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23:29:34

금주법/미국

금주법 시대에서 넘어옴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금주법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color=#fff><colbgcolor=#bb133e> 상징 <colcolor=#000,#fff> 국기 · 국장 · 국가 · 국호 · 엉클 샘 · 충성의 맹세 · 컬럼비아 · 흰머리수리 · 아메리카들소
역사 역사 전반 · 13개 식민지 · 미국 독립 전쟁 · 골드 러시 · 서부개척시대 · 아메리카 연합국 · 남북 전쟁 · 제1차 세계 대전 · 광란의 20년대 · 대공황 · 제2차 세계 대전 ( 노르망디 상륙 작전 · 태평양 전쟁 · 진주만 공습) · 냉전 · 9.11 테러
정치 합중국 · 백악관 · 캠프 데이비드 · 건국의 아버지들 · 미국 독립선언서 · 미국 국회의사당 · 헌법 · 정치 · 연방정부 · 연방 행정각부 · 의회 ( 미국 상원 · 미국 하원) · 정당 · 행정구역 ( · 해외영토 · 도시 목록 · 주요 도시 · 주요 도시권) · 대통령 ( 명단) · 부통령 · 하원의장 · 지정 생존자
치안과 사법 사법 전반 · 대법원 · 미국의 경찰제도 ( 군사화) · 보안관 · SWAT · USMS ( 연방보안관) · 텍사스 레인저 · DEA · ATF · 국적법 · 금주법 · FBI · ADX 플로렌스 교도소 · 사형제도 · 총기규제 논란 · 마피아 · 갱스터
선거 대선 ( 역대 대선) · 선거인단 · 중간선거
경제 경제 ( 월 스트리트 · 뉴욕증권거래소 · 나스닥 · 대륙간거래소 · CME 그룹 · 실리콘밸리 · 러스트 벨트) · 주가 지수 · 미국의 10대 은행 · 대기업 · 미국제 · 달러 ( 연방준비제도) · 취업 · 근로기준법 · USMCA · 블랙 프라이데이
국방 미합중국 국방부 ( 펜타곤) · 육군부 · 해군부 · 공군부 · MP · MAA · SF · CID · NCIS · AFOSI · CGIS · 미 육군 교정사령부 · 미군 · 편제 · 계급 · 역사 · 훈장 · 명예 훈장 · 퍼플 하트
문제점 · 감축 · 군가 · 인사명령 · 교육훈련 · 징병제(폐지) · 민주주의/밈 · 미군 vs 소련군 · 미군 vs 러시아군 · NATO군 vs 러시아군
장비 ( 제2차 세계 대전) · 군복 · 군장 · 물량 · 전투식량 · MRE · CCAR · 새뮤얼 콜트 · 리처드 조던 개틀링 · 존 브라우닝 · 유진 스토너 ( AR-15 · AR-18 · AR-10 · M16 VS AK-47 · M4A1 vs HK416) · M72 LAW · 리볼버 . SAA · 레밍턴 롤링블럭 · 헨리 소총 · 윈체스터 M1866 · 콜트 · M4 셔먼 · M26 퍼싱 · M1 에이브람스 · M2 브래들리 · M270 MLRS · M142 HIMARS · F-86 · 스텔스기 · F-22 · B-29 · B-36 · B-52 · AH-1 · AH-64 · 핵실험/미국 ( 맨해튼 계획 · 트리니티 실험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 팻 맨 · 리틀 보이 · 비키니 섬 핵실험 · 네바다 핵실험장) · 핵가방
육군 · 해군 · 공군 · 해병대 · 해안경비대 · 우주군 · 주방위군 · 합동참모본부 · 통합전투사령부 · USSOCOM · 해외 주둔 미군 ( 주한미군 · 주일미군 · 한미상호방위조약 · 한미행정협정 · 미일안전보장조약 · 미국-필리핀 상호방위조약 · 람슈타인 공군기지) · AREA 51 · NATO · NORAD ( 산타 추적)
외교 외교 전반 · 여권 · 영미권 · 상임이사국 · G7 · G20 · Quad · IPEF · G2 · AUKUS · JUSCANZ · TIAR · 미소관계 · 미러관계 · 미영관계 · 미국-프랑스 관계 · 미독관계 · 미국-캐나다 관계 · 미국-호주 관계 · 미국-뉴질랜드 관계 · 미일관계 · 한미관계 · 미국-캐나다-영국 관계 · 미영불관계 · 파이브 아이즈 · 미중러관계 · 대미관계 · 미국 제국주의 · 친미 · 미빠 · 반미 · 냉전 · 미국-중국 패권 경쟁 · 신냉전 · ESTA · G-CNMI ETA · 사전입국심사
교통 아메리칸 항공 · 유나이티드 항공 · 델타항공 · 사우스웨스트 항공 · Trusted Traveler Programs ( TSA PreCheck · 글로벌 엔트리 · NEXUS · SENTRI · FAST) · 교통 · 운전 · 신호등 · 주간고속도로 · 철도 ( 암트랙 · 아셀라 · 브라이트라인 · 텍사스 센트럴 철도 · 유니온 퍼시픽 · 캔자스 시티 서던 · BNSF · CSX · 노퍽 서던 · 그랜드 트렁크 · 마일 트레인 · 커뮤터 레일) · 그레이하운드 · 스쿨버스 · 차량 번호판 · 금문교 · 베이 브릿지 · 브루클린 대교 · 맨해튼교 · 윌리엄스버그 다리
문화 문화 전반 · 스미스소니언 재단 (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 MoMA · 아메리카 원주민 · 개신교 ( 청교도 · 침례교) · 가톨릭 · 유대교 · 스포츠 ( 4대 프로 스포츠 리그 · 프로 스포츠 리그 결승전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 NASCAR · 인디카 시리즈 · 미국 그랑프리 · 마이애미 그랑프리 ·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 · 조깅) · 관광 ( 하와이 · 사이판 · ) · 세계유산 · 자유의 여신상 · 러시모어 산 · 워싱턴 기념비 · 링컨 기념관 · 타임스 스퀘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 디즈니 파크 · 미키 마우스 · 스타워즈 시리즈 · 마블 시리즈 · · 브로드웨이 · 영화 ( 할리우드) · 미국 영웅주의 · 드라마 · 방송 · 만화 ( 슈퍼히어로물) · 애니메이션 · EGOT ( 에미상 · 그래미 어워드 · 아카데미 시상식 · 토니상) · 골든글로브 시상식 · 요리 · 서부극 ( 카우보이 · 로데오) · 코카콜라 ( 월드 오브 코카콜라) · 맥도날드 · iPhone · 인터넷 · 히피 · 로우라이더 · 힙합 · 팝 음악
언어 영어 · 미국식 영어 · 미국 흑인 영어 · 영어영문학과 ( 영어교육과) · 라틴 문자
교육 교육전반 · 대학입시 · TOEIC · TOEFL · SAT · ACT · GED · AP · GRE · 아이비 리그 · Big Three · ETS · 칼리지 보드 ·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 Common Application · 기타 교육 및 유학 관련 문서 · IXL
지리 스톤 마운틴 · 그랜드 캐니언
기타 아메리칸 드림 · 생활정보 ( 사회보장번호 · 공휴일/미국 · 미국 단위계) · 급식 · 비자 · 미국인 · 시민권 · 영주권 · 미국 사회의 문제점 · 미국 쇠퇴론 · 마천루 ( 뉴욕의 마천루) · 천조국 · 'MURICA · OK Boomer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b133e> 건국 이전 선콜럼버스 시대
( 아메리카 원주민)
식민지 시대
( 13개 식민지)
혁명 시대
건국 ~ 내전 연합 기간 연방 시대 제퍼슨 시대 호감 시대 잭슨 시대 내전 시대
내전 ~ WW1 재건 시대 도금 시대 진보 시대 1차 세계 대전
전간기 ~ WW2 광란의 20년대
( 금주법 시대)
대공황 시대 2차 세계 대전
냉전기 전후 시대 민권 시대
( 베트남 전쟁 시대)
레이건 시대
21세기 탈냉전 시대 현대 시대 }}}}}}}}}
금주법 시대
Prohibition Era
파일:roaring-twenties-prohibition-getty-514877106.jpg
금주법 단속으로 압수된 주류
<colbgcolor=#bb133e><colcolor=#fff> 시기 1919년 ~ 1933년
대통령 우드로 윌슨 / 제28대
워런 G. 하딩 / 제29대
캘빈 쿨리지 / 제30대
허버트 C. 후버 / 제31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제32대
주요 마피아 알 카포네 (시카고 아웃핏)
자니 토리오 (시카고 아웃핏)
카를로 감비노 (감비노 패밀리)
러키 루치아노 (제노비스 패밀리)
프랭크 코스텔로 (제노비스 패밀리)
마이어 랜스키 (제노비스 패밀리)[1]

