로 대기업 과장급 혹은 그에 준하는 경력을 인정 받으며, 해당 분야에서 적어도 5~7년 정도 일한 경력을 인정 해주는 것이다. 한편, 세부 분야의 무궁무진함을 생각한다면, 구직자가 기업체에서 즉시 필요로 하는 실무 능력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은 높게 쳐줘도 반반 정도이다. 즉, 구인 업체에서 아직 능력이 검증이 되지 않은 구직자에게 꽤나 값비싼 인재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나마 수요가 많고 공급도 많은 특정 분야의 명문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하는게 아니라면, 나머지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박사 학위 소지 자체가 취직길을 상당히 좁히는 효과가 있는 것"을 명심하자. 가격 대비 성능비로 판단하면, 무능한 박사는 무능한 학사보다 훨씬 쓸데가 없다. 언제나 기업체는 박사 학위 소지자를 고용하는데 있어서, 학사 학위 소지자보다는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학사 출신은 대부분 나이도 젊고 그간 학교에서 배운 공부도 박사들에 비하면 거의 맛보기 수준이니 일을 빨리 배울 확률이 높고 임금도 기업입장에선 박사과정들보단 저렴하다. 반면 박사 출신은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대개 특정 분야에 오랜 기간 매달리고 연구했던 특성상 알게 모르게 자신만의 고집이 생길 수밖에 없고 전공분야가 현직이랑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 이상 일을 새로 배우는 게 느릴 확률이 높다. 연구할 때의 습관처럼 학구적이고 실용성없는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거기에 사로잡혀 팀 내에서 트러블이 있을 수도 있는 등 의외로 박사 출신들에게서 폭탄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사실 박사학위자가 학사나 석사만 요구하는 쪽으로 취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럴바에야 차라리 학사 따고 바로 취직해서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즉 박사를 취득하고 학사 직위에 취직하는 것은 박사를 취득하기 위해 소비한 5년 이상의 시간과 2000만원 이상의 돈을 허공으로 날리는 셈.

물론 위의 이야기는 전공에 따라 크게 다르니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다. 공학 분야에서는 박사 학위가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전공 분야와 직무도 존재한다[89]. 실제로 회사 잘 다니다가 갑자기 대학원을 진학하는 사례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는 전공에 따라서 박사 학위가 커리어에 매우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이공계의 연구 분야 직무에서는 박사 학위가 있어야 본격적으로 연구, 정책, 기술 제안을 할 수 있고, 연구 프로젝트 등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직책을 맡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교수, 국책연구기관의 상임연구원 등이 있다.

이공계라고 하더라도 연구를 리드하는 연구 책임자 급의 높은 직책이 아닌 장비 오퍼레이터나 일반적인 실험 또는 실무를 수행하는 연구원이라면 석사 학위 정도로 충분한 경우도 많다 (다만, 이 경우에는 대부분 박사나 상급자가 시키는 연구를 수행해야 하고 자신이 연구를 주도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봐야한다). 가령,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면 박사를 따기보다는 석사 취득 직후 1년이라도 빨리 학예연구사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게 이득이다.

또한 본 문서와 물박사, 대학원생 문서에서도 다루지만,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그에 걸맞은 수준의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수준의 무시를 당할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의 연구 능력과 열정 이외에 사회성[90]과 여러 학자 및 동료들과 교류하고 협업할 수 있는 능력들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개선하는데 있어 상당한 각오를 해야한다. 자세한 사항은 대학원생 문서 참고.

즉, 박사는 취업에 있어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그 자체가 족쇄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의 전문성과 필요성을 입증하고 경쟁을 뚫을 수만 있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6.5. 박사후연구원

6.6. 기타 진로

아예 다르지만 비슷한 길을 가는 의사 간호사는 해당 문서로. 이쪽도 궁극적으론 교수 임용이 목표이나, 직업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 다르다. 물론 그만큼 피로는 배다.

7. Degree Mill과 학력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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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철학과 박사학위에 필요한 지식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나온 점집과 1%의 연관도 없으며, 검색에서 안 나오는 걸로 보아 아마 바로 Degree mill.[91]

Degree Mill (학위 공장)이라 불리는 교육기관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돈만 내면 아무런 심사없이 학위논문을 제출할 수 있게 해 주거나, 아무나 쉽게 입학해서 1년 정도만 다니면 박사 학위를 내준다. 미국에서의 미인가 교육기관 명단은 각종 위키, 타임즈, 뉴욕 타임즈, 미국 교육부 등에서 수시로 발표한다.

상기의 사례가 한국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자 한국연구재단의 외국 박사학위 신고 프로세스도 변경됐다. 과거에는 학위증 사본과 논문만 있으면 신고할 수 있었지만, 그 뒤 해당국 정부의 인가 여부 검토를 거쳐 성적증명서 원본, 출입국사실증명서 원본, 박사학위기 사본, 전자본/인쇄본 논문 제출 등으로 강화되었다. # 따라서, 외국의 학위를 단순히 인가받았다고 끝나지 않는다. # 유명 해외대학은 홈페이지에 영문 성(Surname), 졸업연도, 학위종류만 클릭하면 학위 취득자 목록을 즉시 보여주는 온라인 서비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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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 간 외국 박사학위 신고자 학위 수여국가 순위(한국연구재단, 2022)

미국 신학교 중에는 미국 내에서는 박사 학위로 인정되지만 한국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곳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사이버대학이나 방송통신대학처럼 실제로 출석하지 않고 박사를 주는 곳이나, 논문을 제출하지 않는 곳의 학위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Degree mill에서 신학박사, 철학박사, 문학박사 등을 받는 것은 학력위조나 사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 미국 신학교에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현금을 내고, 정규과정 씹어먹고 박사논문을 제출하여 학위를 취득받는 일이 있었는데 2009년에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이를 허위로 고소했는데, 대한민국 법원은 허위가 아니라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관련 기사. 이유인즉슨 어쨌든 " 해당 학교 학칙에 의거한 기준을 통과하여 학위를 받은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에 허위 학위라고 볼 수 없다는 것. Degree mill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유사과학자, 사기꾼, 사이비 종교 교주, 정치인, 연예인 등이 지목된다.

8. 학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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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왼쪽과 가운데 가운 보다는 더 화려한 편이다.

박사학위복의 경우 학사나 석사학위복에 비해서 묵직하게 장식이 많고 화려한 편이다. 많은 경우 학사학위복과 석사학위복은 거의 비슷하거나 검은색 일색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후드조차 생략되는 경우가 많지만, 박사학위복은 가운(gown), 후드(hood), 캡(cap)의 3대 요소를 모두 갖추었으며, 기본적인 요소들에 더해서 학교 등 수여기관의 재량이 조금 더 반영되는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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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하버드 대학교의 박사학위복 (doctoral regalia). 맨 앞의 것이 아닌 앞에서 2, 3번째가 박사학위복이다.

학위복의 본진인 유럽(영국 제외)의 경우 현대에 들어서는 학위복 등 형식적인 문화가 사라져서 아예 학위복이 별도로 없는 학교들도 많지만, 미국의 경우 전미의 대학들이 어느정도 협의를 하여 학위종류, 전공종류별로 통일성 있는 요소들을 갖추게 되었고, 이는 1890년부터 내려오고 있고 미군정을 통해 미국식 학제가 도입되면서 한국에도 영향을 주었다. 학사모(캡, cap)의 경우에도 한국은 보통은 벨벳으로 만들어진 4각모가 연상되지만, 미국의 경우 6각모, 8각모, 베레모 또는 이중 베레모도 많은 편이다. 장식 외에 박사학위복을 타 학위복과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은 팔에 있는 3개의 줄이다. 학사학위복에는 이 줄이 아예 없고, 석사학위복에는 2개의 줄이 있거나 아예 없다. 하지만 박사학위복에는 무조건 3개의 줄이 들어간다. 한국의 경우 학제가 미국식이기 때문에 학위복(academic regalia)의 디자인 또한 미국의 전통을 일부 답습하고 있다. 한국 대학은 거의 100% 이 룰을 따르고 있으니 학위수여식에 방문하는 경우 알고 있으면 졸업생들의 수여 학위를 구별하는데 참고할 수 있다. 간혹 팔뚝이 아닌 다른 위치, 예를 들면 학사모에 줄이 들어가있는 경우도 있다. 다만 스탠퍼드 대학교처럼 줄조차 없이 디자인만으로 구분하는 학교들도 상당수 있으니 국제적으로까지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다. 학사모의 각의 수가 학위에 따라 다른 학교도 있다. 여담으로 4개의 줄이 들어간 유니크 아이템이 있는데 총장복(presidential regalia)라고 불리는 것이며, 현직/전직 총장 및 그에 상응하는 학계의 지도자급 교수들이 행사에서 입는다. 그러나 해당 학교의 박사학위복과 같은 디자인이며 줄 하나만 차이나고, 단상 밑에서 볼 일은 거의 없는 현실에는 없는 아이템 취급.

