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後漢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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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광무제기(光武帝紀)」 | 2권 「명제기(明帝紀)」 | 3권 「장제기(章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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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화제상제기(和帝殤帝紀)」 | 5권 「안제기(安帝紀)」 | 6권 「순제충제질제기(順帝沖帝質帝紀)」 | |
유조 · 유륭 | 유호 | 유보 · 유병 · 유찬 | |
7권 「환제기(桓帝紀)」 | 8권 「영제기(霊帝紀)」 | 9권 「헌제기(獻帝紀)」 | |
유지 | 유굉 | 유협 | |
10권 「황후기(皇后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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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 유분자 왕창 · 유영 · 방맹 · 장보 · 왕굉 · 이헌 · 팽총 · 노방 13권 「외효공손술열전(隗囂公孫述列傳)」 14권 「종실사왕삼후열전(宗室四王三侯列傳)」 외효 · 공손술 유인 · 유량 · 유지 · 유흡 · 유사 · 유순 · 유가 15권 「이왕등내열전(李王鄧來列傳)」 16권 「등구열전(鄧寇列傳)」 17권 「풍잠가열전(馮岑賈列傳)」 이통 · 왕상 · 등신 · 내흡 등우 · 구순 풍이 · 잠팽 · 가복 18권 「오갑진장전(吳蓋陳臧列傳)」 19권 「경엄열전(耿弇列傳)」 20권 「요기왕패채준열전(銚期王霸祭遵列傳)」 오한 · 갑연 · 진준 · 장궁 경엄 요기 · 왕패 · 채준 21권 「임이만비유경열전(任李萬邳劉耿列傳)」 22권 「주경왕두마유부견마열전(朱景王杜馬劉傅堅馬列傳)」 임광 · 이충 · 만수 · 비동 · 유식 · 경순 주우 · 경단 · 왕량 · 두무 · 마성 · 유륭 · 부준 · 견담 · 마무 23권 「두융열전(竇融列傳)」 24권 「마원열전(馬援列傳)」 25권 「탁노위유열전(卓魯魏劉列傳傳)」 두융 , 두헌, 마원 탁무 · 노공 · 위패 · 유관 26권 「복후송채풍조모위열전(伏侯宋蔡馮趙牟韋列傳)」 27권 「선장이왕두곽오승정조열전(宣張二王杜郭吳承鄭趙列傳)」 복담 · 후패 · 송홍, 송유, · 채무 · 풍근 · 조희 · 모융 · 위표 선병 · 장담 · 왕담 · 왕량 · 두림 · 곽단 · 오량 · 승궁 · 정균 · 조전, 조계, 28권 「환담풍연열전(桓譚馮衍列傳)」 29권 「신도강포영질운열전(申屠剛鮑永郅惲列傳)」 30권 「소경양후낭의양해열전(蘇竟楊厚郞顗襄楷列傳)」 환담 · 풍연 신도강 · 포영, 포욱, · 질운 소경 · 양후 · 낭의 · 양해 31권 「곽두공장염왕소양가육열전(郭杜孔張廉王蘇羊賈陸列傳)」 32권 「번굉음식열전(樊宏陰識列傳)」 곽급 · 두시 · 공분 · 장감 · 염범 · 왕당 · 소장 · 양속 · 가종 · 육강 범굉 · 음식 33권 「주풍우정주열전(朱馮虞鄭周列傳)」 34권 「양통열전(梁統列傳)」 35권 「장조정열전(張曹鄭列傳)」 주부 · 풍방, 풍석, , 유희, · 우연 · 정홍 · 주장 양통 장순 · 조포 · 정현 36권 「정범진가장열전(鄭范陳賈張列傳)」 37권 「환영정홍열전(桓榮丁鴻列傳)」 38권 「장법등풍탁양열전(張法滕馮度楊列傳)」 정흥 · 범승 · 진원 · 가규 · 장패 환영, 환언, , 주총, · 정홍 장종 · 법웅 · 등무 · 풍곤 · 도상 · 양선 39권 「유조순우강유주조열전(劉趙淳于江劉周趙列傳)」 