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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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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慈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박물지3. 연의4. 관련 사료5. 미디어 믹스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인물이며 는 원방(元放)으로 예주 여남군 사람.

2. 박물지

좌자는 진수 정사 삼국지를 제작했을 때 기록으로 남긴 인물이 아니라 후대사람인 배송지 박물지를 참고하여 정사 삼국지에 주석을 달 때 주석에 기록 및 설명된 인물이다.

박물지에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그는 조조가 초대한 방사 중의 한 명이었으며, 오각선생이라는 별호로도 불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오경과 아울러 천문과 참위설에 밝았는데, 당시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오경과 천문과 참위설에 근거하여 한나라의 국운이 쇠해 천하에 대란이 일어날 것을 일찍이 감지했다. 그는 벼슬이 높은 자는 위험하며 재물이 많은 자는 죽을 것이라고 탄식했는데 도술을 배워 귀신을 부리고 앉은 자리에 음식을 차려냈다고 한다.

그는 오랜 세월을 천주산에 있었던 석실에서 참선과 기도로 보냈다. 수행의 끝에 이르러 그는 구단금액경(九丹金液經)을 얻어 온갖 변화를 부렸는데, 이러한 그를 알게된 조조는 좌자를 불러 그를 방에 가두었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게 했다. 조조는 좌자가 갇혀있는 방을 지키는 이에게 일러 좌자에게 곡식을 일체 주지 않도록 할 것과 하루에 두 되의 물만 줄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부터 한 해가 지나 조조가 좌자를 다시 찾았을 때 조조가 본 것은 가히 놀라웠다. 좌자의 얼굴은 변함없이 여전했던 것이다. 이에 감탄한 조조가 좌자에게 부탁하여 도술을 배우고자 했다. 그러나 좌자는 조조의 부탁을 거절했고, 속으로 화가 난 조조는 그를 은밀히 죽이려고 했다.

이와 같이 공격적인 반응을 일찍이 예상한 좌자가 조조를 떠나려하자, 조조는 전송을 핑계로 술자리를 마련했다.좌자가 조조에게 술잔을 나누어 마시자고 부탁했는데, 그 날은 날씨가 추워 술을 데웠지만 술이 충분히 따뜻해지지 않았다. 좌자가 칼을 뽑아 술잔에 담겨진 술을 저었더니 점차 칼이 녹아 없어져 마치 사람이 을 벼루에 가는 것과 같았다.곧 이어 좌자는 비녀를 뽑아 술잔의 가운데에 금을 그었는데, 술잔과 함께 술잔에 담겨 있던 액체인 술까지도 반으로 잘려 나뉘어졌다.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조조는 이를 매우 불쾌하게 여겨 좌자를 의심하였다. 때문에 조조는 좌자로부터 건네 받은 반쪽짜리 술잔에 담겨진 술을 굳이 마시지 않으려고 했는데, 좌자는 다른 반쪽의 술도 자신이 마시겠다면서 다 마셨다. 그런 다음 좌자는 빈잔을 대들보에 던졌는데, 놀랍게도 던져진 잔은 대들보에 부딪힌 뒤 떨어지지 않은채 대들보에 매달려 흔들렸던 것이다. 좌자는 다른 사람들이 이 놀라운 광경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에 겁을 한 움큼씩이나 집어 먹은 조조는 좌우에 명해[1] 좌자를 잡아 죽이도록 하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잡으러 찾아다닌 것을 알게 된 좌자는 한마리 양으로 변신하여 양 무리에 섞여 숨었다. 추격자들은 으로 변신한 좌자가 양 무리 속으로 몸을 숨긴 것이라고 판단하였지만, 도저히 분별을 할 수 없었다. 좌자를 추격하던 관리가 꾀를 내어 "위왕(조조)께서 좌 선생을 보고자 하니 잠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주어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라고 점잖게 말했다. 그때 양의 무리 가운데 큰 양이 무릎을 꿇더니 말을 하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 양을 좌자라 여겨 잡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모든 양들이 무릎을 꿇으며 말을 했다. 때문에 결국 어떤 양이 좌자인지 알 수 없게 된 추격자들은 포기하고 말았다.