9. 박사 학위의 종류

석사 학위와 마찬가지로, 박사 학위는 학술 학위와 전문 학위( 전문박사)로 구분되는데(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3조 제2항 전단), 일반적으로 박사 학위라고 하면 학술학위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종래 학술박사학위의 종류는 다음과 같았다( 구 학위의종류및표기방법에관한규칙(교육과학기술부령) 제2조 전단). 그러나 2024년 2월 20일부로 학사학위나 전문박사학위와 마찬가지로 학칙으로 종류를 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3조). 뒤에 표기한 색은 각 학문 분야 별로 상징 색으로, 학위 가운의 후드 색이기도 하다. 1893년 미국 대학들이 제정한 규정을 한국에서 관행적으로 인용하고 있지만 공통은 아니라 조금씩 다르다. 색을 표기하지 않는 학위는 그 범주가 애매해서 학교마다 학위 색이 제각각인 경우다. 이는 대교협에서 학위기 색을 정식으로 규정하지는 않았기 때문. 다만 학위모에 달린 수술 색깔은 전공에 관계 없이 금색이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한 후, 미국의 J.S.D.(S.J.D.) 과정까지 모방하여 대한민국의 법학전문대학원에도 전문박사 과정을 두는 예가 여럿 생겨났다.

10. 대우

대학에서 수여하는 학위 중 가장 높은 학위로, 학사나 석사와는 달리 박사 학위를 보유한 사람을 호칭할 땐 따로 OOO 박사(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과거보다는 많아졌으나, 여전히 박사를 받아본 적 없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뭔가 참 대단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제법 많다. 분야의 실용성과 돈벌이의 정도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대접해주며 특히나 그 국가에서 명성있는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더욱 그렇다.[95]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명석한 지식의 소유자라고 오버하게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사실 대부분의 박사들은 본인이 연구한 분야를 제외한 분야는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쪽 분야에서 거의 모든 완벽한 지식과 더불어 깊은 이해력을 가진 소수의 특출난 박사들은 학위가 끝나는 시점에서 대부분 명문대에서 알아서 교수자리로 모셔간다.

과거에 비해 박사 학위자가 많아졌기 때문에 오히려 학위 취득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예전에 비해 박사 학위 소지자가 매우 많아져서 변별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한때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학위 장사 식의 박사 학위 수여가 남발되면서 ' 물박사'라는 멸칭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교육부의 대학 평가가 강화되고, 민간의 대학 평가에서 다양한 정성, 정량 지표를 중시하면서, 박사 학위 수여가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이 때문에 Phd 학위 수여자 수는 2020년대나 2000년대나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따라서 박사가 주는 위상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석사까지는 논문심사를 그 대학 내에서 어떻게든 통과시킬 수 있지만, 박사 학위는 국내외로 검증 받은 논문과 심사를 통과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박사학위도 힘센 교수(특히 지도교수) 밑에 있으면 막무가내로 통과되는 경우도 없진 않으나, 정말 힘이 대단하지 않고서는 어렵기에 어쨌든 그 수가 드물다.[96][97] 석사 학위 취득 난이도는 박사 학위 취득 난이도의 반도 못 따라온다. 실제로도 박사 논문 심사시 심사위원들이 정말 깊숙한 부분까지 공격을 해댄다.

박사로서 참다운 대우는 뭐니뭐니 해도 학술 등재지에 출간한 논문을 통해 받게 된다. 만약 PhD 취득자가 학위기만 받고 학술 논문을 쓰지 않는다면 학계에선 진정한 박사로 여기지 않는다. 즉, PhD 학위 소지자에 불과할 뿐이다. 참된 박사라면 자기 주변에서 관찰된 각종 연구 현상을 스스로 탐구하고 합당하게 분석하며 의미 있게 해석하여 문서를 통한 체계된 지식으로 널리 밝히지 않으면 몸이 근질해서 견딜 수 없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학의 교수/연구자 온라인 소개 페이지를 볼때 속이 찬 박사는 먼저 그 사람의 논문 목록부터(특히 최근 5년 이내) 낱낱히 본 다음, PhD 취득 대학, 지도 교수와 출신 학부를 거쳐 상대를 평한다.

박사학위를 끝내고 좋은 돈벌이가 보장되려면 적어도 유명한 기업체에서 돈벌이를 잘하는 기술과 관련된 잠재적인 연구를 해야 되며 아쉽게도 이런 분야는 극히 일부다. 교수 임용은 2022년 현재 기준으로 애초에 너무 가능성이 낮고, 나머지 대부분의 박사들은 이공계라도 정부출연이나 공립연구소를 목표로 하는데 이런 곳은 알겠지만 연봉이 별로 높지는 않다 [98]. 따라서 박사학위 자체라는 것은 사실상 일종에 명예 내지 연구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명서 정도에 불과할 뿐,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기는 어렵다.

특히, 학위 과정 동안에는 좋은 취업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박사 졸업 이후에는 취업이 잘 안 풀려서 수입 측면에서 불리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99]. 때문에 "박사 취득=수입 증가"와 같은 단순한 생각으로 지원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연구 방향과 박사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해 최소한의 고민이 꼭 필요하다.

참고로, 2000년대 이전의 박사 학위 남발이 어느 정도로 심했었냐면, 90년대 후반 대한민국 내에서 수여되는 영어영문학 분야 박사학위 수여자 수가 영국 내의 영어영문학 분야 박사학위 수여자 수보다 많을 정도였다. 경제적 교환 가치와 크게 무관한 인문학 분야의 상황이 이랬으니 타 전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하며, 국제적으로도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대학이 졸업장 공장(Diploma mill)을 운영하도록 용인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다. 2000년대 들어 크고 작은 학력 위조, 가짜 학위, 표절 논란이 전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나서야 국가 차원에서 학위 과정, 전문 학회 및 학술지 운영 등을 까다롭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질적 강화 조치가 이뤄지자 박사 학위 수여자수가 급감했다. 지방권 대학에선 지방거점국립대학의 규모가 큰 전공이 아니고선 박사 학위 수여자를 매년 배출하는 게 불가능해졌고, 인서울 대학의 대학원에서도 소수 전공은 박사 학위 수여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점증하고 있다.

대한민국 박사학위 취득자는 10년 단위로 약 70%씩 증가 하고 있다. 2012년12,243명에서 2022년17,760명 (68.935%) # 다만, 이는 전문박사학위까지 모두 포함한 것으로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박사학위취득자는 국가인재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될 자격이 주어진다. 자신이 직접 DB에 등록요청을 해도 되지만 보통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자동적으로 등록된다고 보면 된다.

10.1. 미국

10.1.1. 전문 학위

미국에서는 M.D.나 기타 전문 학위 소지자도 '박사 대우를 받는다'고 알려져있지만, 미국식 제도와 일본식 제도가 섞인 한국과 비교하면서 생긴 잘못된 도식이고, 정확한 사정은 이렇다.