40권 「반표열전(班彪列傳)」 유평 · 조효 · 순우공 · 강혁 · 유반, 유개, · 주반 · 조자 반표 41권 「제오종리송한열전(第五鍾離宋寒列傳)」 42권 「광무십왕열전(光武十王列傳)」 제오륜 · 종리의 · 송균 · 한랑 유강 · 유보 · 유강 · 유연 · 유언 · 유영 · 유창 · 유형 · 유형 · 유경 43권 「주악하열전(朱樂何列傳)」 44권 「등장서장호열전(鄧張徐張胡列傳)」 45권 「원장한주열전(袁張韓周列傳)」 주휘 · 악회 · 하창 등표 · 장우 · 서방 · 장민 · 호광 원안 · 장포 · 한릉 · 주영 46권 「곽진열전(郭陳列傳)」 47권 「반양열전(班梁列傳)」 곽궁 · 진총 반초 · 양근 48권 「양이적응곽원서열전(楊李翟應霍爰徐列傳)」 49권 「왕충왕부중장통열전(王充王符仲長統列傳)」 양종 · 이법 · 적포 · 응봉 · 곽서 · 원연 · 서구 왕충 · 왕부 · 중장통 50권 「명제팔왕열전(明帝八王列傳)」 51권 「이진방진교열전(李陳龐陳橋列傳)」 유건 · 유선 · 유공 · 유당 · 유연 · 유창 · 유병 · 유장 이순 · 진선 · 방참, 시연, · 진귀 · 교현 52권 「최인전(崔駰傳)」 53권 「주황서강신도열전(周黃徐姜申屠列傳)」 54권 「양진열전(楊震列傳)」 최인 주섭 · 황헌 · 서섭 · 강굉 · 신도반 양진, 사마포, , 마영, 55권 「장제팔왕열전(章帝八王列傳)」 유항 · 유전 · 유경 · 유수 · 유개(劉開) · 유숙 · 유만세 · 유승 56권 「장왕충진열전(張王种陳列傳)」 57권 「두난유이유사열전(杜欒劉李劉謝列傳)」 58권 「우부갑장열전(虞傅蓋臧列傳)」 장호 · 왕공 · 충고 · 진구 두근 · 난파 · 유도 · 이운 · 유유 · 사필 우후 · 부섭 · 갑훈 · 장홍 59권 「장형열전(張衡列傳)」 60권 「마융채옹열전(馬融蔡邕列傳)」 61권 「좌주황열전(左周黃傳)」 장형 마융 · 채옹 좌웅 · 주거 · 황경 62권 「순한종진열전(荀韓鍾陳列傳)」 63권 「이두열전(李杜列傳)」 64권 「오연사노조열전(吳延史盧趙列傳)」 순숙 · 한소 · 종호 · 진식 이고, 이섭, , 조준, · 두교 오우 · 연독 · 사필 · 노식 · 조기 65권 「황보장단열전(皇甫張段列)」 66권 「진왕열전(陳王列傳)」 황보규 · 장환 · 단경 진번 · 왕윤 67권 「당고열전(黨錮列傳)」 유숙 · 이응, 이수, · 두밀 · 유우 · 위영 · 하복 · 종자 · 파숙 · 범방 · 윤훈, 윤목, · 채연 · 양척 · 장검 · 진상 · 공욱 · 원강 · 유유 · 가표 · 하옹 68권 「곽부허열전(郭符許列傳)」 69권 「두하열전(竇何列傳)」 70권 「정공순열전(鄭孔荀列傳)」 곽태 · 부융 · 허소 두무 · 하진 정태 · 공융 · 순욱 71권 「황보숭주준열전(皇甫嵩朱儁列傳)」 72권 「동탁열전(董卓列傳)」 73권 「유우공손찬도겸열전(劉虞公孫瓚陶謙列傳)」 황보숭 · 주준 동탁 유우 · 공손찬 · 도겸 74권 「원소유표열전(袁紹劉表列傳)」 75권 「유언원술여포열전(劉焉袁術呂布列傳)」 원소 , 원담 · 원상, · 유표 유언 · 원술 · 여포 76권 「순리열전(循吏列傳)」 위립 · 임연 · 왕경 · 진원 · 왕환 · 허형 · 맹상 · 제오방 · 유구, 유광, · 유총 · 구람 · 동회 77권 「혹리열전(酷吏列傳)」 동선 · 번엽 · 이장 · 주우 · 황창 · 양구 · 왕길 78권 「환자열전(宦者列傳)」 정중 · 채륜 · 손정 · 조등 · 선초 · 서황 · 구원 · 좌관 · 당형 · 후람 · 조절 · 여강 · 장양 · 조충 79권 「유림열전(儒林列傳)」 유곤 · 규단 · 임안 · 양정 · 장흥 · 대빙 · 손기 · 구양흡 · 모장 · 송등 · 장순 · 윤민 · 주방 · 공희 · 양륜 · 고후 · 포함 · 위응 · 복공 · 임말 · 경란 · 설한 · 두무 · 소순 · 양인 · 조엽 · 위굉 · 동균 · 정공 · 주택 · 손감 · 종흥 · 견우 · 누망 · 정증 · 장현 · 이육 · 하휴 · 복건 · 영용 · 사해 · 허신 · 채현 80권 