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전사들에 등장하는 종족에 대한 내용은 강족(전사들)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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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표준 중국어: 羌族 (qiāngzú) / 강어: RRmea [ɹmæː] (爾瑪)
상고한어: C.qʰaŋ(?[1]+캉)
중국의 티베트계 소수민족. 현대에는 캄 지역( 쓰촨성 아바 티베트족 창족 자치주 또는 간쯔 티베트족 자치주 등지)에 분산되어 분포하고 있다. 인구는 2020년 기준 31만 2,981명이다.
2. 역사
산시성(陝西省) 서부와 간쑤성(甘肅省) 동남부 일대에 생활했고, 갑골문에 따르면 이때 강방(羌方)이라 불렀고 2개의 큰 부락이 있어 북강(北羌), 마강(馬羌)이라 불렀다.상나라가 강족을 인신공양의 제물로 자주 삼았기 때문에, 주나라가 상나라를 공격할 때 주나라를 도왔다.[2][3] 하지만 오래지 않아 주나라와 다시 사이가 벌어졌고, 춘추시대 때 진(秦)나라가 발전하면서 진나라에게 밀려 서쪽으로 이동했으며, 월수강(越雋羌), 광한강(廣漢羌), 무도강(武都羌) 등으로 발전했다.
진 효공 때 진나라에게 굴복했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몽염을 통해 흉노와 함께 압박을 받았으며, 한나라 초에 묵돌이 서역을 압박하고 세력이 매우 강성하자 흉노에 귀부해 한나라의 서쪽 지역을 자주 침범했다.
한나라 때에 이르러 중국을 자주 공격해 농서까지 진출했지만 강족과 흉노가 왕래하는 길을 끊어 황중 지역에서 쫓겨났다가 선제 때 이르러 흉노와 연합해 장액, 주천 등 하서 지역을 공략했지만 의거안국, 조충국 등의 공격을 받아 패했으며, 전한 말기에는 중국이 혼란하자 금성, 농서 지역으로 몰려들었고 후한 초기에 내흡, 마원 등의 공격을 받아 한나라에게 귀부와 저항을 반복하면서 한양, 안정, 농서를 정복하며 살았다.
진한 시기를 거치면서 선령강(先零羌), 소당강(燒當羌), 비남강(卑湳羌), 비화강(卑禾羌), 모강(姥羌), 삼랑강(參狼羌), 백마강(白馬羌), 모우강(牦牛羌), 종강(鍾羌), 월강(越羌), 산강(山羌), 한강(罕羌), 견강(幵羌), 흑수강(黑水羌), 백수강(白水羌), 자강(紫羌), 영강(零羌), 마란강(馬蘭羌) 등 많은 무리가 생겼고, 이 때부터 강족은 거주 지역에 따라 안정, 북지, 상군, 서하에 사는 강족은 동강(東羌), 농서, 한양, 연(延) 및 금성에 사는 강족은 서강(西羌)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후한 시기에는 중국 관내의 강족이 107년, 139년, 159년 등 몇차례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일부 한나라의 군벌들은 강족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4]
삼국시대와 서진 시기에도 중국을 정복해 관중 지역에 거주했으며, 오호십육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강족이 중국 지역을 정복하여 건국한 국가인 후진이 건국되었다.
이후 발강(發羌), 당모강(唐旄羌)[5]이 세운 토번이 강성해 여러 강족 일파들이 감숙, 영하, 섬서 북쪽 일대로 옮겼다가 후에 하주로 옮겨갔으며, 북송 때 강족의 일파인 탕구트족[6]이 서하를 건국하였다.
서하가 활동한 시기, 일부 강족 일파는 쓰촨성 서부 민 강(Min) 상류로 이동했으며, 이들이 현재 남아있는 강족의 선조가 된다.