미국 의대는 의학전문대학원으로 학부 졸업 후 4년 과정이며, MD 학위를 취득한다.
이 MD 학위는 의학박사이며, 미국에서 모든 의사는 의학박사이다. 이 MD는 의료계에서 최종 학위이며, 미국인들은 의료계에 MD보다 더 높은 학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끔 미국 의대 교수들이 가진 PhD 학위는 의학 연구와 밀접한 생화학, 분자생물학 등등의 분야에서 다른 학과 사람들과 똑같이 경쟁하며 받은 다른 학과의 PhD이며, 누가 따라고 해서 딴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더 깊은 연구를 위해서 개인적으로 취득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보니 엄청난 업적과 연구 실적을 의학계 석학들도 평생 MD 학위만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대유행때 바이러스 연구의 1인자로 주목받은 앤서니 파우치도 MD 학위가 전부이다.
즉 미국에서 의사=의학 박사=MD이며, 권위있는 교수급 의사가 되려면 추가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레지던시), 연구 실적을 쌓는 것이지 어떤 학위가 더 필요한 게 아니다. 미국에 (임상)의학 PhD라는 것은 없다.

반면 (독일식 제도를 따온) 구 일본제국에서는 의사=학부를 졸업한 의학사(학사)이며, 교수급 의사가 되려면 의학사 취득 뒤에도 대학에 남아 연구를 하고 (임상)의학박사 학위를 따로 따야 했다. 그런데 이걸 영어로 번역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의학사를 MD, (임상)의학박사를 PhD라고 적게 되면서 미국 MD의 위상에 관해 오해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은 일본처럼 의대가 6년제고 졸업시 의학사를 수여하는데, 그 뒤로는 미국과 유사한 시스템이다보니 교수가 되려면 실질적으로 필요한 건 전문의 자격과 논문 실적인데, '야 그래도 교수가 학사면 가오가 상하지 않냐? 박사 학위는 따야하지 않겠냐.'라는 생각으로 (임상)의학박사 학위까지 딸 것을 요구한다. 그러다보니 이 '(임상)의학박사'과정은 다른 PhD 코스와 달리 반드시 의사여야만 입학이 가능하고, PhD 코스 중에도 진료를 보고 일을 해야하니 다른 학과의 박사과정처럼 빡세게 실험을 하지도 않는다. 수업도 듣고 논문도 쓰긴 하지만, 다른 과의 PhD만큼 많은 것을 요구하진 않는다. 지식과 실무 능력은 이미 검증이 된 사람들에게 연구 능력만 검증하는 것이다보니... 한국에서 젊은 의대 교수들은 먼저 교수가 되고 그 뒤에 PhD를 따는 경우도 많다.

JD나 기타 법학 학위에 대해서는 더 복잡한데 JD란 학위의 성립과 발전 자체가 마케팅적 요소가 꽤 강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후반까진 변호사들은 JD 학위가 있어도 스스로를 Dr.라고 칭하지 말라고 윤리 규범에 명시까지 되어있었다. 이후 JD 학위가 넓게 보급되고 변호사의 직역적 이득을 챙기거나, 로스쿨제를 더 강화하거나 하기 위한 목적으로 JD도 닥터다! 라는 목소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연 주에 따라서 윤리 강령이 다르거나, 닥터라고 자칭하는걸 막진 않지만 특히 의료소송을 맡는다면 닥터라고 칭하지 말거나[100], 그걸 극도로 조심하고 면책조항을 달라는 권고가 있는 등 뭐라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또 PhD가 자기를 Dr.라고 잘 칭하지 않는 것보다 더 강하게 JD가 자기를 Dr라고 칭하지 않는 관습이 남아있다.

JD도 PhD냐? 로 넘어가면 더욱 복잡한데, 일단 JD는 학제상 '박사 학위'가 요구하는 '연구자로서의 기량'을 검증하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JD제도 이후 JD가 사실상의 법학 최고학위가 되었고 JD의 학사과정이 상당히 빡빡하게 운영되는 점을 들어 법학에서는 JD가 PhD급 위상을 가진다는 주장도 있고, 이에 대한 절충안으로 교수나 연구자로 일하는 사람만 자기가 원할 때만 Dr라고 불러주거나, 아예 Dr라는 칭호 자체를 의사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쓰지 말자는 의견도 있다. 박사 대우를 받는다는 것도 M.D.와 비슷하게 교수 임용 자격이 되는 것은 맞으나, 그렇다면 다른 교수 임용에도 무조건 Ph.D.가 필요하냐?면 그것도 아니고 단지 실무학위로서 법학 교육을 실무자에게 맡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교수 임용 자격을 주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이나 기타 추가 학위과정 입학 요건만을 가지고 JD=PhD급 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폐가 생길 수도 있는 점이다. 한편 JD 자체가 MD나 PhD보다 학문이나 전문가 과정으로서의 '치열함'이 약간 떨어진다는것은 보편적인 인식이긴 하다. # 또한 미국에서 대부분의 J.D. 들은 스스로를 박사라고 칭하지 않는다. 전통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J.D.들은 Dr. 대신 이름 끝에 Esq. 를 붙이면서 변호사임을 알릴 수 있다. JSD의 경우에는 사회에서도 박사 학위로 인정받으며, 박사 칭호를 쓴다.

또한 미국에서는 한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애초에 M.D.와 J.D.가 Ph.D.보다 먼저 생겼다는 문제도 있다. J.D.(Doctor of Jurisprudence)는 1793년, M.D.(Doctor of Medicine)는 1807년, Ph.D.(Doctor of Philosophy)는 1861년 처음 수여되었다.[101] 의학 분야에 Ph.D. 과정이 생긴 것은 1918년 이후이다.

즉 결론적으로 M.D., J.D. 등의 전문학위에는 여러 기술적, 사회적, 문화적 특수성이 얽혀있기 때문에 '박사 학위 소지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등의 비교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모범답안이다.

여담으로 MD, JD등의 학위 표기를 할 때에는 줄임말 표기법을 준수하는 정식 표기는 M.D. 로 마침표 넣는 것이 맞으나, 21세기에는 이렇게 딱딱 마침표를 넣는 것은 매우 딱딱하거나, 심하게 권위를 내세우려는 것이거나, 낡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 MD로 '간단하게' 표기하는 것이 늘었다.

10.1.2. 의학


교수 임용 요건은 다음과 같다.
학위 미국 교수 가능 한국 교수 가능
미국 M.D. o o
한국 M.D. ?[106] x
M.D. Ph.D. o o
M.D. M.B.A. o x
M.D. M.P.H. o x
M.D. + 전문의 o o[107]

10.1.3. 법학

박사학위가 필요한 공무원에 임용가능 여부
미국 한국
미국 J.D. o x (공무원) [112], o (교수)[113]
미국 LL.M. x x
미국 S.J.D. / J.S.D. o o
한국 법학전문석사(J.D.) x x
한국 법학박사(Ph.D.) O

11. 기타

12. 한국인 최초의 박사

여기에는 학술 박사(Ph.D.)만 기재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미국에서 공부한 법학 박사나 의학 박사는 Ph.D.가 아니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는다. 유일한(1932년, 법학 J.D.)과 서재필(1904년[126], 의학(생리학[127]) M.D.)의 경우 당시에는 법학 박사와 의학 박사로 인정되었으나, 현재는 법무 박사(한국에서의 칭호는 '박사'), 의학 석사로 인정된다.[128]
한국인 최초의 박사
연도 이름 대학 전공 비고
1910년 이승만 프린스턴 대학교 정치학[129][130] 최초의 박사
1924년 윤치형 큐슈제국대학 의학 최초의 의학박사
1926년 이원철 미시간 대학교 이학[131] 최초의 이학박사
1929년 송복신 미시간 대학교 공중보건학[132] 최초의 여성 박사
1931년 김도연 아메리칸 대학교 경제학 최초의 경제학박사
1934년 최황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공학 최초의 공학박사
1935년 김치선 달러스 신학교 신학 최초의 신학박사
1936년 임호식 홋카이도제국대학 농학 수여일 기준 최초의 농학박사[133]
우장춘 도쿄제국대학 논문 통과일 기준 최초의 농학박사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 수여된 최초의 박사[134]
연월일 이름(괄호 안은 학위수여번호) 분야 대학
1952년 4월 26일 전풍진(1호)[135]
김동일(2호)
원태상(3호)
이학 서울대학교
이춘근(4호) 의학
김두헌(5호)
이병도(6호)
문학
1953년 11월 28일 이종일 공학
1955년 3월 28일 심종섭 농학
1960년 9월 30일 황산덕 법학