1. 개요2. 금주운동(금주법) 이전 미국의 술 문화
2.1. 1700년대2.2. 1800년대
3. 금주 운동4. 금주법 입법
4.1.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이라는 설4.2. 독일계 이민자 견제의 일환이었다는 설4.3. 마피아 배후설
5. 시행 결과6.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
6.1. 수요 측면6.2. 공급 측면6.3. 관리 측면
7. 금주법 폐지 과정8. 여담9.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 The Prohibition
Section 1. After one year from the ratification of this article the manufacture, sale, or transportation of intoxicating liquors within, the importation thereof into, or the exportation thereof from the United States and all territory 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of for beverage purposes is hereby prohibited.

Section 2. The Congress and the several States shall have concurrent power to enforce this article by appropriate legislation.

Section 3. This article shall be inoperative unless it shall have been ratified as an amendment to the Constitution by the legislatures of the several States, as provided in the Constitution, within seven years from the date of the submission hereof to the States by the Congress.
제1절. 이 조항이 비준된 지 1년 후, 미국과 모든 사법권이 미치는 영토[2]에서 음료용 주류의 제조, 판매, 또는 운송, 수입, 수출은 금지된다.

제2절. 의회와 여러 주는 적절한 사법 조치를 취함으로써 이 조항을 동시에 강제할 수 있는 억제력을 행사한다.

제3절. 이 조항은 여러 주의 입법 기관에 의해 헌법의 수정안으로써 상정된 지 7년 이내 비준받지 못한다면 무효화될 것이다.
미국 수정헌법 18조

의 제조, 판매, 운송, 수출입을 금지하던 수정헌법 18조를 뜻하는 표현. 줄여서 Prohibition[3]이며 이 수정헌법이 통과되어 적용되던 1919~1933년은 Prohibition Era로 굳었다. 알려진 바와 다르게 의외로 술을 마시는 행위 그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닌, 미국 영토 내에서 법 시행 직후부터는 주조와 술의 매매, 운송 행위를 할 수 없게 만든 법이다. 즉, 후술하듯 속지주의 원칙을 따르는 미국 법 체계에 따라 외국 영토와 영해, 공해 등에선 미국 시민권자라도 술의 제조와 매매, 운송 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음주 그 자체와 법 제정 이전에 제조한 술의 소지 금지 등의 의무는 없었으므로 이 조건을 충족한다면 미국 영토 내에서도 대놓고 술 마실 수 있는 길은 어느 정도 있는 법이었다.

2. 금주운동(금주법) 이전 미국의 술 문화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술을 즐기는 국가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러 이민자들의 다양한 문화들이 자원과 물자가 풍부한 미국 땅에서 섞이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뭐든 크게 만들던 기조[4] 음주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살기 팍팍하면 곡물주건 과실주건 소비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미국은 뼈 발라먹기 귀찮다고 노예들에게 치킨(닭다리, 닭날개)을 던져주던 매우 풍요로운 나라였다.[5]

2.1. 1700년대

1700년대까지 식민지 사람들은 발효된 복숭아 주스, 진한 사과주, 을 마셨다. 이들은 대부분 서인도 제도에서 수입하거나 서인도 당밀 증류해 만든 것이었다. 술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사람들은 바비큐, 장날, 선거 때마다 술 주전자나 술이 든 그릇을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선거 후보자들은 공짜 술을 나눠줬고 이에 인색한 후보자는 이길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 금욕적인 뉴잉글랜드 사람들도 술을 많이 마셨다. 청교도들은 알코올을 '신의 선한 창조물'이라고 불렀는데 자랑스럽지만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1770년이 되자 미국인들은 매 끼니마다 술을 일상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눈뜨개'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술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갓난아기(!)를 포함한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술을 마셨는데 아기들은 부모들이 마시고 남은 럼 토디 머그잔 바닥의 설탕물을 마시며 어려서부터 알코올을 접했다. 한 사람당 알코올을 연간 3.5갤런(약 13.25리터) 남짓 소비했다. 참고로 여기서 3.5갤런 알코올은 일반적인 술 3.5갤런이 아니라 ​순수 에탄올 3.5갤런​을 뜻한다.[6] 미국 혁명이 일어날 무렵에 평균적인 사람이 ​80프루프짜리 술을 연간 8.75갤런(약 33리터) 마신다는 것인데 현재 소비 수준보다 45% 높은 수치다.
그래도 당시에는 고위층이 주로 술을 마시는 편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도 종종 술을 마셨는데 오크렌트의 책에 의하면 조지 워싱턴은 농장에 증류기를 가지고 있었고, 존 애덤스는 매일 진한 사과주를 들이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했고, 토머스 제퍼슨 와인 수집뿐만 아니라[7] 자기가 직접 호밀을 길러 위스키도 만들 정도였다. 제임스 매디슨은 매일 위스키를 한 파인트씩 마셨고, 미합중국 육군 사병들은 1782년 이래로 매일 배급의 일환으로 4온스(113.34g)의 위스키를 받았고, 조지 워싱턴 자신은 '강한 주류의 온건한 사용으로 인한 이점은, 모든 군대에서 경험되었으며[8],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선거 유세하면서 사이다[9]와 맥주를 돌렸다. 메사추세츠 주지사였던 새뮤얼 애덤스는 주류사업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술을 물처럼 마셔댔던 셈이다.

2.2. 1800년대

1800년대가 되자 영국이 노예제도와 관련됐다고 미국의 럼주 생산과 당밀 생산에 참여를 중단했고 미 연방 정부는 럼주에 세금을 물리기 시작했다. 럼주의 소비가 그렇게 해서 줄어드는 와중에 중서부 지대에 이른바 ' 옥수수 벨트'[10]가 생겼는데 버번 위스키의 재료가 될 옥수수를 운반하다가 상하는 걸 막기 위해서[11] 농부들이 아예 옥수수를 현지에서 위스키로 만들어서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이 옥수수로 만든 엄청난 규모의 버번 위스키 생산량 덕에 1820년대에는 위스키 한병의 값이 고작 25센트밖에 안 했는데 이는 당시 커피, 와인, 맥주, 심지어 우유보다 더 싼 가격이었다. 거기에 영국 해군 준사관 이하에게 희석한 럼주를 매일 지급하던 관행을 그대로 따르던 미합중국 해군 미합중국 해안경비대도 영국의 간섭때문에 비싸진 럼 대신 농가에서 병에 마구 따라져 나오는 버번 위스키를 납품받아 지급하는 것으로 바꾸면서 위스키 소비가 폭증했고 규모의 경제 덕에 단가가 계속 싸지면서 전국적으로 증류소가 5배 이상 많아졌다.
당시 위스키 소비가 어느 정도였냐면 도시에선 노동자가 주말 동안 퍼 마신 술 때문에 숙취에 절어서 월요일에 직장에 못 나와도 사장들 본인들부터가 술에 쩔어서 출근을 제때 못 했으므로 이를 당연시해줬을 정도였다. 1830년에는 마을 종이 11시와 오후 4시마다 울렸는데 ' 그로그주(酒) 마실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영국인 여행자였던 프레데릭 마얏은 저서 《A Diary in America》에서 남긴 말이 있다.
"미국인들은 술 한 잔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다. 누군가를 만나면, 술을 마셔야 한다. 헤어지면, 마셔야 한다. 당신이 누군가와 친분을 맺으면, 마셔야 한다. 당신이 거래를 끝내면, 마셔야 한다. 만약 싸우게 되면, 마셔야 한다. 화해하게 되면, 마셔야 한다. 날씨가 더우면, 마신다. 날씨가 추워도, 마신다. 선거에 성공하면, 마시면서 기뻐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시면서 욕을 한다. 그들은 아침 일찍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밤늦게 떠난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시기 시작하고, 곧 무덤에 갈 때까지 마신다."
1830년이 되면 1인당 80프루프짜리 술을 1주마다 1.7병씩 마심으로써 연간 순수 에탄올 섭취량이 7갤런에 달했다.