5호 16국시대에 살던 그 많은 종족들 중 거의 유일하게[7] 지금까지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내려온 것은 매우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강족들에게 온 가장 큰 재난은 2008년 쓰촨성 대지진이었고, 이때에 강족들의 여러 마을들이 크게 파괴되었다. 강족이 많이 거주하는 베이촨 강족 자치현(北川羌族自治县)에서는 현 내 건물 80%가 파괴되었으며, 대지진 당시 강족 인구의 무려 10%가 피해를 입었다 한다. 대지진 이후 중국 정부가 생존자들을 도시로 옮겨 거주하게 하면서, 급속도로 정체성이 희석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3. 언어
강어(羌語)는 중국티베트어족의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한다. 북부 강어와 남부 강어로 나뉘는데 20세기말 기준 북부 강어는 6만, 남부 강어[8]는 8만 명의 화자가 있다. 어휘 측면에서 중국어와 티베트어 차용어가 많다. 하지만 표준 중국어에 침식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극히 최근까지도 문자가 없이 알파벳을 차용해 왔으나, 2017년 웨이주차오(魏久喬)라는 학자가 강 문자(尔玛文)를 만들었고, 2019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4. 문화
강족의 전통 요리 |
강족은 산악지역에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하거나, 일부는 목축에 종사한다. '챵뚀우(강조 羌碉)'라는 망루 형식의 석축탑이 유명하다. 현재 도강언(都江堰)에서 황룡으로 가는 길목이나, 민강 상류 강족 마을에 가면 비교적 온전한 탑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챵뚀우' 건축군 포루처럼 높은 건물 안에는 흰 돌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냥 보면 마구 굴러다니는 평범한 돌 같지만 사실 강족의 무당이 제를 지내고 축복을 받은 신성한 돌이라 한다.
강족은 석조 건축에서 재능을 보이지만 주단을 짜는 등 유목 종족의 특기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강족 자수(刺繡)는 강족의 문화를 전승하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2008년 무형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
강족은 하루에 2끼 식사를 한다고 한다. 아침밥을 먹고 일을 나가면서 옥수수가루로 만들어진 떡을 갖고 가서 점심나절에 그 떡을 먹고, 일이 끝나 저녁에 돌아와서 저녁밥을 푸짐하게 먹는다. 주식은 '맨정정'이라는 옥수수 가루를 뭉친 알갱이 같은 음식으로, 강족이 사는 곳에선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몇 달밖에 안 되어 배추, 무 이파리로 절인 염장 음식이 많다.
5. 사료들의 기록
후한 초기의 허신이 지은 설문에 따르면 서융 가운데 양을 목축하는 사람들로 사람 인(人)과 양 양(羊)의 뜻을 따른다고 했다.후한 말의 응소가 지은 풍속통의에 따르면 강족은 주로 양을 기르기 때문에 강(姜)이란 글자는 양(羊)의 뜻에 따르고 그 곳 사람들을 이 때문에 강족이라 불렀다고 하며, 군신이나 상하의 구분이 없고 힘센 자가 수령이 되었기에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
종족은 거주지에 따라 나누고 강자는 약자를 멸시했으며, 일정한 거주지 없이 돌아다니면서 약탈을 했다. 남자는 전쟁터에서 죽는 것을 길하게 생각했으며, 병사하는 것을 흉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6. 강족 소속 인물
강족이 세운 국가 또는 후진 이후의 강족 소속 부족 계열은 제외.- 가오(柯吾)
- 강상(姜尙) - 강족의 인물. 태공망으로 잘 알려져 있다.
- 강총(姜聰) - 강족의 수령. 329년에 모용토연을 찔러 죽게 만들었다.
- 구기(句豈) - 강족의 인물. 410년에 2만 호를 인솔해 서진(西秦)에 항복했으며, 걸복건귀가 411년에 구기의 무리 5천여 호를 첩난성으로 옮겼다.
- 기오(飢五) - 강족의 수령. 당전의 대호로 120년에 마현이 장액에 있는 틈을 타서 금성을 침입했다가 마현이 군사를 돌려 요새 지역으로 나아가 금성을 공격하면서 수천 명이 죽는 피해를 입었다.
- 나리(那離) - 강족의 인물. 소당강족으로 140년에 봉기했다가 여름 4월에 마현의 공격을 받아 참수되었으며, 이때 강족에서 죽거나 사로잡힌 자가 1,200여 명이었다.