1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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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긴 아직 이르단다.[138]

13.1. 박사인 가상인물


창작물에서는 주인공에게 유용한 도구들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며, 특히 로봇물에 등장하는 박사들은 주인공이 탑승하는 로봇을 개발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1] 이렇게 화려한 가운을 입고 대학 총장과 지도교수의 축하를 받으며 학위식을 치른다. [2] 뒤에 of philosophy(Ph.D)를 붙여서 쓰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명칭 문단 참고. [3] 학부 학위를 받지 않은채 박사 학위를 받은 극소수 케이스도 있긴 하다. [4] 경영석사를 M.B.A. 또는 MBA 로, 대한민국을 R.O.K. 또는 ROK 라고 쓰는 것과 같다. [5] 박사가 드글드글하는 빅뱅 이론에서는 지겹게 들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닥터 XXX라고 불리는 와중에 혼자 석사 학위자라서 미스터 왈로위츠라고 불리는 게 주된 개그. [6] 당연히 몰라서 그렇게 부르지 않을 경우엔 큰 결례가 아니다. [7] 잉글랜드 지역 대학들이 박사 학위를 도입할 때 처음에는 영어식 약칭인 DPhil을 사용하기 시작하다가 미국과 다른 유럽 국가 등 전 세계 다수의 추세에 맞추어 라틴어식 약칭인 PhD로 표기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옥스퍼드 대학교는 초기 표현 그대로 DPhil이라는 영어식 줄임말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8] 예를 들어 이승만, 장면, 조병옥, 김규식 등이 있다. 이 영향으로 지금도 노인들 중에서는 이들을 박사라고 부르시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9] 단 박사 학위 소지자라도 교수는 예외. 교수는 그냥 교수라고 부르면 되니까. [10] 김정은 집권이후 약 3천명을 배출했는데, 같은 기간 남한이 배출한 약 16만명에 비하면 2%에도 미치지 못한다. [11] 고전식 발음으로는 리켄티아 도켄디이다. [12] ['닥터’ 또는 ‘독터’'라고 읽는다] [13] [다만 정식으로는 의사를 M.D.(Medical Doctor)라는 명칭으로 박사와 구분한다.] [14] ['독토르' 혹은 '도크토르' 정도의 발음이다] [15] 대표적으로 법학박사는 대부분 법관 내지 유럽 궁정의 참사관 등 실무를 처리하는 중요 관직을 독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학에서의 학문이란 기술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일종의 전문직 양성체계이기도 했는데, 귀족들은 기술자라기보다는 통치계급으로서 제왕학을 익히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므로 이러한 고등 교육을 받는 경우가 이례적이었다. 귀족들의 교육 방식은 기사 양성의 그것을 토대로 사회성과 인맥, 처세술, 교양 등을 배우고 전문적인 지식은 가신이나 초빙한 가정교사를 통하여 배우는 것이었다. [16] 수재야 말로 조선의 지방시험 합격자급인데, 개나소나 되는 조선의 난이도와 달리 중국에선 4단계의 시험을 합격해야 얻는 고된 과정이므로 수재부터는 사대부 즉 지배층으로 취급해주었다. 거인은 량치차오에 의하면 수재중에 단 1%만이 합격하는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다. 그 중에서 3년에 300명내지 400명만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 조선과 달리 별시 증광시 알성시 같은 특별 추가 시험은 거의 없었다. [17] 학사 학위만 가진 채로 노벨화학상의 수상자가 된 다나카 고이치 같은 사람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18] Theologiae Doctor (Th.D.), Jurisprudentiae Doctor (J.D.), Medicinae Doctor (M.D.) [19] 중세 후기 스콜라 철학 시대의 오컴의 윌리엄, 둔스 스코투스 같은 학자들은(물론 이들은 신학자이며 철학자이다) 중세신학의 흐름에 새로운 길(Via Moderna) 주장하며, 신앙의 영역과 이성의 영역의 분리를 주장했다. 새로운 길(근대의 길)의 이들의 방법론은 근대철학의 선구자로 취급되며, 이 같은 흐름은 인문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종교개혁에 까지 파급된다. [20] 실험이 필수적인 이공계 박사는 약간 차이가 있다. 석사 시절의 실험실에서 다른 실험실로 옮겼다면 연구 주제를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시약, 키트, 기기 등이 다르고 같은 결과를 보기 위한 실험을 하더라도 이전에 있던 실험실과 다른 순서로 실험을 진행하는 등 기술적인 방법에는 차이가 있으므로 과정생이 기술적인 부분을 습득할 기간 동안 대놓고 방임하지는 않는다. 물론 실험실에 대한 적응이 완료된 이후로는 얄짤없이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 [21] 박사 과정에 들어올 사람쯤 되면 공부하지 말라고 거꾸로 매달아 놔도 공부하는(...) 독종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방식이 효과가 있다. [22]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교수가 최소한의 학생지도에 관심을 보인다는 전제하에서이다. 아예 제자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자기 학생들을 어떻게든 피해다니려 하는 막장스런 케이스도 가끔 있는데 이게 바람직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23] 그나마 교수에게서 이런 차갑고 매정한 답변이라도 듣는다면, 그건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은 되고 있다는 증거이니 차라리 다행이다. 외국 기준에서 지나치게 수동적인 대학원생은 아예 이 분야에 열의가 없다고 간주하여, 이런 충고를 해줄 정도의 관심조차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24] 괜히 박사의 영문명이 Doctor of Philosophy인 게 아니다. 즉 철학적인, 다시 말해 "남들과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박사라고 볼 수 있다. [25] 실제로 과학자들에 있어 최고의 권위를 지닌 상인 노벨상을 받은 연구나 업적은 그 방법이나 발상이 정말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다. 처음 보고 철학논문인 줄 알았다는 드 브로이의 물질파 이론,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 파블로프의 개 실험 등이 있으며 아니면 우연히 발견했거나. [26] 실제 사례로,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물질파의 아이디어를 박사 학위 청구 논문으로 내고 그 논문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드 브로이가 매우 유명하다. [27] 경우에 따라서는 이 뒤에 "교수는 기왕 아무도 모르는 거 자신이 맞는다고 우겨본다" 가 붙기도 하는데, 이건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학계에서 학문이 발전하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이 옳다고 주장하면 다른 학자들이 반박을 하거나 보완을 하거나 하는 식인데, 이게 전부 다 그 나름의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근거를 갖추고 이론을 내는 것이다. 교수들이 평범한 일반인들처럼 타당한 근거 없이 이론을 만드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실제로 저렇게 우기다가 대표적으로 망한 사례가 르네 블롱들로의 ' N선'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같은 과학자인 우드에 의해 처절하게 발렸다. [28] 학위 수여 이후 자신의 일자리가 얼마나 보장되는지는 여기에 달려 있으므로 박사생들로서는 필사의 총력전을 기울여야 한다. 게다가 학술적으로도 그런 설명이 구태여 필요하냐는 학자들의 파상공세로부터 자기 일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29] 대개 다음의 둘 중 하나다. 1) 대부분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나 혼자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 것 2)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현실적인 제약(방법론적으로 이론을 수립하고 증명하는 데 어려움이 너무 큼, 주장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가 마땅히 없거나 만드는 데 극히 어려움)이 있어서 아무도 뛰어들지 않는, 속칭 도박을 하지 않는 것. [30] 대표적으로 심리학의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이 있다. 사회심리학 전공의 박사 과정생 세 명이서 우연히 인류학 책을 읽다가 유레카! 를 외치고 나서 만들어낸 이론이다. 