어쨌거나 이런 기조가 1900년대 초까지 계속돼서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이 현상을 도저히 관망할 수가 없는 정도가 되니 수정헌법 18조가 나올 만했다. 단지 금주를 권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강제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3. 금주 운동

금주 운동의 시작은 크게 사회적인 이유와 종교적인 이유가 바탕이었다. 이민자들이 들어오며 수많은 국가의 술들이 미국으로 유입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의 음주 문화는 범용적으로 광범위하게 대중화되었다. 무엇보다 음주를 주로 즐기는 계층은 이민자 등 하층민 출신들이 많았고, 이들 내에서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인구 수가 급증하면서 각종 질병에 따른 의료적 문제와 가정폭력 등 범죄의 급증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찾아오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청교도적 교리가 강했던 미국의 종교 단체와 서서히 목소리를 내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던 여성 인권 단체에게 있어 음주로 인한 사회적 해악은 상당히 큰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었고, 이들은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금주 운동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은 청교도를 중심으로 구미권에서 사회 개선 운동이나 도덕 재건 운동이 일어나는 시기라 마침 금주 운동도 최고로 고조되었다. 이미 유럽 각국에서는 금주 운동 단체가 출범했으며 영국에서는 1835년에 전국 절대 금주 교회가 출범하여 금주 집회가 열었다. 술의 대안으로 홍차를 밀면서 금주 운동은 전 세계로 퍼졌으며 19세기 후반에 스위스,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에서도 금주 단체가 성립되었다.

4. 금주법 입법

미국에서도 1890년대 들어서 금주동맹이 결성되면서 금주에 대한 연방법 제정이 본격화되었다. 금주법 입법을 주도한 측은 농촌 지역의 개신교 세력인 금주 십자군과 로비 단체인 안티 살롱 동맹, 기독교 여성단체인 여성기독교금주연맹 등이었다.

특히 금주주의 페미니스트 운동가 캐리 네이션(Carrie Nation)[12]은 ' 예수의 불독'을 자칭하며 술집을 폐쇄하기 위해 직접 도끼질을 하다가 30번이나 체포되기도 했다.[13] 당시에는 보수 성향 여성단체뿐 아니라 노동자 여성들의 의견을 수렴한 사회민주주의나 사회자유주의 정당들도 금주가 대세였다. 여성들이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금주를 요구한 이유는 남편이 일을 끝내고 오면 매일 술을 마시고 더 나아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페미니스트들의 금주법 찬성은 단순한 정치적 운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운동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실천적인 필요에 더하여 과학과 제도의 발전으로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는 진보혁신주의적 사회기풍이 더해지면서 진보적 정치의제로서 금주법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1917년에는 이미 미국의 주 중 2/3 이상이 금주법을 시행하고 있었고 12월 8일 상원에서 수정헌법 18조가 발의되었으며 1919년 1월 16일에 이르자 48개 주 중 3/4인 36번째의 주 차원 동의가 이루어졌다. 이후 그 헌법 조에 근거한 볼스티드 법(Volstead Act)안이 1919년 10월 28일 의회를 완전히 통과하고 제정되었다. 이에 민주당 정권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당시 의회는 공화당이 다수인 상황이라 재상정을 거쳐 그대로 통과시킨 후 미국 법률[14]에 따라 1920년 1월 17일부터 여성의 참정권 부여와 함께 전국에 걸친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당시에 만들어진 볼스티드 법(Volstead Act)이 알코올 농도가 0.5% 이상이면 불법으로 규정지었다.[15] 즉, 대놓고 법률에 '술 금지'라고 적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술에는 알코올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실질적으로는 모든 술이 걸릴 수밖에 없는 기준이다. 결국은 헌법에서 술 거래를 빼도 박도 못 하게 위법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1920년에 이 법은 미국 전역에서 시행되었다.

4.1.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이라는 설

미국도 초기 식민지 시대 때 매사추세츠의 법원에서 럼, 위스키, 와인, 브랜디 같은 주류를 불법으로 규정한 적이 있다. 그러다 184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금주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감리교가 이를 주도하였다. 특히 목사 마크 A. 매튜스는 정치적 부패와 성매매를 술과 연관시켜 금주운동을 전개해 나갔는데 그 결과 메인 주에서 약간 성공을 거두어 1851년에 법률로 통과된 적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내에도 금주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특히 대표적으로 근본주의 신학자 존 그레샴 메이첸은 술에 대한 금지는 교회에서 이뤄져야 하지 정부가 해야할 역할이 아니며 무엇보다 성경은 '금주령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수정헌법 제18조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외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1910~20년대 들어서 미국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와 도시 이주민 유입, 대량의 범죄 발생 등을 구조적인 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음주, 흡연, 성적인 문란 등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했다.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하는 술집을 정치 부패의 온상으로 간주하여 금주법을 주도해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4.2. 독일계 이민자 견제의 일환이었다는 설

제1차 세계 대전 때문에 악화일로로 치달은 미국 독일 양국 간의 외교 감정으로 말미암아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이민자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1919년 1월에 수정헌법 18조를 제정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독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당시 손쉽게 뛰어들 수 있었던 양조업을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이 시각에서는 볼스티드 법의 기준인 0.5%가 맥주를 노리고 정해졌음을 근거로 든다. 당시 시판 중이었던 맥주의 알코올 농도가 2.5% 내지는 3% 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반박이 되어 있다. 양조업 자체가 미국의 전체 산업에서 그다지 크지 않은 업종인데 금주법의 결과로서 모두가 예측할 수 있었듯이 거의 모든 남성이 마시는 술을 금지함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일단 미국은 독일계 이민자의 비중이 굉장히 큰 나라인데 급증하는 산업 발달 덕에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을 겪고있어 이들의 미국 적응을 돕고 추가적인 인력을 끌어오기 위해 미국 정부는 사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아일랜드계[16], 이탈리아계[17] 등 주류 앵글로 색슨 계열 미국인들이 하얀 흑인이라고까지 멸시하던 민족들의 적응에도 사력을 다하던 시기였는데 미국이 그나마 인종적 유사성[18] 때문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게르만 계열 독일인들의 적응을 견제하기 위해 그런 법을 만들었다는 것은 모순이다.

더군다나 당시 미국의 주류산업의 중심은 위스키와 진이었고 그 다음이 포도주였다. 한국인들이 만주까지 가서 벼농사를 지었듯이 전통적으로 위스키는 영국(스코틀랜드), 포도주는 프랑스, 맥주는 독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실제로 이 나라 출신 사람들이 주류업을 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위스키와 진이 압도적인 주류상품이었고 가정용/종교제례용으로 포도주 수요가 있는 것이 그 다음이었다. 당연히 잉글랜드와 프랑스계가 양조업을 주도하고 있었고 금액 기준으로 미국 주류 소비량의 80%가 포도주와 위스키 진으로 거래되었으며 맥주는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전 세계에서 비교적 맥주 소비가 굉장히 적은 나라에 속했고 금주법 당시 마피아들이 밀조/밀수했던 술도 90%가 위스키의 밀조주인 문샤인이었다. 스피크이지라고 불리던 밀주 판매점에서도 대부분은 위스키와 그 칵테일만을 취급했다. 미국인들이 맥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나아졌다곤 해도 지금도 미국은 맥주는 집이나 경기장에서나 마시는 음료고 바에서는 위스키나 와인을 마시는 것이 보편적이다.

4.3. 마피아 배후설

한편 이 악법이 결과적으로 마피아 세력을 키워준 탓에 처음부터 마피아 세력에서 은밀하게 밀어준 게 아니냐는 가설도 있다. 이때 성장한 마피아들의 자산총액은 21세기로 치환하면 애플사 총액의 10배 이상이라는 조사까지 있어서...

물론 그랬을 가능성은 없다.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으로 그런 거지 당시에는 금주법에 대한 데이터도 없었던 만큼 마피아가 이득을 볼 거라고 예측하기도 어려웠을 테고 마피아들도 금주법이 시행되고 나서야 돈이 될 것같다며 뛰어든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어차피 정부가 금지하는 이상 마피아 외에는 딱히 밀주할 자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금주법 운동은 양지에서나 가능한 거지 음지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금주법을 주동한 것은 사회운동가들이기도 하고.