- 낭막(狼莫) - 강족의 인물. 113년에 신령이 죽고 영창이 계승했지만 영창의 나이가 어려 낭막이 계책을 세웠다. 118년에 임상, 마현 등을 공격을 받아 북지에서 60여 일을 버티다가 부평하에서 크게 패했으며, 참수당한 자가 5천 명이 되는 피해를 입었고 낭막은 달아났다가 조하에게 암살당했다.
- 노총(盧怱) - 강족의 수령. 오동의 대호로 120년에 당전 부락에서 기근이 들자 윤가에 머무르면서 강족 또는 한나라 중에서 어느 쪽에 편을 들지 결정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121년 봄에 노총은 마현의 초대를 받았다가 참수되었다.
- 당용(黨容) - 강족의 인물. 후진에서 이윤의 강족 3천 호를 안정으로 옮긴 적이 있었는데, 당용은 요흥이 죽자 군사를 일으켰지만 요찬의 공격을 받아 패해 항복하면서 장안으로 옮겨졌다.
- 당제(唐蹏)
- 동안(東岸) - 늑저, 당전의 대호로 107년에 여러 강족들이 요역으로 인해 봉기해 한나라의 여러 군에서 군사를 파견해 공격해서 차단하거나 여락을 뒤엎자 동안은 크게 놀라 여러 군사들과 함께 달아나서 크게 붕괴되었다.
- 동오(東吾) - 전오의 뒤를 이어 수령이 되었고, 전오가 한나라에 투항하자 변경의 요새 안으로 들어가 거주하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 충실하면서 행동을 삼갔으며, 여러 동생들이 있었고 그들이 노략질을 자주 했다.
- 동호(東號) - 동오의 아들. 동오의 뒤를 이어 수령이 되었다가 미당이 한나라와 88년에 싸울 때 패배하자 89년 봄에 한나라에 항복했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귀부해 죽겠다고 하는 식으로 항복했다.
- 등약(鄧若), 수보(輸報) - 강족의 인물. 410년에 2만 호를 인솔해 서진(西秦)에 항복했다.
- 마노(麻奴) - 동호의 아들. 동호를 따라 한나라에 항복해 안정에 살았는데, 당시 항복한 여러 강족들이 각 군현에 흩어졌고 관리, 호족들을 위해 요역을 하자 근심, 원한이 쌓이게 되었다. 107년에 마노는 종족의 백성들과 함께 서쪽 변경 지역으로 나아갔다. 121년에 마노는 소당의 적통에 해당되었지만 마현이 위로하지 않자 인량 등과 결탁해 황중을 노략질하고 금성에 속한 여러 현을 공격했으며, 영거에서 무위, 장액의 군사를 패퇴시키고 선령, 심저의 여러 종족 4천여 호를 위협해 거느리면서 기련산 서쪽을 따라 달아나다가 무위를 노략질했다. 마현의 추격을 받았고 난조에서 이들을 불러들여 항복한 자가 수천 명이 되자 마노는 남쪽의 황중으로 돌아갔으며, 122년에 마현의 추격을 받아 황중에서 격파되어 그 종족의 무리는 흩어져서 숨었고 결국 곤궁하게 되자 종족의 무리를 이끌고 경충에게 항복했다가 124년에 죽었다.
- 마등, 마초 일가 - 마등의 어머니가 강족이므로 마등과 그 동복형제의 후손들은 강족 혼혈이다.
- 미당(迷當)
- 미당(迷唐)
- 미망(靡忘)
- 미오(迷吾)
- 방념(龐恬), 부번(傅幡) - 서강의 인물로 6년에 왕망이 땅을 빼앗은 것을 원망해 서해태수 정영을 공격해서 달아나게 했고 왕망이 보낸 호강교위 두황의 공격을 받았다.
- 백호문(白虎文)
- 벌동(伐同)
- 벽제(辟蹏)
- 비결(卑缺) - 강족의 인물. 미당의 조모. 92년에 섭상이 강족에게 은혜를 베풀겠다면서 미당을 초대해 대유곡, 소유곡으로 돌아와 살게 하려고 했는데, 미당이 돌아온 후에 섭상에게 파견되었다가 섭상으로부터 길을 떠날 때 지내는 제사를 받고 섭상이 보낸 5명으로부터 여락까지 배웅받았다.
