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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4 02:53:00

연합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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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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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파리 조약 이후 미국 영토.png
파리 조약 이후 미국 영토

연합 기간 또는 연합규약 시대 미국 독립 전쟁으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실질적으로 독립하였으나, 전쟁 종결 후 미국 헌법이 비준되기 전 공화제 국가연합이었던 1781년부터 1789년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다.

2. 역사

13개 식민지는 원래 하나라는 의식이 없었지만,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하나가 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영국등의 강대국들로부터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는 결국 들이 '연합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 and Perpetual Union, 연합과 영속적인 연방에 관한 규약)'을 작성하고 '연합의회(Congress of the Confederation)'를 설립하는 이유가 된다.

대륙회의는 독립을 선언한 동시에 새로운 국가의 헌법을 작성하기 위한 위원회를 창설했다. 일부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희망했지만 대부분의 미국인은 입법권이 주로 주에 있기를 원했으며 중앙 정부를 단순한 전시 상황에 필요한 기관 정도로 인식했다. 결국 1778년, 연합 규약이 작성되어 주 정부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 거의 없는 약한 중앙 정부를 설립하였다. 한편, 규약의 첫 번째 조항은 새 연합의 이름을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으로 정했다.

그러나 연합규약에 따른 미국은 국가연합으로써 그 태생적 한계가 분명했다. 특히 이는 미국의 독립 이후 주들의 갈등으로 점화되었다. 공식적으로 소집되는 연합의회는 권한이 거의 없었으며 주로부터 독립할 경우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었다. 행정부도 없었고 법원도 없었다. 의회에는 세금을 부과하고, 외국 또는 주간 상업을 규제하며, 외국 세력과 효과적으로 협상할 권한이 당시로선 부족했다. 의회는 주정부가 이전에 왕과 의회에 속한다고 인정한 권한만을 가졌고, 각 주는 규모나 인구에 관계없이 의회에서 하나의 투표권을 가졌으며, 의회의 모든 법안은 13개 주 중 9개의 표가 통과되도록 요구했다.[1] 조항을 수정은 각 주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했다. 연합규약에 따르면 주는 의회의 동의 없이 다른 국가와 협상하거나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2] 결국 중앙 정부가 미국이 직면한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자 주들이 개혁을 요구하고 탈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자주 나오는 계기가 된다.

이에 여러 연방주의자들은 지속적으로 더 강력한 중앙 정부를 설립할 것을 요구한다. 게다가 약한 중앙정부는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는 막대한 부채의 청산이었다. 각 주는 이러한 부채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며 다른 주나 중앙정부에 떠넘기기 바빴고, 결국 1787년,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연합의회는 제임스 메디슨의 요구로 오직 규약의 개정만을 논한다는 조건 하에 제헌회의의 소집을 허가한다.

제헌회의는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었으며, 로드아일랜드를 제외한 모든 주가 참여하였다. 회의는 위에서 말했듯 본디 연합규약의 개정만을 논할 목적이었지만 결국 새 헌법이 작성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미국 헌법이고, 최종적으로 1789년, 헌법의 비준이 완료되며 연합 기간은 종료하게 된다.[3]


[1] 유엔 총회를 생각하면 편하다. 행정기관도 유엔 사무국마냥 의회 직속이었다. [2] 즉, 당시 미국은 국가로서 가장 중요한 외교권과 국방권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3] 미국 헌법 비준과정에 관해서는 미국 헌법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