5. 시행 결과

역사상 이보다 더 기만적인 법도, 이보다 더 위선적인 법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술을 마셨다.
빌 브라이슨
내가 만든 술을 밀주라고 부르던 인간들이 그걸 은쟁반에 담아서 내놓으니까 '접대'라고 부르면서 기뻐한다. 내가 이 사업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정치인들처럼 비싼 옷을 입고 개소리를 지껄이는 한심한 인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알 카포네
금지/규제법은 한국의 총기규제법처럼 애시당초 시작부터 완전히 막아놓은 것이 아니라면 좀처럼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폭력 금지법이 있어도 불법 폭력조직이 생기고, 마약 금지법이 있어도 마약 복용자가 생기며, 밀수 금지법이 있어도 불법 밀수업자가 생긴다. 사회 구성원들 절대 다수가 마땅히 해악이고 불법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동의한 것들도 이럴진데 수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책임져주며 잘 마셔오던 술을[19] 갑자기 법으로 금지시키면 모든 사람들이 순순히 금주법에 복종할까?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오히려 금주법은 입법한 목적과는 정반대인 결과를 초래했다.

법으로 주류 생산 및 유통이 금지되자 사람들은 술의 희소성에 집착해 오히려 전보다 더 마셔댔을 뿐더러 그런 행위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다보니 마피아를 필두로 한 불법적인 세력들이 손을 뻗쳐서 마피아들에게 막대한 자금력과 힘을 실어주었다. 초창기에 금주법을 지지한 사람도 "어? 이게 아닌데?" 하고 부조리를 깨닫고 대대적으로 금주법 반대 운동을 일으켰다. 한때는 지지자였던 사람들도 등을 돌릴 정도로 결과는 부조리했다. 정책을 시행한 높으신 분들조차도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남 몰래 술을 비축해서 마셔대느라 바빴다. 윌슨은 애초에 반대 측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워런 G. 하딩은 이 법안을 무리해서 가결시킨 집권 여당 측이었는데도 틈만 나면 백악관에서 음주가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를 대며 대놓고 술판을 벌였다는 기록이 버젓이 남았다. 당연히, 민간에서도 금주법 제정 이전에 만든 술을 마시거나 혹은 그 이후 제조 및 밀수된 밀주들의 라벨을 조작해 두고 계속 술을 소지 및 음용하는 일이 흔했는데, 이건 그나마 양반에 속했다.

우선 금주법이 시행된 직후부터 미국 정부는 100억 달러가 넘는 주세[20]를 거두지 못했다. 때문에 세납에 문제가 생긴 것은 물론이며 양조업자는 물론 농부 등 여러 주류 산업 관련 생산자들도 금주법 때문에 날벼락을 맞았는데 술은 물에 알코올만 딱 부어서 창조하는 게 아니라 보리, 옥수수, 포도, 사과와 같은 농산물을 원료로 제작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런 농산물을 그냥 파는 것보다 술로 가공해 파는 것이 수익이 더 잘 나오다 보니 이 술 장사에 한 해를 걸고 농사를 해오던 농부들은 말 그대로 한 해 농사를 싹 다 말아먹은 셈이 되었다. 여기에 술 생산이 불법이 되니 술을 만들 원료가 될 농산물을 구입해갈 양조업자들은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되었고 양조업자들이 농산물들을 안 사주니 농부들도 수익을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팔지 못하고 쌓인 잉여 농산물들의 재고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재고를 방치하게 되면 관리비가 더 들어가고 그렇다고 농작물을 조금만 재배하기에는 효율이 너무나도 나빴기 때문에 농부들로서는 해결책이 없었다. 인류사에서 금주령이란 농업이 낙후된 국가나 대흉년과 같이 국가적인 재난 상태에서나 내린 정책이다. 즉, 술을 만들어 마시기 전에 식량으로 쓸 곡물조차 없을 때나 하는 예외적인 명령이었다. 결국 양조업자들은 니어 비어(Near Beer. 도수 0.5% 맥주) 등의 새로운 제품을 선보였지만 시장에서는 외면을 받았다.[21] 때문에 술을 평소에 마시던 사람들은 '이왕 불법인거 가성비 좋게 독한 술을 사서 마시자' 식의 마인드를 가지게 되어 오히려 금주법 제정 이전보다 독주가 음주 소비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늘어나버렸고, 자연스레 이러한 세태는 불법 양조장과 마피아들이 파이를 넓히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공화당과 금주법 지지자들은 이 부작용을 일시적인 것으로만 보며 희생을 감수하고 금주법으로 사회를 건전한 쪽으로 바꿀 야망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술을 마시던 문화권에서 갑자기 주조(酒造)를 금지하자 부작용이 속출해서 사회가 더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이들이 금주 운동의 롤모델로 삼았던 이슬람 국가들은 사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술을 금지했는데 금주법은 그런 뒷배경을 알지 못한 채 만들어져서 문제였다. 이슬람 국가는 원래부터 식수와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술을 담가먹을 형편이 안 되어서 술이 널리 퍼질 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탓에 술이 사치품이 되었고 따라서 술을 먹을 능력이 되는 권력자나 부호가 술을 먹으려고 하면 어마어마한 사치를 부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낭비를 막고자 율법으로 술을 금지시켰다.[22] 줄여서 표현한다면 금지해서 못 먹은 게 아니라, 못 먹어서 금지한 것이다.[23] 즉, 소수의 취향[24]이었던 술을 금지시킨 것이니 반항이 없었다.

금주법 지지자들은 무슬림들이 술 대신 커피를 자주 마셔서 알코올에 대한 부작용이 없었다는 주장도 펼쳤지만 미국이라고 커피가 없었던 건 아니다. 술과 커피가 서로를 완전히 대체하는 성격의 음료가 아니었던 것이 문제였다. 다만 술 대신 커피의 수요가 늘기는 했다. 이때 미국에서 커피는 '(joe)'라고 불렸는데 다름이 아니라 당시 미국 해군부에서 수병들의 상징과도 같은 술 배급을 중단하고 PX에서의 주류 판매도 금지시키는 바람에 대신 커피를 마시면서 해군부 장관인 조세퍼스 대니얼스의 이름을 붙여 불렀던 것이 민간에도 유행한 것이다. 각종 음료수의 매출이 늘기도 했는데 커피 외에도 루트비어가 유행했다. 루트비어 역시 원래 루트 티라고 불리던 청량음료를 술 마시는 기분이라도 내자고 해서 비어(beer, 맥주)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그나마 합법적인 루트인 기독교의 성찬용 등 종교의식을 위한 포도주, 의료용 브랜디[25]의 소비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미국에서 술을 팔거나 만드는 길만 막았을 뿐 술을 마시는 것 자체는 그때도 불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주법 시대에 유람선들은 이러한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서 외국 선적으로 등록한 후 미국 영해 밖에서 술잔치를 벌였다.[26] 게다가 금주법을 만든 하딩 대통령도 백악관 관저에 명목상 금주법 이전에 제조 및 구매했으므로 일단 법적으로 문제없는 술을 쟁여놓고 폭탄주를 즐겼고, 금주법을 지지한 후버 대통령은 미국 법령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 대사관을 방문해 술마시고 오는 등 꼼수를 써서 술을 마시는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알코올 중독을 고칠 시기를 놓친 사람들이 늘어갔고 술을 합법적으로 사지 못하던 세상이라서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이를 들킬까 의사에게 병을 숨기고 병원에 가는 것을 기피하다 보니 국민들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물론 단속도 많았다. 100년 역사를 자랑했던 유명한 음식점 델 모나코(Del Monaco)는 대낮에 개최한 비밀 무도회에서 차보다 약간 더 자극적인 음료를 손님에게 제공했다가 손님으로 위장하여 잠입 수사를 벌이던 경찰들에게 발각되었다. 결국 이 가게는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며 폐업 직전까지 갔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마셔대며 문제를 키워나갔다. 때마침 이때는 알코올 소비량이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까지 간 광란의 시기여서 그야말로 Speakeasy[27]의 전성기였다. 심지어 아예 이게 미국에서만 적용되는 법이라는 허점을 파고들어 부자들은 증기선 등을 타고 공해로 나가 술파티를 벌이고 들어오는 등 빠져나갈 사람들은 전부 법망을 빠져나가는 실정이었다.