어떤 이가 조조에게 좌자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조조에게 이르자, 조조는 그의 증언을 따라 곧 좌자를 잡아 가두었다. 조조의 명을 받은 옥의 관리가 옥에 갇힌 좌자를 심문하고자 했지만, 건물 안과 밖에 두 사람의 좌자가 있어 그 두 좌자 가운데 어떤 이가 진짜 좌자인지 관리는 구분하지 못했다. 결국 관리는 그 둘을 끌어내 함께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좌자가 일곱 좌자로 변했고, 관리들이 그중 여섯 좌자는 잡고 한 명은 놓쳤다. 곧관리들은 성의 문을 모두 닫고 사람들의 통행을 수색하였는데, 곧 어떤 이가 좌자의 생김새를 알지 못해 관리에게 물었다. 관리는 좌자는 애꾸눈에 푸른 갈건을 썼고, 홑겹의 짧은 옷을 입었다고 설명하였다. 곧 사람들이 주변을 수색하니, 시중 사람들이 모두 홑겹의 짧은 옷을 입고, 외눈에 갈건을 쓴 모습으로 변해 누가 진짜 좌자인지 구분할 수 없었으며,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냈다며 그의 머리를 잘라 조조에게 바쳤으나, 그 머리는 풀 한 묶음일 뿐이었다.

형주목 유표가 좌자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자라 여겨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좌자는 알고 있었다. 유표가 휘하의 많은 군사가 도열해 있고 훈련하는 모습을 흡족하게 여기다가, 문득 좌자의 도술과 이 많고 강건한 군사들을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유초딩 도술이랑 군사들 중 누가 더 세요? 이를 알고자 유표는 좌자를 초대하였다. 좌자는 자신을 손님으로 초청해준 유표에게 답례를 하고자 유표의 군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좌자는 유표에게 유표가 술 한 그릇과 포 한 묶음을 요청하였는데, 십 여명이 함께 들어도 이를 들어올리지 못하자 좌자는 이를 직접 들고 왔다. 그는 칼로 포를 베어 땅에 던지면서 백 명에게 술과 포를 날라 운동장에 도열해 있는 군사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요청했다.[2]

한 병졸마다 석 잔의 술과 포 한 조각씩을 먹었지만, 그 맛은 보통의 술이나 포와 똑같았으며, 만 여명에게 나눠줬는데도 술과 포의 양은 줄어들지 않았다. 더불어 당시 유표의 주변에는 수십 명의 빈객들이 자리해 있어 모두가 크게 취할 정도로 마시고 먹었으며, 이에 크게 놀란 유표는 끝내 좌자를 해칠 뜻을 버리고 좌자를 며칠간 우대했다. 그 후 좌자는 동쪽의 강남으로 들어갔다.

강남[3]에 도착한 그는 그 지방에서 도술에 능하기로 이름난 서수라는 자를 찾아갔는데, 서수의 손님이 도술을 사용하여 서수가 없다고 좌자를 속이자, 좌자는 그 손님들의 소가 버드나무 꼭대기 가지 위를 걷게 했다. 이는 곧 착시현상으로써, 나무 위로 올라가서 소를 보면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지만, 다시 내려가서 나무 위를 보면 소가 그 위를 걷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또한 좌자는 그 손님들의 수레바퀴에 가시가 나서 이를 베어 내고 깍아도 끊임없이 자라게 하고 물러났다. 손님들은 좌자가 찾아온 것이라는 서수의 말에 뒤쫓아 머리를 조아리면서 죄를 빌었더니, 수레와 소가 제자리에 돌아와 묶여 있었으며, 수레바퀴에서 자란 가시들이 사라졌다.