- 비동겸
- 북궁백옥
- 서고(犀苦) - 강족의 수령. 마노의 동생. 124년에 마노가 죽자 서고가 계승했다.
- 소과(燒戈) - 《 삼국지연의》에서 소과와 퓨전한 아하소과로 유명하다.
- 신령(愼零) - 강족의 수령. 111년에 상규에서 강족과 연락을 하면서 두기, 두계공, 왕신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자 두계공이 신령에게 의탁했으며, 신령은 113년에 사망했다.
- 아차새
- 아하(餓何) - 《 삼국지연의》에서 소과와 퓨전한 아하소과로 유명하다.
- 약라발능
- 양과(梁戈) - 남강의 인물. 400년에 후진이 서진과 싸웠다가 물러나자 걸복건귀를 초청했는데, 걸복건귀가 이에 호응하려 했다가 걸복건귀의 신하인 옥인아락이 남량의 음창에 이를 알려 가지 못했다.
- 양봉(良封) - 강족의 인물. 종강에 속했고 134년 가을 7월에 농서, 한양 등을 침략했다가 겨울 10월에 마속에게 격파당했다.
- 여숙도(呂叔都) - 강족의 인물. 115년에 윤취와 싸웠고 진성, 나횡 등의 암살로 살해당했다.
- 염기(斂岐) - 강족의 인물, 요익중, 요양 등을 섬기고 요양 휘하에서 우부수를 지냈으며, 이후 전량과 결탁하다가 전진에서 군사를 보내 왕맹, 강형, 요장 등이 공격하려 하자 염기의 부락들은 요장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염기는 왕맹이 약양을 공격하자 패하고 백마로 달아났지만 소강의 추격을 받고 붙잡힌다.
- 영창(零昌) - 강족의 수령. 신령의 아들. 신령이 죽자 계승했지만 나이가 어렸다. 114년에 호다가 한나라의 군사와 싸워서 패할 때 연합했다. 결국 호다가 항복한 후에 115년에 방삼, 사마균이 이끄는 강족, 흉노족으로 구성된 7천여 명에게 공격을 받았다. 117년 가을 9월에 임상이 보낸 호봉에게 암살당했다.
- 왕흠로(王欽盧) - 강족의 인물. 요양이 관중을 도모하려 했는데, 357년에 좌장군을 지내면서 요익생과 각기 군사를 거느려 여러 강족, 호족을 불러 받아들였다.
- 요가회
- 요난(姚蘭) - 강족의 인물. 요양의 사촌형으로 요양이 관중을 도모하려 했는데, 357년에 보국장군을 지내면서 부성에서 약탈했다. 동진의 장군인 부비룡의 공격을 받아 사로잡혔다.
- 요양
- 요익(姚益) - 강족의 인물. 요양의 형. 353년에 요양이 은호를 격파하자 요양의 명으로 산상을 지켰다.
- 요익생(姚益生) - 강족의 인물. 요양의 형으로 요양이 관중을 도모하려 했는데, 357년에 요무장군을 지내면서 왕흠로와 각기 군사를 거느려 여러 강족, 호족을 불러 받아들였다.
- 요익중
- 요흥
- 유귀(楡鬼) - 강족의 인물. 당전 부락에 살았고 117년에 한나라의 임상이 파견해 두계공을 찔러죽였으며, 그 공으로 파강후에 봉해졌다.
- 인대
- 인량(忍良) - 강족의 수령. 오동의 대호로 120년에 당전 부락에서 기근이 들자 윤가에 머무르면서 강족 또는 한나라 중에서 어느 쪽에 편을 들지 결정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121년 봄에 마현이 군사를 풀어 공격해 2천여 명이 죽거나 사로잡히자 인량은 도망가 요새를 빠져나갔다. 마노와 결탁해 여러 부족을 거느리면서 황중을 노략질하고 금성의 여러 현을 공격했다.
- 적온자(狄溫子) - 강족의 수령. 행성에 거주해 하나라에 복속하고 있다가 421년 12월 7일에 3천여 가를 이끌고 북위에 투항했다.