이때는 지역 사회 단위로 밀주가 기승을 부렸는데 이웃나라인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 지대에서 술을 밀수하는 사례가 늘어났으며 미국 현지에서도 생산된 밀주, 일명 문샤인이 넘쳐났다. 당연히 기생충 같은 조직폭력배들이 돈 냄새를 맡아서 밀주 사업에 개입하였고 때마침 20세기 초 이탈리아 이민자 가운데는 대규모 경찰수사를 피해 도주한 시칠리아 마피아까지 섞여 있었다. 동네 불량배로 지내던 마피아들은 밀주 사업으로 세력을 키우면서 전국구 폭력단으로 변모해갔으며 갱스터들은 이권을 차지하려고 집단 싸움과 살인 청부 같은 강력범죄, 엽기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고 평범한 시민들마저 손쉽게 범죄에 손을 뻗어 뒷세계의 밀주판은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여기에서 끝나도 문제가 많은데 대공황까지 닥쳐와서 사회는 엉망이 되었다. 실제로 시카고 같은 곳에서는 조직원들이 검경이나 시장 같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뇌물을 먹였다. 엘리엇 네스도 카포네를 탈세 혐의[28]로 겨우 법정에 넘길 정도로 부정부패가 들끓었다.[29]

더군다나 합법적인 제조 기준마저 없어졌기 때문에 불량주가 판을 쳤다. 재료의 질이 나쁘고 썩은 것을 제조해 팔거나 술에 독을 섞은 부류까지 나왔다. 분별증류법[30] 같은 기술이 부족하여 생산비를 줄이고자 메탄올이 섞인 술을 만들어 판매하고 심지어 공업용 에탄올로 제작한 술까지 만들어졌는데 이마저도 공업용 에탄올을 아끼려고 메탄올을 섞어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다.[31] 보다못한 미국 정부는 공업용 에탄올에 메탄올을 섞어서 밀주 산업을 꺾으려 들었지만 밀주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만 늘어났다. 그마저도 여러 법의학자가 밀주는 목숨에 위험하다고 꾸준히 말해주지 않았다면 사망자는 더 늘었을 것이다. 알코올 농도가 100%에 육박하는 술이 아니라 그냥 에탄올이라 불러야 할 스피리터스 렉티피코와니 같은 제품도 제조되었는데 이런 것을 마시고 계단 등에서 굴러 떨어져 죽은 사람도 속출했다.[32] 게다가 알코올 농도가 100%인 것은 체내 알코올 농도가 1% 이상이면 중독사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이용해 살인무기로도 악용되었다.

6.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

6.1. 수요 측면

수요 측면에 대해 알려면 미국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미국' 시민의 대다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보다는 유럽 출신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이었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동유럽/북유럽은 당연하지만 춥다. 때문에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체온을 올려야 했고 이를 위한 가장 간단한 방식이 음주였다.[33] 거기에 추운 지방이라 채소가 잘 크지도 않다 보니 육류 위주의 식단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게 주류 소비를 가속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북/동 유럽인들에게 술은 사치품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식량이었다.[34] 주류인 서유럽의 영국, 독일, 프랑스 출신뿐만 아니라 동유럽과 러시아의 이주민들까지 몰려가 형성한 게 미국이니 기후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시작부터 주류와 나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거기에 서방에서 널리 퍼진 기독교도 포도주와 관련이 깊다. 당장 기독교의 유명인사인 예수 관련 일화 중에서도 빈객들에게 대접할 술이 떨어지자 예수가 맹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는 가나의 혼인잔치 일화와 "빵은 나의 몸이고 술은 나의 피이니라"라고 말하며 제자들과 최후로 식사를 했던 최후의 만찬 이야기에서도 평범한 식수가 아닌 포도주가 강조되고 있다. 즉, 술은 종교적 의미도 깊으며 아예 수도원에선 대대로 술을 직접 담가 마시는 곳도 있었고 종교적으로 적당량의 음주는 의무로 여겨졌다.[35] 종교 자체가 그 시대와 사람들의 생활과 이래저래 엮여서 형성된 것이다 보니 사회상의 영향을 받은 것도 컸다. 쉽게 말하면 '나한테 필요하기도 한데 신까지 허락했으니 우리가 이걸 마시는 건 옳은 일이다.'라는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결국 아주 오래전부터 술을 안 마시던 문화였거나 이슬람 등 음주를 금지하는 종교에 몸담았던 사람이 아닌 이상 금주법이 시행되면 대재앙이 생긴다. 조상 대대로 술을 마시다가 하루 아침에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금지 처분을 받으니까 사람들은 술을 마시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술을 웃돈까지 줘가면서 손에 넣는 사람이 나왔다.

상황이 이러니 원래 술에 관심도 없던 사람마저 술이 새로운 돈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상황은 갈수록 태산이 되었다. 제일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이전에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사람도 금주법이 시행된 뒤부터 술을 마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음주를 정부에서 차단하니까 그 반작용이 튀어나온 사례다. 안 하던 짓도 하지 말라고 하면 괜히 하는 일이 사회 단위로 벌어진 셈이다.

6.2. 공급 측면

위에서 말했듯이 나라에서 금지하니 오히려 웃돈까지 주고서 술을 마시려는 사람이 속출했다. 시장경제상 당연하지만 수요가 생기면 공급도 생긴다. 거기에 마약이나 총기와 달리 술은 재료를 구하는 것도 만드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 땅바닥에 떨어진 과실이 알아서 발효되어서 알콜이 생기듯 당장 품질을 신경쓰지만 않으면 술을 만드는 것은 그냥 너무 단순하고 쉽다. 포도만 왕창 모아놓고 뚜껑을 닫아 방치해 놓으면 저품질의 와인이 만들어지고[36] 과즙이나 꿀물을 입구가 넓은 병에 넣은 뒤 천으로 덮어 적당한 온도에 방치하기만 해도 효모균이 발효하여 알코올이 나오며 이를 증류하면 그대로 고도수의 증류주가 나온다. 그나마 어려운 증류주도 증류기만 빼면 만드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상술한 와인을 포함해 막걸리, 맥주를 만드는 난이도는 말할 가치도 없다. 실제로 문샤인 같이 가족 단위로 밀주를 만들어 직접 마시는 사례도 흔했다. 아이가 그냥 물통인지 알고 들어갔다가 그대로 통 안에서 익사해 버리는 참사도 일어났을 정도였다.

거기에 미국 위아래로 있는 캐나다/ 멕시코 둘 다 미국처럼 유럽계가 많이 자리잡아서 술 시장이 컸던 나라였으니 두 나라를 통해서 술을 사고 파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캐나다 쪽은 오대호라는 들어가기는 쉽고 단속은 힘든 완벽한 밀수무역로까지 있었는데[37] 디트로이트, 시카고, 뉴욕 등 주 소비자층과도 가까운 곳으로 럼 러닝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양이 밀수입되었다. 국경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대놓고 이 두 나라로 입국해 합법적으로 술 마시고 돌아오는 일이 일상이었다. 거기에 이 3국 술만 마시다가 질리면 캐나다 동부,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프랑스 생피에르 미클롱을 통해 유럽산 주류 등도 쉽게 밀매할 수 있었던지라 사실상 아시아 쪽으로 열린 서부를 뺀 사방에서 밀주가 성행했다. 그렇다보니 온갖 사건사고가 생겼는데 제일 대표적인 것이 금주령 당시 밀주를 팔기 시작한 마피아/갱스터들의 팽창이다. 그 유명한 알 카포네도 금주령 당시 캐나다 위스키를 밀수하는 것으로 위세가 정점을 찍었고 그가 벌였던 밸런타인 데이 학살도 금주령과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 마피아들은 이렇게 수입한 술을 이용하여 술을 뻥튀기[38]할 수 있는 불법 양조장을 건설, 관리하였고 대중에게 이런 술을 팔아 많은 돈을 거머쥐었다. 미국 정부는 뻥튀기 술을 막으려고 공업용 알코올에 메탄올을 첨가했는데 뻥튀기 술은 공업용 에탄올로 농도를 맞추니까 '유독성 물질인 메탄올을 섞으면 최소한 뻥튀기해서 양을 늘리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범죄자들이 왜 범죄자들이겠는가? 정부의 순진한 예상과 달리 마피아들은 주류 제작을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이 정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구매자의 건강 따위는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마피아 본인들이 술을 마신다면 안전하게 공수해 온 원액을 희석해서 마시면 땡이다. 구매자들도 귀한 술을 마시는 판에 그 술의 상태가 어떤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고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메탄올 때문에 죽거나 심각한 장애를 입는 일이 줄을 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정부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더 죽어나간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술들은 주점이나 음식점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불법 주점을 Speakeasy라고 불렀다.[39] 당시 이러한 주류점(酒類店)으로 시작하던 뉴욕의 21 Club은 지금까지도 레스토랑으로 업종을 바꿔서 살아남았다. 이런 곳에서 서민은 밀조주나 뻥튀기 술을, 상류층은 밀수입한 외국산 술을 소비했다. 당연히 손님이 낸 돈은 모조리 갱스터들에게 넘어갔다. 이게 얼마나 돈이 됐냐면 캐나다에서 중상급의 위스키를 제조하는 브랜드 Canadian Club의 기본 보틀 한 병 값이 그 당시 가격으로 16달러였다. 참고로 당시는 브레튼우즈 체제로 35달러 = 금 1온스가 통용되던 시절이며 금값 기준으로 이것의 현 시세를 계산하면 60만원이다. 거의 1세기가 지난 Canadian Club 위스키는 대충 16달러에 팔린다.