손권을 만나게 되어 좌자에게 도력이 있다는 것을 안 손권은 그를 예로 존중했다. 하지만 손권의 신하 사송(謝送) [4]이 조조, 유표가 좌자가 민중을 미혹한다고 미워했다는 상소를 손권에게 올려 좌자를 죽이도록 유도했는데, 이에 손권은 좌자에게 나들이에 함께 나서기를 청하면서 몰래 뒤에서 찔러 죽이려고 했다. 나들이에서 좌자는 나막신을 신고 청죽장을 짚으면서 천천히 앞서 걸었는데, 항상 뒤따르는 말과 1백보쯤 되는 거리를 유지했으며, 말에 채찍을 가하면서 무기를 들고 쫓았지만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정말로 행적이 묘연해지는데,[5] 다만 갈홍이 쓴 포박자에 따르면 좌자는 이미 강동 지역의 네임드 방술사였던 갈현을 만나 그를 가르친 뒤 신선이 되어 떠났으며,그 가르침은 갈현의 후손인 갈홍 자신에게 이어졌다고 한다.(주로 연단술 관련)좌자는 갈현에게 곽산에 들어가 구전단을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단약이 완성되자, 좌자는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일화들은 모두 신선전에서 발췌한 일화들이다.

따지고 보면 좌자는 역사상의 여러 도사/방술사 중에 가장 화려한 행적을 보여준데다 도교 역사의 중요한 키포인트인 갈홍이 자신의 교조로 지목한 인물이기도 하니, 이 정도면 훗날 도교 신앙 체계의 주요 신 혹은 신선으로 편입될 법도 하다만 어째서인가 그렇게는 되지 않았는데, 다만 조조- 유표- 손권이라는, 당대의 권력자들을 차례로 유유히 농락하는 좌자의 이미지는 민간에 꽤 강한 인상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그는 '세속 권력에 맞서며 그들을 조롱하는 초월적 존재'의 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렇듯 '지배권력에 항거한 선인'의 이미지를 가진 좌자가,수백년 후 당나라의 황제들과 고관들을 수은중독의 고통과 광기로 몰아넣은 연단술의 원조이기도 하다는 사실에서는 어떤 끔찍한 역사의 아이러니.

이익이 저술한 성호사설의 11권에서는 우길과 함께 괴이하면서도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무리라고 까였다.

북위 시절의 승려인 혜생과 송운의 인도 유학담을 담은 승혜생사서역기에도 좌자는 언급되었다. 왕이 중국은 어떤 나라이냐고 혜생에게 묻자, 혜생은 주공, 공자, 장자, 노자에 대해 논하고, 이후 봉래산 꼭대기에 있다는 신선과 성자와 은으로 된 신전과 금으로 된 신당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그는 화타의 의술, 관로의 점복술, 좌자의 방술을 논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북위 시절에 이미 좌자는 대표적 방술사 가운데 한 명으로 여겨졌던 듯하며, 최소한 혜생이 살던 곳으로부터 그 주변 지역에서는 최고의 방술사로 여겨졌던 듯하다.

3. 연의

연의에서는 정사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한 쪽이 눈이 멀었고 한 쪽 다리를 절며, 머리에 흰 덩굴로 얽은 관을 썼고 푸른 옷을 걸친 것으로 나온다. 또한 조조와 같은 고향인 초군 패현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라고 소개되어있다.

합비 공방전 이후 조조의 위왕 즉위식에 맞춰 위나라에서는 강동의 온주에서 나는 [6]을 보내라 손권에게 요청하고, 손권은 큼직한 귤 40여짐을 골라 다른 선물들과 함께 업군으로 보냈다. 이를 호송하며 나르던 짐꾼들이 산기슭에서 잠시 쉴 때, 좌자가 다가와 짐꾼들에게 말을 걸며 자신이 짐을 좀 들어주겠다고 했고, 이에 짐꾼들은 '다리까지 저는 노인네가 노망이 났나'면서 코웃음을 쳤지만 좌자는 보란듯이 짐들을 들고 달려가자 깜짝 놀랬다. 이후 짐꾼들이 업군에 이르러 조조에게 귤을 바쳤는데, 귤을 까보니 속에 살은 없는 빈 껍질 뿐이었다.