그 뿌리가 인문학에 닿아 있기 때문에, 처음 이 이론을 발표할 때 철학자들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자 동료 학자들이 발표 중에 짜증내며 나가 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치심리, 종교심리 등의 분야에 폭넓게 확장되어 잘 확립된 이론이 되었다. [31] 일부 이공계에서는 박사 학위 전공이 나중에 일하는(연구하는) 전공과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생물학의 경우 현대 생물학으로 오면서 더 세분화됨에 따라서 이런 경향은 다른 학문에서보다 더 자주 나타난다. [32] 지도교수의 학술적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하거나, 더 발전시켜 나가거나, 혹은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아예 대립하는 관계에서는 학위 자체가 안 나온다. [33] 별별 걸 다 요구하는 한국에서 자신이 소위 '사회성'이 없는 수준을 떠나 기본적인 배려가 없다는 평판을 들을 정도의 성격이라는 이유로 '박사해서 연구실에 틀어박혀 지내자'라는 생각이라면 깔끔하게 박사 진학 포기하는 게 낫다. 박사는 학위 따려고 석사보다 더 오랜 기간(평균 6~7년)을 연구실이라는 작은 사회에 틀어박혀야 하고, 박사라는 권위 때문에 오히려 취업에 있어서도 전문성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어서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그 시간들은 날리고 나이만 많은 학사 또는 석사가 되어버린다. [34] 이건 학자보단 테크니션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35] 지금은 강단에서 볼 일이 드물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정년에 들었거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권해서 취득하거나 했기 때문. 고학력자가 부족하던 옛날에는 '구제박사'라 하여 학‧석사 학위만으로 국내 대학에서 임용된 교수들이 나중에 대학원 정규과정을 밟지 않고 논문 제출만으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있었고 말이다. 이 제도는 1975년에 종료되었다. [36] 물론 그 시대에도 윤기중처럼 편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을 거절하고 석사로 남은 사람도 있었고, 요즘도 진중권처럼 석사 교수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 [37] 해방 후 경성제국대학의 일본인 교수들이 다 본국으로 돌아가자 거의 대부분의 교수진이 공석이 되어서 이런 식으로 학사 학위만 있는 조선인들로 빈자리를 채웠다. 이 당시 박사 학위는 매우 희귀한 명예였다. [38] 이들은 국가기술자격의 끝판왕인 기술사 자격증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실무 경험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난이도가 끔찍하게 어렵지만 취득에 성공하면 박사와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39] 이것도 교수요원이 워낙 부족하던 시절의 고육지책이라, 박사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는 있기 어려운 일이다. 하여간 대학원생 시절부터 출강을 시작한 교수들 중에는 그 덕분에 무려 40년 근속으로 정년퇴직한 예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는 20대도 교수로 나설 수 있고 과거에는 실제 존재했으나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다. [40] 전공분야, 국가, 학교, 연구실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주의. [41] 논자시, Qualifying Examination (Qual Exam), 종합시험(종시) 등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42] 학교에 따라 부르는 말이 다른데 예심이라고 하기도 하고 중간발표라고 하기도 한다. 예심의 진행사항도 학교마다 차이가 있는데 본심 심사위원을 미리 위촉하고 예심부터 전부 참여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정식으로 논문심사위원 위촉을 하는 것은 예심 후 본심 전이 일반적이며, 예심의 경우는 관심있는 학생(보통 지도교수의 제자들)들 및 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에서 오픈식 발표를 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별도로 결과보고를 제출하여 본심 청구를 하게 된다. [43] 보통 해당 학과 교수들만 위촉되나 가끔 타 학과 교수가 위촉되는 경우가 있다. [44] 박사 논문 심사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4년제 대학 조교수 이상 또는 (국책)연구기관의 책임연구원급 이상의 직급이어야 하고, 연구직공무원의 경우 연구관이어야 한다. [45] 교수님들의 동의를 제대로 거치면 한 번 더 추가 기회를 줘서 총 세 번이 된다. [46] 미국의 경우 명칭도 학교마다 학과마다 차이가 있다. 위에서 말한 Prelim이 Qualification Exam이라고 불리는 학과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또 아예 없는 학과도 있고 사실상 100% 다 붙여주는 학과도 있다. 그러나 이름있는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자격시험 난이도가 낮은 학교들은 도저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을 만큼 가공한 양의 학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또 명문대 명문학과일수록 수질관리를 위해서 박사자격시험에서 무자비하게 갈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별다른 연고 없이 덜컥 미국 명문대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가 대충 학석사 마인드로 수업만 듣고 시간보내다가 학업능력과 발표능력이 안 돼서 이 단계에서 피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드미션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47] 흔히 논문 디펜스라고 부르는데 발표를 마친 뒤 질의응답 시간에 심사위원의 공격적 비판을 학생과 지도교수가 논리로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48] 이 과정에서 본인이 쓴 논문에 대한 20여 분의 발표가 진행되고 이후 심사위원회와의 질의응답이 이루어진다. [49] 기업체 연구소나 정부출연 연구소는 연봉은 더 높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가 더 힘들고, 반면에 대학부설 연구소는 연봉은 낮으나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50] 물론 논문제출자격시험, 연구지도를 포함한 필수 학점 이수 및 공인영어성적 제출도 졸업요건에 들어가지만 논문만큼 비중이 크지는 않다. [51] 그래도 명문 공대의 경우에도 교수가 상위권 저널 1~2개의 에디터 직함을 걸어놓고 포닥뿐만 아니라 박사 과정생들까지 동원해 논문을 정신나간 것처럼 미친듯이 찍어내는 연구실은 있기 마련이고, 이런 연구실에서 교수 눈에 잘 들어서 핵심 인력 테크를 타면 넘사벽의 논문 스펙을 갖추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한국처럼 강요하지 않을 뿐. 강요하지 않는다고 안분지족 하고 있으면 엄청나게 시간낭비를 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박사 과정에 진입할 만한 레벨의 사람이면 자기가 원하는 취업시장(해외/국내/학계/비학계 등)에서 원하는 스펙이 어떤 것인지도 시장조사를 틈틈이 해서 업데이트를 하고 자기 스펙에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52] 학과마다 다른데, 네이처 ㅇㅇ, ㅇㅇ 저널 등 해당하는 모든 학술지의 이름을 규정으로 적어 놓는다. 대부분 IF 10 전후 이상이 기준인 듯하다. IF가 낮은 학술지 및 커뮤니케이션은 노카운트 혹은 0.5개 취급 [53] 덕분에 다른 나라처럼 충분히 졸업 가능한데도 교수가 학생을 더 붙잡아 놓고 노예처럼 쓸 수가 없다는 장점이 있거나 [54] 참고로 일본의 논문박사 제도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 대개 5편 이상의 논문 실적을 요구하는 등 과정박사에 비해 더 높은 논문 실적을 요구한다( 예시 : 큐슈대학 농학부). 먼치킨의 논문박사의 예시로 201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나카무라 슈지의 박사논문( 해당링크(일본어))의 경우는 무려 25편(해설논문 8편, 연구논문 17편)의 논문 실적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단지 대학원 박사 과정이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논문박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려는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다. [55] 물론 압도적인 해외 스펙은 이런 저런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느나, 압도적인 해외 스펙을 가지고 있으면, 한국에서 굳이 일자리를 찾을 필요가 없는 측면도 있다. [56] SCI와 SCIE의 차이는 단지 역사적인 것이다. 