주류 밀매를 배경으로 성장한 미국 마피아는 금주법 폐지 이후에도 그 동안 구축해 둔 밀주 유통망을 활용해서 시칠리아 마피아들과 연계하여 서아시아의 헤로인을 유통했으며 뒤늦게 FBI에서 1980년대에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하여 세력을 축소시켰음에도 미국 최대 범죄 조직으로 남아 있다.

6.3. 관리 측면

금주령 당시 연방 정부가 배정한 금주단속요원은 고작 '수천 명'이었다. 그러니깐 그 넓은 미국을, 심지어 도시 지역만이 아니라 시골/해안선/국경선 등등을 겨우 수천 명으로 전부 관리해야 했다. 당연하지만 금주령을 내린 시점에서 주세를 걷을 의무도 사라졌으니 벌어들이는 세수가 상상 이상으로 줄었는데 그렇게 줄어든 예산에서도 그나마 할애해서 만든 게 저 정도 인원이었다. 당연히 제대로 단속될 리는 만무했고 오히려 금주령 말기엔 단속은 개나 주고 뒷돈이나 받아먹는 비리가 만연했고 특히 알 카포네 같은 대규모 세력은 단지 단속요원들을 넘어서 공공기관의 높으신 분들에게도 뇌물을 뿌렸다. 이는 평범한 뇌물보다는 협박에 가까웠는데 뇌물을 한 번 받으면 공범자가 되므로 내가 기소되면 너희들이 뇌물 받은 거 전부 까발려서 너희도 데려간다며 경고하는 거나 다름없었고 실제로 알 카포네가 이런 식으로 사법 당국을 위협했다. 이른바 포획 현상이다.

거기에 주류를 직접 만드는 사업들만 망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맥주라면 보리가, 와인이라면 포도가 들어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걸 밀주가들에게 팔거나 자기가 가꾼 맥주나 포도로 직접 밀주를 만드니 농업이 당연스레 도태되었고 개나 소나 술을 쫓아다니다 보니까 경제도 상당히 파탄났다. 크게만 봐도 금주령 하나로 술 산업 도태 - 밀주 성행 - 밀주를 위한 곡식/과실이 대규모로 들어가느라 다른 데서 식량 문제가 발발 - 개나 소나 거액의 술을 사는데 그 돈이 전부 마피아 손에 들어가고 정부엔 1센트도 들어가지 않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딱히 진지하게 지키려고 하지도 않고 법을 지키는 사람은 망하고 무시하는 사람은 돈을 버니 사회적인 혼란도 가속되었다.

7. 금주법 폐지 과정

금주법에서 파생된 범죄가 급증하자 미국 전역에서는 금주법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그 중심에는 AAPA(Association Against the Prohibition Amendment, 반금주법협회)가 있었고 GE, 듀폰처럼 1차대전으로 성장한 거대기업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듀퐁 소속인 피에르 듀퐁은 댈러웨어 주 지역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상임위원회를 압박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이들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에서 술을 금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극렬히 침탈하는 행위이며, 이 수정헌법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논리를 내세워서 금주법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AAPA는 금주법의 악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꾸준히 미국 정부에 제출하였다. 이때 나온 보고서에서는 1920년과 1921년 사이에 범죄 증가율이 24%에 이른다고 했고 술이 금지된 탓에 약물에 중독된 것이 보고된 사례만 40%가 넘었다고 미 정부에 경고했다. 마피아에 의한 '암시장 폭력의 폭발'을 암시하였으므로 미국 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여기에 여성 정치인 폴린 세이빈은 금주법 초기에는 "내 아들들이 살아갈 때 술 없는 세상은 매우 좋을 것이다." 라며 금주법을 열렬히 찬성했지만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실제로 1926년에는 "법으로 술을 막으면 만사 OK일 줄 알았는데, 막으니까 오히려 건전한 시민들이 술에 빠져서 타락하였으며, 이는 여성과 청소년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실상 안 하느니만 못했다."면서 비판했고 결국 1929년에는 AAPA와 성격이 비슷한 WONPR(Women's Organization for National Prohibition Reform, 금주법 개정을 원하는 여성들의 모임)까지 결성하였다. 이 때문에 '그래도 여성들은 금주법을 찬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조각조각 부서졌고 금주법은 공공의 적(Public enermy)이 되었다.

1922년 Literary Digest에서 미국인 7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 60%가 금주법에 회의적이라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법률 전문가들도 '금주법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공격하는 법'으로 인식했다. 1928년 콜럼비아 대학의 니콜라스 버틀러 총장은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사설에서 '미국의 자유주의에 철저히 반(反)하는, 미국의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 법'이라고 맹비난했다. 1932년에는 연설에서 더욱 공격 수위를 높였다.

192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맥주를 허용해주면 수그러들지 않을까?' 하는 주장이 의회에서 나왔지만 AAPA는 맥주를 허용해 준다고 금주법에 찬성할 줄 안다면 오산이라고 말했고 금주법을 완전히 없애라고 미 행정부를 압박했다.

1929년에는 금주법에서 비롯되는 범죄를 줄이려고 미 준법집행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Law Observance and Enforcement: 법의 준수와 집행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위원회, 혹은 '위커샴 위원회')까지 결성되었지만 이 위원회는 밥값을 못했고 내부에서는 하버드 학장 프라우드와 하버드 교수 프랭크 퍼터가 파벌 싸움을 벌었다. 시민들에게 분노를 산 위원회는 소멸되었으며 프라우드 학장은 하버드에서 된통 까였다.

