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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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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修/楊脩

175년 ~ 219년

1. 개요2. 정사 삼국지
2.1. 세설신어의 일화
3. 삼국지연의4. 숙청 원인5. 기타6. 기타 창작물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며 는 덕조(德祖). 후한 말기의 중신인 양표의 아들로, 어머니는 원술의 누이인 양태위부인 원씨다. 사례 홍농군 화음현 출신. 오늘날에는 계륵의 당사자로 유명하다.

2. 정사 삼국지

어린 나이부터 주부 벼슬을 지냈다. 아는 게 많고 언변이 능한 데다가 재주도 있고 생각하는 것도 민첩해 남이 떠올린 것을 알아채고서 한 발 먼저 처리해 주는 일이 잦았다. 당대에 똑똑하다고 유명했던 공융, 예형과 교류하였다.

219년 가을에 조조에게 트집을 잡혀 낙양에서 처형되었다. 향년 44세. 아들로 양효가 있었으며, 손자는 양준[1]이다. 양준은 서진 때에 고관이 되었고 그렇게 양수의 직계 자손은 동진 말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동진 안제의 치세였던 의희 4년(408년), 양준의 증손자였던 양사평[2]이 처형된 이후에는 자손들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2.1. 세설신어의 일화

재능에 관한 일화가 《 세설신어》에 많이 실려있다. 세설신어는 어디까지나 그 시절의 가십 모음집이므로 이 일화들이 실제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위진남북조시대에 양수가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었다는 것 정도를 알 수 있다.

3. 삼국지연의

한술 더 떠서, 조조에게 무례하게 대한 장송과 서로 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양수는 조조의 비범함을 보여주기 위해 조조가 쓴 병법서 《맹덕신서》를 보여주지만, 장송은 코웃음을 치며 그 자리에서 다 외워버렸고 놀라서 조조한테 가서 장송이 맹덕신서를 한 번에 읽고 다 외웠다고 얘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맹덕신서가 옛날 책과 비슷하다고 장송이 말했다는 것까지 쓸데없이 말해버려서 조조는 오히려 성이 나서 책을 불태워버린다.

국내의 일부 연의 판본에선 양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제갈량이 접한 뒤 "양수는 분명 남보다 빼어났다. 하지만 남보다 잘 아는 것을 입 안에 삼키고 있기란 더욱 어렵다. 양수가 조금만 더 지혜로웠다면 입을 열지도 않았을 것이고,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 평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정사와는 달리 조조가 계륵 사건 당시 곧바로 처형한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대충 보다보면 계륵 사건 당시 갑툭튀해서 조조 심기 한 번 거스른 죄로 목이 날아간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4. 숙청 원인

조식이 양수의 말대로 그대로 했다. 이 때문에 양수는 제후[11]들과 밀통한다는 [交搆] 이유 때문에 처형되었다.
- 삼국지 위서 진사왕식전 - [12]
이런 일이 세 번정도 있자, 조조는 그 대답이 신속함이 기이하다고 여겨서 그 내막을 알아보게 하였다. 그 내막을 알게 된 조조는 더더욱 양수를 꺼리게 되었다.
게다가 양수가 원술의 생질[13]이기도 했는데, 조조는 그 후환을 두려워하여, 곧 이일로 인해 양수를 죽였다.
- 후한서 양표열전 - [14]
양수가 임치후(臨淄侯) 조식(曹植)과 같이 술이 취하도록 마시고, 사마문[15]을 마음대로 출입하고, 안릉후(鄢陵侯) 조창을 헐뜯었다 [謗訕]는 것을 고자질하는 자가 있었다. 조조가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노하며, 곧 양수를 붙잡아 죽였다. 그때 양수의 나이 45세였다.
- 속한서 -
조조의 의중을 읽어내거나 똑똑한 게 양수만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양수와 달리 적정한 선에서 모른 체 하거나 간접적으로 전달, 혹은 조조가 스스로 말하도록 밑밥을 깔아주는 등 처신을 잘했다. 곽가의 경우엔 자기 계책을 택하지 않는다고 조조 앞에서 침을 뱉는 파격적인 행동을 할 정도로 성격이 개차반이었지만, 그 행동은 양수처럼 잘난 척이나 가식을 떨지 않고 대놓고 보여준 것인데다 그만큼 필요해서 그런 것이었으며 조조도 이를 잘 알기에 꺼리지 않았다. 즉, 차라리 면전에다 욕을 했으면 했지 양수처럼 신경을 살살 긁어서 마치 언제든 뒤에서 뒷담화를 할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주진 않은 것이다. 또, 후계자 문제같은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 적도 없다.

연의에서는 거의 이러한 면모 때문만으로 죽고, 죽인 후 조조가 후회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후계자 권력 구도에 따른 숙청이 어느 정도 기반에 깔려 있다.

일단 온전히 창작일 것만 같은 계륵은 정사 삼국지 배송지의 주석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만 계륵 때문에 바로 죽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과 다르게 양수의 죽음은 조금 나중에 이루어진다.