조조가 깜짝 놀라 정황을 묻자 짐꾼이 오면서 만난 좌자에 대한 기이한 일을 알려줬는데, 마침 자신을 찾아온 좌자에게 어떤 요사한 술법으로 과일을 채갔냐고 묻자, 좌자는 손권으로부터 진상된 귤 하나를 집어 벗겼더니 안에는 맛 좋은 속살이 있었다. 조조가 크게 놀라 자리를 내주어 앉게 하자, 좌자는 술과 고기를 청했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술과 고기를 가져왔다. 놀랍게도 좌자는 술 다섯 말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았고, 양 한 마리를 다 먹고도 전혀 배불러 하는 기색이 없었다.

조조가 어떤 술법이 있어서 그 정도에 이르렀냐고 묻자, 서천의 가릉 아미산에서 30년간 도를 배워 둔갑천서 세 권을 얻은 사실을 얘기하면서, 조조에게 아미산에 들어가 수행할 것을 권했다. 조조가 천하를 걱정하자 그는 유비에게 천하를 내주라며 조조를 타일렀고, 이에 진노한 조조는 좌자를 유비가 보낸 간첩으로 몰아 사람을 시켜 좌자를 고문하고 힘껏 때리게 했다. 그러나 좌자는 오히려 꾸벅꾸벅 졸기만 했고 이에 분통이 터진 조조는 좌자에게 큰 칼을 쓰게 하고 그 칼을 쇠못과 쇠사슬로 고정시킨 뒤 독방에 넣어 감시하게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좌자로부터 큰 칼과 사슬들이 저절로 떨어져 나갔고, 그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다.

좌자는 7일 동안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땅 위에 단정히 앉았는데, 얼굴은 오히려 붉어지며 홍조를 띠었다고 한다. 이를 관찰한 옥졸이 조조에게 보고해 조조가 좌자에게 이에 대해 물었더니 좌자는 "수십 년을 먹지 않아도 별 탈이 없거나 하루에 양 천 마리를 줘도 다 먹을 수 있다"며 조조를 안심시켰다. 어느 날 조조가 왕궁에서 큰 잔치를 벌이자 그의 요청에 따라 좌자는 먹과 붓을 가져와서 회칠한 벽에 한 마리를 그린 뒤 도포의 소매로 스쳤는데 용의 배가 갈라졌고 그 갈라진 틈으로 좌자는 손을 넣어 피가 흥건하게 흐르는 을 꺼냈다고 한다. 조조는 이를 못 믿겠다고 했으나, 좌자는 현란한 말빨로 버로우시켰다.[7]

어느 날에는 날이 비정상적으로 차가운 나머지 풀과 나무들이 얼고 메말랐는데, 조조가 모란꽃을 보고 싶어했다. 이에 좌자는 그의 능력을 발휘해 입에 물을 머금었다가 커다란 화분에 뿜자 모란꽃이 자라났다고 한다. 어느 날은 조조의 요청으로 1000리나 떨어진 송강(松江)의 농어[8][9]를 가져오기 위해 낚싯대로 연못에서 큼직한 농어 수십 마리를 낚아올렸다. 조조가 자기 연못 속의 농어 가지고 그러느냐는 식으로 말을 바꾸니, 송강의 농어만이 오로지 아가미가 넷이라 이를 가려볼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조조가 사람을 시켜 농어의 속을 보니 정말로 아가미가 넷이었다고 한다. 그 농어들을 요리하기 위해 특별히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줄 땅의 명물 중 하나인 자아강을 위해 옷을 대야 위에 덮자, 자아강이 대야에 가득찼으며, 조조가 손을 내밀어 자아강을 쥘 때 대야 안에 조조 자신이 쓴 맹덕신서가 함께 나타났다. 이를 확인하니 전에 자기가 불태운[10] 맹덕신서와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조조는 맹덕신서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좌자는 또다시 말을 돌리며 술잔을 하나 꺼내 이 술을 마시면 천년을 살 거라면서 마시게 했다. 조조가 독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믿느냐며 거부하자 좌자는 비녀를 꺼내 술잔을 반으로 쪼개[11] 반은 자신이 마시면서 이렇게 하면 믿겠냐고 말했다. 조조가 폭발하자 좌자는 술잔을 던지고 갑자기 사라졌다. 조조는 허저에게 300명을 주어 좌자를 붙잡도록 했지만 좌자가 천천히 걸어가도 도저히 붙잡을 수 없었다. 이미 앞서 설명한 양떼의 무리에 관한 도술을 보였지만 연의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좌자가 양떼 사이로 몸을 숨겨 사라지자 허저는 당황했지만 이내 곰곰이 생각하기를 "이 놈이 도술을 부려 양으로 변신했지만 애꾸에다가 절름발이인 건 바꾸지 못했을 거니 애꾸에 절름발이인 양을 찾으면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좌자로 변했을 거라 생각되는 양을 찾았다. 그런데 양들이 죄다 애꾸에다가 절름발이인 모습이 되자 허저는 양들을 전부 죽여버리고 돌아갔고, 졸지에 양을 다 잃은 양치기 아이가 울고 있을 때, 양의 머리가 "양의 목을 도로 붙여라"라고 말했다. 기겁을 한 양치기 아이가 도망가자 "당황하지 말아라. 양은 모두 살았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양치기 아이가 돌아보니 좌자가 양들을 모두 살려서 데려오고 있었다.[12] 이에 양치기 아이가 감사하며 인사하려고 했으나 발길을 돌린 좌자는 순식간에 멀어져갔다고 한다.