상하위 저널이 아니라, 처음에 역사적인 각 분야의 코어 저널들을 SCI로 분류하고 필요에 따라, 나중에 중요성이 있는 다른 저널들을 SCIE라는 형태로 확대 포함한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시간에 따라서 예전에 유명하던 저널들은 다소 교조적이 되어 시대의 흐름에 뒤쳐질 수도 있고, 학문의 흐름에 따라 예전에는 주목 받지 못하던 분야가 새로 대두가 될 수도 있다(물론, 역사와 전통이 깊은 저널들도 자체적인 혁신을 통해서 교조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역동성을 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고려하여 SCI/SCIE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SCIE는 SCI 저널들에 비하여 비교적 늦게 목록에 포함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기준을 만족하는 저널들의 목록이다. [57] 반전이 있는데 이 사람은 논문을 쓰지 않아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한 것이며, 자기 지도교수가 아닌 다른 교수를 살해한 것이다. # [58] 다만 케바케가 크게 작용한다. 오히려 박사수료는 중도포기자로 간주하여 석사 졸업자보다도 못한 취급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59] 다만 석사 취득 이후 연구실에서 부리나케 쫓아내는지, 계속 자리를 지키도록 하는지를 통해 알 수는 있다. 전자는 보기 싫은 놈이지만 어쨌건 대학원에 돈 주고 들어온 사람을 실력이 없는 것도, 기본 대학 윤리를 위반한 것도 아닌데 쫓아낼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도와주는 것이다. 석사생을 쫓아내다간 오히려 위에서 털리기 때문. 당연한 이야기지만 졸업 이후 곧바로 추방해 버리며, 해당 학생이 교수를 찾아가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추천서 한장밖에 없다. 대부분의 대학원에서는 박사과정에 입학할 때 교수추천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60] 예 - UMich 공대 [61] Direct Ph.D.라고 부른다. [62] 다만 자대 석사 후 박사 과정을 진학하는 경우에는 석사 때 들어놓은 코스웍이 박사과정 코스웍으로 일부 인정되어 학사 졸업보다는 빠르게 퀄과 연구에 매진 할 수 있다. [63] 소위 퀄 [64] AP 8과목 인정+ 학사 입학 뒤 5.5년 만에 박사를 취득한 것이다. [65] 루스 로렌스가 1989년에 생후 17년 2개월에 위상수학 연구로 수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최연소 박사학위를 경신했으나 루스의 학교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였다. [66] 따라서 능력만 된다면 미국과 유사하게 석사없이 박사 과정 입학이 당연히 가능하나, 한국의 일반적인 이공계열 학생이 영국박사 유학을 오고 싶은 경우, 석사 과정을 하면서 연구 자체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나서 지원을 하는 편이 연구프로포잘 같은 것을 제대로 쓸 수 있다. 즉, 필수 지원조건이 아니지만, 있으면 유리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67] 루스 로렌스 참조. 루스 로렌스는 13세에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를 수석으로 조기입학한 뒤 2년만에 최우수 졸업했고 17세 2개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68] 제인 구달 문서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사 석사 없는 사람에게 박사를 준 것은 제인 구달이 8번째였다고 한다. (1962년 입학 허가.) [69] 실용 중심 대학이 연구 중심 대학보다 Taught master에 약간 관대한 편이다. 산학계 저널에 논문을 하나라도 게재했다면 금상첨화이다. [70] 볼로냐 프로세스 이후 코스워크를 추가한 학교들도 있다. 그러나 세미나 수준이며 미국식 코스워크에 비하면 새발의 피 [71] 독일에선 지도교수의 말 한마디면 어학시험이 면제되기도 하며 필요에 따라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논문을 작성할 수도 있다. 모든 서류절차가 지도교수의 한마디로 일사천리에 진행되는 일도 다반사 [72] 국내 국책연구기관(주로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서 연구생 코스를 밟거나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대학원 과정을 밟아 연구소에 학생으로 소속되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이다. (애초에 UST의 경우는 독일의 막스플랑크/헬름홀츠연구소의 연구대학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개교한 것이기도 하다.) 계약된 각 연구기관에서 근로 및 연구를 수행하고 학위논문 지도 또한 대부분 연구원 내 계약 사용자(지도 박사)가 담당한다. 학위는 각자 소속된 대학교에서 나오는 방식이 된다. [73] 다만, 주 1회 세미나 참석은 의무로 되어있기 때문에 완전히 학교와 동떨어져 사는 것은 아니다. [74] 문/이과에 따른 차이가 있다. 인문계 대학원에서는 졸업때까지 본인 연구 이외의 프로젝트를 강제로 하는 경우가 없지만, 이공계는 연구실에 따라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75] 한정된 자원을 짜내서 기른 소수의 인재가 굶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망한다면 정권의 위신에도 문제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기 때문이다. [76] 특별 심사, 수여는 기준이 훨씬 헐겁게 이뤄진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이 성과를 내면 박사 학위를 주겠다는 식으로 독려하는 것이라 풀이된다. [77] 대표적으로 법학과 [78] 생명과학과 문서에 인용된 분류학 분야 연구자 조사 결과, 국내 교수가 45명이고 국내 박사과정 학생이 96명이었다. 교수 정년을 22년, 박사 연수를 5년으로 계산하면 대개 1년에 배출되는 박사 중 10% 정도의 인원만이 교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79] 당연히 기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이공계와 달리 전공을 살린 밥벌이 자리가 극히 드문 인문계열의 경우는 전공 불문 교수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80] 다시 말해 지도교수가 학계 내에서 어느정도 명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영향을 준다. 포닥 경력이 충분하고 질 좋은 논문 실적도 보유한 후보자가 박사 시절 지도교수와 현재 임용되고자 하는 학교의 높으신 분이 사이가 좋지 않아 임용에 어려움을 겪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었다. [81] 박사 후 연구과정, 포스트닥터 [82] 보통 공고상에는 최근 3년 이내 연구업적 300%(KCI 또는 SCI급 혹은 그 이상의 저널의 단독 저자 등재 1편을 100%로 봄)을 최소 지원자격으로 제시하지만, 실제로 채용경쟁에 뛰어드는 박사들을 보면 그 몇배 이상의 논문을 찍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학력인플레가 심해지고 교수 자리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교수 임용에 성공하는 경우는 "신진 연구자이지만 천재적인 머리로 연간 논문을 3~4편씩 찍어내는 머신" 또는 "이미 어느정도 커리어를 쌓은 기성 학자(교수)로서 좀 더 나은 직장을 찾는 경우"로 양극화 현상을 보이는 중이다. 즉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대부분의 보통 박사들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중이다. [83] 여기서의 경력에는 연구경력 뿐만 아니라 교육경력도 포함된다. [84]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절대 적은 편이 아니다. 2012년 당시 국내근로자 평균연봉은 3천만원이 안 되던 시기고 #, 금융권이나 대기업 평균연봉도 5천만원이 안 되었던 것 #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다. 또한 조교수는 교수 중에서도 초임이기 때문에 여느 직업군의 초임 평균연봉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전문직급 연봉이다. [85] 상위권 사립대에서 특히 연구업적이 있는 교수들은 연봉이 많이 높은 편이나 그렇지 않은 교수들과는 편차가 크다. 전체 평균적으로는 국립대 교수들이 균일하게 높으나 교수 역시 공무원인지라 사립대에 비하면 특출나게 높은 교수는 없다. [86] 조교수는 실질적으로 교수 수습기간이다. [87] 다만 인분교수도 처음부터 그 정도는 아니었고 구타와 폭언만 했다는 건 알아두자. 오죽하면 피해자가 당한 것에 대해서 다른 피해자들조차 믿을 수 없다고 했을정도다. [88] 최근에는 너무 먹고살기가 힘들다보니 예전에 비해 인기가 높아지긴 했다. 하지만 정말 밥벌이를 위해 연구직공무원을 노리는 사람들은 박사보다는 석사만 졸업 후 시험쳐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9] 대표적으로 인공지능, 머신러닝 연구 관련 분야는 제대로 하려면 박사 학위가 필요한 경우가 많고, 2023년 현재까지도 그 수요가 상당하다 [90] 여기서 사회성이란 기본적인 사회 윤리 준수 능력 나 눈치 보는 것을 뜻하는게 아니다. 