1929년 10월에 대공황이 미국을 덮치면서 금주법은 동력을 완전히 잃었다.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흔들리고 소비와 세수가 줄어들자 안 그래도 세금이 궁한 마당이니 금주법을 폐지하면 주세를 징수하고 음지로 빠져든 양조업계를 다시 양지로 끌어올림으로써 고용을 늘려 경제에 활력이 들어간다는 주장이 정계, 재계,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금주법은 수정헌법 18조로 규정되었고 당시 집권당이었던 공화당은 자기들이 만든 법이라서 수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침 민주당 소속 대선 후보였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이러한 흐름을 읽고 나를 밀어주면 금주법을 폐지하겠다면서 금주법 폐지를 제1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때문에 AAPA에서도 "솔직히 우리는 댁이랑 상극이긴 한데[40] 금주법만 없애준다면 힘을 보태주겠다."고 선언했다. 금주법 폐지는 뉴욕타임즈 1932년 8월 10일자 사설에서 언급되었듯이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이슈였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공약의 차이는 여기에서 갈렸는데 성향이 상극인 루스벨트와 AAPA가 술심으로 의기투합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결국 1932년, 민주당 소속인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당선되었다. 1933년 2월에 수정헌법 21조가 의회를 통과했고 같은 해 12월 5일 인준이 완료되어 수정헌법 18조는 폐지되었다. 주 단위의 금주법은 이후에도 남부 지방 위주로 상당 기간 존재했는데 1966년 미시시피주에서 금주법이 폐지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현재도 카운티(군) 단위나 도시 단위로 술을 팔지 않는 행정구역은 존재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효과와 역효과가 발생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수백, 수천 년을 이어온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정책을 안이하게 법으로 만들었다가 사회를 개판으로 만든 법으로, 의도는 좋은데 구상이 너무 허술한 사례이며 중독은 금지나 규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증명하였다.[41][42] 물론 금주법 시행 이후로 알코올 중독자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금주법으로 크게 득세한 거대 갱단 마피아는 이미 미국에 깊이 자리잡고 말았다. 전국구 폭력단으로 변모한 마피아는 금주법 폐지 이후에도 각자 사업 분야를 점차 확대했다. 게다가 모하비 사막 한복판에 거대한 도시를 세우고[43] 쿠바에 대규모 투자까지 하는 조직이 되었다. 마피아는 금주법이 시행된 뒤부터 수십 년간 강한 힘을 발휘했고 세력이 약화된 현재에도 그 간판을 바꾼 채로 미국의 뒷세계를 주름잡는 범죄 조직으로 남아 있다.

8. 여담

9.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

금주법 시대는 마피아 갱스터들이 설치고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짙은 시기라 미국 대중문화에서 서부극 이후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되는 시기다. 아래 나온 작품들 외에도 수많은 영화, 게임, 다큐멘터리, 소설, 드라마의 주제가 되었다.