재수없이 나대다 죽은 것으로 묘사되는 연의와 다르게 사실 양수의 죽음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조조의 후계자 문제"였다. 양수는 자신의 주군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조조의 후계자 문제에 개입했고, 거기다 패배한 쪽인 조식의 편을 들었기에 그런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계륵 사건 때 살았다고 해도 다음 황제인 조비가 죽였을 가능성도 있다. 비슷하게 조식의 라인이었던 정의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생각해본다면, 차라리 양수는 이 무렵에 죽었기 때문에 가문이라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조조의 숙청 자체도 유비와의 대결에서 패배해 정치적 안정성이 위태해지자, 말년에 급하게 정해 매우 불안정한 후계자 조비를 위한 것이었다. 한때는 조조 본인이 후계자들을 경쟁시키고는 하였으나, 후계자가 온전히 정해진 데다가 그를 키워줄 만한 시간도 느긋하지 않은 상황에서, 후계자 결정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재수없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조식의 오른팔은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조조 자신의 사후 미래 계획에 걸림돌로 보였을 것이다. 만일 조식이 선택받았다면 양수 개인이 혐오스럽더라도 미래 후계자를 위해 재수는 없지만 능력은 있는 든든한 오른팔을 용납하였을 것이다. 후계자 조비 일파였던 사마의는 차후 조비의 치하에서 중신으로 성장해 그를 지탱한 것처럼 양수 또한 황제 조식을 위해 그리하였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조비가 후계자인 상황에서 조식을 열렬히 지지하는 좋은 가문 출신의 능력있는 오른팔의 존재는 상황이 정 반대다. 자식인 조식을 죽일 수는 없으니 적어도 그의 수족을 잘라낼 필요는 있었던 것.

즉 조조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후계자 문제에 자꾸 개입하는 양수가 거슬렸을 것이고 거기다가 밀려난 쪽의 지지자였으니 양수는 그 시점에서 언제든 목숨이 날아갈 위기에 놓였다.이런 상황에서 계륵 사건은 조조에게 양수를 숙청할 확실한 명분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양수는 꾸준히 자신의 명을 재촉한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5. 기타

6.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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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진 혜제 사마충의 황후 가남풍에게 멸족된 양준와는 한국 한자음에 한해 동명이인이다. [2] 형으로 양전기가 있었다. [3] 양젖으로 만들었다는 음료. 현재는 연유 수, 소라고 쓰인다. [4] 혹은 사람들을 불러모아 나누어줬다. [5] 一合을 세로로 써서 읽어보자. 합(合)이 풀어져서 일인일구( 一人一口), 즉 '한 사람당 한 입씩'이라고 볼수도 있게된다 [6] 수라는 것은 유제품 일체, 술, 동물성 유지, 유제품이나 술이 들어간 과자, 빵을 모두 총칭한다. 현재 중국인에게 수라고 말하면 퍼프 페이스트리 류의 층이 있는 바삭하고 퍽퍽한 과자를 떠올리는데, 실제로 섬서 일대에서 이 고사에서 유래한 '일합수'라는 물건이 판매되고 있는데 과자다. 대만에서 유명한 파인애플 과자 펑리수를 鳳梨酥라고 쓴다. [7] 사극 대군사 사마의에서는 조비가 문지기를 죽이지 않는 결정을 함으로써 순욱을 비롯한 대신들과 병사들의 인심을 얻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 조식은 조조로부터 칭찬을 듣고 상을 받기는 했으나 정작 장인인 최염조차 조비를 지지하게 만들었다. [8] 삼국지 연의에서는 오랑캐로부터 채옹의 딸 채염을 구출한 자가 바로 자신 조조였기에 한중 원정을 가는 길에 채염이 거주하던 남전을 들렀는데 그때 그곳 벽에 걸린 조아비를 보는 것으로 나온다. [9] 辤는 辭(말씀 사)의 이체자이다. [10] 드라마 대군사 사마의 1부 5화 ~ 6화에서 이 장면이 그대로 재현된다. [11] 조조의 아들이다. [12] 조비와 조식의 후계자 경쟁에 양수가 관여한 내용 후에 이어진다. [13] 외조카 [14] 조조의 의중을 미리 알아채는 이야기들 이 후에 이어진다. [15] 司馬門: 궁궐의 정문: 수레를 타고 들어오면 안되고 걸어서 들어와야 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16] 속담조에 따르면 조조는 비단 갑옷 2벌, 여덟 마디가 은으로 장식된 복숭아나무 지팡이 1개, 관부의 명주 비단 500필, 60만 전, 사면에 투명한 휘장을 칠한 칠향거 1대, 푸른 소 2마리, 하루 8백 리를 달리는 화류마 1필 무장한 도금 안장과 고삐 10개 영포 1구, 시위 2명을 보내며 양태위부인 원씨에게도 무늬넣은 주름비단 갖옷 1벌, 직성화 1켤래, 늘 좌우에서 시위한 시녀 2명을 보낸다고 하였다. 이어 조조의 부인 변부인도 양태위부인 원씨에게 의복 1농, 무늬 명주비단 100필, 방자현 관부의 비단 100근, 사사로이 타고 다닐 향거 1대와 소 1마리를 보낸다고 하였다. [17] 그냥 가식이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조조는 가끔씩 감정적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양표를 보고 진짜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조조 본인도 먼저 떠나보낸 아들이 있으니... [18] 해하전투 이후 항우가 추격해 온 옛 부하 여마동을 보고 자결하자 여마동, 왕예, 양무, 여승과 함께 항우의 시신을 얻어 공신이 되었다. 고조공신열후 서열103위 [19] 영천 순씨는 기껏해야 순신군과 팔룡이라 일컬어지는 그 아들들 대부터 명성을 떨쳤고 가문에서 역임한 최고 관직도 이천석의 지방 태수급에 삼공은 커녕 구경도 없었다. 당고의 금으로 인해 당인들 사이에서 명망이 있었으나 기실 비슷한 수준의 명망을 지닌 가문은 여럿 있었다. 반면 홍농 양씨는 종친들까지 포함해도 한나라 전체에서 몇손가락 안에 드는 문벌이었고 그들을 거주나 장리로 모시는 관리들이 천하에 널리 퍼져 있었다. 당장 환관들과 상부상조하며 세력을 펼친 원씨정도를 제외하면 홍농 양씨보다 확실하게 우월한 가문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