서양에서는 비상식적인 행동만 안하면 크게 문제삼지 않지만, 한국은 별의별 걸 다 요구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아첨을 잘해야 한다. [91] 사진에 나온 인물이 '철학박사'라고 쓰인 이유는 미국 미조리 단칸대학교 철학박사 학위, 스리랑카 국제대학교 심리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해외에서 의학/신학 등 일부를 제외하고 박사학위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Ph.D.를 그대로 철학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92] 문학이라고 해서 오해하기 쉽지만 어문학 외에 역사학도 포함되어 있으며, 더 넓혀서 보면 사회학, 법학, 정치학 이외의 다른 사회과학 분야(신문방송학, 심리학, 사회복지학 등)들도 문학박사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다. 광의의 '인문학'이라고 보면 된다. [93] 그런데 정작 의학의 색은 붉은색이다. 중세시대의 의학교수들도 전부 붉은색 옷을 입었다. [94] 학교에 따라서는 붉은색이 되기도 한다. [95] 박사를 월급이 낮다고 완전히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깔볼 사람들은 '힘'과 '반지성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사실상 없다. [96] 국내외 유명인들이 박사 수료라고 적은 경우가 많은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즉, 대학에 어떻게든 연줄과 돈으로 박사 과정은 밟을 수 있지만, 논문이 통과되어야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데 이 논문은 그 대학 외부인원이 검증한다.(물론 해당 대학 교수도 심사에 투입한다.) 그 사람들까지 매수하면 되지 않을까해도, 박사 학위 심사위원은 그 이름이 함께 영원히 기록되는 것이 문제. 구체적으로는, 논문 인준서에 이름과 자필 서명 혹은 인감급 도장이 찍히며, 인준서 원본은 학위 수여 대학 측에서 보관하고, 인준서의 컬러 복사본은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서 그 논문과 함께 영구 보존, 관리된다. 심지어는, 논문이나 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어 학위가 취소된다 해도 해당 논문은 논문 목록에서 삭제되지 않으며, 논문 본문과 인준서 역시 정상적인 논문과 똑같이 관리된다. 즉, 공개처형인 셈. 만약 정말 되도 않은 논문을 통과시켜주면 그 위원들까지 함께 병신이라고 욕을 먹고, 평판이 매우 깎여 자신들의 활동에도 심대한 지장을 주기에 대단히 짜게 평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2021년부터 학위 논문 관리 제도가 개편돼서 학위가 취소된 경우 취소 당사자의 요청이 있으면 서지사항 노출 중단, 납본 논문 회수 혹은 파기가 가능해졌다. 석사학위 논문이지만, 조원의 취소된 학위 논문은 서지 사항이 삭제되었다. [97] 해외의 사례로 오보카타 하루코의 박사논문이 있다. 일본 소재 대학에서 인준된 박사학위논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종이 논문 또는 PDF파일로 영구히 보존되는데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서 그녀의 박사논문은 지금도 정상적으로 검색 되며 2014년 10월 6일 박사학위취소'(平成26年10月6日学位取消) 라는 사실까지 기록되어 있다. (해당링크(일본어)) 그야말로 확인사살이다. [98] 근속연수가 비슷하다고 가정할 때, 연봉 자체는 대기업(사기업) 연구소가 정부출연이나 공립연구소에 비해 높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부출연이나 공립연구소 같은 곳들은 공무원에 가까울 정도로 정년 보장이 된다는 점과, 연구를 통해 부수적으로 들어오는 인센티브가 상당해서 박사 학위 소지자라면 사기업보다는 정부출연 취직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99] 본인이 대학원생으로 고생할 때 남들은 회사 다니면서 돈 벌고, 본인이 졸업해서 구직할 때쯤엔 승진해서 대리 정도는 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취업하면 봉급이 금방 올라 수익 측면에선 역전이 가능할 지 몰라도 미리 번 돈으로 투자를 해서 자산을 불릴 기회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이는 상당한 리스크라 봐야한다 [100] 자칫 의사를 사칭하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01] Perspectives on professional doctorate education in the United States [102] 박사학위를 요구하는 대학원에 대해서 궁금할 수도 있는데 MPH 학위 같은 경우 입학 조건에 MD, PhD 같이 박사 학위를 요구한다. [103] 보통 영국학제에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5년제인 경우가 많다.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5년제 의대를 운영하는 국가 많으며 미국의 의전원과 같은 전문대학원도 3년제인 경우가 많다. [104] 다만 영국 대학의 일반 학과는 3년제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영국은 대학 입학 전 과정이 한국보다 1년 더 길기 때문에 그걸 감안하면 대학 졸업에까지 걸리는 시간은 똑같다. [105] 4, 5, 6년제 의대가 모두 있다. [106]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나 한국MD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하고 사실상 석박사과정을 따로 수료한뒤에 진출한다. 한국의 경우만봐도 의대기준 6년과정으로 미국 학부보다 짧은데 이보다 짧은 4~5년제 MD들도 임용하는덕에 차이가 있을수밖에 없다. 중국만해도 5년제 과정만 마치면 MD가 주어지는데 이 학위로 미국에 진출하는 사람들이 엄청많다. [107] 임상과의 경우 임용 자체는 가능하나, 계속 교수를 하려면 교수하면서도 박사학위를 따야한다. 기초의학계의 경우 M.D.만 가지고는 아예 불가능하다. 이는 M.B.A나 M.P.H. 등을 추가로 갖고 있지만 박사학위가 없는 전문의 소지자도 마찬가지이다. [108] 흔한 '대학생'의 이미지와 다르지만, 일단은 학문을 하는 과정이다. [109] 서울고등법원 2009. 6. 16. 선고 2008나72136 판결 [110] 이 주장과 관련하여, J.D.(1793년)가 M.D.(1807년)보다 먼저 생겼다. [111] 다만 한국에서도 미국 로스쿨 JD만 가지고 교수가 된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외대 로스쿨 황정욱 교수: http://builder.hufs.ac.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30794&siteId=law&menuType=T&uId=3&sortChar=A&linkUrl=menu03_f.html&mainFrame=right [112] 판례에 따르면 박사학위를 필수요건으로 하는 공무원 자리에 미국 JD만으로는 자격이 안 된다.(서울고등법원 2009. 6. 16. 선고 2008나72136 판결에 나온다.) [113] 안경환이나 전효선처럼 미국 JD학위만으로 국내 교수로 임용된 경우도 있다. 관련 법률에서 교수 임용 자격요건은 학위와 연구 경력을 합산하기 때문에 꼭 박사학위가 없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상술한 바와 같이 “박사가 아닌 학위를 가지고 박사로 행세하였다”며 사후적으로 논란을 가져왔다. [114]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참주인연합이라는 군소정당의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115] 유사역사학을 믿는 이공계 박사,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 인문학 박사 등 자신의 전문분야 외에는 아주 무지한 사람들을 생각보다 많이 볼 수 있다. [116] 괴테의 경우가 모든 분야를 섭렵했기로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마찬가지. [117] 한자가 정말로 석사학위를 뜻하는 碩士이다. 다만 원래는 돌과 모래가 많다는 의미에서 石沙洞이었다가, 이곳에 춘천교육대학교가 있어 한자를 바꾼 것이다. [118] 시인 조지훈의 고향마을로 유명하다. [119]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데이터 베이스에서 박사논문정보 및 소장 장소(칸사이관)가 검색되었다.(출처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보고번호(박사논문)가 을호(乙号)박사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논문박사이다. 다만, 열람 가능 여부는 불명이다. [120] 일본에서는 박사학위에 준하여 취급하지만 국외에서는 박사학위로 취급하지 않는다. 저기서 만기퇴학이란 영구수료와 동의어다. [121] 교수가 자신의 소속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부정부패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금기로 작용한다. 일본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게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122] 円滑な博士の学位授与の促進, 単位取得満期退学, 単位取得退学とはなにか 単位取得退学の仕組みと最終学歴を解説 [123] 오죽하면 지도교수가 "머리는 좋은데 음악만 하고 다닌다"고 했을 정도다. [124] 극소수인 이유는 병역판정검사에서 1~4급을 받은 자는 대개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어떠한 방법이든 간에 병역의무를 해결하고 오기 때문. 