「문원열전(文苑列傳)」 두독 · 왕륭 · 하공 · 부의 · 황향 · 유의 · 이우 · 소순 · 유진 · 갈공 · 왕일 · 최기 · 변소 · 장승 · 조일 · 유량 · 변양 · 역염 · 후근 · 고표 · 장초 · 예형 81권 「독행열전(獨行列傳)」 초현 · 이업 · 유무 · 온서 · 팽수 · 삭로방 · 주가 · 범식 · 이선 · 왕돈 · 장무 · 육속 · 대봉 · 이충 · 무융 · 진중 · 뇌의 · 범염 · 대취 · 조포 · 상허 · 양보 · 유익 · 왕열 82권 「방술열전(方術列傳)」 임문공 · 곽헌 · 허양 · 고획 · 왕교 · 사이오 · 양유 · 이남 · 이합 · 단예 · 요부 · 절상 · 번영 · 당단 · 공사목 · 허만 · 조언 · 번지장 · 선양 · 한열 · 동부 · 곽옥 · 화타 · 서등 · 비장방 · 소자훈 · 유근 · 좌자 · 허자훈 · 해노고 · 장초 · 왕진 · 학맹절 · 유화평 83권 「일민열전(逸民列傳)」 상장 · 봉맹 · 주당 · 왕패 · 엄광 · 정단 · 양홍 · 고봉 · 대동 · 한강 · 교신 · 대량 · 법진 · 한음노보 · 진류노보 · 방공 84권 「열녀전(列女傳)」 환소군 · 조아(趙阿) · 반소 · 이목강 · 조아(曹娥) · 여영 · 마륜 · 조아(趙娥) · 순채 · 조원강 · 숙선웅 · 채염 85권 「동이열전(東夷列傳)」 86권 「남만서남이열전(南蠻西南夷列傳)」 87권 「서강전(西羌傳)」 부여국 · 읍루 · 고구려 · 북옥저 · 한 · 왜 남만 · 서남이 서강 88권 「서역전(西域傳)」 구미국 · 우전국 · 서야국 · 자합국 · 덕약국 · 안식국 · 대진국 · 대월지국 · 고부국 · 천축국 · 동리국 · 율과국 · 엄국 · 엄채국 · 사거국 · 소륵국 · 언기국 · 포류국 · 이지국 · 동저미국 89권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90권 「오환선비열전(烏桓鮮卑列傳)」 남흉노 오환 · 선비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11><tablebgcolor=#a11> ||
王充
(27~100)
1. 개요
후한의 사상가다. 자는 중임(仲任)으로, 고문학파에 속한다. 지금도 고대 역사학과 고대 문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논형(論衡)[1]이라는 역사적 저작을 남겼다. 한국에는 성선악혼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2. 상세
어려서부터 놀림받는 것을 싫어해 동네 애들과 노는 일이 일절 없었다고 한다. 대신 공부를 하러 다니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낙양으로 상경해 한서를 지은 반고의 아비 반표에게 사사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서점에서 책을 보고 암기하는 식으로 공부해 제자백가를 통달했다고 한다. 벼슬이 공조에 이르는 등 꽤 괜찮았으나 윗사람과 뜻이 맞지 않아 교육의 길로 들어섰다. 60세 때 자사 동근에게 초빙되어 주종사가 되고, 치중에 이르렀으나 62세 때 퇴직한다.기속, 정무, 양성 등의 책을 지었으나 여전히 현실에 짜증나는 바가 많았던 모양으로 최대 걸작인 논형을 짓는다. 논형은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현대까지 전한다. 논형은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2] 한 개인이 지은 백과전서 류의 저작으로 당나라 대까지 대단한 저작으로 평가받았다. 허나 송나라 대에 성리학이 흥기하며 공자, 맹자에 대한 비판이 문제시되며 잊혀졌다. 논형은 이후 20세기가 돼서야 재평가를 받게 된다. 문화대혁명 비림비공운동 시기에 공자를 비판하고 유물주의를 주창하는 부분이 주목받으며 고평가받고 있다.