조조가 사람들에게 명해 좌자의 얼굴 생김새를 종이에 그리게 하고, 여러 곳에 붙이게 하며 좌자를 붙잡게 하자, 좌자처럼 생긴 도사가 3, 400명이 잡혔다. 이에 조조는 사람들이 요사한 술법을 깨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돼지와 양의 피를 도사들에게 뿌리게 했다가 별다른 효과가 없자, 무장한 무사 500명을 시켜 그 도사들의 목을 전부 베었다. 그런데 베어진 도사들의 목에서 푸른 기운들이 솟아나더니 하늘로 올라 한 데 모이자 좌자 한 사람으로 변했고, 좌자는 허공에서 학 한 마리를 불러 올라타더니 조조를 보고 꾸짖었다.
"흙쥐가 금호랑이를 따라가면 간웅은 하루 아침에 끝나리라!"[13]
(土鼠随金虎,奸雄一旦休 - 토서추금호, 간웅일단휴)[14]
이에 자기가 죽는다며 놀리는 말을 듣고 격분한 조조가 장수들에게 활을 쏘라고 명령하자, 갑자기 휘몰아친 세찬 돌풍에 돌멩이가 굴러가면서 모래가 흩날렸고, 목 잘린 시체들이 모두 일어나 자기 머리를 들고 오면서 조조를 때렸다고 한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이문열이 이 내용에 대해 언급할 때 좌자가 속임수를 쓰다가 들통이 나자 조조는 죽일 생각이 없는데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문열이 그렇게 언급하는 정사에 버젓이 조조가 좌자를 죽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문열이 평역 삼국지를 쓸 때 조조를 많이 조명한 것도 있고, 또 어느 정도 사리에 맞게 풀어나가려는 해석을 많이 했는데 사실 좌자 에피소드 자체가 워낙 허무맹랑해서.

그리고 이 일 때문에 두풍을 앓게 되지만, 신이 내린 점쟁이 관로가 와서 말 한 마디로 해결했다고 한다. 하지만 관로에게서 '앞으로 몇 년 뒤에 자신의 한쪽 다리가 상할 것'이라는 점괘를 받게 되는데..[15] 물론 정사에서는 관로가 12살일 때 조조는 이미 죽었으므로 말이 안 되지만, 연의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로.