다만 예외 사례는 있다. 예를 들어 학부 시절까지는 1~3급이었던 자가 뒤늦게 몸이 망가져서 대학원 석사과정 1년차에 재병역판정검사를 받았을 때 4급이 뜬 사람이 소집대란으로 인해 석사 과정 내내 실무지로 소집되지 못 한 채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경우. 특히 전문연구요원에 합격할 수 있는 난이도가 낙타가 바늘구멍 뚧는 것 보다 어려운 문과라면 더더욱 그렇다.물론 전문연구요원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이공계라도 다른 사람과의 편입 경쟁에서 진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이외에도 박사과정 석사연구요원이라면 석사 졸업 이후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복무하는 것으로 병역을 대신하는지라 당연히 예외이다. [125] 만약 학사나 석사 과정을 조기졸업했거나 학석사 연계과정 혹은 석박사 연계과정 등을 통해 들어왔다면 남들보다 1살 어린 나이에 박사과정을 밟는 것이 가능하다. [126] 박사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박사이다. 다만 Ph.D.가 아닌 M.D.이다. [127] 생리학으로만 표기되어 있지만, 학위의 성격 및 서재필이 임상의로 3년 근무한 점 등으로 볼 때 병리생리학으로 여겨진다. 생리학은 생물학, 병리생물학은 의학이다. [128] 미국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수여한 대학은 예일 대학교이며 수여일 기준 2013년이 최초입니다. 의학 박사 학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며, 확실하게 박사 학위(Ph.D.) 수여가 확인된 것은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의관에게 수여된 것이 최초입니다. 그 전까지는 법무 박사(한국에서는 '박사' 대우)와 의무 박사(한국에서는 '석사' 대우)만 수여하였습니다. [129] 학위명은 Ph.D.(Doctor of Philosophy; 철학박사), 전공은 정치학이다. 국내에서는 전공 명칭을 가져와서 학위명을 붙이는 것이 관례이지만, 외국은 2021년까지도 여전히, 의학, 신학, 법학 이외의 박사학위는 모두 Ph.D.로 수여하고, 칭하고 있다. 논문 제목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이었다. 참고로 미국에서 의학박사는 1942년, 법학박사는 2012년 최초로 수여되었다. 그 전까지는 의무박사, 법무박사만 수여하였다. 최초의 박사(전문 박사와 학술 박사를 아울러 이르는 박사) 학위라면 서재필이 좀 더 빠르지만, 이 문서에서 말하는 박사는 학술 박사만을 가리킨다. [130] 이승만 박사학위 논문 [131] 이원철 박사학위 논문 요약본 [132] Doctor of Public Health, DrPH. Grace Poksyn Song Line, M.D., Women’s Medical College, Tokyo, M.S.P.H. [133] 임호식은 1936년 2월 24일 교수회에서 논문이 통과된 직후 최초의 농학박사라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 임호식의 정식 학위수여일은 1936년 4월 14일( 출처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이며 1936년 4월 19일자 조선중앙일보에서 "수일 전에 학위를 취득했다"라고 보도 되었다. 우장춘은 임호식보다 앞선 1936년 1월 23일 논문이 통과되었고, 동년 5월 4일 문부성에서 정식학위수여( 출처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가 있은 후에 보도가 되었다. # 따라서 논문통과일 기준으로는 우장춘이 빠르나, 학위수여일 기준으로는 임호식이 빠르다. [134] 흔히 현상윤이 대한민국 최초 박사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고려대에서 현상윤에게 학위 수여를 결의하고 문교부의 승인을 받은 것이 1952년 12월이며, 실제 학위 수여식은 1953년 봄에 거행되었다. 그러나 이미 1952년 4월 서울대 졸업식(학위수여식)에서 이학박사 3명, 의학박사 1명, 문학박사 2명이 탄생했다. [135] 서울대학교에서는 같은 날 6명에게 박사학위가 수여되자 수여 번호 선정을 위한 기준을 마련했다. 수여 당시 박사학위자가 가장 적은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고, 나이가 어릴수록 우선순위를 주었다. 해방 직후에는 대한민국에는 의학, 법학, 문학 분야의 박사 학위 소지자는 약간 있었으나, 이공학 분야 박사 학위 소지자는 한 자리수였기 때문에 이학에 우선순위가 돌아갔다. 그 중에서도 1909년생인 전풍진이 가장 나이가 어려, 대한민국 1호 박사의 영예를 얻었다. 그는 1992년 9월 12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136] 다만 상술된 바와 같이 현대 북한에서 박사 학위는 구소련권 국가 중 취득 난이도가 가장 높을 정도로 대단히 엄격하고 짜게 수여한다. 사실상 일회성 쇼라고 볼 수 있다. [137] 다만 이태규는 생전 과학사학회 학술대회 대담에서 최삼열에 대해 회고하면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증언하는데, 이태규의 기억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최삼열이 창씨개명을 하여 확인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138] 학습만화 짤방의 클리셰 중 하나로 통진출판사에서 1993년에 발행한 학습만화 시리즈 중 20권 '세계의 발명 발견'에서 나온 장면. 원조는 ExCF 미스터 판당고의 작품이며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패러디된다. [139] 진중한 면도 있지만, 독자들의 흥미를 위해 개그성도 가지고 있다. [140] 대머리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141] 사실 평범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현실의 박사들은 당연히 박사 학위가 있을 뿐인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42] 이 경우 박사 본인이 아예 전투원이 되기도 한다. [143] 백발(머리숱이 적은 경우도 있고 많은 경우도 있다.), 콧수염, 흰 가운, 안경은 기본 장착. [144] 닥터가 치유자라는 의미로 자신의 이름을 골랐다는 설정 때문에 오역 같지만 해당 설정은 스티븐 모팻의 창작설정이다. 적어도 클래식 시즌에서 닥터는 의료인보다 탐구자의 모습을 많이 보였다. [145] 발명 계열은 아니고, 수학 박사와 철학 박사 학위 있음. [146] 심리학 박사 학위 보유자. [147] 스스로를 박사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지능이 낮은 미치광이다. [148] MCU 기준, 박사학위가 무려 7개다. [149] 작중에 Master(스승, 석사) 라고 부르면 "난 박사라고!"라는 대답이 있다. 이쪽은 박사학위 2개. [150] 타이틀 명칭이 '공학박사'이다. [151] 법학박사가 된 후 고학력 백수가 된다… [152] 레너드는 실험물리학, 셸든은 이론물리학, 라제시는 천체물리학 박사. [153] 하워드 왈로위츠는 공학 석사다.(…) [154] 의학 박사지만 사실상 발명 박사. 예전엔 매드 사이언티스트 문서에도 있었다. [155] 최연소 박사. [156] 최초의 여성 박사. [157] 학습만화 특성상 연구자/지식인의 호칭은 대부분 박사로 통일된다. [158] 사실 인간이 아니다. [159] 어머니인 아카기 나오코나 교수였던 후유츠키 코조 등의 인물들도 박사 학위 소지자로 추측된다. [160] 카츠라기 미사토의 아버지 [161] 비윤리적인 연구로 인해 학위를 박탈당했다. [162] 정박사한정. [163] 4부 종료시점에서 모리오쵸에서 체류한 기간 동안 관찰한 불가사리를 토대로 해양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64] 이쪽은 이름도 博士다. [165] 학위가 무려 11개다! [166] 러시아어 학위가 있다. [167] 한번 짜가박사학위를 보여준 적이 있어 진짜 박사인지 의심되나 어쨌든 닥터라고 부르니까 박사 [168] 고든 프리맨 같은 경우는 MIT 이론 물리학 박사(Ph.D. in Theoretical Physics), 클라이너 박사는 고든의 지도교수였기 때문에 같은 분야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정확한 분야는 불명이나 작품 특성상 물리학쪽으로 예상된다. [169] 이세계로 넘어오기 전 칼리지에서 마법과 주술에 대한 박사학위를 썼다. [170] 단, 실제로 영어 재단위키에 이런 아이디를 쓰는 회원들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일종의 역할놀이 사이트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냥 자캐를 박사로 설정했을 뿐.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아이디를 요원 아무개 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 오프라인에서 요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171] 위의 아마노 히로시와 마찬가지로 이름이 博士 [172] 전체 이름을 음독으로 읽을 경우 '하카세 하카세(박사 박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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