- 전량(滇良)
- 전안
- 전오
- 전창기렴(滇昌飢恬) - 강족의 수령. 침저에 속하고 황보규가 강족이 사는 지역에 나타나 잘못된 행위를 벌인 관리들을 면직하거나 죽이자, 이 소식을 듣고 전창기렴과 10만여 명이 황보규에게 항복했다.
- 조하(雕何) - 강족의 인물. 상군의 전무종에 속하고 118년에 등준에게 현상금을 받고 낭막을 찔러죽였다.
- 치무대
- 팽리발(彭利髮) - 서강족의 인물. 411년 12월에 부한을 습격해 대장군, 하주목을 자칭했으며, 서진(西秦)에 공격하자 이를 막았다. 412년 정월에 서진의 공격을 받자 무리를 버리고 남쪽으로 도주했으며, 걸복공부가 이끄는 군사에게 청수까지 추격을 받아 참수되었다.
- 팽해념(彭奚念) - 강족의 인물. 부한 지역에 거주하다가 389년에 서진(西秦)에 귀부해 북하주자사에 임명되었으며, 392년에 후량의 여찬이 공격하자 이를 격파했지만 여광이 부한을 공격하면서 패하고 감송으로 달아났다. 397년 6월에 서진에서 팽해념을 진위장군으로 삼았다.
- 포교(布橋)
- 호다(號多) - 강족의 수령. 114년에 다른 여러 종족과 연합해 무도, 파군을 노략질하고 판순의 만족들이 구원했는데, 정신에게 격파되어 달아나 돌아가다가 영창과 연합했다. 그러나 후패, 마현 등의 공격으로 부현에서 격파되었다. 115년에 방삼이 여러 강족들을 회유하자 호다는 무리를 거느려 투항했으며, 호다는 열후의 인수를 받고 돌아갔고 방삼이 영거로 돌아가 다스리면서 한나라에서는 하서 지방으로 나가는 길이 통하게 되었다.
- 호봉(號封) - 강족의 수령. 효공종에 속하고 117년 가을 9월에 한나라의 임상이 파견해 영창을 찔러죽였고, 그 공으로 강왕에 임명되었다.
7. 삼국지연의의 강족 가공인물
8. 창작물에서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특히 삼국시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며, 유목민족이라서인지 기병 관련에 특출하다.8.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이민족 세력 중 하나로 등장한다. 삼국지 9에서 마등, 마초와 우호적이며 30만 병력에 최강 병법인 돌격을 보유했기 때문에 서량이나 한중 일대의 세력은 상대하기 어렵다.8.2. 삼국지 영걸전
이민족이라는 병과로 세 가상의 장수가 진창 전투에서 등장하며 마초로 설득할 경우, 잠시 아군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진창 전투와 장안 전투를 마치면 다시 떠난다.8.3. 삼국지 공명전
공명전 3장 북벌진행중 서평관에서 강족들과 한번 전투 한다.월길, 아단, 양란 등 강족 장수들이 나오며, 양란과 강유와 일기토를 할시 양란은 등용가능하다.
[1]
같은 어족의 동계어(가령
티베트어로 "지키다"라는 뜻의 སྐྱོངskyong <koŋ˥˩>)와 비교해봤을 때, 원래 어떤 자음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정확한 음가가 무엇인지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2]
태공망
강상이 강족으로 알려져 있다.
[3]
중국 역사학자 리숴에 따르면, 애초에 이들은 희성주족의 친척뻘로 강성주족(강씨성의 주족)이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주족의 시조인
후직의 아들 부줄에서 내려온게 희성주족이고, 후직의 동생 태새의 아들 숙균 무리에서 내려온게 강성 주족이라고. 다만 주나라가 상나라를 정벌한 뒤 조상 세탁미화가 들어갔을 개연성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애초에 유목민 집단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4]
대표적으로 마등 마초 등의 마씨 일족
[5]
강족과 선주민의
혼혈로 추정된다.
[6]
당항강(党項羌)으로도 불린다.
[7]
저족의 후손으로 백마인(白馬人)이 남아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백마인이 역사상의 저족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 현대
중국에서는 현재 남아 있는 민족들을 중국 사서에 기록된 민족들과 근거가 없어도 일치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은 관광 산업에 도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8]
성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