논형은 위대한 저술이지만 동양적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시비를 변별하려고 하고 글의 풍류나 시적인 함축성이 적고 남들이 읽어줄 거라는 생각도 안했는지 매우 시시콜콜한 부분도 많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글의 장르가 부분별로 사상서, 일기, 역사서, 정보서, 시문학 등 속성이 오락가락하는 편으로 이 나무위키를 사람 혼자 쓴 수준의 방대한 양인데, 당시가 글이라는 것의 종류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시대라는 점을 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고, 수십년간 썼으니 그 엄청난 세월을 사회와 세상, 정치 등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방면으로 꾸준하게 평생 깊게 고뇌한 흔적이 잘 보이므로 가치가 높다. 그런 속성상 탁월한 저작이었기에 논형은 후한말에 이르러 주목을 받게 되었다. 채옹이 오나라 땅에서 논형을 얻고 왕성하고 풍부한 비판 정신을 고평가했으며, 채옹이 북으로 돌아갔는데 그의 식견이 갑자기 높아지자 친구들이 몰래 서재를 뒤져서 논형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세설신어에 전한다. 왕랑이 회계태수 시절 득템해 기뻐하였고 위무제 조비도 논형의 애독자였으며, 포박자를 지은 갈홍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왕충은 옛 성인들의 글쓰기 방식에 의탁하지 않고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추구했다. 술은 무슨 술이던지 먹으면 취하고, 오곡은 뭐던 간에 먹으면 배부르고, 노래는 곡조가 다르지만 들어서 좋고, 미인은 생긴 게 다 다르지만 예쁜데 왜 글쓰기는 한 가지 방식이냐며 반발하고 문학 작품도 구어에 가까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안문학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미루어 추정할 수 있다.
왕충이 자못 뻐기며 논형을 자찬한 바에 따르면, 시 300편은 생각에 사악함이 없듯이, 논형 10여편도 허망함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시경(詩經)에 논형을 비겼다.[3] 왕충이 고문학파의 거두로서 천인감응설이나 참위설을 같잖게 바라봤음은 명확하다. 한대의 유학은 관학으로서 자리매김하며 국가와 황제와 지도층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음양가나 도가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고전유가와는 상당히 변화된 양상을 보인다. 이들 학파의 일단을 거칠게 논해 보자면 황제가 착하니 세상이 평온하고 황제가 나쁘니 가뭄이 들고 머리 두 개 달린 소가 나타났으니 이건 하늘의 경고이므로 긴장하라는 것이다.
논형은 무위자연의 이치로 이를 반박한다. 고대 중국의 사상에 따르면 하늘과 땅 등 자연은 제일가는 무위의 도로 세상을 주재한다. 이것은 고대 중국의 우주론이다. 일이 이러한 것은 자연이 특별한 감각기관이 없는 것을 볼 때 명확하다. 왜냐면 기가 이루어져 나타난 생명체는 감각기관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은 생명체가 아니고 그러므로 어떤 일도 스스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머리 둘 달린 소가 나타났으므로 하늘이 경고한다는 것은 곧 하늘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 그리고 우주 속의 인간은 옷 안의 벼룩이나 이에 불과할 텐데, 벼룩이나 이가 아무리 날뛴다고 해서 옷의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인간은 인간의 작위로 인해 우주의 기가 변화한다고 말하는데 불가한 얘기라고 한다.
왕충은 이와 같은 자연의 무위함과 더불어 시비를 날카롭게 변별해 자연과 인간의 무관함을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대한 탐구심을 존중해 도가의 앞길을 밝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인간문물과 행위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이는 왕충 본인이 행한 공, 맹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순자와 비슷한 성향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왕충의 주장이 공, 맹 등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왕충도 공자를 제일가는 성인으로 인정하나, 그렇다고 해서 비판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학술에 있어서 바르게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은 몹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도가적 사상을 드러내되 공자를 제일가는 성인으로 인정하는 왕충의 기풍은 위진시대 현학으로 이어진다. 이 부분에서는 왕필의 학풍도 꼭 들어맞는다.
후한서는 왕충, 왕부, 중장통 셋의 열전을 묶었는데, 세 사람 모두 기존의 유학을 비판적으로 해석한[4] 체제비판적 지식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
무려 본인은 가본 적도 없는
부여(논형의 길험 편에 수록)에 대한 내용도 써놨을 정도로 엄청난 정보량을 자랑한다. 지금으로 치면 동북아시아에 대한 1인 나무위키 수준. 물론 책의 장르 자체가 역사서는 아니다. 논형은 너무 많은 장르의 글들이 다 합쳐져 있으므로, 현대의 저작 장르 구별로 정의할 수 없는 장르의 책이다.
[2]
대단히 오랜 시기에 걸쳐 썼던 것으로 추정되며 일관적이지는 않다는 약점이 있다.
[3]
시삼백(詩三百)은 이른바 시경을 가리키는 말인데, 자신이 지은 논형을 공자의 편저이자 유학의 3대 경전 중 하나인 시경에 빗대어 자랑한 것. 앞의 '시 300편은 생각에 사악함이 없듯이'라는 표현도 논어의 구절(자왈,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사무사)에서 따왔다.
[4]
특히 전한 이후 정치권력과 결합하여 사상계에서 상당한 권위를 누렸던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에 반대되는 견해를 드러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왕충과 중장통의 주장은 동중서와 커다란 차이점이 있으며, 왕부는 이들에 비해 덜하지만 동중서보다 인간의 의지를 더욱 중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