4. 관련 사료

5.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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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의에서는 허저다. [2] 주석 : 유표는 요상하거나 바른말을 하는 선비들을 참형에 처했었다. 이러한 당시의 형주 안의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사마휘는 그의 인재를 보는 뛰어난 안목을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으로 남겨두었으며, 사적으로만 이 능려을 이용하여 좀처럼 남의 부탁을 들어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물론 그가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사람들인 방덕공, 최주평, 제갈량 등의 넓은 식견이 필요한 인재들에게는 아마도 그는 조금은 관대했을 것이다. [3] 실제로 역사에서도 장로의 오두미도를 원조로 하는 북방의 도교와 이런 좌자~갈홍의 계보를 중심으로 하는 남방의 도교는 이후 남북으로 분단된 중국의 역사처럼 각자 독자적인 형태로 성장한다. [4] 사섭의 아들 사송(士頌)과는 다른 인물이다. [5] 사실 여기까지는 좌자가 처음이 아니고 이전의 방술사/도사들의 이야기에서도 종종 나오는 패턴이지만, 그 대부분은 이후 승천했다느니 산중으로 모습을 감췄다느니 행방이 묘연해 지는 걸로 끝나는지라,보통 사학자들은 이런 묘사를 '실제로는 처형 당한 것을 추종자들이 허구로 얼버무린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허나 좌자 만큼은 독특하게도 조조와의 결별 이후의 행보까지 자세하게 묘사되어있다. 어쨌든 조조에게 살해 당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피했다는 이야기다. [6] 일부 판본에서는 감자(柑子)라고 하기도 해서 당연히 감자하면 potato를 떠올리는 독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감(柑)은 을 뜻하는 것이므로 귤이 맞는 표현이다. 흔히 밀감(蜜柑)할 때 감(柑)이 이 감이다. [7]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조조가 "네 소매에다가 미리 담아온 거 아니냐!"라고 따지자 좌자가 시치미를 떼고(…) 아래의 모란꽃 이야기로 넘어간다. 사실 이건 조조의 억까라 봐야 할 것이, 피가 흥건하게 흐르는 간을 소매에 담아뒀으면 소매가 피에 젖어 있었을 것임에도 소매가 어땠다는 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8] 흔히 생각하는 바다물고기 농어가 아니라 '꺽정이'라는 독중개과의 민물고기이다. [9] 정확히는 강동땅 오강의 농어회를 말한다. 그런데 이건 사실 백년 이상 뒤 시대인 동진 시대에 유명해진 말이다. [10] 장송 양수가 건네 준 맹덕신서를 한 번 보고 그대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암송했다. 더불어 장송은 이 책은 형편이 없으며 어느 듣보잡 선비의 글을 조조가 표절한 것으로, 서천(촉)에서는 어린애도 외우고 다니는 글이라고 깠다. 양수에게 이를 고스란히 전해들은 조조는 남의 글과 비슷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태연한 척 했지만 굉장히 기분이 상했는지 맹덕신서를 그대로 불태웠다. [11] 맨손으로 쪼갰다는 기록도 있다. 여담으로 이 술의 이름은 불로장생주라고 한다. [12] 삼국지평화에서는 한 마리 양이 무릎을 꿇고 사람 같이 일어서서 "당황하는 것이 허저와 같구나"라고 말했는데, 허저가 죽이려하자 나머지 양들도 일제히 일어나 "당황하는 것이 허저와 같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13] 흙쥐는 토서, 금호랑이(쇠범)은 금호다. 이걸 뒤집으면 금서 토호. 쇠가 들어간 쥐띠 해인 경자년(220년) 흙이 들어간 호랑이 달인 무인달(1월) 조조가 사망한다는 뜻이다. [14] 일단 휴(休)의 대표적인 뜻이 쉰다는 것이므로 삼국지 6처럼 오역하는 경우도 많지만, 많은 한자가 그렇듯이 이 글자도 뜻이 굉장히 많다. 즉 바르게 번역하면 "하루아침에 끝이 난다"로 옮겨야 한다. 연의에서 팔문금쇄진에 대해 "휴문(休門)으로 들어가면 해를 입는다"라는 구절이 있어서 '왜 쉬는 문인데 해를 입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서도 휴문은 '쉬는 문'이 아니라 '끝장나는 문'이란 뜻이다. 모든 일이 끝장났다는 뜻의 '만사휴의(萬事休矣)'라는 한자성어도 있다. [15] 하후연의 전사를 암시하는 점괘다. 하후연이 기동전에 능한 장수였으니 점괘에서도 다리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