10. 관련 문서



[1] 정확히는 유대인 혈통이기 때문에 정규 조직원은 아니지만 루치아노의 최측근으로 활동했으며 고위 관계자(High-level Associate)로 인정받아 명예 콘실리에리급으로 대우받았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마피아의 회계사(Mob's Accountant)'다. [2] 필리핀 파나마 운하 지대 등 당시에 존재하던 미국 식민지, 그리고 미국의 외국 대사관 외교공관, 그리고 국제법상 소속국 영토로 간주되는 기항지 무관 미국 정부 소유의 선박 내부 등이 이에 해당된다. [3] 법적으로 금지된 것을 뜻하는 영어 명사이지만 이 사건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금주법을 뜻하는 고유명사로도 쓰인다. [4] 일례로 피자는 본토인 이탈리아에서는 한 사람이 다 먹기에 충분한 사이즈였지만 미국으로 건너와서 한두 쪽만 먹어도 배가 부른 사이즈로 진화했다. 술과 곁들여 먹을 피자가 커지니 당연히 한두 잔만 가지고 홀짝대면 아쉬우므로 술을 더 많이 먹게 되고... 하는 식이다. [5] 다만 당시에는 뼈가 붙어있고 수율이 좋지 않은 질 낮은 고기라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 컸다. 예나 지금이나 콘벨트에서 나오는 옥수수만 해도 전 미국인에게 옥수수를 1톤씩 줘도 남는 양. 더군다나 콘벨트는 팜 벨트의 일부이기에 미국의 농업생산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6] 에탄올 3.5갤런(13.25리터)면 16.9도짜리 소주 220병에 해당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 2019년 한국인 한 명이 1년간 마시는 주류의 알코올 양이 평균 8.3리터다. [7] 비록 기후와 토지의 차이로 실패했으나 유럽 포도를 수입해서 직접 재배하여 와인을 만들려고도 했다. 현 미국의 와인 주산지인 오리건-워싱턴-캘리포니아 주는 제퍼슨이 사망하고도 20년은 더 지난 1850년대를 전후해 미국이 차지하는 땅이다. [8] 물론 이건 미국의 특징이라기보단 당시 군대의 특성에서 기원하는 부분도 있다. 일례로 영연방군은 1960년대까지도 럼을 비롯한 주류를 무려 배급했을 정도다. [9] 당연히 탄산음료가 아닌 당시의 탄산이 있는 사과주를 말한다. 막걸리 맥주에 탄산을 따로 넣지 않아도 톡 쏘는 시원한 탄산이 있는 것과 같은 셈이다. [10] 소위 말하는 미국의 "콘벨트" 가 바로 이것다. [11] 당시에는 에어컨이나 냉동공조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푹푹 찌는 여름철 수십일 동안 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식품 운반은 몹시 고된 일이였고 운송 중 변질의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12] 그는 첫 남편이 알코올 중독자였고 이 때문에 몇 개월 못 가 그와 이혼했다. 이후 금주 운동을 주장하며 행동에 나섰다. [13] 캐리 네이션은 키 180cm에 80kg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웬만한 남자보다 거구였다. [14] 대통령이 법률에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하더라도 국회에서 재상정해서 통과되면 무조건 통과시켜야 한다. [15] 알코올 농도 0.5% 기준은 포도주 포도주스를 구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포도 주스는 자연발효가 약간 되는데 이때 생기는 알코올 농도가 약 0.5%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금주법 제정 과정의 공청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부분이다. 현재 팔리고 있는 무알코올 맥주도 이 정도의 알코올이 들어간다. [16] 브리튼 제도의 선주민인 켈트인, 프랑스에도 살았으나 본토와 대륙에서 밀려나가 아일랜드에만 존재하는 민족이다. 주근깨, 빨간머리 등이 특이형질. [17] 게르만 계열 피도 약간 섞였던 켈트인보다도 먼 라틴 인종이다. [18] 앵글로는 영국에 사는이라는 의미고 색슨은 게르만 계열 민족의 이름이다. 색슨족의 땅이라는 명칭의 색소니라는 지방은 독일에 아직도 있다. [19] 19세기~20세기에 들어와서야 발견되었던 여타의 마약들과 달리 술은 인류문명이 발달하기 전인 선사시대부터 마셔온 식품이다. [20] 주세는 어느 지역에서나 중요한 예산 공급원이다. 실제 술값은 만들어 보면 알겠지만 미친듯이 저렴하다. 그럼에도 술값이 비싼 건 순전히 세금 때문이다. 면세점 술이 그렇게 저렴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21] 현재 기준으로 술은 섭씨 15도에서 부피 대비 알콜이 1% 이상 함유된 음료를 기준으로 한다. 즉, 현재 기준으로도 니어 비어는 단순히 음료에 지나지 않았다. [22] 한마디로 부유층이 술을 만들어 마시면 그만큼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곡식이 줄어들거나 외국에서 수입해 오면 그만큼 국가의 부가 사라지게 된다. [23] 현대의 이슬람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사회문화적인 배경 상황을 감안해 만들어진 율법의 진짜 취지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술을 예로 들면 원래는 부유층이 사치를 부리는 것을 막고자 넣었던 율법의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율법 그 자체만 덩그러니 남아서 일반인들에게도 금주를 강요하는 식이다. 현재는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알바니아, 카자흐스탄 등 세속 국가들은 술을 잘만 마시며 이슬람이 국교인 일부 국가에서도 국민의 음주를 허용하고 말레이시아 등도 비무슬림의 음주는 허용하고 있다. [24] 다만 이런 이유로 인해서 소수의 취향이 아닌 대중적으로 먹던 술은 금지하진 않았다. 대표적으로 대추야자 열매로 만든 술인데 부족한 식수를 대신해서 마실 수 있는 생존 필수품이었기 때문에 금지시킬 수 없었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도 대추야자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당당하게 쿠란에 나와 있는 마당에 쿠란에서 술을 금지하라고 했다고 대추야자 술도 금지하려 들었다가는 선지자 무함마드도 이단으로 몰려서 결과적으로 이슬람 자체를 자아비판하는 것밖에 안 되니 대추야자 술만큼은 이슬람에선 사실상 유일하게 허용되는 술이다. 사실 레바논이나 튀르키예 등 세속주의가 강한 국가는 이슬람 국가임에도 술을 직접 만들거나 팔기도 한다. 물론 이 술이나 저 술이나 취해서 꽐라짓 하지 않을 정도까지만 허용되는 거고 꽐라짓까지 가면 짤없이 이단행이다. 유럽권에서도 집 밖에서 꽐라되면 대놓고 현행범 취급이니 조심하자. [25]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 개츠비가 이걸로 떼돈을 벌었다. 자기는 약국 몇 개로 부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술로 떼돈을 벌었다고 확신한다. [26] 전쟁이 일어나 자본이 필요하고 규제가 불가능한 나라에 유람선 같은 배가 많이 등록되는 식이었다. [27] 무허가 주점.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무허가 주점을 저렇게 불렀다. 현대로 치자면 단골에게 소개받는 형식으로 들어가는 술집, 아는 사람만 아는 술집 정도다. [28] 미국은 범죄자들조차 탈세 혐의가 무서워 가짜 소득을 만들어내 세금을 내는 실정이다. 이는 미국 국세청이 탈세에 대해 가차없기 때문이다. [29] 사실 미국 국세청은 FBI보다 훨씬 오래된 데다가 중앙 정부 산하 기구다보니 오히려 FBI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한동안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던 곳 중 하나가 미국 재무부였을 정도. 물론 현재는 경호처가 따로 떨어져 나오긴 했지만. [30] 술을 증류하면 에탄올과 메탄올이 같이 나오는데 이 둘을 분리하는 과정이다. [31] 이것과 비슷한 사례가 영국이 산업혁명을 맞이했을 때 일어났다. 영국은 홍차 원가를 아끼려고 고양이 대변이나 스트리크닌(Strychnine, 맹독성 알칼로이드) 등을 섞어서 팔아먹었고 사람들이 자극적인 맛에 중독되는 바람에 스트리크닌이 포함되지 않은 홍차는 덜 팔렸다. [32] 스피리터스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이건 마시라고 만든 술이 아니라 주정이다. 보통 담금주 만들 때나 칵테일 도수를 높일 때나 사용되는게 정상이지만 이걸 그냥 마신다는 것은 음식에 간 맞추라고 같이 준 소금을 숟가락으로 퍼먹는 꼴이나 다름 없다. [33] 사실 음주를 해서 체온이 오르는 것은 일시적이다. 알콜이 분해되면서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이 피부 근처로 몰리고 일시적으로 체온이 상승하지만 그 버프 기간이 끝난 후에는 오히려 체온이 낮아진다. 물론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면 효과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술을 계속 마신다면 결국 취하게 될 것이고 이는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쓰러져 잠이라도 든다면 동사할 확률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다만, 추운 지방에서 술을 마시는 이유는 그 따뜻한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다. 핀란드나 그린란드 같이 살벌한 추위를 자랑하는 곳에서 이동하는 데는 그 이동하는 순간만이라도 추위를 잊게 해 줄 술이 필요했다. [34]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드카의 어원은 '생명의 물'이다. 기계 연료 주입구에 넣으면 기계가 생기를 얻고 연료가 어는 것을 방지하며 연료 대용으로도 사용 가능하다. 사람의 입에 넣으면 사람이 생기를 얻으니 이런 이름이 붙었다. [35] 실제로 수도원에선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행하기 위해 방문객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잘 곳을 제공했다. 먹을 것이나 잘 곳은 그렇다고 쳐도 산중에 위치한 수도원에 신선한 물이 있을 리가 만무하니 결국은 미리 담가두었던 술을 지급하곤 했다. 이 베품을 꾸준히 지켜서 성인으로 추대된 사례도 굉장히 많다. 좀 악의적으로 편집해서 풀이하자면 방문객들에게 술을 꼬박꼬박 제공한 대가로 성인으로 추대된 것이다. [36] 금주법 시절 미국에서는 포도 벽돌이 판매되기도 했다. 물에 벽돌을 담그고 20일간 놔두면 와인이 된다. 그리고 이 포도 벽돌을 파는 곳에서는 이 벽돌을 물에 담그면 술이 될 수도 있으니 절대 그러지 말라고 주의문에 써놓기도 했다. [37] 내륙호수라 소형선박이 항해하기가 쉬워 밀수에는 매우 유리하고 반대로 단속에는 매우 불리하다. 당시에는 레이더도 없었다. [38] 위스키 등에 물과 공업용 알콜을 부어 양을 늘리는 방법.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나오는 말로는 5배까지 뻥튀기할 수 있었다 한다. [39] 다른 은어로는 Blind Pig 혹은 Blind Tiger. 여기서 유래된 용어가 암거래 시세를 의미하는 speak-easy prices다. [40] 당시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을 앞세운 수정자본주의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에 회원의 대부분이 자본가 기업인이었던 AAPA에게 단단히 찍힌 상태였다. [41] 참고로 이 때문에 마약 규제와 관련해서도 줄기차게 언급되는 사례가 금주법의 사례다. 실제로 알코올 중독 말고도 마약 중독과 같은 중독증상을 치료하려면 새로운 취미나 사회생활 등을 유도하여 중독물질에서 멀어지게(정확히는 그러한 중독물질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게) 해야 한다. [42] 행정학에도 비슷한 현상으로 '규제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는데 규제가 너무 가혹하면 사람들은 규제를 지키기보다는 그냥 무시해 버려서 오히려 느슨한 규제보다 규제의 효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43] 단,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하워드 휴즈에 의해서였다. [44] 위에서 언급했듯이 입법 당시 민주당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금주법에 반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45] 이 부분은 실제 유명한 맥주 브랜드인 버드와이저가 금주법 시행 당시 자사의 맥주를 무알콜 맥주로 전환해서 버텼던 일화를 패러디한 것이지만 현실에서의 버드와이저는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술을 못 마시는 어린아이들도 버드와이저에 친숙해져서 미래의 고객으로 바뀌면서 살아남은 반면 더프 맥주는 출시하자마자 깔끔하게 망했다. 이유가 매우 가관인데 더프 맥주 사장은 사람들이 맥주를 맛 때문에 산다고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저 알코올 때문에 산 거였다… 이 뭐… 설탕이 바다에 뿌려지자 좋다고 달려든 사람들인데 뭘 바라나 [46] 여기서 뇌물도 안 먹혀서 밀주를 할 수 없게 되자 팻 토니가 마약으로 사업을 바꾸지라고 한다. [47] 볼링공에 숨긴 뒤 볼링장에서 0점을 맞고 옆으로 굴러가면 비밀 통로를 통해 모 시즐랙에게 공급된다. [48] 이때 이걸 리사 마지에게 들키는데 당시 스프링필드의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그 마지가 그걸 보고도 불법행위라며 기겁하기는커녕 감탄하면서 호머를 칭찬한다! 물론 리사는 악법도 법이라고 금주법에 실드 치려다 쓴소리만 먹었다. [49] 사실 이게 막장인 이유가 더 하나 있는데 호머가 밀주를 유통시킬 때 모 시즐랙은 술집을 애완동물 가게로 위장하고 영업했다. 이 불법 술집을 이용한 손님 중에는 금주법을 요구한 사람들도 있었다. [50] 여기서 호머의 명대사 중 하나인 "술을 위하여! 인생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이죠!"가 나온다. [51] 해당 링크는 2024년 대선 아칸소주 개표 결과이며, 모든 후보 보기 버튼을 클릭해서야 보이는 후보들 중 Michael Wood가 해당 대선의 금주당 후보이다. [52] 담배의 경우 아이젠하워가 적극적으로 담배산업을 밀어붙히면서 미군에서도 전투식량에 담배를 포함시킬 정도였다.(하루에 총 12개비를 주었다) 카멜, 럭키 스트라이크 등 여러 담배 브랜드들이 전시상황에서 더욱 회사의 매출을 올려줬을 정도다. 물론 담배의 해악이 많이 알려진 지금은 전투식량에서 빠졌고, PX에서 따로 신청해서 받을 수 있다. [53] 출처: 루이빌 대학교 연구자료. [54] 2편은 1944년이 배경이다. [55] 1차 대전 파트 이후~루스벨트 정부 파트 이전 한정. [56] 당시 재무부 소속의 금주국이 경찰과 함께 금주법을 주로 단속했다. 이 금주국이 독립해서 나중에 ATF가 된다. [57] 매춘업에서 범죄 피해자가 많아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피해여성 보호 효과 같은건 없고 그 유서깊은 매춘이 근절되기는커녕 더 음지에서 변태적인 형태로 변하는 역효과만 생겼다. 한마디로 인간 욕구와 관련된 걸 국가 차원에서 법으로 막으려고 하면 어떠한 효과가 나타나는지 알려주는 사례.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39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39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